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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호(야구선수)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3. 5. 1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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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 한화 이글스 감독.

최원호는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에서 투수로 활약한 전 한국 프로야구 선수다. 1973년 12월 21일 대한민국 경상북도에서 태어났다.


최 감독은 1996년 삼성 라이온즈와 계약하면서 프로야구에 입문했다. 그는 빠르게 자신을 신뢰할 수 있는 투수로 자리 잡았고 그의 경력 동안 라이온스를 여러 챔피언십으로 이끄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2002년에는 KBO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인 한국시리즈 MVP에 선정됐다.


투수로서 최희섭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패스트볼, 커브볼,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 다양한 구종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는 또한 정확성과 스트라이크 존 제어 능력으로도 유명했습니다.


2005년 시즌 부상과 슬럼프 ​​등 선수 생활 내내 최씨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그는 인내심을 갖고 계속해서 자신의 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2007년에 그는 복귀하여 17승 3패의 기록과 2.55의 방어율을 기록하며 커리어 최고의 시즌을 보냈습니다.


2011년 삼성라이온즈에서 15년간 프로야구 생활을 한 최희섭은 은퇴했다. 그는 117승 84패 평균자책점 3.52로 커리어를 마쳤다. 그는 또한 1,144개의 삼진을 기록했고 재임 기간 동안 라이온스를 8번의 KBO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현장에서의 성공 외에도 Choi는 지역 사회에 대한 공헌으로도 유명했습니다. 그는 자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어린 환자들의 하루를 밝게하기 위해 어린이 병원을 자주 방문했습니다.


최원호는 삼성 라이온즈와 KBO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투수 중 한 명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그의 헌신, 근면, 경기장 안팎에서 탁월함에 대한 헌신은 모든 곳의 야심 찬 야구 선수들에게 영감을 줍니다.

최원호 선수 경력

인천고등학교와 단국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93년 아시아선수권대회, 대륙간컵 야구국가대표, 국가대표 야구상비군, 1995년 대학야구 다승왕 (7승) 등 을 기록하며 1996년 고향팀 현대 유니콘스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다. 이 해 같은 팀에 입단한 동기 선수로는 동갑내기였던 연세대 출신 외야수 박재홍과 최원호의 인천고 후배인 내야수 박진만.

1998년에 팀의 5선발로 뛰며 10승[] 5패, 평균자책점 3.04를 기록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현대는 정민태-정명원-김수경-위재영-최원호로 이어지는 5명 모두 10승 투수라는 무시무시한 선발진을 자랑했다.

1998 시즌 후 12월 방콕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 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리며 금메달로 병역 특례까지 받았다. 그러나 다음해인 1999년에는 자주 난조를 보이며 부진했고[], 결국 1999년 10월 18일 심재학을 상대로 LG 트윈스로 트레이드되어 은퇴할 때까지 LG에 몸담았다.

이후 2000년 부진, 2001년은 날렸고 다시 2002년에 1군에 복귀했다. 비록 승패는 승운이 좋지 않아 6승 11패였지만 꾸준하게 로테이션을 소화해 토종 선발 중 유일하게 규정이닝[]을 채워 사실상 2선발 역할을 했다. 그리고 2002년 포스트시즌의 첫 경기인 현대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 선발투수로 등판하여 7.2이닝 3실점으로 호투하며 승리투수가 되었다. 하지만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9회말 이승엽에게 동점 3점 홈런을 맞고 강판당한 이상훈을 구원하여 9:9 상황에서 등판했지만, 바로 다음 타석에 나온 당시 KS 때 절정의 타격감을 자랑하고 있었던 마해영에게 통한의 끝내기 홈런을 맞고 말았다. 결승 홈런을 친 마해영이 그라운드를 돌며 홈인하는 동안, 그는 마운드에 주저앉은 채 눈물을 흘리며 극명한 대조를 나타냈다. 이 홈런으로 패전 투수가 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전에는 한국시리즈 3차전 때 사실상의 위장 선발이나 다름없는 전병호와 선발 맞대결에서 완패를 당하며 한국시리즈에서만 2패를 기록하는 등,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가장 큰 상처를 입은 선수로 기록되었다.

이렇게 최원호는 2002년 LG 트윈스 가을야구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투수가 되었으며, 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LG는 잃어버린 10년을 보냈다. 그리고 현재진행형으로 LG의 한국시리즈에서의 마지막 장면으로 남아있다.

2002년 준PO 1차전 - 승리투수 8이닝 3실점

이후 2003~2004년은 평범한 하위선발 정도의 모습을 보였으나 2005년 27경기 모두 선발 등판하여 163⅔ 이닝 동안 13승 6패 ERA 4.07을 기록하며 선수생활 최고의 해[]를 보냈고, 팀의 유일한 10승 투수에 다승 부분 리그 5위에 올랐었다. 당시 부상에서 갓 복귀한 엘승호, 레스 왈론드, 김광삼, 장문석 등의 한숨 나오는 선발진에서 그나마 에이스 노릇을 하며 암흑기 LG 투수진의 버팀목으로 떠올랐다. 롯데에 유독 강하여 로나쌩 클럽 목록에 등재되기도 했다.

다만 2006년에는 시범경기 도중 허리 근육통으로 인해 시즌 초 재활군과 1군을 오가는 바람에 잦은 선발로테이션 이탈이 있었다. 그럼에도 퀄리티스타트를 6차례 해냈지만 8월 중순까지 고작 1승에 불과했고, 시즌 2승을 8월 24일 홈에서 열린 KIA전에서야 6이닝 6피안타 5탈삼진 1실점을 하며 따냈다.#[] 시즌 최종 기록은 15경기(선발 14경기) 등판하여 84이닝 동안 3승 5패 ERA 4.29로 03~04시즌의 하위선발 정도로 돌아가버렸다.

2007년은 시즌 개막 후 2연승을 내리 거두며 상승세를 타는가 싶더니 이후 6경기 동안 승리 없이 2패에 6점대에 육박하는 평균자책점을 보여주며 황혼기의 하락세를 감당하기 힘든가 싶었는데, 5월 29일 대구 삼성전에서 7⅓이닝 동안 3피안타 2피볼넷 4탈삼진 무실점 대호투를 펼치며 시즌 3승을 따낸 후 다시 상승세를 탔다.# 이후 6월 19일 다시 홈에서 삼성을 만나서는 5⅓이닝 2실점으로 승리를 또 따내며 시즌 5승을 챙기기도 했다.# 6월 말까지는 페이스가 괜찮아 내심 두자리 승수도 기대했으나 8월 경 SK전 구원 등판 중 오른다리의 종아리 근육통으로 인해 페이스가 꺾이기 시작했고, 선발 로테이션에서도 이탈한 뒤 중간계투로 등판하다 9월 20일 마산 롯데전에서 구원승으로 7승을 따낸 뒤 시즌을 조기마감했다. 시즌 최종 26경기(선발 19경기) 등판하여 108이닝 동안 7승 7패 1홀드 ERA 4.67을 기록했다. 당초 풀시즌을 치러 개인 성적이 좋았으면 FA 신청을 하려했으나, 개인 성적도 애매했고, 팀 성적도 최종 5위로 포스트시즌 진출을 아깝게 실패하는 바람에 FA를 신청하지 않았음에도 팀에서 계약기간 2년에 최대 6억원[]을 제시하여 사인을 했다.#

그리고 2008년 시즌 개막을 앞둔 3월 24일 10세 연하의 프로골퍼 한희진과 결혼했는데, 한희진은 전 프로골퍼 한희원의 사촌 동생이어서 그녀의 남편인 손혁과는 사촌 동서지간이 되었다.

그러나 시즌 초 또다시 허벅지 부상으로 인해 전반기를 재활하는데 보냈고, 올림픽 브레이크 이후 후반기부터 등판하기 시작하여 9월 14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선발로 6⅔이닝 무실점 호투한 끝에 시즌 첫 승을 거두었다. 결국 2008년 최종 성적은 11경기(선발 8경기) 등판하여 39⅔이닝 동안 1승 5패, 평균자책점 5.90으로 이미 확연한 하락세였으나[], 2008년 시즌 종료 후 LG와 FA 계약을 맺었다?! 사실은, 당시 FA 대어였던 이진영, 정성훈 2명을 데리고 오기 위해서는 당해의 리그 전체 FA 신청자가 9명 이상이어야 했는데, 그 당시 FA 신청자가 8명 밖에 안 되어서 LG 프런트가 FA 신청요건이 들어맞던 최원호에게 FA를 신청하도록 종용했다고 한다.[] FA 신청이긴 했으나 계약금을 1억만 받고 작년에 계약했던 연봉 2억원을 그대로 다시 계약한 것 뿐이었고[] 팀은 이 전략적 FA 신청 덕분에 계획대로 이진영과 정성훈을 데리고 올 수 있었다.

김재박 감독이 2009시즌 중반 이후 포스트시즌 진출 탈락이 거의 확정되었음에도 유망주를 기용하지 않고 최원호 등 노장들만 주야장천 기용한 것 때문에 골수 LG 팬인 최훈 작가가 대놓고 디스하기도 했다. 결국 육성을 중시하던 박종훈으로 감독이 바뀌면서 2010시즌에는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2군에서 던지다가 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

20시즌 종료 이후 마무리 캠프 지도까지 끝낸 뒤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의 선임과 함께 2군 퓨처스 감독으로 복귀했다. 함께 1군으로 올라왔던 정경배 코치 역시 다시 2군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팀 기조상 2군에 1년~2년차 선수들이나 막 군에서 제대한 선수들, 만년 2군 선수들 밖에 없다보니 2군 성적이 굉장히 좋지 않다. 그나마 좀 잘 하면 1군에 허구한 날 불려가고 있으니 어쩔 수 없지만... 특히 9월 중반에 정민규, 임종찬, 박정현이 U-23 월드컵에 불려가고 1군에서 노수광, 최인호, 김태연까지 외야수 3명이 부상으로 줄줄히 빠지자 2군에서 안 그래도 없던 외야수가 콜업되고, 1군은 10팀 중 가장 많은 투수들을 엔트리에 두고 있다보니 2군의 상황은 그야말로 허허벌판(...)

퓨처스 순위 최하위로 시즌을 마쳤지만 위의 이유로 인하여 비난하는 팬은 전혀 없다. 오히려 기존 유망주들과 2군에서 시즌을 시작할 신인들의 육성에 많은 팬들이 기대를 품고 있다.

작년시즌 지명한 문동주의 합류를 비롯한 박준영, 허인서, 유민 등 나름 좋은 유망주들이 들어왔고 1군은 FA를 안 사준 영향과 타자들의 집단 부진으로 콜업할 법도 한데 1군과 2군의 차이가 높은 한국리그의 차이를 실감한 수베로 측에서 콜업을 상당히 자제하면서 1군에 올라올 기량이 될 때까지 신중하게 하다보니 지난 시즌처럼 선수진 부족을 겪지 않고 있다.

일단 선발진 김기중과 이재민을 중심으로 원투펀치를 구성하고 선발 유망주 박준영도 선발로테에 참여하였고 임준섭, 송윤준등 1군경험이 있는 선수들이 불펜에서 활약, 타선진은 타율은 좋으나 장타력이 없음에도 집중타로 점수를 내고 있다. 게다가 장타율 부재와 1군에서의 삽질로 2군강등 된 이성곤이 2군을 폭격하는데 문제는 대신 콜업된 김인환이 너무 잘하다보니 이성곤이 계속 2군에 짱박히게 되면서 나름 강타선이 되었다.

그렇게 북부리그 1위를 차지하였고 9월 8일에는 9연승을 이어가고 있다.

9월 13일 현재 12연승중이며, 2군 연승 기록을 향해 순항중이다.

결과적으로는 14연승까지 하면서 타이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11월 10일 상술한 14연승 기록과 수베로 감독과의 협업을 통해 1군에 쓰기 위한 유망주 육성에 대해 고평가를 받아 퓨처스 감독으로서는 이례적으로 3년 재계약을 맺었다

최원호 플레이 스타일

LG 트윈스 이적 후 누적된 팔꿈치 부상과 어깨 수술이 겹쳐 기교파 투수로 스타일을 전환했지만, 현대 시절엔 하체를 잘 이용한 안정된 밸런스에서 나오는 140km/h 초중반대 속구를 던졌던 파워 피쳐였으며, 특히 낙차 큰 커브가 일품이었기 때문에 긁히는 날엔 두자릿수 탈삼진도 기록하곤 했다. 다만 평균 이하의 체력으로 많은 이닝을 소화해 주는 타입은 아니었다. 요약하자면 4, 5선발에 최적화된 투수. 현대시절에는 일요일 투수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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