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정보 유머

이연복 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2. 4. 18.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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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요리사. 현재 중화요리 전문점 '목란' 오너셰프이자, 한국호텔관광전문학교 석좌교수를 맡고 있다.


당시 사진을 찍었던 권혁재 사진 전문 기자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화요리 4대 문파의 대가를 한 자리에 모아 사진을 찍을 때였다. 그때 모인 14명 중 한 명이었다. 한 자리에 모이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모여 사진을 찍었다. 당시 서로 간에 미묘한 기 싸움이 있었다. 누가 앞에 서고 뒤에 설 것인가의 자리배치, 대가들에겐 그 순서를 정하는 일도 미묘했다.[] 겨우 배치를 해서 사진을 찍다보면 슬금슬금 앞으로 나서는 대가 몇 때문에 대열이 흐트러지곤 했다. 당시 이연복은 스스로 제일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었다"는 후문이 있다. 

여담으로 후술되어 있다시피 당시 같이 사진을 찍었던 셰프들 중 SBS Plus 강호대결 중화대반점이라는 요리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한 여경래, 유방녕, 그리고 여경래의 동생 여경옥이 이쪽 출신이다.

4대 문파 출신이었지만,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업계에서 인지도는 크게 없었는데, 한국 중식연맹회장을 맡고 있는 여경래 대가는 한 인터뷰에서 "명실상부 현재 최고의 중식 스타이며, 중식의 2차 전성기를 이끌고 있고 그만큼 왕성하게 활동해서 중식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고 2019년 기준 한국의 5대 중식 주방장을 뽑을 때 한 명으로 지목했다.[11] 4대 문파니 5대 주방장이니 다 방송을 타면서 알려진 그들만의 설정이지 식당을 찾는 일반인들과는 별로 무관한 얘기다. 한 때 광고를 타던 7성급 셰프 권씨나 연돈이나 마찬가지로 자기네들 안에서 서로 주고 받는 권위일 뿐 방송을 안 탔으면 국민 대부분이 그런 게 있는줄도 몰랐을 그런 거다.

안그렇게 보여도 올해로 무려 62세로, 동갑 연예인으로는 배우 김미숙, 이보희, 김흥국과 이성미가 있다. 그리고 상당한 동안이다. 얼굴 피부뿐만 아니라 손도 굳은살 없이 보드랍다. 왠지 치유력이 좋아 베인 상처도 금방 낫는다고.
대한민국 국적으로 귀화했고, 화교학교를 다녀서 중국어가 유창하며, 화교 커뮤니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므로 현재의 이연복은 화교가 아닌 화인이다

소년기

중화민국계 화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중국 산둥성 무핑(牟平)[] 출신이고, 어머니도 산둥성 라이양(莱阳) 출신. 서류상 화교지만 자서전 <복 사부만 따라하면 집에서도 중화요리가 된다>에서 말하길 자신은 왕십리에서 태어났다고. 부모는 본토 중국 출신인데도 중화민국계(대만)가 된 이유는 과거 대한민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공'이라고 부르면서 수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내 화교는 일괄적으로 중화민국 국적을 부여했기 때문.[] 이연복 본인은 성인이 될 때까지 산둥에 가본 적도 없다고 밝혔다.[] 이후 한국 사람과 결혼하고 자신의 중식당도 자리잡으면서 정식으로 대한민국으로 귀화했다.

어린 시절 부모님 중식당이 잘 안 돼 가세가 기울자, 사립인 화교 초등학교의 높은 학비를 견딜 수 없었다. 어릴 적 짱깨라는 놀림도 자주 받았다고. 6학년 때 중퇴를 결심, 13살의 나이로 처음 배달가방을 들었다[]. 처음에는 아버지 지인 가게에서 견습을 했으나, 직원들이 사장 똘마니라고 왕따를 시키자 다른 중식당에 취직한다. 17살에 명동 사보이 호텔 중식당 <호화대반점>의 막내로 들어간다. 일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둘째 칼판[]까지 오르고, 일손이 필요할 때면 자기 친구들도 호화대반점에 취직되도록 다리를 놔줬다. 그러다 어느 날 주방 파벌간 패싸움에 휘말리면서 그만뒀다. 평소 의리로 도와줬던 사람들이 반대로 내가 곤경에 처했을 때는 모르는 척 해 마음의 상처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방송이나 술이 좀 취하면 당시 얘기를 하는 듯하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었는지 성격이 상당히 세고 날카로웠다고 한다. 그래서 어릴 때 식당에서 외상 손님에게 밀린 돈을 받는 험한 일도 도맡아 했다고 한다. 이 날카로웠던 성격과 인상은 청년기 때까지 계속 이어지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아내와 함께 중식당을 열었을 때부터 현재와 같이 성격과 인상이 유순해졌다고.

청년기

유년기를 어렵게 보낸 후, 22세가 되는 해인 1980년, 선배의 추천으로 주한 대만 대사관 조리장에 지원한다. 최종 후보 3인이 실기 면접을 보았는데, 이 때 자신을 최연소 조리장으로 합격시켜준 동파육은 지금까지도 운명의 요리라고 한다. 대사관 근무로 안정적인 수입이 생겨 생활이 평탄해지고 가정도 꾸린다. 또 대사관은 연회를 자주 여는데, 매번 다른 손님에 또 매번 다른 요리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실력이 일취월장하게 된다.

후각 상실

1984년, 26살 때 축농증 수술의 후유증으로 후각을 잃었다

요리사로서 후각의 문제는 치명적이므로[19]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미각과 촉각[]만으로 후각을 대체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한다. 후각을 잃은 대신 미각이 발달하여, 음식 맛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간 조절을 더 정확하게 할 수 있게 된다. 말하자면 작곡가가 청력을 상실한 핸디캡을 극복한 것과 마찬가지의 인간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는 후각을 상실하면 미각은 당연히 대부분 상실된다. 노력이나 승리의 문제가 아니다. 달거나 짠 등의 기본적인 것을 제외하면 인간이 미각이라고 착각하는 대부분이 후각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원래 무덤까지 갖고 갈 생각이었는데, 기자 한 명에게 몰래 언급했더니 기사를 내어 일파만파 퍼지는 바람에 공개되었다고 한다. 냄새도 못 맡는 주방장이 하는 식당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손님들이 뚝 끊길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후각을 상실했음에도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내는 주방장이라는 소문이 퍼지며 식당이 더욱 잘 되었다고 한다. 한 번 퍼지고 난 이후에는 본인도 스스럼 없이 밝히곤 하는데, 2015년 9월 7일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서양 재료 중에는 트러플처럼 향으로 유명한 것은 맛을 알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방송 출연

2011년 올리브 쿠킹 타임에 출연해서 마지막 5회 동안 중국 요리를 선보였다. 2006년 4월 14일자를 시작으로 생활의 달인에서 중화요리의 달인으로 몇 차례 출연하였고, 2014년 O'live 오늘 뭐 먹지에 출연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2015년 냉장고를 부탁해에 최현석 대신 게스트로 출연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방송 출연을 시작한다. 40여 년이라는 경력, 장난과 농담을 좋아하는 예능감으로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잇따라 섭외된다.

방송 출연 후 가게가 유명세를 얻게 되면서 월 매출이 2,000만원 이상 하락하는 곤욕(?)을 치른다. 목란은 원래 코스 요리를 즐기는 단골 손님으로 자리가 꽉 차는 식당이었다. 그런데 방송 후에는 다양한 중식 메뉴에 익숙하지 않은 손님들도 몰리면서 짜장면, 탕수육과 같은 식사류만 시키는 경우가 많아 객단가가 떨어지면서 매출 감소를 겪는다.[] 방송으로 인기가 오른 후 여러 광고에 출연하자 과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수요미식회에서 밝힌 바로는 월세가 올라 힘들다고 한다. 매출은 줄고 월세는 올라 이중고.

하지만 다행히도 2015년 말부터는 "예약이 너무 힘들다보니 손님들이 단단히 벼르고 찾아와서 각종 요리를 다 맛보고 가시면서 오히려 전보다 매출이 늘었어요."라고 밝히기도 한다.

예약이 얼마나 힘드냐면 500통은 기본으로 깔고 가야 한다. 전화 500통이다. 운 나쁜 경우는 1000통을 돌려도 안 된다. 200~300통 돌려서 예약을 잡으면 운 좋은 케이스.[] 예약 방법 관련된 글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론상으로는 언제든 예약 가능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내가 원하는 예약 날짜 한 달 전, 그것도 1일 또는 16일 이틀만 예약이 가능하다. 직접 방문해서 펑크가 나면 예약이 가능하지만 실제론 불가능하다. 죄다 200통씩은 전화 돌리고 오는 판국인데 그거 아까워서라도 펑크 내기 어렵다. 당연히 예약 자체가 너무너무너무너무 어려우니 한 번 갈 때 어지간히 쓰고 올 수밖에 없다. 인당 8만원 하는 스페셜 코스에 동파육을 시키는 것이 사실상 거의 기본 코스다 보니, 2명이 가도 최소 20만 원은 찍고 나온다. 당연히 매출이 오를 수밖에 없는 부분.

본인이 직접 주방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 목란은 월요일이 휴무일이며 이 때 방송 촬영을 한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격주 간격으로 월요일에 2주 분량을 한꺼번에 촬영한다.[] 그 외 인터뷰 같은 것은 식당 영업이 끝나고 자정을 넘어가는 시간대에 한다. 정말 부득이한 일로 식당을 비울 때는 본인 다음 가는 실력의 2인자가 주방을 잡는데, 바로 사모님이다. 보통은 계산대 옆이 사모님 포지션이고 남편을 사장이 아니라 주방장으로 부른다. 사실 유명 셰프가 있는 식당들의 운영은 대부분 비슷한데, 일단 해당 셰프 얼굴을 보기가 굉장히 힘든 것이 특징이고 운영 시간을 매우 줄이든지[] 아니면 보조 요리사들을 대거 고용해서 늘어난 고객을 응대하고 유명 셰프는 거의 얼굴마담만 하든지 하는 형식이다. 목란은 후기에서도 보면 알다시피 이연복의 얼굴을 보는 경우가 매우 많고, 이연복이 있든 없든 요리의 맛이 별로 변화가 없다는 특징이 있다.

방송 출연 자체는 본인이 즐겁기 때문에 계속 하고 있다고 한다. 막상 목란 식구들은 아무도 방송 출연을 원치 않는다지만, 본인은 이미 중식 요리사로서 열심히 살아오면서 이룰 것은 다 이뤄냈고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방송은 취미 비슷한 것으로 설사 경제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자칭 맛 칼럼니스트인 황교익은 이연복의 방송 출연 계기를 두고 "그냥 좀 심심하셨던 것 같다."라고 추측했다. 이미 업계에서 탑 티어인 데다가 홍보가 필요한 상황도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냉장고를 부탁해에서는 고급 재료는 물론이고 냉장고에 있는 싸구려 저질 재료로도 순식간에 고급 중화요리로 둔갑시키는 마술과도 같은 실력을 선보인다. 그 덕에 쟁쟁한 셰프들 중에서도 2연패를 달성했다.

여담으로 자신의 SNS에 잊을 수 없는 요리 프로그램을 뽑으라면 냉장고를 부탁해를 뽑을 것이라고 밝혔다.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하는 셰프들은 정말 실력파들이고, 자신도 겸손해진다고.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요리를 한 입장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기술이 계속 나온다고 한다. 실제로 모토가와가 특별 출연했을 때 처음 보는 요리법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요리의 길은 멀고 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어쩌면 고든 램지나 제이미 올리버보다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맛깔스럽게 잘 이끌어준 김성주와 안정환의 재주에 존경을 표한다고 했다. 그리고 연예인들을 섭외하는 제작진들의 섭외력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는 짤막한 글을 올렸다.

 

은퇴 이후 계획

은퇴한 후에는 유기 동물을 거두어 보호하는 시설을 운영하며 노년을 보내고 싶다고 한다.

지금도 쉬는 날에는 아내와 함께 유기견 보호센터에 봉사활동을 다닌다(MBC 스페셜 셰프테이너 편). 또 목란 옆에는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밥그릇도 있다. 그런데 돌보던 길고양이가 다른 사람에게 폭행을 당하고 죽은 일이 있어, 야생동물 학대죄에 대한 토론에서 언급되기도 했다. 관련 기사. 이연복도 분노가 컸는지 평소의 온화한 모습과 달리 폭행범에게 '너 내가 잡으면 똑같이 해준다'는 일갈을 날렸다. 이에 인터넷상에서는 애꿎은 동물을 죽여서 대응한 폭행범을 비난하는 반응도 많았지만, 전용 공간까지 만들어서 대놓고 길고양이들을 끌어들인 이연복을 비판하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수제자 두 사람에게 가게를 내주고 세를 받아 노후를 살고 싶다고 방송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중화대반점에 데리고 나온 수제자들을 언급한 것이라면 둘 다 독립했고, 이후 방송에서도 딱히 노출되는 수제자는 없다. 다만 아래 목란 항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부산에 분점을 냈는데, 현재는 이연복과 부인, 이연복의 아들이 돌아가면서 부산에 내려가서 관리를 하고 있다. 이연복의 말에 의하면 사모님의 음식 솜씨도 대단하다고.

그 외에, 중식 레시피를 단순화하여 소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는 프랜차이즈의 구상을 내비친 적도 있다.

교자란이라는 만두 브랜드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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