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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진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3. 3. 27.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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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제20·21대 국회의원으로 지역구는 서울 강북구 을이며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다.

정치 생활의 시작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에 몸담았던 PD 계열 진보 성향의 정치인이었다.[] 그러다 이후 민주통합당에 합류한 후 2016년 20대 총선 때 비로소 원내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즉,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진보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민주당 내부의 세대교체론인 97세대의 대표주자 중 한 명이며, 당내 주류 의견에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아 소신파로 분류된다.

박용진 정계 입문 전

1971년 4월 17일,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 노단리 번암지서 관사에서 아버지 박구희(1941년생)와 어머니 송복순(1943년생) 사이의 3남 1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집성촌이 있는 장계면에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거주하다가 부친의 근무지가 전주시로 변경되면서 태평동으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전주진북초등학교에 입학해서 다니다 1979년 부친이 서울로 전근하면서 서울화계초등학교로 전학하여 그곳에서 졸업했다. 이후 신일중학교, 신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가 고등학교 3학년 때였던 1989년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결성되었고, 그의 고2 시절 담임선생님이었던 이수호 선생이 결성 주도 인물로 구속되었다. 이에 자극을 받아 학교 동기생들과 교내 시위를 주도한다. 고등학교 내내 1987년 6월 항쟁 이후 분출된 정치, 사회의 민주화 흐름에 민감한 시절을 보냈다.

1990년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했고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학년 때이던 1991년 명지대학교 학생 강경대의 죽음을 계기로 시작된 5월 정국의 말미에 그의 대학 선배인 김귀정이 시위 도중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박용진은 시신이 안치된 백병원으로 찾아간 뒤 장례가 마무리 될 때까지 그곳에 있었는데, 이때의 경험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1994년 성균관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당선, 서총련산하 북부총련 의장직에 선출된다.[] 그해 6월 벌어진 전국철도기관사협의회와 서울지하철노동조합,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의 연대 파업[]을 지원하던 도중 구속되어 첫 번째 감옥 생활을 경험하였다. 100여 일의 수감생활 이후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총학생회장 임기를 마치고 그해 12월에 현역으로 입대하여 1997년 2월 부산 53사단 해안레이더 기지에서 복무를 마치고 만기 제대하였다. 제대 후 1997년 마지막 학기를 마치기 위해 복학한 뒤 김귀정추모사업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했다.

박용진 진보정당 시절

대학 졸업 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의 정치부장으로 일하다가, 1997년 9월 결성된 국민승리21에 언론부장으로 파견되었다. 대선을 마친 뒤 전국연합을 그만두고 권영길을 따라 진보정당 운동을 계속했다. 국민승리21에서 언론부장, 조직부장, 기획부장, 청년사업부장, 청년실업대책본부 상황실장, 대표 수행비서 등을 겸직하며 진보정당 건설에 힘썼고 2000년 1월 민주노동당을 창당했다. 2000년 1월 문화일보가 선정한 '차세대 리더 100人'으로 선정되었다.

민주노동당 창당 직후인 2000년 4월, 제16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만 29세의 나이로 도전하여 서울 강북구 을에 출마했다. 13.3%의 득표율로 7명의 후보자 중 3위를 기록하였으며 이는 민주노동당의 서울 지역구 출마자 중 최고 득표율이었다. 그 후 최고위원 격인 전국집행위원에 선출되었다. 노동운동을 대표하던 정윤광 전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과 이재영 전 진보신당 정책위의장 등이 그의 경쟁상대였다.

2001년 3월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전국민중대회’에 참여했다가 구속되었고, 2년 1개월 후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 1주년 사면으로 출소했다. 피선거권을 회복하지 못해 2004년 총선에 출마하지 못했다. 원내 3당이 된 민주노동당은 그를 대변인으로 임명했다. 총선이 끝나고 한 달 뒤 복권되었다. 그때부터 2007년 12월 대선 선대위 대변인까지 중앙당에서 활동했다.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에 반대했지만 진보신당이 창당되자 합류[], 진보신당 후보로 다시 서울 강북을에 출마했으나 11.8%의 득표율로 통합민주당 최규식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2010년 진보신당 부대표가 되었다.

3기 진보신당 지도부 중 유일하게 야권대통합에 동의했다. 2011년에 '진보대통합'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2011년 9월 25일에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진보정당을 출범한다"고까지 합의가 되었으나, 뒤이어 열린 진보신당 당대회가 합의안을 부결함으로써 결국 '진보대통합' 논의는 무산되었다. 이에 지속적으로 '야권대통합'을 주장하던 그는 진보신당을 탈당하였고 통합진보당 동참 역시 거부했다.

박용진 민주당 합류 이후

진보신당 탈당 뒤 문성근 등이 주도하는 ‘국민의 명령’ 운동에 합류하여 2011년 9월 '혁신과통합' 상임운영위원을 맡았다. 혁신과통합이 결성한 시민통합당 지도위원으로 창당에 함께했다.

시민통합당이 민주당과 통합해 만든 민주통합당에서 최고위원 선거에 도전해 컷오프를 통과했으나 당선에는 실패했다. 그 후 민주당 대변인, 홍보위원장,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원회 부의장 등의 당직을 지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서울 강북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어서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이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비서실장에 임명되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대선 경선 국면으로 흐르자, 안희정 당시 충남도지사를 공개 지지하였다.# 이후 제19대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의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후 20대 국회 2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합류, 전략기획부대표직을 맡고 있다. 20대 국회 전반기 정무위원회와 운영위원회에 소속되어 있고,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와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7년 국정감사에서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명계좌 문제를 제기해 금융당국의 과세 결정을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이후 꾸려진 더불어민주당 이건희 과세 TF의 간사직을 맡았다. 또 꾸준히 현대자동차의 세타2엔진 결함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에 현대차로부터 2017년 5월 리콜 결정과 10월 국정감사에서 세타2엔진에 대한 무한보증 약속을 이끌어냈다.

2018년 9월 21일 국회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 중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기업 가치를 평가한 안진회계법인과 삼정KPMG의 보고서가 부풀려 작성된 것을 문제삼았다. 사실상 금융위원회의 묵인이 있었다는 정황도 확인했다.

초선 임기 동안 대표발의해 통과시킨 주요 법안은 다음과 같다.
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 제53조의2: 금융 분쟁조정 시효의 중단 조건 규정
공인회계사법 제37조의2: 회계법인의 분할·분할합병 근거 및 절차 규정

21대 총선에서는, 바로 지역 단수공천을 받으면서 재선에 도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64.45%의 압도적인 득표율[4]을 얻어 미래통합당 안홍렬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2020년 6월 9일, 대북전단과 관련해 "삐라가 온다고 흥분하기 전에 종이떼기 몇장 가지고 체제가 흔들릴 정도면 반성 좀 해야한다"고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비판했다.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려는 여당 움직임과 대조되어 소신 발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9년 6월 12일, 홍콩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조슈아 웡이 "한국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님께서 최근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홍콩과의 연대의 뜻을 밝혀주셨다"며 "한국 민주화에 직접 참여하셨던 박용진 의원님께서 연대해주셔서 더 큰 의미가 있다"고 감사를 표했다. #

2020년 6월 18일, 제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코스피 3000법'이라고 명명했다. 전자투표제와 집중투표제[5] 도입, 감사위원 분리선출, 다중대표소송제[6] 도입 등으로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 하지만 이 법안에 대해 기업 경영권 위협 등의 문제점이 제기되어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문서 참조.

2020년 7월 6일,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면서 "임대사업자가 시장에 미치는 순기능을 인정해야 한다"며 "재개발·재건축을 억누르지 말고 공급정책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보도자료를 내 화제가 되었다. 그러면서 "청년이나 신혼부부를 위한 작은 아파트라도 적극 공급하고 신도시 정책도 필요하다"고도 했다. 이는 6.17 부동산 대책이 나온 이후, 6월 23일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와의 대담에서 나온 발언이다. # 그동안 재벌 문제에 대해서는 진보적인 시각을 강하게 드러냈지만, 부동산 문제에서는 보수진영과도 어느 정도 같은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하였는데 주로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대장동 개발 사업 논란을 비롯한 의혹들을 공격하는 데 앞장섰다. 그덕분에 예비 경선에서 지명도가 가장 떨어지는 후보임에도 양승조, 최문순 두 도지사를 누르고 본 경선까지 진출했지만 이후 당내 이재명 대세론 때문에 역풍을 맞기도 했다.[] 하지만 최종 1.55%, 4위로 경선을 마감했다. 경선 이후에는 다른 후보들과 함께 대한민국대전환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위원장 자리를 맡았다.

제20대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패해 야당이 된 후 처음 열리는 전당대회에 당대표 후보로 출마를 선언했다. 이 자리에서 "더 이상 진영논리를 위해 악성팬덤과 정치훌리건, 좌표부대에 눈을 감는 민주당이 돼선 안 된다"며, "계파와 팬덤의 수렁을 넘어, 민주당이 하고 싶은 정치를 찾자. 민심이 우선하고 상식이 지배하는 민주당, 다른 의견을 포용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민주당, 다시 자랑스러운 민주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동시에 당대표 선거 출마가 유력한 이재명 의원을 상대로도 "어느덧 지금 민주당에는 패배를 향한 공포와 특정인을 향한 절망적 기대감만이 자리하고 있다"는 말로 저격하기도 했다.

당대표 선거 출마 선언 이후 KSOI가 TBS 의뢰로 전국 성인 남녀 1,002명에게 진행한 민주당 대표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35.7%를 기록한 이재명 의원의 뒤를 이어 16.8%로 2위를 기록했다.# 이후 발표되는 여론조사들에서도 압도적인 1위를 지키고 있는 이재명 의원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두 자릿수 지지율을 유지하면서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7월 28일 진행된 컷오프를 통과하고 이재명 의원, 강훈식 의원과 본경선을 치르게 됐다. 이재명 후보의 지지세가 워낙 막강한만큼 강훈식 후보와 단일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강훈식 후보 측에서 단일화에 다소 거리를 두는 모양새라 쉽지는 않은 상황.

결국 강 후보가 단일화를 하지 않는 방식으로 단독 사퇴하고 끊임없는 네거티브로 인해 당내 비호감도도 높아지면서 최종 22.23% 득표율로 참패했다

박용진 그외정보들

배우 문소리의 성균관대학교 선배다. 문소리는 박용진이 2000년 총선에 출마할 때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고 한 바 있으며, 지지 활동도 하고 있다.


정의당의 대선평가 좌담회 때문에 진보정당 원로들이 국회 의원회관에 모인 것을 보고 밥값을 계산하고 나왔다고 한다.[] 참고로 현직 정치인들이 아니라서 김영란법에 접촉되지 않는다. 설사 김영란법에 해당되더라도 사진 속 메뉴 가격을 보면 1인당 3만원이 절대 넘을 수 없는 수준이다.


2020년 6월, 김여정이 삐라를 구실로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자 "종이떼기 몇 개 날아간다고 북한 체제가 흔들리면 그 체제를 반성해야 한다"며 북한에 역공을 펼쳤다. 


조응천, 금태섭, 김해영과 함께 민주당 내에서 쓴소리를 많이 하는 소신파로 분류된다. 일명 조금박해.


재벌 문제와 관련해서는 진보적인 시각이 매우 강하지만, 의외로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서는 보수적인 시각도 가지고 있다. 한국 재벌가의 대표격인 삼성 도 많이 저격하지만, 기업 자체에 대해서는 한국 경제 발전의 주축으로 고평가하기도 했다. 사실 이는 정의당 같은 진보 정당도 거의 비슷한 입장이다. 오너 일가에 대한 논란이 더 많은 대한항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국민의 기업이라 여기며 애증의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 우수한 기업을 사유화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주된 목적임을 몰라주는 언론이 야속하다"고 평해 왔다. 즉, 오너 일가의 비리와 기업의 존속은 별개로 간주하는 것.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참패 이후 일부 초선 의원들이 조국 책임론을 제기한 뒤 비판에 직면하자 이들을 옹호하는 입장을 보였다.


진중권, 우석훈 등과 함께 진보인사임에도 불구하고 보수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청년정치학교에 자주 참석하고 있으며, 대선 싱크탱크 세미나를 오신환 전 의원이 운영하는 HOW's 카페에서 열기도 했다.


배우 임원희가 신일고 21회 동기다. 이런 인연으로 임원희가 유튜브 채널 박용진TV에도 출연하였다.


젊은 이미지를 강조하는 편이다. 박 의원은 1971년생으로 2022년 기준 만 51세인데, 이는 20대 대선 경선후보 중 제일 어리며, 법적으로 대통령 출마 가능한 최소 연령이 만 40세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젊은 편이다. MZ세대를 공략하기 위해 본인 틱톡에서 롤린 춤을 추기도 했다. 이외에도 편의점 음식 먹방이나 젤리 챌린지 등 별별 컨텐츠를 업로드하기도 한다.


2022년 국정감사에서 2022년 한국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운영 미숙 파동를 언급하며 카카오를 강하게 질타했다. 남궁훈 카카오 각자대표의 질의응답 도중 우마무스메 사태를 거론하며 "우마무스메 사태 당시 카카오게임즈 대응이 무능을 넘어 주식회사 의무를 망각했다." 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이에 남궁현 대표는 "질의응답 과정에서 나왔던 발언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으며 상처받으셨을 유저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 고 사과했다. 


21대 총선에서 자신의 장남과 동명이인인 후보자가 다른 당 소속으로 부산 남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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