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정보 유머

백종원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2. 7. 28. 12:35
728x90
반응형

대한민국의 요식 기업인, 학교법인인, 유튜버.

'요리하는 CEO'로 불릴 정도로 요리업계에서 유명한 기업인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있고 신뢰도가 높은 요리 관련 유명인#으로 꼽히고 있다. 본인 스스로 자신은 요식 사업가 내지는 요리 연구가이지 셰프가 아니니 그렇게 부르지 말고 그냥 '사장님'이나 '대표님' 정도로 불러달라고 한다. 다만, 이는 백종원 본인이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것도 있지만, 실제로 그의 본업이 셰프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백종원의 사진이 나와 있는 더본코리아 프랜차이즈 음식점 포스터에서는 "외식 경영 전문가"라고 소개하고 있다. 사장님과 대표님 외에 자주 불리우는 호칭으로는 '선생님'도 있으며, 간혹 '선배님'이라고 불리우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 선배님이라는 호칭은 이 사람이 연예인이 아니므로 부적절한 호칭이다. 마치 서장훈이나 안정환 같은 체육인 출신 방송인들한테 같은 체육인 후배들이라면 모를까 이들보다 나이가 어린 연예인들이 딱히 부를 호칭이 없다고 선배님이라고 호칭하는 것과 같은 이치. 선배님이란 호칭보다는 선생님이 좀더 적절한 표현이다. 또 한가지 방법으로는 대표님이라고 부르자

유명 셰프인 레이먼 킴은 백종원은 경영만 하는 게 아니고 본인이 직접 연구하고 개발한 요리를 판매한다는 점에서 셰프가 맞다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

사실 그의 본업은 요리사가 아니라[] 외식 사업가다. 무엇이 히트를 칠지, 어떻게 하면 사업이 더 확장될 수 있을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실행할 때의 요리의 맛이나, 분위기 등의 부가적 요소들을 파악하여 문제점을 개선하는 것으로, 이러한 그의 사업가적 면모가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 현재 출연 중인 백종원의 골목식당과 맛남의 광장이다.[] 이 외에도 백종원의 푸드트럭, 고교급식왕 등의 프로그램도 사업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고, 분기마다 백종원의 장사 이야기라는 오프라인 모임을 진행해 사장님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해줬으나 현재는 진행을 안하고 있다.

새마을식당, 한신포차, 홍콩반점0410, 본가, 미정국수 0410, 역전우동 0410을 비롯한 여러 프랜차이즈 식당을 운영하고 있으며, 그가 운영하는 음식점의 종류는 고기류부터 중식, 한식, 분식 등은 물론 카페 '빽다방'까지 거의 모든 범위를 아우른다. 대표적으로 대패삼겹살[]과 우삼겹[]을 상표로 등록했고, 그 외에도 친숙한 음식들을 다루면서 실력과 상업성을 인정받았다. 이런 능력들을 바탕으로 2013년 이후 대한민국에서 손꼽힐 정도로 성공한 사업가로 자리매김 했다.

15세 연하의 배우와 결혼했다는 점과 경영하는 음식점들 대부분이 가성비 음식을 주로 다루는 체인점이라 이래저래 의문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2015년 MBC의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방송에 진출, 그리고 Olive TV의 한식대첩 시즌2(2014), 한식대첩 시즌3(2015)의 심사위원으로 나와서 요리 및 식재료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과시하면서 일명 '백'과사전으로 이미지를 완전히 쇄신하여 뛰어난 능력을 입증해냈다. 또, 충청도 사투리 특유의 구수함과 친근함에 타고난 예능감까지 선보이며 대세 예능인으로까지 발돋움했다. <힐링캠프> 백종원 & 소유진 편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이후에도 여러 차례 힐링캠프에 출연하게 되었다.

2016년 이후에는 관련 서적도 1위를 휩쓸었고, 2017년에는 집밥 백선생으로 방송 MC 브랜드 평판 1위까지 올라갔으며, 그 해 SBS 연예대상에서 공로상을 수상했다. 더 나아가 2018년에는 아예 연예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SBS 연예대상 후보로까지 거론됐다.

프랜차이즈 사업가로 성공했음에도 예비 창업자들과 자영업자들이 귀담아 들을만한 현실적인 노하우를 많이 설파한다. 사업실패와 자수성가를 모두 겪어본 사업가고, 방송으로 이름을 타기 전인 2013년부터 요식업 자영업자를 꿈꾸는 사람들과 오프라인 모임을 진행해 왔다. 이는 더본코리아 유튜브 채널의 백종원의 장사 이야기에 업로드 되었으나 백종원의 요리비책으로 채널로 리뉴얼되며 기존의 영상은 삭제되고 편집본으로 순차적으로 업로드 중이다. 자영업을 염두하고 있다면 한 번쯤은 봐둘 만한 좋은 이야기들이 많다. 또한 식당을 위한 대용량 레시피집인 '백종원의 식당 조리비책'(2009)을 쓰기도 했는데, 이런 대용량 요리책은 국내에서는 매우 드물고 귀한 자료이다. 이 대용량 조리법은 백종원이 유튜브 콘텐츠로 활용하기도 했다.

2019년 3월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요리 만화를 내게 되었다.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나온 내용으로 보인다.

1966년 충남 예산군에서 집안의 종손으로 태어났다. 중학교 시절 상경해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졸업 직후엔 잠시 서울특별시 장한평에 위치한 중고차 시장에서 자동차 중개업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대화의 희열에서 어렸을 적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만석꾼이었던 증조할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영향인지 어렸을 때부터 장사꾼 기질이 있다고 스스로 자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9살 때에는 산에 놀러갔다가 본 버섯 농장에서 별다른 투자도 안 한 거 같은데 돈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꿈을 버섯 농사로 정한 적도 있었고, 초등학교 4학년때는 캔이 아닌 병에 음료가 나올 시절에 음료수 병을 보고 '저게 돈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해 학교 리어카를 빌려 오락 시간과 보물찾기 같은 시간을 다 건너뛰고 리어카 6개 분량의 공병을 모아서 고물상에 갖다 팔아 큰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리고 5학년 1학기까지 이렇게 돈을 벌었고 방위성금으로 다 냈다고 한다. 5학년 2학기부터는 공병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소문이 주변에 퍼져서 할 수가 없었다고.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대학입시가 끝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직전에 친구의 형이 중고차 장사를 하는데 거기서 처음으로 호객행위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라고 한다. 그런데 이 호객행위가 너무 단순했으며 막상 이렇게 손님을 불러와도 안에서 딜러들이 설명을 너무 못하고, 손님이 어떤 차를 원하는지 바로 알아채지 못해서 본인이 직접 알려줘도 딴소리를 하면서 손님을 놓치는게 답답한 나머지 직접 딜러를 하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래서 딜러로 일하기 시작한지 40분만에 차를 파는데 성공하고 며칠만에 차를 6대나 팔았다고 한다. 그런데 2번째로 차를 사간 손님이 미터기 조작과 사고 경력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모르고 팔았던 백종원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다고 한다.[] 거기에 충격을 받아서 자동차를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거기까지는 의욕이 없어서 더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장사에 대한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빨리 그만둔 이유는 다른 구매자들도 따지러 올까봐 그랬다고 한다.

처음 자신의 가게를 가지고 요식업에 뛰어든 것은 대학생 때로, 연세대학교 1학년 때[22] 아르바이트 삼아 일한 압구정동 호프집을 1달 만에 인수[]하면서 이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이유는 맥주를 마음껏 마실 수 있어서였다고 한다.

이때 상권이라는 개념을 어느 정도 이해하면서 아파트 단지가 있는데 주변에 치킨 가게가 없으니 배달이나 포장 판매를 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해 주인 할머니에게 권유를 했지만 할머니는 썩 내키지 않는 반응을 보였고, 이를 설득해서 본인이 하겠다고 나서면서 마음대로 하라는 허락을 받은 끝에 핸드메이드 전단지를 만든다. 그런데 전단지를 돌리고 싶었는데 당시 아파트의 경비가 삼엄해서 경비에게 치킨을 돌리면서 전단지를 돌릴 수 있게 허락을 받아 아파트에 전단지를 돌렸고 돌아오자마자 전화가 많이 와서 이때 장사의 맛을 느꼈다고 한다. 정작 이때는 이렇게 반응이 빠를 줄 몰라서 준비가 아직 안 된 상황이라 곧바로 배달을 시작하지는 못했다고. 그러다 얼마 안 가서 일이 너무 많아지니 치킨 튀기는 기계도 5대까지 늘렸지만 할머니가 병을 얻고 가게가 잘되니 힘들다는 이유로 가게를 내놓기로 결정했고 이걸 아쉽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가게를 직접 하지 않겠냐"고 할머니가 먼저 제안을 했다고 한다. 근데 통장에 돈이 그렇게 많이 없어서 "돈이 어딨어서 가게를 인수하냐"니까 할머니가 "지금 가진 것 만이라도 가져오면 내주겠다, 너는 갚을 수 있을 것 같다"며 가게를 백종원에게 넘긴다. 그렇게 잔금을 모두 갚으면서 가게를 완전히 인수하고 이후 3년간 가게 3개를 운영하며 15억 원대의 자산가가 되었으나, 백종원이 나이트 클럽을 인수하려던 것을 알게 된 가족이 기겁을 하고 반대[] 하는 바람에 대한민국 육군 학사장교로 지원하게 하였다고 한다.[25] 어머니는 첫 면회 때 "그간 행적을 모두 알고 있으니 꼼짝 말고 군 복무나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고. 결국 나이트 클럽은 인수하지 못했고, 입대 후 가지고 있던 호프집은 헐값에 처분했다고 한다.#

1989년, 가족에게 쫓기듯 육군 학사 14기로 들어가 육군 포병 소위[]로 임관하고 난 이후에 육군 제7포병여단에서 포병장교로 복무했지만 중간에 간부식당 관리장교라는 전무후무한 직책을 만드는 업적을 달성했다.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 사나이 대한민국 해군 제2함대 사령부 편에서 요리대회 심사를 맡았을 때 밝힌 바에 따르면, 포병여단 본부대 부관으로 복무하던 시절 부대 간부식당의 음식이 하도 입에 안 맞아 내가 해도 이것보단 잘하겠다고 판단하고 그냥 간부식당 일을 했다고 한다.[] 장교가 자기 임무를 팽개치고 취사반이나 기웃거린다고 참모 장교한테 불려가서 조인트를 맞기도 했지만, 식당을 기습 시찰한 여단장님께서 밥맛을 보고는 백중위의 보직을 정식으로 인정하면서 간부식당 관리장교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로 참모 장교들의 대우가 180도로 바뀌었다고 한다. 전역 1년 전 간부식당의 운영을 맡아 된장찌개를 뚝배기에 담아주는 것부터 시작하여 나중에는 뷔페식으로 바꾸는 업적을 달성했다고 한다.[

명색이 장교인데다 음식 맛을 본 별들의 선택에 의해 간부식당 관리장교가 된 만큼 사회로 치면 수석 요리사인 셰프 역할을 하면서 휘하 병력들에게 보조적인 지시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백종원은 장교 출신자 중에서는, 대한민국 국군 역사상 최초, 전무후무, 그리고 유일무이한 보직인 '급양과장'으로 인정받아 보직했던 경력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상황에 따라 장교나 부사관이 보임될 수있는 보직인 인사나 군수와 달리 급양관리는 부사관, 그것도 끗발 안 되는 중하사가 군수과 밑에서 맡기 때문에 절대로 장교가 맡는 '과장' 보직이 될 수 없다. 근데 장교가 급양관리를 했으니 급양과장 보직인 셈. 보통 중위가 직을 맡으면 장교(ex.정작장교)이지만 유일무이하기에 바로 과장이 된 것.

초기에는 새로 온 장군의 입맛이 까다로웠고 자기가 먹기에도 너무 힘들어서 간부식당을 가지고 항상 논의를 하다가, 반 장난으로 자기가 직접 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다가 진짜로 성사되었다고 한다. 당시 취사병들이 사회에서 요리를 하다 온 사람들이고 군기는 군기대로 완전히 빠진 상태라, 간부가 취사 일에 관여하려고 하면 개무시를 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래서 보름 동안 가만히 지켜보겠다고 선언한 다음에 아무도 모르게 무, 칼, 도마를 간부식당으로 가지고 가 칼로 무 써는 연습을 매일 4~5시간씩 했다고 한다. 보름이 지난 후에 무생채로 점심 메뉴를 바꾼 다음, 채칼이 아닌 칼로 무를 썰라고 지시해 자기가 시범을 보이고는 말빨과 연기력으로 취사병을 휘어잡고 간부식당을 접수한다.

이후에도 메뉴가 정해지면 그 메뉴에 대해서 전날에 미리 엄청나게 공부하고 당일날 병사에게 레시피를 읊어보라고 한 뒤 거기에 참견하는 식으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방법을 써서 취사병들을 휘어잡았고, 이 과정에서 요리 실력이 엄청나게 늘었으며 식당을 운영하는 방식과 요령을 깨우쳤다고 한다. 예를 들어 배추를 살 때는 배추가 비를 맞으면 가격이 떨어진다는 것을 이용해서, 비 예보가 있는 날 트럭을 몰고 나가 비맞은 배추를 트럭 째로 싸게 산 다음 이걸 병사 목욕탕에 넣어놓고 절이는 식으로 부식비를 절감시키면서 운영했고, 그 미식가 장군이 음식 맛이 좋아진 것을 칭찬하면서 필요한건 없냐고 물어봤을 때 식당에서 뚝배기를 끓일 때 쓰는 업소용 레인지 2대를 사서 찌개를 뚝배기에 넣어 배식하는 방식으로 가장 인기있는 메뉴로 등극시켰다고 한다. 전역이 약 1년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시작한 일인데도 상당한 애정을 가지고 임한 듯 하며 오히려 이 일이 재밌어서 외박도 안 나갔고 그 장군에게 "1년만 더 하지 않겠냐"는 제안도 받았다고 한다.

전역 후 1993년에 원조 쌈밥집을 인수하며 요식업에 뛰어들었고 1994년에 더본코리아를 설립하기도 했지만, 당시 요식업(지금의 원조 쌈밥집)은 요리 좋아하는 취미로 돈 좀 버는 아르바이트 수준으로 가볍게 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원래 꿈은 세계를 누비는 무역업자로 목조 주택 사업[]이 실제로 신경 썼던 분야였다고.

그러나 여기에서 백종원 인생 최대의 굴곡이 시작되었는데 IMF로 주택 사업이 망하고 자신의 수중에는 17억원의 빚과 원조 쌈밥집 가게가 전부였었다고 한다.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없자 결국 인생을 마무리하기로 결심했는데 그 장소로 홍콩을 선택했다. 막상 출국해서는 일단 좀 먹고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눈에 들어오는 식당에 가서 식사를 했고 이때 여러 가지 사업 아이템들이 떠오르면서 결국 마음을 고쳐먹고 귀국하게 된다. 귀국 이후 17억원의 채권자들을 모두 모은 뒤 그 앞에서 '기회를 주신다면 식당을 해서 모두 갚겠다'라고 말했고 채권자들은 그의 마음이 통했는지 전원 기회를 주기로 했다고 한다. 이후 백종원은 사업에 전력으로 덤벼들어, 망해가고 있던 원조 쌈밥집 가게부터 시작해서 그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다. 1998년 한신포차를 시작으로 2002년 본가, 2004년 해물떡찜0410, 2005년 새마을식당[32], 2006년 빽다방, 홍콩반점0410 등 내놓는 아이템마다 대박을 치며 17억이나 하던 빚을 모조리 청산했고 지금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2012년부터 예산고등학교, 예화여자고등학교가 소속된 학교법인 예덕학원 이사장에 재직 중이다.

 

방송인으로서

첫 고정 출연진으로 방송을 시작한 것은 SBS '진짜 한국의 맛'(2010-2011)이다. 이후 한식대첩 2(2014)를 통해 정확하고 격려가 담긴 평가와 음식에 대한 박학다식함을 선보이며 그냥 저렴한 음식을 파는 장사꾼이라는 이미지였던 백종원이 자신의 평가를 크게 바꾸었다. 그야말로 ‘모르는 게 없는’ 만물박사의 모습을 보여주며 음식 전문가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그리고 그 다음에 출연한 MBC의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사업가 백종원' 내지는 '소유진 남편 백종원'이라는 대중의 인식을 '방송인 백종원', '백종원 아내 소유진'으로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될 정도로 백종원 신드롬의 서막을 알렸다. 채팅방 이름은 백주부의 고급진 레시피.

각종 요리 지식, 의외의 입담과 발군의 예능감, 한때 열혈 와우 유저로서 채팅창 문화에 익숙한 것, 중년 남성에게는 버거울 수 있는 온라인 소통 능력 등에서 압권의 능력을 드러내며 혼자서 요리하고 먹는다는 자칫 평범할 수 있는 방송을 하드캐리 했다. 게다가 충청도 사투리 특유의 느긋함으로 토속적인 이미지까지 더해졌다. 실질적으로 첫 예능 단독 출연인 마리텔 파일럿 당시 한창 닭볶음탕을 요리 중에 음소거가 됐는데도 당황하기는 커녕 오히려 풍부한 표정과 제스처로 마임을 구사하며 스케치북에 정성껏 레시피를 적는 모습에 "푸드 액츄얼리, 백종원의 스케치북"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백종원은 과반수를 넘는 60% 이상의 시청 점유율을 자랑하면서 다른 출연자들의 시청률을 전부 합쳐도 백종원 한 사람을 못 이기는 최종보스로 군림했으며, '세계의 3대 독재자 - 북한의 김정은, 마리텔의 백종원, 복면가왕의 김연우'라는 말이 기사 타이틀로 쓰일 정도였다. #

일반적으로 인기를 끈 음식 관련 인물은 셰프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백종원과 관련해서도 이에 대해 일류 셰프가 아니라는 식의 비평이 있었으나 사실상 그는 요리 연구가이자 사업가이다. 때문에 단순히 요리 스킬 자체에 대해서는 어지간한 주방장들 못지 않게 뛰어나기는 하더라도 엄밀히 말하면 한국에서 일류급이라 부르기에는 부족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모습에서 대중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었던 것. 다른 여러 유명 요리사/요리연구가들이 소개해주는 레시피는 일반 가정집에 구비하고 있다고 보긴 어려운 재료가 많다 보니, 대중에게는 '집에서 먹다 남은 캐비어', '찬장에 박혀 있던 푸아그라'라는 비아냥을 들었지만, 백종원은 과감하게 '집에 이거 있어유? 없으면 안 넣어두 돼유'라며 가정집에 없을 만한 재료들을 과감하게 쳐내고 굉장히 친숙한 재료로 누구나 한 번쯤 만들어 보고 싶고 만들 수 있는 요리를 쉽고 간단하게 알려주는 덕분에 실제로 시청자들이 집에서 직접 시도할 수 있어 이토록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부엌상황에 능통해 공감성 있는 그의 소통이 시청자들에게 직접 만드는 재미를 선사하고, 비슷비슷한 콘셉트의 웰빙 요리에 식상했던 사람들에게는 칼로리에 개의치 않고 고급스러운 요리를 맛있게 만들어주는 백종원의 솔직한 모습이 차별화된 매력을 선사하고 있다. #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설탕 두 국자, 치즈 세 스푼 식으로 부피 단위로 알려주는 게 그 대표적인 예다. 사실 이렇게 부피로 계량하는 방식은 무게로 계량하는 방식에 비하면 오차가 커서 맛을 일정하게 내기 힘들지만, 이렇게 부피로 계량하는 방법은 편의성 면에서 단연 압도적이며 요리에 대한 부담감 또한 낮아진다. 설탕을 5g 넣는 것보다 설탕 한 큰 술 넣는 것이 더 쉽다.

본인이 운영하는 음식점들 역시 저렴한 가격 안에서 최대한 배부르고 맛있는 한 끼가 될 수 있는 메뉴 위주[]이며,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요리들 역시 간단한 재료들을 거침없이 뿌리는 손쉬운 요리법으로 순식간에 싸악~ 만들 수 있는 음식들이다. 덕분에 마리텔 방송을 기점으로 자취생, 백수, 솔로, 주부, 6~70대 중장년, 심지어 북한 평양 상류층까지 성별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연령층에서 남녀노소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그가 방송에서 선보인 레시피들은 커뮤니티나 블로그, SNS 상에서 한 번씩은 만들어봤다는 글들도 많이 올라오고 있다.

게다가 그의 핵심은 요리 실력이 아니라, "요리에 대한 실용적 지식"이다. 한식은 물론이고 아시아에서 아메리카, 유럽에 이르기까지 방대하고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 단순히 "맛에 대한 정보"에 대해서는 전 세계를 기준으로 놓아도 일류급이라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는 인물이다. 이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음식 사업도 성공하였고 동시에 방송인으로서도 성공한 인물.[] 중국어를 메뉴판으로부터 배웠다고....[]

이러한 한식대첩, 마리텔의 인기를 타고 자기 이름을 타이틀로 한 tvN 요리 예능 방송 집밥 백선생도 인기리에 방영을 하였고 총 세 시즌까지 진행을 했다. 덕분에 백종원 레시피 마케팅이 흥하고 있다. 만능간장 방영 다음날엔 동네 정육점에선 다진 돈육이 품절되고, 심지어 명절보다도 판매량이 높았다고 한다. 마트를 가 보면 레시피를 적어놓고 판매대를 만들어 놓은 경우도 많이 보인다. 어떤 셰프가 만든 와갤 요리 때문에 이미지가 급하락했던 식재료인 꽁치 통조림 역시 백선생이 구이와 튀김 레시피를 선보이면서 밥도둑으로 부활, 전년 대비 14배라는 기록적인 판매량을 보이고 있다.# 가정뿐 아니라 회사 직원 식당에도 메뉴판에 백종원 비빔국수, 백종원 된장찌개라고 적어놓은 사진이 SNS 상에 자주 올라왔을 정도다.

방송에서 충청도 사투리 특유의 억양과 방언을 제대로 쓰는데, 그 특유의 꾸밈없고 어수룩한 말투가 시청자들로 하여금 친근감과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다. 최근 각종 예능 프로와 광고를 비롯하여 다양한 컨텐츠에서 심심치 않게 충청도 사투리가 등장하는 것도 백종원의 정상급 인기 덕분이다. 인기 아이돌과 유명 배우들도 방송과 SNS상에서 너도나도 백종원을 패러디하며 그의 프로그램을 즐겨보고 있음을 인증했다. 집밥 백선생 출연을 바라는 아이돌들도 꽤 많다.

한국소비자포럼이 선정한 2015년 올해의 브랜드 대상 특별상에 순하리 처음처럼, 허니버터칩, 카카오택시, 냉장고를 부탁해, 마이 리틀 텔레비전, 복면가왕과 함께 '백종원'이 선정되었다. 그해 한 해 동안 이슈를 끌었던 제품, 인물, 콘텐츠, 문화예술, 연예·스포츠 분야에서 특별상 후보 20개 중 소비자 투표를 거친 결과이며 인물은 백종원이 유일하다. 또한 마리텔 신드롬에는 백종원의 공헌도가 제일 높았음을 감안하면 2관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송경화 기업교육연구소장은 백종원, 대한민국 모두를 열광시킨 그만의 ‘소통법’에서 "막강한 스펙과 커리어를 가진 자만이 한다는 셰프들의 어렵고 비싼 요리를, 쉽고 간단한 요리비법으로 선보이며 어렵고 비싼 요리도 얼마든지 가정에서 맛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며 교감했다. 수없이 많은 질문과 응답을 하며 시청자와 TV에 출연하는 요리사가 ‘함께 만들어가는 요리가 무엇인지’, ‘함께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이 무엇인지’를 백종원은 확실히 보여주었다. 티비에 그가 나올 때마다, 하나의 요리가 완성될 때마다 우리가 그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백종원 혼자만의 힘으로 해낸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소통해서 함께 이루었다는 성취감과 행복’이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백종원의 푸드트럭과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방송하면서 이제서야 풀파워를 발휘한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물론 요리사로서도 지식과 경험, 요령이 풍부한 베테랑이지만 백종원 전문 분야는 어디까지나 요리 비즈니스이다. 푸드트럭은 그야말로 백종원 본인 최고의 장기를 그대로 써먹는 프로그램인 셈. 실제로 푸드트럭 방송 내내 장사와 관련된 요령, 문제점, 마인드 등을 순식간에 빠삭하게 짚어내고 솔루션까지 제공하는 전문가의 위엄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을 감탄시키고 있다. 골목식당에서는 푸드트럭과 마찬가지로 장사와 관련된 문제점을 짚어줌과 함께 필요할 경우 자신이 직접 손수 장사 시범을 보여주며 도전자들이 보고 장사 스킬을 배울 수 있게 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그리고 잘못된 것은 분명히 호되게 꾸짖는다는 것도 호평. 무조건 전수가 아닌 잘못된 것은 분명히 지적하고 호불호를 분명히 한다는 것이 여러 답답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장들의 막장 행각에 지루함을 느낀 시청자들에게 사이다를 제공하여 호평을 얻고 있다.[]

tvN에서 방영한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에서는 다른 음식 예능과는 다르게 푸드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의 접근을 시도하는데 백종원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중이다. 푸드 다큐멘터리에서는 보통 추가적인 내레이션으로 보충하는 현지에서의 음식에 대한 설명과 유래를 백종원 본인이 직접 말하는 건 물론 알아차리기 힘든 차이점이나 그 지역의 숨겨진맛집[]을 가는 등 요리연구가가 아닌 한 사람의 식도락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중이다.

백종원은 이렇게 방송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이유로 '메시지'를 꼽았다. 예를 들어 집밥 백선생은 사실 집밥 만들기가 얼마나 불편한지[], 그래서 외식이 얼마나 경제적인지를 보여주는 게 핵심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골목식당에 출연하는 이유로는 요식업계의 종사자들과 소비자 모두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해주기 위해서였는데, 종사자들에게는 충분한 사전 지식이 없으면 장사를 하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소비자들에게는 종사자들이 얼마나 정성을 들여 음식을 만들고 사업을 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물론 가맹점 1,700여개[]가 넘는 본인 프랜차이즈의 가맹점주들에게도 메시지를 전하면서 효율적인 관리 또한 유도하고 있다. # 맛남의 광장에선 전국적으로 의도치 않은 풍작이나 재난, 선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비가 되지 않는 식재료에 대해 널리 알리고 소비를 촉진시켜[] 농가 및 생산자의 부담을 줄이자는 목적으로 출연하고 있다.

이렇게 활발하게 방송 활동을 이어가며 특히 백종원과 인연이 깊고 백종원 효과를 제대로 본 SBS는 연말 자사 연예대상에 계속해서 가장 유력한 대상 후보로 거론하기도 했으나, 백종원 본인이 "나는 방송을 하지만 전문 예능인은 아니며, 연예대상은 전문 예능인이 받아야 한다."라 말하며 대상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번번히 표현하였다.[] 하지만 애들이 보고 있으니까 대상 후보는 거절 안 한다고 한다.

별명

마리텔에서 사용하는 '백주부'[]라는 닉네임과 설탕을 사랑한다는 의미에서 슈가보이라는 별명이 제일 유명하고, 백주부 채널의 채팅창이 워낙 활발하다 보니 백종원의 성씨인 '백'과 백종원의 아이덴티티인 '슈가'로 시작하는 온갖 별명들이 방송 한 번 할 때마다 양산되고 있다. 여기에 한식대첩, 집밥 백선생까지 가세하여 다양한 별명들이 기사화되어 제목으로까지 쓰이는 상황. 그가 사용하는 중식도마저 백스칼리버라는 이명을 얻었다.

슈가보이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설탕을 아낌없이 쓰는 백종원의 모습을 보며 시청자들이 붙여준 별명. 참고로 방송에서 나온 설탕 폭포는 방송의 재미를 위한 CG였다. 백종원도 방영분을 보고 너무 많은 설탕 양에 당황했고, 여파가 커지자 제작진도 레시피를 잘못 알려줄 수 있는 CG는 자제하게 된다. MLT-17 생방송 당시 이를 언급한 것이 기사화됐다(#). 본인의 말로는 "설탕을 많이 쓴다고 소문이 이상하게 났다"며 의식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어느 정도 콘셉트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던 듯. 가끔씩 시청자들과 함께 설탕관련 기믹을 즐기는 멘트를 하기도 한다.

2015년 6월 14일, 설탕을 많이 쓴다는 이유로 일부 네티즌에게 공격받았지만 해당 글은 시청자 게시판에서도 엄청난 반박에 부딪혔다. 엄연히 대용량 제작 기준으로 하는 식당용 레시피[]에 말도 안 되는 본인들만의 잣대를 들이밀었기 때문. 6월 20일 자 마리텔 방영분에서도 소래포구 어시장에 재료 구입 차 방문한 백종원을 보며 "와, 요리 가르쳐주는 슈가보이다!", "어머, 잘 생겼다!", "여기 오실 줄 알았으면 설탕 한 포대 사놓을걸!" 하면서 백종원의 설탕 이미지를 즐겁게 받아들이는 시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시장 여기저기서 빵빵 터지는 농담들이 노잼화 되어가던 채팅창을 능가했다. 다만, 백종원 자신도 설탕 사용에 대한 싫은 소리를 듣는 것을 알고 있는 듯, 그 날의 MLT-05에서 "나는 저 녀석의 레시피가 정말 싫어, 단맛이 싫거나 거부하시는 분들은 설탕의 양을 대폭 줄이세요"라고 직접 이야기하기도 했다. 방영분에서 PD가 ㅠㅠ 이모티콘을 사용해서 자막을 넣은 것을 보아 제작진과 백종원도 여러 모로 스트레스를 받은 모양이다.

이후에도 집밥 백선생에서도 출연진들이 설탕 농담을 할때면 정색을 하며 손사래를 치고, 이 프로에서 나왔던 만능 간장이 짰다는 의견이 있었다는 얘기를 하면서 최근 설탕 이미지나 자극적인 맛을 자주 다룬다는 것을 부각시키는 기사들을 상당히 신경 쓰는 모습이다. 이후에는 출연진도 설탕이나 슈가보이 같은 농담은 잘 안하는 편이다. 마리텔에서도 백종원이 등장할 때 'Sugar'를 테마송으로 틀어주며 즐거워했던 모습이 사라졌다. 예능 방송의 재미를 살려주던 면모를 다큐의 잣대로 잃어버리는 것은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이다.

백종원식 레시피에서 설탕을 많이 사용하는 것은 크게 2가지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 맥락은 설탕을 쓰지 않는 것에 비해 설탕을 쓸 경우 요리에 어떤 효과가 있는가로, 백종원 레시피의 핵심 콘셉트 중 하나인 요리 초보가 실패에 대한 부담감을 덜고 요리에 도전하도록 권장한다는 것과 연결된다. 설탕을 안 써서 입에 안 맞는 요리를 만들고 이런 실패 경험이 쌓여 아예 요리에 관심을 끊는 것보다는, 조금 단 맛으로 시작하더라도 성취 경험을 늘려줄 수 있는 레시피로 시작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것.

여전히 설탕 사용에 대해서 어그로를 끄는 사람들이 있다보니, 설탕이 꼭 필요한 요리를 만들 때에는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다 싶을 정도로 레시피에 들어간 설탕의 양이 많은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특히나 대용량 레시피 시리즈는 100인분 전후의 양을 한번에 요리하기 때문에, 설탕을 쏟아붓는 장면이 무조건 나올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런 점을 더더욱 강조한다. 이외에도 단맛이 필요한 요리의 경우에는 이 요리에 단맛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편. MSG에 대해서도 이런 언급을 종종 하는 편이다. 특히나 MSG는 설탕보다도 더 강한 조미료인만큼 정말 정량이 얼마 되지 않고 많이 넣지도 않지만, 워낙 오랫동안 쌓여온 잘못된 레시피 전파와 MSG에 대한 여전한 오해 때문에 억울하게 욕을 먹는 부분이 있다.

방송에서 백종원의 요리 과정이 노출되는 경우 백설탕이나 흑설탕이 아닌 황설탕을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소금과의 구분을 확실하게 하기 위한 이유가 크다. 제대로 만든 흑설탕(비정제당)은 쉽게 구할 수도 없을 뿐더러 내부의 당밀 성분으로부터 오는 특유의 향과 맛이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요리에서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한 경우가 있으므로 제외하고, 백설탕과 황설탕의 경우 (캐러멜화에서 생겨나는 약간의 풍미를 제외한다면) 일반적인 요리에 사용하는 정도로는 그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아 호환 가능하므로, 소금과 구분할 수 있게 황설탕을 쓴다는 것.

슈가보이라는 별명 덕분에 설탕 광고가 들어왔지만 대중의 정서를 고려하여 거절했다고 한다. 이후 MLT-17에서 제작진은 CG로 재미를 살리되, 레시피가 헷갈리게 보이진 않도록 했다

가족

그의 할아버지는 예산경찰서장을 역임하였고 예덕학원재단을 만든 백창현[]이며 그의 아버지는 전 충남교육감이었던 백승탁이다.[] 그래서 고향인 예산군에 있는 예산고등학교 이사장을 겸직하고 있다. '한밤의 TV연예'의 코너에서 백종원의 인기 요인을 분석하다가 취재진이 예산고를 찾아갔는데, 교감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사장이 사립학교 급식에 관여할 수 없다"고 한다.[] 대신 개인 기부의 형식으로 1달에 2번씩(원래는 1번이었으나 최근 더 늘어남.) '더본 데이' 행사를 시행, 더본코리아 주방장들이 학교로 와서 직접 요리를 제공하고 있다. 예산고등학교 급식게시판을 보면 된다.


배우자 소유진과 나이 차이가 15살 나는 것으로 화제가 되었다. 두 사람을 소개한 사람은 백종원과 동갑내기인 배우 심혜진. 심혜진은 왠지 둘이 닮은 면이 있어서 어울리겠다 싶어서 중매를 해줬다. 부부는 기부 활동에 열심인데 소유진은 ‘한사랑장애영아원’을 방문해 광고 모델료를 기부하며 아이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매트리스를 전달했고, 백종원은 한식대첩2 출연료 전액을 부산관광고등학교 한식조리학과 학생 18명에게 장학금으로 전달했다. 최근 생활용품 CF출연을 통해 받은 출연료를 저소득층 환아를 위해 서울성모병원에 기부했는데, 해당 병원은 첫째[]의 출산으로 인연을 맺게 되었다고 한다. 한식대첩3의 출연료 또한 전액을 위의 학교에 장학금으로 기부했는데 이를 보도한 기사의 베댓이 실로 압권. 나 착하쥬? 기부를 싸악, 기부 안 해봤쥬(새침) 백종원은 성격상 이벤트같은 걸 별로 안좋아하는 편인데, 가끔 하는 이벤트가 방송에 나오는 요리 만들어주기라고 한다. 소유진이 방송을 보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발견하고 먹고싶다고 하면 유심히 지켜보다가 똑같이 만들어준다는 듯.


슬하에 자녀가 3명[]으로, 그 중 둘째와 셋째[]는 50대에 얻었다. 아이들은 아빠의 요리방송에 별 관심이 없는 나이다보니 엄마 소유진이 백종원의 방송을 모니터링하면 "안녕하십니까 백종원 싫어!!" 하면서 안 좋아한다고.

728x90
반응형

'기타 정보 유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폴란드에 대해알아보자  (0) 2022.07.30
강훈식에 대해알아보자  (0) 2022.07.29
난소 낭종에 대해알아보자  (0) 2022.07.27
피자헛에 대해알아보자  (0) 2022.07.26
사쿠라지마에 대해알아보자  (0) 2022.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