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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열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2. 7. 6.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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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가수, 음악 프로듀서, 방송인, 기업인. 안테나 대표.

1990~2000년대 대한민국 가요사를 논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뮤지션으로 원맨 밴드 토이의 프로듀서이자 싱어송라이터이다.[] 방송 활동으로는 FM 음악도시의 DJ 겸 시장,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의 DJ였으며,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MC이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대상 출신으로 현재 대회 심사위원이기도 하며, 수상자 중 대중음악으로 가장 성공한 인물로 손꼽히는 사람이다. 발라드 작곡가임에도 불구하고 매 음반마다 실험적인 사운드와 구성을 시도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었으나, 2022년 표절 논란으로 인해 유희열의 천재성에 대한 재평가는 물론 본인이 그동안 쌓아올린 이미지도 크나큰 손상이 가게 되었다

서울대학교 작곡과 출신으로 14년만에 졸업했다. 90학번인데 2004년에야 졸업. 중간에 군 복무 기간[]이 포함된다

 

학창 시절

2남 중 둘째.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해 마음고생을 하다, 거친 친구들과 어울리는 학창 시절을 겪었다. 라디오천국에서 작곡가 롤러코스터의 지누가 증언한 것에 따르면, 고교 시절 공연 순서 때문에 유희열의 스쿨밴드와 시비가 붙은 적이 있었는데 유희열의 친구들이 다 덩치로나 주먹으로나 한가닥 하는 친구들이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건 지누의 밴드는 여리디 여린 친구들이 헤비메탈을 했고[], 유희열의 밴드는 조폭같은 친구들이 어떤날의 음악을 연주했다는 것.

실제로 유희열 본인 말로 폭주족 뛰고 정학을 먹기도 했고, 어머니는 오토바이 타는 건 말리지 않을테니 앞바퀴만 들지말라고 했을 정도였다고. 예능을 많이 하게 된 이후 마른 몸 때문에 '반건조 차인표' 같은 별명이 생기며 연약한 이미지가 생겼지만 사실 젊었을 적 유희열의 인상과 표정, 눈빛 등은 상당히 사나운 느낌이 든다.

이때 흔들리던 그를 잡아준 건 어머니와 형, 그리고 어떤날의 음악이었고, 방황 끝에 음악으로 진로를 정한다. 피아노는 고3 때부터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였다. 집안이 상당히 가난해서 피아노를 놓을 장소가 없어 혼자 자취를 했다고 한다. 그것도 처음엔 피아노가 없어 종이 위에 그려진 피아노로 상상 연주를 하고, 멜로디언을 훅훅 불다가 본격적으로 피아노로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이때의 경험으로 인해 자기가 세상에서 멜로디언은 제일 잘 부를 수 있다고 한다. 주변의 예상을 깨고 당당히 서울대 진학에 성공한다. 스케일이 음계라는 뜻인지도 모르던 백지 상태에서 1년만에 거둔 성과였다고. 합격이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꺼이꺼이 우는 모습이 다음 날 조간신문에 실렸다고 한다. 물론 유희열의 작곡 기본기가 출중한 덕이었겠지만 2000년 이전까지 서울대 작곡과에는 남학생 할당제 50%가 적용되어 남학생에게 매우 유리한 입시 제도가 적용되었다. 2001학번부터 성별 할당 폐지. 그런데 유희열의 경우, 애초에 담임 선생이 서울대 어느과를 써도 붙을 수 있다고 확언했으니 더 높은 과를 썼어도 붙었을 것이다. 음악 공부 뿐만 아니라 학과 공부 자체도 매우 열심히 했음을 알 수 있다.

유희열 본인 말로는 이때, 블라인드 테스트로 피아노 실기 연주곡을 2곡 연주해야 하는데 한 곡은 바흐의 푸가로 기본기 테스트, 나머지 한 곡은 어려운 곡으로 고전파 이후의 연주 실력을 테스트하는데 쇼팽이나 베토벤 곡이었으면 못 쳤을 거라고 한다. 당시 유희열은 벨라 바르톡의 곡을 치게되었는데, 이게 한 음을 한 손으로 손가락을 돌려가며 빠르게 쳐야 해서 엄청 어려운 곡임에도 불구, 자기는 그런 거 못하기 때문에 오락실 독수리 타법으로 두들긴 덕분에 기막히게 연주한다는 평을 받으면서 합격했다고...

물론 이는 유희열의 방송용 자기비하 개그 내지는 겸손함이라고 보는 편이 맞다. 바흐의 푸가[]부터가 피아노 연주와 음악 기본기가 확실히 잡혀 있어야 무리없이 잘 칠 수 있는 작품이라... 개인 스타일과 선호에 따라 각각의 곡을 "얼마나 잘 치는가"는 조금씩 다를 수 있어도, 일반적으로 볼 때 바흐 푸가는 서울대 작곡과 실기 합격 수준으로 연주할 수 있으면서 베토벤이나 쇼팽 곡은 못 치는 사람은 없다고 보면 된다. 게다가 바르톡의 피아노곡은 테크닉 측면으로나 표현 측면으로나 대단히 어려운 편에 속해서, 쇼팽이나 리스트 곡은 웬만큼 치는 예고생이나 음대생들도 난감해하는 작품들이 많다. 물론 바르톡의 피아노 작품 중에는 미크로코스모스 피아노곡집의 초중반 작품처럼 쉬운 곡도 있지만, 그런 곡을 서울대 작곡과에서 피아노 실기 과제곡으로 출제한다는 건 넌센스이다.

여담으로 고3 시절 現 메가스터디 수학 강사 박승동(당시 경복고 교사)이 담임 선생이였다고 한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유희열이 TV에 나온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밤 중에 사회를 보는 모습이라고 하니 아마도 스케치북일듯 하다.

 

음악 활동

진학을 앞두고 동아기획으로 찾아가 김영 사장에게 데모 테잎을 내고 음악을 하고싶다는 말을 하던 중, 뒤에서 킥킥대면 비웃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거기에 봄여름가을겨울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김종진, 전태관에게 처음 들은 이야기가 '학생, 거 듣자 하니 대학교 좋은 데로 갈 꺼라면서? 그냥 공부나 열심히 해~' 였다고…[] 후에 스튜디오에서 다시 만났을 때에도 그들은 '야, 너 그 좋은 대학 나와서 왜 이런걸 할려고 해?'라는 말부터 했다고 한다. 김종진, 전태관이 밝히길 '얘는 나중에 분명히 우리 밥그릇을 엄청나게 뺏어먹겠구나 싶어서 싹부터 잘라놓으려고 했다'고 한다.

가수 윤상의 말에 따르면 유희열은 이미 중학교 시절 작곡을 시작하였고, 당시 작곡한 곡을 가수에게 주기도 하였다고 한다. 흑역사인건지 윤상도 유희열 본인도 어떤 가수의 어떤 곡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굳이 따져보자면, 현재까지 앨범으로 발매된 유희열의 가장 오래된 노래는 1988년에 나온 김형용의 '꿈에 잠기어'이다. 유희열이 고2 때 발매된 걸로 보아서 중학교 때 만든 노래가 이 곡이 아닌가 하고 추측된다. 참고로 김형용은 1980년대에 나름 인기있던 가수로 유희열의 사촌 형이다.#

전업 음악가로서의 시작은 대학 재학 중 김장훈이 이끄는 인디밴드 <김장훈과 한국사람>의 키보디스트로 가입한 것이다. 첫 대면에 유희열은 김장훈을 미친 사람으로 생각했으나 나중에 묘한 매력에 이끌려 밴드에 합류하게 되었다고 MBC 명랑히어로 '김장훈 편'에서 밝혔다. 당시 소개팅 해준다는 선배의 말을 듣고 신나게 카페로 갔는데 여대생은 없고 대신 머리 긴 김장훈이 있었다고... 라디오천국에서 밝힌 김장훈의 증언에 따르면 학교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어 'The Final Countdown'을 삐딱한 자세로 무심하게 연주하는 유희열을 보며 '쟤 어쩜좋냐' 싶어 자신이 거두었다고 한다. 근데 정작 김장훈은 유희열을 가두어두고 하루종일 반주만 시켰다고. 이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달빛의 노래'란 곡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물론 이로 인해 학업은 등한시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클래식 전공으로 입학했는데 클래식에 대해선 일반인 이하 수준이라서 학교에 적응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고 그 곡에 대한 작곡가와 이름을 맞히는 시험을 볼 때 딸랑 한 문제만 맞혔는데 그 곡을 맞힌 이유도 예능 프로그램에서 황기순이 이 곡에 맞춰 춤을 춘 것이 기억나서 맞췄다고 한다. 지금은 서울대 작곡과에서도 대중음악에 관심갖는 경우가 많지만 1990년대 초반만 해도 클래식 서양음악만 공부하는 작곡과에서 이런 대중음악을 하는 것은 굉장히 이단아였다. 유재하는 1집 앨범을 학교 때려친다는 각오로 만들었고 1집 앨범 녹음에 스트링 세션으로 참여한 후배들도 자신들이 대중음악 녹음에 참여했다는 것을 학교측에서 알게 되면 대학에서 짤릴까봐 몰래 녹음했을 정도였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입상 이후 유희열은 엔지니어 윤정오와 함께 토이를 결성하였다.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로는 김현철의 조언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인이 밝혔다. 윤종신[], 이승환 등과 함께 작업을 하던 뮤지션으로서의 초창기 시절 유희열은 작곡과 프로듀싱만을 전문적으로 하기를 꿈꾸었으나, 김현철이 '네가 진정으로 훌륭한 프로듀서가 되고 싶다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음반을 내보아야 한다'고 말을 했다고... 이후 이승환 4, 5, 6, 7집, 이문세 10집, 이소라 2집, 윤종신 5집 등에 참여하여 작사, 작곡, 프로듀싱 등의 음악 활동을 펼쳤다.

이후 1996년 발매된 토이 2집부터 토이를 원맨밴드로 전환하게 되었고, 라디오 DJ로 활약하며 특유의 변태성을 만천하에 드러내게 되었다. 그 외에 1999년 삽화집 "익숙한 그 집 앞"을 내기도 했다.

토이 2집 발매 직후의 에피소드가 있다. 이적이 별밤지기를 맡은 시절 첫 잼 콘서트에 출연했는데, 유희열은 이적의 소개를 받고 등장해서는 자기가 헤어진 첫 사랑을 위해 만든 곡이라며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을 부르다 그야말로 폭풍 오열을 터뜨리는 바람에 라디오를 듣던 사람들이 모두 숙연해졌다. 이적도 상당히 진땀 뺐다는 후문. 이 때 '별밤 잼 콘서트에서 막 운 사람'으로 처음 유희열을 접한 이들도 꽤 된다고 하더라.

특징

'자뻑+변태 중년' 캐릭터가 대중에게 기묘하게 호감으로 먹힌 케이스. 유려한 말발과 겸손하고 개념있는 행동 등으로 까는 사람은 거의 없으나 가끔 인터넷에 얼굴 가지고 까는 사람이 있다고 라디오에서 밝힌 바 있다. 팬들 사이에 통하는 통칭이 감성변태.

주위에 SNS를 하는 지인들이 많은데, 반대로 본인은 SNS를 하지 않는다. 본인 스스로는 기계에 약해서 스마트폰이나 트위터를 쓰지 못한다고 밝혔지만 라디오에서는 음표를 찍느라 바빠서 트윗을 할 시간 없다고 농담했다. 실제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하나 눈팅 용도로만 쓰고 개인적인 글을쓰거나 게시물을 올리진 않는다. 제로보드 기반의 본인 팬페이지에 근황을 올리는 수준.

인터넷 서핑을 자주하는 듯하며 인터넷상의 유행어를 스케치북이나 라디오천국에서 자주 선보인다. 하지만 게임에는 관심이 없는지 라디오 사연에서 SCV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무슨 의미인지 파악을 전혀 하지 못했다. 단적인 예로 1박 2일에 출연했을 때 게임 문제 때문에 김종민에게 패배했다.[]

코미디언 신보라와 외가쪽으로 6촌 사이란게 알려져 화제가 되었다. 신보라가 데뷔하기 직전, 어머니와 함께 유희열의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오빠 방송국에서 봐~'라고 하길래 유희열은 방청 온다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리고 TV에 나온 신보라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후에 둘이서 싼타페 광고를 찍었다.

족보로 얽힌 관계는 아니지만 송해와도 인연이 있다. 유희열의 고모가 송해의 부인 석옥이와 언니, 동생하며 친하게 지내는 관계였고 그 덕에 송해도 유희열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2018년 11월에 방영된 대화의 희열에서도 이 내용이 나온다. 당시 유희열은 송해의 이야기를 들은 후 송해의 손을 붙잡고 오열했다.

음악 스타일

루시드폴은 유희열에 대해 "음악적으로 굉장히 여러 가지의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분. 아무리 음악을 오래한 사람이라도 본인이 할 수 있는 음악과 취향이 편향될 수 밖에 없는데, 그런 면에서 많이 열려있고 자기 음악으로 체화시켜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기본기가 좋고 라이브에 강한 완성형 보컬들에겐 거의 그 보컬의 한계치에 해당하는 극악의 난이도의 곡을 주기로 유명하다.[] 간단히 말해 정말 노래들의 난이도가 괴랄하다. 가수 죽이려고 만든 노래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 대체적으로 노래의 키가 높고 클라이맥스에서 숨돌릴 부분도 없이 몰아친다.[] 그래서인지 곡을 받은 가수들이 곡 난이도에 대해 불만을 자주 드러낸다.

조원선은 녹음을 마치고 유희열을 힐끗 보고 고개를 저으며 “아유~ 저 오빠 독해 독해.”라며 툴툴댔다고 한다. 윤하는 편한가봐를 불러달라는 관객의 요청에 "진짜 안 편한 노래를 시킨다"고 푸념했고, 토이 7집의 2번 트랙 Reset을 부른 가수 이적은 2018.01.13 유스케에 출연해서 가수가 어디까지 부를지 안 부를지 생각을 안 하고 연주곡 만들듯이 곡을 쓴다면서 한바탕 푸념을 내뱉다 유희열의 요청으로 Reset를 부르고 갔으며 같은날 출연한 윤종신 역시 유희열이 좋니 얘기를 꺼내자, 노래 못하는 친구들이 곡 쓸 때 막 가성으로 워후하고 낸다며 실제 그걸 진성으로 소화하라고 하는 걸 볼 때마다 '김연우가 참 힘들었겠구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할 정도다. 박정현도 자신의 노래 중 가장 어려운 노래로 으레 유희열이 작곡한 3집의 ‘아무말도, 아무것도’를 꼽는데, 콘서트를 마치고 SBS 더 팬의 녹화에 참여한 박정현에게 유희열이 콘서트에서 어떤 곡이 가장 호응이 좋았냐고 집요하게 묻자 "오빠 곡은 아니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성시경은 안녕 나의 사랑 녹음 당시 노래는 참 좋은데 쉬는 부분이 어딨냐고 투정하자 유희열이 간주 때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것도 모자라 세 사람 녹음 때 결과물이 영 만족스럽지 못해 성시경이 자발적으로 10일 금연하게 만들었으며 그 후 재녹음이 성공하자 줄담배를 피우며 "살 것 같다" 말한 일화는 기사까지 났을 정도.

유희열 앨범 참여 가수를 보면 알겠지만 가수들의 실력이 대단한데도 이렇게 가수들이 힘들어하는 건 유희열 특유의 작곡/작사 스타일에 있다. 앞에서 김연우가 부른 거짓말 같은 시간과 여전히 아름다운지의 예를 들었는데, 다른 작사 작곡이 올리지 않는 부분 예컨대 널 만날 때보다에서 "날"에서 최고음이 나오거나, 영원히 에서 "히"에서 최고음이 나오는 경우가 그렇다.[]

그런데 본인이 부를 곡이나 윤상처럼 보컬이 주 포지션이 아닌 사람에겐 쉬운 노래를 준다.

또 다른 특징으로 작사한 노래의 화자가 좋게 말해 착하고, 나쁘게 말하면 찌질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유난히 떠나간 사람에게 독백의 형태로 안부를 묻는 가사가 많고[], 남성 화자에게 이별이 찾아왔을 땐 원망 대신 앞으로에 대한 축복을 한다. 심지어 이별의 원인은 십중팔구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자책까지... 이렇게 소심한 화자를 많이 표현하다 보니 짝사랑이 많고 사랑고백을 하는 노래가 별로 없다.[] 그나마 그랬나봐에서 고백을 하긴 하는데 유희열 노래 답게 망설이다 고백하는 것을 잘 표현한다.

가창력

가창력은 평범한 수준이다. 노래를 아예 못 부르는 음치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보컬로서는 부족한 편. 실제 노래를 들어보면 음정이 굉장히 심하게 떨리고 음을 잘 못 맞추는 편으로, 절대음감이 꼭 노래 실력과 연관되지는 않는다는 걸 잘 보여주는 예시라고 볼 수 있다. 이소라는 이를 두고 유희열은 발성 자체가 선천적으로 안 된다고 디스했다. 참고로 본인은 노래를 부를 때 본인이 음정이 떨리고, 정확한 음정을 내지 못한다는 걸 인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도 10여년 전에 비하면 노래 실력이 꽤 많이 발전했다. 콘서트에서 가끔 본인이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또한 토이 앨범들의 수록곡 중 한, 두 곡 정도는 유희열이 부른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이러한 가창력과는 별개로 음색 자체는 부드럽고 편안한 음색으로, 이때까지 토이에 수 많은 객원 보컬들이 참여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토이와 가장 어울리는 음색은 유희열이라는 말도 있다.[]

유희열이 본인이 작곡하지 않은 곡을 실제 녹음한 사례도 있긴 하다. 2002년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마리이야기의 사실상 오프닝이나 다름없는 우리가 사는 곳이라는 노래인데, 이병우 작곡에 유희열 노래이다. 금영노래방에 60065번으로 수록되었다.

그외정보들

이촌동에 거주하다[] 2014년부터는 청담동에 거주한다.#


닮은꼴로 일본의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걸그룹 러블리즈의 JIN이 꼽힌다. 2015년 10월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처음으로 만났는데 본인도 인터넷 보다가 알았는지 먼저 언급하고 JIN이 '아빠'라고 부르자 당황했다.


광고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유명한 배경음악 '공원에서'는 유희열이 고등학생 시절에 작곡한 것이라고 한다.


어렸을 때 MBC 청룡 팬이라 지금까지 고통 받는다고 한다. 반면 절친한 가수 김장훈은 두산 베어스 팬이라 야구 얘기할 때는 서로 으르렁거린다고 한다.


2016년을 시작으로 매년 연말부터 구정 전까지 그의 이름을 언어유희로 활용한 ‘해피 유희열’ 짤이 신년인사용 이미지로 쓰인다.


닮은꼴로 남준재가 있다. 축구팬들은 농담으로 남준재에게 유희열이라고도 한다.


대화의 희열에 출연하는 게스트의 정보를 나무위키에서 얻는다. 심지어 핸드폰을 꺼내 나무위키 안정환 문서의 어록 부분을 보며 그대로 읊어주는 모습이 방송을 탔다.


2001년 최화정의 파워타임 전설의 코너 "로맨스여 영원하라"에서 성시경,박효신과 함께 고정 게스트를 맡았다.[]


본업은 뮤지션이나 깐족대는 면이 있고 입담도 좋아서 예능 방송 출연이 잦다. 유재석과 만날 때마다 주고받는, 대단한 사람들끼리 하찮게 티격태격하는 케미가 특히 일품. 때론 진지하게 때론 깐족대며 서로를 디스하는 게 두 사람 토크의 대부분인데, 이 때문에 유재석은 "희열이 형은 사람을 희한하게 열받게 하는 재주가 있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실제 성은 '류'씨(버들 류)라고 한다. 그래서 류씨로 해도 되지만, 우리나라 행정상 공문서에 류씨를 유씨로 기록하던 관례로 학교 다닐 때부터 성인된 이후까지 유씨로 계속 등록되어 와서 본인도 그냥 유씨로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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