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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3. 6. 1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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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전직 검사.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아 2015년 1월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으로 발탁되었다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책임을 이유로 2016년 10월 말 사임하였다.


우병우는 1966년 서울 영동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영동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후 검사로 임용되었습니다. 검사로 재직하면서 그는 특수수사부에서 근무하며 여러 고위공직자를 수사했습니다. 2013년에는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재직하면서 그는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습니다. 그는 2018년 2월에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했습니다.

우병우는 권력형 부패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그로 인해 대한민국 사회에 큰 혼란을 야기했습니다. 그는 현재 복역 중이지만, 여전히 많은 국민들에게 분노와 실망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우병우의 사건은 대한민국 사회에 큰 교훈을 남겼습니다. 권력은 절대 절대 무소불위가 아니며, 권력을 가진 자들은 항상 국민의 눈을 의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병우의 사건은 대한민국 사회가 권력의 폐해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병우 초년 시절

대외적으로는 1967년 1월 28일 경상북도 봉화군 상운면 가곡리 반송마을 891번지에서 아버지 우영구(禹榮九, 1942. 2. 9 ~ )와 어머니 경주 최씨(1945. 8. 20 ~ )[1 사이의 두 아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우영구는 초등학교 교사 출신으로 교감으로 퇴직했다.

우병우는 84학번인데 1967년 1월생이라는 건 동년배들보다 초등학교를 1년 일찍, 만 5세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1년 조기입학이 아닌 호적에 출생신고를 늦게 했다는 것이 정설이며 실제 생년월일은 1966년 1월 28일이다.[] 그 뒤 영주시에서 영주초등학교, 영주중학교, 영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우병우는 상당히 당돌한 소년이였다는 증언이 여럿 있다. 영주고등학교 재학 중, 우병우는 당시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교사가 있었는데, 그 교사에 대해 "문제가 있으니 바꿔 달라"고 친구들 몇 명과 함께 이사장에게 직접 가서 요구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사장이 이 요구를 흔쾌히 들어주어, 교사는 교체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부산시의 모 사립고 교장으로 재직 중인 당시 영주고등학교 초임교사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우병우가 지목한 교사는 실제로 문제가 많은 인물이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이후 영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학력고사 전국석차 53위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였다. 대학 3학년 재학 중인 1987년, 제29회 사법시험에 최연소 합격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만 20세[]였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나이가 여덟 살 많은 이종걸이 사법시험 기수로 따지면 우병우보다 1기수 후배다. 당시 29회 사법시험 최고령 합격자는 1949년생(당시 38세)이었다. 사시 합격 후 신체검사에서 고도 근시에 의한 ‘질병 또는 심신장애’를 이유로 신체등급 5급 제2국민역 판정을 받았다.#

다만 우병우의 흔히 알려진 '공부의 신' 타이틀은 순전히 시골 출생이라 늦었던 출생신고 덕에 67년생으로 기재되며 얻어진 측면이 크다. 실제로 우병우의 서울법대 84학번 동기인 김소영 전 대법관은 우병우와 같은 사법시험 29회에 수석 합격했고 이어 서울법대도 수석 졸업했으며, 47세에 대법관이 되는 등 우병우보다 한참 앞서나갔다. 게다가 29회 합격자 중 4학년이 아닌 3학년에 합격한 사람도 있었는데 우병우가 생년월일덕에 최연소 타이틀을 가져갔다

1990년 24살에 사법연수원 제19기를 수료했고, 검사 임용 중 차석으로 검찰에 들어갔다. 병역이 면제여서 수료 후 군법무관을 거치지 않고 상당히 빨리 임용되었다. 주로 특수부 계통의 검사로 활동했다.

20대 초반에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소년 등과의 영광에 + 재벌에 준하는 부잣집의 사위가 되는 경사가 겹쳤지만, 목에 깁스를 두른 듯 직속상관 이외의 다른 선배 검사에게는 좀처럼 굽히지 않는 면모로 인해, "깁스"라는 별명이 따라붙게 된다. 하지만, "수사과정에서 막힌 곳은 우병우가 다 뚫어줬다."는 말이 나올만큼, 검찰 내에서 수사능력만큼은 정평이 났던 관계로, 비록 초임검사 시절 정권과 연줄이 닿은 경주지역 유지를 수사하다 밀양지청으로 발령되어 몇몇 지역을 돌아다닌 수모를 겪었을지언정, 우병우의 검찰 내 입지는 탄탄했다고 한다.

우병우 전 수석이 부천지청장(차장검사급) 시절 평검사 등 후배검사들의 수사력 약화를 지적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 그의 권위주의적인 성향을 보여준다는 증언이 나왔다.

우병우 검사 시절

1990년 서울지방검찰청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했다. 평검사 시절 서방파 행동대장 이양재[7], 대전진술파 두목, 이화여자대학교의료원 수련의 임용과정에서 돈을 받은 피부과장 등을 구속했다. 비슷한 시기 서울 시내 폐수·소음·진동을 배출한 환경오염업체 55곳에 이어 세균폐수를 방출한 을지병원·백병원·차병원·중앙대학교병원을 적발했다.

1992년 8월 26살에 대구지방검찰청 경주지청 검사로 부임, 1993년 경주대학교, 서라벌대학교 이사장 김일윤 前 의원[]을 학교공금 53억인 횡령혐의로 기소하고, 아파트 감리와 관련해 청탁한 경주시 건축과장 등을 구속하는 등 정권 핵심에 친분이 있는 지역 유지를 수사하다가 창원지방검찰청 밀양지청으로 내쳐졌다고 한다.

그 후 1994년 2월 28살에 수원지방검찰청 검사, 1997년 2월 제주지방검찰청 검사를 거쳐 1999년 2월부터는 법무부 국제법무과에서 근무하고, 2001년 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 형사6부에 부임했다. 이때 영화배급을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직배영화사 전 대표와 영화사 대표를 구속했다.

2001년 12월부터 2002년 3월까지는 이용호 게이트 특검팀 특별 수사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 당시 송해운·윤대진 검사[]와 함께 ‘이용호 게이트 특검’(차정일 특검) 특별수사관 3인방으로 불렸다.

참여정부 시절의 '대북송금 특검'과 함께 가장 성공한 특검으로 평가받는 이용호 게이트 특검은 당시 신승남 검찰총장의 동생인 신승환을 구속함으로써 신승남 총장의 조기퇴진을 가져왔다.

2002년 36살에 춘천지방검찰청 영월지청장으로 부임했고[](부부장 승진), 2003년 8월에는 서울지방검찰청 부부장으로 올라왔다. 그 시절 이정일 민주당 의원[], 이상국 KBO 사무총장을 긴급체포하거나 구속했다. 김충환 한나라당 의원도 소환조사했고, 배기선 열린우리당 의원을 불구속 기소했다. 김광식 전 강원랜드 대표와 권오정 전 석탄산업합리화사업단 이사장, 심기섭 농수산물유통공사 감사 등도 그의 칼날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전·현직 국회의원들과 관련해서는 '봐주기 수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사건 수사에 참여했을 때는 크게 두각을 나타냈다. 이때 삼성그룹은 특수2부 부장검사부터 평검사까지 모든 인맥을 동원해 사람을 붙였으나, 유독 부부장이던 우병우만 삼성그룹 사람들을 절대 만나 주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회자되었다. 결국 신상규(서울중앙지검 3차장)-채동욱(특수2부장)-우병우·박용주로 이어지는 수사진은 2003년 12월 업무상 배임의 공소시효(7년)를 하루 앞두고 허태학·박노빈 전·현직 에버랜드 사장을 전격 기소했다.

당시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전환사채 헐값 발행에 직접 관여한 일부 인사들을 '표본'으로 기소해 공소시효를 정지시키자는 아이디어를 낸 이가 바로 우병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우병우 검사가 수사의 구슬을 뀄다"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당시 검찰은 '참고인 중지 결정'을 내려 이건희&홍라희 부부를 수사대상에서 제외하는 '중대한 오점'을 남겼다. 어쨌든 이러한 분리기소는 2007년 '1심보다 더 무거운' 항소심 유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2004년 6월 38살에 대구지방검찰청 특수부 부장으로 발령받았다(부장승진). 이용호 게이트 특검 수사 등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특수통 검사'의 길에 접어든 것이다. 이때 대구 유니버시아드 휘장 비리 사건을 수사하며 강신성일 의원, 박주천 전 의원, 김명규 가스공사 사장, 박명환 전 의원 등을 구속시켰다. 당시 우병우는 김향곤 고령군수에게 회식자리에서 요새 민선자치장들은 목이 뻣뻣하다."는 발언을 해서 물의를 빚었다.[]

2005년부터는 2년간 법무부 법무실 법조인력정책과 과장으로 일했다. 법조인력정책과의 주요업무는 사법시험 출제와 관리였는데, 당시는 1,000명을 사법연수원생으로 선발하던 명실상부한 사법시험의 최전성기였다. 그 결과 법대생뿐 아니라 공부 좀 한다 하는 명문대 문과 학생들 상당수가 이 시험에 달려들었고, 시험의 공정한 출제/채점 및 (특히 1차시험의) 변별력 확보가 큰 과제였다. 우병우는 과장으로 재직하면서 영어자격시험 성적 제출기한을 1차시험 전날까지로 늘리고, 사법시험 원서 인터넷 접수제도를 실시하는 등[] 수험생의 편의를 확보하는 데 기여하였다. 반면 수험생 간 변별력 확보를 위해 민법 과목의 비중을 100점에서 150점으로 늘리고[] 8지선다형[]을 비롯한 고난도 문제를 1차시험에 많이 출제하여 평균점을 크게 떨어뜨리는 시험설계를 담당하기도 했기 때문에, 당시 고시생들은 "우병우 과장"에 대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깊은 인상을 받게 되었다. 법조인력정책과장 임기를 마치고 검찰로 복귀하면서 법률저널과 한 인터뷰에 우병우의 수험법학과 사법시험에 관한 관점이 잘 드러나 있다.

2007년 2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부장검사 자격으로 예금보험공사에 파견되어 부실채무기업특별조사단 단장을 맡았다. 2008년 3월에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금융조세조사2부 부장검사로 활약했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 시절이던 2008년 7월 이명박 대통령의 처사촌 김옥희의 공천 청탁 금품 수수 사건[]을 수사했다. 이명박 정권이 공식 출범한 지 5개월 만에 일어난 친인척 사건이었다. 결국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미끼로 30억여 원을 받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로 같은 해 8월 김 씨를 구속했다. 그리고 김평수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을 구속했는데, 그 과정은 집요하다 못해 지독할 정도였다. 구속영장이 2번이나 기각된 김평수에 대해 반년 이상 추가 수사를 벌여 결국 배임수재 혐의로 3번째 영장에서 구속시켰다.

우병우 변호사 시절

2013년 5월 '홍만표 법률사무소'가 10층에 위치한 서울 서초동 오퓨런스 빌딩 1111호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그리고 3년 뒤 조선일보 기자가 바로 이 건물 옥상에 기어올라가 우병우 본인의 황제소환 사진을 찍는 초대박을 터트린다.

이후 홍만표와의 ‘도나도나 다단계 사기사건’[]과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사건’ 등 몰래변론 의혹이 생긴 시점도 이 때다. 검찰은 홍 변호사와 우 수석이 공동 변론한 사건이 2013년 한 해 8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변호사가 된 후 모교가 있는 영주시의 재경 향우회에 얼굴을 내미는 등 정계 진출을 염두에 둔 듯한 행보도 보였다. 그에 대한 검찰 내부의 평가도 썩 호의적이지 않았는데, 특히 변호사로 개업한 후, 후배 변호사들에게도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이런 사유로 후일 인사권에 문제를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리고 변호사 활동 때, 수임료 내역을 숨겨 탈세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변호사로 활동했던 2013년 ~ 2014년의 1년간 62억 순소득을 벌었다.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의 차남 조현문 전 부사장과 그의 형 조현준 사장의 ‘형제의 난’ 관련 민사사건을 수임하고도 해당 내역을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2014년 뇌물 공여 혐의 사건 등 검찰의 내사 단계에 있던 최소 3건을 수임한 것으로 확인됐다. 통상적으로 내사는 수사기관이 최대한 은밀하게 범죄 혐의 추적을 시작하는 단계여서 피내사자가 본인이 내사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기가 어렵다. 그래서 우 전 수석이 어떤 경위로 이 내사 사건을 수임하게 됐는지에 의구심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또, 변호사로 개업하자마자 2년 전 자신이 수사했던 사건의 핵심 피의자가 관련된 사건을 수임한 것으로 확인됐다.

우병우 그외정보들

성격이 무척 오만방자하다는 평이 많다. 검찰 출두 시 기자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포토라인에서도 거만한 태도를 드러낸 것만으로도 말 다 한 것이다. 동료 검사들이 "실력은 나무랄 데가 없는데, 싸가지가 없다.", "너무 뻣뻣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학 시절부터 워낙에 자존심 강하고, 자기 잘난 맛에 살아서 별명이 '기브스'[]였다고 한다. # 마찬가지로 국정농단의 주축이자 악질이라고 포장되었만 개인적인 성격은 상당히 점잖고 예의 바르다고 하는 김기춘과는 대비되는 점이다. 검사장 승진에서 밀린 이유도 '성정이 포악하고 예의가 없다'는 점이 컸다.[] 검사장이 아닌 상황에서도 그렇게 사람들과 척을 지는데 검사장이 되면 더 많은 적을 만들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면 조직에 부담이 된다.


서울대 법대 선배라도 자기보다 사법시험에 늦게 합격한 사람에게는 반말을 했다고 한다. 문제는 우병우가 소년등과(최연소 합격)[]에다가 군대도 안 갔기 때문에, 남들이 사법 시험 한창 보고 있을 나이인 25세부터 검사를 했고, 대부분의 신참 검사가 우병우보다 연장자였기 때문에 우병우는 대놓고 선배들에게 반말을 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한 예로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대 법대 79학번이었고 우병우와 동일하게 군면제를 받았지만, 무려 9번이나 낙방을 거듭한 끝에 30줄이 약간 넘은 1991년에야 비로소 사법 시험에 늦깎이로 합격했고 1994년에 검사 임용이 되었다. 84학번인 우병우보다 7살이나 많고 대학기수도 5년이나 선배이지만, 우병우가 1987년에 사법 시험에 합격하고 1990년에 검사 임용이 되었으니 검사 임용으로서는 윤석열에 비해 4년 선배가 된다. 우병우는 이런 연장자에게도 반말을 한 것이다. 이러니 적이 널리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래서 "아무리 내가 너보다 검찰 후배지만 나이도 더 많고 학교 선배인데, 자기가 검찰 선배라고 반말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드러낸 사람이 많았다.


2002년 8월 춘천지검 영월지청장으로 부임했을 때는 영월지청에 대학 동기가 평검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런데 "직원들이 다 보는 앞에서 대학 동기인 평검사를 아주 험악하게 조졌다"고 한다. 이 외에도 우병우가 부하 검사들을 상당히 험악하게 갈구는 것은 상당히 유명한 사실이다.


2004년 대구지방검찰청 특수부장 시절에는 동향 출신 고위 공무원 모임에 나가 술에 취해 군수에게 막말을 하는 장면이 목격되었다고 한다. "요새 민선 지자체장들은 선거로 뽑혀서 그런지, 목이 너무 뻣뻣해. 그래서 인사도 제대로 할 줄 몰라. 그래도 되는 거야?"라는 말까지 하며 자기보다 나이 많은 군수에게 호통을 쳤다고 한다. 그런데 이에 대해 머리가 하얗게 센 이태근 고령군수[]는 "부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라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고 한다.[] 정동기 당시 대구지검장이 이를 알게 되어 우병우에게 그러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는 후문.[]


2016년 11월 민정수석 자리에서 물러나고 검찰수사에 응하여 출석했을 때 횡령 및 직권남용죄 피의자가 아니라 피고발인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했다. 이에 대해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6년 11월 6일 “피의자가 아니라 피고발인, 소명을 듣는다. 이대로 해준다면 수사하는 검사가 아니라 변명을 들어주는 속기사에 불과하다”면서 “기존 의혹 말고도 최순실과 관련하여 조사할 게 많을텐데, 이러려고 우병우 자택 압수수색도 안 하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도 형사8부 막내검사에게 맡겨 한가하게 조서만 꾸미고 있었던 건지”라면서 의문을 제기했다. # 그리고 “이런 식으로 검찰 소환 조사가 이뤄진다면 앞으론 우병우가 아니라 우갑우(又甲又), 그리고 검찰이 아니라 겁찰(怯察)로 불러드려야 할 것 같다.”고 꼬집었다.[]


2016년 10월 31일 한겨레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우병우는 텔레그램에 가입해 있었다고 한다. 카카오톡 사찰 논란 당시 텔레그램을 싫어했던 높으신 분들이 정작 자기들도 텔레그램을 썼다는 사실에 대해 온갖 조롱과 비웃음이 난무했다.


2016년 10월 21일 국회운영위원회 청와대 국정감사 중 운영위원장인 정진석 의원이 당시 민정수석이던 우병우의 국감 출석 여부를 묻고는 확인 전화를 하라며 국감을 중지시켰다. 이원종 대통령비서실장이 우병우에게 전화 후 "못 온다고 합니다"라고 답하자, 김대중 정부 시절에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의원이 "비서실장이 오라고 하는데도 안 온다는 말이에요?"라며 격앙된 말투로 물었다. 이에 이원종은 “의원님[]이 비서실장 하실 때와 요사이는 다릅니다”라며 우병우가 권력 실세로서 여전히 변함없다는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이에 박지원은 이원종에게 '우병우 수석을 보호한다고 잘될 것 같으냐?'와 같은 발언을 하였다.#


유일하게 윗사람이었던 사람을 대할 때를 제외하면 정부 체계의 명목상 윗 계급이거나 연장자 혹은 총리라도 아랫사람 대하듯 했다.


과거 검찰 내부 인터뷰에서 우병우가 "나는 (평검사 시절인) 23살 때도 45살인 계장(수사관)을 수족(手足) 부리듯이 부려먹었다."라고 자랑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어 대중의 공분을 샀다. 또한 "(지방)경찰청장도 내 가방을 들어주고 그랬다."[]며 경찰에 대한 검찰의 우월감과 특유의 권위주의 의식을 드러내면서 안하무인, 비호감이라는 질타를 받았다. #


그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위해 정치인과 시민들이 약 2,000만 원 상당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그리고 우병우의 현상수배 포스터를 우에하라 아이의 AV 포스터를 패러디해 만들었다.


경찰 최경락 경위의 자살과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이 있다.


통영함 사건과 관련해 해군의 간식비 횡령이라는 치졸한 혐의로[] 황기철 해군참모총장에 대한 표적 수사를 지시했다는 의혹이 있다.


위의 자업자득스러운 '우황제'나 '우갑우'란 별명과 더불어, 이름이 앞뒤를 거꾸로 해도 똑같은 회문인 데다 비유가 쉬운 탓에 본인이나 아들이 이름 장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댓글이나 디시에서 많이 장난치는 별명 중 하나는 "좌캔좌", "병든소", "우회전 이었다".

경기도 여주시 모 면사무소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던 우병우의 남동생[]이, 옆에 있던 여직원이 우병우를 험담하자 쌍방 간에 폭행이 일어나 여주시에서 징계 조치를 하였다. 아무래도 자기 형이다 보니 험담에 화가 나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우병우의 이미지가 워낙에 나빠서인지 네티즌들은 "그 형에 그 동생"이라고 비꼬았다.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우병우 일가의 감찰에 나서자 우병우 본인은 물론 처자식과 회사 관계자들까지 조사에 불응했으며, 이에 특별감찰관실에서 질문서를 보내 서면 조사를 하려고 하자 정작 질문하는 내용에는 답변하지 않고 "불법 감찰은 오히려 형사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라는 취지의 협박조의 글만 적은 달랑 1장짜리 답변서를 서명, 날인도 없이 제출하였다고 한다. # 정작 자신은 민정수석의 권력을 이용해 수많은 공무원과 민간인을 불법 사찰을 한 혐의를 받고 있는 상황이기에 그야말로 내로남불이다.


우병우 사태 이후 서브컬처에서는 그 특유의 행적으로 인해 아주 훌륭한 스토리텔링의 캐릭터화가 된 감이 있다. 실제로 영화, 드라마, 소설, 웹툰 등지에서는 우병우를 모티브로 한 것 같은 '어린 시절부터 부각되어 사시 패스 쉽게 한 천재 검사', '처갓집의 막대한 빽을 얻게 되어 풍부한 재력',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재벌이나 정치인도 무릎 꿇릴 수 있는 검찰청의 권력' 등으로 소재를 잡아서 저런 류의 검사 캐릭터가 꼭 하나씩은 나오게 된다. 실제 검사들 사이에서도 우병우는 정말로 희귀 케이스인 1%도 안 되는 검사 권력[]인데 모든 검사가 다 저런 줄 안다면서 자칫 이미지가 일반화될 소지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검사들도 많다.


2021년 9월 16일 대법원에서 징역 1년이 확정되었다. 징역이 확정되었지만 1년에 불과해 기존 구속기간인 384일에 미달해 감옥에 가지 않고 되려 초과한 19일에 대해 형사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2월 법무부에서 대한변호사협회에 우병우의 변호사 등록을 취소하라는 명령서를 발송했다는 사실이 기사를 통해 알려졌다. 향후 5년간 변호사 활동이 제한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후 7월 31일 채널A에서 실제로 이상한 변호사 우병우로 오타를 내며 다시 한 번 실검에 올랐다.#


우병우 前 청와대 민정수석, 5년간 변호사 활동 제한


2022년 윤석열 정부 특별사면으로 사면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면을 결정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문재인 정부 시절 윤석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 - 한동훈 서울중앙지방검찰청 3차장을 맡아 당사자를 감옥으로 보냈던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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