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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3. 3. 4.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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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주)에서 발행하는 조간 일간신문이다. 기본 사시는 민주, 민족, 통일.

발행부수는 일일 20만 부 이상으로, 중앙일간지 순위로만 놓고 보면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에 이어 4위이다. 다만 3위인 중앙일보와의 격차가 3배 정도 난다. 진보쪽에서는 가장 큰 일간지이다. 창간 초기에는 60만 부 이상을 발행한 적도 있었다. 2012년 당시 한겨레미디어 전략사업본부장의 말에 따르면 일일 40만 부를 발행한다고 했다.

한겨레는 1988년부터 대중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한국의 일간지입니다. 보다 민주적인 사회를 촉진하고자 했던 언론인과 사회 운동가 그룹에 의해 설립된 한겨레는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뉴스 매체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나라. 이 블로그 게시물에서는 한겨레의 고유한 특징, 역사,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한겨레는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의 여파로 설립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수십 년간의 권위주의 통치를 종식시키십시오. 당시 한국 언론은 정부에 크게 신세를 지고 있는 소수의 대기업이 지배하고 있었다. 한겨레 창립자들은 국민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진정으로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신문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한겨레가 다른 한국 신문과 다른 주요 부분 중 하나는 소유권 구조입니다. 국내 대부분의 신문이 대기업 소유인 반면 한겨레는 언론인과 독자의 협동조합이 소유하고 있다. 이는 신문이 부유한 소유주나 주주의 이익에 구애받지 않고 독자와 더 넓은 대중에게 책임을 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겨레의 또 다른 특징은 진보적인 정치와 사회에 대한 헌신입니다. 정당성. 이 신문은 노동권, 환경주의, 양성 평등과 같은 문제를 다루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정부 부패와 인권 유린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 비판해 왔으며 종종 집권 기득권층과 대립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다른 주요 신문에 비해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한겨레는 국가의 정치와 사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부패 스캔들과 기타 권력 남용에 대한 보고는 정치인과 공무원에게 책임을 묻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사회 정의 문제에 대한 보도는 인식을 높이고 변화를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협동조합 소유 구조는 진정으로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언론이 가능함을 입증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최근 한겨레는 많은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전 세계의 다른 신문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미디어의 부상과 감소하는 인쇄 독자층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또한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정부의 법적, 재정적 압박에 직면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한겨레는 여전히 한국 언론 환경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독립 저널리즘과 진보적 정치에 대한 헌신은 여전히 ​​권위주의 통치의 유산과 씨름하고 있는 국가에서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한국과 한국 사회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한겨레>가 좋은 출발점입니다.

한겨레 사옥

본사는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에 있다. 보다 정확히는 공덕역에서 만리재로를 따라 조금 올라오면 보이는 아파트 바로 옆에 있다.

1991년 건립된 사옥으로, 건축가 조건영이 디자인했다고 한다.바스티유 요새에서 영감을 얻어 건설된 것으로 유명하다. 준공 당시 여러 건축상을 받기도 했다고. 사진에서 보이는 초록색 기둥은 종종 도색이 바뀌기도 한다. 현재는 붉은 계열 색상으로 도색되어 있다. 편의 시설로는 KEB하나은행이 있으며, 건물 일부는 공공 쉼터로 개방해 놓았다. 사옥 옥상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이곳에서 간혹 디너파티 같은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한겨레 설립 배경

1980년대 대학 운동권과 시민단체들에 우호적인 해직 기자들이 모여 창간을 주도하였다. 1974년 유신 반대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에도 정권이 통제함에 반발해, 당시 동아일보의 기자들[4] 중 일부가 자유언론 실천선언을 한다. 이 선언 이후 기업들이 정치적 압력으로 인해 동아일보에 광고를 취소, 그래서 백지로 신문을 찍었다. 이를 본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조그맣게 동아일보에 응원광고를 내었고, 동아일보 내의 일부 기자들은 이에 큰 감격을 받아 적극적으로 자유 언론 투쟁을 벌이다가 해고되었다.

해고당한 기자 130여명은 블랙리스트에 올라 대부분 다른 언론사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시장에서 물건을 팔거나 육체노동을 하고, 일부는 사회과학출판사를 차리기도 했다. 이들은 주기적으로 신문사 앞에서 침묵시위를 하는 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이 때 생활고가 아주 심했다고 한다. 결국 긴급조치 위반으로 상당수가 투옥되었으며, 1980년 여름 언론계 정화조치 때도 또 한번의 대규모 강제해직 사태가 일어나 또다시 해직 언론인들이 늘어났다. 이들이 훗날 한겨레의 창간 멤버가 되었다는 점에서, 한겨레가 운동권과 노조에 우호적 성향을 띄는 한 이유로 해석되기도 한다.

세월이 지나 1987년 6월 항쟁 및 6.29선언을 거쳐 본격적인 민주주의의 시대가 열려 독재정권 당시 해직된 언론인들이 서서히 복직되었으나, 이미 독재정권에 길들여진 기성 언론인들의 정신적 타락이 심각했다. 이 현상은 민주화 시기 일부 해직 기자들의 복직 때 나타났는데, 1980년 당시 언론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언론인들이 어느새 기득권자가 되어 기득권 사수에 골몰하며 왕따를 시키는 추태를 보이기도 하였다. 이로써 해직기자 출신들은 민주화 뒤에도 '소수파'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언론인들이 썩은 건 아니었다. 1988년 6~7월 부산일보 노조의 '편집국장 3인 추천제 관철 투쟁'과 같은 언론사 내부 민주화 투쟁이 있었지만 높은 임금으로 돈독이 오른 유력 언론사 기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찻잔 속의 태풍'이었을 뿐이었다. 그 증거로 강명구 교수는 유력 언론사 기자들이 고임금으로 인해 지배집단의 구성원으로 흡수되었다면서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한겨레 설립이후

이렇게 모인 50억원의 자본금[]으로 1987년 12월 15일에 신문사를 차렸고, 1988년 5월 15일 1호가 나왔으며 기존의 활판인쇄 대신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신문편집 시스템이었던 '2세대 CTS'를 도입하였으며 한 사람의 주식을 1% 이상 소유하지 못하게 하여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신문을 지향하였다.

한겨레는 1988년 가로쓰기와 순한글표기를 시작함으로써 1947년 호남신문, 1985년 스포츠서울에 이어 대한민국 일간지로는 3번째, 종합일간지로는 두 번째로 가로쓰기 지면을 선보였다. 호남신문이 지방지인 관계로, 중앙 종합일간지로 한정하면 첫번째가 된다. 종합일간지가 대대적으로 가로쓰기를 시작한 것은 한참 후인 1995년 중앙일보의 가로쓰기 도입 이후로 평가된다. 경향신문도 중앙일보보다 더 늦게서야 가로쓰기로 전환했고, 한겨레와 비슷한 시기에 가로쓰기 전용을 선보인 국민일보도 얼마 후 별로 좋은 방식이 아니라 판단하여 회귀한 바 있다. 한겨레가 큰 영향력을 끼친건 아니더라도 가로쓰기 전용을 시도한 초창기 신문임은 사실이다.

원래 우리 문화에서는 예부터 전통적으로 세로쓰기를 사용했었고, 가로쓰기는 서양의 영향이 적지 않으므로 가로쓰기가 우월하냐 세로쓰기가 우월하냐 하는 병림픽은 벌이지 말자는 주장이 있으나, 이는 핵심과 다소 동떨어진 견해이다. 현대 한국에서 서구화된 교육이 자리를 잡은 상황에서 이미 1950년대 말, 1960년대부터 초중등학교의 교과서는 가로쓰기를 사용하였고, 1970년대부터는 대부분의 대학 교재들 역시 가로쓰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즉, 우수성과 관계 없이 신문을 읽을만한 지식 계층의 상당수가 가로쓰기에 익숙해져 있는 상황에서는 가로쓰기의 가독 효율이 훨씬 높을 수밖에 없다.

한겨레 창간 제호 표기도 한글로 했는데 한글 제호는 한국일보가 1954년 창간때부터 이미 해왔다.

또 납활자가 주류였던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신문편집 시스템이었던 '2세대 CTS'를 도입하기도 하였다. # 이 시스템은 원고를 컴퓨터로 입력한 뒤 손으로 기사를 이어 붙이는 원시적인 1세대와는 달리 교정, 면 배치, 출력까지 컴퓨터로 처리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사진, 광고, 기사 컷(큰 제목) 등은 사람 손을 거쳐야 했다.

세계 언론 역사상 처음으로 국민주를 통해 자본을 마련한 언론이기도 하다. 2만 7천여명 주주가 모아준 50억원의 성금으로 설립되었으며 모금에 참여한 국민들에게 한겨레신문사의 주식을 배정해 주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게 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때문에 회장이나 이사회가 없고 늘 1인 1주로 처리된다.

다른 신문들이 한자병기를 하는 것과는 달리 한겨레신문은 순 100% 한글로만 사용하며 한자로 표기하는 일이 없다. 심지어 영어도 쓰지 않는다. 예를 들어 KBS를 부를 때 다른 모든 신문은 그냥 KBS라고 쓰지만 한겨레신문에서는 '한국방송'이라고 쓰고, MBC는 '엠비시', 또는 '문화방송'이라고 쓴다.

초대 사장은 동아일보에서 퇴사한 당시 편집장이었던 청암 송건호. 이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친일 행각을 공개하면서 인기가 상승한다. 이미 80년대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상호 간에 친일신문이라고 비방한 전력이 있다. 나중에 한겨레가 이를 토대로 두 신문 모두 친일신문으로 규정하면서 자승자박이라고 평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한겨레의 출발은 순탄치 못하였는데, 창간 이후부터 노태우 정권에게 눈총을 받아 청와대 기자실이 비좁다는 이유 아닌 이유로 청와대 출입을 거부당했는데, 이는 1991년 춘추관 완공 때까지 이어졌다. 심지어 1989년 9월 초 안기부가 본지 독자들의 성향을 파악한다며 구독에 간접적 압력을 주기도 했다. #

한겨레 역사상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은 것은 1989년 4월 14일 리영희 논설고문이 방북취재 혐의로 안기부에 구속된 사건부터였다. 당시 노태우 정권은 공안정국 하에서 방북취재 계획을 빌미로 한겨레를 권력에 굴복시키려 했으나, 이는 전화위복이 되었다. 또 7월 12일에는 서경원 방북 사건 당시 윤재걸 기자가 이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안기부 요원들과 전투경찰에 의해 한겨레 편집국이 압수수색되었다는 사실이 신문에 보도되자 국민 성금이 1백억 원 이상이나 몰려들어 한겨레는 그 모금을 바탕으로 일약 중앙지로서의 지위로 올라섰다.

다만 창간 이후로도 사세를 크게 넓히지는 못해서 당시 4대 중앙일간지였던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에게 발행부수에서 크게 밀렸다. 이는 1990년대 당시에는 동아일보가 2010년대 경향신문의 역할을 대신해 주었고, 지면수도 많은 데다가 쌓아올린 노하우를 무시할수없다보니까 당대 진보 독자들은 동아일보를 구독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1990년대 전반기까지만 해도 신문에 한자를 섞어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한자를 많이 아는것이 교양의 척도였던 시절인지라 상대적으로 없어보이기까지 했다는 점도 강했다.

2001년 '심층해부 언론권력' 시리즈로 조선, 동아일보 등 족벌언론의 '무한권력'과 '추악한 과거'를 고발했다.# 이때문에 조선, 동아일보에게 각각 70억원, 10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당했으나 2008년 2월 14일 대법원에서 조선, 동아일보의 청구를 기각한 2심 판결을 확정했다. 특히 2심 재판부는 "한겨레의 보도·만평은 국내 중요 언론사의 과거를 재조명함으로써 비대화되는 언론권력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잘 알려지지 않았던 권-언 유착과 친일 행적을 다루고 있어 보도의 공익성이 인정된다"고 할 정도였다.

언론사로는 처음으로 신문에 쓰는 글꼴인 한겨레 결체를 공동으로 개발하여 2005년 5월 16일 신문부터 이 글꼴을 적용하고, 사람들에게 무료로 배포하기도 했다. 참고로 한겨레 결체는 일간지 최초의 '탈네모글꼴'이다. 탈네모글꼴은 문자 그대로 '네모'(정사각형)에서 벗어난 형태라는 뜻의 한글 타이포그라피 용어다. 사실 기존의 명조체는 한문 해서체의 특징을 그대로 가져온 형태로 한글의 초성+중성+종성으로 구성된 조형원리와는 동떨어진 글꼴이다. 이 '초성+중성+종성'의 조합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이 안상수의 '안상수체'인데, 한글 타이포그라피에서 '탈네모'란 대단히 중요한 발전이다. 안상수는 '안상수체'의 개발로 '구텐베르크상'을 수상했을 정도다. 한겨레 읽다 조선일보 읽으면 조선일보 글꼴이 굉장히 넓적해보인다.

2016년 9월경 미르와 K스포츠재단의 최순실에 관한 첫 기사를 낸 적이 있다.# 이후 엄청난 후폭풍을 가져오게 되는데.. 보통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말하면 JTBC를 먼저 떠올리지만 최순실을 가장 먼저 언급한건 한겨레였다. 다만 취재는 TV CHOSUN이 가장 먼저 했다.#[] 한겨레의 김의겸[9] 선임기자가 쓴 칼럼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님께'를 읽어보면 한겨레의 역량 한계에 대한 해당 기자의 안타까움과 조선일보의 능력에 대한 기대감을 느낄 수 있다.# 이후 별다른 특종들과 세밀한 분석들을 내놓지 못하고, JTBC가 태블릿 PC를 터뜨리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주도권을 가져가 버렸다.

2019년 11월 n번방 사건을 단독으로 취재하여 보도했는데, 차츰차츰 알려지다가 3월에 가서 뒤늦게 터졌다.

한겨레 사건사고

한겨레신문사가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실소유주 김만배씨와 9억원의 금전거래를 한 것으로 파악된 전 편집국 간부 기자 A씨를 해고한다고 밝혔다.


전날에는 류이근 한겨레 편집국장이 지휘·관리 책임을 지고 보직에서 사퇴했다. 김현대 한겨레 사장 등 경영진도 다음달 초 대표이사 선거로 차기 사장이 결정되면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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