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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3. 7. 15.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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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이자 애니메이터, 영화 감독.

애니메이션 영화를 넘어 일본 영화계에서 상업적으로 가장 흥행에 성공한 감독으로 그가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들은 자국 일본에서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였으며 세계적으로도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초기 생활 및 경력 시작

미야자키 하야오는 1941년 1월 5일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 속에서 자란 미야자키는 어릴 때부터 항공과 그림에 매료되었습니다. 두 주제에 대한 그의 열정은 나중에 그의 영화에서 두드러진 주제가 될 것입니다. 미야자키는 가쿠슈인 대학에서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후 1963년 토에이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애니메이션 경력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스튜디오 지브리 창립


1985년 미야자키는 동료 다카하타 이사오와 함께 그의 이름과 동의어가 된 유명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인 스튜디오 지브리를 공동 설립했습니다. 미야자키의 감독 아래 스튜디오 지브리는 모든 연령대의 관객을 매혹시킨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고 상업적으로 성공한 일련의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테마 및 시각적 스타일


미야자키의 영화는 상상력이 풍부한 스토리텔링, 풍부한 캐릭터, 시각적으로 놀라운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종종 환경주의, 순수함의 상실, 인간의 상상력이라는 주제를 탐구합니다. 세부 사항에 대한 Miyazaki의 관심과 생동감 있고 몰입감 있는 세계를 창조하는 능력은 그의 영화를 시대를 초월한 고전으로 만들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주목할만한 영화


미야자키의 필모그래피는 걸작으로 가득 차 있으며, 각 작품은 그의 놀라운 유산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웃집 토토로"(1988): 이 가슴 따뜻한 이야기는 상징적인 토토로를 포함하여 숲의 정령과 친구가 되는 두 어린 소녀를 따릅니다.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경이로움을 포착하는 미야자키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원령공주" (1997): 신화적인 중세 일본을 배경으로 한 시각적으로 놀라운 서사시로, 이 영화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갈등을 탐구합니다. 매력적인 내러티브를 만드는 동시에 복잡한 주제를 다루는 미야자키의 재능을 보여줍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1): 미야자키의 걸작으로 널리 알려진 이 아카데미 상 수상 영화는 시청자들을 마법의 목욕탕을 통해 초현실적인 여행으로 안내합니다. 자기 발견, 회복력, 연민의 중요성이라는 주제를 탐구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레거시 및 영향

미야자키의 영화는 수많은 영화 제작자에게 영감을 주고 전 세계 관객을 사로잡으며 애니메이션 산업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겼습니다. 점점 더 디지털화되는 시대에 손으로 그린 ​​애니메이션에 대한 그의 헌신은 동료와 팬 모두로부터 존경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미야자키의 스토리텔링 능력과 환상적인 요소를 신랄한 인간 내러티브와 함께 엮는 능력은 계속해서 애니메이션 영화가 열망하는 표준을 설정하고 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 스타일

기본적으로 애니메이션이라는 분야는 집단 창작이지만, 미야자키 하야오는 특히나 자신이 감독한 작품에 대한 영향력이 굉장히 큰 편이다. 그 자신이 만화가나 일러스트레이터를 했던 걸 봐도 알겠지만 그림 실력이 굉장히 뛰어난 편인데, 특히 콘티를 정확하고 세밀하게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콘티는 각본의 상황을 표현하기 위한 구도나 연출 방법을 표현하는 데 목적이 있기에, 나중에 대충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만 그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사람은 그런 거 없고 콘티랍시고 원화를 그려 놓는다. 아예 미야자키의 콘티는 만화책으로 내도 위화감이 없을 지경이다.[] 심지어 기획도 알아서 하고, 시나리오도 자신이 체크하고 레이아웃까지 하면서 콘티도 자신이 한다. 심지어 애니메이터들이 만든 원화가 실제로 사용되기 전에 그의 체크를 거치므로 작화감독까지 겸하고 있다. 일반적인 애니메이션은 이 과정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다 따로있다. 라이벌이라는 토미노마저도 기획, 연출, 콘티만을 담당하지 작화나 각본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 참여한 애니메이터들은 창작 작업보다는 정말 물리적으로 손 두 개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동화, 원화와 배경의 디테일 추가, 채색 만을 하는 단순노동만을 담당하게 된다. 이 정도로 하는 감독은 미야자키 하야오 외에는 오토모 카츠히로, 곤 사토시, 야스히코 요시카즈 등 극히 일부 밖에 없다.

이런 독특한 작업 스타일 때문에 더더욱 그가 연출한 작품은 그의 개성이 듬뿍 담겨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만든 것이기에 미야자키의 작품이라는 것을 한 눈에 보자마자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다. 효율을 따지자면야 비효율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지만, 그의 작품들에 독특하고 개성적인 그의 세계관이 그토록 진하게 표현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이런 장인정신 수준의 작업 스타일인 것이다. 쿠츠나 켄이치는 이에 대해서 "미야자키의 작품은 미야자키가 꾸는 꿈을 들여다 보는 것 같다." 라고 하기도 했다.

사실 이래서 체력에 한계가 있는 노년으로 갈수록 제작 기한이 늘어나고 있고 본인도 힘들어서 은퇴하겠다고 징징대지만 그럼에도 나이치고는 저런 작업을 소화해내는 엄청난 체력까지 가지고 있다. 아마도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상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앞으로도 찾기 힘들 것이다.

현대카드 컬쳐프로젝트 일환으로 유치된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전에선 미야자키 감독의 진짜 레이아웃을 가져다 전시했는데, 작화지 한 장에 다 담을 수 없는 거대한 사물들은 작화지 3-4장을 테잎으로 고정하여 통으로 사용하는 거대한 스케일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거대한 레이아웃 작품도 일부 있다. 일본에서 콘티집을 시중에 발매한 최초의 애니메이션 감독이 미야자키라고 하니 말 다한 듯. 이렇게 자세하게 서술하는 타입인데도 작품을 제작할 때 "대충 적어놔서 미안합니다"라고 할때도 있다고 한다.

연출 성향은 레이아웃은 리얼하게 잡고 등장인물의 행동은 리얼하게 하지 않는다. 미야자키는 컷인과 같은 화면분할 연출은 거의 하지 않으며 눈으로 직접 정경과 인물을 바라보는 것처럼 화면을 구성한다. 이는 그의 제자들 작품에서도 공통되게 나타난다. 반면 캐릭터의 행동은 현실을 잘 관찰하고 만들어 리얼한 면도 있으나 과장 또한 들어가 반드시 리얼하지는 않다

그의 초창기 작품들을 보면 미야자키가 그린 원화는 미국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만화적인 과장을 과감하게 사용하는 표현이 눈에 띈다. 물론 그렇다고 황당무계하거나 비현실적인 표현은 거의 없고[],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설립된 토에이 동화 출신답게 동화(動畵)매수를 풍부하게 사용한 캐릭터의 움직임을 중시하는 작풍을 보여준다.

일단 그가 감독한 작품에서 보여지는 특유의 동화풍 그림체가 눈에 띄는데, 감정표현에서 입이 굉장히 커지거나 눈동자가 작아지는 다채로운 변화가 특징이다. 특히 후반으로 갈 수록 어린 아이들이 주연이 되는 작품이 많다보니 더 부각된다.


특유의 꿀렁꿀렁거리는 실감나는 액체 질감표현이 인상적이다. 예를 들면 모노노케 히메의 사슴신 데다라봇치 버전, 센과 치히로의 오물신 이라든가 가오나시 광폭화라든가. 이런 몽글거리는 표현은 군중신에서도 볼 수 있다. 대규모의 인원이 하나의 점에 집중되어 부딪힐 때, 각각의 인물의 묘사를 게을리하지 않으면서도 전체적으로 조수가 부딪히듯이 표현한다.


머리 부풀리기
인물의 감정변화 등을 나타낼 때 흡사 동물의 털이 서는 것처럼 머리, 혹은 비슷한 무언가가 부풀어 오른다. 소름이 돋는 것을 표현한 것이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모노노케 히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천공의 성 라퓨타 등등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다만 의외로 업계에서는 그는 애니메이터로선 충분히 A급이었지만 전설급 까지는 아니라는 평을 많이 받는다. 캐릭터는 예쁘게 그리고 움직임도 풍부하지만 못 그리는 구도나 표현이 있고, 움직임을 부드럽게 연결하는 애니메이팅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미야자키의 스승인 오오츠카 야스오는 "작화만 보면 사다모토 요시유키가 더 천재였을지도 모른다." 라고 했다. 제자 안노 히데아키는 "미야자키 씨는 못 그리는 구도나 작화의 연출이 머리에서 떠오르면 "이건 내가 그리기 귀찮은데.", "이건 다른 애니메이터가 못 그리는데." 하고 주저하면서 빼버리는 습관이 있다." 라고 평했다. 코가와 토모노리는 "내가 미야자키보다 잘 그린다. 나보다 잘 그리는 건 오오츠카 야스오와 스다 마사미 정도다." 라고 했다. 키타쿠보 히로유키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팅 능력은 모리 야스지, 오오츠카 야스오, 야스히코 요시카즈 같은 전설급 애니메이터와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다. 다만 작화의 연기력은 풍부했다." 라고 평했다. 스즈키 토시오는 "혼다 타케시가 미야자키 하야오보다 잘 그린다고 생각한다. 미야자키가 자기도 못 그리는 걸 시키는데도 다 그려냈다." 라고 하기도 했다. 미야자키 본인도 "콘도 요시후미는 내가 못 그리는 걸 그릴 수가 있다." 라면서 지브리의 몇몇 애니메이터[]가 자신보다 실력이 뛰어나다 하기도 했다. #

단지 이건 애니메이팅이라는 영역만 이야기한 것이며 알기 쉽고 아름다운 레이아웃을 짜는 능력과 종합적인 연출력은 일본 역사에서 만랩을 찍었다고 평가받으며 이것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가 연출을 하면 작화를 미야자키보다 더 잘 그리는 슈퍼 애니메이터가 대신 그려주면서 보완되기도 한다. 미야자키의 진짜 재능은 원래부터 연출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실력과 별개로 젊을 때는 그리는 속도가 복사기급 이라고 불렸으며 그리는 속도로는 매우 유명했다.

성장 환경 덕에 상당한 수준의 비행기 덕후로 그의 상당수의 작품들에는 비행기, 혹은 비행이라는 요소가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의 그러한 성향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준 작품이 바로 붉은 돼지라고 할 수 있는데, 실제로 작중 등장하는 비행기를 전부 그가 디자인했다. 심지어는 비행기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관이라면 비행기 비스무리한 것이라도 넣어서 어떻게든 '띄운다'. 러닝 타임 내내 신나게 날아다니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같은 작품이 아니더라도, 비행기하고는 정말 하등 상관이 없는 이웃집 토토로에서 조차 팽이를 타고 날아다닌다.

마찬가지로 성장 환경 덕인지 모노노케 히메 같은 옛이야기풍 내지는 포뇨같은 정말 동화같은 배경이 아니면 작품에 세계대전 당시의 전쟁 무장이나 차량을 모델로 한 병기들이 자주 보여진다.

이탈리아 관련된 것들이 상당히 자주 나온다.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의 장교인 모우로와 군인들은 2차대전 당시 이탈리아군과 많이 유사하며, 붉은 돼지는 아예 배경이 이탈리아다. FIAT제 트럭과 군대, 공간적 배경 등 아무리 봐도 이탈리아. On Your Mark의 결말 중 탈출에 성공해 지상으로 나가는 결말에서 타는 노란색 컨버터블도 알파 로메오 차량이다. 그리고 스튜디오 지브리의 이름부터가 이탈리아어인 Ghibli로 모래폭풍이라는 뜻이다[]. 이외에도 어딘가 모르게 이탈리아 냄새 나는 장면들이 자주 나온다.

주인공을 비롯한 여성 캐릭터들을 강인하고 지혜롭게 그리는 경우가 많다. 그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주요 여성 등장인물들은 디즈니의 고전 애니메이션 등 여러 대중매체에서 등장하는 고정적 성 역할의 전형적 여성 등장인물과 상반되는 성격을 가진다[]. 이러한 작품 특성에 대하여 미야자키 하야오가 말한 바가 있다.

나의 많은 작품들에는 강인한 여성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용감하고 의존적이지 않으며 자신의 신념을 위해 싸우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서 친구나 조력자가 필요할 수는 있으나 구원자는 절대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 모든 여성은 어느 남성과 같이 영웅이 될 역량이 있다

소피를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주인공으로 세운 이유는 '남성으로부터 정복당해온 여성과 문명으로부터 고통 받는 자연이 닮았다고 믿기 때문'이며 '남자 주인공으로는 그냥 악과 맞서 싸우는 관습적인 이야기밖에 만들 수 없다.' 라고 말한 바 있다. 또 주인공의 조력자나 조언자 포지션에 있는 할머니 캐릭터 역시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면 천공의 성 라퓨타의 도라와 시타의 친할머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제니바, 이웃집 토토로에 나오는 켄타의 할머니, 마녀 배달부 키키의 빵 만드는 할머니, 모노노케 히메의 무녀 등. 그리고 가부장적인 태도의 남성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도 에코 페미니즘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작품 내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존재로 대우하며 매우 신사적으로 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이가 있는 여성 애니메이터들이 일에 집중할 수 있게 스튜디오 지브리에 탁아소를 두기로 한 것도 유명한 일화.

1957년에 만든 소련 애니메이션 눈의 여왕을 보고 주연인 게르다보단 조연인 이름없는 산적 소녀에 매료되어 그의 여자 캐릭터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여성이지만 칼을 뽑고 맹활약하며 겁이 없는 이 소녀는 종전 애니메이션에서 나약하던 여성 이미지와 상반되어서 잊을 수가 없다고 직접 밝힌 바 있다. 애니메이션은 움직임을 넣으려면 단순하게 그릴 수 밖에 없는데 잘 그린 그림을 추구하던 신인 시절의 미야자키는 일을 그만둘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눈의 여왕을 보고 그림이 단순해도 진심으로 그리면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걸 알게되어 애니메이터를 계속 했다고 한다. 눈을 윤곽선으로 닿지 않고 선을 열어두고 색으로만 표현하면 상냥한 눈처럼 보인다는 것도 이 애니를 통해 배웠다고 한다. 이건 미야자키가 여성 캐릭터의 눈을 그릴 때 쓰는 기본 작법이 되었다. #

순수하면서도 주체적인 여자아이를 주인공으로 많이 내세우기도 하는데, 판의 미로에서 비극적이고 동화적인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 멕시코인 영화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는 2017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했다. 기예르모 델 토로는 젊은 시절에 이웃집 토토로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며 미야자키는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너무나 놀랍고 아름답게 포착했다고 말했다. # 그러면서 미야자키는 순수함에서 나오는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힘을 표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인터뷰에서도 미야자키를 따라한 게 많다고 여러 번 말했을 정도이다. #

그럼에도 레디컬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성 상품화를 빌미로 비난을 받는다. 토미노 요시유키는 "미야자키는 무의미한 장면에 간접적인 성묘사를 넣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라고 비판한 바가 있다. [] 작품에 여자 아이 팬티가 많이 나오는데 이웃집 토토로나 마녀 배달부 키키에도 이러한 장면이 있다. 미야자키는 귀를 기울이면을 만들 때 콘도 요시후미가 여자애가 팬티를 가리면서 활동하는 연출을 하자 "진짜 순수한 여자 애는 남에게 팬티가 보이는 건 신경쓰지 않고 움직인다. 팬티를 신경쓰는 건 남자를 아는 여자가 하는 행위이다. 자의식 과잉이다." 라며 소녀를 그릴 때 이런 연출을 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DVD 코멘터리는 미야자키의 제자인 안노 히데아키와 카타야마 카즈요시가 했는데 미야자키를 두고 '좀 엉큼한 분이시다. 야한 걸 노리고 그린 장면도 있다.' 라고 표현하며 공감하기도 했다. 다만 안노와 카타야마는 "미야자키 씨는 소녀 캐릭터를 자기 딸이라고 생각하고 만든다. 일정한 선은 넘지 않는다."라고 하기도 했다.

사람이 달리는 장면을 그릴 때 진짜 빠르게 그리는 경향이 있다. 동작에서 중력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오래 달려도 페이스가 느려지지 않는다. 미래소년 코난 같은 작품이야 만화적 과장이라고 치더라도, 바람이 분다 같은 작품에서조차 100미터 10초 끊을 기세로 달린다. 모노노케 히메에서 아시타카가 평지도 아니고 험난한 산을 들개와 맞먹는 속도로 달려내려가는 장면을 보면 이건 아주 그냥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달리기다. 아시타카는 스튜디오 지브리 세계관의 주인공들 중에서도 무술 만렙을 찍은 초인 중 하나니 이상할 건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실 직후 들개가 느리다고 아시타카더러 올라타라고 일갈한 걸 보면, 아마 들개가 아시타카 속도에 맞춰주고 있었던 걸로 보인다. 적은 프레임으로 빠른 속도감을 보여줄 수 있고 해당 테이크를 빠르게 넘길 수 있으니 애용하는 노하우인 듯.

식사 장면이 자주 들어가며 음식을 매우 맛있게 묘사한다. 위꼴사라고 할 정도로 유명하다. 다만 식사 장면을 넣는 것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연출 의도지만 실제로 음식을 맛있게 그리는 건 타나카 아츠코라는 애니메이터이다.[] 미야자키도 음식을 못 그리는 건 아니고 세계명작극장에서는 미야자키가 그린 음식 그림을 볼 수 있다. 타나카 아츠코가 더 맛깔나게 그리니까 맡기는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에는 그의 젊은 시절의 세계명작동화의 스타일이 녹아들어 있고 악한 캐릭터라고 해도 미워할 수 없는 매력적인 악당을 그린다는 특징이 있다. 물론 구제불능의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칼리오스트로의 성'에서 라살 칼리오스트로, 코난의 레프카, 라퓨타의 무스카가 그러하다. 다만 이 셋은 사실상 동일인물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캐릭터성이 일치한다. 미야자키의 악역에 대한 관점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캐릭터는 시대와 함께하는 것이라는 지론이 있다. 그래서 캐릭터가 인기가 있다 해서 사자에상 시공에서 무한 반복으로 사골처럼 우려먹지 않는다. 이웃집 토토로는 그 뒤에 어떻게 되었냐고 물으면 메이와 사츠키는 결혼해서 이제는 할머니가 되었다고 대답한다. 등장하는 캐릭터는 작품을 만들고 있는 당시의 시대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대상을 반영하되, 그렇다고 시대의 유행에 영합하지 않는다.

위대한 거장으로 불리는 감독이며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헐리웃 감독들의 존경도 받고 있다. 아카데미에서 이들의 추천으로 공로상을 받기도 했었다.

그런 그도 못 하는 게 하나 있는데 바로 음악. 음악은 잘 모르기 때문에 아예 음악 분야의 거장 중 한 명인 히사이시 조에게 일임하였다. 성우 캐스팅도 직접 지명한 몇몇 캐스팅을 제외하면 프로듀서인 스즈키 토시오에게 일임하며 별로 터치하는 경우가 없다고 한다. 미야자키가 직접 지명한 캐스팅은 시마모토 스미를 제외하면 그다지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미국처럼 미국 애니메이션을 전담하는 성우나 영화배우를 기용하기로 유명한 감독이기도 하다. 보통 애니메이션 영화를 영화로써 인지하며 배우를 주로 기용하는 서양풍조에 합류한 것.

미야자키 하야오 평가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미야자키 하야오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싫어도 알 수 밖에 없으며 그의 활동기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 번 쯤은 그의 이름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특히 팬덤 형성에 초점을 맞춘 시리즈물이 아니라 완결성을 갖춘 단독 영화를 주로 만들어 왔기에 대중적으로 가장 이름이 널리 알려진 감독 중 한 명이다.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역사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만화계의 역사를 논할 때도 미야자키의 이름은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

남녀노소 모두가 감동하고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데에 도가 텄는데, 가볍고 마음 따듯한 이야기도,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격정적인 이야기도 그의 전매특허인 동화같은 그림체로 자유자재로 그려낸다. 한국의 일반 대중에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모노노케 히메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만화판을 보면, 삭막하고 잔인한 장면도 얼마든지 그려 보일 수 있다.

그림 작화와 디자인, 서사, 연출을 고루 할 줄 아는 것을 넘어 대단히 잘하는 실력, 사람의 감정과 동작, 마음에 관한 이해도가 특유의 철저한 완벽주의 성향과 맞물려, 그의 영화들은 단순히 재미있거나 흥미로울 뿐 아니라 영상물로서의 완성도가 빼어나, 가장 실력 발휘가 덜 된 작품조차도 수작 이상으로 평가받고, 개중 돋보이는 걸작들은 가히 완벽에 가깝다.

스튜디오 지브리 애니메이션 영화들 중, 일반적으로 만인의 사랑을 받는 작품들은 십중팔구 그가 제작을 맡은 것들이고, 그가 부분적으로 기여하거나 제작 중간에 대타로 들어가거나 하지 않고 온전히 총괄한 작품들의 완성도는 흠잡을 데가 없다.

다채로운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한두 가지의 주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작품들을 냈다. 본인 역시 작가란 같은 말을 다른 식으로 반복하는 사람이라고 발언한 바 있으며, 그의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기둥이 되는 주제의식들을 어느 정도 공유한다. 대표적인 것이 반전인데, 미야자키 하야오는 개인적인 기호로 밀리터리에 관한 것을 그리고 디자인하는 것은 즐기면서도, 신념적으로는 대놓고 전쟁 반대를 외치며 단 한 번도 군대와 전쟁을 좋게 묘사한 적이 없다. 그의 작품에서 전쟁은 항상 어리석고 무의미하며, 생명을 앗아가고 파괴를 낳는 끔찍한 짓으로, 전쟁을 추구하는 자들은 무조건 악당으로 나온다.

그는 1990년대까지 일부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 팬들에게나 알려져 있었고, 일본 외에서 유명하지 않았는데, 1999~2000년에 명작인 모노노케 히메가 서방 국가에서 개봉되며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마침내 2002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세계적으로 다시 없을 불후의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알려지지 않았던 과거의 걸작들이 발굴되어 서방에 알려졌고 스튜디오 지브리와 미야자키 하야오는 범지구적 거장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사실상 일본 애니메이션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데, 나아가 애니메이션이란 매체의 비평적, 예술적 지위를 영화의 그것에 근접하도록 끌어올리는 데 기여한, 애니메이션 역사를 논하는 데 있어서도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특히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에서는 그의 최전성기라 할 수 있는 2000년대의 작품들을 직접 접한 20~30대들 중에선 모르는 사람을 찾는 것이 더 힘들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은 그의 이름과 작품 제목까지는 몰라도 대표작 몇 개쯤은 어릴 때 본 적이 있을 테고, 심지어 그의 작품을 보지 않았더라도 그의 이름과 대표작 몇 개 정도는 교양, 상식 수준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문드문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결론

애니메이션 세계에 대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공헌은 그야말로 대단했습니다. 뛰어난 스토리텔링 능력을 통해 그는 문화적 경계를 초월하고 모든 연령대의 청중을 매혹시키며 수백만 명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여러 세대에 걸쳐 지속될 유산을 지닌 미야자키의 영화는 우리에게 계속해서 영감을 주고 상상력의 힘과 환경 보존의 중요성을 일깨워 줄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영원히 일본 애니메이션의 탁월함, 창의성, 마법의 대명사로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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