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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삼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4. 8. 18.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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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마산상고 3학년 때 현대 유니콘스의 2차 11순위 지명을 받았으나, 경성대학교 체육학과(2002학번)에 진학했다.

고교 시절에는 깡마른 체격에 구위도 그저 그런 선수였지만, 대학 입학 후 체격이 커지며 기량도 성장했다. 경성대학교 야구부 시절 통산 32승 4패 평균자책점 0.34에 2004년 세계 대학 선수권 대회에서 캐나다전 승리 투수, 이듬해 2005년엔 추계리그 우수 투수상과 대학리그 투수 MVP를 땄다. 동기생 우완투수 김기표와 함께 당시 좌원삼-우기표로 불릴 만 했다.

프로 데뷔 후에도 대학 시절의 위용을 보이며, 입단 시즌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자리하면서 리그 상위권의 성적을 내었고, 현대 유니콘스에서 히어로즈 시절까지 팀을 지탱하였다 삼성 라이온즈 이적 후엔 삼성 왕조의 선발 한축을 책임지는 주축 선발투수이자 정민태에 버금가는 빅게임 피처로 활약했다. 기록상으론 현대, 히어로즈 시절보다 떨어졌지만, 든든하게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커리어의 황금기를 보냈다.

그러나 2013년 이후 FA로 60억을 받은 이후 크게 부진하며 먹튀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장원삼의 FA 계약은 일반적으로 KBO 리그 역사상 최악의 투수 FA 계약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나, FA 계약 이전의 호성적으로 인하여 그나마 평가가 심하게 낮지는 않다. 이는 2018년을 앞두고 연봉이 7억 5천에서 5억 5천이나 삭감된 2억원에 재계약을 하게되는 원인이 되었고, 결국 2018년에도 부활하지 못하고 팀을 떠나게 되었다. 이 기간동안의 장원삼은 WAR 1당 31억원을 기록하는 역사적 수준의 먹튀였으나, 서비스 타임에 왕조 시절을 지탱한 국내 선발진의 한 축이었던 공이 매우 컸고 본인의 이미지도 좋은 편이기에 현재까지 삼성 팬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다소 이르다고 할 수 있는 2015년을 기점으로 노쇠화가 시작되었고 2019시즌 LG 트윈스로 이적했다가 2020시즌 롯데 자이언츠로 다시 이적하여 한 시즌을 보낸 뒤 재계약이 불발되며 은퇴하였다

 

장원삼 데뷔 초, 좌완 에이스로의 발돋움


뛰어난 제구력과 다양한 변화구를 바탕으로 데뷔 초부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젊은 나이에 팀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하며 삼성 라이온즈의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


장원삼 리그를 대표하는 좌완 투수


KBO 리그 최고의 좌완 투수 중 한 명으로 손꼽히며 많은 팬들의 기대를 모았습니다.
다양한 기록을 세우며 KBO 리그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장원삼 베테랑으로서의 변신

시간이 흘러 젊은 시절의 구위는 다소 줄었지만, 노련함과 경험을 바탕으로 팀에 기여했습니다.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며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장원삼 플레이 스타일

포심, 투심, 슬라이더, 커브, 포크볼, 서클 체인지업 등 다양한 구종을 던지지만 사실상 포심과 슬라이더의 2피치 경향을 보인다. 뛰어난 완급 조절과 제구로 타자와 승부한다. 경기 운영이나 이닝 소화력도 좋다.

평균적인 구속과 다소 떨어지는 구위를 뛰어난 제구로 보완하는 전형적인 좌완 피네스 피처이다. 하락세 이전까지 속구 최고 구속은 147km/h에 평균 구속은 139km/h 좌완치고 느린 편은 아니지만 빠른 편도 아닌 딱 평균 수준의 구속이다. 중요한 경기에서는 140 초반대까지 구속이 꾸준히 나와줬다. 다만 위에서 볼 수 있듯 구속이 느린 편은 아니어도 공이 다소 가볍다.

그러나 이러한 구위를 제구력으로 커버한다. 스트라이크 존 구석을 찌르는 정교한 코너웍을 기반으로 슬라이더를 섞어 삼진을 많이 뽑아내는 뜬공 투수인데, 구위가 좋은 편이 아니다보니 피홈런이 많다. 대신 컨디션이 좋을 때는 웬만한 파이어볼러 이상으로 삼진을 양산해내는 능력이 있다. 통산 K/9도 6.41로 꽤 높은 편이다.

팀 동료인 윤성환과 제구형 투수라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다소 있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매우 다른 유형의 투수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장원삼은 구위와 구속은 그저 그렇지만, 스트라이크 존 구석을 찌르는 정교한 코너웍을 구사하면서 슬라이더를 섞어 타자를 현혹시키는 전형적인 로케이션형 좌완이다. 그러나 윤성환은 느리지만 의외로 포심의 구위가 좋고 빠른 공과 구속이 상당히 차이나는 변화구인 커브를 이용하여, 로케이션에 신경 쓰기 보다는 공격적인 투구를 펼치는 타입이다. 간단히 말해 구속은 다소 쳐지지만 우완 정통파인 셈.

그런데 이 서로 다른 타입의 두 투수가 통산 성적에서 유사한 부분이 몇몇 존재한다. 장원삼/윤성환 순서로 통산 ERA 4.28/4.23, K/9 6.41/6.38, FIP 4.43/4.38, HR/9 1.06/1.00 등. 차이점이라면 BB/9가 2.88-2.26으로 차이가 조금 있는 편이다. 상술했듯이 같은 제구형 투수라도 스트라이크 존에 걸쳐서 던지는 장원삼과 보다 안쪽으로 던져 스트라이크 존에 넣는 것을 우선시하는 윤성환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사도스키가 비교 대상으로 서술한 톰 글래빈도 제구력으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투수이지만 통산 BB/9은 낮지 않다.

특이하게 좌투수임에도 투구 플레이트를 3루쪽으로 밟는다. 대개 좌투수들은 1루쪽을 밟는 데다 특히 슬라이더가 주무기인 투수들은 슬라이더 각을 더 크게 보이도록 더욱 그렇게 하는데, 장원삼은 슬라이더가 주무기이면서도 3루쪽을 밟는 것을 보면 정말 특이한 경우. 장원삼 본인도 1루쪽을 밟으며 던지려고 했지만 본인에게 안 맞아 결국 포기하고 3루쪽을 밟고 던진다. 2014 시즌에 1루쪽을 밟겠다고 선언하고 한화 전에 출장해 1루를 밟고 던졌다 대판 깨지고 나선 다시 3루를 밟았다. 대신 3루를 밟는 것이 우타자와의 몸쪽 승부에선 유리하다고 한다.

류현진과 김광현, 봉중근에 비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에서 상대적으로 밀려 당대 좌완 넘버 4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경기를 지배하는 능력은 이들 못지 않은 우수한 투수로 특히 이닝 소화력이 우수하다. 뛰어나지만 아주 튀지는 않는 적당한 구위에 최고는 아니지만 좋은 제구력에 좋은 커맨드를 겸비해 S급, A+급은 아니어도 A급 소리 듣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선수. 현대 시절엔 계투의 방화, 히어로즈 시절엔 팀이 난장판이었던 것 때문에 승운이 없어 불운한 투수란 소리를 들었지만 삼성 이적 후 승운이 오히려 따르기 시작하며 이미지가 급변한 묘한 케이스이기도 하다.

데뷔 시절부터 언급된 상체 위주의 피칭이 지금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데, 이는 현대 시절 김시진 투수 코치에게 조련 받은 폼이다. 실제로 그의 투구폼을 보면 공이 떠나는 순간 상체의 회전력으로만 공을 던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로 인해 구위에서 약점을 보인다. 제구력으로 구위를 메꾸지만 제구란 게 매번 잘될 수는 없기 때문에 안 풀리는 날에는 더럽게 안 풀린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2013년부터 안 그래도 좋지 않던 구위가 2016년에는 공의 구속까지 138km로 떨어지고 제구력까지 떨어지면서 통타를 당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노쇠화가 찾아오면서 상체 위주의 피칭에 한계가 찾아온 듯 하다.

수첩을 들고 다니며 직접 상대 팀 타자들의 특징 및 장단점을 기록한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전력분석팀의 조언을 구하지 않거나 스스로 상대 팀에 대한 분석도 하지 않고 마운드에 오르는 투수도 많다.

아는 사람은 아는 짝수 년도 징크스가 있다. 홀수 년도에는 죽을 쑤고 1년을 푹 쉰 장원삼은 짝수 년도에 폭풍같이 스탯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데, 2012년에는 한 술 더 떠서 다승왕과 골든 글러브를 받았다. 2013년에는 비록 평균자책점이 4점대로 높았지만 데뷔 첫 홀수 년도에 두자리수 승리를 거두어 비교적 좋은 성적을 찍었는데, 드디어 징크스를 벗어났다는 평에서부터 FA로이드라는 평까지 분분하다. 그리고 15년에는 또다시 귀신같이 부진하면서 2군도 다녀왔고 간신히 10승을 채웠다.

KBO 리그에서 손꼽히는 빅 게임 플레이어 중 하나이다. 삼성 이적 직후 시즌인 2010년 단 한 해만 부진했을 뿐, 한국시리즈에서는 그야말로 언터쳐블이라 불릴 만한 투구 내용을 보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2012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의 승리투수가 되었다. 거기에 국제전에서도 출중한 활약을 펼쳤는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약체 팀 전문으로 등판했다고는 하나 2경기 13이닝을 모두 무실점으로 막았으며 2011년 아시아 시리즈에선 예선에선 부진했으나 정작 결승전이 되자 소뱅 상대로 호투를 선보이며 대회 MVP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3년 WBC에선 비록 1이닝이긴 해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경기를 매조지었다. 유일하게 부진했던 국제전은 2009년 WBC지만 위에서 언급되었듯 태업 의혹이 있으니 이는 논외로 보는 게 타당하다. 이 같은 빅게임 플레이어 본능의 가장 무서운 점은 홀수 징크스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2015 KS에서 부진하긴 했지만, 이는 도박 의혹 사건으로 전반적으로 다운된 팀 분위기를 무시할 수 없다.

그래도 히어로즈 암흑기의 소년가장이자 삼성 왕조의 한 축을 담당한 한 시대를 풍미한 좌완투수임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사실이다.

장원삼 뛰어난 제구력

좌우 코너를 정확하게 공략하는 뛰어난 제구력은 장원삼 선수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였습니다.
상대 타자를 꼼꼼하게 파악하고, 상황에 맞는 공을 던지는 능력이 탁월했습니다.


장원삼 다양한 변화구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하며 타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슬라이더는 타자들의 헛스윙을 유발하는 효과적인 무기였습니다.


장원삼 강한 정신력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팀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꾸준한 자기 관리를 통해 오랜 기간 최고의 기량을 유지했습니다.

장원삼 별명

별명은 이름의 '삼'자가 석 삼(三)자인 것에서 착안해 3과 관련된 별명이 많다. 장one3, 원쓰리 등등. 또한 三星 소속이기도 해서 '삼원삼', '장원삼성'이라는 별명도 있다. 2012년에는 17승으로 다승왕을 차지하고 MVP 후보에까지 올랐으며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그러나 다승 외의 지표가 다승왕이나 MVP 후보이자 골든 글러브 수상자에 걸맞지 않아 까이는 별명으로 장운삼으로 불렸다.코야마 진 트레이너의 오타에서 비롯된 징원심이라는 별명도 있다. 주로 엽기적인 사진을 두고 징원심이라 부르며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는 장원삼과 징원심은 별개의 인격으로 취급하는 중. 야민정음으론 튽B. 그리고는 삼적화의 원본으로 멕시코식 이름을 따서 원삼 가르시아이라고 한다.


윤희상이 타구에 급소를 맞은 사건과 관련, 류현진이 국내 선수 중에선 장원삼이 대표적으로 낭심 보호대를 찬다고 인터뷰하는 바람에 졸지에 낭심 또는 낭심 보호대와 관련된 별명도 생기고 있다. 다만 본인 인터뷰에 따르면 2012년까지는 착용하다 2013년부터 불편해서 낭심 보호대를 착용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별명은 장원삼이 술을 좋아한다는 데서 착안한 접두어 술- 이 들어간 별명. 못하면 술리대나 술션 등으로 불리고 잘하면 술리프 장이라든가, 후술할 한국시리즈에서의 맹활약 등으로 인한 술가너 등의 별명이 있다. 어쨌든 술 자로 시작하는 별명은 대부분 장원삼의 별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증언에 따르면 매일 다른 후배와 포장마차에서 대작을 하며 매일 같이 술을 그렇게 마셨다고. 그러나 결혼 후에는 술대신 레몬 디톡스 다이어트 루머로 인해 장레몬이라고 더 많이 불린다. 그리고 진짜로 음주운전으로 나락행


2013년 FA 계약을 맺을 때, 이미 계약을 맺었음에도, 하루 뒤에 계약 소식이 알려졌으며, 정말 순수하게 가치를 알아보고 싶었다는 인터뷰를 함으로서 수많은 삼성 팬들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등의 행동 등으로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는 '장똑띠', '장순수', '장조련' 등의 별명이 추가되었다.


2016년에는 60억 장짬뽕으로 불리우고 있다. 공교롭게 2020시즌 장원삼이 송승준이 있는 롯데로 이적해 잠시 팀동료가 되었고 둘 다 은퇴 후 최강야구에 출연해 다시 동료가 되었다.


2019년 LG 트윈스로 이적하면서 등번호 30번을 부여받아 3의 이미지를 이어나가게 되었다.

마무리

장원삼 선수는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야구계에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갈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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