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정보 !

유아인 에대해 알아보자

뤼케 2020. 6. 20. 20:16
728x90
반응형

유아인
유아인은 배역을 감당하는 배우가 아니라 배역으로 자신을 창조해가는 배우다. 자기로써 배역을 소화한다기보다 배역으로써 자기를 살찌워간다. 본래 배우는 해석자다. 배우는 자신의 지성과 감성, 경험과 신체로써 영화의 인물을, 장면을, 스토리를 해석하여 체화하는 ‘해석 창작자’다.(그런 의미에서 배우는 일종의 ’비평 주체’다.) 그런데 배우 유아인은 자기의 감각과 경험을 가지고 대상을 해석, 창작하는 사이에, 그 과정을 통해 만난 새로운 감각과 경험을 다시 자기에게로 가져오는 듯하다. 자기를 인물로 만드는 동시에 인물을 자기로 흡수해버리는 것 같다. 그의 연기가 궁극적으로 해석하고 창조한 것은 배역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그는 연기보다, 삶에 더 뛰어나다.

삶에 뛰어나다니, 이게 가능한 말인가. 무엇이 뛰어난 삶인가. 한 인터뷰에서 유아인은 “이 순간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일 뿐, 사실 난 다 잘 모르겠고, 혼란스러움을 온전히 노출하는 것 말고는 어떠한 정답도 결론도 이야기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그럼에도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건 이 혼란스러운 상태를 유지하며 살고 있다는 것”, “끊임없이 찾고, 구하고, 괴로워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에게 삶의 능력은 결론을 내리고 혼란을 없애는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혼란을 지속하려는 용기로써 그는 결론 없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 이것이 그가 “자기를 부정하면서 자기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 방식이다.

본연의 자기를 유지하면서 다른 삶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삶을 자기 본연의 것으로 살려내는 일, (‘본연’이란 원래의 모양이 아니라 항상 변화 가능한 움직임일 것이다), 이것이 배우 유아인의 연기이자 삶이다. 그는 자기 본연을 잘 드러내는 편인데, 그의 말에선 연기 뒤의 삶이 읽히고, 그의 연기에선 배역 너머 배우가 보이는 까닭이겠다. 그는 간혹, 연기와 삶 모두에 대해 지나치리만큼 진지하단 소리를 듣는다. 당연하다, 진부해지지 않으려면 진지해져야 한다. 고색창연하게도 ‘청춘의 아이콘’이라 불릴 때도 많다. 괜찮다, 그는 여전히 자기 창조 중에 있고, ‘대변하는’ 배우의 역할도 잘 알고 있으니까. ‘아인시대’라니 좀 호들갑스럽게도 들리지만, 좋다, 유아인이 대세라면 청년이 대세인 것이다. 반갑다, 이런 대세, 어쩌면 세대. 오랜만에 청춘이 대세다. 아님 대세니까 청춘인가.
백지은 문학평론가, <사람과 글> 통권 54호 「이런 대세 혹은 세대 - ‘아인시대’」

대한민국의 배우, 예술 디렉터.

1986년생으로 본명은 엄홍식이다. 대구에서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교문 앞 캐스팅을 당해 상경한 후 2003년 라면 광고로 데뷔했다. 2004년 성장드라마 《반올림》에 출연하며 인상적인 캐릭터로 인기를 얻었고, 독립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로 스크린 데뷔를 치렀다. 이후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신인으로서 인지도를 쌓다가 2010년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과 2011년 영화 《완득이》를 통해 주목받는 20대 남자배우이자 충무로 블루칩으로 부상했다. 2014년 《밀회》, 2015년 《베테랑》, 《사도》, 《육룡이 나르샤》, 2018년 《버닝》 등의 대표작을 통해 젊은 배우로서 연기력까지 인정받았다.

2014년에는 아티스트 집단이자 동명의 미술 갤러리 스튜디오 콘크리트를 설립했다. 이곳에서 대표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며 예술가로서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데뷔계기

경북예술고등학교 서양화과 1학년 재학 시절 교문 앞 캐스팅을 당했다. 당시 매니지먼트 관계자가 대구에 들른 김에 예고에 찾아왔고 유아인에게 일해 보지 않겠냐며 제안했다고 한다. 부모님의 반대가 거셌지만 무작정 홀로 서울에 가게 되는데 이처럼 꽤 용기 있는 결정을 한 것에 대해 유아인은 “뭔가 끌어당기는 게 있었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 이후 서울미술고등학교로 전학했으나 곧이어 자퇴했고, 후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이런 이력이 특이하다고 생각했는지 신인 시절 인터뷰를 보면 기자가 자퇴 이유에 대해 항상 물어본다. 유아인은 자퇴 이유에 대해 “학교는 내 인생에 별 의미를 주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2011년 《완득이》 개봉 당시에는 사제관계라는 영화 소재로 인해 학창시절과 자퇴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유아인은 제작보고회에서 자신의 학창시절에 대해 “선생님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회의적인 학생이었다”며 “고등학생들이 스트레스 풀 데가 없다. 억눌린 스트레스가 자퇴로까지 이어진 것 같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서울에서 홀로 생활하게 된 유아인은 고시원이나 기획사 숙소에서 지냈다. 학교를 그만두었기 때문에 친구가 많지 않아서 한동안 외로운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서울 생활 초반에는 자금 관리에 서툴러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 없다고 호기롭게 말하고 집을 나왔기 때문에 부모님에게 의지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나중에 인터뷰에서 유아인은 이러한 독립적인 태도가 “좋은 자산이 됐다”고 밝혔다.

처음부터 배우나 연기에 대한 거창한 꿈이 있던 것은 아니었고, 무작정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데뷔를 준비했다. 2013년에 출연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말한 바에 따르면 “그때는 연예인이 되어야겠다는 꼬맹이의 마음이었다”며 “적당히 생긴 얼굴 믿고 이 정도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데뷔 전에는 무려 솔로 아이돌 가수로 데뷔하기 위해 보컬 트레이닝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재능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가수 준비를 그만뒀다.

 

2003년 2005년 

‘유아인’이라는 예명을 짓고 2003년 쫄쫄면 광고로 데뷔했다. 같은 해 10월 《반올림》 오디션을 봤으나 낙방했지만 나중에 다시 연락을 받았고, 좋은 반응을 얻자 고정 캐릭터로 출연하게 됐다. 당시 오디션은 토너먼트 형식으로 매우 치열했다고 한다. 《반올림》 종영기념 스페셜 방송에서 당시 오디션을 보는 유아인의 모습을 짤막하게 볼 수 있다. 그리하여 2004년 1월부터 KBS 성장드라마 《반올림》에 주인공 이옥림과 사귀는 미술 전공 고등학생 유아인 역할로 출연하기 시작하여 연기자로 정식 데뷔했다. 본인의 예명과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극중 캐릭터는 미술을 전공하고 나이에 비해 진지한 얘기를 하는 등 유아인의 실제 모습이 상당 부분 투영돼 있다.

2004년 4월에는 KBS 수목드라마 《4월의 키스》에 조한선의 아역인 강재섭 역으로 출연했다. 단 1회만 나오는 분량이지만, 카프카의 시를 읽는 문학 소년의 모습을 보이거나 좋아하는 여자에게 제대로 고백하지 못하는 등 이후 유아인이 맡은 여러 캐릭터들과 연관성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편 《4월의 키스》에서는 순박한 시골 소년으로 나오는지라 머리를 짧게 잘라서 당시 출연하고 있던 《반올림》에는 베레모를 쓰고 등장한다.

드라마 《반올림》은 2005년 2월까지 방영됐다. 유아인이 연기한 ‘아인 오빠’ 캐릭터는 그림, 피아노, 공부 등에 능통한 엄친아이자 여자친구를 비롯한 모든 사람에게 매너 있는 미소년이었다. 여기에 다소 어른스러운 성격으로 든든한 매력을 보여줘 청소년들 사이에서 아인 오빠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종영 직후에는 팬카페 회원 수만 15만 명에 육박할 정도였다. 유아인은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2004년 8월 15일 생애 첫 미팅을 치렀다. 다수의 지면 광고와 CF에 출연했을 뿐만 아니라 스쿨룩스, 블루테일 등 교복 및 청소년 의류 모델로서 전국 팬사인회를 했다.

 

그러나 이후에 웬일인지 고향인 대구로 내려가 연기 활동을 잠시 접는다. 전술했듯 데뷔 전 유아인은 연기에 대한 제대로 된 생각 없이 무작정 연예인이 되고 싶어 했었다. 하지만 《반올림》으로 배우의 길을 걷고 나서는 ‘어떤 배우가 될래?’라는 질문이 떠올랐고, 갑작스럽게 찾아온 인기에 “내가 원했던 것인지 고민되고 혼란스러웠다”며 일부러 작정하고 공백기를 가졌다고 밝혔다. 게다가 “많은 기회와 유혹이 있었다. 제 마음대로 선택하지 못하고 옳다는 걸 거스르고 옳지 않은 걸 해야 한다는 게 견디지 못할 만큼 힘들었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백기 동안 “남들에게 비춰지는 내가 아닌 진정 나를 위하는 게 무엇인지, 배우 유아인의 길은 어떤 것일까를 고민”할 수 있었고, “앞으로의 그림을 차근차근 그리며 ‘사람’에 대한 생각”을 오래 할 수 있었다. 당시 본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떻게 대처할지도 몰랐으나, 공백기를 통해 “내게 밀려드는 어떤 현상에 몸둘 바 몰라 하고 휘청거리다 무너지면 안 된다, 내가 앞서 나가 단단히 발을 딛고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나중에 유아인은 자신의 에세이에서 잠적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내가 과연 배우로 살 수 있을까? 《반올림》 오디션을 보면서도,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연예계나 연기에 대해 아무런 지식도 없이 덜컥 오디션에 합격해서 배우로 살게 된 것이다. 일이나 사회생활에 대해 무지한 채, 인간으로의 정체성 또한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1년간 《반올림》에 출연했다. 그 후 나는 쉬기로 했다. 스스로의 내면을 깊게 들여다 볼 시간이 필요했다. 많은 생각 속에서 연기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연기에 열정을 갖기 시작한 나를 발견했다.
잡지 <인스타일> 2011년 7월호 「유아인의 배우 1막 1장」

 

 

2006년 2009년 

활동을 재개하면서 2006년 노동석 감독의 독립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 출연한다. 같은 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고 2007년 5월 개봉 당시에는 전국 3개 관에서 상영된 작은 영화다. 이 영화에서 유아인 맡은 종대는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진짜 총을 찾아 헤매는 소년이다. 노동석 감독은 인터뷰에서 유아인의 캐스팅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른 배우들에게 종대 캐릭터에 대해 물어보면 보통 ‘어떤 옷을 입을 것 같고 무슨 머리 스타일에 이런 성격일 것 같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아인이는 창밖을 한참 바라보더니 살짝 울컥하면서 ‘슬프죠’ 한마디를 하는 거다. 그 순간 ‘종대는 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유아인은 이 영화에 대해 데뷔작으로서 애정을 종종 드러내는데, 2007년 기자간담회에서 “배우라는 앞날에 대한 꿈을 꾸고 그림을 그렸다면 그 그림 속에 꼭 있어야 할 영화”라고 표현했다. 다른 인터뷰에서는 “제 첫 영화이기도 했지만 정말 현실적인 고민들을 하게 해준 작품이었고, 제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깊이까지 저 자신을 끌어준 영화였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영화 속 대사 ‘훌륭한 소년이 될 거예요?’는 배우 유아인을 구성하는 ‘소년성’을 설명할 때 기원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대사는 유아인의 필모그래피 전반을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되는 표현이기도 하다. 본인도 꾸준히 자신의 데뷔작을 언급하면서, 배우로서 고유한 소년성을 갖게 해 준 ‘첫 활시위’ 같은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심사위원 특별언급상 받았고, 유아인은 이 영화로 부산영평상과 평택피어선영화제에서 남우신인상을 수상했다.

이후에는 정윤철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좋지 아니한가》에 출연한다. 정윤철 감독은 개봉 후 인터뷰에서 자신의 전작 《말아톤》의 오디션에서 유아인을 눈여겨 봤었고, 《좋지 아니한가》 제작 초기부터 유아인의 캐스팅을 염두에 뒀다고 밝혔다. 정윤철 감독은 유아인에 대해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바로 유아인을 떠올렸다. 완벽하게 잘생긴 얼굴보다 무언가 결핍이 있는 얼굴을 좋아하는데 유아인이 그랬다”라고 표현했다. 유쾌한 가족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에서 유아인은 아들 심용태 역을 맡았다. 전생에 왕이라고 믿으며 짝사랑하는 여자 때문에 자살을 시도하는 캐릭터다. 유아인은 이러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엉뚱함이 억지로 꾸미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배어날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우울한 청춘 역할과 《좋지 아니한가》의 4차원 소년 역으로 좋은 연기를 선보이며 기존의 아이돌스러운 이미지를 벗고 신인 배우로서 호평을 얻었다.

2008년 드라마 《최강칠우》에서 흑산 역을 맡아 양반집 자제와 냉혹한 자객을 오가는 연기를 펼쳤다. 유아인에게는 첫 사극 도전이기 때문에 많은 부담이 있었지만 “하나씩 배워나가면서 촬영에 임하고 있다”며 제작발표회에서 소감을 밝혔다. 촬영 현장에서 진행된 ‘아리랑TV’와의 인터뷰에서는 오랜만의 드라마 촬영으로 힘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배우로서의 직업의식과 함께 프로 연기자로서 잘해야겠다는 책임감이 든다고 말했다. 유아인은 고독하고 어두운 캐릭터를 통해 유망주로서 새로운 매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얻었고, 냉소적으로 보이지만 내면의 아픔을 간직한 연기를 선보여 ‘완소 자객’이라는 호응을 얻었다.[6] 종방 기념 드라마 팬미팅에서는 극 초중반까지 등장인물들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을 연기해야 했기 때문에 “설득력 있게 소화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모든 분들이 잘 이끌어 주셨기에 잘 해낼 수 있었다”면서 “혼자 촬영하는 신이 많아서 선배분들과 가까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있다” 고 말하기도 했다.

같은 해 11월에 개봉한 민규동 감독의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에서는 전직 복서[7]인 파티시에 견습생 양기범 역으로 출연했다. 이 영화는 요시나가 후미의 동명 만화를 각색한 것으로, 유아인이 맡은 역할은 미소년이자 건강한 청년이지만 성격은 다소 다혈질인 캐릭터다. 케이크를 좋아한다는 설정으로 인해 영화 속에서 유아인의 케이크 먹방을 끊임없이 볼 수 있기도 하다. 또한 역할을 위해 복싱과 파티시에 수업을 들었는데, 공개된 메이킹 영상들을 통해 그 노력의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는 남자배우 네 명의 조화가 잘 어우러지는 영화다. 그럼에도 본인의 분량에 대해 아쉬움은 없느냐는 질문에는 “맛있는 영화에 적당량의 재료로 쓰였다고 생각해요”라고 답했다. 이 영화로 유아인은 충무로의 차세대 기대주로 손꼽혔고 제11회 디렉터스컷 시상식에서 올해의 남자신인연기자상을 수상했다.

2009년에는 동명의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결혼 못하는 남자》에서 건축 사무소에서 일하는 입사 1년차 박현규 역을 맡았다. 지속되는 야근으로 힘들어하지만 일적으로 한 단계씩 성장하려 하고, 여자친구와 소소하게 떡볶이 데이트를 하는 등 유아인의 필모그래피에서 흔치 않은 밝고 평범한 캐릭터다. 같은 해 장나라가 출연하여 화제가 된 영화 《하늘과 바다》에서는 피자 배달부 진구 역을 맡았다.

 

2010년 2013년

2010년에는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 걸오 문재신 역으로 캐스팅됐다. 제작 초기에는 다른 역할로 제안이 왔지만 대본을 받고 걸오 역에 매력을 느껴 해당 역할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제작사 래몽래인의 김동래 대표는 “처음에는 유아인에게 다른 역할을 맡기려고 했지만 서너 번이나 걸오 역할을 맡겨 달라며 오디션을 보기 위해 찾아왔었다”라고 회고한다. 머리를 풀어헤친 콘셉트나 의상, 메이크업도 배우 본인이 설정한 것이라 한다.

《성균관 스캔들》은 정은궐 작가의 인기 로맨스 소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사실 유아인이 걸오 역에 캐스팅됐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졌을 때는 원작의 ‘걸오’가 지닌 거친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원작 팬들의 반대 여론이 일기도 했다. 당시 그의 이미지는 일명 두부상으로 여리여리한 미소년이자 꽃미남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아인은 제작발표회에서 “미소년 느낌의 이미지가 강해 연기를 하면서 그로 인한 아쉬움과 갈증이 있었다”며 드라마를 통해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드라마가 시작하고 뚜껑이 열리면서 초반의 우려를 씻어냈고 이처럼 방영 전과 후의 온도가 달라졌다. 그가 연기한 걸오는 세상을 바꾸려는 청춘이면서 좋아하는 여성을 묵묵히 지켜주는 캐릭터다. 결국 이 캐릭터의 이름을 딴 신조어 걸오앓이를 만들어 내며 시청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고, 방영 기간과 종영 후에도 걸오와 관련한 각종 2차 창작물이 양산됐다.

유아인은 걸오 캐릭터에 대한 생각과 자신과의 공통점을 여러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특히 걸오가 홍벽서[8]로서 사회에 대해 많은 말들을 해줘서 좋았으며, 아웃사이더로 살아가는 걸오의 마음이 궁금했고 자신의 모습과 닮아 있어서 연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같은 인터뷰에서, 걸오에 대해 “올라가도 산속의 나무가 아니라 명륜당 앞 나무에 올라가고 누워도 들판이 아니라 중이방 툇마루에 누워 있잖아요? 내부에 온전히 발을 못 담가서 어떻게든 멀어져 있으려고 높이 있으려고 하지만, 그 경계를 벗어나면 동떨어져 있으려는 노력 자체가 무의미해져 버리는 아이”라고 분석하면서 이러한 모습이 “배우로서 제 모습이기도 하거든요”라고 설명했다. 또한 걸오의 인물소개에 ‘조선판 짐승남’이라 써진 것에 대해 “날이 설 때는 확 서지만 평소에는 힘이 없는 짐승”으로 평소에는 “몸에 힘을 풀고 있는 아이”로 해석해 연기했다고 말했다.

《성균관 스캔들》은 유아인에게 상당히 의미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20대 대표 배우로서 주목받았고 배우로서 지닌 고유한 이미지가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팬덤의 크기 역시 확장됐다. 유아인 역시도 《성균관 스캔들》 이후 작품 선택의 폭이 넓어져서 “배우로서 살아나가는 데 큰 힘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한 인터뷰에서는 다소 늦게 대표작을 만난 아쉬움이 없느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8년 됐다는 얘기할 때마다 창피하고 끔찍해요.(웃음) 주변에서 아쉬워하는 분들도 많고요. 하지만 뭐 그래도 전 굉장히 만족하면서 여기까지 왔어요. 건방져 보이겠지만 24살, 이제 뭔가 펼치기 위해 그간 남부러울 것 없는 커리어를 쌓아왔다고 생각해요. 매니저 말을 들었으면 더 돈도 많이 벌고 더 빨리 인기를 얻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제 나름대로는 그런 부분은 포기하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작품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걸오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고요.
2010년 10월 13일 ‘연합뉴스’ 인터뷰

2011년에는 김려령 작가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영화 《완득이》의 주인공 얌마 도완득 역을 연기했다. 유아인은 극중 혼혈 설정을 위해 매일 얼굴에 검은 분장을 하며 촬영했다. 운동을 워낙 싫어했지만 역할을 위해 킥복싱 훈련을 받았다. 영화에서는 편집됐으나 시나리오에는 야구를 하는 장면이 있었기 때문에 투구와 타격 연습도 했다. 후에 이한 감독은 GV에서 말하기를, 캐스팅 당시 유아인은 야구나 축구를 해본 경험이 없었고, 발차기를 시켰더니 발이 허리까지밖에 올라오지 않아 걱정이었다고 한다. 이에 유아인은 아침 8시부터 해 질 녘까지 킥복싱 훈련을 받아 머리 위까지 발차기하는 등 실력을 발전시켜 감독의 걱정을 타파했다고 한다.

《완득이》는 개봉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들에게 미리 공개됐고, 같은 해 10월 개봉했다. 이듬해인 2012년에는 베를린 국제 영화제 제너레이션 14플러스 부문에 초청되어 수정곰상 후보에도 올랐다. 유아인은 소설 속 도완득과 높은 싱크로율을 선보이며 안정적인 연기를 펼쳤고, 선배 배우 김윤석과의 앙상블 역시 호평을 받았다. 특히 당해 슬리퍼 히트작으로서 전국 관객 531만 명을 동원하고 제3회 올해의 영화상에서 올해의 발견상을 수상했다. 또한, 부일영화상을 통해 처음으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영화에서도 대표작을 만든 셈인데, 이후 함께 연기한 배우들이나 그를 캐스팅한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보면 《완득이》를 통해 유아인을 주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아인은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너무 착해서 불쌍했어요. 기껏 엄마를 만나서도 애인처럼 구두 사주고, 마침내 버스정류장에서 포옹할 때에도 제 안의 응어리를 먼저 풀지는 못하고 우는 엄마한테 (두팔을 벌리며) ‘제 품에 안기세요’ 하는 모양이 너무 조숙해서 불쌍했어요”라고 말하면서 완득이를 아이다운 아이로 만들어주지 못하고 성인처럼 살 수밖에 없도록 몰아붙이는 상황이 안타까웠다고 밝혔다. 영화가 완득이의 깊숙한 내면까지 비추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완득이라는 인물을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굳이 거기까지 들쑤실 필요가 없는 리듬으로 흘러가는 영화예요. 우리 영화의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불우한 환경에 처한 인물을 그리면서 왜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냐고 투정부리지 않고 미끈하게 다뤘다는 점이 만족스러워요”라고 말했다.

사실 《완득이》는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의외의 선택이었다. 대부분 그가 《성균관 스캔들》 이후 트렌디한 로맨스물의 첫번째 남주인공을 연기할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유아인은 다시 고등학생을 연기한다는 점에 대해 “요즘 학생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연기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앞섰다”고 털어 놓으면서도 “부담이 되긴 했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저의 진로를 깨고 싶기에 도전했다”면서 “《성균관 스캔들》 이후 사람들의 기대치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 이미지를 깨면 더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연기 변신’ 그런 거창한 말보다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당연한 순서를 따르지 않고 싶었어요”라고 덧붙였다. 한편 개봉 즈음에는 영화 잡지에 에세이를 기고하면서 걸오앓이로 유명세를 탄 소회와 《완득이》를 차기작으로 선택한 이유를 밝혔는데, 특기할 만한 문단은 다음과 같다.
나는 정확히 내가 겪은 시간과 경험만큼만, 생경하게 찾아온 인기를 이해하고 또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만큼 닳은 채로 ‘완득이’를 만났다. 영화다. 그것도 열일곱 살 소년이란다. 기껏 성인 연기자의 타이틀을 달았는데, 이 아이는 처음 연기를 시작하며 맡았던 드라마 《반올림》의 ‘아인 오빠’보다 더 어린 친구다. 배우의 운명은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정의되고 또 그렇게 흘러가는가 보다. 나는 아역 이미지를 벗지 못한 풋내기 배우였고, 미디어는 ‘걸오’ 캐릭터야 말로 성인 연기자로의 진정한 발돋움이니 뭐니 하는 식상한 말들로 내 운명을 이끌어 가고 있었다. 어쩌면 《완득이》는 당시 나를 향한 눈들의 기대와 예상을 배신하면서, 동시에 내가 그것들을 떨쳐내고 초연해지도록 돕는 필연적인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겐 그런 상태가 절실했다.
잡지 <무비위크> 496호 「유아인 완득이를 만나다 1」

2012년 드라마 《패션왕》에서 주인공 강영걸 역으로 출연했다. 성공에 집착하여 비겁하지만 인간미 넘치는 불운의 캐릭터를 잘 표현했다는 평을 얻었다. 패션을 모티브로 젊은이들의 성공과 사랑을 그리는 줄거리와 주목받는 캐스팅[9]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초반에 비해 개연성이 떨어지는 전개가 이어지다 비극적이고 다소 충격적인 결말로 막을 내렸다. 유아인은 이미 엔딩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촬영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내러티브와 캐릭터가 잘 섞이지 못해서 아쉬웠고, 시청자 반응을 흡수하는 것과 뚝심있게 밀고 나가는 것의 균형을 맞추지 못해 시청률 반등의 기회를 놓친 것 같다고 자평했다. 또한 자신의 성공만을 바라보는 현실적인 캐릭터가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인상을 주기도 했지만, 이로 인해 사랑을 깨닫지 못한 채 찌질하고 허세적인 모습을 보여줘 부정적인 의견도 있었다. 이에 대해 유아인은 본인의 캐릭터가 멋있는 척을 하지 않아 좋았고, 판타지에서 벗어난 인물이라 신선했다고 밝혔다.[10] 허세적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힘이 잔뜩 들어간 연기를 의도했지만, 시청자들이 보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매력 있게 연기하지 못해 아쉬웠다고 말하기도 했다.

《패션왕》은 마지막 회 촬영 후에도 수정 대본이 나오는 등 힘든 여건 속에서 진행됐는데, 대본상 이야기의 흐름이 이해하기 어려울 때 유아인은 신세경에게 “이게 우리의, 배우의 운명이야. 우리는 주어진 것들을 어떻게든 이해해내는 수밖에 없어”라고 말하기도 했다. 종영 후 인터뷰에서는 주어진 대본대로 연기해야 하는 것에 대해 “근본적으로 작가와 감독은 내 세계의 신, 내 주인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해하고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동의할 수 없다 해도 그가 쓴 곳에 내가 가 있어야 하고, 그가 쓴 말을 내가 내뱉어야 하니까”라고 말했다. 또한 “현실적으로 나의 신이 불완전할 수도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동안 나는 나의 신들이 불완전조차도 완전하게 구사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걸 의심하면서 일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니까. 그게 배우의 운명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이번에도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라고 덧붙였다.

2013년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는 숙종으로 출연했다. 새로운 장옥정을 보여주려고 야심차게 기획되었지만 착한 장옥정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은 그리 열광적이지 않았고 역사 고증에 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남자인 동시에 왕권 강화를 최우선 목표로 삼고 카리스마를 내뿜는 정치 10단의 절대 군주를 표현하는 유아인의 연기는 호평 받았다.왕이 섹시한데 비주얼도 폭발한다 특히 드라마에서 김태희와 함께 일명 ‘순정커플’의 달달한 애정씬을 선보여 시청자들을 설레게 하기도 했다. 이처럼 역사극이 아닌 로맨스 사극의 관점으로 본다면 드라마팬들에게 상당히 만족스러운 드라마였기 때문에 종영 이후 커플팬들을 위한 DVD가 발매되기도 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영화 《깡철이》가 개봉했다. 부산 출신인 안권태 감독의 세 번째 연출작이다. 부산 올로케이션 영화이며 유아인을 비롯 대부분의 배우가 부산 사투리를 사용한다. 유아인이 연기한 강철은 부두 하역장에서 일하며 치매에 걸린 엄마를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청년이다. 유아인은 영화의 제목이 《완득이》와 비슷해 처음에는 시나리오를 읽어 보지도 않았지만, 《완득이》보다 훨씬 더 인물의 내밀한 세계로 들어가는 영화이기 때문에 선택했다고 밝혔다. 특히 본인의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 컸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유아인은 선배 김해숙과 엄마와 아들로 만나 훌륭한 앙상블을 이뤘고 강도 높은 액션과 감성 연기를 동시에 보여줬다는 평가를 얻었다. 만족스러운 흥행 성적을 얻지 못했지만, 첫 원톱 주연을 맡아 영화를 이끌어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여담으로 김해숙은 촬영 이후에도 유아인에 대해 공공연히 애정을 드러냈는데, 유아인이 김해숙의 생일에 자필 카드와 함께 선물을 사줬고 사석에서도 엄마라고 부른다고 한다

 

2014년 2016년

유아인은 동년배 배우 중에서도 손꼽히는 연기를 선보이면서 독보적인 이미지를 구축해 20대 대표 배우로서 인정받았다. 그러나 흥행 면에서는 다소 주춤한 것이 사실이었다. 2013년 10월 ‘아이즈(ize)’와의 인터뷰에서 “생각해보면 내 흥행력에 비해 나는 너무 큰 영광을 누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같은 해 5월 잡지 <Geek>과의 인터뷰에서는 20대가 끝으로 가고 있는데(당시 한국 나이로 28세), 자신의 20대를 대표할 만한 작품을 만나지 못한 것 같아 갈증이 난다고 밝혔다. 유아인은 이 시기 고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인터뷰했다.
내가 나한테 질렸다. 관객들도 나한테 질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많은 작품을 한 건 아니지만 아무리 다른 작품을 하려고 해도 자꾸 내가 좋아하는 걸 하게 됐고, 그런 내 자신에 질렸다. 단순히 캐릭터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연기 스타일이 일관성이 생긴 것 같았다.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2015년 8월 3일 ‘일간스포츠’ 인터뷰
내 스스로 관객 입장에서 유아인을 바라봤을 때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았다. 예전에는 ‘당신들이 좋다고 해도 내가 좋아하는 거 할 거야’라는 입장이었다면 지금은 ‘그게 좋다면 한번 해볼까’ 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웃음) 나 혼자만의 예술이나 놀이가 아니니까.
잡지 <맥스무비> 2015년 9월호

2014년 2월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에서 더빙을 맡았다. 장형윤 감독이 말한 바로는, 먼저 정유미에게 시나리오를 건넸는데 놀랍게도[11] 수락을 했고, 정유미가 다시 유아인을 추천했다. 연예인이 더빙했다는 사실에 성우 팬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장형윤 감독은 본래 비전문 성우를 자주 기용했으며 배우들이 거의 노개런티로 다양성 영화에 참여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유아인 본인도 언론시사회에서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과 우리나라 영화의 다양성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는 감독님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생각에서 참여하게 됐다”면서 참여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

같은 해 3월에는 《우아한 거짓말》에 특별 출연했다. 이한 감독과 전작 《완득이》를 함께한 인연이다. 유아인은 이 영화에서 추상박 역할로 출연하여 극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백문이 불여일견. 사진을 보자. 대충 아래의 모습으로 영화 내내 등장한다. 특별출연임에도 분량이 적지는 않으며, 영화의 소재처럼 아픈 과거를 지니고 있는 캐릭터다..

2014년 드라마 《밀회》에 남자주인공 이선재 역으로 출연하였는데 상대 여배우 김희애와는 무려 19살 차이가 나 화제를 모았다. 캐스팅 당시 유아인은 영화 《베테랑》에 이미 캐스팅된 상태였고, 미국에 체류 중이었다. 유아인이 해외에 있었고 마침 소속사를 옮기는 시점이라 제작진 측에서 연락이 잘 닿지 않자, 김희애가 직접 유아인에게 연락을 하기도 했다.[12] 유아인은 천재 피아니스트 캐릭터를 위해 피아니스트의 영상들을 참고하며 실제로 타건했다.[13] 함께 출연했던 배우 윤복인이 말한 바로는, 실제로 타건하되 피아노 울림판을 수건으로 막아 놓아 연주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한 후 촬영했다고 한다.인터뷰 기사. 드라마의 클래식 슈퍼바이저가 곡을 선정해 참고할 동영상과 함께 과제를 주면, 유아인은 동영상을 보며 타건 위치와 모션 등을 숙지하고 이처럼 곡에 맞춰 연습을 한다. 그 후 촬영에 들어가면, 건반을 두드리며 연주하는 연기는 유아인이 직접 하고, 그 위에 대역인 전문 피아니스트의 연주 소리를 입히는 방식이다

 


《밀회》는 종편에서 상당히 높은 5%대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방영 내내 VOD 다운로드 순위 1위를 기록했다. 또한 일본과 중국 등에 방영되어 호평을 받았다.이거 특급칭찬이야 드라마 자체의 완성도도 높았지만 극중 순수하면서도 돌직구 발언을 하는 이선재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하며 연기력을 또 한 번 인정받아 대표작을 추가했다. 배선영 칼럼니스트는 정제되지 않은 발언들 탓에 그간 유아인에 대한 평가가 호불호로 나뉘었었으나, 《밀회》를 통해 그가 아주 귀중한 배우라는 것을 증명했다고 평가했다.

유아인 본인도 《밀회》에 대한 애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편이다. 드라마 종영 이후 이례적으로 자신의 페이스북에 긴 소감문을 남기기도 했다.(전문은 여기에서 확인.) 방영 전 인터뷰에서는 순수하고도 평범하지 않은 스무 살[14]인 데다, 예술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에 그간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인터뷰 기사. 제작발표회에서 한 발언을 덧붙인다면, 그간 반항기 어린 인물들을 연기하느라 각목을 들거나 복싱을 했는데, 섬세하게 음악을 표현하는 연기를 해서 예술적으로 큰 쾌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방영 후 잡지 <더블유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는 “《완득이》 이후로 한동안 더 나아가지 못하고 맴도는 느낌이었는데 《밀회》를 통해 한 발짝을 떼게 된 것 같다”고 표현했다.

2014년 3월에는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이 크랭크인했고, 안하무인 재벌 3세 조태오 역을 맡아 처음으로 악역에 도전했다. 유아인은 《밀회》 촬영 전 이미 《베테랑》에 캐스팅된 상태였다. 하지만 제작사에 《밀회》에 반드시 출연하고 싶다며 양해를 구했고, 《밀회》 후반부와 《베테랑》 초반의 촬영을 동시에 소화했다. 제작사 측은 유아인을 위해 스케줄 상 액션이나 어려운 장면의 촬영은 뒤로 미루는 등 배려를 해줬다.인터뷰 기사. 후에 홍보 인터뷰에서 선한 인물과 악한 인물을 동시에 연기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처음엔 덜컹덜컹했다. 숨기려고 많이 애썼다. 집중 못 해서 어설프게 연기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안 됐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했다”고 털어놨다. 또한 “선재를 연기할 때는 굉장히 편했다. 늘 해오던, 좋아하는 연기 스타일이었다. 반면 조태오는 너무 어려웠다. 첫 악역 도전이지 않았나. 치밀하고 세밀하게 접근했다”고 말했다.

류승완 감독은 유아인이 2013년 《깡철이》 홍보 차 부산국제영화제에 찾았을 때 《베테랑》의 시나리오를 건넸다. 당시 조태오의 캐스팅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류승완 감독은 “배우들이 광고에도 나와야 하고 이미지 신경을 많이 써야 하니깐 섭외가 쉽지 않더라”며 “실제 몇몇 배우에게 보내고 바로 거절당했다”고 회상했다. 와중에 부산국제영화제 사석에서 유아인을 만났던 것. 유아인은 영화에 관심을 보였고, 류승완 감독에게 소속사가 아닌 자신의 개인 이메일로 시나리오를 보내달라고 했다. 그러나 처음 받은 시나리오에는 조태오에 대한 설명이 장황하게 적혀있었고, 유아인은 설명을 다 빼고 더 시원하게 나쁜 놈으로 그려달라고 했다. 류승완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영화 얘기를 했는데 관심 있어 했죠. 시나리오를 보냈고, 바로 연락을 받았어요. 아인이가 ‘감독님, 이 인물 설명이 너무 많아요. 그냥 나쁜 놈 아니에요?’라고 했죠. ‘그거야, 네가 거절할까봐 설명을 완전 많이 붙여넣은 거지!’라며 쾌재를 불렀어요.” 그렇기 때문에 류승완 감독은 <영화는 수다다>에서 유아인에 대해 “복덩어리가 굴러들어온 것 같았다”고 말했다. 또한 보통 배우들은 악역을 연기할 경우 해당 캐릭터가 악해야 할 정당한 이유를 부여해 달라고 요구하는데, 유아인은 오히려 “그냥 나쁜 놈이면 안 돼요?”라고 말해 고마웠다고 전했다.

사실 유아인은 평소만큼 자신있지는 않았지만, 본인의 스타일로 악역을 풀어내려고 노력했다. 본인 내면에 있는 천진함과 소년스러움을 활용하여 나쁜 짓을 해도 흡사 아이가 벌레 괴롭히듯이 표현하고자 했다. 또한 캐릭터를 “진짜 철이 없고 생각이 없는, 그래서 더 무섭고 더 악독”하며 “돈과 권력이라는 온실 속에서 잘못 길러진 화초같은 존재”로 해석하며 연기했다. 조태오의 의상과 관련해 직접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으며, 날선 느낌을 원한 감독의 생각과는 다르게 “지금까지 미디어에서 접한 재벌 2·3세는 다들 살이 도톰하고, 뺀질뺀질한 느낌”이라고 생각해 오히려 5kg을 찌우기도 했다. 영화 후반 명동 싸움씬을 촬영할 때는 어깨근육이 파열되는 부상도 당했다. 어쨌든 이렇게 고생한 덕인지, 2015년 8월 5일 개봉[15]한 《베테랑》은 8월 29일 천만 관객을 돌파했고, 최종적으로 1,300만 이상의 관객을 모으면서 2015년 개봉한 영화 중 흥행 순위 1위에 랭크됐다.

2014년 7월 《베테랑》의 촬영이 끝난 후에는 영화 《사도》가 크랭크인했다. 2014년 5월, 영화 《사도》의 출연확정 기사가 떴을 때는 화려한 라인업[16]으로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유아인은 사도세자 역으로 10대 중반부터 뒤주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연기했다. 촬영 중 머리를 박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로 돌에 박았고 그때 머리가 깨지고 진짜 피를 흘리면서 부상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언론시사회에서 “육체적 고통보다는 감정적인 연기가 더 힘들었다”고 말하면서 인물이 느끼는 외로움과 운명을 거역하고 광인으로 변하는 모습을 적절하게 연기하는 데 많이 애를 썼다고 털어놨다. 《사도》는 2014년 10월 크랭크업했다.

영화 《베테랑》이 천만 관객을 돌파하고 조태오 캐릭터로 연기력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고 있던 2015년 9월 16일 《사도》가 개봉했다. 영화 공개 후 평단과 기자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았고, 전국 관객 620만을 넘기며 2015년 개봉한 한국영화 흥행 4위에 올랐다. 사실 작품이 연달아 공개되었고 안하무인 악역 캐릭터의 임팩트가 커서 관객의 몰입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나, 오히려 두 영화에서 모두 훌륭한 연기력을 선보이면서 연기 잘 하는 젊은 배우로 대중들에게 각인되었다.

유아인은 《사도》에서 연기할 수 있었던 것이 영광스럽다고 표현한 바 있다. 젊은 배우가 좋은 배역을 만나는 게 쉽지 않은데, 깊은 감정을 연기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2015년 홍보인터뷰에서는 《사도》의 개봉을 손꼽아 기다려왔으며 ‘12년간 준비했다’고 말할 정도로 조금씩 추구해왔고 걸어왔던 길의 정점이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인터뷰를 인용하자면, 연기하면서 보여줄 수 있는 감정의 진폭이 큰 데다, 불안하고 어두운 청춘 캐릭터를 표현하기 좋아했던 유아인으로서 20대 마지막(촬영 당시 한국 나이로 29세)에 만날 수 있었던 정점의 캐릭터이기 때문에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사도는 제가 해왔던 그리고 그리고자 했던 인물의 끝판왕이에요. 정점에 있는 작품이죠. 톤도, 사도라는 인물에 대한 성질도 그래요. 불안한 청춘, 반항아 그런 모든 것들의 집약체 같은 인물이에요.
2015년 9월 10일 ‘마이데일리’ 인터뷰

2015년은 유아인에게 상당히 고무적인 해였다. 동년배 연기자 중에선 연기력으로 상위권을 인정받으며 드라마와 영화에서 상당히 괜찮은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던 중 《베테랑》에서 훌륭한 악역 연기를 선보여 대중들에게 연기파 배우라는 인식을 줬다. 연이어 개봉한 정통사극 《사도》에서도 비극적 인물의 어둡고 깊은 감정을 잘 보여줘 믿음직한 배우로 자리매김했고 최고의 대세 배우로 떠오르며 전성기를 맞았다.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아인시대’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특히 《사도》를 통해 제36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17]을 거머쥐고 한국갤럽에서 조사한 ‘2015년을 빛낸 영화배우’ 1위[18]에 오르는 등 커리어적으로 큰 성과를 이뤄냈다. 2015년 12월 이승한 칼럼니스트는 《밀회》를 지나 《베테랑》과 《사도》에 도달한 지점이 유아인의 “필모그래피에서 의미심장한 방점이다”면서 유아인은 “필모그래피 내내 이젠 말라붙어버린 ‘청춘’이란 단어에 생기를 불어넣고 단어의 평면에 깊이를 더해 ‘지금 여기’의 청춘의 얼굴을 입체감 있게 그려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기사. 같은 해 10월 정시우 기자는 “겸손이 미덕으로 평가받는 쇼비지니스 세계에서 그의 행보는 위험한 구석이 있었고, 실제로 그가 내뱉은 말들은 누군가에게 ‘허세’로 평가받기도 했다”면서 《밀회》부터 시작돼 2015년을 거친 유아인의 행보는 “그가 단순히 슈퍼스타에 등극했다는 면보다, 그의 재능과 취향이 보다 넓게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평했다.기사.
그 유아인의 소년성에 대해 얘기할 때 모두가 기억하는 장면, 데뷔작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 그가 마지막에 꼬마로부터 받아든 질문 “훌륭한 소년이 될 거예요?”로부터 10년을 충실히 채워왔다. 진정 그의 다음이 기다려진다.
주성철 편집장, <씨네21> 1022호 에디토리얼 「유아인 다시 보기」
선명하게 나라는 사람과 나라는 배우를 보여주고 싶다는 강박이 작용했다.《밀회》가 아주 컸다. 《밀회》가 없었다면 《베테랑》도 《사도》도 그렇게 행복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밀회》는 장르로, 선 굵은 캐릭터로 넘어가는데 거부감이 덜했던 작품이다. 《밀회》로 시작해 《베테랑》과 《사도》로 이어졌던 것 같다.
2015년 10월 8일 ‘노컷뉴스’ 인터뷰

사실 유아인은 위의 인터뷰를 통해 밝혔듯, “그간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는 강박”이 있었기 때문에 《밀회》를 시작으로 《베테랑》과 《사도》를 선택했다. 주간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는 20대의 마지막 한 해에 찍은 세 작품에 대해서 “이십 대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 있지만 그 안에서 얻은 최대치의 행운이 이번 작품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밀회》의 이선재가 유아인이 가진 소년성의 엑기스였고 《사도》의 사도세자가 유아인이 추구했던 연기 선상의 끝이라면, 《베테랑》의 조태오는 유아인에게 있어 “번외편 같은 인물”이다. 특히 많은 관객들이 《베테랑》을 사랑한 덕분에 본인의 연기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을 “다리를 조금 옆으로 찢을 수 있는 배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2015년 7월에 영화 《좋아해줘》가 크랭크인 했고 8월부터는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촬영에 돌입했다. 영화 《좋아해줘》는 같은 해 10월에 크랭크업했고, 2016년 2월 17일에 개봉했다.[19] 유아인은 연예인병에 걸린 우주대스타 노진우를 연기했으며 까칠한 드라마 작가로 분한 이미연과 커플을 이룬다. 주변을 의식하는 연예인 캐릭터를 위해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직접 의상을 골랐는데, 영화 속의 의상이 100% 본인 옷이라고 한다. 영화는 옴니버스식 로맨틱 코미디물로, 유아인에게는 데뷔 이후 첫 로맨스물이다. 본인도 이런 사실이 놀랍다고 말했다. 하지만 옴니버스 형식인지라 등장하는 씬이 많지 않다.[20] 그럼에도 배우로서 배우를 연기하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고 밝혔으며, GV에서 작품 선택 계기를 묻는 팬의 질문에 답변으로 다음과 같은 얘기를 풀어 냈다.
촌스러워요. 촌스러운 일이지만 또 현실적인 일이기도 해요. 그게 뭐냐면 여자감독님과 함께 해보고 싶다, 함께 작업해 보고 싶다. 사실 감독님한테 남자감독님이면 남자감독님이라고 부르지 않잖아요. 근데 여자감독님한텐 여자감독님이라고 잘 부르거든요, 사람들이. 배우한테도 그래요. 그냥 배우라고 하지 남배우라고 안 하잖아요. 근데 여자배우들한텐 여배우라고 해요. 그게 여자들이 특별한 존재여서일 수도 있지만 손해 보는 일들이 많아서이기도 해요. 실질적으로 사회생활 하면서 여성분들이 이 사회생활에서 아직도 동등한 위치에 올라서 있지 않다라는 의미에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조금 여자감독님과 같이 작업하면서 같이 힘도 실어 드리고 싶고, 또 여자감독님은 어떤 특성이 있을까? 항상 남자감독님들과만 해왔는데, 조금 섬세하지 않을까? 뭐 그런 기대들을 할 수 있었던 것 같고, 아무튼 그런 부분에서 굉장히 흡족한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2016년 2월 26일 압구정CGV에서 열린 《좋아해줘》 GV

2015년 10월부터는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가 방영됐다. 이 드라마는 2011년에 방영됐던 《뿌리깊은 나무》의 프리퀄로 유아인은 여기서 이방원 역을 맡았다. 드라마 《패션왕》에서 호흡을 맞췄던 신세경과 재회했고 김명민, 천호진을 비롯해 변요한, 윤균상 등과 함께 열연했다.[21] 본편 전에 방영된 스페셜 방송에서 유아인은 차기작으로 50부작을 선택했다고 하면 선배들과 스태프들이 “왜?”라고 물었는데, “이방원 역이에요”라고 하면 “네가 할 만한 이유가 있구나”라고 반응했다고 전했다. 《육룡이 나르샤》는 6개월간 50부 연속 1위의 시청률을 유지하며 2016년 3월 22일 대장정을 마쳤다.

 


유아인은 순수하면서도 혈기 넘치는 소년 이방원의 모습부터 욕망과 광기를 폭발시키며 왕위에 오르지만 권력 투쟁 속에서 혼란과 좌절을 겪으며 고뇌하는 이방원의 모습까지 선과 악으로 단정할 수 없는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연기하며 유아인만의 새로운 이방원을 창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아인은 종영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이방원은 이미 많은 선배들이 연기한 캐릭터였기 때문에 나름대로 어떻게 변주해야 할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달의 이면이 있듯” 강인하고 냉혈한 모습과 더불어 인간적인 고뇌와 연약함을 함께 포착하려는 등 캐릭터를 “다른 면에서 바라보려고 했어요”라고 밝혔다. 또한, 이방원을 연기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 동안 공을 들였고 연기적으로 다채롭게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에 “작품을 찍으면서 성장하는 것을 느낀 신선한 경험이자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종영 후에는 제52회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남자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2017년  현재

2017년에는 드라마 《시카고 타자기》에서 1인 2역을 맡았다. 현생의 한세주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지만 아픈 과거를 지닌 데다가 스트레스로 인해 슬럼프에 빠지는 캐릭터다. 반면 전생의 서휘영은 1930년대 경성의 천재 작가이자 의사임과 동시에 조국을 위해 사랑을 포기하는 독립운동가다. 드라마는 주로 1933년과 2017년을 병렬적으로 보여주는 판타지물이다. 유아인이 맡은 두 캐릭터의 공통분모는 글을 쓴다는 점으로, 제작발표회에서 작가 연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특이한 캐릭터 설정이 있어서” 끌렸다고 말했다. 특히 이야기의 큰 축 중 하나는 현재의 청춘들이 과거 독립을 위해 희생했던 청춘들을 기억하는 것이다. 종영 후 2019년 유아인은 이러한 독립운동가를 연기한 것에 대해, 그들의 고충이 “우리가 감히 상상하는 그 이상”이라 생각함과 동시에 우리가 영웅으로 칭송하고 애국지사로 명명하는 사람들도 한 인간으로서는 외롭고, 절망스러웠을 것이라 봤기에 그들의 이면에 담겨진 “인간으로서의 고뇌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고 소회를 말했다.

 

 

같은 해 9월, 이창동 감독의 신작 《버닝》에서 유통회사 알바생이자 작가 지망생이며 섬세하고 예민한 청년 이종수 역을 맡았다. 약 5개월 간 촬영이 진행됐고, 2018년 5월 17일에 개봉됐다. 이에 앞서 제71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어 5월 16일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치렀다. 《버닝》은 미스터리를 영화 내부에서 외부로 확장시키는 작품으로, 러시아의 저명한 영화평론가 안톤 돌린은 “자기자신과 타인을 안다는 불가능성에 관한 심도 깊은 심리 스릴러”이자 “우주의 큰 수수께끼인 인간에 대한 그림”이라고 평했다. 유아인은 “아주 새로운 방식으로 말을 거는 영화”라고 표현한 바 있고, 2018년 7월 ‘하퍼스바자’ 인터뷰에서는 “우린 모든 걸 쉽게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그 상태를 해체하는 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닌가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관객에 따라 결이 달라지는 영화이기 때문에 개봉 당시에는 작품 설명을 자제하는 경향이 있었고, 그 이후에도 “《버닝》이라는 영화를 소개함에 있어서 최대의 위험성은 길잡이를 제시하는 거에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유아인에게 《버닝》은 생애 처음으로 칸 레드카펫을 밟고 다양한 해외 관객들과 만난 작품일뿐만 아니라, 2018년 5월 무비토크에서 “성장이 아니라 알을 깨고 새로 태어나는 느낌”이 들었다고 할만큼 의미있는 작품이다. 그의 말처럼 “영화의 공기 같은 붙박이 캐릭터”인 종수를 연기하기 위해 “주어진 상황과 어우러지는 방식들이 무엇인지만 생각”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버닝》에서의 연기는 대중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베테랑》 조태오의 연기와는 완전히 반대편에 있고, 무언가 강렬하게 보여주어야 하는 “어떤 강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이창동으로부터 “그냥 있으면 돼, 그냥 존재해”라는 디렉팅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인물이 어떨 것이다는 정답을 놓고 시작하기 보다 그때그때의 느낌을 중요시하면서 촬영했다. 이런 과정에서 이창동 특유의 디렉팅인 수많은 테이크와 같은 씬의 반복을 거치며 “이질감이 없는 느낌”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연기했다고 한다. 이렇다보니 부산국제영화제 오픈토크에서 모더레이터인 박혜은 편집장은 촬영이 힘들지 않았냐고 질문했다. 이에 유아인은, 연기할 때 시간이 부족해서 더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창동의 현장은 그런 면에서 달랐기 때문에 배우로서 오히려 축복이었다고 말했다.[22] 다른 인터뷰에서는 세상에 모호하지 않은 순간은 없다고 생각하고 영화 또한 같은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인물에 대한 의도나 계산 없이 그저 느끼며 진행되는” 촬영 현장이 편했다고 밝혔다.

그는 영화의 시나리오와 트리트먼트가 나오기 전 이창동으로부터 이런 작품이 있다는 것만 전달받았을 때 출연을 결정했다. 유아인이 맡은 종수는 감정을 숨기는데 있어서 극단적인 인물로 대사도 거의 없다. 이창동은 관객들에게 유아인이 분노를 폭발하는 연기를 하는 것이 익숙하기에 오히려 종수 역할을 맡으면 흥미로울 것이라 생각해 캐스팅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유아인이 맡은 역할에 대해 “아무 것도 드러내지 않는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캐릭터다 보니 배우로서 굉장히 어려운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유아인도 칸 현지 라운드 인터뷰에서 “관객이 종수의 세상에 들어가 그 공기를 느끼게 하는게 내 역할이었다”라고 말하면서 “어떤 표현으로 전달하기보단 존재하는 행위 자체를 연기하자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씨네21> 인터뷰에서는 평범한 종수를 연기하는 데 “평범함을 정의하고 그것을 표현한 게 아니라 평범함의 반대편에 있는 것들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연기했다”고 말했다. 또한, 영화 속에서 50kg대까지 살이 빠졌고 전체적인 모션은 그의 표현 그대로 “시각적으로 멈춰있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나뭇가지처럼, 갈대처럼 움직이는 모습”으로 보여진다.[23]

이런 이유로 “연기하지 않는 것 같은 연기로 불안과 허무가 가득한 청춘을 완벽하게 그려 낸 유아인에겐 어떤 식으로든 이 영화가 인생의 이정표로 남을 게 분명하다”(심규한), “최소한의 연기로 최대한의 표현력을 보여줬다”(이승미), “《버닝》에서 유아인은 절제해서 오히려 타오른다”(정시우)라는 평가를 들었다. ‘더 가디언’의 저명한 평론가 피터 브래드쇼는 “유아인은 종수로서 굉장한 연기를 선보인다”라고 했으며, ‘사이트 앤 사운드’의 제시카 키앙은 “영화 전체의 무게를 종수의 굽은 어깨 위에 지고 가야 하는 이는 유아인이다. 그는 (감정을) 놀랄만큼 완벽하게 절제하여 대부분을 수면 아래 놓았다. 그럼에도 (감정의) 덩어리는 손에 잡힐 것처럼 느껴지고, 유아인은 결국 관객의 마음을 무너뜨린다”라고 말했다. ‘버라이어티’의 가이 로지는 “조용하게 웅장한(quietly magnificent)”, ‘스크린데일리’의 팀 그리어슨은 “놀랍도록 절제하는(spectacularly stoic)”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또한, 프랑스의 영화평론가 자비에 르헤페르는 프랑스 앵테르에서 유아인을 “천재적인 배우”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알게 되어 행운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테이스트 오브 시네마’에서는 그의 연기를 2010년대 섬세한(subtle)[24] 영화 연기 중 하나로 꼽으면서 유아인의 ‘less is more’ 식의 접근법이 영화에 잘 맞아떨어졌다고 보았다. 이밖에도 유아인은 뉴욕 타임스’에서 올해의 배우 12인 중 한 명으로 뽑히는 등 여러 매체로부터 호평을 얻었다.
유아인은 가장 일상적인 일을 인상 깊게 표현했다. 물감이 마르고 페인트가 굳는 평범한 현상을 매혹적으로 표현한 것과 같다. 그는 작가가 꿈인 대학 졸업생이 복수심에 불타는 스토커가 돼 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점점 고조되는 스릴러인 이 영화에서 그는 말하기보다 주로 듣거나 본다. (중략) 유아인은 카리스마 넘치는 한국의 톱스타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는 카리스마 없이 멍한 모습으로 혼란스러운 모습을 절묘하게 표현한다. 그가 잘생긴 외모로 관객을 사로잡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오해다. 작품이 끝나고 남는 것은 암울하고 충격적인 인물이다. 말라가는 물감은 마지막에 근사한 추상화가 됐다.
2018년 12월 5일 ‘뉴욕 타임스’ The Best Actors of 2018
영화에서 불타오르고 산화한 영혼이자 길을 잃고 억압받는 종수를 연기한 유아인은 화려한 연기를 가장 최소한으로 선보인다. 유아인의 종수는 깊고 어두운 곳을 흐르는 잔잔한 물과 같으며, 흐릿한 안개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자 하는 이의 표상이다. 흠잡을 데 없이 보장된 그의 연기는 파괴적이면서도 양면적이고 수수께끼같은 영화의 피날레를 효과적으로 만든다.
2018년 12월 20일 ‘더 플레이스트’ The Best Performances of 2018

유아인은 《버닝》 이후 배우로서, 개인으로서 긍정적인 고민을 얻었다고 말한다. 이은선 기자가 모더레이터로 나온 5월 29일 GV에서의 말을 빌리면, 이 영화에서처럼 표현의 의지를 버리는 연기도 “카메라를 인식하고 있으므로 그것 또한 표현이 아닌가”라는 딜레마가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사랑받을 만하고 시선을 더 끌만한 연기를 위해 자신을 끌고 온 건 아닌지 고민하는 과정에 있다고 했다. 또다른 인터뷰에서는 배우의 일이 “누군가에게 어떤 빛을 보여주는 일일 수도 있지만 결국 그 빛에 다가가기가 힘든 사람들에게는 훨씬 더 큰 결핍과 불행을 가져다주는 일일 수도 있잖아요?”라고 반문하면서 본인도 극중 벤은 아니었는지 돌이켜보게 됐고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보여주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자 맡은 인물을 통해 이 세계를 드러내는 데 일조하는 사람으로서” 영화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했다고 한다. ‘에스콰이어’ 인터뷰에서는 그간 “‘유아인은 남들보다 더 뜨거워’라는 상태를 내가 너무 철저하게 수행했던 것 같아” 혼란스러운 시기에 《버닝》을 만나 이완될 수 있었기에 개인적으로는 편안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또한 영화 상영 이후 이뤄진 팬들과의 만남에서는 이 작품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어떻게 세상에 존재할 것인가, 배우로서 직업인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등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었던 작품이에요. 큰 변화를 겪으면 사람에게 혼란을 주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당연히 거쳐야되고 다음을 제시할 수 한다는 점에서 이정표가 되어준 작품입니다. 이런 작품을 여러분들에게 보여드릴 수 있었다라는 건 배우로서 큰 영광이고 기쁨이었어요. (중략) 긴 터널을 지나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부정적인 의미의 터널이 아니고, 어딘가를 지나가고 있고 어떤 순간에 놓여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아요. (중략) 한발짝한발짝 정성스럽게 내딛으면서 여러분들에게 공허하지 않고 의미있는 시간들을 선사하고 싶습니다.
2019년 6월 1일 영등포CGV에서 열린 《버닝》 단관

또한 1997년 외환위기 당시를 그리는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 캐스팅 돼 국가 위기를 기회로 삼아 베팅하는 금융맨 윤정학을 연기했다. 유아인은 본인 캐릭터의 기능에 대해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바람잡이 같은 역할”이라고 설명한다. 기회주의자이고 정의롭지 않지만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오히려 인간적”이고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자책도 하고 회한도 있는 인물”이라 보통 사람들의 욕망을 대변하는 캐릭터라고 접근했다. 연기를 할 때는 캐릭터의 전사가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지 않아 각 씬에서 “순간순간 맞닥뜨리는 희열, 자책, 허망함의 순간들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고 한다. 프리젠테이션 씬의 경우 사이비 지도자가 믿음을 설파하는 느낌으로 촬영했고, 주변의 친구들을 모아놓고 그 앞에서 연기를 연습했다.기사 때문에 유아인은 전작 《버닝》이 갑옷들을 다 벗은 느낌이었다면 《국가부도의 날》은 그 갑옷을 다시 챙겨입어야 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최국희 감독은 유아인의 인물 탐구에 대해 얘기하며, “정학이라는 캐릭터가 어렵고 쉽지 않은 인물인데 소통을 열심히 하는 배우였어요. 굉장히 질문을 많이 했어요”라고 말했다.

《국가부도의 날》은 2018년 3월에 크랭크업하고 11월 28일에 개봉했다. 유아인은 2월 말 촬영에 합류했다. 《버닝》을 촬영하고 있을 때 제안받아 거절하려 했지만, 최국희 감독과 미팅을 한 후 아픈 역사를 다루는 것과 관련해 감독을 신뢰하게 됐다고 한다. 또한 전작이 끝나자마자 합류해야 하는 상황이라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든든한 선배들이 함께 하고 “IMF 구제금융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그리는 이야기의 일원으로 참여할 기회”라 생각해 출연을 결정했다. 또한, 극중 윤정학은 그 시절에 있었을 법한 청춘임과 동시에 오늘날 기성세대의 한 유형이다. 따라서 유아인은 캐릭터에 투영된 욕망을 보여줌으로써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를 연결하는 매개체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기성의 질서가 후세대에 어떻게 전이됐을 것인지 생각하게 됐고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어떻게 나를 결정하고 살아갈 것인지, 돈에 대해선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상기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에 배우 김혜수는 유아인이 남자배우 중심의 작품이 많음에도 이 영화를 택해 고맙다고 전했고, “아인이가 맡은 윤정학 역은 미움을 받을 수도 있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작품의 메시지에 동의하고 출연한 행보도 유아인이니 가능한 것 같다”고 말했다.인터뷰

2019년에는 단편영화 《Better Than Tomorrow》, 《서식지》 등을 연출한 홍의정 감독의 장편 데뷔작 《소리도 없이》에 캐스팅됐으며 7월부터 9월까지 약 두 달여 간의 촬영에 임했다. 범죄조직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태인 역할에 맞게 삭발을 하고 10kg 이상을 찌웠다. 뉴스매체 ‘일간스포츠’에 의하면 대사가 없는 역할이라고 하며, 또다른 매체 ‘뉴스에이드’에 의하면 저예산 영화임에도 유아인이 흔쾌히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같은 해 10월부터 12월까지는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며 단편영화 《Jin》을 연출한 조일형 감독의 데뷔작 《얼론(#ALONE)》을 촬영했다. 통제 불능이 된 도시에서 고립된 채 생존한 게이머 준우를 연기한다. 이 영화는 #살아있다로 제목을 변경했고 6월 24일 개봉한다.

 

개요

2014년 11월 21일 ‘스튜디오 콘크리트(Studio Concrete)’라는 아티스트 그룹을 결성했다.웹사이트 인스타그램 유아인은 공동 대표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전시회 서문에서는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Founder라고 소개되며, 브랜드 잡지 <톰 페이퍼(Tom Paper)>의 편집장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스튜디오 콘크리트는 브랜드 잡지의 발간을 시작으로 아티스트들의 전시회를 비롯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15년 5월 1일 갤러리, 라이브러리, 아틀리에 및 숍과 카페가 복합된 동명의 오픈 스튜디오도 열었다.[25] 내부에 카페가 있어서인지 SNS를 통해 ‘유아인 카페’로 잘못 알려져 있는데, 예술의 문턱을 낮춰 모두에게 개방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카페로 운영하고 무료로 전시를 진행하는 것이라 한다. 유아인은 공동 대표인 차혜영, 아티스트 권철화, 김재훈, 권바다, 큐레이터 김지은, 에디토리얼 디렉터 박노섭과 머리를 맞대 이 공간을 만들었다. 평소 친한 친구 사이였던 이들[26]은 어느 날 술자리에서 함께 뭉치면 무언가 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얻었고, 6개월간의 회의를 거쳐 북한남 삼거리에 공간을 마련했다

 

유아인은 스튜디오 창립 배경에 대해 “크루들이 다 제 친구들이지만 전 그들의 작품에 감동을 받았고 인간성에 감동받았거든요. 이 보석 같은 친구들을 세상에 더 널리 알리고 싶었어요. 우리가 아이돌은 아니지만 그룹으로 뭉쳐보면 어떨까 싶었던 거죠(웃음). 혼자서는 발을 뻗기도, 몸을 누이기도 힘든 세상이지만 뭉치면 뭔가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힘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라고 답했다. 2015년 인터뷰에서는 “똑같이 일해도 내가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누리는 게 있다”며 “똑같이 대단한 능력을 가졌음에도 시장 논리로, 나이로, 혹은 직업의 특수성으로 인해 상황이 갈라지는 게 현실”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나눠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다고 밝혔다.

앞으로 스튜디오 콘크리트가 하고자 하는 일은 대중과 예술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것. 유아인은 “제가 생각하는 예술은 하는 게 아니고 발견에 가깝거든요. 대중의 입장에서 보면 예술품을 구매하는 일은 내 주변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거기에 프레임을 씌우고 무엇을 예술이라고 부를 것인가를 결정하는 행위인 것 같아요”라며 “엽서 하나를 사서 침대 머리맡에 붙이든 마음에 드는 잡지 페이지를 찢어서 책상 옆에 붙이든, 그로 인해 아무것도 아니었던 평면에 깊이가 생기잖아요. 저는 특정한 어떤 걸 팔고 싶다기보다 그런 행위에 동참하고 싶은 거예요. 사람들이 예술이라는 개념을 쉽게 느끼게 하는 것이 지금 저의 가장 큰 숙제이자 과제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또한, 대중예술인으로서 자신의 유명세를 순수 아티스트들의 활동 저변을 넓히는 데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스튜디오 콘크리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인터뷰(<그라치아> 2015년 5월 제2호)를 보면 알 수 있다..

 

 

활동내역

스튜디오 콘크리트는 소속 작가들뿐만 아니라 김참새, 노상호, 강현선 등 외부 작가들의 개인전 및 협업전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또한, 내부 프로젝트를 비롯해 사회 환원 사업, 영리 기업과의 협력 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자선 바자회, 럭키슈에뜨 룩북 제작, <톰 페이퍼> 발간, YG Stage 기획 화보 디렉팅, <보그> 20주년 발렌시아가 게릴라 전시회, 버드와이저 특별 기획 전시, 뉴발란스 매장에서 진행된 설치 미술 등. 2016년 5월에는 출범 1주년을 맞아 그간의 활동들을 선보이는 전시회를 마련했는데, 유아인이 대표이자 친구로서 크루들에게 남긴 편지글들이 공개되기도 했다. 스튜디오의 설립 의도와 방향 등을 엿볼 수 있으며, 그중 화제가 됐던 것은 다음과 같다.2015년 5월 편지. 이 밖에도 국제아트페어 아트부산 참여, 송호준, 디구루 등이 참여한 사이키델릭(psychedelic) 전시, 자연을 주제로 하는 기획전, 2015년 11월 파리 테러 때 ‘Peace for Paris’ 이미지를 만들어 유명한 그래픽 디자이너 장 줄리앙(Jean Jullien)의 내한 전시 등을 진행하면서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2016년 10월에는 새로운 아트 레이블 ‘씨씨알티 에어로스페이스(CCRT Aerospace)’를 선보였다. 메인 컨셉은 우주이며 영상, 퍼포먼스, 음악, 그래픽, 회화, 사진, 패션 등의 다양한 예술 활동을 스토리 형식으로 보여줄 예정이다. 유아인은 총괄 기획을 맡았으며 스튜디오 콘크리트 크루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도 참여한다.자세한 설명. 첫 번째 에피소드는 'Fragile : Handle with care OR'이다. 우주복 스타일의 패션 디자인을 비롯해 '미궁' 연주로 유명한 가야금 명인 황병기, 디자이너 박시영, 일러스트레이터 김세동 등의 아티스트들과 협업한 결과물을 전시회에서 선보였다.[27] 여기에 영화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Episode 1 Fragile : 경계의 저편》을 공개했다. 유아인이 출연하고 기획 및 제작을 맡은 8분 가량의 영상이다. 우주를 소재로 한 SF 단편 영화인데, 짧은 영상임에도 퀄리티가 꽤 좋다.영상 보기. 이 밖에도 아트 레이블의 취지와 참여 아티스트들의 인터뷰는 잡지 화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017년에는 ‘Make Love Not Walls’라는 주제로 디젤의 글로벌 프로젝트에 참가하거나 미디어 아트전, 사진전, 회화전, 인테리어전 등을 진행했다. 또한, 같은 해 하반기부터는 페미니즘, 성소수자, 아시안 뮤직, 가구 디자인 등과 관련된 청년들의 공동 프로젝트, 다니엘 시저의 내한행사, SJYP의 시즌 프리젠테이션 등 외부 단체에게 공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덧붙여 5월에는 소속 크루들과 아티스트들을 자세하게 소개한 인터뷰가 공개됐는데, 이를 통해 크루들의 역할, 갤러리의 운영, 아티스트들의 작업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크루들(1) 크루들(2) 아트 패션 아티스트 유아인은 자신의 역할을 “조력자, 잔소리꾼, 얼굴마담, 글쟁이, 관찰자”라고 표현하면서 “다들 겸양을 떨고 부끄러워하는 듯 하지만 저마다 세상에 이름을 남기고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어 하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대표로서 배워가고 있다”라고 밝혔다.

2018년에는 <BATON>이라는 제목으로 모인 젊은 작가들 4명의 협업전으로 전시를 시작했다.소개 외부 협업으로 츄파츕스 60주년 전시회와 리빙디자인페어에도 참여했다. 이후 블랙코미디 일러스트레이터 조안 코넬라의 내한전, 가족과 코끼리를 테마로 하는 장 줄리앙의 두번째 전시, 로봇과 도넛을 주제로 작업하는 에릭 조이너, 개인 사진전, 4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청각에만 집중하는 사운드 전시회를 열었다. 또한 유방암 인식 캠페인에 디자인 재능기부로 참여하면서 전시를 진행했고, 발달장애 작가 그룹전을 지원했다. 12월에는 ‘Bring Your Art’라는 컨셉으로 참석자 모두가 전시의 작업자로 참여하는 집단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한 해의 전시를 마쳤다. 당시의 현장 소리와 기획자로서의 느낌을 말하는 유아인의 육성을 담은 음원은 아프로의 작업을 통해 무료 공개됐다.

2019년에는 아르케(ARCHE)의 전시를 시작으로 김재훈과 권철화의 개인전, ‘멀리서 온 친구’라는 주제의 협업 전시 등을 진행했다. 아프로(APRO)가 크루로 합류하면서 소리에 관한 개인전을 열었고, 현대무용가 안은미, 예효승, 양승진과 인디밴드 모임 별 등이 아티스트 토크 등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행사를 위해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11월 11일에는 ‘콘크리트 1111’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해 라이브로 설명회를 진행했다. 이 때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설립 이후 2019년까지 스튜디오에서 개인전 16회, 협력전 18회, 특별 초대전 2회를 열었다고 한다.

2020년을 여는 ‘콘크리트 1111’은 가치를 교환하는 실험으로, 예술과 대중 사이에 놓인 거리를 좁히기 위해 색다른 예술 소비 방식을 제안하는 프로젝트다. 소속 작가인 권철화의 작품을 시작으로 유아인의 개인 소장품과 본인 집[28]까지 최초 물물교환의 대상이 된다. 응모자가 온라인 플랫폼에 올라온 교환 대상을 보고 교환을 제안하면, 최초의 물권자는 공모된 것들 중 하나를 선택해서 교환을 한다. 응모자는 금전을 포함해 신작, 기성작, 발명품, 소장품, 아이디어, 특허 기술 등 형태의 제약 없이 교환 제안을 할 수 있다. 이렇게 교환된 것들은 같은 해 11월 11일에 ‘공정예술축제 1111’에서 전시된다. 그리고 이 때 전시된 것들은 다음해에 또다른 응모자들의 교환 제안 대상이 되어 그 가치가 순환된다. 이러한 과정은 ‘집단행위예술 1111’을 통해 다큐멘터리, 시리즈 방송물, 음반, 도록 등의 콘텐츠로 생성되고 건축, 공연, 패션 관련 작업들도 동시에 진행된다.

이는 유아인이 권철화에게 “작품에 가격표를 붙여서 파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봤거든. 그러다 ‘예술은 돈이 많은 사람만 향유할 수 있는 문화’라는 선입견이 어쩌면 예술과 사람 사이를 더 멀어지게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런 의미로 <TANGO>[29]의 작품들을 판매가 아닌 물물교환해보는 건 어때? 교환 가능한 대상은 시 한 편이 될 수도, 빼어난 아이디어가 될 수도, 음악이 될 수도 있는 거지”라고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그 이후 ‘세상 모두가 예술가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참여자를 모으고 프로젝트를 기획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권철화 작가는 인터뷰에서 “콘크리트는 카페로도 운영하고 있을 만큼 모두에게 활짝 열려 있는데, 어떤 사람들에겐 우리의 집단적 형태가 강하게 느껴지진 않을지 생각"한다며 “그걸 깨고 모든 사람들이 마음 편하게 참여하는 놀이터가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전했다. 해당 프로젝트의 자세한 내용은 다음 링크에서 알 수 있다.공식 홈페이지유아인 인터뷰(2019.11.29)서울라이브 포스트참여자들의 인터뷰

같은 해 3월에는 4.15 총선을 맞아 투표를 독려하는 Vote Korea 2020 전시회와, 코로나19의 여파로 생활고를 겪는 청년예술가를 돕는 캠페인에 참여했다.

 

 

글쓰기 활동

2006년부터 미니홈피 게시판에 본인이 쓴 글(시와 수필)을 게시했었다. 연기 이외에 글 쓰는 것으로 소통한 적이 많았다고 하는 등 꽤 애착을 가지고 있다. 2019년 인터뷰에서는 “글쓰기는 나의 표현 방식 중 하나고, 내 마음을 덜어내기 위해 가까이 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팬들이 작가나 시인으로 부른다. 실제로 ‘연기하는 유아인’에 반했다가 ‘글 쓰는 엄홍식’으로 출구 봉쇄된 팬들도 부지기수. 그러나 현재는 미니홈피 게시판이 닫혀서 글을 볼 수가 없다.[30]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미니홈피 시절 다수의 시와 수필을 볼 수 있으니 관심 있는 사람들은 ‘엄홍식 작은집’ ‘유아인 작은집’으로 검색을 해보도록 하자. 인터넷 커뮤니티에 종종 올라오는 유아인의 글 모음은 대부분 미니홈피 활동 시절(2006년~2011년)의 글들이다.
2009년 <야심만만2>에 출연하여 즉흥적으로 시를 쓴 후 낭독하기도 했다. 고화질 영상을 원한다면 여기로.
2016년 시 전문 월간지 <시(詩, see)> 1월호에서 유아인이 시를 즐겨 쓴다는 사실을 특집기사로 실었다. 여기서 편집자는 “화려한 조명을 받는 배우의 일상과는 전혀 무관한 자아를 찾아가는 그 아름답고도 맑고 깨끗한 가벼운 호흡이 느껴져 읽는 내내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해당 월간지에 실린 유아인의 2개의 시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20대 초반에 썼던 수필 ‘편의점이 폐업했다’는 넷상에서 자주 공유된다. 또한 이 수필을 한 블로거가 만화로 그린 것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썼다는 시가 커뮤니티에 공개되기도 했다. 학교 문집에 실려 있다고 한다.

 

사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트위터의 멘션들이 더 많이 화제가 된 편이다. 유아인은 2015년 7월 언론인터뷰에서 “트위터 글은 특히 모나게 쓴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아인은 <씨네21>에 영화 《클로저》 감상문이나 잡지 <인스타일>과 <무비위크> 등에 본인의 에세이를 기고한 적이 있다. 특히 2012년 10월부터 2013년 3월까지 잡지 <데이즈드&컨퓨즈드(Dazed&Confused)>에 6개월간 칼럼을 기고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종종 게시되는 「공짜, 엄마」, 「인디라는 껍질」, 「어제, 오늘」 등의 칼럼은 이 시기에 쓴 글이다.
음악가의 본질은 음악에 있고, 배우의 본질은 연기와 작품이며, 작품은 곧 작가와 감독의 본질이기도 하다. 그들은 자본의 논리에 매몰되어 본질을 잃지 않는 한 충분히 창조적인 채로 어디에라도 존재할 수 있다. 미디어의 순기능을 적절히 이용하고 본질을 잃지 않는 영민한 아티스트의 출현은 지극히 반길만한 일이다. 인디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대중은 보다 유연해졌다. 만일 우리의 기대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마라톤을 완주하는 판자촌의 영웅을 향하는 것이라면, 거기에 인디는 없다.
잡지 <데이즈드&컨퓨즈드> 2012년 12월호 「인디라는 껍질」 중에서
내 친구의 외상 장부에 내게 얼마짜리 밥을 몇 번 샀는지 따위의 기록은 없었으면 좋겠다. 내가 준 생일 선물이 숫자로 환산되어 응당한 대가로 돌아오지 않아도 서운치 않았으면 좋겠고, 지인의 결혼식에 낸 축의금의 숫자가 내 마음의 크기를 대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여나 내가 낸 10만원짜리 봉투가 마이너스로 돌아오더라도 괘씸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친과 사별한 또 다른 친구가 장례식에 오지 않은 지인들을 일일이 데스 노트에 적으며 자신이 그들에게 준 것들을 세고는 배신감에 치를 떨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은 내게 반쯤 얹혀사는 친구가 그 어떤 부채 의식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친구는 10평 오피스텔로부터 도망갔던 투룸 집 안방의 주인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전쟁 같은 세상 속에서 절실한 동지애 이상의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정도는 어수룩한 낭만을 품는다.
잡지 <데이즈드&컨퓨즈드> 2013년 2월호 「공짜, 엄마」 중에서

글을 자주 쓸 뿐만 아니라 시를 자주 읽으며, SNS를 통해 종종 본인이 읽은 시집을 추천한다. 본인의 서른 살 생일에는 심보선의 <슬픔이 없는 십오 초>에 수록된 「청춘」을 올렸고,[31] 기형도의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을 선물받아 읽었음을 인증한 적도 있다. 2011년 ‘텐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시를 읽으면서 무엇을 얻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일종의 이미지 트레이닝일 수도 있다. 시는 짧은 글이고, 그래서 빨리 읽을 수 있다는 게 아니라 그 짧은 텍스트 안에서 소설만큼의 혹은 그 이상의 텍스트를 읽어내고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나 역시 시를 쓰고 시를 읽는 사람이라는 게 연기하는 데 굉장히 큰 도움을 준다.”

2014년 이후에는 브랜드 잡지 <톰 페이퍼(Tom Paper)>의 편집장으로서 쓴 인트로(intro)와 스튜디오 콘크리트 대표로서 쓴 전시회의 서문 등을 통해 유아인의 글들을 읽을 수 있다. 2017년에는 모델 장윤주의 데뷔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그녀와 4시간 동안 대화한 뒤 인터뷰어로서 잡지 <보그>에 글을 싣기도 했다. 2019년에는 미술 월간지 <아트 인 컬처>의 창간 20주년 기획 기사에 참여했다. 큐레이터, 작가, 컬렉터 등 미술 관련인 20명이 참여한 특집이라 그의 글은 ‘배우 유아인’이 아니라 ‘스튜디오 콘크리트 엄홍식 대표’의 이름으로 올라갔다.#

이렇다 보니 책을 내자는 구체적인 제안이 생각보다 많다고 한다. 베스트셀러 출판사가 뽑은 저자로 삼고 싶은 스타에 꼽히기도 했다. 2016년에는 배순탁과 김동영 작가가 유아인의 글에 대해 언급한 적도 있다. 유아인은 글에 욕심이 많지만(잡지 <인스타일> 2011년 BIFF 특별호) 이러한 제안들을 정중히 거절했다. 책을 내고 싶지만 개인적인 작업으로 처음 선을 보이고 싶고(주간지 <하이컷> 74호) ‘유아인이 했다’는 이유로 폄하하거나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을 수 있다고(2013년 10월 ‘스포츠경향’ 인터뷰) 생각하기 때문이다.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 오픈토크에서는 책을 낼 계획이 없느냐는 질문에 시집을 내고 싶다고 대답했다. 2016년 팬들과 함께한 《좋아해줘》 상영 후 GV에서는 출간에 대해 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9년에는 ‘콘크리트1111’ 프로젝트의 기획자로서 시와 일기 사이의 형태로 2020년에 출간할 것이라 말했다. 이것은 해당 프로젝트의 사업 중 하나인 ‘집단행위예술1111’의 일환으로, 출간 전 일부 글들은 ‘콘크리트1111’의 기획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SNS활동 과 관련 논란

자신의 SNS를 통해 소신 발언을 하기도 한다. 2009년 영화 《하늘과 바다》는 개봉 전 대종상 후보에 올라 논란이 일어났고, 제작자 주호성은 일부 언론의 흔들기와 교차 상영을 이유로 개봉 12일 만에 영화를 전면 회수했다. 이에 유아인은 주호성이 월권을 행사했다고 주장한 글을 미니홈피에 게재했다. 현장에서 주호성이 직접 메가폰을 잡은 일이 많았고, 흥행 실패 이유를 교차상영으로 돌려 관객의 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비판한 것.기사 유아인은 이 글을 올렸다가 삭제했으나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면서 언론에 보도됐다. 이에 주호성은 월권 행사에 대해 전면 반박했다. 그러자 유아인은 “제가 언급한 사실 그 자체에 대해서는 추호의 부끄러움이 없으며 번복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글을 복구했다. 당시 유아인은 경솔한 행동을 했다는 비판과 동시에 인지도가 낮은 신인 배우로서 상당히 용기 있는 발언을 했다는 평을 얻었다. 더불어 주호성의 글 전문 중 “신고해서 오히려 더 늦게 받은 모양이 되었었죠”라며 임금 체불을 신고한 스태프를 언급한 내용이 있다. 유아인의 글에서도 “투자상의 문제와 일부 스태프 교체, 촬영 종료 후 임금 체납까지 제작 과정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처럼 둘의 설전을 계기로 영화계의 스태프 임금 체불 문제까지 수면 위에 드러났다.

2010년 이후부터는 트위터를 애용하는데,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담은 멘션도 자주 올렸다. 정치적 이슈 등 연예인으로서 다소 꺼릴 말한 내용도 많이 올린 편이다. 실제 2012년 대선을 전후해서 안철수 후보 사퇴 관련 글을 남긴 적도 있었고 진보우월주의가 있었다는 글을 쓰기도 했다. “정치와 삶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젊음이고 싶다”라는 내용[32]이나 MBC에서 방영한 타블로 스페셜에 대한 감상, 레이디 가가 내한공연과 참정권 관련 트윗은 SNS를 잘 활용한 예로, 이를 통해 ‘소신남’ 혹은 ‘개념 연예인’으로 꼽히기도 했다.[33] 2013년에는 팬들의 질문에 릴레이로 답변을 단 적이 있는데, “투명한 포장지” 등 짧은 시간 동안 센스있는 멘션들이 많이 나왔다.#

그러나 2013년 6월 역사 왜곡 문제로 비판을 샀던 출연작 《장옥정, 사랑에 살다》가 종영했을 때 이에 대한 취중 트윗을 날려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골자는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역사의 재해석으로 봐달라’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다 보고있는 앞에서도 날조하고 어제의 사실인데도 부정하고 어느 백성도 모르게 잘난 지들끼리 한문 텍스트로 기록한. 그것이 역사가 아닌가”라는 부분으로, 괜한 사족 때문에 자신의 본의를 덮어버린 결과를 낳았다. 이에 실록을 폄하했다는 의견들이 나오자 “한겨레와 조선일보 중 우리는 무엇을 진실의 역사로 기억할까. 나는 모릅니다. 뭐가 진실인지. 그저 역사의 기록에 대해 그 정도의 여지는 열어두자는 말에. 조선왕조실록 폄하라니. 대단한 난독증. 좋은 것은 나쁜 걸로 나쁜 것은 더 나쁜 걸로.”라고 덧붙여 반박했다.[34]

SNS 활동으로 인한 이미지가 오히려 쉽게 비난의 대상이 되는 빌미로 작용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2014년 2월 18일 유아인이 서울경찰홍보단에 지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정적인 여론이 일었다. 당시 연예병사가 폐지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라, 연예인들이 연예병사 대신 경찰홍보단을 선택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아인은 그동안의 SNS 활동으로 형성된 이미지 때문에 다른 이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집중적으로 비난을 받았다. 이에 유아인은 3월 6일 트위터에 악플러들을 향해 “다이다이 함 뜨까?”라며 다소 격앙된 워딩을 사용해 논란이 일어났다. 사실 당시 일정 수위가 넘은 악플들이 많았는데, 특히 유아인의 가족까지 언급하는 등 패드립도 넘쳐난 데다가, 그 내용을 유아인의 트위터에 직멘으로 날리는 등 상황이 심각했다. 연예인이라고 악플을 다 참아낼 수는 없을 정도. 이후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면접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다수의 남자연예인들이 경찰홍보단에 지원 및 복무했지만, SNS를 통해 다소 거침없는 발언을 해온 유아인이었기에 비난의 수위가 더욱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다 보니 유아인의 SNS 활동에 대한 대중들의 호불호가 갈린다. SNS에 올리는 글은 ‘유아인이 썼다’는 이유만으로 여러 방향으로 재단될 가능성이 큰데, 실제로 그가 업뎃하는 즉시 커뮤니티 상의 화제가 되고 상이한 해석들이 퍼진다. 반면 본인의 생각을 솔직하게 날것 그대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호감 어린 반응을 보이는 경우 역시 많다. 이처럼 유아인의 SNS 활동은 후술한 것처럼 그의 이미지 형성에 여러모로 영향을 줬다. 하지만 글에 대한 호불호, 의견에 대한 찬반을 넘어 그의 개인적 성격까지도 궁예당하며 선입견이 씌워지는 경우가 많아 이로 인한 위험이 큰 편이다. 특히 유아인의 정치적 성향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쉽게 공격받기도 한다. 그렇다보니 기자들에게 어그로 끌리는 질문을 많이 받으며,[35] 사회적 이슈가 생길 때마다 일부 네티즌들에게 의견을 밝혀달라는 종용을 받는다. 그의 글들이 의도적으로 편집되어 오해를 불러일으킨 경우도 여러 번이다. 예를 들어, 2016년 11월 촛불 집회에 참가하는 그의 사진이 뜨거나 이듬해 인스타그램에 탄핵 인용 관련 사진을 올렸을 때, 2012년 대선 직후 쓴 멘션이 언급되며 앞뒤가 안 맞다는 등 일부 오해를 받았다. 하지만 2012년 당시의 멘션은 굉장히 긴 글이었으며, 뒤의 문장들이 잘려진 상태로 돌아다녀 본의가 왜곡됐다. 또한, 실제 글과는 다른 의도로 기자들에 의해 자극적인 제목으로 기사가 양산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유아인 스스로도 이러한 사실에 대해 언급해 왔다. 한 인터뷰에서는 “이슈메이커였다. 헛소리도 잘 하고 그랬다. 후회하진 않는다”라고 말했고, 다른 인터뷰에서는 “또래 연기자가 안하는 행동을 해서 조금 튀기에 나에게 집중하는 듯하다”라고도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거침없이 발언하는 편은 아니라고 한다. 2012년 인터뷰에서는 “사실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고 밝혔는데, 그럼에도 계속 발언을 한 이유에 대해 “사실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조용히 있는 게 최고다. 그러나 그게 옳은 건가 싶다”고 말했다. 투박하더라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고, 배우로서 두렵지만 용기를 내보는 것이라고. 2016년에는, 두려움은 반자동적이지만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고 밝힌 적도 있다. 그럼에도 유아인은 SNS가 “긍정적으로 이용할 여지가 많은 창구”로 순기능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한 바 있으며, 이를 통한 스파크 역시 형태가 조금 다를 뿐 대중과 맞닿는 방식이라는 생각을 내비쳐 왔다.

2014년 중반 이후로는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자신이 바라보는 풍경, 영화, 다큐, 음악, 책, 미술작품 등을 올리는데, 본인의 셀카를 올리는 경우는 적다. 2016년 3월 인터뷰에서 “지난 3년간 정치적인 SNS를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처럼,[36] 정치적 견해를 거침없이 밝히는 것은 거의 없고 탄핵이나 대선 관련 때 자신이 보고 있는 뉴스 화면을 올리는 정도다. 긴 글을 올리거나 기사나 영상 등 다른 게시글을 스크랩해서 업뎃할 때는 페이스북을 사용하는 편이다. 이전처럼 활발하진 않지만 자신이 써놓았던 시나 수필의 일부를 공개하기도 한다. 스튜디오 콘크리트를 꾸려 디렉터가 된 이후로는 문화예술, 표현, 소통 등에 대한 단상을 자주 올리는 편이다. 경험 혹은 감각한 후 자신만의 생각을 긴 글로 올릴 때도 있지만, 인스타그램에는 자세한 코멘트 없이 영상, 풍경, 찰나의 장면 등을 올려 본인이 현재 무엇을 바라보고 느끼고 있는지 공유할 때가 많다.

그런데 게시글에 별다른 코멘트가 없거나 다양한 해석을 줘 문제가 일어나기도 했다. 예를 들어, 2017년 10월 30일 배우 김주혁이 세상을 떴을 때, 유아인은 벤자민 클레멘타인의 노래 ‘Condolence(애도)’의 사진과 “애도는 우리의 몫; 부디 RIP”라는 글을 올렸는데, 일부 네티즌들이 성의가 없는 추모글이라고 비난했다.[37] 점차 그 수위가 높아지자 11월 1일 유아인은 소셜 네트워크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함께, 부득이한 논란으로 뒤덮힌 자신의 “의지와 진심”이 전해지길 바란다는 요지의 글을 페이스북에 남겼다.전문. 2018년 3월 9일에는 영화 <엘리자베스>에서 메리 1세가 구교 환원을 반대한 개신교 주교를 처형하는 장면을 올렸는데, 이것이 일부 네티즌에게 마녀사냥 동영상이라 인식되었다.[38] 그러나 이에 대한 정확한 코멘트가 없기 때문에 그의 의도는 알 수 없다. 때문에 확대 해석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그간 사이버 불링을 당해온 유아인 자신의 상황을 의미한다고 보는 사람들, 비난하는 사람들, 확대 해석은 경계하나 시기를 비판하는 사람들, 세상을 극단적 이분법으로 보지 말자는 뜻을 담았다고 해석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설왕설래가 오갔다.

2018년 말에는 라운드 인터뷰에서 이와 관련하여 ‘오해’를 키워드로 질문을 많이 받았다. 이때 유아인은 “다양한 이슈를 본의 아니게 혹은 내 의지로 만들어 왔다”면서 사람들의 평가에 대해 “당연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은 절대로 당연해질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난이 왜 벌어지는지 생각해보면 가슴이 아픔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오해를 받아 억울할 때도 있지만 그 마음과 싸우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SNS를 하는 배우라는 모습이 ”위태로운 느낌을 드릴 수도 있지만, 결국 이런 순간순간들과 제 선택들이 제 삶을 만드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디자인 협업 등 패션 관련 활동

자타공인 패셔니스타로 유명하다.가끔 너무 실험적이긴 하다만... 함께한 스타일리스트들에 따르면, 패션 지식이 남다르고 핏을 스스로 잡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리얼리티 프로그램 <론치 마이 라이프>를 촬영하면서 본인이 모델로 활동한 잭앤질(Jack&Jill)과 헤지스(HAZZYS)와의 콜라보레이션 작업 과정을 공개했다.

특히 디자인에도 직접 참여하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 2014년에는 지인 남노아의 노앙(Nohant)과 협업하여 해당 브랜드의 서브 레이블 뉴키즈노앙(newkidz nohant)을 론칭했다. 협업 아티스트로서 한글과 영문의 조합을 통해 6개 도시의 이름을 나열한 ‘러브 시티’ 티셔츠를 출시해 화제를 모았다.작업과정. 이듬해에는 해당 수익금을 기부하여 아름다운 재단에 기금을 조성했다.

2015년에는 스튜디오 콘크리트 크루들과 함께 톰 그레이하운드(Tom Greyhound)를 통해 ‘SERIES 1 TO 10’(원투텐 시리즈) 티셔츠를 선보였다, 이 시리즈는 2016년부터 스튜디오 콘크리트가 직접 출시하기 시작했는데, 숫자와 색깔을 통해 기분을 표현한다는 발상과 디자인으로 반응이 상당히 좋다. 2017년에는 명화 버전, 2018년에는 음식 버전 등 다양하게 디자인을 변경하며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유아인은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에서 콜라보레이션에 대해 “이름만 빌려준다거나 그럴듯하고 그저 예쁜 옷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고 재미있는 작업을 경험하고 싶었다”면서 참여 이유를 밝혔고, “저와 저의 친구들이 만든 옷을 패션 그 자체로 즐겨주시고, 의미 있는 일을 함께 만들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같은 인터뷰에서 패션에 관한 소신을 묻는 질문에 “패션에 접근하는 자신만의 ‘자세’를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스스로의 만족과 개성 표현을 위해 패션을 과감하게 즐기고, 때로는 패션이 갖는 언어적 기능을 영악하게 이용할 줄 알아야 진정한 멋쟁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인터뷰.

2017년 4월 셀러브리티의 패션 권력에 관한 ‘중앙일보’ 기사에서는 유아인에 대해 "스타일리스트보다 패션을 더 잘 아는 사람" 혹은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고 신진 디자이너를 띄우기 위해 직접 모델로 나설 정도로 패션 큐레이터가 되고자 하는 의지가 강력하다"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왔다. 기사에 따르면 연예인이라도 옷 잘 입는 사람보다 옷을 잘 아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변화라고 한다.

2018년 9월에는 패션브랜드 ‘디젤’의 캠페인 ‘헤이트 쿠튀르(Ha̶u̶te Couture)’[40]에 참여해 아시아 측 글로벌 모델로 나섰다.영상. SNS 시대에 누구나 받을 수 있는 헤이트 코멘트를 위트있게 받아치자는 취지의 캠페인으로, 유아인은 ‘cynic(냉소)’라는 키워드를 맡아 해당 철자가 적힌 의류를 입고 LA에서 광고를 촬영했다. 이와 함께 스튜디오 콘크리트를 통해 패션필름 <The Interview>를 직접 제작했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배우 유아인을 둘러싼 악플이나 사이버 불링, 자기 비하의 풍자, 인터넷 세계에 대한 질문까지 녹여낸 독특한 영상이다. 또한 2018년 이후부터는 까르띠에의 한국 산토스맨을 비롯하여 캘빈 클라인, 버버리 등의 글로벌 앰버서더(브랜드의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방송및 기타  연예 활동

연기 경력에 비해 예능 프로그램 등 방송 출연이 드물다. 2007년 EBS <시네마천국>의 ‘영화처럼’(영상) 혹은 2018년 KBS <영화가 좋다>의 ‘나는 영화인이다’(영상)와 같은 영화소개 프로그램이나 연예정보 프로그램에 간간히 등장했던 정도. 무대울렁증뿐만 아니라, 본인의 표현대로 예능울렁증 역시 심하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2008년에 출연한 MBC <놀러와>나 2009년에 출연한 SBS <야심만만2>에서 극심하게 떠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이때도 청심환을 먹고 왔다고 고백한다. <놀러와>에서는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의 홍보차 동료 배우들과 출연해 막내미를 보여줬고, <야심만만2>에서는 즉흥시를 짓거나 짧게 노래도 불렀다. 2008년 10월에는 <이주연의 영화음악>를 통해 생애 처음 라디오에 출연했다. 긴장한 와중에도 심야방송에 맞게 조곤조곤한 목소리를 들려줘 한동안 팬들의 소장 리스트에 있었다.

2011년에는 <유아인의 론치 마이 라이프>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홍콩 재벌과의 클립 영상이 종종 회자돼 출구 방송으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사실 팬들 사이에선 프로그램을 끝까지 다 보면(총 4부작) 오히려 출구가 봉쇄된다는 입구 방송으로 불리기도 한다.[41] 이에 대해 유아인은 한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방송을 보면서 ‘유아인 싸가지 없어’, ‘개념 없어’, ‘성격 참 더럽다’고 하는 분들도 계시고 반대로 ‘아 진짜 시원해’, ‘솔직하다’고 해주는 분들도 있더라. 그 자체가 재미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남자 배우는 항상 멋있고 착하기만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지 않나. 배우이기 때문에 가져야 할 무게감이 있고, 진중함을 잃어선 안 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무겁고 심각하고 우울하면서도 너무 밝고 어리고 재미있고 유치하기도 하다. 그런 것들이 한 사람 속에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사람은 누구나 그렇지 않나”라고 말하면서 시청자들이 일부 오해할 수 있음에도 “나 또한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2016년 인터뷰에서는 “《성균관 스캔들》 이후 하도 나를 멋있게 봐 주셔서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그 이미지를 깨려고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영화 《완득이》 개봉 즈음 SBS 라디오 <파워타임>에 김윤석과 출연해 처음으로 보이는 라디오를 경험했다. 비슷한 시기에 출연한 YTN 라디오 <뉴스! 정면승부>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이다. 팬들이 가장 열광한 라디오 출연은 2013년의 <씨네타운>이다. 당시 진행자였던 공형진을 대신해 민규동 감독이 임시DJ를 맡았는데, 유아인은 휴식기였던데다 작품 홍보할 때가 아니였음에도 출연해서 팬들이 놀라워했다. 사실은 둘이 미쟝센 단편영화제 때 만났을 때 민규동이 출연을 제안해서 이뤄진 것. 이 방송에서 유아인은 보이는 라디오인 줄 모르고 방송 전 2시간 동안 사우나에 있다가 민낯으로 출연했다.티브이잡스 영상 같은 해 9월 <런닝맨> 추석특집에 김해숙과 출연했다. 플라잉체어 미션에서 출연진들이 아인이 안녕~이라고 예언할 때마다 물 속에 빠지고, 오감푸드배틀에서 젤리튀김을 단번에 맞혔다. 송편찾기 미션에서 열심히 레이스를 펼치고 마지막에는 매운갈비찜을 능숙하게 만드는 등 야외 버라이어티 예능에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2014년 다큐멘터리 <날고싶은 완득이>로 내레이션 데뷔를 했다. 다문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제78회 이달의 방송기자상 지역보도부문 기획보도상을 수상했다.풀영상 2017년에는 6.10 민주 항쟁 30주년 다큐멘터리 <6월 이야기>의 내레이션을 했다. 2017년의 청년 세대가 1987년의 청년이었던 부모 세대의 이야기를 담는다는 내용으로,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시청자들의 작품들을 묶어서 방영했다. 또한, 2018년에는 시리아 내전 7년을 조명한 <시리아의 목격자들>의 내레이션을 맡았다.

한편, 2004년 티오(T.O)의 ‘발자국’으로 첫 뮤직비디오를 촬영했다. 한창 《반올림》 방영 시기였는데, 여기서도 그림을 그리는 10대이자 삼각관계의 주인공으로 나오며 같은 드라마에 등장했던 이은성과 출연한다. 2016년에 출연한 ‘ㅎㅎㅎ(흥부야)’는 페기 구의 음악을 활용하는 아트필름으로, 흥부를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인물로 위트있게 재해석했다. 배경의 그림은 캐스퍼 강 작가의 작품이다. 이후 2019년 페기 구의 첫 번째 뮤직비디오 ‘Starry Night’에 짧은 시간 우정출연했다. 사진작가이자 영상 디렉터인 요나스 린드스트룀이 연출한 작품으로, 상당히 실험적이고 독창적이라 국내외로 주목을 받은 영상이다.

2019년 1월 5일부터 3월 23일까지 KBS 1TV의 시사교양 프로그램 <도올아인 오방간다>에 출연했다.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특집 프로그램으로 도올 김용옥과 출연했다. 도올이 강의를 맡았다면, 유아인은 젊은 세대의 시각으로 이의를 제기하거나 현재적인 관점으로 그 의미를 되묻는다. 또한 본인의 경험를 솔직하게 털어놓거나 방청객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여 여러 주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끌어낸다. 이렇게 방청객들의 참여와 호흡이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이라 박동민 PD는 “조명이나 음향도 관객과 강연자가 마음껏 자유로운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연출한다”고 말했다. 한편, 프로그램의 제목은 유아인의 아이디어였고, 오방신으로 출연한 이희문의 출연도 유아인이 제작진에게 추천한 것이다.

유아인은 무대공포증이 있음에도 매회 250명의 관객 앞에서 3~4시간씩 진행을 한다. 사람들은 그에게 배우로서 득이 없을 것 같은데 왜 그걸 하냐거나 무슨 의미가 있냐는 말을 했지만, 유아인은 마지막회에서 “우리가 함께임을 느끼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어갑니다”라고 말하며 프로그램 참여 의미를 밝혔다. 사실 그는 2018년 즈음 고민이 많아서 부모님, 친구들,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하다가, 자신의 주변에서 가장 연장자인 도올에게 연락한 것이다. 이후 프로그램 출연을 제안받고 관객들과 함께 대화하며 고민을 함께 나누고 싶어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총 12회의 방영분에는 어느 때보다도 유아인의 개인적인 얘기들과 진심어린 고백들이 나온다. 예를 들어 혼란스러운 시기 들었던 어머니의 말(영상다른 영상)을 털어놓으며 우리 모두 특별한 존재라 생각하며 살아가자는 말을 했고, 아버지와의 일화를 통해 가족 간의 역할 강요와 성 평등에 관해 운을 띄웠다. 또한 ‘부끄러움’이란 주제로 자신이 10년 전 쓴 글을 읽었는데, 본방 후 요청에 따라 무편집 버전으로 영상이 올라왔다..

 

기부 활동

2013년 1월 유아인이 아름다운 재단에 7,700만 원을 기부했다. 보육시설 아동들의 급식비 인상을 위한 ‘나는 반대합니다 시즌2’ 캠페인에 참여한 것이다. 캠페인의 목표액에서 1%를 남겨두고 기부했는데, 이는 사람들의 관심을 촉구하여 더 많은 기부 참여를 끌어내기 위함이었다. 아름다운 재단을 이를 두고 ‘채움을 위한 비움’으로 표현했으며, 실제로 다른 사람들의 참여로 목표액을 100% 달성했다. 또한 기부와 동시에 아름다운 재단에 보낸 이메일의 전문이 공개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유명인은 기부를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보람을 느끼고 그 일을 널리 알려 더 많은 사람들이 뜻 깊은 일에 동참하게 하는 시너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선진 기부 문화이고, 좋은 뜻을 가지고도 주저했던 저와 같은 많은 분들이 이제는 주저 없이 그러한 기부 문화를 만드는 일에 동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미 좋은 일에 앞장서신 선배님들의 발꿈치에라도 따라가고자 애쓰는 저처럼 많은 분들이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선의를 가지고 행동하건 행동함으로써 선의를 갖게 되건 기부라는 행동은 그 자체로 사회의 음지를 밝히는 등불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름다운 재단이 공개한 유아인의 이메일 중에서, 전문은 여기에서 확인

2014년 1월에는 ‘러브 시티’ 티셔츠의 수익금을 기부하면서 아름다운 재단에 뉴키즈유아인기금을 조성했다. 유아인과 브랜드 노앙(NOHANT)이 론칭한 서브 레이블 뉴키즈노앙(newkidz nohant)은 수익금의 일부를 기부하는 ‘From new kidz to new kids’ 캠페인을 벌였는데, 소외계층 아동청소년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을 약속하며 기금을 조성한 것이다. 뉴키즈유아인기금은 문화 소외 지역의 아동청소년들에게 다양한 체험기회를 제공하는 ‘아동청소년문화체험지원사업’과 아동양육시설에서 생활하거나 퇴소한 후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의 학비와 학업보조비를 지원하는 ‘아동양육시설퇴소거주대학생 교육비 지원사업’에 기부금을 사용한다. 유아인은 기금을 개설하는 취지를 설명하는 글을 썼는데, 그의 팬들 역시 이러한 뜻에 맞춰 해당 기금에 지속적으로 기부를 하고 있다.
삶의 가치를 스스로 깨우치며 실현케 하는 참된 교육의 장으로 아이들을 인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저마다 다른 개성과 특성을 가진 소중한 우리 아이들. 하지만 너무 일찍 불편한 현실을 불행으로 짊어진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소중함을 발견하고, 미래에 대한 꿈을 꾸며 ‘특별한 아이들’로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유아인의 뉴키즈유아인기금 개설 취지 중에서, 전문은 여기에서 확인

2014년 8월 가수 백지영으로부터 아이스 버킷 챌린지 다음 주자로 지목받았는데, 당시의 아이스 버킷 챌린지 열풍은 놀이와 자기과시의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의 시각도 많았다. 이에 유아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캠페인을 너무 꼬아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글을 올리면서, 분장을 한 채로 영화 촬영 중인 관계로(당시 《사도》를 촬영 중이었다) 챌린지 대신 승일희망재단에 기부한다고 밝혔다.

2015년 5월 어린이날을 맞아 스튜디오 콘크리트 차원에서 자선바자회를 열었다. 유아인은 바자회에 개인 소장품을 내놓았는데, 구매자들에게 설명하면서 사이즈를 체크하며 직접 옷도 골라줬다고 한다. 바자회의 수익금과 수익금의 5배수가 되는 금액을 유아인이 추가 기부하여 기부금을 마련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기부금 중 50%는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 기부되고 나머지 50%는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어린이․ 청소년 예술교육지원사업처 설립을 위해 사용됐다.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 기부하여 환아들의 수술비가 지원된 사실은 10월 14일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기사를 보면 DC 유아인갤러리가 해당 재단에 지속적으로 후원한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유아인이 이런 팬들의 뜻에 동참해 후원을 시작한 것이다. 유아인갤러리는 2010년부터 정기 후원 및 기념일 기부를 이어왔으며, 2017년에는 유아인이 이를 언급하기도 했다.

2016년 어린이날에도 자선바자회를 열었다. 유아인이 바자회에서 구입품을 포장해주고 직접 계산도 해줬다는 후문이다. 이 자선바자회는 스튜디오 콘크리트에서 유아인뿐만 아니라 그의 지인들도 참여해 어린이날마다 열리는 연례 행사로 자리잡았다.[42] 같은 해 12월에는 본인이 오디오가이드로 참여한 전시회의 티켓 4000만 원 상당을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했다. 유아인은 자신의 기부금이 항상 아이들을 위해 사용되길 바란다며 많은 아동 청소년에게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이와 같이 급식비 인상 캠페인 참여부터 뉴키즈유아인기금,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 후원, 매년 주최하는 자선바자회에 이르기까지 유아인은 직접 언급한 대로 '미래세대'인 아동 청소년이 겪는 사회적 불평등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사회적 관심까지 이끌어 내며 꾸준한 기부 활동을 펼쳐 왔다.

 

 

배우 유아인을 구성하는 대중적 이미지들 

필모그래피를 보면 초기작부터 불우하고 반항적인 인물을 자주 연기했다. 이러한 이유로 ‘반항아’라는 단어가 유아인의 수식어로 자주 인용된다. 개인적으로도 “유독 성장통을 심하게 겪었고 사회에 불만도 많았다”고 한다. 사실 유아인은 그간 맡은 반항아 캐릭터들이 이미지만 거칠 뿐 오히려 현실 순응적이었다며, 《사도》의 사도세자 역할이 진짜 반항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본인의 캐릭터에 있어서 정점이라고 밝힌 바 있다. 2011년 《완득이》 언론시사회에서는 반항아 캐릭터를 연달아 연기한 것에 대해 “내가 맡았던 캐릭터가 공통적으로 반항아이거나 사회에 불만을 품고 있는 인물, 부모에 반기를 드는 역할, 불우한 환경에 있거나 가슴 속에 응어리가 한가득 있는 캐릭터였다”며 “내가 생각하는 현실이 그것이고 내가 그 시기에 놓여 있다. 아직 매끈하게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 인물들에 관심을 쏟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15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기존 질서의 의문을 던지는 게 반항아의 역할”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미지 덕인지 이준익 감독은 《사도》의 제작기 영상에서 유아인에게 존재하는 반골 기질이 사랑스러워 캐스팅했다고 밝혔다.

반항아의 연장선으로 아웃사이더의 이미지 역시 강했다. 학교를 자퇴하는 등 제도권에 어울리지 못했던 유아인의 개인적인 경험도 얹어준 듯. 특히 커리어적으로 성공을 거두기 전에는 비주류적 느낌도 존재했다. 그러다가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이후 유아인은 스스로 주류로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시작했고, 전에는 아웃사이더 밖에 할 수 없는 아웃사이더였다면 이후에는 안과 밖을 오갈 수 있는 아웃사이더가 되었다고 말했다.인터뷰 기사. 2015년에는 “욕심도 나고 잘 됐으면 좋겠고 인정도 받고 싶다. 반항심이었을까. 예전의 내가 동네 돌아다니는 개처럼 어슬렁어슬렁하며 '나를 어루만져주든 밥을 주든 마음대로 해, 흥' 하는 스타일이었다면, 요즘엔 ‘쓰담쓰담 해줘’하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러한 점들이 유아인을 또래 배우들과 구분 짓게 한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독보적 이미지를 구축한 것 아니었느냐는 질문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난 늘 아웃사이더였다. 다른 또래 배우들을 보면 참 친근하고 예쁜데 나는 왜 이렇게 모났나 싶었다. 남들하고 같이 있으면 3등도 못할 것 같으니까 내 운동장에서 나 혼자 달려서 1등 하겠다는 야심으로 살았다.
잡지 <매거진 M> 124호

덧붙여, 유아인은 한때 인터넷에서 가난미가 있는 배우로 꼽히기도 했고, 왕족과 재벌 역할을 연달아 맡으면서 여러 이미지를 겹쳐놓기도 했다. 본인은 소외된 인물을 연기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또한 비극적인 스토리를 좋아하고 비극을 연기하는 데 매력을 느낀다고 종종 밝혀왔다. 필모그래피 상 대부분의 작품들이 무거운 편이고 극 중 캐릭터는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랑에 있어서도 짝사랑으로 끝나거나, 불륜처럼 파국이 예상되거나, 쌍방으로 사랑해도 어느 한쪽이 죽었다. 고아이거나 결손 가정에서 자란 경우도 많았고, 선악의 구분이 없거나 광인으로 변하는 등 절대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들을 맡아 왔다. 그래서인지, 커리어 초반 작품을 함께 했던 노동석 감독은 “외모와 대조적으로 격정적인 내면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고 말했고, 정윤철 감독은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서 광적인 느낌까지 변화의 폭이 굉장히 넓다”고 유아인을 이야기한다.

이처럼 또래 배우들과 구분되는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편이다. 젊은 배우임에도 자녀를 둔 아버지 역할을 몇 차례 맡기도 했고, 다소 가벼운 터치의 작품들에도 항상 비극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특히 젊은 배우로서 본격적인 로코물이나 트렌디한 작품 없이 아역부터 차근차근 밟아 올라오면서 인기를 얻은 점이 인상 깊다. 물론 배우로서의 커리어가 향상되고 상업적인 노출이 잦아지면서 비주류적 이미지는 많이 지워진 편이다. 또한 ‘패셔니스타’라는 수식어나 아티스트 그룹 활동 등이 배우 자체를 트렌디하게 만든 점도 있다. 하지만 유아인은 여전히 마이너적인 것이 본인의 근본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마이너 감성으로 메이저 배우가 됐다는 점 자체로 자신만의 영역을 확고하게 구축하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불안한 청춘과 소년성 역시 배우 유아인을 구성하는 이미지 중 하나다. 스스로 ‘번외편’이라고 밝힌 조태오에 소년성을 부여하고 사도세자 역할 역시 청춘 캐릭터로 접근하는 등 모든 캐릭터를 소년스럽게 해석하는 면이 있다. 백은하 기자와의 <무비스타 소셜 클럽> ‘스타 프리뷰’ 인터뷰에서는 캐릭터에 소년성을 끊임없이 부여하고, 소년성을 다양하게 변주하며 연기하고 싶다고 밝혔다. 강유정 평론가는 “유아인이 돋보이는 작품들에선 언제나 소년이 공존한다”면서 유아인의 매력은 어른과 아이가 공존하는 “애매성과 양가성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했다. 김선영 칼럼니스트는 “어딘가에 갇히고 붙박인 모습은 유아인의 청춘들을 지배해 온 대표적 이미지”라고 분석했다. 이어서 “구속하고 억압하는 세상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찾는 태도는 ‘소년성’의 핵심”이라면서 “유아인의 배우로서 성장은 이 청춘 성장물이 사라진 시대, 정확히는 젊은이들의 성장이 불가능해진 시대에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유아인의 인물들이 그 불가능성에 좌절하면서도 기어코 온몸으로 맞서는 소년들이기 때문이다”라고 평했다.기사 그렇기 때문에 청년을 다룬 영화 《버닝》을 해석하는 건 ‘유아인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표현도 나온 적 있다.기사

유아인은 줄곧 청춘물에 대한 갈증이 크다고 말했다. 2007년에는 “규정지어지지 않고, 안정되지 않으려 노력하고, 어찌 보면 위태로운” 청춘의 이미지가 좋다고 인터뷰했다. 또한, 청춘의 얼굴로 동시대 청춘을 대변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한다. 주된 관심사가 청춘들이 성장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맡은 캐릭터들이 청춘의 성장에 초점이 맞춰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비슷한 맥락으로 청춘의 액기스는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순간의 모습을 담은 멜로물에도 욕심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2018년 인터뷰에는 순수함에 대한 지향, 불안함, 정제되지 않은 것들, 그 시기 아름다움에 많이 집중했었다고 밝히며, 보다 현실적인 청춘의 실질적 감정들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버닝》 등에서의 청춘을 연기할 때 “단순히 개인적인 경험에 기인하거나 제 발자취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청춘을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책임감을 가지고 이 시대의 청춘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호불호가 선명하다는 이미지 역시 존재한다. 주관이 뚜렷하고 솔직하지만 까칠하다는 이미지는 다소 거침없는 SNS의 멘트들로 인한 영향이 큰 듯. 이은주 기자가 “SNS에서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거침없는 발언이 때론 그를 곤경에 빠트리기도 했지만 기획사에 틀에 갇히지 않고 자기주장이 확실한 ‘날 것’ 그대로의 이미지는 결과적으로 그에게 플러스로 작용했다”고 얘기하듯기사 유아인의 SNS 활동은 그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반면에 최재욱 평론가가 지적하듯 “종종 SNS상에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지나칠 정도로 여과 없이 드러내는 화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가 스타 의식이 넘치고 버릇없고 거만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최 평론가가 이어서 얘기하듯이 유아인은 다소 자아가 강하고 고집 있으며 약간의 ‘똘끼’도 남아 있으나, 예의 바르고 친절하며 남을 배려할 줄 안다고 한다. 대중에게 “접근하는 방식이 다른 이들과 약간 차이가 있고 투박할 따름”일 뿐 유아인은 “좌충우돌하면서도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성장해왔다는 것이 요지다.기사

이렇듯 유독 선입견이 많은 편이다. 2014년 잡지 <엘르> 인터뷰에서 “나에 대한 소스를 많이 제공하다 보니 세간의 잣대가 생긴 것 같다”고 선입견이 생긴 이유를 스스로 말한 적도 있다.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는 시선에는 “진짜 자신 없다. 뭐가 맞는 말인지, 또 정답은 무엇인지 모른다. 그저 내가 보는 것, 아는 것, 해석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내 일이고 생각하고 표현할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그냥 나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니까” 대중들에게 자신이 “별난 아이로 비치는 것 같다”고 인터뷰한 적도 있다. 게다가 연기 외적인 활동들이 상당수 배우 유아인의 이미지와 혼합되거나 작품 속 캐릭터를 통해 구축한 판타지를 희석시켜 버리기도 했다. 김혜리 기자는 2011년 씨네21 토크쇼에서 이러한 선택이 수반한 위험[43]을 지적했는데, 유아인 본인이 궁극적으로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유아인은 규정할 수 없고 뭐든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김혜리 기자는 <씨네21> 기사에서 이러한 유아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하기도 했다.
표현과 삶이 동의어인 세대의 아이인 유아인은, 트위터와 미니홈피를 통해 들끓는 자신의 현재를 세상과 교신하며 청춘을 종단하는 전례없는 유형의 스타다. (중략) 21세기 배우 유아인은 일방적으로 팬들이 그를 상상하고 욕망을 투사하도록 도무지 내버려두질 않는다. 뜻대로 알맹이를 채울 수 있는 이미지만 주는 게 아니라, 생각과 감정까지 바삐 타전한다. “너의 스타인 나는 이런 사람이니, 함께할 수 있는 한 잘해보자”라고 말을 건다.
김혜리 기자, 출처.

함께 작업한 사람들에 의하면 섬세하고 세심하다. 또한 내성적이고 낯을 가리는 편이다. 하지만 애교는 타고난 듯? 더불어 배우로서 유아인에 대한 공통적인 표현은 ‘영민하고 영리한 배우’이다. 배우 송강호는 유아인이 자신과 공통적으로 성격적으로 낯을 많이 가리는 등 비슷한 점이 많아 편했다고 인터뷰했다. 《밀회》를 연출한 안판석 PD는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자기 머리로 사고하고 자기 입으로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아주 섬세하고 맑은 영혼인데 까칠하다거나 튄다는 얘기도 더러 듣죠. 하지만 개의치 않고 자기 길을 걸어가는 걸 보면 훌륭한 젊은이”라며 유아인이 섬세한 타입이라고 말했다.인터뷰 기사.

함께 호흡을 맞췄던 신세경은 유아인이 “앞뒤가 같은 스타일”이라며(2014년 연예가중계), 자기주관이 뚜렷하고 의견을 분명하게 표현할 줄 알아서 부럽다고 말했다(2015년 <나일론> 인터뷰). 2016년에는 “섬세하고 센스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까칠하고 당돌하다는 선입견은 다소 확고한 주관에 기인한 듯. 이와 관련해 이한 감독은 유아인을 “따뜻한 마음이 있는 착한 배우”라고 하면서 “일에 있어서 자기의 좋고 싫음을 명확하게 얘기 하는 게 아직은 나이가 젊은 연기자다 보니 까칠하게 비춰질 수 있었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인터뷰. 류승완 감독은 유아인에 대해 “홀린다”고 표현했다. 이준익 감독은 유아인이 현재주의자이며 “과거와 미래를 함께 아는 친구”라면서 “그가 현실에 충실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미래에도 과거에도 얽매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버나드 쇼의 말과 달리 “젊음을 주어도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배우 정유미는 유아인을 “산”으로 비유하면서 산처럼 많은 것을 담았다고 표현했다. 또한 2019년 장윤주는 그를 두고 “매력이 많은 친구”라고 말했다.

또한 종종 시크한 성격의 소유자로 오해받지만, 실제로는 친절하고 매너가 좋다.#1 #2 #3. 인사성이 좋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래서 2017년 라디오 두시탈출 컬투쇼에 출연한 배우 강홍석은 처음 만났을 때 유아인이 너무 공손하게 인사해서 놀랐다고 말한 적 있다. 팬서비스도 확실하게 하는 편이다.[44] 무심한 듯 잘 해주는 츤데레 느낌이 있어서 팬들은 그를 두고 ‘엄다정’이라 부른다. 게다가 팬들 조련이 수준급 영상1 영상2. 영상3. 지인들에게 꽃선물과 함께 손편지나 카드를 자주 써주기도 하며, 기자들에 의하면 솔직하고 배려심이 있다고.#1 #2. 《성균관 스캔들》의 김원석 감독은 유아인이 섬세하고 자상하다며 일화를 공개했다. 촬영 중간 졸고 있었던 김원석 감독에게 유아인이 큰 종이에 편지를 써서 햇빛을 가려줬는데 ‘감독님의 피곤한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인터뷰 기사. 스튜디오 콘크리트 크루들은 그에 대해 순수하고 사랑이 넘치며, 따뜻하고 배려심 넘친다고 표현한다. 이렇게 이중적 이미지의 공존으로 인해 이런 영상에서 보이는 갭모에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느낌의 혼란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유아인은 이렇게 사람마다 평가가 확연히 다른 연예인으로 이미지가 형성되는 것이 오히려 흥미롭다고 밝혔다.(2011년 <인스타일> 7월호) 배우로서 사랑받고 싶으면서도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행동만 하지 않는 질문에 대해서는, “최대한 나인 채로” 사랑받고 싶고,(2013년 10월 ‘아이즈’ 인터뷰) 칭찬과 욕을 동시에 들어도 흥미로운 배우, 재미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2013년 10월 ‘텐아시아’ 인터뷰) 또한 사람들의 호오가 나뉠 지라도 “나 스스로를 드러내고 지키고 싶다. 그러면서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모델이 되고 싶다”면서 계속 표현할 것이라 했다.(2018년 11월 ‘스타뉴스’ 인터뷰)
저에게 ‘지 마음대로 하는 이미지’가 어느 정도 있다는 건 알고 있어요. (중략) 제가 인간적인 모습에 있어서도 거침없는 이미지가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중략) 누가 봐도 다 해석이 다르고, 정답이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심판대에 올라가는 직업이지만 심판되기 싫었고, 어디에도 규정되고 싶지 않다는 욕망을 갖고 살았어요. ‘어디까지 갈까, 어떤 연기까지 할 수 있을까’ 싶은 욕망이 강박으로 변하고 거기에 혼란스러움이 더해져서 지금의 제가 된 것 같아요.
2015년 9월 30일 ‘스포츠경향’ 인터뷰
어떤 식의 대중적인 평가를 받는지도 알고 있고, 굉장히 호불호가 나뉘는 배우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어떨 때 사람들이 유아인이라는 배우를 혼란스러워 하고 어떨 때 박수치고 어떨 때 야유를 보내는지 알고 있어요. (중략) 제가 하는 모든 행동들, 모든 말들이 ‘나를 예뻐해주세요’는 아니에요. 알면서도 모난 내 구석을 드러낼 때도 있고 조금 오그라들고 느끼할 거 알면서도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해볼 때도 있고. 그런 게 재밌지 않아요?
2016년 2월 16일 네이버 V무비채널 ‘배우를 만나다’ 인터뷰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그동안 배우로서의 행보가 쉬운 길을 놔두고 먼 길로 돌아간다고 자주 설명되곤 한다. 본인 말대로 널뛰기하고 싶어하는 배우이며 하나의 장르에 갇히고 싶지 않은 것을 목표로 잡았기 때문인 듯하다. 연기를 지칭한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비단길 아니라고 투정부리지 않고 험한 길 내 발로 잘 걷고 있나 반성한다”고 표현한 적도 있다. 2013년 인터뷰에서는 “지금의 내가 되기 위해 굉장히 애쓰고 노력하면서 고통과 싸워왔다.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고. 그런 내 자신으로 비춰지고 이해받고 사랑받는 게 너무 행복하다. 오해도 많다. 내비춘다는 것은 동시에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거니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스스로 “잘 하든 못 하든, 모습이 말쑥하든 울퉁불퉁하든 다른 재미를 주고 싶다. 참 흥미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해 주고 싶었다”고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모습들로 인해 대중들로부터 배우 유아인에 대한 여러 이미지가 덧입혀져 왔다. 이는 배우가 가진 특유의 개성이자 매력이나, 자칫 대중들이 유아인의 취향과 본질을 받아들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럼에도 여러 작품들을 통해 유아인이 대중과의 친밀도가 높아진 것은 고무적이다. 배우 김윤석이 “아인이는 더디게 발을 내딛을지언정 엘리베이터를 안 탈 것 같아요”라고 말한 것처럼, 유아인 특유의 영역과 대중성이 더딜지라도 함께 확장하여 본인의 목표처럼 대중에게 혼란을 주면서 흥미로운 배우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을 듯.

유아인은 2011년 <더블유> 인터뷰에서 “사람들의 반응은 쉽고 빠르게 변하고, 또 그럴 수밖에 없음을 이해한다”며 사람들에게 “유아인이라는 배우는 대수로울 게 없는 아주 사소한 흥밋거리”일 수도 있다고 말한 적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금씩 재미있는 걸 꺼내 보이며, 한두 작품이 아닌 큰 그림 안에서 ‘쟤는 뭐지’ 하는 느낌을 주고 싶다. 뭔지 알 수 없는 게 내 이미지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2016년에는 배우로서 “선입견을 만들고 깨부수는 과정의 반복”에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로서 자신에 대한 선입견을 스스로 만들고 다시 깨는 과정을 통해 “세상의 시선을 기꺼이 받으며” 세상 한복판에 살아갈 것이라 언급한 적도 있다. 따라서 ‘유아인’은 한 개인이라기 보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빚어내는 인물이라고 말하면서, “나같은 배우도 있어야 세상이 재미있지 않을까요?”라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2018년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는, 즉각적인 사랑과 주목을 받는 것 보다 사람들이 관심있어 하는 대상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부분이 되는 것이 배우로서 의지이고 목표라고 말했다.

 

연기와  예술에 대한 유아인의 생각들

배우란 “불덩이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라 표현하면서 “어떤 작품 안에서도 그것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다. 늘 잔여물 때문에 속상해한다. 배우의 에너지라는 게 빠졌다 채우는 충전지 같은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2016년 2월 GV에서는 작품에서 어떤 장면을 가장 다시 찍고 싶냐는 질문에, 연기를 하면 매순간 후회되고 모든 씬을 다시 찍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본인 내면의 다양한 성분들을 수면 아래 두었다가 재조합하여 수면 위로 꺼내는 것이 연기 방식이라고 한다. 이러한 성분을 갈무리해 작품과 역할에 부합하는 독자적 인물로 조합한다고. 2016년 <홍콩 엘르맨> 5월호 인터뷰에 따르면, 본인에게 연기는 컨트롤 스위치나 피아노 건반 같은 것이라고 한다. 불빛은 본래 존재하지만 스위치를 누르면 들어오고, 건반 역시 눌러야 그에 맞는 소리를 내는 것이 본인의 연기 방식과 닮았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자신 안에 이미 모든 감정과 해석들이 정리되어 있고, “필요할 때 절절히 끄집어낸다”는 것이다.[45]
청춘 배우이자 반항적인 이미지를 지닌 배우로서 10대와 20대의 편에 서서 항상 기성세대에 맞서는 것을 좋아했다가, 점점 부모세대와 화해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따라서 기성세대와 후세대를 동시에 이해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배우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고, 배우로서 가치 있게 살아가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단순히 작품이나 배역에 대한 공감을 넘어서서 어떻게 하면 작품, 배역 그 이상의 확장적인 이야기, 확장적인 느낌을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면서 “‘유아인’이란 캐릭터를 의미 있게 그러면서도 재미있게 지켜가는 것이 제 바람”이라고 전했다.
배우 활동 외에도 아티스트 그룹에서 다양한 예술 콘텐츠를 기획하는데, 이러한 기획 활동은 “창조적인 아이디어들이 조화롭게 되는 상태를 만들어주는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연기와 이런 예술 기획 일의 성질이 크게 다르지 않다며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그 일들이 연기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주기도 한다. 다른 시각에서의 예술적 견해, 유아인이란 인물을 가져가고 만들어주는 것에 대한 큰 동력이 되는 것 같다. 내 타이틀만 달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지양하려 노력한다. 그렇다고 경영자의 역할보다는 조금 다양하고 창조적인 일들과 호흡을 주고 받으며 시너지를 발생시키는 일을 하려한다.”
배우로서 대중들을 향해 표현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하는 배우라는 일은 ‘멋있는 척’ 하는 일이 아니다. 나도 과거에는 더 유명해지고 싶고 더 인기를 갖고 싶고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연기라는 본질에 충실하고 싶다. 스스로도 만족하고, 대중에게도 만족을 줄 수 있게 말이다. 내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잘못하는 순간도 있겠지만 충분히 반성하고 느끼며 살아가도록 하겠다. 거기에 자연스럽게 따라갈 생각이다. 나는 배우로서 계속 인물을 창조할 것이고, 내가 해석한 세상을 표현할 것이다. 그 일이 재미있다.
2016년 3월 23일 기자간담회 중에서
배우로 가장 잘 알려져 있기에 일각에서는 그가 하는 연기 외 활동을 외도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유아인은 연기든 글이든 그림이든 “직접 포착하고 해석한 것들을 제 방식으로 재창조하고 표현”하는 것이므로 “다양한 수단과 과정을 통해서 창조에 이바지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연기도 그 중 하나라고 말했다.
스스로를 ‘퍼포머’라고 지칭한다. 그러면서 “배우 영역을 확장해가며 어떤 표현의 양식들을 사용해 대중과 호흡하고 의미 있는 순간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창조적인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때문에 이런 점에 있어서 “좀 더 재밌고 유의미하고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을 느끼며 살아가고 싶어 하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2019년 한 서면 인터뷰에서 10년 후에는 어떤 평가를 바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내 존재는 내 행위에 고스란히 담길 수 있을까, 이 인터뷰는 제대로 번역되고 쓰일 수 있을까, 내 의도가 오독되지 않고 전달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이 곳은 10년을 성실하게 살아도 10년째 하루의 실수나 가짜뉴스 하나로 이미지가 추락하고 지난 10년을 부정당하는 그런 세계가 아닌가. 행위의 파장이 세상에 적용되고 작품으로 기억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2019년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배우라는 직업은 최고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아무것도 안 될 수도 있다. 배우로 살다보니 주변에 일어나는 현상을 유심히 관찰하고, 인간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고 내 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습관이다. 내 직업적 소명의식이다.
2019년 11월 30일 ‘헤럴드경제’ 인터뷰

 

함께 작업한 사람들 이 말하는 유아인

민규동 감독
아인이와 있다가 헤어질 시간이 되어 그 애가 시선을 돌리거나 나로부터 멀어져갈 때면, 그 뒷모습을 왠지 한참 바라보고 있게 돼요. 시간이 곧장 끊기지 않고 점, 점, 점, 말줄임표 같은 게 생겨요.
배우 김재욱
유아인은 정말 순수하다. 감정에 솔직하고 생각이 깊은 어른스러운 아이다.
이한 감독
어린 친구가 멋 부리지 않고 연기할 줄 안다. 타고난 것 같다. 촬영은 하면서 ‘내가 만약 이 친구를 놓쳤으면 어쩔 뻔했나!’라고 몇 번이나 생각했다.
유아인은 강단은 있어도 시키는 건 잘 한다. 어떤 때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연기할 때도 있다. 유아인은 자기 안에서 색깔을 찾아나가는 배우다.
배우 김윤석
평소 당돌한 이미지로 알려진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영화 작업에 매진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친구다. 하나하나 안 놓치려는 자세도 좋지만 감각이 뛰어난 후배 같다.
지상은 스타일리스트
아인이는 대중에게 비치는 이미지와는 달리 정도 많고 의리있는 아이예요. 그리고 굉장히 까다로울 것 같은 이미지로 알려졌지만, 절대 그렇지 않아요. 제가 주는 옷은 항상 신뢰를 가지고 입어주는, 제가 본 배우 중 가장 착한 배우인걸요.
백종헌 씨네21 사진작가
배우라도 촬영자 입장에서는 유아인이라는 모델은 최고이기도 하면서 최악이기도 하다. 최고의 장점은 굳이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그는 쉼 없이 움직여주고 표현해주고 말을 걸어온다. 그렇기에 촬영하는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좋고 신이 난다. 최악의 상황은 내가 그 사람을 그 만큼 담아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이다.
배우 이시언
《깡철이》를 촬영할 때 아인 씨와도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했다. 그는 연기 경력이 오래된 만큼 자기 주관이 뚜렷했고 그런 모습이 연기에도 묻어났다. 내가 생각하는 (긍정적인) 자신감이 있는 친구였다. 연기도 굉장히 생동감 있다. 상황에 맞게 툭툭 치고 들어온다. 나는 정말 많은 준비를 해놓고도 그의 연기를 하나도 받아내지 못했다. 그때 그가 나에게 부담감을 줄이는 방법에 관해 여러 이야기를 해줬다. 연기 호흡과 톤은 물론이다. 그때 아인 씨가 한 이야기를 마음을 닫고 듣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당시에는 스스로 개선할 필요를 느끼던 차였다. 그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많은 게 달라질 수 있었다. 《깡철이》 이후 연기에 관한 불안감이 많이 사라졌다.
안판석 PD
타고난 배우다. 내가 본 유아인의 특성을 이야기하자면 머리가 비상하고 정직하다는 것. 조금이라도 가짜인 것의 이물감을 견디질 못한다. 느낌으로만 연기를 하는 게 아니고 감성을 지적으로 통제해가면서 연기한다. 그 나이에.
단순하게 개성 있다는 진부한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유아인은 문학적인 언사를 동원해야 평가가 가능하다. 유아인은 세상의 유행이나 통설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가 자신의 주인인 배우이다.
김소형 피아니스트
피아노를 안 배웠는데도 한번만 말하면 금방 이해하고 따라와 항상 감탄스럽다. 또한 무척 어려운 곡을 줘도 그 다음날이면 바로 외워오는 걸 보고 순간 몰입도와 집중력을 가졌음에도 자만하지 않는 엄청난 노력파라는 걸 깨닫게 됐다.
류승완 감독
카메라 앞과 뒤의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는 방식들이 요즘 세대에 적합한 배우라는 생각을 했다. 공과 사의 구분을 명확히 하면서도 굉장히 예의를 지킨다.
유아인은 아주 명석한 배우고 더 좋은 배우가 될 거라고 보는 게, 연기도 연기지만 자신이 특별한 사람으로서 가치 있는 삶을 살려는 태도가 있다는 거다. 누군가에게는 겉멋과 객기로 보일지 모르지만, 내가 경험해 본 유아인은 정제되지 않은 것과 본심이 있다. 자신이 누리는 것만큼 이것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잊지 않으려고 하는 배우다. 자기가 빛을 쪼이는 동안 그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에 대해 외면하지 않으려 한다.
이준익 감독
시나리오 쓰면서도 작가들하고 ‘이건 유아인이야’ 라고 말하면서 썼는데 너무 행복했어요. 인간 자체가 어떤 물건이에요. 적어도 내가 그 나이 때 유아인만큼 뜨거웠는가, 유아인만큼 치밀했는가, 그리고 그 치밀한 것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했는가. 이런 것들을 현장에서 보면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요즘 친구들이 다 저런가, 아니면 유아인만 유난히 저런가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해 준 배우예요. 후배지만 많은 걸 배운 것 같아요. 그리고 작업 이후에도 항상 잔상이 남아있는 아주 인상적인 배우입니다.
유아인은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것에 대한 절대치가 확실히 있어요. 굉장히 높죠. 야구로 예를 들면, 유아인의 공은 강속구예요. 유아인의 연기는 시속 170km의 강속구로 날아와요. 그것도 돌직구요. 그럼 난 포수 잖아요. 모니터를 보고 유아인이 던지는 강속구를 잘 받아야 해요. 그 엄청난 강속구를 ‘딱!’ 하고 받는 순간 내 손이 얼얼한 정도의 느낌을 제대로 받죠. 그래서 《사도》 때 즐거웠어요.
배우 송강호
테크닉적으로 연기할 수 있음에도 스스로 그걸 경계하고 자신의 진솔한 마음을 믿고 연기했다. 정직한 영화의 문법을 정확히 꿰고 있는 게 반가웠다. 사도는 어떤 배우가 하더라도 광기를 표현할 때 기교를 부리고 싶은 유혹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아인은 자기 진심을 믿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너무 대견스러웠다.
정말 훌륭한 배우예요. 《사도》 뿐만 아니라 《베테랑》을 보면서 탄사가 절로 나오더군요. 유아인의 연기가 놀라운 점은 굉장히 테크닉적으로 연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감정에 자신을 내던져요. 그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전형적인 느낌으로 연기할 수 있었는데 잔재주나 잔기술을 보여주지 않고 정직하게 연기하더군요. 그 나이에 할 수 없는 연기를 했어요. 《베테랑》 VIP 시사에 갔다가 유아인의 연기가 정말 좋아 기분 좋아 뒤풀이에서 새벽 7시까지 있었어요.
배우 신세경
유아인 오빠는 굉장히 섬세한 사람이더라. 제 컨디션이 어떤지까지 안다. 이 타이밍에 뭐가 필요한지 아는 센스가 있다.
인간으로서 유아인은 앞뒤가 똑같은 사람, 악의가 없는 사람이다. 연예인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 눈을 의식하고 살 수밖에 없다. 대중 앞에서와 개인적인 시간을 보낼 때의 모습이 다르기 마련인데 유아인은 정말 똑같다. 그만큼 자유롭고 가식이 없다. 굉장히 부럽다.
유아인 오빠는 굉장히 인상 깊었던 상대 배우 중 한 명이다. 이건 빈말이 아니라 진심이다. 드라마 《패션왕》의 캐릭터 ‘강영걸’은 좀 망나니 같은 남자였다. 당시 드라마 관련 리뷰 기사는 ‘남자 주인공 이상하다’, ‘이해할 수 없다’는 댓글로 온통 도배됐었다. 그런데 유아인 오빠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신나게 임하더라. 막 주목 받기 시작한 젊은 배우가 대중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역할을 즐기면서 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유아인 오빠가 끝까지 자기 캐릭터를 책임지는 모습을 보고 ‘아, 저런 사람도 있구나’ 싶었다.
김영현 작가
유아인 씨는 우리가 고민하던 대목에 연기로 그 방향을 알려 준 배우였어요. ‘이야기에 방해되면 내 분량 신경 쓰지 말고 빼세요’란 쿨한 모습에 놀라기도 했고요.
차혜영 스튜디오 콘크리트 공동대표
보통 사람들보다 더 정확하고, 열정적이고, 또 순수하다. 그리고 사랑이 넘친다. 10년 전 친구로 만났을 때부터 그와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고 난 후에도 한결같다. 어떤 때는 철딱서니 없는 어린애 같이 해맑다가 또 어떤 때에는 한 사람을 다 살아본 사람처럼 오백 살 어른이 된다. 파트너로 그리고 친구로서 엄홍식은 참 벅찬 존재다. 감당하기 쉽지 않다는 의미의 벅참도 있고, 감격, 기쁨, 희망 따위가 넘칠 듯이 가득하다는 의미의 벅참도 있다.
배우 전종서
유아인 선배님은 세심하고, 포용력이 굉장히 넓다. 많은 부분을 말로 하지 않고 공감을 해준다. 이런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저런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큰 사람 같다. 사람에 대한 수용력이 있다고 할까. 되게 인간적이었다. 선배라고 해서, 현장 경험이 많다고 해서 대단하게 뽐내기보다 되려 날 배려해줬다. 그게 저로서 존경할 수 있는 마음이 저절로 들게 했다.
이창동 감독
유아인 씨를 보고 놀라웠어요. 사실 제가 평소에 유아인 씨를 보면 잘 모르겠어요. 이런 스타를 제가 평소에 잘 만나지도 못하고, 스타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사실 잘 모르니까. 아는 것 같지만 사실 잘 모르거든요.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그런데 종수가 됐을 때를 보면 실감이 나요. 종수로 나타났을 때는 이 세상, 이 한국의 어느 한 구석에, 저렇게, 저런 표정으로, 저렇게 걷고, 저렇게 말하는, 저런 친구가 분명히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카메라 앞에서도 물론이지만, 저한테도 확실하게 실감을 전해주기 때문에, 어떤 표현이냐를 떠나서, 그것이 유아인이라는 배우의 놀라운 자기 체화의 능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배우 김혜수
저는 개인적으로 애정이 있고, 굉장히 다양한 매력이 있는 친구예요. 어릴 때는 혼자 있기를 좋아했던 것 같고, 굉장히 조용했던 걸로 기억해요. 생각이 많고, 진지하고, 자기 생각이 정확하고, 정신적으로 굉장히 건강해요. 그리고 배우로서는 어마어마한 포텐이 있죠. 지금까지 우리가 《완득이》도 봤고, 《베테랑》, 《사도》도 보고, 《국가부도의 날》도 보실 거지만, 매번 다른 종류의 폭발력이 있거든요. 《버닝》에서도 놀라운 모습이었잖아요. 우리가 아는 유아인은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어요.그 모든 것들을 뛰어넘는 포텐이 끊임없이 있을 것 같은 매력이 있는 배우예요.
아인이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 성장 과정을 보며 굉장히 뿌듯하다. 또래에서 유아인 만큼 아이덴티티가 확실한 배우가 없다. 유아인이란 배우 고유의 매력과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 기대가 된다. (중략) 훨씬 안전한 것을 택해 칭찬 받을 기회도 많지만 그렇지 않다. 그래서 참 좋아한다. 유아인에게는 청춘 같은 느낌이 있어 좋다. 조금 덜 손해보고 덜 미움 받고 사는 것이 좋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 그게 유아인 같다.
화가 권철화
홍식이는 재미있는 사람이예요. 정말 따뜻한 사람이고요. 프로젝트를 할 때도, 다른 작가를 섭외할 때도 진정성이 굉장한 사람입니다. 사실 저도 작가지만 다른 작가들에겐 큰 관심이 없는데, 홍식이는 다방면에 관심도 많아요. 누구보다 아름답고, 또 누구보다도 아티스트죠. (그리고) 저의 작품을 진정으로 좋아해주고, 저를 많이 일깨워 준 갤러리스트죠.
경기민요 명창 이희문
(유아인 씨와) 친해졌다기보다 서로를 존경하게 되었다. 유아인 씨를 보면 편하게 살아도 되는데 왜 저렇게까지 고민하지 싶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색다른 연예인이다. 어쩌면 연예인이라기보다 아티스트 같다.
방송작가 문인희
유아인이란 배우와 <도올아인 오방간다>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같이 했어요. 아인 씨가 준비도 많이 해오고 생각도 깊다고 느꼈는데, 방송에서 그런 면을 충분히 담지 못해 제작진으로서 부채감이 있었어요. 방송이 끝나고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 메시지를 보냈는데, 갑자기 같이 하고 싶은 게 있다고 연락이 왔어요. (중략) 그러다 얼떨결에 프로젝트[46] 참여자 전원이 모인 첫 미팅에 가게 됐어요. 그 자리에 앉아 있는데, 아인 씨가 왜 이런 일을 벌이고 싶은 지 이야기하다가 울음을 터뜨렸어요. (중략) 그는 좋은 걸 같이 하고, 널리 퍼뜨리고, 의미 있는 일에 모두가 동참했으면 하는 의지가 강한 편이에요. 이 길을 이해시키는 과정이 외롭게 느껴졌는지, 설득하다가 눈물을 뚝뚝 흘리더라고요. 그때 정신이 확 들었어요. 그 순간 주위의 낯선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이 사람에게만 집중하게 됐어요.

 

 

작품 관련 여담

데뷔작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개봉 전 영화팬 및 서포터즈들과 함께 콘서트 파티와 게릴라 무대인사를 함께 했다. 개봉 이후에는 10차례가 넘는 GV를 통해 관객들을 만나기도 했다. 당시 GV의 특별게스트로 이해영 감독, 정윤철 감독, 류승완 감독, 영화평론가 허문영, 김영진, 배우 황보라, 정일우 등이 있었다. 《좋지 아니한가》의 인연으로 배우 문희경이 관객석에서 참석하기도 했다. 또한 나중에 류승완 감독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 유아인을 처음 보고 인상 깊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드라마 《태왕사신기》에 담덕(배용준) 아역으로 박민지, 안용준 등과 함께 캐스팅된 적 있다. 역할을 위해 승마 연습을 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는데, 대본이 수정되면서 자연스레 하차했다. 어쨌든 이때 쌓아둔 승마 실력을 다른 사극에서 유용하게 써먹기도. 역시 사람은 뭐든 배워두는 것이 장땡
영화 《완득이》의 이한 감독은 한 강연에서 유아인이 오디션 당시 사투리와 느린 말투 등 총 3가지 버전으로 준비를 해왔는데, 이러한 적극성이 마음에 들어 캐스팅했다고 밝혔다. 배우 김윤석에 따르면, 극 중 교회 기도 장면에서 유아인이 독백, 방백, 내레이션 등의 여러 아이디어를 낸 후 모두 촬영해 봤다고 한다.
《완득이》 개봉 후 무대 인사에서 500만 관객을 돌파하면 노래를 부르겠다는 공약을 했는데, 본인의 트위터에 노래 동영상을 올리면서 공약을 실천했다. 굳이 찾아보진 말자. 노래는 넣어둬 넣어둬 하지만 100% 자발적인 공약은 아니었는데, 무대 인사 도중 김윤석이 유아인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시키자 공약으로 말한 것이다. 당시 정말 500만을 넘길 줄 몰랐다는 후문. 이후 2015년 《베테랑》이 천만 관객을 돌파하자 공약 이행을 위해 게릴라 프리허그를 했다. 이것 역시 영화의 개봉 이후 말한 것으로, GV 당시 관객들이 프리허그를 공약으로 요청한 것이다.
2012년 SBS 《패션왕》 촬영을 위해 뒤늦게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패션왕》 중반, 도로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풀샷 촬영이 있었는데 초보 운전자 유아인은 바짝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다리가 풀려 스태프들이 겁쟁이라며 놀렸고, 촬영 후반에는 고가의 외제 스포츠카 운전대를 잡은 유아인의 어설픈 주차 실력에 스태프들의 간담이 내려앉을 뻔했다는 후문이다. 후에 MBC <섹션TV 연예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유아인은 “거칠게 운전하고 있다”고 호언을 하는데... 그땐 그랬지
상대 여배우와 촬영 전 포옹을 연습하는 씬이 움짤로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처음에는 특별할 게 없는 움짤이었으나, 한 네티즌의 드립으로 ‘술 취한 여친이 안기니까 주위 사람들에게 “얘 술 얼마나 마셨어?”라고 물어보는 남친 짤’로 알려지게 됐다.
《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로맨스 사극이기 때문에 배우들의 좋은 케미가 드러나는 메이킹 영상 등 커플팬들이 만족할만한 콘텐츠를 많이 공개한 편이다. 이와 더불어 드라마의 제작발표회 후에 이뤄진 ‘한밤의 TV연예’ 직구 인터뷰도 커플팬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당시 인터뷰에서 유아인은 “왕이 되면 뭘 하고 싶냐”는 동료 배우의 질문에 “여성 차별, 신분 차별” 등 모든 차별을 철폐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영화 《깡철이》는 모자 관계에 집중하는 영화라 극중 엄마 역할의 김해숙과 개봉 전후 다양한 행사에 함께했다. 행사 참석 시 유아인은 김해숙을 다정하게 에스코트했고, 둘은 서로 엄마와 아들로 부른다거나 선물과 음식을 주고받았다는 등의 에피소드들을 전했다. 2013년 김해숙이 <힐링캠프>에 출연했을 때 유아인이 김해숙을 엄마라고 지칭하며 쓴 편지 내용이 나온다. 유아인의 고향인 대구에서 무대인사를 했을 때는 시작 전 무대 뒤에서 유아인의 실제 어머니가 김해숙에게 꽃을 주고 사라져서, 김해숙이 무대인사 도중 즉석으로 유아인의 어머니를 무대로 초대하는 훈훈한 일도 있었다.
류승완 감독은 유아인이 드라마 《밀회》와 영화 《베테랑》을 동시에 촬영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를 라디오 <두시의 데이트>와 개봉 당일 GV에서 말했다. 영화 말미 실제 법원 앞에서 조태오가 수의를 입은 장면을 촬영했는데, 휴일인지라 주변에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촬영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수의를 입은 조태오를 보고 《밀회》의 이선재라고 생각해 안타까워했다. 그래서인지 항간에는 《밀회》의 결말로 주인공들이 구속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고, 《베테랑》의 제작진들은 조태오의 죄목이 간통이라는 농담을 했다고 한다.
영화 《사도》에서 돌에 이마를 찧는 장면을 촬영하는 당시 부상을 입었다. 나중에 진짜 피를 흘린 채로 촬영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하지만 유아인이 일부러 이마를 돌에 박았다는 말은 와전된 것이다. 촬영장에서 돌 대용으로 준비된 스펀지가 작아서 생긴 사고였다. 다만 진짜 피를 흘렸음에도 촬영을 이어나갔다는 것이 요점이다. 이러한 사실은 배우 차순배와 이준익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알려졌으며, DVD에 수록된 인터뷰와 코멘터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고향인 대구에서 조카들과 시간을 보낸다는 목격담이 종종 나온다. 《사도》에서 아들이 태어났을 때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조카들이 태어났을 때를 참고했다고 한다.
2015년 9월 15일 오후 진행된 ‘뉴스1스타’와의 인터뷰에서 아역 배우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연기하는 게 안타깝다고 말한 적 있다.기사.
2016년 2월 《좋아해줘》 언론시사회 후에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영화에 등장하는 대사 “남자가 자기 할 말 다 하면 당당하고 멋있는 거고, 여자가 하면 드세고 기 센 거냐?”가 한국 사회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여자에 대한 인식을 드러낸다고 생각했고, 마음에 들어서 애드립으로 다른 대사를 추가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현진 감독은 시나리오 모니터링 당시 너무 직접적이지 않냐는 지적이 있었지만, “유아인이 ‘지극히 페미니스트적 발언인데?’라고 하면서 좋아하더라. 그걸 알아채고 즐겁게 연기해줬다”라고 말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찍을 때 기분이 좋았다”고 밝혔다.
브이앱으로도 방송됐던 영화 《좋아해줘》의 GV는 영화의 무료 상영 이후에 이어진 것으로 유아인이 팬들을 위해 마련한 것이다. 당시 스케줄 상 무대인사에 참석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이벤트다. 그렇기 때문에 팬들이 행사 진행 동안 화답 이벤트를 하기도 했다.영상 보기.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카메오 출연은 같은 소속사 식구 송혜교의 촬영장 생일파티에 참석하면서 이뤄졌다. 주변인들이 “나와야지?”라고 농담처럼 말했는데 유아인이 스태프들에게 “나와야죠”라고 답해 캐스팅이 성사됐다. 2015년 12월 유아인은 《육룡이 나르샤》 촬영 등으로 바쁜 와중에도 카메오 촬영에 참여했다. 《태양의 후예》 제작진은 2016년 2월 26일부터 유아인의 카메오 출연을 수시로 홍보하여 화제를 모았으나, 4월 6일 13회에 은행원으로 42초 등장했다. 《태양의 후예》의 김시형 촬영 감독은 유아인의 카메오 출연 장면에 대해 “30분 정도 촬영했던 것 같다. NG도 거의 없었다. 유아인 씨가 등장하니 은행의 업무가 마비됐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한편, 이 드라마를 통해 결혼의 결실을 맺은 송중기와 송혜교 커플 모두와 친분이 있어 2017년 둘의 결혼식 때 축사를 낭독했다.
2018는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배우 12인에 뽑힌 모든 배우들은 ‘Let's Dance’라는 테마에 맞춰 제임스 펙의 안무로 짧은 영상을 하나씩 찍었다. 영화 《버닝》으로 리스트에 오른 유아인은 ‘Waiting Room’이란 주제로 지루함을 표현하는 영상에 출연했다

 

 

연예및  개인 활동 관련

‘유아인’이라는 예명에 대해서는 ‘eins(하나)라는 독일어에서 따왔다’, ‘YOU ARE IN이다’[47] 등 여러 낭설이 있으나 낭설일 뿐이다. 본인 인터뷰에 의하면 ‘엄홍식’은 조금 구수한 어감이라 사용하기 그렇다며 매니저가 어감이 예쁜 이름을 여러 개 지어놓고 같이 고른 이름이 ‘유아인’이었다고 한다. 당시 후보로 올라온 예명에는 ‘마로’도 있었다고 한다. 팬들은 본명에서 따온 홍시기, 어몽시기, 몽식이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흔히 《반올림》 에서 연기한 인물 ‘유아인’이 인기를 끌자 캐릭터 이름을 예명으로 삼았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유아인은 2003년 광고로 데뷔할 때부터 예명을 사용했다. 《반올림》 의 PD와 작가들은 극중 인물에 유아인의 실제 모습을 어느정도 반영했고, 당시 유아인이 신인이므로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해 예명을 캐릭터 이름으로 쓰는 배려를 해주었다. 굳이 예를 들자면 시트콤 등 일부 작품에서 배우와 극중 인물의 이름이 같은 경우가 많은데, 유아인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다.
데뷔 이후에도 자신의 본명을 거리낌없이 밝히는 편이고, SNS의 계정도 모두 자신의 본명을 따서 만들었다. 특히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공동대표이자 디렉터로 활동할 때는 본명을 그대로 사용한다. 스튜디오 차원에서 영상물이나 포토 작업을 할 때는, 프로듀서 혹은 크리에이터로 참여한 부분에 본명을 사용하고, 연기를 하거나 모델로서 카메라 앞에 설 때 예명을 사용해 서로 구분해 놓는다. 그래서 하나의 작업물 크레딧에 그의 본명과 예명이 동시에 적혀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귀소본능
귀소본능이 있다. 장거리 지방을 도는 로케이션이 많았던 《성균관 스캔들》 촬영 당시 집이 있는 서울로 올라갈 때면 퇴근을 고하는 트윗을 날린바 있다. 주체할 수 없는 그의 기쁨이 실사로 보이는 듯 《성균관 스캔들》 종방 후 ‘텐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에 내려가서 촬영을 하다 보면 내가 나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너무 절실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베테랑》의 류승완 감독은 “보통 지방 촬영을 하면 배우들이 피곤하니깐 그 지역 숙소에서 머무는데 유아인은 꼭 잠은 집에서 잤다. 그 거리를 왔다갔다 하면서도 집에서 자고 자신만의 컨디션을 유지했다”고 말했다.인터뷰. 유아인 또한 《육룡이 나르샤》 종영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난 평소에도 빨리 퇴근하기 위해 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해 연기한다”고 말해 연기에 대한 놀라운 집중력 못지않게 귀소본능 또한 매우 강함을 알 수 있다.
유아인의 귀소본능은 촬영하는 동안 작품에 임하는 자신뿐만 아니라 캐릭터들 간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그만의 방식이기도 하다. 류승완 감독은 전술한 인터뷰뿐만 아니라 GV에서도 유아인이 자기긴장을 유지하기 위해 꼬박꼬박 집과 촬영장을 오갔다고 밝혔는데, 이 덕분에 그가 현장에서 흐트러져 있는 상태를 보인 적이 없었고 항상 정돈된 상태로 있었다고 한다. 유아인 본인도 2015년 인터뷰에서 촬영 기간에는 출연 배우들과 퇴근 후 같이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낸 적이 거의 없다고 말하면서, 이에 대해 “개인적인 스타일이지만 선배들과 작품을 함께 하는 방식 중 하나”라고 언급했다. 덧붙여 “연기 이외의 순간에는 깍듯하게 대해야 하는 ‘선배님’이지 않느냐”며 “내가 마냥 ‘후배’가 아니라 상대에게 파트너로 존재하기 위한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영화 홍보 기간에는 배우들과 같이 술을 마신다고 한다.
무대울렁증과 시상식
무대 울렁증이 심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상식 등의 행사에 참석할 때는 청심환을 복용한다. 사실 예능,시사회, 무대 인사, 인터뷰, 심지어 팬들만 모인 행사까지 가리지 않고먹는다. 아무 때나 다 먹는 건 아니겠지. 부작용을 조심하자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수상소감에서는 청심환을 먹고 왔다고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긴장하면 귀를 만지는 습관이 있다. 왼쪽 오른쪽 가리지 않는다. 극도로 긴장하면 귀를 거의 뜯는(!) 수준이다.
그의 무대 울렁증은 2010년 골든디스크 시상식에 참석했을 때 팬들이 걱정할 정도로 떠는 모습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칸 영화제 인터뷰 당시 신인인 전종서가 레드카펫 행사 때 너무 떨렸다고 말하자, 유아인은 “나는 15년 째 이러고 있다”라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팬사인회 때는 행사 초반에 있었던 기자들이 철수하자 팬들 앞에서 “아까는 기자님들 앞이라 너무 떨려서 말을 제대로 못 했어요”라고 하던가, 오로지 팬들만 있고 온에어 되지 않는 행사에서는 “내 편이라 생각하니 말이 잘 나와요”라고 한 적이 있다. 이렇다보니 관객들 앞에서 몇 시간 동안 있어야 했던 <도올아인 오방간다>에서는 본인의 무대 울렁증을 직접 고백하며 진행했고, 제작진은 유아인이 너무 떨어서 놀랐다고 말한 바 있다.
2010년 KBS 연기대상에서 《성균관 스캔들》로 송중기와 함께 베스트커플상을 수상해 화제가 되었다. 원래 후보에도 없었지만 인기에 힘입어 후보에 합류하였고 투표수 1위의 위엄을 달성했다. 이로써 보수적인 KBS사에서 최초로 동성 베스트커플상을 수상했다. 두 배우는 수상 이후 서로 어색해졌다고 농담 식으로 인터뷰하기도 했지만, 이후에도 동료 배우로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2015년 SBS 연기대상에서는 《육룡이 나르샤》로 장편드라마 부문 남자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별안간 2016년 첫날부터 유아인의 수상소감이 큰 화제가 됐다.[48] 신선하고 멋있었다며 수상소감으로 사람 홀린다던 호감 어린 반응이 다수였으나 오글거리고 조태오 같다 연기하는 것 같다는 반응도 많았다. 어쨌든 여러모로 인상 깊은 수상소감이었던 것은 사실. 하지만 일부 SNS에서 조롱을 하거나 약을 한 것 같다 등등 도가 넘는 인신공격성의 발언을 했고, 심지어 루머를 언급하면서 방송에서 커밍아웃한 것이라고 퍼트리는 어그로들도 출몰했다. 이렇다 보니 무대 울렁증에 떨면서도 소감을 전하는 한 배우의 진심을 매도한 것이라며 불편해하는 반응 역시 만만치 않았다. 유아인 본인도 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1월 27일 제7회 올해의 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할 때 마이크 앞에 서는 것이 “돌겠어요”라며 “별의별 소리를 다 들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어쩌면 해탈한 것일 수도. 이렇게 수상소감이 계속 화제가 되자 2016년 춘사영화상에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하나 혼란스럽다”고 하거나 같은 해 백상예술대상 백스테이지에서는 “전 왜 맨날 수상소감을 이렇게 할까요”라고 농담처럼 말하기도.

시상식에서 축하무대에 대한 반응이 좋고 호응을 잘 해주는 배우로 알려져있다. 그 예로, 2015년 청룡영화상에서 AOA의 무대를 보며 가사를 따라 부르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화제가 됐다. 이후 아닌 척 하며 급하게 물 마시는 모습이 포인트.(아래 움짤) 2018년에도 같은 시상식에서 TWICE의 무대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모습이 잡혔다.해당 움짤 링크
시상식 트로피는 집이 아닌 소속사 사무실에 두었다. 과거의 영광에 얽매이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이다. 가끔 생각이 나면 사무실을 방문해 힐끗 쳐다보고 온다고 한다.
영화제 등 각종 행사 관련
부산국제영화제 기간과 생일날짜가 겹치는 것이 대부분이라 영화제에 참석한 관객들에게 축하 노래를 듣는 경우가 많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의 GV와 야외무대인사 일정 이외에, 2015년 해운대 비프빌리지에서 오픈토크를 가진 바 있다. 2018년에도 해운대에서 오픈토크가 이뤄질 예정이었으나, 태풍 콩레이의 영향으로 행사 며칠 전 실내 행사로 바뀌었고 당일에는 전면 취소되었다. 하지만 시간을 옮겨 행사를 재개할 수 있었고, 유아인은 팬들에게 혼선을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행사 재개 소식을 알렸다. 영화제 성료 뒤 남동철 프로그래머는 한 인터뷰에서 “유아인이 적극적으로 행사에 참석하고 싶다고 의사를 전해왔다”면서 행사를 재개할 수 있어서 “유아인에게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인회 등 팬들 앞에서 애교가 많은 편이지만 울렁증 탓에 무대에서는 많이 떠는 모습을 보였다. 이걸 청심환으로 극복한다 그러다가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 야외무대에서 별안간 머리 위로 하트를 날렸으나, 그 모양이 너무나 어설퍼서 팬들은 정말 하트인건지 꽤 긴 시간 동안 눈을 의심했다. 그러나 점차 하트 제조 실력을 키워나가더니 2015년 완성형을 만들어냈으며 2018년에는 다양한 배리에이션까지 선보이는 등 장족의 발전을 이뤄냈다.
2010년 에이 어워즈에 참석했을 때 팬들은 그에게 직접 선물을 전달하려고 했다. 그런데 경호원들 사이에 매니저가 있고 정작 유아인은 가장 사이드에서 걸어와 팬들은 어두운 상황에서 알아보지 못하다가 뒤늦게 봉지에 선물을 담아 전해준 적이 있다. 이 때 유아인이 환하게 웃으며 선물을 받아줬는데 순간 당황한 팬들은 제대로 된 사진을 찍지 못했고 팬들의 카메라에는 오히려 매니저 사진만 있던지라 이를 두고 팬들은 ‘봉다리의 난’이라고 불렀다.
한 때 담요 셔틀과 자켓 셔틀로 활약한 적 있다.
2016년 4월 28일 맥도날드 관훈점에서의 행사 직찍이 팬덤 내 심쿵유발 사진으로 알려져있다.
2018년 5월 제71회 칸 영화제를 통해 처음으로 해외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브이로그 영상 이에 대해, 영화가 “다양한 평가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얻어서 기쁘다”고 전했다. 무대울렁증 때문에 떨렸으나 막상 생각보다 담담했으며 “실제 레드카펫을 걸으면서는 겸허함을 느꼈다”고 인터뷰했다.
2019년 4.3 사건 추념식에서 추도문을 낭독했고, 국립현대미술관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2014~2015년 이후부터는 아트페어나 전시회 참석 사실이 종종 보도를 통해 알려진다.
인터뷰 장인
인터뷰 장인으로 손꼽힌다. 기자들이 곤란한 질문을 하는 경우에도 노코멘트로 넘기지 않고, 답변할 때마다 솔직하고 길게 얘기해준다고 한다. 인터뷰마다 다른 대답을 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기자들이 선호하는 배우 중에 하나다.

 

 

아역으로 데뷔했고 동안인 데다가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출연 당시 배우들이 전부 모델 출신으로 길쭉길쭉했던 탓에 키가 단신 아니냐는 선입견이 있다. 초창기에 호리호리하니 마른 체격도 한몫한 듯. 하지만 영화 《깡철이》 홍보 시 출연했던 <연예가중계>에서 179cm라고 본인이 언급했을 정도로 꽤 장신이다. 2011년에 출연한 라디오 프로그램 <최화정의 파워타임>에서는 정확하게 179.5cm라고 밝힌 바 있다. 프로필 상 키가 181cm인 건 그냥 넘어가자
데뷔 초 늘씬하고 마른 이미지의 배우였으나 2013년 이후로는 일부러 살을 찌워 70kg대를 유지했다. 2014년에 한 인터뷰를 인용하자면, “요즘 트렌드는 약간 마른 듯한 몸매인 것을 알지만 내가 맡게 될 배역들을 생각하면 좀 더 남성적인 이미지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서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밤샘 촬영을 몇 번 하고 나면 다시 금세 살이 빠지는 데다, 평소에도 살이 정말 안 찌는 체질이라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고. 이러한 노력 덕인지 살을 불린 후의 작품들 속에서는 체격이 제법 커진 모습으로 나왔다. 2015년 중반부터는 다시 슬림한 몸매로 돌아왔지만, 데뷔 초에 극도로 마른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또한 《베테랑》, 《버닝》, 《소리도 없이》 등 작품에 따라 증량 혹은 감량하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2015년 중반 즈음의 몸을 유지하고 있다.
피부가 검은 편이라 ‘맥반석 계란’ 이라는 별명을 보유하고 있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을 찍으면서 태닝을 해서 피부를 검게 태웠지만 복구가 안 된다고 한다. 2015년 《베테랑》 미디어데이에서, 재벌 3세 역할을 맡다 보니 피부에도 신경이 쓰였건만 “계속 검다. 돌아오질 않는다. 하얗게 나왔으면 어땠을까 생각했는데 그러진 않았다”며 나름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데뷔 초창기 앞머리가 눈을 덮는 상당히 긴 머리 스타일도 선보였으나, 이후 줄곧 짧은 머리 스타일을 고수했다. 팬들이 머리 길러달라, 앞머리 내려달라 죽어라 요청하면 유아인은 죽어라 짧게 자르곤 했다. 종종 피스(부분가발)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반삭에 가까운 짧은 머리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공백기에는 항상 머리를 잘라대는 수준. 하지만 2015년 해운대 BIFF 빌리지 무대 인사에서 앞머리를 내리고 잠깐 등장하더니, 2016년 초부터는 줄곧 앞머리를 내리고 나와 얼빠팬들에게 심한 기쁨을 안겨주었다는 후문. 그래서인지 팬들 사이에서는 유아인이 행사에 참석할 때 앞머리를 내릴지가 최대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이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2016년 중반 이후 다시 짧은 헤어스타일을 선보이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삭발까지 했다. 팬들은 처음에 유아인의 모발 성장 속도에 나름대로 희망을 품었으나, 이후에도 삭발 스타일을 계속 유지하자 반쯤 포기하고 오히려 '동자승' 같다며 귀여워했다. 그러나 1년 가까이 짧은 헤어스타일을 고수하자 두상이 예쁘지 않다는 등 반어법을 사용하면서 머리를 길러달라고 종용하기도 했다. 이후 작품에 맞게 머리를 기르기도 하지만, 또다른 작품을 위해 반삭을 하거나 탈색을 하는 등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팬들은 유아인이 헤어샵에 갈때마다 긴장한다.
해당 사진에서 보듯이 목 앞부분에 있는 점 두 개가 확연하게 눈에 띈다. 팬들은 이를 ‘유아인 정품 인증 마크’라고 부르고 있으며, 혹여라도 화보 등에서 포토샵으로 인해 이 두 개의 점이 보이지 않으면 정품 확인이 어렵다며 아쉬워한다. 이 밖에도 손이 작고 손가락이 짧아서 ‘짧뚱손’이라는 별명도 보유하고 있다. 본인이 가장 자랑할 만한 신체 부위가 엉덩이라고 밝혔는데, 《베테랑》 무비토크와 DVD 코멘터리에서 이것이 직접적으로 언급되기도 한다.자타공인 웃는 모습이 개죽이와 매우 닮았다는 평가도 있는데 증거는 각자 찾도록 하자.
외모에 대한 망언을 내뱉은 전적이 있다. 2013년 <섹션TV 연예통신> 인터뷰에서는 화보 촬영할 때 가장 아쉬운 점이 뭐냐는 질문에 본인의 얼굴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인터뷰에서는 “나는 내가 충분히 잘생기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뭐라구요? 면서 “배우 하기 좋게 평범한 얼굴”이라고 자평했다. 2015년에는 “거부감이 드는 외모는 아니지만 여타 배우들처럼 잘생긴 외모는 아닌 것 같다”라며 자신이 명확하게 생기지 않았다며 망언을 일삼았다.[49]
배우 개그
그동안 출연한 사극으로 인해 여러 개의 배우 개그가 가능하다. 《육룡이 나르샤》의 이방원, 이로부터 약 300년 후의 후손인 숙종 이순(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 그의 손자인 사도세자(영화 《사도》),[50] 다시 그의 아들 정조의 명으로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된 금“등지사를 찾는 미션을 수행하는 걸오 문재신(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등으로 이어진다. 영화 《좋지 아니한가》에서는 전생에 왕이였다고 굳게 믿는 고등학생을 연기하기도 했다. 여담으로, 같은 시기에 《육룡이 나르샤》와 《장영실》에 모두 이방원이 등장하는데, 사극이라 촬영장이 비슷해서인지 이방원의 청년기와 장년기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진기한 투샷이 만들어졌다

 

 

기호등 프라이버시관련

교통사고를 크게 당한 적이 2번 있다. 본인이 밝힌 바로는 2번 모두 죽을 뻔 했다고. 한 번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당한지라 한동안 엄마에게 업혀서 등교했다.
2018년 유치원 시절의 사진을 올렸다. 사실 이건 팬들이 우연히 찾았다가 촬영장 서포트 때 커피차에 붙여 놓은 것이다. 후기에 따르면, 유아인은 사진을 보고 놀라워 했다고.
사투리
대구 출신이지만 현재 사투리 억양이 거의 없는 편이다. 하지만 깨알같이 사투리를 시전하는 경우가 꽤 있다. 2008년 <한밤의 TV연예> 인터뷰, 2011년 <섹션TV 연예통신> 인터뷰와 <론치 마이 라이프>,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 오픈토크, 2016년 《좋아해줘》 무비토크 라이브 등등. 부산영화제 GV에서 질문하는 관객의 억양에 맞춰 사투리를 한 적도 있다. 팬들은 사투리 쓰는 유아인이 귀엽다며 무대 인사나 GV에서 사투리로 말해달라며 조른다. 고향인 대구에서 무대 인사를 할 경우에 유독 요청이 폭발하는 듯. 영화 《깡철이》에서는 사투리 쓰는 유아인을 원 없이 볼 수 있다. 그러나 2013년 인터뷰에서 밝히기를, 대구 사투리와 부산 사투리가 미묘하게 달라서 촬영할 때 어려웠다고 한다. 참고로 이 영상을 보자.
2013년 《장옥정, 사랑에 살다》 촬영 시 동료배우 이상엽은 유아인이 자기를 부를 때 “상엽이 형”이라고 부르지 않고 “상엽이 형아”라고 부르는 것이 귀여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음식과 요리
단것을 좋아한다. 아이스크림, 빙수, 초콜릿, 하리보 젤리 등. 특히 목격담이나 팬들의 후기를 보면 커피 대신 시그니처초코, 초코라떼, 핫초코, 아이스초코를 즐겨 마신다고 한다. 각설탕을 통째로 먹기도 하며, 핫초코에 휘핑을 올려 먹는다. 촬영장 커피차에서 주문하는 음료는 항상 정해져있다. 핫초코, 아이스초코, 아이스티, 레모네이드, 바밤바라떼 등.
탕수육 찍먹파다. 후렌치 파이, 해바라기씨, 가죽나물 장아찌를 좋아하는 입맛의 소유자다.
2013년에 업로드 된 팥빙수 먹는 영상이 있다.
요리를 좋아하고 잘한다고 밝혔다. 자신 있는 요리는 백숙, 갈비찜, 보쌈 등등. 배달을 시켜도 본인이 뭔가를 더 첨가해서 먹는 스타일이며 지인들을 집으로 자주 초대해 음식을 대접한다고 한다. 어디까지나 그의 말일 뿐 ‘궁상 종결자’[51]로 등극한 사진 때문에 쉽게 수긍할 수 없었다. 보여줬어야 말이지 그러나 2013년 9월 22일 SBS 예능 <런닝맨>에 게스트로 출연하면서 대구식 갈비찜을 능숙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여줘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의 면모를 증명했다. 2015년 9월에는 조선희 포토그래퍼가 인스타그램에 전복 손질을 하는 유아인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공개하였고, 2015년 <보그> 10월호 「유아인의 끝없는 절정」 에도 현장에서 진귀한 이 광경을 지켜본 인터뷰어가 재차 언급하여 요리 고수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2017년에는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 함께 작업했던 장윤주가 유아인이 요리한 음식 사진을 올리면서 다시 한 번 확인해줬다.
책, 음악, 영화 등
<비밀독서단>에서 '영화인 선정 내 감성을 깨운 책'이 방영될 때 베르베르의 <나무>, 브라우티건의 <워터 멜론 슈가에서>, 지젝의 <전체주의가 어쨌다구>가 추천책으로 소개됐다. 하지만 유아인이 직접 추천한 것은 아니며, SNS 등에서 언급하거나 인용한 책들이다. 유아인이 언급 혹은 인용한 책 리스트는 아래와 같다. 빠뜨린 것도 있을 듯.

 

트위터 계정에 "마침내 Adele."이라는 트윗과 신곡 Hello의 동영상을 올린 것으로 볼 때 아델의 노래를 좋아하는 듯 하다. 이밖에도 HONNE, 조지 벤슨, 나플라, 마이 앤트 메리, M83, 에디 히긴스 트리오, 존 그랜트, 로로스 등 다양한 음악가들의 노래를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참고로 2010년에는 추천곡으로 아폴로 18, 서울전자음악단, 장필순, 언니네이발관, 검정치마의 노래를 꼽았다.# 또한 유아인은 싸이월드 BGM 보유자 8위에 랭크된 적이 있고 자신이 출연한 프로그램 <론치 마이 라이프>의 배경음악을 직접 선곡하기도 했다. 이러한 주크박스 및 선곡 곡들을 골라 넣은 플레이리스트가 음원 사이트 멜론에 있으니 그의 음악 취향이 궁금하다면 확인해보도록 하자.
페이스북에는 인스타그램과 달리 스크랩한 유튜브 영상을 공유한다. 윤복희, 막스 리히터, 시규어 로스, 이상은, 슈퍼올가니즘 등 장르가 다양하다. NPR의 Tiny Desk Concert도 자주 시청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서 당시 밴드 씽씽의 일원으로 출연한 이희문을 보고 후에 <도올아인 오방간다> 출연을 제안했다.
2017년~2019년에 인스타라이브를 통해 같이 듣자며 공유한 것들은 데즈레, Alabama Shakes, 데벤드라 벤하트, 예지, 혁오, 칼리 사이먼, 돈 매클레인의 노래들이 있다.






















가수 김윤아의 팬으로서 신곡인 ‘키리에’를 미리 들었다고 한다. 김윤아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해 유아인과의 일화를 말하기도 했는데, 가사를 은유와 비유를 사용해 쓰지 않고 왜 직접적으로 고통을 표현했는지 질문한 점이 인상 깊었다고 한다.기사. 이밖에도 트위터 계정에서 김윤아의 '비밀의 정원'과 이소라의 'track1'을 번갈아 듣고 있다고 밝혔고, 일본 팬미팅에서 김윤아의 ‘담’을 좋아한다고 말한 바 있으며, 인스타그램에 ‘Going Home’을 추천곡으로 올리기도 했다.
2007년 인터뷰에서 마이 앤트 메리의 노래 공항 가는 길에 대해 "그 산뜻한 아픔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몰라 '좋다'라는 말을 300번쯤 합친 단어를 찾고 싶을 만큼, 즐거움과 고통 사이에서 조각난 수천 개의 감정을 합친 단어를 찾고 싶을 만큼 좋았다"고 표현했다.
음악 듣는 걸 좋아하는 것이 잘 알려져 있는 듯 하다. 2016년 타블로가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임시DJ로 출연했을 때, 유아인이 음악을 많이 듣는 것 같다며 하이그라운드에서 활동 중인 한 뮤지션의 음악이 좋다고 전화를 해줘서 고마웠다고 말한 적 있다.
영화나 드라마를 취향 가리지 않고 보는 편이다. 2011년에도 장르를 가리지 않고 영화를 추천했다.# 영화 《클로저》도 자주 언급하는 편이다. 2017년 인터뷰에서는 영화 《우리들》을 보며 시작한 지 30초 만에 울었다고 밝히면서 “스무 살 초반 무렵이 떠올라 어린 날의 나를 마주한 것처럼 감정이 요동을 치더라. 어린아이가 맞닥뜨리는 세상의 폭력성,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심연 같은 것들에 깊이 공감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같은 해 12월에 공개된 인터뷰에 따르면 넷플릭스를 통해 다큐멘터리를 자주 본다고 한다.
동식물
애완식물에게 ‘밥(Bob)’이란 이름을 붙여줬다. 2016년 5월 유아인은 식물에 생긴 흰솜깍지벌레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팬들은 벌레 이름을 어떻게 알았는지, 왜 갑자기 벌레 사진을 올리는지 궁금하게 여겼다. 이후 인스타그램 업뎃도 뜸해지자 벌레라도 올려달라며 떡밥을 갈구하기도 했다만... 그러다가 2016년 9월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기획전 ‘They Live’의 서문으로 쓴 글에서 사진의 전말이 밝혀졌다. 자마이카 나무에게 이름을 불러주고 인사를 나누는 등 시간을 보내다가 벌레가 생긴 것. 글을 읽은 팬들은 유아인이 애완식물을 키운다는 사실에 귀여움을 느껴 심지어 벌레도 귀엽다고.. 본인들의 식물에도 ‘밥(Bob)’이라고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2018년 스핑크스 고양이를 입양해 집사가 되었다. 고양이의 이름은 ‘도비’로, 해리 포터 시리즈의 캐릭터 도비와 외모가 닮았기 때문에 그 이름을 따온 것이다. 그리고 같은 해 ‘장비’라는 이름의 또다른 고양이도 입양했다.
친분과 이상형
인디밴드 몽구스와 친분이 있다. 특히 드러머 링구(레오폰)와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 친구 사이로 연기한 인연이 있다. 유아인은 몽구스의 앨범 추천사를 쓰거나 라디오 <최화정의 파워타임>에 출연하여 몽구스의 ‘Cosmic Dancer’를 신청곡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배우 정유미와 친한 사이다. 여러 편의 작품을 함께 한 인연도 있고, 서로의 지인들이 다수 겹쳐 작품 이후에도 친분을 이어오고 있다. 이런 인연으로 2014년 정유미가 출연한 드라마 《연애의 발견》 마지막회에 카메오로 깜짝 출연하기도 했다. 두 배우의 우정은 2013년 영화 《깡철이》 홍보로 진행된 '하퍼스 바자' 화보 및 인터뷰에서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다.
신인 시절부터 본인의 이상형으로 줄곧 이미연을 꼽기도 했다. 그런데 영화 《좋아해줘》에서 이미연을 커플로 만나 애정씬을 펼쳤다. 성공한 덕후 영화 속에서는 노진우(유아인)가 조경아(이미연)가 쓴 메시지 ‘너의 길을 가라’가 적힌 카드를 보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로 유아인은 이미연에게 생일선물로 이와 같은 메시지의 카드를 받았다.
2019년 10월 설리의 안타까운 사망 이후 쓴 애도글이 화제가 됐다. 빈소에 다녀오자마자 글을 썼다가 며칠 뒤 용기내어 공개적으로 올린 것. 둘은 같은 작품에 출연할 뻔한 적도 있었고, 생전 설리의 말에 따르면 작품 얘기를 하는 정도의 동료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같은 해 11월 한 인터뷰에서 유명인을 향한 폄하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길에서 손가락질 당한 정도까진 아니죠. 그러나 가슴 아프게 세상을 떠난 (연예계) 친구들이 많은데, 그렇게 된 데에는 온라인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거예요. 너무 방관했다고 생각합니다.”
뮤지션 페기 구와의 친분이 많이 알려져 있다. 유아인과 페기 구는 친구의 친구 사이로, 페기 구가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뮤직 셀렉터로 활동한 적이 있다. 또한, 2015년 페기 구의 아이콘TV에 유아인이 잠깐 출연한 적도 있고, 2019년 페기 구의 첫 뮤직비디오에도 유아인이 등장한다.
브랜드 노앙과 프리마돈나의 디자이너들과 친한 지인 사이로, 유아인은 이들 관련 행사에 주로 응원차 참석한다.
성적 지향 루머
항간에는 유아인이 동성애자라는 루머가 떠돌고 있다. 그 발단은 수 년 전 미니홈피에 게시한 한 셀카. 그저 립밤을 바르고 있다는 것 외엔 특별할 것 없는 이 사진이 화근이 된 것은 찍힌 장소가 게이바라는 뜬소문이 퍼지고 난 뒤였다. 사진 배경의 소파가 이태원의 유명 게이바에 있는 물건이라는 것. 물론 해당 업소에서 소파를 주문 제작했을 리도 없고 공산품이야 어디서든 사서 쓸 수 있으니 이것만 보고 유아인이 동성애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날 이후 유아인에 대한 출처를 알 수 없는 증언이 이어졌고[52] 마침내 유아인이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마치 기정사실인 양 취급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물론 누구를 동성애자라고 지칭하는 게 욕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개인의 성적 지향은 사생활에 속하므로 언론이나 대중이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루머를 빌미 삼아 특정인을 성적 대상화 하거나 악질적으로 비하하는 등의 행위는 장난이라고 웃어넘기기엔 너무 과하다. 포털이나 커뮤니티 게시글에는 ‘그러나 그는..’ 혹은 ‘but he is..’ 등등 조롱하는 댓글들이 수두룩 달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게다가 유아인이 어떤 활동을 하든 루머를 들먹거리며 사생활에 대해 시시덕거리는 수준이 갈수록 심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아인 본인이 직접 나서서 힘들었던 심경을 토로했다.[53] 그동안 스트레스를 크게 받고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당연히 이런 루머가 떠돌면 자신뿐만 아니라 해당 소속사나 주변인들에게도 상당한 피해를 주기 때문에 명백히 명예훼손에 가깝다. 안타까운 것은 상기의 인터뷰에서 본인의 입장을 표명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부인한 건 아니니 분명 게이인 게 틀림없다’며 어그로를 시전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 사실 공식 석상에서 "난 게이가 아닌데 억울하다"라는 식으로 직설적으로 말하기도 힘든 것이 이런 발언이 자칫 호모포비아적 발언으로 비칠 수 있으며, 해명하려다 되려 더 난처한 상황만 벌어질 수도 있기에 그런 발언은 가볍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해당 인터뷰에서 유아인이 자신의 성적지향을 직접 밝힌 것은 아니지만 자신과 해당 소속사 관계자들까지 막대한 피해가 가는 건 분명하므로 명백히 불쾌감을 표시한 만큼 게이 드립은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심하면 명예훼손으로 고소까지 불가피해진다. 또한 이러한 경우는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고발도 가능한 사안이다.

 

 

병역 관련 논란

군 입대 관련해서 소속사는 2016년 12월 27일 유아인이 어깨 부상으로 병역 등급 보류 상태임을 알렸다. 2015년 12월, 2016년 5월, 같은 해 12월 15일에 재검을 받았고 병무청으로부터 모두 등급 보류 판정을 받았다.# 소위 7급 무한 재검에 걸린 상태였다. 2017년 2월 15일에는 스포츠경향이 유아인이 내원하는 병원을 알아내 그의 의료 기록을 공개하면서 계속되는 등급 보류 판정이 어깨 부상을 비롯한 골종양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또다른 언론사 스포츠조선은 유아인이 2016년에 빗장뼈 골절도 당했음을 공개했다. 이에 대해 소속사는 골종양에 대해 인정했으나 투병설은 과한 해석이라고 선을 그었고, 의료 기록이 공개된 점에 대해서는 “개인 정보 유출인데 이 부분은 정말 유감스럽다”고 언급했다.#[54]

2월 16일에는 유아인이 직접 장문의 글로 공식 입장을 전했다. 유아인은 해당 글에서 어깨 부상 및 골종양 발병의 경위, 등급 보류 판정을 받은 과정, 추가 부상, 그럼에도 자세한 상황들을 공개하지 않았던 이유 등을 설명했다. 2013년과 2014년 두 차례의 부상 이후 통증이 재발하자 2015년 MRI 검사를 통해 우측 어깨의 근육 파열(SLAP) 진단을 받았으며, 동일한 어깨 회전근개 관절 부착부에의 골종양이 발견됐다고 전했다. 또한 골종양에 대해서는 “보통의 양성 종양과 달리 골종양의 비정상적인 발육이 관찰되었다”고 설명했고, 경과 관찰과 재활 치료를 병행하며 일상생활을 이어가고 있음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저의 부상과 건강상의 문제는 현재의 논란을 만든 저의 불행이지 병역 기피를 위한 도구가 결코 아닙니다. 저의 불행이 타인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 문제라는 현실이 개인적으로는 아주 힘들지만 이마저도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통해 성장하고 성취를 가져가는 배우로서의 책무로 받아들이고자 합니다”라고 덧붙였다.전문.

2017년 3월 15일에 제4차 재검을 받았다. 이러한 유아인의 재검이 주목받는 상황에서 결과가 바로 발표되지 않았던 것에 대해 의아해하는 시선들이 많았다. 이와 관련해 병무청 대변인실은 4월 6일 유아인이 병역 처분 보류 상태며, 특혜가 아니라는 공식 입장을 직접 밝혔다. 제4차 재검에 대해 5월 1일 또 다시 판정 보류를 통보받았고, 5월 22일 제5차 재검을 받았다. 한편, 스포츠조선은 병역법 관련 기사를 통해 같은 부위에 발생한 부상에 대해서는 4회까지 등급 보류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두 부위에 부상 전력이 있는 유아인은 8번까지 등급 보류가 될 수 있고, 어찌됐든 등급이 판별되기 위해 계속 재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해당 판정은 원래 다른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왔던 것이므로, 유아인같은 케이스가 특혜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당연한 행정 절차라는 병무청의 입장을 함께 전했다.

결국 2017년 6월 27일 제5차 재검에 대한 결과를 받았고, 병역 면제 판정으로 입대가 무산됐다. 다만 현재 각종 보도기사에서 해당 사유가 골육종과 골종양으로 혼재되어 기재되고 있다. 소속사의 공식 발표 전 스포츠조선의 최초 보도에서 골종양과 골육종을 같은 개념으로 쓰기 시작한 것이 원인으로 추측된다. 골육종은 골종양과 달리 악성 종양으로 뼈에 발생한 암을 뜻하며 예후도 좋지 않은 편에 속한다.[55] 유아인이 골종양 판정을 받은건 2015년으로 이후의 정황 상 항암 치료를 받은 것은 아니기에 골육종이 아닌 양성 종양으로 보는 것이 합당해 보인다. 게다가 소속사의 공식 입장문에도 판정 사유에 대해 “기존 질환”으로 기재했고 지난 2월에 공개된 유아인의 글에서도 골종양이 비정상적이긴 하나 양성 종양이라고 밝혔다. 그렇기 때문에 골종양이 골육종으로 발전됐다는 보도 기사들은 오보일 가능성이 높다.#

7월 3일에는 소속사가 또다른 공식입장문을 통해 “의도하지 않은 논란이 지속되어 많은 분들에게 우려와 피로감을 드린 점, 배우 본인과 소속사 모두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또한 입대를 강행하지 못하고, 건강상의 문제를 통한 병역 면제 판정 소식을 전하게 되어 기대와 걱정을 보내주신 많은 분들께 실망과 우려를 드린 점,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 전했다. 또한 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언론에 의해 건강 문제와 개인정보가 알려졌고 비리나 기피와 같은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밝히며 사실과 다른 억측을 자제해달라고 전했다. 이는 해당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허위 제보를 통해 확인되지 않는 루머가 양산되는 것에 대한 반응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오보가 나오자 7월 10일 병무청은 “처음부터 조사의 필요성이 없는, 적법한 과정 아래 이뤄진 것”이라고 다시 한 번 설명했다.#

하지만 해당 사안이 상당 기간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오보와 정정보도가 반복되면서 그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과 악플이 이어진 것이 사실이다. 또한, 소속사가 “병역 면제의 판정이 야기할 수 있는 경력 상의 문제들 역시 온전히 배우 개인의 몫”이라고 언급하는 것처럼 해당 결과가 남자 배우로서 유아인의 활동에 제약을 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물론 여론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포털 사이트에 유아인의 작품이나 관련 소식을 전하는 기사가 나올 때 일부 부정적 댓글들이 달리기도 하는데, 수위 높은 워딩이나 왜곡된 정보 및 루머의 유포, 트페미와의 마찰에서 이어진 조직적 악플들을 제외한다면 군 문제에 대해 민감한 사회의 분위기를 따르는 반응들로 보인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