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에 대해알아보자
대한민국의 작가, 방송인, 현 노무현재단 이사장. 전직 정치인이며, 정치평론가[11]이다.
대한민국 제16·17대 국회의원과 제44대 보건복지부장관을 역임했으며[12],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국민참여당 대표,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한때 현란한 말솜씨와 배경 지식 등으로 큰 인기를 얻어 진보 진영에서 유력 대선 주자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대선 경선에서 참패했고 이후 당선 가능성이 높은 고향으로 지역구를 바꾸어 출마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 선거에 낙선했으며, 이후 다시 경기지사 선거에서 낙선하면서 정치적 입지가 크게 약화되었다. 이후 통진당 부정경선 사건으로 통합진보당에서 정의당으로 당적을 바꾼 후, 얼마 뒤인 2013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정계 은퇴 후에는 작가라는 타이틀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유명한 베스트셀러인 거꾸로 읽는 세계사(1988년)가 있다. 일개 대학생이었던 유시민의 이름을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바로 그 책이다. 교양서적임에도 불구하고 무려 100만부나 팔렸다. 당시 초중고교생들에게 필독서로 꼽힐 정도였고, 90년대 후반 대입 본고사 및 논술 고사 시절에도 배경지식용 기본 필도서 중 하나로 꼽혔다.
정계 은퇴를 선언한 뒤에는 작가, 논술 강사, 강연자, 방송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자신을 소개할 때 '이것저것 하다가 지금은 글 쓰는 사람' 정도로 표현하고 있다. 정계 은퇴 후 보통 대중강연이나 언론 등에는 작가로 소개되고 있다. 또한 스스로를 '지식 소매상', '진보 어용 지식인'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으며, 방송 활동이 활발해진 2017년 들어와서는 스스로를 ‘방랑 예능인’이라 자칭하기도 한다. 사실 일단은 예능 프로그램인 썰전에 출연하기 때문인지 그전부터 우스갯소리로 자신을 예능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농담조의 발언이고, 진지하게는 방송이 ‘부업’이고 본업은 작가라고 단언하고 있다.
정계 은퇴 직후인 2010년대 초중반에는 논술 및 글쓰기 저서를 몇 개 내고 논술 특강을 열기도 했지만 이쪽에서는 별도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고, 이후 방송인과 강연자로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유 작가의 시민이라는 이름은 역사교사였던 선친이 조선 무관 충무공 김시민 장군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참고로 서애 류성룡의 13대 직계손이다. 탤런트 류시원과 같은 항렬이다. 유시민의 12대조는 장수찰방 류여, 11대조는 졸재 류원지이다. 알쓸신잡 시즌 2 안동편에서 풍산 류씨 집성촌인 하회마을을 방문했는데, 만난 유시민의 항렬이 비교적 높은 편이어서 마을 주민 어르신들이 유시민을 '할배'라고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2020년에는 총선을 끝으로 '정치 비평'에서 은퇴하겠다는 말을 남겼고 실제로 알릴레오 역시 59회 방송분을 끝으로 종영했다. 앞으로는 집필 활동 및 개인 활동, 그리고 현직인 재단 이사장 업무를 완수하겠다고 한다.
정치 성향
"저는 뼛속까지 친노죠. 노무현 대통령 좋아하니까..."
ㅡ 2016년 3월 17일 JTBC 썰전 1부 도중. 전원책 변호사가 유시민 작가에게 친노냐고 묻자.
"자기는 그렇게 생각하는지 안 하는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노무현 과에 속하는 정치인이 하나 있습니다."
"사실은 그렇습니다. 그… 유시민 씨 만나보면요. 제가 하는 것이 다 마음에 안 들어서 때때로 그 저기 쓴소리들 많이 해요. 물론 저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오늘 제가 그렇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던 것은 가장 어려울 때 저를 지켜줬습니다. 여러분이 그렇듯이 어려울 때 친구가 친구고 어려울 때 견디는 정치인이라야 진짜 정치인입니다."[13]
ㅡ 노무현 前 대통령의 퇴임 직후 봉하마을 연설 中
"이제 노무현 대통령은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실패했거나 포기했다고 말하지 맙시다."
그분이 쓰러졌던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가 새롭게 시작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참여정부의 자산을 상속받겠다는 데 대해서 우리는 아무 불만이 없습니다.
누구도 참여정부의 부채를 승계하지 않으려 하는데 대해서도 아무 불만이 없습니다.
그 부채는 우리 국민참여당이 인수해서 갚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여정부가 남긴 좋은 자산은 다른 사람과 다른 정당과 대한민국에 넘기고, 국민참여당은 노무현 대통령이 빚지고 가신것만 인수해서 끝까지 그 빚을 갚겠습니다!
그렇게, 그렇게해서 노무현 대통령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합시다!
그분이 불가능한 꿈을 꾼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합시다! 참여정부가 모든 것을 다 완성하지는 못했으나 결코, 실패한 정부가 아니었음을 증명해 보입시다!"
ㅡ 국민참여당 당 대표직 수락연설 中(2011.3.19, 국민참여당 전국 당원 대회)[14][15]
저는 리버럴로서 당원에게 아무 권한도 주지 않는 정당체제와 싸웁니다. 국가상징물 앞에서 주권자인 국민으로 하여금 공개적인 충성 서약을 하게 하는 국민의례에 반대합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기 원합니다. 성차별을 제도화한 호주제 역시 폐지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파업권을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으로 인정하며 이를 부당하게 제약하는 노동관계법을 개정해야 하며, 그런 전제 위에서 불법파업을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인정하며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는 데 찬성합니다.
ㅡ 2002년 서울대저널과의 인터뷰 中
(전략) 로마 때도, 아테네 때도 대중들의 지지라는 것은 단순한 욕망이에요.
(중략)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욕망, 대중의 욕망을 추종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지지율 하락이) 저는 대통령이 이성적인 관점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정부의 권한을 행사해가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일이라고 보고요.
ㅡ 2018년 12월 21일, 돌베개 특강에서
민주당-진보 계열 정치권의 대표적인 인사로 꼽히지만 오랫동안 민주당 계열에서 주류를 차지해 온 호남계 인사들과는 사이가 껄끄롭다 못해 거의 척을 진 수준이다. 유시민은 호남 출신 인사들과는 친한 경우가 거의 없는 반면, 소위 말하는 영남 출신 민주당계 인사들과 매우 끈끈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다. 유시민 본인부터가 영남 출신이며, 유시민이 정치적으로 가장 친밀한 관계를 맺었던 노무현, 조국, 문재인 등이 모두 영남 출신이다. 또 영남 출신인 故 박원순과도 친분이 있었으며, 이재명과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그 밖에 이해찬, 안희정 등 충청도 출신 진보 계열 인사들과도 친한 경우가 많다.
유시민은 운동권 선배인 이해찬의 보좌관으로 평화민주당에서 처음 정치권 생활을 시작했을 때부터 김대중 총재와 동교동계 가신들[16]을 상당히 싫어했다고 한다. 특히 김대중 총재가 보인 인기 영합적 행보를 '상인적 현실감각'이라 지칭하며 줄기차게 비판해 왔다. 3김 시대의 정점에 있던 그 80년대말 평민당에서 감히 김대중 총재를 까서 당내 파장이 일기까지 했다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결국 유시민은 이해찬 보좌관을 그만두자마자 평민당을 탈당했다.
이후에도 유시민은 진보권 정치권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서도 항상 김대중과 동교동계 호남 정치인들을 누차 비난했다. 그는 독일에서 귀국하자마자 "97대선 게임의 법칙"이라는 책을 출판하여 김대중 후보로는 대선에 절대 승리할 수가 없다고 단언했다. 그당시 비호남 출신을 내세워야 야권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그 주자로 자신의 은사인 조순 전 서울시장을 꼽았다.
결국 DJP 연합을 통해 김대중 정부가 출범했지만 유시민은 김대중이 대선 과정에서 보인 야합에 다시 한번 크게 실망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지 2년 가까이 흐른 시점에서 유시민은 "유시민의 세상읽기-김대중 대통령님께"라는 칼럼을 발표하여 현직 대통령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유시민은 칼럼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꼬집으며 김대중 대통령과 동교동계 가신이 개혁에 저항하고 있다고 직설적으로 비난했다. 이미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이제 온전히 접으며 2년이면 실망하기에 충분히 긴 세월이라고 개탄했다. 유시민은 특히 김대중 대통령이 '인사청문회', '특검제'를 공약으로 내걸었으나, 정작 정권을 잡자 이를 폐기했다는 점을 들어 개혁에 저항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훗날 장관 인사청문회가 도입되었을 때, 우연하게도 인사청문회 첫 적용대상자가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된 유시민 본인이었는데, 유시민은 이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 임기 후반에 이르자 유시민은 김대중 대통령이 친인척 비리 등으로 인해 이미 정상적인 판단력과 통치력을 상실했다면서 대통령 하야를 촉구했다.
이러한 행보로 인해 유시민은 호남-진보계 정치권 인사들로부터 호남 혐오론자, 영남 패권론자라는 비판을 공공연히 받아왔다. 유시민은 정계 은퇴를 선언하기 전인 2010년대 초까지 선거 때마다 이와 유사한 주장을 계속하면서 호남 정치인들 및 그들이 주류를 차지한 민주당계 정당과 대립각을 세우곤 했다. 유시민은 민주통합신당에 잠깐 머물렀다가 탈당한 이후 호남계 민주당에 발을 들이지 않고 있으며, 대신 진보당-정의당 계열의 정당에 계속 몸을 담았다. 하지만 사실 유시민은 진보당 계열과도 노선이 달라서 과거 노회찬, 심상정, 진중권 등 정의당 계열의 대표적 인사들과 모두 크게 대립한 적이 있었다.[17] 하지만 워낙 호남계를 싫어했기에 그나마 사이가 덜 나빴고 수용 가능했던 진보당을 마지못해 택했던 것이다. 물론 이전에는 개혁당과 열린우리당 창당에 주체적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참담한 지지율 속에 임기를 마치고 열린우리당은 해체되었으며, 친노 세력 또한 표면적으로 완전히 와해되고 말았기에 이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김대중과 동교동계 호남 정치인들에게 실망을 넘어서서 혐오에 가까운 감정을 가지고 있던 유시민은 같은 영남 출신의 떠오르는 정치인 노무현과 뜻을 함께 하게 되었고, 노무현이 대선에 나서게 되자 마침내 그를 돕기 위해 정치권에 본격적으로 투신하게 된다.
이후 유시민은 정치적으로 친노의 적통으로 불리고 있다. 유시민 본인은 자신을 불온한 '자유주의자'라고 칭하고 있다.[18]
정치인 유시민을 논할 때는 친노를 떼어놓고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유시민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친노계의 적통이나 다름없는 정치인이다. 실제로 노무현의 영원한 친구라 불리는 문재인, 오른팔, 왼팔인 안희정, 이광재보다도 친노라는 틀 속에서는 유시민보다 적통인 인물이 없다는 말까지 있다.
특이한 점을 꼽자면 일반적인 친노 정치인들과는 상당히 색다른 경력과 과정을 거쳤다. 우선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학연, 지연, 혈연, 당적, 경력에서 겹치는 부분이 전혀 없었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해 독일 유학을 했던 유시민과는 달리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산상업고등학교 졸업이 최종 학력이었고, 유시민은 경제학을 전공한 저술가로서의 경력을 가진 반면, 노무현은 부산 지역의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경상북도 월성군에서 태어나 청년기를 서울에서 보낸 유시민과 경상남도 김해시에서 태어나 대부분의 활동을 부산 지역에서 했던 노 전 대통령은 지역적으로 겹치는 부분이 없었다. 물론 넓게 봤을 때 같은 영남권 출신이라는 점이 있으나 아무리 같은 영남권이라도 TK와 PK는 지역색이나 정치색이 꽤 다르고, 지역 활동 상으로 크게 딱히 겹쳤던 것도 아니므로[19] 그렇게 큰 의미는 없다. 애초에 유시민이 같은 영남이라는 이유로 친노가 된 것도 아니다.[20]
노무현 당시 후보가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던 당시 유시민은 새천년민주당 당원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개혁국민정당을 창당해 새천년민주당 안에서 '후보교체론'을 들고나와 위기에 처해 있었던 노 후보를 바깥에서 도왔다. 인권 변호사 & 노동 변호사로 활동했던 노 전 대통령과는 달리 유시민은 서울대 경제학부 전공자였다.
본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학생 운동을 했던 명문대 출신 운동권 정치인들이 뛰어난 능력과 신념을 가졌는데도 고졸 출신이라며 노무현을 깔보는 것 같아 심기가 불편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종의 반발 심리로 '나도 당신들처럼 명문대 나왔고 학생 운동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기꺼이 노무현의 밑에 들어가 일하겠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노무현과 정치 역정을 함께 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대학교 출신 선배들이 노무현을 우습게 아는 것도 저는 좀 우스워요. 이 사람은 경제 전문가들과도 어느 정도 토론을 그 레벨에서 할 수가 있는 사람이고, 또 자갈치 시장 아줌마들과는 그 레벨에서 같은 주제로 대화를 할 수가 있는 사람이거든요? 근데 왜 노무현을 사람들이 평가해주지 않는가? 전 굉장히 서운해요.
특히, 학생운동 출신 선배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 또는 386 의원들조차도 그런 기색을 보이는 것. 이런 것은 솔직히 말하면 노무현이 대학 안 나왔다고 차별하는 거예요. 만일, 노무현이 일정 정도 수준의 대학을 다녔고 거기서 민주화 운동, 학생운동과 일정 정도의 연관을 맺은 상태에서 오늘까지 왔다면 절대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요.
사람들이 너무나 노무현을 가볍게 생각한다. 그 점이 저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서운하고 이건 역시 운동권 출신들의 오만이다, 이거는 그렇게 보고 제가 이렇게 노무현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중요한 정서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이른바 서울대 출신 중에서 나도 좀 잘났다는 얘길 들은 사람인데 내가 노무현 밑에서 확실히 기고 들어가서 그 사람을 위해서 일할 의사가 있다. 이걸 난 보여주고 싶어요. 노무현 씨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고, 그럴 만한 자질이 있는 사람이고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에요.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한 기여를 한 사람이고 왜 이것을 인정해주지 않는가... 그 점에 대해서 저는 운동권도 주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운동권도 주류다, 오만이다. 그렇게 보는 거고...
그리고 오늘의 이 사태에 노무현이 가는 데마다 왕따당하고 모욕당하고 냉대받고, 그렇게 해서 하이에나들이 어슬렁거리는 들판 위에 나무 위에 혼자 매달려가지고 지금 이런 상황에서 그 모든 것들을 등가적으로 정치인들 사이의 전쟁 또는 세력다툼으로 보면서 옳고 그름의 잣대로 이것을 보려 하지 않는... 이 지식인들... 한번 좀 다시 생각해보자. 과연 이게 그렇게 우리가 그렇게 치부하고 넘어갈수 있는 문제인가 그 점이 진짜 안타까워요..."
ㅡ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교체 이야기가 나오자 유시민이 노무현을 지지하면서 했던 멘트들.#
"김근태 의장이 존경스러웠던 분이라면 노무현 대통령은 사랑스러운 분이셨어요. 김근태 의장이 따라배우고 싶으신 분이었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뭔가를 해주고 싶은 분이었어요.''
ㅡ 영화 '노무현입니다' 중에서
이렇듯 뭘로 보나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그저 "노무현 대통령 좋아하니까"라는 이유로 친노가 된 사람의 대표격이 유시민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 당선 전후에 유시민의 인터뷰 영상을 보면 노무현 개인에게 흠뻑 반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인터뷰를 하면서 본인 스스로가 자기가 호모는 아닌데 노무현이란 사람이 그냥 좋다고 말하기도. 그리고 본인이 만나본 사람 중 가장 뛰어난 학습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며 노무현을 치켜세우기도 한다. 유시민 본인도 똑똑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사람이고 심재철이나 김문수 등 여권에서 활동하는 운동권 출신 정치인[21]들과 젊었을 적 친분을 가지고 많은 교류를 나누었던 걸 보면 정치계에선 노무현이 제일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포지션에 있으면서도 민주당의 친노계 의원과 친밀한 관계가 있는 것이 유시민이라는 사람만의 특징이다. 그 이유로는 비록 정당은 달라도 다른 친노계 민주당 의원들과도 정치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고 받았으며,[22] 사적으로도 참여정부 시절 맺었던 끈끈한 관계를 여전히 잘 유지하기 때문인 듯하다. 노 전 대통령을 기리는 행사가 열릴 때에면 자주 민주당 소속 친노계 정치인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입담을 과시하곤 한다. 이 때문에 유시민을 민주당계로 아는 사람도 제법 적지 않고, 실제로도 민주당계와 제3지대를 아우르는 광역계 친노계열로 구분된다.
유시민이 있던 진보 정당들의 강령도 노무현의 신념을 그대로 이어받은 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그로 인해 진보 정당과 민주당계 정당의 거리를 좁힌 인물로 손꼽히기도 한다. 실제로 그가 민주당계 정당과 진보 정당 사이에 끼친 영향은 크며, 친노 성향의 의원들이 이 둘 사이의 화합을 유도하는 행동도 자주 하고 있으며 유시민도 그중 하나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국민참여당이 친노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시민은 친노 아니다. 어떻게 해서 유시민이 친노 핵심으로 분류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안)희정이도, (이)광재도 유시민을 친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 대통령도 같은 생각이었다. 유시민이 어떻게 친노가 된 거냐고 물으니까, 노 대통령이 "유시민은 우리 편 아니다"라고 딱 잘라 말하더라. 우리 편은 아니고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어서 인정한다고 했다. 재임 중에도,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도 그랬다. 유시민은 우리와 그 무엇도 상의한 적이 없고 자기 마음대로 갔다. 대통령도 그런 면을 싫어했다. 남을 위해 정치를 해야지 나를 위한 정치는 곤란하다.
ㅡ 시사IN 179호, 강금원과의 인터뷰에서
다만, 유시민을 친노라고 보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노무현의 측근 중 하나인 강금원 회장과 노무현이 있는데, 강금원 회장은 유시민의 행보를 비판하며 '쥐XX처럼 정치하지 마라' 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으며, 그를 친노라고 보는 의견에 대해 부정적인 인터뷰를 했다. 또한, 노무현 본인이 직접 유시민에 대해 '우리편이 아니다. 그저 우리와 비슷해서 인정한 것이다'라고 잘라말했다. 다만 유시민이 기존의 가신그룹인 금강팀, 대표적으로 안희정, 이광재 등 국회의원 시절부터 함께 도왔던 인물들과 함께 걸음을 맞추던 인물이 아니기에 있던 일이다. 노무현 본인이 비슷한 사람이라 이야기했고 본인이 어려울때 자신을 지켜준 사람이라 극찬한 유시민이 친노가 아니라면 친노라고 할만한 정치인은 많지 않다.
여담으로 한겨레 절독을 선언한 적이 있다. '소비자' 유시민이 <한겨레>와 작별한 까닭은? 이유는 한겨레에서 ‘놈현’ 관 장사를 넘어라'라는 제목의 기사를 작성했기 때문. 하지만 순간적인 욱한 감정으로 그런 것이고 본인 이름으로 구독하는 것은 미안하다며 아내의 이름으로 계속 구독 중이라 한다. 그랬던 그도 훗날 노무현재단의 이사장이 되자 TV조선에 노무현재단에 노무현시민센터 설립을 위한 광고를 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이러한 친노에서의 위치 때문에 유시민을 친문으로 보아야 할 지는 복잡하지만, 최근의 행보에 따르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유시민은 문재인과도 매우 가까운 관계이며, 위에 나왔듯이 '진보 어용 지식인'을 자처하며 문재인 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친노 내에서 유시민이 가지는 강력한 상징성과 위치 때문에 유시민을 문재인의 인사로 보기에는 대단히 애매한 편이고, 유시민 본인은 썰전 158화에서 전원책이 지금도 친문이냐고 묻자 저는 친문이죠 라고 바로 답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간적으로 되게 좋아한다고 하면서 대외적으론 친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노무현재단의 이사장이 되고나선 '문재인 대통령이 인간적인 매력이 확 땡기는 맛이 있나? 대선때 다들 고구마라 그랬잖나. 구도를 특별히 짰나? 그것도 없다. 그냥 시민들이 촛불 혁명을 일으켜서 그냥 나갔고 그냥 원래 생기신대로 어어 하다 대통령이 되었다.'란 발언을 해서 잠깐 논란이 됐는데 발언의 앞뒤 맥락을 거세해 부분만 두드러지게 보도된 게 드러났다.
유시민은 방송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욕망, 대중의 욕망을 추종하는 스타일이 아니며, 대통령이 이성적인 관점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정부의 권한을 행사해가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일"이라고 평했다.
정치 경제 관련 어록
정치란 때로는 짐승이 되는 비천함을 감수하면서 야수의 탐욕과 싸워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는 일.
"대학교 출신 선배들이 노무현을 우습게 아는 것도 저는 좀 우스워요. 이 사람은 경제 전문가들과도 어느 정도 토론을 그 레벨에서 할 수가 있는 사람이고, 또 자갈치 시장 아줌마들과는 그 레벨에서 같은 주제로 대화를 할 수가 있는 사람이거든요? 근데 왜 노무현을 사람들이 평가해 주지 않는가? 전 굉장히 서운해요.
특히, 학생운동 출신 선배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 또는 386 의원들조차도 그런 기색을 보이는 것. 이런 것은 솔직히 말하면 노무현이 대학 안 나왔다고 차별하는 거예요.[23] 만일, 노무현이 일정 정도 수준의 대학을 다녔고 거기서 민주화 운동, 학생운동과 일정 정도의 연관을 맺은 상태에서 오늘까지 왔다면 절대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요.
사람들이 너무나 노무현을 가볍게 생각한다. 그 점이 저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서운하고 이건 역시 운동권 출신들의 오만이다, 이거는 그렇게 보고 제가 이렇게 노무현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중요한 정서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이른바 서울대 출신 중에서 나도 좀 잘났다는 얘길 들은 사람인데 내가 노무현 밑에서 확실히 기고 들어가서 그 사람을 위해서 일할 의사가 있다. 이걸 난 보여주고 싶어요. 노무현 씨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고, 그럴 만한 자질이 있는 사람이고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에요.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한 기여를 한 사람이고 왜 이것을 인정해주지 않는가... 그 점에 대해서 저는 운동권도 주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운동권도 주류다, 오만이다. 그렇게 보는 거고...
그리고 오늘의 이 사태에 노무현이 가는 데마다 왕따당하고 모욕당하고 냉대받고, 그렇게 해서 하이에나들이 어슬렁거리는 들판 위에 나무 위에 혼자 매달려가지고 지금 이런 상황에서 그 모든 것들을 등가적으로 정치인들 사이의 정쟁 또는 세력다툼으로 보면서 옳고 그름의 잣대로 이것을 보려 하지 않는... 이 지식인들... 한 번 좀 다시 생각해보자. 과연 이게 그렇게 우리가 그렇게 치부하고 넘어갈수 있는 문제인가 그 점이 진짜 안타까워요..."
ㅡ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교체 이야기가 나오자 유시민이 노무현을 지지하면서 했던 말.
인간의 뇌세포는, 그러니까 노화라는 것은 20세가 지나면 노화가 바로 시작됩니다. 한 50대에 접어들게 되면 죽어나가는 뇌세포가 새로 생기는 뇌세포보다 많죠. 사람이 멍청해집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원칙 중에 하나가 가능하면 60세가 넘으면 책임있는 자리에 있지 말자. 65세가 넘으면 때려 죽여도 책임있는 자리에는 가지 말자, 이게 제 소신 중에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뇌세포가 너무 많이 죽은 상태에서, 뇌세포가 왕성하게 활동할때 이루어둔 업적을 배경으로 얻은 지위를 가지고 그 사람, 과거에 그 지위를 획득할 당시의 능력있던 그 사람과는 전혀 다른 인간이에요. 20대, 30대, 40대 때 엄청난 업적을 이루었던 사람이, 학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뇌세포가 엄청 많이 돼갖고, 65, 66, 67, 68 돼가지고, 그때, 잘 나갈 때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때의 지위를 이용해서 말을 하는데, 그것은 20여 년 전의 그 사람과는 전혀 다른 인격체가 말을 하는 겁니다. 뇌세포의 일치 정도가 몇 %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ㅡ 2004년 11월 3일 중앙대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 초청 강연 中 #[24]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는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이 아니다. 좋은 사람에게는 칭찬을 받고 나쁜 사람에게는 미움을 사는 사람이 정말로 좋은 사람이다.
ㅡ 노유진의 정치카페 中[25]
참여정부 5년 동안 재정 적자를 다 합쳐봐야 18조 5천억 원밖에 안 됐어요. 건전하게 재정을 운영했다고요. 그러면서도 보육비 지원도 늘리고, 기초 연금도 도입하고, 장기 요양 보험제도 도입하고, 건강 보험도 혜택을 많이 늘렸어요. 그러면서도 18조 5천억 원밖에 재정 적자가 안 났어요. 그게 정부가 적자를 좀 보는 건 괜찮거든요. 왜냐하면 전체 GDP중에서 1~2%의 적자를 보는 것은 큰 문제가 없어요. 왜냐하면 1억 연봉 버는 사람이 백만 원 정도 빚진다고 문제될 건 없잖아요. 그래서 그 당시의 우리나라 GDP에 1천조 정도 넘었으니까 그 당시엔 한 십조 정도 빚지는 것은 5년 정도 큰 문제 없어요.
이명박 대통령 5년간 국가 부채 중에 어떤 것은 돈을 빌려서 산 것도 있기 때문에, 금융성 채무는 또 달라요. 문제는 적자성 채무인데 '벌어들인 돈보다 지출이 더 많은 거'요. 우리가 IMF때 은행들 살리려고 정부 자금을 투입해서 주식을 취득하고 정상화시킨 다음에 되팔아가지고 많이 회수했잖아요. 그런 금융성 채무는 괜찮아요. 화폐 가치를 안정화시키려고 외국환 평형 채권 기금을 발행해서 거기에서 빚을 얻어서 거기서 달러를 매입해서 외환보유고를 축적하고 나중에 달러 팔면 돈이 생기는 거니까 괜찮다고요.
문제는 적자성 채무인데 이 적자성 채무가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160조였어요 연평균 32~33조 원. 근데 박근혜 정부 들어서 565조 원이에요, 그것도 3년간이요. 이대로 가면 박근혜 대통령 5년 동안 250조 원 정도의 적자성 채무를 남기게 돼요. 문제가 엄청 심각하거든요. 다음 정권 교체를 해서 야당이 집권을 한다고 하면 쓸 돈이 없어요. 펑펑 다 써 가지고. (이 많은 돈을 다) 어따 퍼줬냐? 국민들에게 퍼준 게 아니고 재벌들한테 퍼준 거예요. 이명박 대통령이 했던 감세(= 부자 감세 정책) 그걸 원위치를 안 시켰기 때문에(= 부자 증세 정책으로 바꾸지 않았기 때문에) 법을 한 번 고쳐놓으면 항구적으로 감세가 되잖아요. 그게 누적되면서 그 효과가 계속 쌓여서 연간 50조 이상의 적자 재정을 보고 있잖아요. 아주 나라 경제를 망쳐놓고 성장률은 2%밖에 안 되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대에 평균 4%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잖아요. 근데 지금 2%예요.
ㅡ 노유진의 정치카페 中 2016.04.11 #
적자성 채무는 세입보다 세출을 많이 썼기 때문에 돈이 모자르는 거니까 나중에 생으로 갚아야하는 돈이에요. 그게 참여정부 5년 동안 적자성 채무가 18조 5억 원 정도였어요.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89조 원대 정도로 추산됩니다. 4대강 사업 8조 원은 수자원공사에 떠넘겨 놨으니까 포함이 안 된 거구요. 그거까지 합치면 100조 원 정도의 적자성 채무를 졌어요. 근데 박근혜 정부는 이 추세로 가면 MB 정부를 초월하는 적자성 채무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이 돼요.
이명박 정부도 초기에 이 문제가 제기 되어서 정부가 단년도 예산안을 내는 거 말고도 5년짜리 옛날 중기 기획, 지금은 국가 재정 운영 기획이라고 부르는 것을 해마다 향후 5년치를 예상하는데 기획재정부에서 이걸 냈어요. 이걸 보면 U커브인데요 '첫해는 적자성 채무가 많아서 재무가 불건전하고 해마다 노력해서 줄여가서 임기 말에는 균형 재정으로 간다'. 이게 이명박 정부 초기에 나온 거와 똑같은 그림이에요. 이명박 정부 말대로 됐으면 2013년에는 균형 재정이 됐어야죠. 근데 2014년~2015년 오면서 적자성 채무가 커지기만 해서 이제 단년도에 30조에 육박하는 수준이 됐단 말이에요. 그럼 2018년에는 균형 재정으로 간다는 말인데 '그럼 2018년 되면 올라가 있냐'고 하면 그렇지 않고 마찬가지로 20~30조 원 상태의 적자 상태로 있을 확률이 굉장히 높아요.
이거는 확장적 재정 정책을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쓰더라도 정직하게 말하고 써야지 5년짜리 국가 재정 운영을 엉터리로 작성해서 낸다. (중략) 국가 채무에 관해서는 유럽 연합이 경제 통합을 할 때, 통화 통합을 할 때의 기준이 국가 채무가 GDP 기준의 6%가 기준이었어요. 해마다 지는 거. 해마다 GDP 3%에 기준으로 잡았단 말이에요. 우리가 1억을 연봉을 버는 사람이 한 6천만 원 부채를 안고 있는 거라 생각하면 돼요. 해마다 6%를 유지하려면 해마다 그 정도 빚지면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국가는 부도가 안 나니까 괜찮다' 뭐, 이런 건데 제가 사실 채무 걱정을 하는 것은 '제대로 쓰면서 채무를 지는 거냐'는 문제 하나가 있고요, 두 번째는 '국가 채무를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가' 문제 의식이 또 하나 있어요.
지금 내년도 예산안이 통합 재정 기준 기금까지 합쳐서 376조 원인데 복지 분야가 3%를 넘었다고 정부에서 엄청 이야기 하잖아요. 내년도 보건복지의 고용의 예산액이 통합 기준으로 기금 포함해서 155조 원이에요. 근데 이게 금년도보다 얼마 늘어났냐하면 9조 천억 원 정도 늘어난 거예요. 이 9조 천억 원의 대부분은 국민연금 수급자가 늘어나서 지출액이 많아지는 거 하나하고, 기초 연금 도입해서 금년도에 7월 달부터 줬기 때문에 1년 내내 주는 것에 3조 원 주는 것이 거의 다예요. 나머지는 늘어난 게 아주 미미합니다. 보육이라든가, 학교 무상교육이라든가, 실업자 지원이라든가 여기선 미미한 증가밖에 없고요, 나머지는 2014년 예산안에서 각 부처별로 조금씩 조금씩 늘린 거예요.
특별히 늘었거나 줄은 게 없고 SOC[26] 건설 예산안은 7천억 늘었고요, 일반 지방 행정은 2조 원 늘었고요. 다 비슷비슷 늘어난 거예요. 그럼 재정 능력이 없어서 빚을 지는 거냐? 이건 또 아니라는 거예요. 김무성 대표가 '부자 감세라는 건 야당의 선동'이라 이야기하는데 (중략) 법인세, 소득세, 법인소득세, 개인소득세, 감세시켜준 게 이명박 정부 때 감세해준 게 지금까지 누적이 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세수(국민에게서 조세(租稅)를 징수하여 얻는 정부의 수입)가, 지금 내년도에 법인세가 0.1%밖에 안 늘어나는 걸로 잡히는데 그러니까 돈을 낼 능력이 있는 사람, 세무 행정의 기본 원리는 '능력에 따라 납세'인데 돈을 많이 버는 사람에겐 세금을 안 걷고 한쪽으로 담배며 상업용 자동차며 무슨 주민세며 이런 걸 인상해서 돈을 걷는다는 이런 발상 자체 제가 볼 때에는 빚을 30조 원 지게 만드는 근본 원인이기 때문에 이것은 불건전 예산이다.
ㅡ 노유진의 정치카페 中 2014.09.22#
2005년도인가 국회에 와서 노무현 대통령이 시정 연설을 했는데요. 국회 시정연설 중에 보건 의료 서비스 무역 수지 적자가 1조 원이라는 대목이 있어요. 그걸 근거로 해서 '의료 산업 선진화 위원회'라는 걸 국정 과정 위원회로 만들어서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하고, 대통령 보고에도 몇 차례 하고 그랬어요. 그게 민간 합동 위원회인데 정보 쪽 간사[27]를 보건복지부 장관이 했고, 그리고 민간에도 간사가 있어요.
이렇게 해서 여러 번 회의를 했는데 제가 장관 되자마자 1조 원이라는 데이터가 어디서 나왔냐고 물어봤죠. 그때는 기획재정부가 아니고 재경부(재정경제부)에서 나온 데이터래요. 그래서 제가 재경부 국장에게 물어봤죠. 회의 중에 제가 '이거 재경부에서 데이터를 냈다고 그랬는데 출처를 밝혀보시오'라고. 연구보고서에도 있는 거라고 하더군요. 어디서 만든 보고서냐 제목이 뭐냐 물었더니 다음 회의 때 보고 드리겠다고 해서 한 달 후 다음 회의 때 또 물어봤어요 제가. 그랬더니 민간 병원의 연구보고서에 있는 거래요. 그래서 '민간 병원 어디서?' 물어봤더니 미즈메디 병원에서 나온 연구보고서래요.
그러면 미즈메디의 연구보고서라면 틀림없이 정부 데이터를 근거로 산출했을 텐데 미즈메디 병원이면 우리 외환 관련 자료를 못 가지고 있지 않냐, 틀림없이 한국은행 자료나 참고했을 텐데 미즈메디 병원 연구보고서에는 이 1조 원이라는 산출 내역이 어떻게 되어있고 산출 내역이 되는 데이터는 어디서 가져온 걸로 밝혀졌더냐 물어봤더니 그거까진 미처 확인을 못 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제가 열을 냈죠. 아니 이런 불분명한 데이터를 대통령 시정 연설에 넣고 이렇게 회의 자리에 맨날 넣어 놓으면 어떡하냐고. 그랬더니 그 당시 산자부(산업자원부) 장관하던 정태익, 정세균 장관이 (저랑) 같이 화를 벌컥내면서 이런 식으로 데이터를 해놓으면 정부 공문서 전체가 불신 받지 않냐, 그래서 제가 돌아와서 제가 직접 조사했죠. 한국은행과 협조해서 그 유학생이나 상사주재원 교민 말고, 치료를 목적으로 출국한 사람 환전 기록을 데이터로 조사해서 해 봤더니 적자 폭이 56억 원이라고. 1년 동안이요. 그래서 56억 원이면 곧바로 흑자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해외 환자 유치를 위한 컨소시엄을 민간 합동으로 만들고 그래서 바로 흑자로 전환시켰죠. 대통령이 나중에 보고를 받고 징계하라고 했어요, 책임자를.
근데 재경부에서 징계 안 하고 넘어갔습니다. 이렇게 관료들이 다 짜고 하는 거예요. 노 대통령은 상당히 머리 좋은 분이잖아요. 정치적으로 싫어하더라도 그건 인정할 거예요. 그런 (머리 좋은) 대통령도 데이터가 그렇게 올라오면 그걸 믿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시정 연설 와서도 읽는 거라고요.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담화문에, 이건 근거가 없는 터무니 없는 이야기예요. 일국의 대통령의 담화문에 이런 게 들어가면 안 되는 거예요. 이것만 이렇게 했어요 (중략) 밥 먹고 취재하는 게 일인 언론인이나 학자들 있잖아. 이거 뭐하는 거예요. 지금 이게 아무런 근거가 없는 거예요. 대통령 담화문이.
ㅡ 노유진의 정치카페 中 2016.01.18 #
묘한 기사들이 나왔더라고요. '보험업계 걱정 지금 손보자'라든가. 생보사(생명보험 회사)에서 그동안에 여러 가지 미끼 상품으로 종신 연금을 많이 팔았거든요. 근데 소득대체율(소득이 없을 때 소득을 대체할 수 있는 금전의 비율)은 40%~50%로 올리게 되면 보험료도 올려야 되고 안 올릴 순 없어요. 보험료를 올리게 되면 민간 가계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노후 소득 공적 연금 노후 소득 보장율이 높아지니까 사적 연금이 줄어들 거라고 수요가.
이것 때문에 보험업계에서 엄청 로비를 하는 건 불보듯 뻔한 거고 (중략) 국민연금의 문제점의 하나가 가입하면 무조건 이익을 봐요. 가입하지 않은 사람은 무조건 손해를 봐요. 나중에 세금이 들어가게 되면 아무리 소득 수준이 높은 사람도 국민연금은 다른 민간 보험 상품보다 수익율이 높아요. 왜? 단순한 이유예요. 우선 이윤을 안 남겨요. 주주에게 배당하는 것도 없고, 경영진이 수십억 연봉 가져가는 것도 없고, 관리비도 국가에서 다 대요. 국민연금 기금의 국민들이 내는 보험료 기여금, 이거는 고대로 기금 운영을 해서 돌려주기 때문에 민간 보험과 견줄 수 없어요. 그럼 나중에 부가식으로 전환하는 걸 전제로 해서 국가가 지급 보증을 하게 되면 이 국민연금의 수익율은 고소득 계층에게 있어서도 민간 보험보다 무조건 유리하고 중간 소득 이하 계층들은 수익율이 더 높고, 거기다가 비용 근로자는 회사에서 반을 내줘, 무조건 이익인 거예요.
그러니까 중산층 강남3구 중산층 주부들이, 임의 가입자들이 많다니까 이게 최고의 금융 상품이기 때문에 꼭 가입할 필요가 사람들인데도 한 달에 40만 원, 50만 원 막 내서 가입하는 거야. 그래서 이게 없는 사람만 몰라서, '나는 국민연금 싫어', '나는 손해보는 거야'라고 생각한다는 거. 이 점이 좀 안타깝고요, 두 번째는 합의 기구 구성 문제인데, 저는 이거 야당이 50%를 굳이 명시 안 한다고 해도 된다고 봐요, 그냥 '일원 정도로 소득대체율 50% 인상 문제를 포함하여 배제하지 않는 걸로 포함하여', 뭐 여부 못박기 싫으면, '50% 소득대체율 인상을 할지 여부를 포함하여' 그렇게 (법안 문구를) 합의를 보면 청와대에서 뭔 말 못 해요. 50%로 못박은 것도 아니고 무조건 한다는 것도 아니야.
그러나 국회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서 국회와 민간이 다참여 하는 논의 기구를 만들어서 여러 활동을 체계적으로 논의를 하고, 그렇게 해서 합의가 이뤄지면 하면 될 거 아니야. 이거는 서로 간의 정치 공방을 주고 받고, 나라를 망하게 만든다, 이렇게 싸울 이유가 없는 거예요. 이건 그냥 돈 계산하고 따지면 되는 문제인데. 그래서 이런 거는 국회에서 구성을 해서 몇십 년을 하는 거야. 계속 왜냐하면 모든 것은 예상과 다르게 변할 수 있고 국민연금은 50년, 100년을 내다보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건 함구적으로 국회의장 산하에 사회적 합의기구를 구성해놓고 국회 정당이 참여하고, 민간 전문가도, 가입자 단체, 이익자 단체, 관련자 단체 다 참가해서 논의를 정권이 바뀌건 국회가 선거를 새로하든 상관 없이 상시적으로, 인적 구성은 바뀌더라도 상시적으로 가동하면 돼요 근데 뭘 대통령이 뭐 공무원 연금만 통과시키고, 나머지는 이야기하지 마라
ㅡ 노유진의 정치카페 中 2015.05.11#
어떤 국민 경제를 파멸에 빠뜨리는 가장 빠른 길은 화폐를 타락시키는 것이란 말이 있어요. 이게 케인즈가 한 말인데요. 한 국민 경제를 타락시키고 싶으면 화폐를 타락시키면 돼요. 그러면 모든 거래 관계가 다 불신에 휩싸이고 저절로 경제가 밑으로 꼬라박게 되어있습니다. 한 사회를 타락시키는 제일 빠른 길을 저는 언어를 타락시키는 것이라 저는 생각해요. 이 국론 분열이라는 용어 있잖아요. 저희 어렸을 때부터 아주 지겹도록 들었고요, 제가 20대 때는 저나 노 대표님 진중권 교수 같은 사람을 가리켜서 박정희 정권~전두환 정권, 언론, 또 정부에서 뭐라고 그랬냐면 국론 분열을 획책하는 좌경 불순 세력이라고 불렀어요. 우리는 민주화 운동을 했는데. 지금 "국민이 분열되어 있다" 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라 저는 생각해요. 아니 어떻게 국민들의 의견이 하나도 모아져요? 그건 불가능하잖아요. 우리가 의견이 다른 것을 인정하고 그 의견들 중에서 어떤 것이 옳은 지를 찾기 위해서 서로 논쟁하고 토론하고 경쟁하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저는 국론 분열은 문제다, 국민을 통합해야한다, 이런 것이 적폐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같이 공존하면 되죠.
ㅡ 특집 노유진의 정치카페 中 2017.03.26
2002년 7월달에 그때 마포 제 작업실에 오셨을 때 저한테 물어봤었거든요. "노무현의 시대가 오겠어요?" 그러시더라고. 그래서 제가 '아, 오지요. 100% 오죠 그거는. 반드시 올 수밖에 없죠.' 그랬더니 "아, 근데 그런 시대가 오면 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러시더라고.
그래서 내가 '아니 뭐 그럴 수는 있죠. 후보님은 첫 물결이세요.' 내가 그때 그랬어요. '첫 물결이세요. 새로운 조류가 밀려오는데 그 첫 파도에 올라타신 분 같아요, 제가 보기에는. 근데 이 첫파도가 가려고 하는 곳까지 바로 갈 수도 있지만 이 첫 파도가 못 가고, 그 다음 파도가 오고 그 다음 파도가 와서 계속 파도들이 밀려와서, 여러차례 밀려와서 거기 갈 수는 있겠죠. 그러니까 그런 면에서 보면 새로운 시대 정신과 새로운 변화, 새로운 문화를 체현하고 있으시기 때문에 첫 파도 머리와 같은 분이세요 후보님은. 근데 가시고 싶은데까지 못 가실 수도 있죠. 근데 언젠가는 사람들이 거기까지 갈 거에요. 근데 그렇게 되기만 하면야 뭐 후보님이 거기 계시든 안 계시든 뭐 상관있나요,' 제가 그랬거든요.
그랬더니 그때 또 "하긴 그래요. 내가 뭐 그런 세상이 되기만 하면 되지. 뭐 내가 꼭 거기 있어야 되는 건 아니니까." 내가 너무 냉정하게 말을 했다는 후회를 나중에 좀 했는데. 근데 이제 그렇게 말씀드려도 하나도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을 분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제가 그렇게 말씀드린 건데. 그랬던 것 같아요. 너무 좀 앞서 나간 것 같아요.
앞서 나갔다는 표현보다 노무현이라는 이 사람의 존재 그 자체, 그분이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의 총합으로서의 한 인간, 정치인으로서의. 이게 받아들일 수 없는 풍토예요 우리가. 대통령이 될 수 없어요, 그 캐릭터로는. 근데 됐잖아요. 그래서 굉장히 힘들었던 거예요. 그게. 굉장히 힘들었고, 마치 좋은 결과를 못 낸 것 같은 그런 시선을 받는 거고. 사람들이 이해를 못 하는 면도 많아요, 왜 저러는지. 그래서 노 대통령 자신이 너무 앞서간 거는 아니에요. 그분은 대중과 함께 가려고 계속 노력했던 분이고. 근데 그분이 가직 있는 모든것의 총합으로서의 '정치인 노무현' 이 존재 그 자체가 너무 앞서 있는 존재였어요 제 생각에는.
ㅡ 2017년 2월 9일 노무현재단의 인터뷰 中
한 1989년도에 사석에서 초선인 노무현 대통령을 만났는데 대통령 선거 이야기가 나왔어요. , 그 때 ''' 노무현 의원님이 대통령 하시고 이해찬 의원님이 총리 하시면 정말 좋겠습니다. " 했단 말이에요. 근데 한 15년 후에 정말 그렇게 되더라고요.
최저임금 인상으로 영향을 받는 노동자들이 500만명이나 된다는거 아니예요. 그것때문에 30년간 일하던 직원을 눈물을 머금고 해고했다는 기사를 보고 정말 피눈물이 나더라고요. 어떻게 30년동안 한 직장에서 일한 사람한테 최저임금을 줄 수가 있어요. 이게.. 우리 사회가 이러면 안되거든요.
2019년 jtbc 신년토론에서
다 죽을 거예요 , 다 죽고 혼자만 당선되어서 올 거예요.
ㅡ 21대 총선 특집 프로그램 정치합시다 에서 민주당 180석 압승론을 주장하다가 전원책 변호사가 " 그럼 보수진영 대권주자들이 다 죽는다는 뜻이냐 " 라고 질문하자 답변.
저서
정치색이 뚜렷한 책이 아니면 기본으로 10만 부는 팔 수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경제 관련 저서로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가 꽤 유명하다. 다른 분야의 책도 많이 집필했는데 『거꾸로 읽는 세계사』, 『후불제 민주주의』, 『국가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등을 집필했고, 2013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의 NLL대화록 관련하여 중립적인 시선에서 기술한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진실』이 있다.
2014년에는 자신이 태어난 1959년부터 2014년까지의 우리나라 현대사를 서술한 『나의 한국현대사』를 출판했으며 2015년에는 글쓰기로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책이라는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과 『유시민의 논술 특강』을 출판했다. 본인의 소개에 따르면 '어떻게 글을 잘 쓸 수 있을까'에 대한 책이라기보다는 '어떻게 해야 글을 잘 쓸 수 있는 사람이 될까'에 대한 책이라고. 글쓰기 특강의 경우에는 다음 크라우드 펀딩 유시민의 글쓰기 고민상담소를 통해 먼저 진행했다.
자녀의 대입 논술도 스스로 가르쳐 본 적이 있다고 한다. 주변에서는 그렇게 자기 방식대로 가르쳐서야 하느냐고 투덜댔지만, 자녀 유수진 씨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서울대학교로 진학했다.[29] 중학교 때까지 축구에만 관심이 있어 성적이 별로였던 아들도 고등학생이 된 지금은 전교 1등이라고... 저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밝히길 '너는 축구를 좋아하지만 호나우두나 메시가 될 재능은 아버지가 물려주지 못했다, 미안하다, 그러나 꼭 축구선수가 되는 것만이 취미를 살리는 길이 아니다. 영국 유학을 가서 스포츠 평론가가 될 수도 있다'라고 차근차근 달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