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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쉬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0. 12. 12.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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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 위치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초콜릿 회사이자 해당 회사의 초콜릿 제품군의 이름.

 

1894년 밀튼 스네이블리 허쉬(Milton Snavely Hershey, 1857년 9월 13일 ~ 1945년 10월 13일)가 '랭커스터 캐러멜 컴퍼니'의 자회사로서 허쉬 초콜릿 컴퍼니(Hershey Chocolate Company)라는 이름으로 설립하여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름이 바뀐 것만 봐도 알겠지만 원래는 캐러멜 만드는 회사였다. 밀크 카라멜로도 매우 유명해서 한때 영국에서 대량으로 주문이 들어와서 이걸로 창업 대출을 한큐에 상환했을 정도라고 한다.

흔히 Hershey's라고 알려져 있는 이 기업의 예전 사명은 2005년 4월까지 '허쉬 식품 주식회사(Hershey Foods Corporation)'이었으나, 이후 '허쉬 기업(The Hershey Company)'으로 개명하였다.

뉴욕, 라스베이거스에는 허쉬 초콜렛 월드라는 허쉬 특판장이 있는데, 자사의 각종 대표 브랜드[1]들은 물론이고 한정 상품도 판다. 심지어 초코렛을 믹스해서 파는 코너도 있다. 이와 얼마 되지 않은 거리에 경쟁사 특판장이 마주해 있기도 하다.

펜실베이니아에는 아예 허쉬라는 마을이 존재한다. 이곳에 허쉬 초콜렛 월드 본점이 있고, 여기서 허쉬 초콜릿 제작을 관람차를 타고 견학 가능하다.

창립자 밀튼 허쉬

창립자 밀튼 스네이블리 허쉬는 메노나이트[2] 분파 출신 기독교 계열 신자라서 당시 자본가들과는 달리 매우 선량한 인물로[3], 자사에 근무하는 근로자들에게 전기와 온수가 펑펑 나오는 집도 주고, 극장이나 경기장 같은 여가 시설도 충분히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대공황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정리해고는 최대한 피하려 했고, 임금도 인상해주려 노력했다. 그 때문에 허쉬사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지상낙원이라 여겨졌다고. 게다가 원래부터 향토기업가였기 때문에 생전에 그의 공장이 있던 마을에 그의 이름을 딴 도시가 생겼다.

하지만 이 양반도 결국은 자본가다 보니 노조를 불허했고, 결국 임기 말년에 회사에서 대규모 파업이 일어났다. 그래도 밀튼 허쉬는 이런 일이 생기면 그냥 용역을 동원해서 다 때려잡던 다른 기업가들과는 다르게 여전히 폭력만은 엄격히 반대해서 어떻게든 협상으로 원만하게 해결을 보려 했지만,[4] 문제는 허쉬가 너무 잘 해주니까 노조가 허쉬를 만만하게 본 건지 무리한 요구조건을 내세우면서 고압적인 자세를 유지해서 협상은 평행선을 달렸고, 그렇게 오랫동안 진척이 없다 보니 노조원들 중에서도 원래 파업에 참여할 의사가 별로 없었던 온건파 노조원들이 지쳐버렸고, 한편 허쉬사에 우유를 공급하던 농민들도 파업 때문에 거래가 중단되어서 막대한 손해를 입으면서 빡쳐버린데다, 노조가 공장부지 내에 있는 국기대에 계양되어있던 성조기를 내리고 노조 깃발을 내걸어서 전역군인회의 어그로를 제대로 끌었다. 결국 이 문제의 노조는 파업에 참여할 의사가 없었던 온건파 노조원들 + 장기간의 거래 중단으로 빡친 농민들 + 노조가 국기를 훼손해서 빡돈 전역군인회로 이루어진 연합군에게 공격받아 강제 해산되어버린다.

비록 밀튼 허쉬 본인은 절대로 원하지 않았고 절대로 본인이 사주한 것도 아니었지만 어찌되었건 이 폭력 사태에 큰 죄책감을 느꼈던 밀튼은 이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고 만다. 그래도 별세하기 몇 년전인 1940년에 회사에 공식 노동조합이 생기는 것을 보고 축하해줬다. 다행히 이 사건 이후에도 허쉬사의 복지 수준은 달라지지 않았고, 이후에도 사회복지사업 참여에도 적극적이다. 그리고 밀튼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어도 부지런히 자선활동을 계속했다. 밀튼 허쉬는 자녀가 없었기에 재산의 대부분을 자신의 이름을 딴 학교의 신탁 기금인 Milton Hershey School Trust에 기부했다. 그리고 아예 신탁회사를 세워서 학교와 기업 두개를 다 관리하게 했다. 실제로 펜실베이니아에는 은근히 허쉬 이름 들어간 것이 엄청 많은데, 거의 대부분 다 이 사람이 관여한 것이다.

상기한 Milton Hershey School은 자녀가 없었던 허쉬 부부가 1909년에 고아원 겸 고아들을 위한 학교를 만든 것이 그 시작이다. 처음에 세워진 부지는 허쉬가 자랐던 농장의 부지라고 한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2천 명 정도의 재학생이 다니는 매우 거대한 규모의 기숙학교로 사회적,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 위주로 운영하고 있는 학교다. 대공황 때 고아가 된 소년이 이 학교 겸 고아원에서 교육받고 자라서 허쉬에 입사, 이후 CEO가 된 훈훈한 사례도 있다. 그리고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운영되는 학교다보니 당연히 학비는 없다. 게다가 위에 써놨듯이 실질적으로 이 학교가 허쉬사의 최대주주라고 봐야하기 때문에 자금력도 엄청나다(...).

참고로 1912년에 영국에서 일을 마치고 부인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일정이 앞당겨져 원래 타기로 했던 배가 아닌 다른 배를 타야 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원래 타기로 했던 배가 타이타닉 호였다는 점.. 그야말로 착하게 살면 복이 온다는 말의 산증인이 따로 없다. 이 할아버지 진짜 십년감수 했네

군납 초콜릿

전시중인 미군에 납품되는 초콜릿 메이커로도 유명하다. 1937년 미군이 군용 비상식량인 D 레이션으로 초콜릿을 채용하기로 하면서 허쉬사의 납품이 시작되었는데, 이 때 미군이 제시한 납품 조건은 네가지로 각각 <1. 무게는 4온스로 만들어야 할 것>, <2. 고열량으로 만들어야 할 것>, <3. 상온에서 녹지 않아야 할 것>, <4. 맛은 삶은 감자보다 조금 나은 수준으로만 만들 것>이였다. 앞의 3가지는 당연하다지만 마지막 조건이 심히 괴랄해 보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너무 맛있으면 비상식량의 취지와 달리 평소에 다 까먹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 그래서 이 초콜릿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비상식량도 평소에 손댈 생각을 안 하게 하기 위해서 고의로 맛없게 만든다.

1, 2번은 초콜릿의 기본적인 수칙이기 때문에 간단한 일이었고, 3번은 당시에도 있었던 '잘 안 녹는 초콜릿 제조 기법'들이 있었기에 그걸 응용하면 간단한 문제였다. 실제로 허쉬사는 브라우니 같은 제과 방식을 본 따서 초콜릿을 제조했고 실제로 단단한 강도와 보다 높은 내열성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여담으로 이 내구도 때문에 기존 기계를 못 쓰고 인력으로 일일히 프레스를 찍어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조건을 맞추기 위해 오트밀을 섞어서 식감도 괴악하고, 맛도 괴악하게 만들어서 주문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했다. 어쨌든 주문 조건은 완벽하게 맞춰 냈으니 미군도 만족하여 병사들의 테스트를 거친 후 1939년 D 레이션으로 채용한다.

그런데 너무 단단해서 건장한 병사들도 평범한 초콜릿처럼 씹어 먹으려면 이가 부러지는 듯한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고, 잘 녹지도 않아서 총검으로 잘게 자르거나 단단한 물건으로 후려쳐 박살내고 입에 넣어서 조금씩 녹여 먹어야만 했는데, 그나마도 잘 안 녹아서 기존 초콜릿보다 녹여먹기마저 힘들었다. 그리고 상기했듯 맛도 끔찍해서 병사들은 이걸 밞아 뭉갠 감자맛, 타이어맛, 히틀러의 비밀무기(...)등으로 열심히 까댔다. 그래도 녹이기만 하면 먹기는 쉬우니 환자들의 식사 대용으로 이용되기도 했다고. 또 카카오 함량도 높은 만큼 본래 취지인 칼로리와 기력 보충[5]이라는 비상식량으로서의 능력은 차고도 넘쳤다.

뭐 병사들의 악평과는 별개로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엄청난 물량이 제조되었는데, 2차대전 기간 동안에 총 30억 개가 제조되었다고 한다. 2차대전이 끝난 직후 전세계 인구가 약 15억이었으니 전세계 인구 1명당 2개씩 지급할 수 있었다.

이렇게 생겼다.(위키백과 링크)

이 D레이션 초콜릿은 군용 물품이다 보니 소련에도 무기대여법으로 엄청난 양이 공급되었는데,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수세에 몰린 소련군이 최후까지 지급할 수 있었던[6] 유일한 식량이였다고 한다. 어쨌든 스팸과 더불어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양대 군납식품이다. 그 무용담(?)이 엄청나서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도 등장한다. 네덜란드에 입성한 부대원들[7]이 동네 꼬마에게 초콜릿을 나누어주는데 그게 바로 군납 허쉬 캔디 바. 이 꼬마들은 유럽인임에도 불구하고 전쟁중에 태어나서 초콜릿을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근데 감자보다 조금 맛있는걸 먹고 웃는다? [8]

2차대전 이후에도 D레이션 바는 미 육군 표준 레이션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베트남 전쟁을 거쳐 현재까지도 살아남았다. 베트남 전쟁 때는 "트로피컬 바"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걸프 전쟁 당시에는 중동 현지의 높은 기온 등으로 인해 새로운 레시피의 초콜릿이 요구되어, 트로피컬 바와 구분되는 "데저트 바"가 새로이 레이션에 편성되었다. 이 데저트 바는 시중에는 판매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6.25전쟁 때나 직후에 미군들이 들어와서 많이 먹었는데, 그때에 아이들이 미군들을 따라다니며 ‘기브 미 초콜릿’이라고 하면 허쉬 초콜릿을 주었다.

신맛

허쉬의 밀크 초콜릿은 특유의 시큼한 맛으로 유명하다. 사실 이것은 허쉬가 원치 않았던 결과물이었으나, 지금은 허쉬의 아이덴티티 그 자체로 자리잡아버렸다.

원래 밀크 초콜릿은 스위스의 다니엘 페터의 고안과, 우유를 농축하는 기술을 발명한 앙레 네슬레의 합작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인데, 이들은 당연히 이 기술을 대외비에 부쳤다. 허쉬도 처음에는 이 방식을 도입하려고 애썼으나, 결국 기술을 빼오지 못해서 자체적으로 제조기술을 개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방식은 특유의 신맛을 남게 하였다. 신맛의 원인은 허쉬의 방식으로 농축우유를 제조하면 유지방 처리 과정에서 낙산(Butyric acid)이 생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럽 방식에 비해 미각적으로는 저급한 기술(다만 대량생산의 측면에서는 이쪽이 유리하다)이며 이 냄새가 초콜릿의 풍미를 심하게 망치기 때문에, 유럽 사람들은 허쉬 초콜릿에서는 구토 맛(시큼한 맛)이 난다고 놀리곤 했었다.

그런데 미국인들이 '수입산'인 유럽 초콜릿을 접하기 어려운지라 '국산'인 허쉬 초콜릿을 주로 먹다보니 허쉬의 신맛에 익숙해지면서 미국 내에서는 오히려 시큼한 맛이 나는 것이 초콜릿의 스탠다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미국의 대배우인 진 해크먼이 이 허쉬 특유의 맛을 엄청 좋아한다. 본인 말로는 세계에서 유명하다는 최고급 초콜릿들을 다 먹어봤으나 허쉬가 제일 맛있다고... 후발 기업들의 경우 허쉬와는 달리 제대로 된 유럽 기술을 도입하면서 시큼한 맛이 별로 나지 않았지만, 미국인들이 이미 허쉬만의 신맛에 길들여질대로 길들여진터라 결국 후발 기업들도 멀쩡한 초콜릿에 별도로 낙산을 소량 첨가하서 허쉬처럼 신 맛이 나도록 만들게 되었고, 오히려 허쉬가 자신의 제조 방식을 영업 비밀로 만들어 버리는 아이러니한 일이 발생해버렸다.

여담으로 이 신맛은 밀크 초콜릿 제품군 한정이다. 허쉬 제품일지라도 우유 함량이 적은 다크 초콜릿과 화이트 초콜릿 제품군은 신맛이 거의 나지 않는다. 하지만 2014년 즈음 제품군 전체를 리뉴얼했는데 신맛과 특유의 똥내 향이 확 줄었다. 기존의 맛을 좋아하던 사람들은 이제 어디서도 같은 맛을 느낄 수 없게 되었다며 크게 실망하는 중. 특히 포장지 하단에 띠가 새겨져있는 creamy 제품군은 사실상 유럽 초콜릿이나 다를 바 없게 되었다. 참고로 제품군 리뉴얼 하면서 로고도 바꿨는데 정말 별볼일 없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항목 제일 위에 있는게 바로 바뀐 로고다. 기존 로고하고 크게 바뀐 것도 없고, 특히나 저 키세스 모양의 점은 그냥 사족이었다는 평가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도 기존 로고를 쓰고 있는 제품들이 많다.

한국의 경우, 국산 초콜릿들이 대부분 유럽식 농축법을 도입한 터라 신맛이 나지 않으므로, 외국에서 허쉬 초콜릿이나 키세스 등을 먹으면 약간 이질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서 맛에 민감한 경우에는 허쉬 초콜릿에서 시큼한 맛이 난다고 불평을 하는 경우가 있다. 다만 상술한대로 전후 미군에게서 구호품으로 허쉬 초콜릿을 받아먹은 경험이 있는 노년층들은 오히려 요즘의 유럽식 초콜릿 맛을 낯설어하는 경우가 있다.

2019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판매 중인 대다수의 제품은 카카오버터가 아닌 식물성 유지를 사용하는 로컬라이징 헬적화을 시전했다. 원래 초콜릿에는 체온보다 낮은 온도에서 녹는 카카오버터가 들어가야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초콜릿의 감촉을 느낄 수 있는데 식물성 유지는 녹는 점이 체온보다 높으므로 그런 감촉이 없어 풍미는 떨어진다. 로컬라이징된 버전이 수입과자점까지 점령하고 있지만, 가끔 카카오버터가 들어간 외국 판매 제품을 병행수입해서 들어온 물건을 파는 곳도 있다. 한국에서 판매 중인 허쉬 제품 중 롯데에서 생산하지 않는 제품은 카카오버터를 사용 중이므로 구매할 때 뒤의 원재료명에 카카오버터가 있는지 보고 구매하자.

참고로 코스트코에서 직수입해서 파는 허쉬 어소트먼트나 너겟은 미국산을 그대로 들여와서 파는 거라 식물성유지가 들어가있지 않다. 그래서 너겟은 입에 들어가면 살살 녹는다.. 포장지 까고 손에서도 살살 녹으니 주의 지갑도 살살 녹는다

대한민국 허쉬 역사

대한민국에 처음으로 허쉬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6.25 전쟁때 미군들이 구호물자로 나누어 준 물량에서 비롯되었다.[]

1984년 1월 해태제과가 라이센스로 대한민국내에서 최초 생산했고,[] 1989년 국내 최초로 미국산 완제품 키세스를 해태제과가 수입 판매하였다. 1991년 11월 매일유업과 기술제휴로 초코드링크를 선보였다.

 

생산 제품

허쉬초콜릿
허쉬 키세스
허쉬 리세스 - 땅콩버터, 초콜릿 제품군이다. 국내에는 기본형인 컵케익 모양 초콜릿, 초코바, 초코볼,초코칩이 발매되어 있다.
맥도날드 허쉬 리세스 맥플러리
허쉬초콜릿 드링크 - 이미지와는 다르게 상당히 싱겁다. 얼려서 먹으면 물맛(...)이 날 정도.
허쉬 브라운 카우 초코시럽 - 80년대 중반 해태에서 생산.
허쉬초콜릿 자이언트바
졸리 랜처 - 허쉬사의 대표적인 캔디브랜드. 일반적인 딱딱한 캔디와 과일모양의 젤리 등이 있음.
왓차마콜잇
트위즐러
아이스브레이커스
허쉬 스프레드 초콜릿
허쉬스 너겟 (한국에서 판매하는 허쉬 제품중 롯데에서 생산하지 않아 식물성 유지가 없고 카카오버터를 쓴다. 달라질 수도 있으므로 원재료를 확인하기 바람.)
허쉬 초코 슬러시 아이스 - 설레임과 유사한 형태의 제품.
허쉬초콜릿 칩 싱글 쿠키
허쉬초콜릿 칩 쿠키
허쉬초코칩 찰떡 쿠키 - 청우식품 생산.
허쉬 초코크림 샌드위치 쿠키
허쉬 민트크림 샌드위치 쿠키
허쉬 오리지널 핫 초코 - 2가지가 있다. 미국산 수입 완제품과 미성패밀리가 원료를 수입해서 위탁 가공한 국내산. 판매원은 두제품 다 미성패밀리.
허쉬 초코 크런치 시리얼 - 농심 켈로그와 콜라보
허쉬 카카오 파이 - 롯데가 생산. 자사가 생산중인 가나 코코아파이와 거의 다를게 없는 맛 포장지만 다르다는 평도 있다. 초콜릿 코팅에서 허쉬냄새가 날듯말듯하며, 속은 단맛과 카카오향이 아주 아주 약간 더 난다
- 2019.08 기준 : 몽쉘과 같은 기준의 사르르 녹는 맛을 기대하면 큰일난다. 목이 막히는 퍽퍽한 스폰지케이크 맛이다. 허쉬 라는 브랜드 및 상품명에 낚이지말것
허쉬 초코 와플 - 전라북도 군산에 위치한 서주의 과자류 상표권자인 흥양산업주식회사가 라이센스 생산 판매하는 제품이다. 서주제과에서도 생산한다.
허쉬쿠키크런치바 - 아이푸드 생산. 롯데제과 판매.
허쉬 골드바 땅콩&프리첼 : 화이트크림과 여러 재료를 굳혀 초콜릿 모양으로 만든 것이다.
오븐에 구운 허쉬 초코도넛- SPC 삽립식품 생산.
허쉬 리치 초콜릿 케이크[영문명]- 초코빵 사이에 크림치즈를 넣고 초콜릿으로 감은 6봉입 제품 [21] 롯데제과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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