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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환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2. 12. 14.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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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이자 現 축구 해설위원, 방송인. 선수 시절 포지션은 공격수, 미드필더.

현역 시절 뛰어난 볼컨트롤과 드리블, 중앙에서 좌우로 열어주는 정확한 패스, 반 박자 빠르고 정교한 슈팅으로 데뷔 때부터 뛰어난 활약을 선보여 판타지스타라고 불리는 선수였다.[] 이러한 활약과 더불어 도저히 운동선수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화려하고 완벽한 외모까지 갖춰 수많은 여성 팬을 몰고 다녔다.[]

FIFA 월드컵에서 3골을 넣어 한때 아시아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32강 본선 1차전에서 박지성이 1골을 추가하면서 이 기록을 공동 보유하고 있었고,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32강 본선 2차전과 3차전에서 손흥민이 2골을 추가하면서 이 기록을 공동 보유하고 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 축구계에서 평생 까임방지권을 획득했다고 여겨지는 몇 안 되는 선수가 되었다. 더불어 오세아니아를 제외한 전 대륙을 상대로 A매치 득점에 성공했다

수려한 귀공자처럼 생긴 외모와는 다르게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가 육아를 외할머니에게 맡겨버려 외할머니와 외롭게 성장하는 등, 그가 직접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나와서 이야기한 유년 시절은 그야말로 눈물겨웠다. #

사실 처음부터 가난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외갓집이 원래는 잘 살았던 편이기는 했고 한창 부유했을 적에는 큰 어려움 없이 자랐지만, 안정환이 6살 때 외갓집이 사업 실패로 어려워진데다가 외할아버지가 그 충격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외할아버지의 유산으로 커피숍을 하다가 망한 뒤 다른 곳을 떠돌아다녔기 때문에[] 외할머니와 단 둘이 판자촌에서 빈곤하게 살아야했다.

흑석동 판자촌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된 안정환은 배가 고파서[] 무랑 배추서리를 하거나, 굿판을 돌아다니면서 음식을 얻어먹고, 옷이 없어서 남의 집 빨래를 훔치는 것은 기본에다가, 산에 흩뿌려진 삐라를 주워서 미군부대에 신고하여 학용품을 마련하고, 방생 기간에 방생되는 물고기를 잡아서 다시 되팔아 돈을 마련하고, 차비가 부족해 버스를 타고 가야될 학교를 걸어서 다니고 차비가 역시 아까워서 학교 체육창고에서 잠을 해결하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하루는 안정환이 할머니에게 100원만 달라고 했다는데, 왜 그러냐고 할머니가 물었더니 나가서 아버지를 사오겠다고 얘기했으며 실제로 차두리의 아버지가 차붐이라는 것을 매우 부러워했다고 한다.[] 안정환의 힘든 유년 시절을 정리한 기사

안정환의 할머니는 축구를 하는 것을 처음에는 반대했다고 하는데, 왜냐하면 가뜩이나 잘 못먹는 애라서, 운동까지 하면 배가 더 빨리 꺼질까봐 걱정해서였다고 한다. 그래도 축구부가 되면 간식으로 지급하는 빵과 우유를 먹을 수 있어서, 단순히 또래 애들보다 달리기가 조금 빨랐을 뿐인 어린 안정환은 그렇게 축구부로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어렵게, 굶주린 배를 잡고 시작했던 초등학교 축구부는 후원하던 선배(선배 아버지의 후원)가 졸업을 하면서 지원이 끊겨 버렸고, 축구부는 폐지 수순을 밟게 된다. 다행히 그해 마지막 경기에 훌륭한 활약을 보인 안정환을 다른 학교에서 유일하게 스카웃했다고 한다. 나머지 애들은 축구를 관뒀다고 한다. 그렇게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축구를 하지만 선배들의 상습적인 구타와 매일같이 피곤한 몸에 여전히 배곯는 고달픈 생활들이 이어진다.

한 번은 축구부원 숫자대로 지급받은 빵과 우유가 하나 비어버리자 선배 한 명이 안정환을 무려 3시간 동안이나 구타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늦게 들어온 다른 선배가 "그거 내가 먹고 나갔는데?" 한 마디에 화가 나서 그 길로 합숙소를 도망쳤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안정환은 밥 먹듯이 축구부를 이탈하고 복귀하기를 반복하게 된다. 본인이 말하길 "이 시기에 축구가 즐거워서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때 싸움도 많이 하고 다니던 시절이라 실제 조직폭력배에서도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쉬는 날엔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용직 아르바이트, 공사판을 전전했었는데 당시 수도권 전철 5호선 목동역 건설이 이루어질 때 안정환이 인부로 투입되어 벽돌을 쌓았다고 한다. #[]

심지어 프로에 입단하고 국가대표가 되어서도 할머니에게 아파트를 장만해주고 어머니의 도박 빚을 갚았기 때문에 금방 돈을 모으지도 못했으며, 이것 때문에 계속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 이영표의 보약을 얻어먹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아주대학교에 진학한 안정환은 졸업해서 거액에 프로 축구단에 입단하는 대학교 선배들을 보고 2학년 때 축구로 성공하겠다는 마음을 잡았다고 한다. 1997년 이탈리아 유니버시아드 직후 돌아오자마자 후반에 투입되어 혼자 2골 1어시스트하면서 1대2로 지던 팀을 5:2로 역전승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렇게 아주대학교의 재단이었던 대우그룹이 운영하는 부산 대우 로얄즈로 자연스럽게 입단하게 된다.

안정환 비주얼

선수 시절 안정환을 대표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바로 그의 어마어마하게 수려한 외모였다. 그래서 리즈시절 대표 별명이 테리우스였다. 덕분에 여성팬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주변 사람들 역시 그의 아름다운 외모에 굉장히 놀랐다는 말을 할 때가 많았다. 이천수는 안정환을 상당히 어려워했다고 회고했는데, 처음 보고 축구 선수를 할 상이 아니라 충격을 받았다고 증언한 바 있다. 자기는 딱 운동만 하고 산 것처럼 생겼는데, 안정환은 CF까지 들어올 만큼 너무 잘생겨서 부럽기도 하고 열등감까지 느껴졌다고. 이영표 역시 안정환의 외모를 처음 봤을 때 그 잘생긴 외모에 충격을 받았다고 하며[] 히딩크 감독도 안정환을 회상할 때 외모가 화려했고 아름다웠다고 언급했다. 박지성도 안정환의 외모가 부럽다고 했으며 반면 안정환은 박지성의 인생이 부럽다고 했다. 안정환 본인이 말한 바로는 장발이 스타성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구단이 머리카락을 자르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일본 TBS에서 방송한 '그때 굉장했던 사람, 일류 운동선수가 놀랐던 그사람 대추적' 편에서 일본 국가대표 축구선수였던 오쿠보 요시토가 가장 인상적으로 봤던 사람으로 뽑혔었는데 그 이유가 잘생겨서였다.[] 이렇듯 한국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미남임을 부정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로 그의 외모는 독보적이다.

한국에 뛰어난 실력과 출중한 외모까지 겸비한 미남 운동선수들이 많이 있었지만 안정환을 능가하는 미남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현재 예능인의 모습으로만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그냥 미중년 상의 아저씨 정도로만 여겨질 수도 있으나 현역 선수 시절에는 연예인들마저 씹어 먹어버리는 미모를 자랑했다. 리즈시절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남 미녀 배우들인 현빈, 김재원, 한고은 등 수많은 인기 스타들과 CF를 연달아 찍었다. 심지어는 연예인들과 비교하여 밀리기는 커녕, 오히려 연예인 쪽이 다소 밀린다는 인상을 줄 정도였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2000년대 초반 셋이 일본 방송에 나온 적이 있는데, 적어도 그 방송에서만큼은 안정환이 둘을 압도하는 외모 클래스를 보여줬다. 지금도 인터넷상에서 돌아다니는 유명한 사진이다.4분 30초부터 그렇게 의류, 화장품, 향수, 스포츠 용품 등 안 찍어본 CF가 없었다. 젊은 시절 김재원과 함께 찍은 남성용 화장품 광고는 이미 전설이다. 다른 일화로 전성기 시절에 한국 최고 미남으로 손꼽히는 장동건, 원빈과 함께 일본의 예능에 출연한 적도 있었는데 과장 하나 없이 외모로 그들에게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이런 잘생긴 외모는 자녀들한테도 영향을 주었는지 아들 리환 역시 잘생겼다.

한국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통하는 얼굴이었는지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각종 해외 투표에서 외모로 최상위권을 차지한 설문조사가 아직도 남아있다.#[] 하지만, 칼같은 미남외모와는 다르게 성격은 정반대여서 옛날 말투, 아재개그를 자주 시전했다고 하며 굉장히 소탈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팀 후배선수가 외모와 실력에 압도되어 눈치만 보다가 아침식사 때 안정환이 숭늉을 마시면서 "숭늉이 들 우러났다 야."하는 것을 보고 "저 선배도 보통 사람같은 면모가 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운동선수가 그렇듯 은퇴 이후에는 얼굴이나 몸에 살이 꽤나 붙은 모습이 되었다. 그래도 미중년이라 불릴만 하다. 쌍꺼풀선도 생겼는데 본인 말로는 살이 쪄서 생긴 거라고 한다. 살찌면 쌍꺼풀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다만 나이들어 생기는 쌍꺼풀은 대개 눈 지방층이 얇아져서 생긴다. 본인의 말로는 "운동선수 때 너무 먹는 걸로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은퇴한 지금은 원없이 먹으면서 살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살이 찌고 수염을 약간 기르게 되면 뭔가 이탈리아, 혹은 중남미 스타일의 얼굴이 된다는 게 웃음 포인트. 그래서 생긴 별명이 그 유명한 슈퍼마리오다. 저 별명은 아빠! 어디가? 시즌2에서 부인 이혜원이 마리오가 그려진 가방을 보고 아들에게 "이거 누구야? 아빠야. 뚱뚱해져서 이렇게 됐어. 옛날에는 테리우스였는데 (지금은) 개뿔" 이라고 말한 것에서 비롯됐다.# 그래도 가끔 가다 다이어트를 해서 옛날의 날카로운 얼굴을 되찾을 때가 가끔 있는데, 위대한 배태랑 등의 프로그램이나 시상식 등의 특정 기간에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오곤 한다. 사실 슈퍼마리오 소리 들을 때도 리즈시절과 너무 달라져서 그렇지 미중년 느낌이 났었다.

안정환 플레이 스타일

안정환은 대한민국에서는 유일하다시피한, 판타지스타라 불리는 선수였다. 주발에 국한되지 않고 양발을 완벽하게 다루는 선수이며,[] 전형적인 9.5번. 트레콰르티스타 스타일이라고도 한다.

주된 포지션을 세컨드 스트라이커라고 하지만, 엄연히 말하자면 1선에서부터 1.5선까지의 플레이에 능한 선수가 아니라, 2선에서부터 1.5선까지의 플레이에 능한 선수였다. 뛰어난 볼 컨트롤과 퍼스트 터치[ 및 개인기, 수준급의 민첩성과 주력[]을 바탕으로 한 드리블 능력, 수비수를 앞에 두고도 유효 슈팅을 만들어내는 슈팅 기술[에 기반한 뛰어난 온 더 볼과 박지성 급은 아니지만 준수한 오프 더 볼 무브먼트, 넓은 시야와 준수한 패싱력[ 등 한국에서는 다시 나오기 어려운 유형의 선수였다.[] 이탈리아 시절에는 미드필더로 뛰면서 골을 넣지 않고도 MOM이 되거나 이달의 플레이메이커에 뽑히는 등 공격형 미드필더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단, 전형적인 플레이메이커가 아닌 세컨드 스트라이커나 마찬가지인 프리롤 공격형 미드필더 스타일이기 때문에, 2:1 패스나 중앙에서 측면으로 열어주는 윙패스, 전방에서 본인의 볼 소유로 수비를 끌어들이며 동료에게 공간을 만들며 뿌려주는 킬패스는 날카로웠지만 지공상황에서 후방에서부터 풀어나가는 빌드업은 그렇게까지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것은 3-4-1-2나 4-2-3-1의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뛰었을 때다.

공격형 미드필더로서의 능력이 탁월했으나, 박스 내에서의 공간 창출 능력과 뛰어난 슈팅 기술 때문에 종종 포워드로 기용되었다. 부족한 피지컬과 저조한 수비 경합능력[] 때문에 2톱 기준으로 세컨드를 뛰는 경우가 대다수였는데, 2002년 이후로는 원톱에 적합한 선수라는 오해를 많이 사게 된다. 이는 2002년의 인상이 강하기 때문이다. 또, 약팀하고 싸울 때는 안정환보다는 최용수가 더 적합하지만,[] 강팀하고의 대결에서는 개인능력으로 돌파도 가능하고 패스도 더 원활하게 뿌릴 수 있는 안정환이 훨씬 더 적합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02년 임팩트가 너무나 강해 끊임없이 각종 스포츠 프로그램은 물론 심지어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안정환의 골장면이 재방송된 나머지, 안정환에 대한 팬들의 기대도는 굉장했다. 또 안정환도 국대 팬들의 기대에 부응한 편이다.[]

가장 큰 약점은 피지컬이다. 비슷한 세대나 한세대 이전의 테크니션인 윤정환, 최문식 같이 세계 수준에서 피지컬 때문에 아예 경기에 뛰지 못할 정도로 피지컬이 약하지는 않았지만, 피지컬적으로 강한 상대와 매치업이 되면 자주 지워지곤 했다. 이란과 같은 국가와의 대진에서 이 특징이 크게 나타났다.[] 피지컬적인 약점은 건장함뿐만이 아니라, 제공권[]이나 활동량의 부족 또한 뼈아프게 다가온다. 또, 공을 오래 끈다는 것, 이와 더불어 패스 능력도 있고 결정력이 최상급은 아닌데도 혼자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한편 1.5선에서 2선으로 치고 들어가는 플레이를 주로 한 것은, 피지컬 때문에 몸싸움이 안 됐기 때문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슈팅 기술과 온 더 볼 기술 때문에 경기당 0.5의 공격 포인트를 기록할 수 있었다.[]

한국 축구 역대 최고의 테크니션이라는 평가에 어울리게 다양한 기술에 능했고,[16이를 실전에서 적용해서 쓸 정도의 재치도 있었다. 마르세유 턴이나 라보나 킥을 리그 경기에서 유효하게 사용한 적도 있고, 양발잡이 답게 라 크로케타도 익숙하게 사용하는 등 대부분의 축구 기술을 언제든지 실전에 써먹을 수 있었지만, 가장 뛰어난 시그니쳐 기술은 힐 찹과 크루이프 턴을 결합하여 자기 식으로 해석한 안느 턴[]이다. 그 외 킥 페인팅, 바운드 슈팅도 굉장히 자주 사용하고 능숙했다.

2000년 코리아컵 멕시코 전에서는 개구리 점프로 수비수를 농락하고, 2002년 월드컵에서는 폴란드, 미국, 터키의 수비진을 헤집고 이탈리아와 포르투갈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플레이도 자주 보여주었으며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도 퍼스트 터치와 바디 페이크만으로 스페인 수비 셋을 한번에 뚫기도 했다. 이영표는 안정환을 축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작을 선보이며 그러한 선수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평했고, 당시 세계 최고 리그인 세리에 A의 중위권 팀인 페루자에서도 사무국장이 구단 역사상 가장 기술이 뛰어난 선수라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안정환이 뛰었던 모든 유럽 리그에서 안정환의 기술은 항상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탈리아에 가서 기술이 더 좋아졌다는 소리도 있었으나, 정작 본인은 토탈 사커라는 새로운 개념에 맞추는 과정에서 한국 시절만큼의 기술이 사라져, 언젠가는 잃어버린 기술을 되찾고 싶다는 인터뷰를 이탈리아의 한국 취재진에게 말하기도 했다.

월드컵에서의 좋은 활약[]을 바탕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큰 경기에 강한 선수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안정환의 경우 2002년 미국전에서의 동점골, 이탈리아전에서의 골든골, 2006 월드컵 토고전에서의 결승골을 성공했으므로 이 경기와 대회에서 좋은 모습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팬들은 일본 시절에는 아챔에서 10경기 10골을 넣었으니 큰 경기에 강하다고 하지만 주로 타이, 베트남, 인도네시아 팀들을 혼내주다 한국이나 중국 팀에 밀려서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했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

큰 경기에 정말로 강한지 약한지는 일단 제쳐두고서라도, 안정환의 정말 큰 장점은 강한 정신력과 투쟁심이다. 기술적인 선수는 이따금 기술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경우가 있으나 안정환은 기술을 이용해 상대에게 적극적이고 강력하게 도전하곤 했다. 이런 특색을 바탕으로, 안정환은 조커로 나왔을 때도 강하게 도전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하곤 했다. 본인은 더티 플레이를 잘 하지 않지만, 상대방이 더티 플레이를 해도 흔들리지 않는데, 중국 시절에는 상대방이 거친 태클을 하자 다투다 벤치의 유리벽을 부술 정도로 터프하고, 터키전에서는 남들 모두가 4위는 했다고 좋아할 때 혼자서 라커에서 씩씩거리며 화를 낼 정도로 승부욕도 대단하다.

크랙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혼자서 모든 걸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피지컬과 수비력이 떨어지는 편인데다가 간혹 혼자 해결하려는 경향도 있기 때문에 이를 메워줄 만한 전술과 동료들과 함께할 때 좋은 활약을 보여준다. 프랑스와 독일에서 저조한 활약을 보인 것은 몸 상태 문제도 있었지만, 팀이 강등권일 정도로 전력이 열악했기 때문이다. 대우 로얄즈 시절에는 앞뒤옆에 샤샤, 뚜레, 마니치라는 역대급 외인들이 함께 했고, 페루자 시절에는 중위권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팀의 전력이 평균 수준은 됐으며, 요코하마나 다롄 시절에는 팀이 우승권에 있을 정도로 전력이 좋았기 때문에 이러한 팀들에 속할 때는 모두 훌륭한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가장 유사한 플레이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선수로는 한세대 앞선 로베르토 바조와 동시대의 알레산드로 델피에로, 그리고 이후 세대에서는 파울로 디발라. 모두 공격형 미드필더로도 훌륭하지만 전형적인 플레이메이커는 아니며, 골도 잘 넣을 수 있는 선수들이다.

안정환 선수 평가

한국축구 역사상 최고의 테크니션이라 일컬어지며 그는 잘생긴 외모와 아름다운 플레이 스타일, 천재성, 성실성, 뛰어난 멘탈 등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2002년 월드컵 이후의 불운으로 커리어가 바닥을 쳤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 프랑스와 독일, 수원에 이르는 2년 동안의 저조한 활약[] 때문으로, 사실 부산 대우 로얄즈에서는 리그 MVP에 등극하고, 페루자 시절에는 2년차 반년 임대 갱신 때문에 경기를 제대로 뛰지 못했으나 1년차 후반에는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고, 2년차에도 땜빵으로밖에 못 뛰었지만 출전할 때마다 기대가 되는 활약을 했으며, 2002년 월드컵에는 월드컵 10대 스타에 꼽힐 정도의 플레이를 보이고, 요코하마에서는 우승을 했으며, 2006년 월드컵에서는 원정 첫 승의 결승골을 넣고, 부산 아이파크는 저조한 팀을 견인했고, 다롄에서도 우승을 하는 등 커리어가 아주 나쁘지는 않은 편이다.

다만 페루자 방출 사건 이후로 전성기를 일본에서 날리는 바람에 유럽무대에서 큰 족적을 남기지 못했기에, 많은 축구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페루자와 부산의 소유권 소송사건의 영향으로 6개월, 일본계약종료시점에서 유럽진출을 모색하다 또 6개월 총 1년의 무적생활등 사실상 유럽진출의 시기를 놓쳐버린 것등은 그를 비운의 선수라고 말 할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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