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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준호(축구선수)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3. 5. 16.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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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적의 산둥 타이산 소속 축구 선수. 포지션은 미드필더.

손준호는 미드필더로 뛰었던 전 대한민국 축구 선수이다. 1969년 11월 18일 대한민국 경산에서 태어났다. 손준호는 1992년 K리그 부산 대우 로열스에 입단하면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선수 시절 손준호는 뛰어난 볼 컨트롤과 필드 시야로 유명했다. 그는 또한 장거리에서 골을 넣는 능력과 프리킥 기술로 유명했습니다. 손준호는 선수 생활 동안 부산 대우 로얄즈, 울산 현대 호랑이, 성남 일화 천마 등 여러 팀에서 뛰었다.


손준호 선수 경력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1994년 FIFA 월드컵에서였습니다. 그는 한국의 역사적인 16강 진출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조별 리그에서 스페인을 상대로 결정적인 골을 넣어 한국을 도왔습니다. 2-2 무승부를 확보했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손준호의 활약은 많은 찬사를 받았고 국제무대에서 그의 위상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손준호는 그라운드에서의 성공뿐 아니라 그라운드 밖에서도 인기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겸손하고 현실적인 성격과 팬들과 소통하려는 의지로 유명했습니다. 손준호는 프로축구 은퇴 후에도 각종 매체의 해설위원과 애널리스트로 활동하며 축구계에 꾸준히 몸을 담았다.


전반적으로 손준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한국 축구 선수 중 한 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기술, 리더십, 스포츠에 대한 헌신은 한국과 전 세계의 수많은 팬과 선수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손준호 프로 데뷔전

축구선수 출신인 부친 손상태씨의 영향으로, 고향 영덕 강구초 1학년부터 축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 초등학교 4학년에 인천으로 전학갔다가, 중학교 2학년 때 다니던 제물포중 축구부가 문제가 생겨, 영덕과 가까운 프로 산하 중학교인 포항제철중학교로 전학가며 포항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포철중 합류 직전 당한 발가락 부상으로 인해 초반 경기를 뛰지 못했지만, 당시 포철중 감독이던 최문식의 도움으로 적응을 마쳤고, 팀의 2007년 추계연맹전 우승과 MVP 석권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이후 중학선발팀에 뽑혀 국제대회에서 6골로 득점왕에 올랐고, 2008년 대한축구협회 주최의 '축구인의 날' 행사에서 최우수 중학 선수로 뽑히는 등 중학교 최고 레벨의 선수로 인정받으며 포철공고로 진학했다.

고등학교에서도 고무열, 이명주, 배천석, 김승대, 김준수, 문창진, 정원진 등과 함께 고등학교 무대를 평정하였다. 특히 3학년이던 2010년에는 팀의 백록기 우승과 MVP를 차지하며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이후 2011년 K리그 드래프트에서 포항에 우선지명된 상태로 감독 김병수가 이끌던 영남대학교로 진학했다.

2011년 3월 12일, 영남대 소속으로 남양주시민축구단과의 경기에서 FA컵 데뷔전을 치렀다. 3학년이던 2013년 U리그 우승을 이끌고 MVP를 수상했다

손준호 플레이 스타일

K리그 원탑 수미, 리그 최소실점 1등 공신. 현재로서 주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인데, 현대 축구에서 각광받는 스타일의 유형이다. 수비가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원 포지션이 중미이다 보니 좀 더 크로스나 패스에 치중 해 상대 팀의 라인을 깨는 스타일이다.

페널티킥도 꽤 잘차다보니 포항 시절 팀의 전담 키커를 맡았었다. PK에 매우 약했던 포항으로선 천군만마와도 같았던 존재.

2019년까지는 상대를 향한 터프함, 넓은 활동량과 준수한 패스실력이 장점이나 아직 수비력이 부족하여 조금은 무모한 경합 장면도 많이 나왔었다. 또한, 과한 승부욕으로 경고왕에 등극할정도로 경고를 자주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2020년부터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 변경 후 원래부터 장점인 수준급의 중거리와 패스실력과 함께 일취월장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2020년 K리그1 MVP에 등극했다.

보통 한국 출신 수비형 미드필더는 거칠면 투박한 경우가 많고 영리하면 연약한 경우가 많은데, 손준호는 거칠면서도 간간히 영리한 패스를 찔러줘서 상대팀을 더욱 골치 아프게 하는 주로 분데스리가에서 많이 보이는 유형의 수비형 미드필더이다.

허나 단점으로는 프로 데뷔 전까지 윙어 출신이었기에 수비시에 아직도 너무 무모하고 거친 버릇이 남아 있어서 카드 수집을 자주 하는 편이고, 볼을 빼앗겼을 시판단과 포지셔닝이 아쉬운 장면이 보이는데 어릴 때부터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니다 보니 지적되는 부분이다. 상대에게 파울을 당했을 시 과도한 오버액션을 취하는 다소의 비매너성 플레이도 종종 보인다.

2020 시즌이 한창인 현재 제대로 된 박스 투 박스형 원볼란치 미드필더가 나왔다며 극찬받고 있다.

대표팀에서는 기성용의 롤을 그대로 이어받아 정우영, 원두재 등 신체조건 좋은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와 함께 투볼란치로 뛸 최적의 선수로 평가된다. 다만 정우영과 비교하면 피지컬에서 밀리다 보니 공중볼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 주전 경쟁에서 정우영에게 밀리는 이유도 바로 그것.

또한 이런 스타일의 단점으로는 안 풀리는 날에는 그대로 지워지며 무색무취한 선수가 되어 버린다는 것으로 국대에서 유독 부각된다.

손준호 뇌물 수수 논란

처음에는 소속 구단 하오웨이 감독의 승부 조작 등 비위 혐의와 관련해서 조사를 받았다. 문제는 단순 참고인인데도 조사 당일 구단에 없었다는 이유로 나흘이 넘게 랴오닝성의 중국 공안 당국에서 형사 구류 중이라는 것이다.#

손준호 에이전트 "손준호, 승부조작 아닌 뇌물수수 연루…공항서 붙잡혀"
2023년 5월 15일 승부 조작이 아닌, 뇌물 수수 관련 사건으로 출국 직전 공항에서 중국 공안에 붙잡혔다. 중국 당국은 손준호에게 출국 정지 조치를 내렸으며 체포 후 현재 구금 상태로 조사를 하고 있다. 중국에서 시행하는 수사는 일시적 구금 상태에서 시행되는 일종의 강제 수사로 통상 도주나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을 때 이뤄지며 최장 37일까지 신병을 확보한 채 조사할 수 있다.

팬들은 뜬금없다는 반응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고액연봉자#인 손준호가 검은 돈에 욕심을 낼 이유가 표면적으로는 없기 때문.

손준호 그외정보들

아버지인 손상태 씨는 박태하와 동기동창이고 학창시절 축구부 생활도 같이 했다. 그래서 손준호가 어렸을 때부터 박태하의 경기를 보러 다녔고 손준호가 제물포중 2학년 시절 힘들어할 때 포철중으로 전학 가는데 큰 공을 세운 인물도 박태하다.
프로 데뷔 이전까지의 포지션은 윙어였다고 한다.


2015 시즌 K리그에서 9골 4도움을 기록하며 유력한 영플레이어상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국가대표 활약이 없다는 점이 발목을 잡아 최종 후보 3인에는 들지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FC 바이에른 뮌헨의 서포터즈였으며 특히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팬이었다고 한다.


롤 모델은 이명주라고 한다. 포항 입단 후 머리도 이명주와 같은 스타일로 바꿨고, 등번호를 28번으로 한 이유도 이명주의 29번과 가까운 번호라서 그랬다고 한다.[] 심지어 얼굴도 비슷하게 생겨서 둘이 같이 뛰면 상당히 헷갈린다.


언젠가는 꼭 분데스리가에 진출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해외 이적 후에도 전북 현대 모터스에 대한 애정을 꾸준히 표현한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흑염소 무침이라고 한다. 1주일에 한 끼는 꼭 먹는다고.


2020년 7월 6일 김승대와 손준호의 여동생이 결혼했다.


은퇴를 하면 종합격투기 선수에도 도전하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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