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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2. 6. 17.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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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의 프로 농구 팀. 서부 컨퍼런스 퍼시픽 디비전 소속이고, 연고지는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이다.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를 거쳐 캘리포니아 주에 정착한 팀으로, '골든스테이트'는 캘리포니아 주의 별칭이다.[] 미국 4대 메이저 프로 스포츠 팀 중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처럼 연고지명이나 주의 명칭이 아니라 주의 별칭을 사용하는 팀이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라는 미국 5위권의 시장을 연고지로 두고 있는 팀인데 2019년에 옆 도시 샌프란시스코로의 연고 이전이 확정되어 현재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홈구장인 오라클 파크 옆 공터를 매입해 새 구장을 완공해 개장했다

초창기

1946년 BAA 출범 당시 필라델피아 아레나 소유주인 피터 A. 타이렐의 주도로 '필라델피아 워리어스'로 창단됐고, 초대 감독직에 유대인 세미프로팀 '필라델피아 스파스' 감독이던 에디 고틀립을 앉혔다. 창단 첫 시즌부터 영입된 머리 주립대(Murray State) 출신 슈터 '점핑 조' 조 펄크스를 필두로 두 차례 컨퍼런스 우승과 한 차례 챔피언 결정전 우승에 성공했다.

1952년에는 고틀립 감독이 직접 팀을 사서 구단주를 겸했고, 1954년에 펄크스가 은퇴하자 팀은 폴 아리진, 닐 존스턴, 톰 골라[] 3인방을 주축으로 하여 1955-56 시즌에 다시 NBA 정상을 차지하면서 명성을 떨쳤다.

1959년에 고틀립 구단주는 고향 출신인 희대의 괴수를 연고지 우선 지명으로 뽑는 데 성공하며 워리어스는 강호로 계속 군림했다. 바로 윌트 체임벌린이다.[] 체임벌린은 그 괴수 같은 능력을 유감없이 뽐내며 워리어스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득점왕, 리바운드 왕, 한 경기 100득점 등 그야말로 골밑의 제왕으로 군림하면서 워리어스의 간판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그는 반지의 제왕은 되지 못했는데, 동 시기에 빌 러셀과 보스턴 셀틱스가 군림했기 때문이다.

1962년에 샌프란시스코 지역 방송 프로듀서 프랭클린 뮬리(Franklin Mieuli)가 고틀립 구단주로부터 팀을 인수하면서 서부로 이전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체임벌린을 1965년 고향팀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로 떠나보낸 후 1965년 드래프트에서 마이애미대 출신 슛의 달인 릭 배리[]를 전체 4번으로 뽑았다.

슬램덩크 팬들 입장에선 강백호의 언더 핸드 자유투 원조로만 알고 있는 릭 배리는 통산 득점 17위, 그리고 NBA 역대 3위에 해당하는 통산 자유투 성공률 90%(ABA 기록은 별도)를 자랑하는 리그 엘리트 스몰 포워드로 팀의 에이스가 되었다. 팀은 릭 배리를 축으로 재편성하면서 1966-67 시즌 NBA 파이널에 올랐지만, 이제는 적이 된 체임벌린의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게 졌다. 시즌 후 배리가 구단과의 갈등으로 ABA 팀 오클랜드 오크스로 떠나면서 준수한 강호로 남다가, 1972년에 배리가 복귀한 후 1974-75 시즌에 다시 오른 NBA 파이널에서 전력 열세라는 예상을 깨고 워싱턴 불리츠를 4-0으로 스윕하면서 세 번째 NBA 우승에 성공했다.

위와 같은 영광을 뒤로한 채 1977/78 시즌부터 9시즌 연속 PO 진출에 실패하면서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으며, 1978년에 노쇠해진 배리를 휴스턴 로켓츠로 떠나보낸 후 이렇다할 구심점을 찾지 못했다. 1980년 오프시즌에서 로버트 패리시를 보스턴 셀틱스로 팔고 드래프트에서 퍼듀대 출신 조 배리 캐롤을 전체 1픽으로 뽑았으나 팀에 제대로 헌신하지 못했다.

1986년에 전 밀워키 벅스 구단주 짐 피츠제럴드가 팀을 인수해 이듬해에 명장 돈 넬슨을 부사장 겸 단장으로 모셔왔다. 1988년에는 넬슨 부사장이 감독까지 겸해 팀 하더웨이, 미치 리치몬드, 크리스 멀린으로 이어지는 막강 백코트 라인 'RUN T-M-C'를 바탕으로 반전을 이뤄 화끈한 공격농구로 중흥기를 열었다. 하지만 이 트리오도 1991년 미치가 새크라멘토 킹스로 가면서 해체되었고, 대신 리투아니아 선수 사루나스 마르셜오니스로 공백을 메꾸며 크리스 개틀링과 빅터 알렉산더, 라트렐 스프리웰, 크리스 웨버, 조 스미스 등 유망주들을 드래프트에서 뽑아다가 키워왔지만 수비가 약해 이마저도 역부족이었다. 이 때문에 1994년부터 12시즌 연속 PO 진출에 실패했으며, 넬슨 단장 겸 감독도 1994/95 시즌 도중에 사임했다. 뒤이어 팀 하더웨이와 멀린도 나이를 먹고 기량이 점차 떨어져 1996년과 1997년에 팀을 각각 떠났다.

1997/98 시즌을 앞두고 팀은 전 새크라멘토 킹스 감독 게리 세인트진을 단장으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감독이던 P.J. 칼리시모를 새 감독직에 앉힌 뒤 스프리웰을 중심으로 조 시미스, 도니엘 마셜, 마크 프라이스, 빔보 콜스, 펠튼 스펜서 등의 기량에 기대를 거는 한편, 드래프트에서 전체 8번으로 콜게이트대 출신 아도날 포일을 뽑고 인디애나 페이서스로부터 에릭 댐피어를 사는 등 쇄신을 단행하여 패배주의를 버리고자 했으나, 초반에 스프리웰이 칼리시모 감독과 싸우다가 목조르기를 하는 바람에 눈밖에 났고, 이러한 내홍 속에 팀은 19승 63패로 굴러떨어졌다.

결국 팀은 골칫덩이 취급받은 스프리웰을 뉴욕 닉스로 팔고 대신 존 스탁스를 받아온 뒤, 드래프트에서 노스캐롤라이나대 출신 앤트완 재미슨을 4번으로 뽑는 등 팀을 쇄신했지만 21승 29패로 플옵을 못 갔다. 그 이후에도 프런트의 실책은 해를 갈수록 거듭해 FA 등으로 영입된 선수마다 부상을 안 입은 사람이 거의 없었고, 팀에 오래 있는 선수보다 금방 떠나는 선수가 더 많았다.

2004년에 단장으로 돌아온 멀린은 2006년에 은사 넬슨 감독을 모셔서 '배산적' 배런 데이비스를 중심으로 팀을 다시 짜 부임 첫 시즌에 8번 시드로서 1번 시드인 댈러스 매버릭스를 격침시키는 기염을 토했지만, 다음 시즌 들어 사루나스 야시케비셔스가 그리스 파나시나이코스로 떠나고, 배런도 부상을 당하고 스테판 잭슨도 컨디션에 난조를 보이는 등 악재가 생겨 다시 플옵을 못 갔다. 2008년에 배런이 LA 클리퍼스로 떠났으며 2011-12시즌까지 리빌딩은 계속되었다.

참고로 2012-13시즌부터 시작된 위닝시즌 전의 프랜차이즈 통산 정규시즌 성적(1947시즌~2012시즌)은 2,352승 2,794패로 약 45.7% 승률에 불과했다. 오랜 전통과는 달리 NBA의 대표적 약체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왕조의 초석

센터 앤드류 보것의 부상으로 인한 미비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젊은 3점 슈터 스테판 커리와 올스타 백인 빅맨 이대리 데이비드 리를 앞세워 오랜만에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리의 엉덩이 부상으로 힘들어지나 했지만 보것이 부활하고 커리가 터져주면서 3위 덴버 너기츠를 제압하고 2라운드까지 진출했다. 세미파이널 상대는 샌안토니오 스퍼스였는데 2-4로 패배했다. 1차전에서 잘 앞서가다가 막판에 어이없이 역전당해서 경기를 내준 게 큰 타격이었다. 특히 주전 슈팅 가드 클레이 탐슨이 기복이 매우 심한 모습을 보여주는게 뼈아팠다.

오프시즌에는 드와이트 하워드에 입맛을 다셔보기도 했지만 하워드는 휴스턴행. 대신 샐러리만 먹던 잉여들인 리처드 제퍼슨과 안드레스 비듬린스비에드린스를 처리하는 데 성공해[] 운동 능력과 수비가 좋은 안드레 이궈달라를 영입해 전력을 강화했다. 12-13 시즌 커리를 잘 보좌해주었던 베테랑 제럿 잭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로 이적했다. 가드진의 뎁스는 이렇게 약해졌지만 대신에 보것의 유리몸을 대비해 왕년의 스타였던 저메인 오닐을 영입하기도 했다.

2014년 상향 평준화된 서부 경쟁에서 살아남아 실로 오랜만에 50승 고지를 돌파, 6위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최종 성적은 51승 31패(.622). 다만 이번에는 좀 멀쩡하게 지내나 했던 유리몸 보것이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갈비뼈 골절을 당하고 말았다.

상대는 서부 지구 3위였던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커리가 나름 미친 활약을 했고, 보것의 공백은 데이빗 리와 저메인 오닐이 번갈아 가면서 나름 최선을 다해 상대하였으며 2년차 스몰 포워드인 드레이먼드 그린이 한층 성장해주는 모습을 보였다. 더군다나 클리퍼스의 구단주 도날드 스탈링의 인종차별적 발언 논란이 터져 클리퍼스 선수단과 코칭 스태프진의 분위기가 뒤숭숭해졌고, 결국 스탈링의 인종차별적 발언의 녹취록이 공개된 다음날 홈 경기에서 118-97이라는 큰 점수차로 승리하면서 손쉽게 시리즈를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하지만 저메인 오닐까지 부상을 당한 와중에 블레이크 그리핀과 디안드레 조던이라는 짐승들과의 파워 싸움에서 밀렸다. 결국 7차전에서 전반전까지는 잘 버텼지만 3, 4쿼터의 극심한 슛 난조 때문에 121-126으로 패해 2라운드 진출이 좌절되면서 탈락했다.

워리어스 역시 분위기가 뒤숭숭해서, 이 클리퍼스와의 플레이오프 시리즈 중에 감독 마크 잭슨의 거취 여부를 가지고 이야기가 나왔다. 마크 잭슨과 코치진 그리고 프런트와의 불화가 겹쳐져서 잭슨이 우승급 성적을 남기지 않는 한 시즌을 끝으로 경질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당초 워리어스의 어시스턴트 코치들이었던 마이크 말론과 스칼리브리니, 그리고 보스턴 셀틱스가 14-15 시즌을 위해 영입한 코치 대런 얼먼 등의 코치진이 팀을 떠난 게 마크 잭슨과의 불화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으며, 구단주 역시 간접적으로 잭슨에 대한 안 좋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따라서 코칭 스태프 변화가 오프 시즌에 나올 가능성이 대두되었다. 구단이 이궈달라를 영입해주고 시즌 중반에는 스티브 블레이크까지 영입해서 할 건 다 해주었는데 1차전에서 탈락했다는 명분도 있었고, 결국 플레이오프가 끝나자 마크 잭슨을 해고하면서 시즌을 마쳤다.

스티브 커 감독 부임 전성기의 시작

TNT에서 해설가로 활동하던 스티브 커가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감독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으나 뚜껑을 열고 보니 엄청나게 잘나갔다.[] 2015년 1월 들어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리그 1위를 질주하였으며, 특히 득실 마진은 평균 10점이 넘어 4쿼터 가비지 제조기라 불렸다. 커는 시즌 시작 전에 뉴욕과 골든스테이트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고 있었는데, 본인과 팀 모두에게 있어 좋은 선택을 한 셈이 되었다. 또 재계약한 탐슨이 올스타급으로 활약한 데다 보것이 준수하고, 드레이먼드 그린도 팀의 핵심 멤버로 성장했다.

결국 서부 2위인 휴스턴와의 차이를 5게임 이상 벌리며 거의 40년 만에 디비전 1위 자리를 확보했고, 최종 성적 67승 15패로 구단 역사상 최고 승률을 찍으며 전체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스테판 커리는 시즌 MVP에 성공했다. 플레이오프에서도 8위인 뉴올리언스 펠리컨스를 가볍게 스윕하면서 빠르게 2라운드에 진출. 2라운드 멤피스와의 대결에서는 멤피스의 수비에 고전했지만, 결국 스테판 커리의 활약 속에 4승 2패로 승리하면서 1976년 이후 처음으로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컨퍼런스 파이널에서는 휴스턴을 4승 1패로 일축하면서 40년 만에 파이널 진출에 성공했고, 끝내는 NBA 파이널에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꺾고 파이널 우승까지 차지하면서 2015년 최강팀 자리에 올랐다.

영구결번


13. 윌트 체임벌린(Wilt Chamberlain) (1959-1965) : 워리어스 시절에 전설적인 100득점을 기록할 정도로 당대를 지배했던 고대 괴수. 역사상 세 손가락에 꼽히는 센터이다. 주로 필라델피아 레전드로 기억되는 편이며 본인이 거쳐간 세 구단에서 결번이 되었다. 필라델피아 워리어스 소속으로 세 시즌을 활약하고, 구단이 연고 이전을 함에 따라 샌프란시스코 워리어스 소속으로 세 시즌을 더 활약했다. 이후 필라델피아로 돌아가 세븐티식서스 소속으로 세 시즌을 활약한 후 나머지 다섯 시즌을 레이커스에서 마쳤다. 즉 연고지 기준으로는 필라델피아에서 가장 오래 뛰었고, 윌트 본인의 출생지이기도 하기 때문에 사실상 필라델피아 로컬 스타의 이미지가 비교적 강하다.

14. 톰 메스체리(Tom Meschery) (1961-1967) : 러시아계 농구 선수로 1960년대 워리어스의 골밑을 지킨 파워 포워드였다.

16. 알 애틀스(Al Attles) (1960-1971) : 가드로 1960년대 활약했고, 감독으로 1975년 우승을 이끌었다..

17. 크리스 멀린(Chris Mullin) (1985-1997, 2000-2001) : 오랜 암흑기 후에 1980년대 말 워리어스의 중흥기 당시 Run TMC의 멤버 중 한 명. 원조 드림팀의 멤버이기도 하며 2004년부터 5년간 단장으로도 활동했다. 당대 최고의 슈터였다.

24. 릭 배리(Rick Barry) (1965-1967, 1972-1978) : 워리어스를 대표하는 득점 머신 스몰 포워드. ABA로 잠시 외도한 적도 있었지만, 돌아와서 1975년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42. 네이트 서몬드(Nate Thurmond) (1963-1974) :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된 한 시대를 풍미한 명센터. 워리어스의 2010년대 최대 라이벌 팀인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서도 활약한 적이 있으며, 르브론 제임스와 같은 오하이오 주 애크런 출신이기도 하다. 캐브스에서는 리치필드의 기적에 공헌하며 마찬가지로 영구결번을 받았다.

그 외에도 18-19 시즌을 끝으로 결별한 케빈 듀란트와 안드레 이궈달라는 영구결번을 약속받은 선수들이기에 은퇴 후 배너에 저지가 걸릴 것이며, 현재까지도 워리어스 소속인 스테판 커리, 클레이 탐슨, 드레이먼드 그린 역시 사실상 확정적 결번 대상자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거쳐간 선수들

닉 반 엑셀 (2003~2004)
몬타 엘리스 (2005~2012)
맷 반스 (2006~2008, 2017)
데빈 조지 (2009~2010)
배런 데이비스 (2005~2008)
케빈 듀란트 (2016-2019)
숀 리빙스턴 (2014-2019)
안드레 이궈달라 (2013-2019, 2021- 현재)
드마커스 커즌스 (2018-2019)
앤드류 보것 (2011- 2016) / (2019)
조던 벨 (2017-2019)
요나스 예렙코 (2018-2019)
제레미 린 (2010-2011)
퀸 쿡 (2017-2019)
데미언 존스 (2016-2019)
저베일 맥기 (2016-2018)
해리슨 반스 (2012-2015)
드레이먼드 그린 (2012- 현재)
스테판 커리 (2009- 현재)
클레이 탐슨 (2011- 현재)
윌리 컬리-스테인 (2019-2020)
오마리 스펠맨 (2019-2020)
알렉 벅스 (2019-2020)
글렌 로빈슨 3세 (2019-2020)
디안젤로 러셀 (2019-2020)
제이콥 에반스 (2018-2020)
에릭 파스칼 (2019-2021)
켈리 우브레 주니어 (2020-2021)

그외정보들

엠블럼에 그려진 다리는 베이 브릿지이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금문교의 인지도에 밀려 금문교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2019년도에 홈구장을 샌프란시스코 체이스 센터로 이전해도 구단명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로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개요에 나와 있듯이 골든스테이트는 캘리포니아 주의 별칭인데, 오클랜드와 샌프란시스코는 다리 하나만 건너면 갈 수 있으며 아예 지하철 한 정거장밖에 안될 정도로 가깝다. 그리고 사실 예전 연고지로 돌아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거의 50년 가까이 함께 해왔던 오클랜드 팬들에게 쓸데없이 구단명 변경으로 박탈감을 줄 이유도 없다.


구단명인 워리어스라는 이름 때문에 말장난도 명물(?)인데 한때 호구 취급을 당할때는 발음이 유사한 'Worriers(걱정끼치는 사람)'이라고 조롱당하기도 했다.


구단이 직접 e스포츠에 뛰어들어 e스포츠 팀을 운영하고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 북미 리그인 LCS 프랜차이즈 팀 골든 가디언즈를 운영 중이다.


케빈 듀란트, 자베일 맥기 등의 이적생들이 골스에서 쉽게 적응하고 좋은 팀 케미를 보여준 덕에 국내에서는 행복스테이트라는 별명이 생겼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NBA 매니아 등지에서 과도할 정도로 행복 농구 운운하며 뇌절하는 골스 팬들이 적지 않았을 정도로 사용 빈도가 높은 별명.

그러나 드레이먼드 그린과 케빈 듀란트의 분쟁 및 이후 나온 발언들로 인해, 사실은 라커룸에서 많은 다툼이 있었으며, 팬들이 생각하는 만큼 편안하고 좋은 분위기를 유지한 팀은 결코 아니었다는 게 드러나고 말았다. 사실 라커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는 떡밥 자체는 이미 있었으나 골스 팬들이 이를 외면한 것에 가까운 편.


그린은 이에 대해 "팀원들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우승할 수 없다는 말의 반례는 우리들이다", 즉 팀 케미따윈 박살난지 오래이지만 구성원들의 재능의 합이 너무나도 압도적이라 이겨왔을 뿐이라는 식으로 말할 정도이니, 지금와서 보면 행복스테이트라는 별명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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