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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혁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3. 1. 16.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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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이자, 現 MBC/MBC SPORTS+ 야구 해설위원, 양준혁야구재단 이사장 및 멘토리 야구단 감독이기도 하며 예능에 출연하는 방송인이기도 하다. 2011년부터는 사업도 병행하여 식품 판매, 레스토랑[], 스크린야구장[] 사업 등도 하고있으며 트레져헌터 소속 유튜버로도 활동하는 등 은퇴 후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고있다.

은퇴 시점에서 3000타석 이상 타자들 중 KBO 통산 wRC+ 1위, 야수 WAR(스탯티즈, KBreport) 1위 자리를 모두 가지고 있으며.[] wRC+ 200을 2번 넘겨본 유일무이한 타자이다.[] 대표 별명으로는 타격의 신이라서 붙은 '양신'. 그리고 머리가 크다 하여 붙은 양대갈[]이 있다. 슬럼프를 겪었던 2002년과 2005년, 말년 노쇠화로 기량이 떨어지던 2008년과 2010년을 제외하고는 전부 3할대의 타율을 기록, 배트를 거꾸로 들고 쳐도 3할이라는 비유까지 만들어졌다.[]

일명 "만세 타법"이라 불리우는 특유의 타격폼과 타구나 상황에 관계없이 항상 끝까지 1루를 향해 전력질주하던 모습은 양준혁의 트레이드 마크로 기억되고 있다.[] 응원가는 따로 없이 관중들이 한 목소리로 "위!풍!당!당! 양!준!혁!"을 외친다.

2011년 7월 23일 올스타전에서 은퇴한 선수들을 대상으로 선정한 프로야구 30주년 레전드 베스트 10에 선정되었다.

여담으로 양일환 前 KIA 타이거즈 2군 투수코치가 사촌 형이며[], 김태한 전 삼성 수석코치와는 대구상고 동기다.

양준혁 타격 및 수비

KBO 역대 최고의 지명타자이다. 풀타임 3할 이상을 보장하는 훌륭한 컨택능력, 30홈런 이상을 기대할 수 있는 수준급 장타력을 겸비했으며 특히 선구안이 대단히 좋아서 출루율이 매우 높다. 통산 타출갭이 0.1을 넘고, BB/K(볼삼비)의 수치가 통산 1.4이며 단 한 시즌을 빼고 모조리 1.0을 넘었다. 보통 타자들의 평균적인 BB/K는 0.6에서 0.7 정도로 형성되며, 이대호가 0.73, 김태균이 0.82를 기록했다. 사족으로 1.0 못 넘은 그 한 시즌도 0.7. 통산 BB/K는 4위에 BB%(타석당 볼넷 비율)는 2위인데, BB/K와 BB%가 모두 5위권 안에 들어가는 선수는 양준혁과 장효조밖에 없고 10위권으로 범위를 늘려도 장성호만이 추가로 포함된다. 즉 다른 선수들이 적극적인 타격으로 삼진 갯수를 줄여 BB/K는 높지만 볼넷도 적다든가, 신중하게 볼을 골라서 볼넷은 많지만 삼진도 많은 유형이라면, 양준혁과 장효조는 볼은 거르고 스트라이크는 안타로 만드는 완전체 교타력의 소유자였다는 것이다. 게다가 양준혁은 300개가 넘는 홈런을 치면서도 이러한 선구안을 자랑했다. 비록 대졸이라서 비율 스텟에 어느 정도 이득을 본 면이 있긴 하지만, 고졸인 장성호가 말년에 스텟을 다소 까먹은 반면 양준혁은 은퇴 직전인 2009년에도 332타석에 BB/K 2.63으로 자신의 커리어 중에서도 최고의 BB/K를 찍었으며 은퇴 시즌에도 1.4의 BB/K를 기록하는 등 괴물같은 선구안을 유지했다.

양준혁은 야구인들 중에서도 볼넷의 가치를 매우 높게 치는 사람인데 실제로 은퇴 직후 각종 인터뷰 등에서 자신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타이틀로 최다 볼넷 타이틀을 언급하기도 했으며 2019년 기준 그가 세웠던 9개의 타이틀 기록 중 8개의 기록이 깨졌으나 아직까지 최다 볼넷 기록만큼은 깨지지 않았다. 실제로도 세이버메트릭스가 등장한 후 그 가치를 증명해 주고 있으며, 선동열, 이종범, 임창용, 이승엽 등 당시의 핵괴물들을 빼면 양준혁은 WAR에서 꾸준하게 탑급이었다. 해설위원 활동을 시작하면서 "주자가 없는 상황에는 1루타보다 볼넷이 더 효과적이다. 상대투수와 수비진에게 가하는 스트레스가 볼넷이 더 크기 때문이다. 구단에서 타자에게 보너스를 줄때 볼넷에는 1루타보다 더 큰 가중치를 줘야 한다."라는 말을 한 적도 있다. 이렇게 양준혁은 기본적으로 선구안과 타격기술이 매우 뛰어난 교타자라고 할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 신체적인 힘이 뛰어나서 제대로 맞으면 타구를 까마득하게 날려버릴 수 있다. 말하자면 교타형 장타자. 이러한 형태의 타자의 계보는 양준혁 이후 김동주, 김태균, 이대호 등이 물려받았으며, 특히 김태균은 우타 버전 양준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한 비율 스텟을 기록했다. 그로 인해 슬럼프가 쉽게 오지 않아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타격에선 그 존재감과 꾸준함을 드러내, 현역 말기에도 삼성 라이온즈에서 양준혁을 빼면 타순이 안 짜여질 정도였다.

또한 거구의 몸이면서 타율 위주의 중장거리 교타자라는 플레이 스타일의 원조이기도 하다. 실제로 양준혁 이전까지는 키작고 재빠른 선수가 타격왕 & 덩치 크고 100kg 넘는 선수가 홈런왕 이라는 이미지였는데, 양준혁은 홈런왕은 한번도 한적이 없지만 3할 1푼 이상의 교타자로써 활약을 했다. 양준혁 이전의 타격왕들을 보더라도 이만수, 장효조, 이정훈, 한대화, 고원부등은 모두 175cm 남짓의 작은 키였고, 그나마 184의 김상훈이 유일하게 180이 넘는 교타자였지만 양준혁 같이 188cm 100kg에 육박하는 거구가 타격왕을 한건 처음이었다. 양준혁을 보고 이후로도 거구의 타격왕을 한 피지컬의 선수는 마해영, 이대호, 김태균, 최형우 등이다.

수비에서는 주로 코너 외야수와 1루수를 뛰었다. 외야수로서는 수비범위가 아주 넓지는 않지만 그래도 제 몫은 해냈고, 송구 능력도 그럭저럭 있는 수준이다. 1루수로서는 이승엽이나 채태인 급의 수비수는 아니지만 덩치가 커서 타겟이 넓으므로 수비수들이 편안하게 던지면 받을 수 있는 수준은 된다. 즉 평균 이상의 수비는 해냈다는 이야기. 물론 국가대표 기준으로 올린다면 리그에서의 양준혁의 타격성적이 훨씬 높다고 하지만 국대에서는 수비를 더 신경쓰는 편이다. 또 경쟁하는 선수들과 포지션이 겹치는 것은 물론, 군 문제도 해결된 선수였기 때문에 프로 이후 국가대표로 선발된 적은 거의 없다. 야구의 경우 방콕 아시안 게임 이전까지 국가대표는 아마추어 선수들만 나가는 대회였으며 이후에도 1루, 지명타자 자리는 이승엽, 김태균, 이대호 등 걸출한 선수들이 있었기 때문에 양준혁의 자리는 없었다. 사실 국가대표를 뽑는 시기였던 2000년 초반, 2002년, 2005년에 유독 부진한 활약을 보이기도 했었다. 아마추어 때는 국가대표였으며, 리그 최고의 선수들을 뽑아가던 한일 슈퍼게임에는 2번 참여했었다.

양준혁 기록의 사나이

양준혁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뭐니뭐니해도 꾸준함이다. 2002, 2005년, 2008년을 제외하고 타율 3할을 기록했고, 9년 연속 3할 타율을 쳐내 장성호, 손아섭과 함께 공동 2위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데뷔 이후로부터 16년 연속 100안타로 연속기록 1위,[] 15년 연속 10홈런으로 연속기록 1위[]이라는 역사를 써나갔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최초로 개인통산 2000안타를 이루어낸 선수이다. 다만 본인은 안타기록보다 자신의 선구안의 증명인 볼넷기록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

은퇴 시점에서 개인 통산 최다 안타, 최다 타석, 최다 홈런, 최다 사사구, 최다 2루타, 최다 루타, 최다 장타, 최다 득점, 최다 타점, 최다 출장, 최다 타수에 1위로 랭크되어 있었다. 이후 홈런, 2루타, 타점, 장타 등의 기록은 이승엽에게 빼앗겼고, 안타와 타석의 기록도 박용택에게 뺏기긴 했지만 그마저도 은퇴하고 3년이 지난 시점부터였다. 특히 볼넷과 관련된 기록은 넘사벽으로, 통산 사사구 개수가 2위 김태균과도 무려 131개나 차이나고 심지어 김태균의 NPB 경력을 합쳐도 못 넘는다. 더불어서 역대 최고령 기록 부분에 들어가면 정말 기록이 한도 끝도 없게 된다. 비율 스텟도 우수해서 은퇴 시점에서 개인 통산 타율 2위(.316)[], 출루율 2위(.421), 장타율 4위(.529)[]를 기록했고, 더해서 도루 19위까지 기록했다. 이후에 양준혁보다 스텟이 위에 있는 현역 타자들은 모두 양준혁이 은퇴하고 나서 기록한 것이다.

머슴스타일의 외모와 주루방식, '방망이를 거꾸로 잡아도 3할은 친다' 라는 명성 때문에 가려져있지만 도루기록도 꽤 된다. 2007년에 38세의 나이에 기존의 이종범을 넘어 역대 최고령 20-20에 가입하였다.[] 2위 기록이 2003년에 수립된 이종범의 33세이다. 발이 아주 빠르다기보다는 타이밍을 잘 포착하는 편이다. 실제로 평균 주력은 평균보다 살짝 빠른 정도로 덩치를 감안하면 빠르다고 느낄 정도이다.[] 다만 도루 성공률은 심하게 떨어지는 편. 통산 도루가 193개로 꽤나 많지만 통산 도루실패 또한 113개(로 매우 많다. [] 흔히 도루성공률이 65% 이하이면 경기에 별 도움 안 되는 민폐 도루라고 여겨지는데[] 양준혁의 통산 도루성공률은 61.8% 20-20을 기록한 4시즌 중 2007년 1시즌을 제외하고 도루성공률 7할 이상을 기록한 시즌이 없다. [] 그냥 '도루가 가능할 정도의 느리지 않은 발을 가졌다.' 정도로 여기면 될 듯. 참고로 2015년까지 삼성에서 개인통산 도루 1위였다. 이는 기존 삼성에서의 1번 타자였던 류중일, 강동우, 박한이 이 셋의 개인통산 도루가 양준혁을 못 넘는다는 소리이다. 강동우야 뭐 부상 때문에 그라운드에 돌아온 게 기적이었고, 그래서 참작이야 가능하다지만, 오랜 시간을 1번 주전으로 뛰었던 류중일과 박한이의 통산 도루가 클린업 타순이었던 양준혁을 넘지 못한다는 것은 대단히 심각한 일이다. 이후 김상수와 박해민 등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며 이 명예인지 불명예인지 모를 기록은 깨졌다.

대부분의 타격 관련 기록을 갖고 있었고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기록제조의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 홈런왕을 차지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또한 시즌 MVP나 한국 시리즈 MVP 수상도 전무했다. 그것 때문에 본인 스스로가 2인자라고 여긴다지만[], 홈런왕과 도루왕을 제외한 다른 부분에서는 1위를 차지한 적이 수도 없이 많다. 인생에서 단 한번만 기회가 올 수 밖에 없는 KBO 신인상을 무려 이종범을 이기고 차지했으며, 특히 타격왕은 4회나 차지하여 장효조와 더불어 이 부문 공동 1위이다.

프로야구 10000호 홈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으나 송지만이 홈런을 치고 누의 공과를 하는 바람에 9999 홈런이 되어버려서 펠릭스 호세에게 돌아갔다.

양준혁 저평가된 역대급 강타자

양준혁에게 안타까운 면모가 있다면 바로 한 시대를 지배한 1인자의 이미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나마 데뷔 첫 해 타격왕과 홈런 타점 각 2위를 차지하며 괴물신인으로 화제가 되었지만, 홈런왕이 고평가 되던 시대에 훌륭한 통산 기록에 비해 단 한 차례도 홈런왕을 해보지 못했고, 거의 매년 꾸준하게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지만 90년대 중반엔 이종범에, 90년대 후반부턴 이승엽에 묻히고 말년엔 이대호가 있었기에 1인자라 불리진 못했다.

다만 야수로서의 종합적인 평가가 아닌 타격적인 지표만 보자면 양준혁의 데뷔 시즌 wRC+인 212는 이종범의 wRC+ 커리어하이(198.3)를 능가하며, 커리어하이의 이승엽(2002년의 198.5) 및 심정수(2003년의 210.7)보다 높다. 93년부터 97년까지 5년 동안의 WARbat도 양준혁(39.3)이 동기간 1위로 2위인 이종범(33.64)을 앞선다.[] 물론 수비, 주루 등 야수로서의 종합적인 면에서는 유격수 이종범보다 단기 임팩트에서 밀린다는 게 중론이지만, 최소한 방망이에서 만큼은 이종범이 아니라 이승엽과 심정수를 가져와도 밀리지 않는 커리어하이 시즌을 가진 선수가 양준혁이다.

또한 2021년 KBO리그의 가장 뛰어난 타자라 할 수 있는 이정후와 강백호의 시즌 wRC+가 각각 165.8과 165.5인데, 양준혁의 커리어 전체 통산 wRC+가 160이다. 즉, 양준혁은 2021년 이정후와 강백호의 타격 생산성을 커리어 평균으로 보여준 셈이다.

MLB에 대입하여 이렇게도 이해해볼 수 있다. 알버트 푸홀스가 에인절스에서 커리어를 말아먹기 전 아름다운 10년(2001-2010)동안 쌓은 통산 wRC+가 169인데, 양준혁의 커리어 통산이 160이다. 즉 리그 내부의 타격 생산성 위상으로 따지면, 양준혁이 전성기 푸홀스에 대입 가능할 정도의 무시무시한 불방망이를 커리어 통산으로 휘둘렀다는 소리다. 그런데도 2인자 이미지로 굳어졌다.

다만 위안이라고 할 수 있는건, 은퇴에 다다라서는 대부분의 타격 지표에서 1위를 기록했다는 점. 이종범은 일본 진출 후 페이스가 꺾였고, 이승엽은 일본프로야구에서 8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양준혁의 은퇴시점에 KBO리그의 최다 홈런, 최다 안타, 최다 타점, 최다 사사구를 비롯한 통산 타격 11개의 부문에서 1위를 기록하며 은퇴하게 되었다. 선수 시절 1인자를 못했던 한을 은퇴할 때 풀었다.

양준혁 은퇴 후 진로

프로야구 은퇴 후 현재는 야구해설가, 인기 강사, 예능인, 유튜버로 활발히 활동중이다.

은퇴하면 야구장을 짓고 싶다고 했다. 허구연 필드에 이은 양준혁 필드가 나오길... 은퇴 선언 후 실제로 알아보고 있다고 한다. 2군데 정도로 후보가 압축된 듯. 남자의 자격에서 직접 꿈의 구장 모형을 만들어 소개하기도 했다. 후배들을 성심껏 지도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는데 지도자로서도 대성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렇다할 지도자 과정을 수료하지 않고 방송 활동을 하다 자취를 감추어 코치와 감독이 될 수 있을지는 불분명.

2010년 플레이오프는 덕아웃에서 지켜봤다. 한국시리즈에서는 미디어데이에서 문제가 되어 덕아웃에서 퇴장. 하지만 4차전 도중에 난입(?!)해서 선수들을 독려하기도 하였다. 트위터 문제도 그렇고 왠지 은퇴 후의 행적이 순탄치만은 않아보인다.

지도자의 길도 염두에 두고 있었던 듯하다. 자신이 감독이 된다면 어떻게 해보고 싶냐는 질문에 김성근 감독과 제리 로이스터 감독의 스타일을 섞은 야구를 해보고 싶다는 대답을 했다. 2011년에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뉴욕 양키스 구단으로 연수 예정이었으나 사전 언론 노출 관계로 계속 일정이 지연되다가 본인이 고사했다. 대신 과거 선수협에 같이 참여했었던 김재현이 간다.(LA 다저스 산하 싱글A 쪽으로)

2010년 10월 24일에는 대전 갑천의 잔디구장에서 제1회 '양준혁 전국 청소년 야구 대축제'를 개최하였다. 야구선수의 이름을 딴 야구 대회로는 한국 최초. 1천여 명 55개 팀이 참가했으며 구장만 13개를 대여한 엄청난 규모였다. 경비만 약 5천만 원 들었다고 하는데 양준혁은 이 비용을 사비로 지출했다. 본인 말로는 이 대회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한다. 양준혁은 이때를 기점으로 지도자의 길을 일단 접고, 재단 사업을 시작한다. 2011년 7월 30일 2회 대회 개최. 이때 삼성에서 코치 제의를 받은바가 있지만, 코치 업무도 중요하지만 유소년 야구 육성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삼성의 코치 제의를 거절했다고.#

또한 은퇴 후에도 삼성 라이온즈 팀에 대한 조언을 꼬박꼬박 해주는 모양. 실제로 2012년 초반 삼성이 극도로 부진하자, 삼성 타자들의 눈빛이 죽어있고 야구를 너무 쉽게 보는 거 같다는 비판적인 기사를 쓰기도 했으며, 5월까지 5할 못 맞추면 선두권으로 올라가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5할을 실제로 맞췄다.

2012년에는 김응용의 추천으로 한화 이글스에서 플레잉 코치로 다시 선수생활을 시작할 뻔했다. 본인도 현역 생활을 연장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으나 결국 멘토리 야구단을 이유로 코치직을 고사했다고 한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이 당시 한화 측에 김응용의 지도자 복귀 의향을 전한것도 양준혁 본인이었고 한화로부터 수석코치 제안까지 받았으나 재단 관련 일이 너무 많아 고사했다고 한다.(재단 관련은 아래 문단에 서술)

양준혁 해설위원

2011 시즌부터 SBS ESPN에서 야구 해설을 맡게 된다는 소식이 나왔다. 지도자의 길로 가게 될 거라는 생각과는 다른 의외의 행보. 2011년 초 MBC FM 라디오에서 공익 광고를 했는데, 멘트는 훌륭한데 읽는 게 약간 어색함이 느껴져서 아쉽다. 말을 못하는 사람은 아닌데 녹음 시 긴장을 한 듯. 또한 SBS 지상파 야구 중계에도 투입되어 배기완 캐스터와 함께 했었다.

해설가로서의 평가는 대체로 좋지 않은 편이다. 초기에는 경험 부족이라는 실드거리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별로 나아지는 게 없어서 문제. 야구팬들 사이에선 첫해인 2011년 SBS ESPN에서, 아니 모든 스포츠 방송 중에서 최악의 해설자로 손꼽혔다. 지상파 중계에 투입되는 배기완 캐스터[]와의 조합은 최악으로 꼽힌다. 일단 특유의 사투리와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해설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으며, 특히 경기 중 침묵이 너무 잦아서 중간중간 캐스터만 떠들고 있을 때가 많았다. 사실은 이때 트위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해설을 들으면서 양준혁의 트위터를 보면 실시간 업데이트되고 있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해설가 초기 시절에는 브라이언 코리 선수에게 외국인인데 영리하다는 외국인 차별 발언을 하였다. 의식적으로 한 발언은 아니겠지만 자칫 위험할 수도 있었다. 다행히 그 뒤로는 그냥 계속 영리하다고만 해서 큰 문제는 없었지만 앞으로 조심해야 할 사항.

그 밖에, 양준혁이 삼성 경기 해설을 맡으면 일방적인 편파 해설이 돋보인다. 특히 4월 중순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가 가장 대표적인데, 당시 해설을 듣던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도 편파 해설 좀 하지 마세요라고 했을 정도. 상대방이었던 한화 팬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 때문인지 이후로 편파 해설은 좀 완화된 상황. 삼성 경기를 많이 맡지도 않는 편이고… 그런데 예상 외로 롯데 자이언츠에는 친절한 편이었다고...

2013년 5월 13일, 네이버 라디오볼에서 양준혁의 해설에 대해 한 문장으로 잘 축약했다. "아는 건 많은데 말로 설명은 못한다." 그래도 2013년 들어서는 타격 메커니즘이나 투수 메커니즘, 특히 선구안 관련된 부분 등을 잘 풀어내면서 그 부분만큼은 괜찮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경상도 특유의 억양이나 사투리 등은 여전해 호불호가 갈린다. 공교롭게도 대학친구인 신태용도 똑같은 지적을 받는 중이다.

2013 시즌 종료 후, MBC SPORTS+로 이적하게 되었다는 보도가 났다. 덕분에 동시기에 SBS ESPN으로 이적한 정우영 캐스터에 빗디어 정우영-양준혁 트레이드로 비유되기도 했다

그런데 2014년 1월 15일 네이버스포츠 라디오볼 방송에 전화연결된 MBC 스포츠+ 이석재 PD는 아직 양준혁의 해설위원 영입이 결정되지 않았다. 현재까지 검토 중이고 회의 중이다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후 한참 동안 소식이 없다가 4월 8일부터 베이스볼 투나잇에 출연하고 있으며, 5월 18일 SK vs 한화 경기부터 해설에 투입되었다. 경기 중에 차명석 위원에게 .455의 타율을 기록했다는 것을 자막으로 띄워주면서, PD가 차위원 디스를 하기도 했다. 또한 예전 한밭야구장 이야기를 하니, 자료화면 나오니 '말만 하면 화면이 나온다'며 감탄했다.

사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양준혁 해설이지만 호평을 받은 적도 있다. 2013년 10월 5일, LG 트윈스가 두산 베어스를 꺾고 극적으로 플레이오프 직행 티켓을 따게 되자 박용택, 이동현, 이병규등 2002년 한국 시리즈를 겪은 고참들이 일제히 울음을 터뜨렸는데 이를 보고 양준혁이 본인도 울먹거리면서(!) "LG 선수들 오늘은 울어도 됩니다. 정말...얼마나 서러운 세월이었습니까."라고 코멘트를 하는데 극적인 승리와 함께 마침내 끊어진 비밀번호 + 동수옹의 은퇴 + 양준혁의 이러한 코멘트를 들은 쥐갤은 순식간에 눈물바다가 되며 이날만큼은 양신으로 칭송받았다. []

2015년 6월 12일 드디어 종범신과 같이 해설한다. 시청한 사람들의 소감은 '하라는 해설은 안 하고' 만담만 했다고. 그리고 2017년 시즌 들어서는 후술하듯 이종범 해설위원 대비 연전연패를 당하는 중.

2017년 6월 27일, MLB 해설에 데뷔했다.# 2017년 10월에는 이승엽의 은퇴 경기에서 해설을 맡기도 했다. 한명재 캐스터와 함께 샤우팅을 한 건 덤.[]

2018년 들어서 삼성 라이온즈 타자들에게 비 시즌에 웨이트 트레이닝을 열심히 하라는 대사를 자주 내뱉는다. 팀 선배로써 안타까움이 많이 묻어나는 듯... 삼성 경기 중계 중에도 자주하고, 라디오볼 같은 프로그램에서 다른 패널들이 양준혁의 이 대사를 많이 언급한다. 그 정도로 심각한 삼성의 소총부대화이기도 하다.

해설자로서 편파 중계, 모자란 해설 언어 구사력 등으로 욕을 먹었던 2010년대 초반과는 다르게 해가 거듭될수록 이런 부분들이 개선되며 제법 괜찮은 해설이라는 평을 듣는 중이다. 최근에 들어서는 삼성 경기를 중계할 때 삼성 편을 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걸쭉한 사투리 덕분에 말이 순간 빨라질 땐 알아듣기 어렵다는 점 정도.

하지만 다시 편파 해설이 심해져 듣기가 힘들다. 삼성이 공격할 때는 삼성 야수 이야기만, 삼성이 수비할 때는 삼성 투수 이야기만 하는 해설위원이다. 특유의 사투리까지 더해지면서 듣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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