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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세원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3. 4. 21.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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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前 코미디언, 배우, 영화 기획자, 종교인.

1956년 3월 18일,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아버지 서우석(1920~1997, 충청남도 예산군 출신)과 어머니 정태순(1920~1988, 충청북도 청원군[] 출신) 슬하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대전 삼성국민학교, 부산대신중학교, 대륜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서세원은 독특한 유머와 재치로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엄청난 인기를 얻은 대한민국의 전설적인 코미디언이다. 1956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태어나 1980년대 초부터 코미디계에서 경력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서세원은 서울의 나이트클럽과 개그클럽에서 개그맨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과장된 표정, 활기찬 움직임, 인기 인물의 재미있는 사칭으로 알려진 피지컬 코미디의 대가로 빠르게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코미디언 중 한 명이 되어 전국의 TV 쇼와 라이브 이벤트에 출연했습니다.

서세원의 가장 유명한 코미디 스케치 중 하나는 대한민국의 전 대통령 김영삼을 사칭하는 것입니다. 이번 스케치에서 서세원은 김영삼의 매너리즘과 말투를 완벽하게 소화해 호평을 받았다. 그는 또한 마이클 잭슨, 이소룡, 성룡 등 유명 연예인을 사칭해 인기를 얻었다.

서세원은 피지컬 개그 실력은 물론 재치 있는 입담과 영리한 말장난으로도 유명했다. 그는 즉석에서 재미있는 농담과 재담을 할 수 있는 즉흥 연주의 달인이었습니다.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그의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그는 곧 한국 연예계에서 사랑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한국 코미디계에 대한 서세원의 영향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는 새로운 세대의 코미디언을 위한 길을 닦았고 미국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대중화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그의 영향은 그가 처음 현장에 등장한 지 3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서세원 개그맨 경력

1979년 TBC 라디오를 통해 데뷔한 후 대부분의 활동은 MBC에서 했으며 MBC에서 활동하는 동안 영11, 청춘행진곡,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특히, 당시 대한민국 대중들이 개그맨하면 떠올렸던 "몸개그를 하거나 바보 흉내를 내면서 사람들을 웃기는 연예인"이라는 통념을 깨고 특유의 말발을 무기 삼아 말로 웃기는 개그맨의 길을 연 사람이다. MC로서도 유능해서 훗날의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과 같은 개그맨 출신 MC들이 단순히 진행자 역할에 그치지 않고 프로그램 전체를 기획하고 조율하는 주도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는 토대가 되어준 전설적인 개그맨이다.

서세원은 1980년대 중반까지 동시대의 라이벌들인 김형곤, 주병진보다[] 인기 면에서 언제나 우위에 있었다. 물론 1980년대 중반부터의 압도적인 원탑은 후배인 심형래였다. 그러나 심형래 직전까지 서세원이 정상급 코미디언들 사이에서도 최고였던 것은 틀림없다. 다만 80년대와 90년대에 넷 다 원탑은 아니었다. 이주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청춘보감이라는 코너에서 서세원 최고의 유행어인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셔[]가 탄생했고 주병진이 본격적으로 뜨기 전 당대 젊은이들에게 가장 인기를 끌고 있던 예능 프로그램도 서세원이 진행하는 영11이었다. 또한 인기 연예인을 초빙해서 개그를 하는 <서세원의 스타데이트>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훗날 대한민국 토크쇼의 교두보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 후 KBS 2TV에서 최양락이 네로 25시로 너무나 잘 나가자 MBC에서는 최양락의 대항마로 서세원을 다시 내세웠을 정도였다.[] KBS는 콩트 중심의 상황극, MBC는 유행어를 민다는 방향성을 보였었다.

이후 서세원은 <서세원의 스타 데이트>를 진행한 경험을 밑바탕으로 1990년대 중후반부터 토크쇼 진행자로 변신, 2000년대 초반까지 KBS 2TV의 간판 프로그램인 '서세원쇼'로 흥행하게 된다. 주 코너는 '토크박스'로 출연 연예인들이 서로 센 이야기들을 해서 서세원이 등수를 매기는 방식. 다만, 이 프로그램의 컨셉[]은 한국 방송의 고질적인 병폐인 일본 방송 베끼기다. 일본의 장수 인기 토크 프로그램 라이온의 고키겡요(ライオンのごきげんよう, 1991년부터 방송)의 코너 '주사위 토크'를 그대로 따라했다. #

그 외에 코미디 세상만사, '공포체험 돌아보지마'[], 시사터치 코미디 파일 등의 KBS 코미디 프로그램[]과 라디오 '가요산책'[], '서세원의 좋은 세상 만들기'[]의 진행자로 방송계에서 폭발적인 위세를 누리며 데뷔 20여년이 지난 1990년대 후반까지 김국진, 이경규 등의 탑레벨 개그맨 다음가는 1군~1.5군 정도의 위치를 꾸준히 지키고 있었다. 게다가 그 둘보다 선배였고[] 이경규의 일밤 전성기 시절에도 서세원 역시 본인이 진행하는 프로그램들로 나름 큰 인기를 가지고 있었으니 이주일이 암으로 사망하고 심형래가 영화 제작 문제로 빠진 21세기에, 후술된 막장 짓거리들을 안 했더라면 서세원은 현재까지도 이경규보다 예능계에서 더 압도적인 권위를 가졌을 것이다.[]

즉, 서세원은 신인 때부터 인기를 끄는 스타로 시작하여 정통 콩트 코미디가 유행할 때는 콩트로, 연예오락(지금의 예능)이 유행할 때는 그 진행자로, 시대흐름이 바뀌어 오는 것에 따라 발맞추어 모두 성공했던 최강 커리어의 희극인이었다. 그야말로 전성기가 아닌 적이 없을 정도. 콩트, 토크쇼, 교양성 예능, 정통 예능까지 코미디언이 진출할 수 있는 분야는 모두 진출해서 성공한 악마의 재능을 가진 자였다.

서세원은 콩트 프로그램을 하면 유행어를 여러개 만들고, 예능성 진행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아서 히트치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마이더스의 손처럼 손대기만 하면 방송을 성공시키는 개그맨이었고 TV 프로그램과 라디오 프로그램을 동시에 진행했던 90년대에는 둘 다 시청률이나 청취율을 최상위권으로 만들어 히트를 시켰을 정도였기에 서세원이 엄청났다는 말이 과언은 아니다. 솔직히 과장 없이 말해도 연기력, 아이디어 응용 능력, 진행 능력, 기획 능력, 구성 능력 등 뭘로 봐도 연예인 및 방송인으로서의 능력치는 깔 게 없다. 사생활과 인간성이 비정상인 범죄 전과자라서 그렇지 그것만 정상이었으면 계속 경력을 이어가 지금 이 시대에도 노년 개그맨이나 진행자로 새로운 획을 그었을 수도 있다고 평가받는 특출난 인물이었으며, 엄청난 연예인이었다.

서세원 사망

2023년 4월 20일, 조세금융신문 단독 보도로 캄보디아 프놈펜에 위치한 한인 병원에서 링거 주사를 맞던 중 쇼크사로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 이후 주 캄보디아 한인선교사회에서 서세원의 사망을 확인했으며, 외교부와 경찰에서도 서세원의 사망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이후 조세금융신문에서 서세원이 숨을 거둔 한인 병원 미래폴리클리닉의 사진을 공개했으며 서세원의 재혼녀에 정체도 공개되었는데 23살 연하 1979년생 음대를 졸업한 해금 연주자라고 하며 재혼녀로 추정되는 사진도 공개됐다.

딸 서동주는 아버지의 사망에 대해 슬퍼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으며 생전에 지병으로 당뇨를 앓아왔다는게 밝혀졌다. #

그의 사망 소식에 여론은 애도는 커녕 동정조차 하지 않고 있는데, 전처 서정희에게 저지른 성폭행과 자녀들에게도 향한 가정폭력을 비롯한 과거의 악행과 더불어 그 외 여러 논란들 때문에 추모하는 반응이 거의 없으며 오히려 인과응보라거나, 속 시원하다거나 잘 죽었다는 식의 평이 대부분이다. 오히려 한 짓에 비해 너무 편하게 갔다는 반응도 많이 나올 정도.[] 게다가 바로 전날인 4월 19일 문빈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서 사람들의 화제 및 추모 분위기가 거의 이쪽으로 몰렸기 때문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코미디언임에도 불구하고 초라한 마무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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