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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성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3. 10. 15.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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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前 남자 쇼트트랙 선수 및 해설위원이다. 현역 시절에는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2차례 세계선수권 종합 우승[], 1999-00, 2001-02 시즌 월드컵 종합 우승[]을 기록했다.

김동성 선수 경력

1996 하얼빈 동계 아시안 게임을 통해 시니어 무대에 데뷔했다. 또한 1996 세계선수권에도 참가하지만 이때는 종합 15위에 머물렀다.

1997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각종 기록을 세우며 평정한 후 곧바로 다시 시니어 대표팀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첫 해만에 1997 세계선수권에서 당시 겨우 만 17세의 나이에 강력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종합우승을 차지하면서 화려하게 데뷔했다. 주니어 세계선수권과 세계선수권을 같은 해에 우승한 최초의 선수이다.[] 당시 500m 은메달, 1000m, 3000m 금메달로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5000m 계주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당시 쇼트트랙 최강자 반열에 들어섰다.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1000m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중국의 리자쥔과 경합을 벌일 때 날들이밀기로 짜릿하게 금메달을 받았다. 이 때 그가 0.053초 앞섰으며 경기 결과가 나오고서도 너무 어이가 없어서 심판에게 몇 번이나 되물어봤던 리자쥔의 모습이 당시 방송을 탔다. 이후 모든 쇼트트랙 선수들은 결승선을 통과할 때 날을 들이밀게 되었다.[] 김동성의 이 금메달은 대한민국이 일본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따낸 최초의 금메달이다.[] 또한 계주 은메달[]을 따는 등 화려한 전적을 쌓으면서 한국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의 아이콘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1500m에서 최강자의 면모를 보였고, 최종 종합 3위를 기록한다.

1000m에서만 은메달을 따고 나머지 종목은 메달권에 실패해, 1997년 이후로 두번째 세선 종합우승에는 실패한다.

비교적 리자쥔에게 밀리던 1000m에서 랭킹 1위를 달성하고, 주종목이 아니었던 500m에서도 랭킹 2위를 기록하는 등 놀라운 발전을 보여준다. 1500m는 살짝 하락한 3위를 기록했지만 종합 랭킹 1위를 기록하며 본인의 첫 월드컵 우승을 달성했다.

주종목인 1500m 결승에서 최하위로 들어왔는데, 우승자는 민룡이었다. 이후 500m에서는 준결승까지 올라갔지만, 여기서 김동성이 코너를 돌며 인코스 추월을 하다 리자쥔과 충돌하여 같이 미끄러져 넘어지고 마는데 보통 선수들이 같이 넘어지면서 다른 선수에게 부상을 입힐 수 있으니 스케이트날을 서로에게서 멀리 해주는게 보통이지만, 리자쥔은 그대로 발을 뻗어 김동성의 몸으로 향하게 하여 고의적으로 다치게 했다. 선수를 스케이트 날로 부상을 당하게 했으면서도 피를 흘리며 신음하는 김동성을 뒤도 안돌아보고 일어선 후 유유히 떠나는 리자쥔의 모습이 가관이다. 김동성은 오른쪽 팔과 허벅지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고 하마터면 얼굴에 닿을뻔 했다고 한다. 김동성 본인 언급으로 '당시 느낌으로는 하얗게 뼈가 보일 정도였다' 할 정도였으니 굉장히 깊게 베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곧 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김동성이 2012년 라디오스타에서 말한바로는 98년 나가노 올림픽에서 다 따놓은 금메달을 본인의 방심으로 김동성에게 빼았긴 것에 대한 복수로 그런 것 같다고 한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오심으로 금메달을 놓친 것도 아니고 김동성에게 날내밀기로 패배한 주제에 살인미수나 다름없는 방식으로 복수를 한다는건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더욱 경악스러운건 리자쥔이 사과했다는 언급은 전혀 없다. 심지어 고의가 아닌 실수로 벌어진 일이라 하더라도 사과를 하는게 당연한 행동이다. 그야말로 빙판위의 사이코패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남자 1000m 편파 판정 논란으로 한창 시끄러웠을 당시 김동성이 한 인터뷰에서 리자쥔의 스케이트날 사건에 대해 다시 한번 언급하기도 했는데, 리자쥔은 사과를 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아예 김동성을 피해다녔다고 한다. 서먹함을 풀기 위해 오히려 김동성 본인이 웃으면서 직접 '너 때문에 팔이 이렇게 됐다' 라고 농담식으로 말을 건내야 했을 정도라고 한다.

월드컵 시리즈에서 큰 부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2000-01시즌에 맞춰 복귀한다. 하지만 이때부터 무릎 컨디션이 나빠지며 월드컵에서는 이전 시즌 만큼의 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하고 종합 10위로 마무리했다. 결국 오른쪽 무릎 연골 손상 때문에 1월달 수술대에 올랐고 시즌 아웃이 되어 세계선수권에는 불참했다.

부상을 모두 털어내고 최고의 폼으로 복귀한다. 1500m, 1000m에서 랭킹 1위, 주종목이 아닌 500m에서도 랭킹 2위를 찍었으며 총 5번에 걸친 월드컵 대회에 모두 출전해 개인전에서만 무려 9개의 금메달을 휩쓸며 본인의 두번째 월드컵을 우승했고, 세계 종합랭킹 1위이자 최강자의 위엄을 제대로 선보인다. 계주에서까지 민룡, 오세종, 이승재와 팀을 이뤄 랭킹 1위를 찍어 정점을 찍었고, 이 압도적인 포스에 김동성이 이끄는 남자 대표팀이 최고의 성적을 낼 것이라 기대를 모았다.

본격_김동성_스피드핵_사용.flv (김동성의 분노의 질주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다.) 1500m 빨리 가는 작전[] 다른 선수들과 거리가 하도 멀어져서 카메라가 어딜 잡아야 할 지 우왕좌왕할 정도인데, 일반인이 막상 보면 그냥 쉬워 보이지만 이것도 엄청난 체력과 스피드가 기본적으로 탑재되어야 가능하다. 후반에 체력이 떨어져서 벌려놓은 거리를 다 말아먹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이 경기처럼 어느 한 주자가 뒤에 따라 붙기라도 하면 공기저항은 공기저항대로 받으면서 2위 주자의 저항을 줄여주는 역할을 하면서 결국 마지막 바퀴 때 체력을 보존한 2위 주자에게 따라잡힐 수도 있다.[] 마크 가뇽이 은퇴하고, 세계선수권에 불참한 오노나 리자쥔이 없어서 이런 작전을 실행하는데 조금 더 수월했던 면도 없지 않다. 당시 포텐도 제대로 안터졌던 안현수가 준우승을 한 것을 봐도 이전 세계선수권 만큼의 경쟁이 심하지 않았다.

참고로 쇼트트랙에는 골 때리는 규칙이 한 가지 있는데, 바로 따라가지 않는 죄다. 앞선 주자에게 2바퀴 이상 추월당하면 심판의 재량에 따라 경기를 포기한 것으로 간주하고 실격이 주어질 수 있다. 이 경기에서 김동성은 정말 아슬아슬하게 1바퀴 반의 격차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룰을 인지한 최후방 주자들은 김동성이 뒤에 달라붙자 미친듯이 속도를 내기 시작하는 장면이 일품이다. 김동성도 이 룰을 알고 있었기에 2바퀴 이상 벌리지 않았던 것. 오로지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고자 했을 뿐이지 다른 선수들까지 실격시키고자 했던 건 아니었던 것이다. 즉 할 수 있었는데 안 한 것일 뿐이다.

이후 500m는 물론 1000m에서도 금메달을 땄고, 이미 우승이 확정 된 상황에서 마저 슈퍼파이널에서까지 금메달을 땄다. 이후 5000m 계주에서는 비록 가뇽이 은퇴해 빠졌다지만 여전히 계주에서는 최강급 전력을 갖춘 캐나다를 상대로도 4번 주자 안현수의 실수로 반 바퀴 이상 차이가 났는데도 김동성이 미친 스퍼트로 따라잡아 기여코 역전승을 거두기까지 하며 그야말로 안드로메다의 기량을 전부 표출했다. 남자부에서는 전무후무한 기록인 6관왕(종합 성적 포함) 기록은[] 남자부에서는 김동성 이후로는 나온적이 없다

이 일이 있던 뒤에 동두천시청 팀에 입단했으나 부상과 코치, 스태프 간의 갈등으로 쇼트트랙계를 잠시 접고 연예계에서 활동. 하지만 이것도 신통치 않아서[] 결국에는 2002년 말에 다시 선수로 복귀했다.

국가대표 선발전의 무릎 부상을 이유로 불참했으나 연맹의 추천으로 선발명단에는 올라갔었다. 다만 김동성 본인이 복귀하지 않아 원래는 6명이어야 하는 대표팀이 5명으로 계속 대회에 참가했다. 이후 민룡이 그의 자리를 메꿨다. 사실상 은퇴하는 분위기였으나, 2003년 2월에 전국체전에 출전해 2개의 금메달을 따며 그의 대표팀 복귀에 관심을 모았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는 또 다시 무릎 부상을 이유로 불참했으나, 당시에는 연맹 추천으로 2명의 추가 선수를 발탁할 수 있었기 때문에 김동성 본인이 원했다면 대표팀에 재승선 할 수 있었지만 당시 김기훈 대표팀 코치와의 불화로 대표팀 자리를 반납해 서호진이 대신 대표팀에 추천 선수로 합류하게 되었다. 이후에도 무릎부상을 완전히 회복하는데는 실패했다.

추천 선수 제도가 없어졌고, 안현수의 엄청난 활약과 함께 남자 대표팀의 에이스로 자리 잡으면서 연맹 또한 더 이상 김동성에게 미련을 갖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05년에 공식 은퇴했다.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만 잘 넘겼어도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까지는 현역으로 활동했을 거라는 의견이 많았다.

 

김동성 선수 평가

쇼트트랙 선수로서는 신장이나 체격이 딱 알맞게 좋은 편으로 스피드, 지구력, 테크닉, 강한 정신력 등 당시 선수들보다 한 단계 위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국제대회에 데뷔한 이후로 중-장거리 최강자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 선수들이 좀처럼 힘을 못 쓰는 500m에서도 세계선수권에서는 금메달과 은메달을 한 개씩 받았을 정도로 약한 편이 아니었으니 거의 올라운더라고 봐도 될 정도다. 전명규의 평에 따르면 운동선수의 피지컬을 타고난 전형적인 천재형의 선수라고 한다.

김동성 은퇴 이후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때는 MBC 쇼트트랙 해설위원을 맡았다.

은퇴 이후 대학 강연 등에서도 이 일을 언급하곤 하는데 '오노 사건 이후로 광고 제의가 많이 들어왔다. 그런데 감독님이 광고를 찍지 말라고 하셔서 화가 나서 연습을 더 많이 했다. 찍었으면 수 십억은 벌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라며 농담 반 진담 반의 이야기도 함께 하고 있다. 은퇴를 하면서 '더 이상 자기와 같은 선수들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 심판이 되어보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은퇴하자마자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 영어를 배우던 와중에 워싱턴 DC에 있는 공식 홈페이지에 있는 학부모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면 어떻겠냐는 건의를 하였고 이 조건을 승낙해 현재는 코치로 일하고 있다. 이 덕분에 코치직을 계속 맡을 것으로 보였지만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 자기가 8년 전에 겪은 아픔이 그대로 반복되는 바람에 결국 다시 심판을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과거 코치를 하러 미국에 있던 시절 당시나 지금이나 국내 쇼트트랙 선수들의 정신적 지주였다. 지금은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했지만 원래 쇼트트랙을 했던 이승훈은 존경하던 선수로 김동성을 꼽았다. 또한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대부분의 선수가 운동을 시작할 무렵이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김동성과 전이경이 메달을 따며 선전한 것을 보고 자란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야구의 박찬호 세대, 골프의 박세리 세대, 축구에서의 4강 신화 세대라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제자 폭행 의혹이 일고 있으며 현재 김동성은 억울함을 주장하며 법적 대응을 준비했다. 이로 인해 코치 자격을 일시적으로 박탈당했다. 2011년 인터뷰에 따르면 자격 정지가 된 다음 날 곧 자격 정지가 풀렸다고 한다. 김동성에 의하면 미국 빙상계에서 의도적으로 한국 인사들을 물먹이고 있으며 그로 인해 여러 가지로 한국 출신 빙상 인사들이 차별과 불이익을 당하고 있으며 이번에 그것을 확실하게 뿌리 뽑겠다며 변호사까지 선임했다. 그리고 8월 16일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 외에도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를 살짝 디스한 적이 있지만, 딱히 사이가 나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기사 내용을 보면 빅토르 안 개인에 대해 초점을 둔 게 아닌 파벌 사건으로 인한 빙상연맹의 이미지 실추가 후배들에게 불이익으로 돌아갈까봐 우려하고 비판하는 마음이 강하다. 또한 소치 올림픽 해설을 하면서 이런 발언을 한 것도 보면 그도 빅토르 안의 귀화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안현수가 김동성의 뒤를 이었던 대한민국의 에이스였음은 물론이고 김동성은 비록 같이 있었던 시간은 짧았지만 안현수가 국가대표 첫 해에 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많이 주었던 선배였기도 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KBS 해설위원으로 출연했다.[] 혹평받았던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해설에 대한 평가는 좋은 편이었다. 선수 입장을 이해 해주면서 잘 대변 해주고 기술이나 전술 설명을 쉽게 이해를 해주었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목소리 톤도 호평이 많았다. 근데 하필이면 악연이 있는 선수가 미국 NBC 해설위원으로 나서서 두 해설위원의 라이벌 구도가 재현되었다. 그러나 오노가 '해설을 잘 하라며 스타벅스 커피를 건네주더라' 라는 기사를 보면 김동성이 이에 대해 '이놈 철들었나봐요.ㅋㅋㅋ'라고 농담까지 하니, 이제는 어느 정도 감정이 풀린 것으로 보인다

김동성 그외정보들

세계선수권을 처음 석권한 나이가 중학교 3학년 그러니까 외국 나이로 14~15세 경이며 그 당시 240kg의 스쿼트를 풀가동 범위에서 1세트에 15회씩 하는 등의 훈련을 했다고 한다.


스케이트를 처음 타기 시작한 건 김동성이 7살 때였고 당시 종목은 스피드 스케이팅이었다. 2년이 지난 후 쇼트트랙으로 전향했다.


2013년 7월부터 MBC 프로그램 맛있는 TV에서 블로거들 사이에서 인기인 맛집들을 섭외없이 방문해서 진정한 맛집인지 검증하는 맛집 검증단으로 활동했으며, 아무래도 운동선수 출신인지라 국내에서 손꼽히는 맛 칼럼니스트들에 비해 음식에 대한 표현력이나 분별력이 확실히 떨어지는 감이 없잖아 있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일반인인 시청자들의 입맛을 대변한다는 입장으로 검증을 한다고 프로그램 자체에서 밝혔다.


한때 "김동성과 오노에게 공동 금메달을 수여하는 것에 대해 인터넷으로 재투표를 진행한 적이 있다. 아시아 측에는 알리지 않은 채 자기들끼리 하고 있고 새벽이면 인터넷 투표가 끝나기에 지금 당장 해야 한다"는 선동글이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이 끝난 2002년은 물론 그 뒤로 몇 년 동안이나 각종 인터넷 사이트와 게시판 및 커뮤니티에 질리도록 돌아다녔다. 지금은 링크마저 끊긴 타임지 홈페이지 인터넷 투표에 실제로 클릭하고 온 사람도 많다. 하지만 올림픽 금메달 수여같은 중대한 문제를 IOC나 조직위도 아니고 타임이라는 언론사 홈페이지 여론조사로 결정한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데다가, 결정적으로 해당 설문조사 문항은 '페어 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1개가 아니라 2개를 주는 것에 대해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였다. 피겨 스케이팅 관련 여론 조사가 갑자기 김동성 금메달 수여에 관한 재투표로 둔갑해 집단 인터넷 삽질을 한 셈이다. 한편, 이러한 인터넷 집단 삽질은 후에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스위스전 편파판정으로 대한민국 대 스위스전 재경기에 관한 투표를 한다"라는 말로 부활해 온 반도의 인터넷 세상을 들쑤시고 다녔다.


성인토크쇼[] 아재쇼에 출연하여 기존 팬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프로그램 출연 자체는 생계 때문이 아닌 그냥 아는 사람의 부탁으로 얼떨결에 출연하게 된 것이라고 팟캐스트 불금쇼에서 해명한 적이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연관 건이 아니었으면 이규혁과 그의 모친 이인숙 등과 함께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 등장했을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이들은 언론에서조차 조명도 받지 못했다.2012년 도전 1000곡에 출연했을 때 본인이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당시 자신의 금메달 수성을 막은 오노의 헬멧 번호가 369라는 걸 회상하면서 369번을 선곡했는데 당시 나온 곡은 김현식의 '사랑 사랑 사랑'이었다.


분노의 질주 사건에 대해서 본인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사진에서 말한 것처럼 2바퀴 이상 추월당한 선수는 탈락하기 때문에, 1바퀴 반 차이가 나자 거기에서 더 벌리지 않고 1바퀴 반 차이를 계속 유지하면서 달렸다고 한다. 정말 화가 많이 났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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