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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영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3. 1. 4.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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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판사 출신 정치인

국민의힘 제1·4대 원내대표이자 이명박 정부의 초대 특임장관[12]을 역임했으며, 17-21대 5선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다. 현 지역구는 대구 수성구 갑.

주호영 정치 입문 전

1960년 1월 8일, 강원도 울진군 울진면(現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읍남리 토일마을에서 울진고등학교 교사를 지낸 아버지 주구원(朱九源)[]과 어머니 영양 남씨 남순자(南順子)[] 사이의 2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중학교 때 대구로 이사하여 대구 경상중학교, 능인고등학교(34회), 영남대학교 법학과(78학번)를 졸업하였다. 대학 졸업과 같은 해인 1982년 24세의 나이에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군법무관으로 임관, 복무했으며, 전역 이후 2003년까지 판사로 일했다. 2003년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를 그만두고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판사 재직 시절에는 주위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당시 민주자유당 전국구 국회의원이던 신진수에게 사립학교법 위반 및 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를 적용해 징역 8개월을 선고하여 눈길을 끌기도 했다. 신진수는 이때 자신이 설립한 신일전문대학의 교비 10억원을 횡령하여 개인 사채를 변제하는 데에 전용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1999년 경북 영덕지원장 시절에는 교통사고로 두개골 골절의 중상을 입기도 했다

주호영 정치 활동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수성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5] 김형오 원내대표 재임기인 2006년부터 2007년까지 한나라당 원내부대표를 역임하였다. 2006년 노무현 정부가 사법개혁의 핵심사업으로 추진한 로스쿨 도입에 대해, 로스쿨을 통해 대학교육을 정상화한다는 노무현 정부의 주장은 국민 기만이며 국회에서 제대로 토론한 적도 없이 밀어붙이고 있다며 반대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치러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친이계로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였다. 그 뒤로도 쭉 비박계에 속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당시 같은 지역구에 유시민이 기존 지역구인 고양시 덕양구 갑을 포기하고 대구 수성으로 내려와 무소속으로 출마했는데, 주호영이 친이, 비박계였기 때문에 당시 대통합민주당을 탈당하고 고향에서 출마한 유시민이 돌풍을 일으킬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압도적인 표차로 유시민을 꺾고 당선되었다.

2008년부터 2009년까지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를 역임하였다.[] 원내 수석부대표를 끝낸 2009년부터 2010년까지 특임장관을 역임하였다. 2010년부터 2011년까지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을 역임하였다. 한편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는 수성구청장 후보로 현직 수성구 부구청장인 이진훈을 지원하여서, 현직 김형렬 구청장을 지원한 수성구 갑의 이한구와 대립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14년까지 새누리당 대구시당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이완구 원내대표와 호흡을 맞춰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을 역임하였다.[] 2014년 정책위의장을 역임하면서 '세월호 특별법', '정부조직법', '유병언법' 3가지 법안이 묶인 '세월호 3법' 입법을 위한 3대 3 여야 회동에 참여해 합의를 이끌어낸 바 있다. 2015년 초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특별보좌관에 발탁되었으나, 얼마 안 가 사임하였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친박계의 공천학살로 인해 공천에서 배제되자, 이에 반발해 새누리당을 탈당, 무소속으로 자신의 지역구인 수성구 을에 출마한 후 새누리당 이인선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총선 이후 새누리당에 복당했고, 곧바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였다. 8월 5일, 정병국 후보와 단일화에 합의하여 비박계 단일 후보로 나섰다. 그러나 결국 8월 9일 전당대회에서 이정현에 압도적인 표차로 밀려 낙선하였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복귀

9월 18일 열린 원내대표 경선에서 이용호 의원을 61표 대 42표로 꺾고 국민의힘의 제4대 원내대표로 선출되었다. 무효표는 3표였다.# 원내 교섭단체급 정당에서 원내대표만 3선(...) 다만 두 후보의 체급 차이에 비해 표차가 적다보니 친윤 견제·추대론에 반발표 등의 분석이 나오고 있다.

주 원내대표는 당선 후 정견발표에서 “하나된 당을 만들고 거대야당의 무리한 공세를 막아내며,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 전 대표와의 관계 때문에 당이 지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며 “하나가 되면 제일 좋겠는데 상황이 많이 어려운 것 같다. 절차에 따라 정리되는 걸 보면서 다시 당원과 의원들과 상의해서 문제를 풀어볼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에 축하 서한을 보냈다

주호영 성향

"우리는 (자유란 개념을) 한쪽 면만 봐 왔다. 국민의 자유를 신장하자는 측면에서 보수가 진보보다 노력했나? (이전까지) 우리 보수의 논리는 ‘(시장에서) 경쟁 구도를 통해 (생산을 늘려) 풍족하게 될 때, 실질적 자유가 보장된다’는 것이었다. 두 가지 면(기본 인권의 자유, 빈곤으로부터의 자유)에서 다 성찰해야 한다고 본다. 의사 표시의 자유, 국민 기본권의 확대가 원래 보수의 가치인데 이를 소홀히 했다. 경제적 자유는 방임에 가까웠다. 시장 실패 같은 상황을 보완해야 한다. 정치적 자유는 넓히고, 경제적 자유는 실패한 사람을 돕기 위해 개입하고 조정하는 것이 새로운 보수의 모습이다."

국민의힘 내의 대표적 자유보수주의자 중에 한 명으로 꼽힌다. 장점이라면 비박계, 친이계로 분류되는 인물이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된 사안에서는 보다 자유롭다는 점. 미래통합당이 출범하며 이른바 '탄핵의 강'을 건너기로 했으나 여전히 보수 인사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러나 주호영은 친박계에 의해 공천학살을 당한 적이 있을 정도로 오히려 박근혜와 대립하는 구도를 많이 보여왔기에 이에 대한 부담은 아예 없는 편이다.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여하거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세월호 유가족과 면담을 하는 것, 호남권 공략 및 지역감정 타파 등 본인이 먼저 중도로의 확장을 꾀하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실제로 친유계 소속 유승민이나 상도동계, 남원정계 소장파, 친이계, 친유계에 소속된 정병국과 비슷한 면모를 보인다. 심지어 경쟁자였던 권영세, 조해진과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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