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배우이다.
최수종의 아버지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고위 공무원으로, 어린 시절은 꽤 유복했다고 한다. 부모 사이도 화목했으며 아버지가 늘 집안일을 손수 하고 어머니와 자주 포옹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롤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공무원을 그만둔 뒤 파라과이에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일이 번창하자 온 가족이 이민을 갔으나 당시 고교생이던 최수종과 누나는 학업 때문에 한국에 남았다. 이후 미국으로 유학[5]을 가는 등 평탄하게 살았으나 아버지 사업이 사기를 당해 큰 빚을 졌고 그 충격으로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최수종은 한동안 방황했다고 한다.
그 때부터 생업을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는데 여고생의 과외 알바도 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그 여고생의 아버지가 KBS 예능국 국장이었는데 최수종의 외모를 눈여겨본 국장은 최수종에게 배우를 제의했고 그 데뷔작이 1987년 '사랑이 꽃피는 나무'였다.[6]
이 외에도 1979년 무렵부터 제일합섬의 학생복 에리트의 모델로도 활약했었다.
1990년대
1987년 '사랑이 꽃피는 나무'로 데뷔했는데, 드라마 초반에 나올 때까지만 해도 당대 청춘 스타 최재성, 손창민이 주역이고 최수종은 조연A 정도였다. 그러나 드라마가 가면 갈수록 그의 배역이 자리를 잡아가다가 후반에 가선 이미연을 두고 손창민과 삼각관계의 모습을 보이면서 아예 드라마의 중심에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최재성, 손창민과 함께 당대의 청춘 스타로 이름을 날렸다.
거기다 KBS 일일 드라마 '서울뚝배기'의 주연을 맡아 도지원의 파트너로 대히트를 쳤다. 이로써 소녀들의 우상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냥 그 정도에 머무르지 않는 연기력까지 보였다.
이후 주 무대를 MBC 쪽으로 전환, 배종옥, 이응경과 함께 연기한 '행복어사전'으로 눈길을 모았고, 또 한 번 배종옥과 공연하면서 음정희까지 곁들인 '도시인'에 출연해 발랄한 청년 스타일로 큰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최진실과 공연한 한국 최초의 트렌디 드라마 《질투》에서 이런 이미지의 정점을 찍었다.
이렇게 발랄하고 현대적인 청년 역으로 인기를 끌던 와중에 갑자기 노선을 전환해 아들과 딸에 출연했다. 부담스럽고 편파적인 어머니의 애정과 그 와중에 희생 당하는 누나 사이에서 고민하는, 1960-70년대를 살아가는 어느 우유부단한 젊은이 '이귀남' 역을 훌륭하게 연기했다. 이 드라마로 김희애는 인기의 정점을 찍었고, 최수종 역시 자신이 청춘스타 이미지로만 먹고 사는 연기자가 아니란 걸 다시 한 번 증명했다.
파일럿에서 다시 한 번 발랄한 현대 청년 스타일로 사랑을 받은 후, 몇 개의 드라마에 주연을 맡다가 주무대를 다시 KBS로 옮겼다. 일일 드라마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은 '바람은 불어도'에서 재치 있는 막내 아들 역할을 맡아 열연했다.
그의 주가가 가장 상승했던 시점은 역대 TV 프로그램 시청률 1위를 기록한 드라마[7]인 '첫사랑'(1996~1997)의 주연으로 나왔을 때이다. 이승연, 박상원, 배용준, 최지우 등과 함께 한 이 드라마에서 최수종은 첫사랑인 이승연과 끝내 맺어지지 못하는 비극적인 훈남 이미지를 극적인 연기로 풀어냈다. 최수종 본인은 아직까지도 이 작품을 자신의 연기 인생에서 가장 귀중한 경험으로 꼽고 있다.
게다가 일년 뒤에는 유동근, 채시라, 염정아 등과 함께 한 시대극 '야망의 전설'에서 혼신의 연기로 생애 첫 연기대상 수상의 영광을 안게 된다.[8]
이렇게 데뷔 때부터 1990년대까지 최수종은 명랑한 청년 스타일과 가족과 시대 환경 속에서 고민하는 남자 스타일을 오가며 히트작을 양산한 연기자였다. 거기다 각종 토크 프로그램에도 출연, 드라마에서 써 먹은 명랑 청년 스타일의 캐릭터에 걸맞는 오도방정과 입담으로 주말 KBS, MBC 쇼 프로그램의 MC와 시청률을 보장하는 게스트로 활동하면서 당대의 예능을 주름잡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도 입담으로 시청률을 올리다 보니 아예 최수종이란 이름을 걸고 토크쇼도 진행했고, 이 토크쇼 역시 높은 시청률을 찍었다. 오늘날로 치면 유재석에서 좀 덜 독하고 좀 더 부담 없이 웃긴 스타일. 요즘 사극에서 무게 잡고 나오는 모습을 보면 전혀 이런 모습이 떠오르지 않지만.[9] 특히 일밤에서 이경규와 같이 호흡을 맞추는 최수종의 모습은 최수종이 코미디언으로서도 재능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2000년
30대 후반으로 들어가면서 최수종은 두 번째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그 역할이 KBS가 기획하던 대하 드라마 태조 왕건의 주인공 왕건. 기실 이 때 사람들의 반응은 "최수종이 사극을 한다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최수종이 왕건? 안 어울리겠는데?" 정도였다. 실제로 태조 왕건이 방송하기 전에 예고편에서 최수종이 왕건으로 나와서(수염을 붙이지 않고) 소리지르는 모습을 본 몇몇 시청자들이 웃기까지 했다.(...)
사실 최수종이 사극 연기를 한 게 태조 왕건이 처음은 아니었다. 데뷔 초기 조선왕조 5백년 시리즈에서 사도세자[10][11]와 철종 역을 한 적도 있고, 정보석, 염정아와 함께 한 드라마인 '야망'에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젊은 선비 역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사극 출연작이 많지 않았던 최수종의 사극 연기에 대한 우려는 컸었다.
그러나 최수종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온유함 속에 강함이 숨겨져 있는 왕건 역할을 잘 소화하면서 중후한 이미지의 사극 배우, 일명 수종(宗)으로 다시 거듭나게 되었다.[12]
거기다 최수종은 왕건이란 이미지에 시청자가 몰입하게 만들기 위해 스스로도 즐기던 쇼 프로 게스트 출연을 왕건 방영 기간 동안 일절 하지 않을 정도로 공을 쏟았고, 그런 노력은 노력만큼 보답을 받았다. 그리고 태조 왕건 종영 후 가족오락관에 왕건팀이 나온 왕건 오락관, 출발 드림팀에 왕건 출연진이 나온 왕건 드림팀과 같은 예능 출연을 하기도 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에는 거의 완전한 사극 전문 배우로 전환,《태양인 이제마》, 《해신》, 《대조영》 등 KBS의 대표 사극에서 모두 주연을 꿰찼다. 이런 이유로 2000년대 들어서 드라마를 본 1990년대 이상 세대는 최수종이 사극 전문 배우, 특히 왕이나 장군 전문인 줄 안다.
최수종이 사극 전문 배우로 성공한 데에는 그의 체력과 운동 신경이 기여한 바가 컸다고 한다. 최수종은 연예인 축구단에서 센터 포워드를 도맡았을 정도로 만능 스포츠맨이라는 소문이 나 있었으며, 곱상한 외모와는 달리 체력도 발군이라는 게 중평이었다. 산에서 들에서 무거운 갑옷 입고 칼과 창을 휘두르며 말을 타고 달려야 하는 사극 연기를 하려면 고도의 체력과 운동 신경을 갖춰야 하는데, 최수종은 그런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운동 능력 외에도 사극에서 최수종의 투입 빈도가 높아진 이유 중에는 동안 외모[14]도 한 몫을 했다는 분석이 있다. 대부분 사극의 주인공 캐릭터가 본격적으로 활약을 하는 시기가 중년 시기라서 기존 사극들은 주연 배우의 나이가 젊어봐야 30대인 상태였고, 이로 인해 청년기를 다룰 경우 젊은 배우를 따로 캐스팅해 청년기를 다룬 후 중년 시기로 점프해 시작하거나 해당 배우가 분칠하고 젊은 척을 해야 되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상황을 감수해야 했는데... 40대 후반 시절 최수종은 조금만 분칠하고 보정하면 30대 중반까지 충분히 커버할 수 있을 정도로 동안 외모를 갖고 있었다. 이로 인해 주인공의 청년기부터 장년기까지를 한 배우로 표현할 수 있어 인물에 대한 시청자의 몰입도 면에서 좋은 평을 받았다.[15]
그러나 최수종이 사극 배우로 성공한 가장 큰 요인은 역시, 시청자들의 감정 이입을 유발하는 선한 인상과 탁월한 연기력, 그리고 체력과 운동 능력을 그가 한몸에 모두 갖추었다는 데 있었다. 사실 체력과 운동 능력만 놓고 보면 이태곤도 최수종 못지 않고, 연기력만 놓고 보면 이민우나 정태우도 최수종 못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최수종처럼 연기력과 외모, 운동 능력을 모두 완벽하게 갖추지는 못했다.
2010년대
2010년에는 '전우'라는 드라마에서 비교적 현대적인 배역으로 등장했다. 사실 전우도 시대극이지만 이 정도면 다시 연기 변신을 시도한 셈이다. 너무 사극에만 나와서 지겹다, 똑같은 연기만 한다 등 부정적인 반응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코믹한 연기나 정극에서의 진지한 연기도 충분히 소화할 만한 역량이 있는 검증된 배우이기 때문에, 다시 역할을 전환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16]
그러나 이렇게 장기간 사극을 하는 바람에 직업병이 생겼는데, 은연중에 말투가 자기도 모르게 사극화된다는 점이다. 이런 건 최수종 뿐만 아니라 최재성 등 대부분 사극 위주의 배우들도 마찬가지.
이러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전우'의 다음 작품은 현대극인 '프레지던트'로 골랐으며, 절대선이 아니라 악한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런데 사극에서 왕을 하던 배우라서 그런지, 현대극에서도 대통령 역할을 맡았다. 2년 뒤인 2012년에는 광개토대왕 후속작 대왕의 꿈에 캐스팅되어 또 왕 역할을 맡았다.
정리하면 최수종은 삼국을 통일한 뒤 발해를 창건하고 청해진을 설치한 후 고려를 세우고 후삼국도 통일하며 조선을 구한 뒤 뒤주에 갇히기도 했으나 사상의학을 확립했으며 한국 전쟁에도 참전한 후 실미도에 끌려가 죽을 뻔할 위기를 넘기고 대한민국의 철강 산업 건설에 앞장서 그 지지기반으로 경선 끝에 마침내 대통령이 되었다.[17][18][19] 최수종 한 명으로 성배전쟁도 치를 수 있다더라 세이버 사도세자, 랜서 대조영, 아쳐 김춘추, 라이더 이순신, 캐스터 이광수, 어새신 대신 룰러 왕건, 버서커 이제마[20] 최수종 페이스
2012년 12월 대왕의 꿈에 출연했는데 이 때 불운이 많이 겹쳤다. 촬영 도중 낙마 사고를 당해서[21] 쇄골과 손에 골절상을 입고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어 2시간이 넘는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 사극은 별로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았는데 최수종의 부상이 대왕의 꿈 드라마가 흥행이 지지부진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주연배우가 다쳐 누워있으니 주인공이 몇 주째 드라마에 나오지 않고 대신 목소리만 줄창 등장하니... 물론 부상을 입고 싶어서 입은 게 아니므로 최수종 탓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기는 했고 이 드라마는 다른 악재도 많았다. 심지어 최수종 뿐만 아니라 대왕의 꿈 전반부 주역이던 선덕여왕 역의 박주미는 자택과 촬영장을 오가는 도중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어 부득이하게 드라마에서 하차하고 해당 배역은 홍은희가 대신 맡기도 했다. 최수종은 사실 후에 밝히길 6개월 이상 입원해서 치료를 받았어야 했는데 2주 만에 퇴원을 해서 촬영을 감행했다 했다고 밝혔다. 아무튼 자신이 맡은 김춘추를 다룬 많은 역사서적을 탐독하면서 배역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고 한다. 심지어 마지막 대사 리딩 연습 때에는 배역에 대한 몰입과 마지막이라는 아쉬움 때문에 그만 울음을 터뜨렸을 정도라고. 여담이지만 촬영 현장에서는 수시로 사비를 털어가면서 연기자들에게 밥차를 불러 대접하는 등 출연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어 스태프들에게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상기한 사극 네타(...)가 유명해질대로 유명해진 덕에 2013년 8월 10일 SNL 코리아의 호스트로 출연했을 때 '사극왕 최수종'이란 제목의 디지털 숏컷에서 본인이 본인 역으로 메타 개그를 했는데[22] 본인이 맡았던 주요 배역들이 거의 다 나왔다. 근데 브금은 여인천하 브금이라는 게 함정 안 나온 배역들도 중간에 최수종이 대본을 들여다보는 장면에서 <조연> 파트에 다 적혀있었다(...).[23] 쌍커풀 메이커에서는 궁예 분장을 한 김민교가 "수종 네 이놈의 차기작은 퇴계 이황이니라." 하고 드립을 날리면서 1000원권 지폐와 최수종의 눈이 합성된 장면이 나오는데 싱크로율이 장난 아니다!! 이러다가 퇴계 이황 드라마가 나온다면 캐스팅될지 모른다...
다만 대왕의 꿈이 흥행에 실패한 이후로는 2010년대 들어선 사극 드라마에는 별로 출연하지 않고 있다. 최수종이 별로 원하지 않아서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마침 장영실을 끝으로 정통 대하드라마의 맥이 끊겨서 출연할 기회 자체가 줄어들었기도 하다.
2014년 TV조선 불꽃 속으로에선 포스코 박태준 회장을 모델로 한 박태형으로 분해 일제 시대와 6.25의 혼란을 이겨내고 제철소를 건설하는 기업가 역을 맡았다. 이 때 51세인데 30대 역을 맡았다.
2016년 KBS에서 한중합작으로 방영하는 임진왜란 1592에서 무려 이순신 역할로 캐스팅되었다. 오랜만의 사극 출연이지만 5부작이고 극 자체도 성공했다고 보기는 힘들어 큰 반향은 없었다.
현재의 입지는 KBS를 대표하는 드라마 배우. 많은 드라마 배우들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 연기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막내 김일병(김민석 분)이 간호사 리예화(전수진 분)에게 우리말 어투가 아닌데 누나는 어디 출신이십니까?라고 묻자 예화가 '고려인'이라고 답하는데 고려요? 그거 최수종이 세웠다가 유동근한테 망한 나라 아닙니까? 그거 엄청 오래된 나란데 그나라 사람이 아직 살아있습니까?라고 말하는 신이 있다. 정말 이 쯤되면 걸어다니는 한국사라는 칭호가 부끄럽지 않을 정도이다. 우습게도 그 드라마에 최수종의 진짜 조카가 출연하고 있다! 최수종의 친누나의 아들이라고 하며 국경 없는 의사회 소속이자 예화의 남편인 다니엘 스펜서 역으로 출연한 조태관이 바로 그 주인공.
2018년 동상이몽에 출연해서 잠깐 언급한 바에 의하면 붓글씨도 제법 잘 쓰는 편이라고 한다.
그리고 2018년 9월 대왕의 꿈 이후 5년 만에 KBS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으로 복귀한다. 드라마 초반에는 안타까운 아버지 캐릭터라는 특성이 돋보였지만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최수종이 막장 드라마에 출연했을 때부터 알아봤다.라면서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24]하지만 시청률의 제왕답게 무려 49%를 찍으며 드라마는 대성공했다
그 후부터는 심심치 않게 예능에도 출연이 늘었다. 동상이몽 2와 아는 형님에서 맹활약했다.
2020년대
MBN 친한 예능에 고정 출연 중이다.
2020년 6월 25일, 대한민국 정부 주관 한국전쟁 70주년 기념식 '영웅에게'에서 진행을 맡았다.
그외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사극 레전드 배우로 유동근과 함께 꼽히는 경우가 많다. 특징적으로 자주 언급되는 유동근은 조선 국왕을 여러 번 연기했고 최수종은 신라, 발해, 고려, 조선까지 여러 나라 왕을 골고루 맡은 편이다. 거기에다 왕은 아니지만 해상왕도 해봤고 대한민국 대통령 역할도 한 번 맡았다. 참고로 그 유동근과 함께 사극에 출연한 적은 아직까지는 없지만, 시대극인 야망의 전설에서 상당히 인상적인 형제 연기를 보여주었던 적이 있다. 실제로 두 사람은 서로 존경하는 선배, 성실한 후배라고 언급할 정도로 제법 사이가 좋은 편으로 98년, 02년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선하고 이쁘장했던 외모와 왜소해 보이는 체격[25]과 달리, 생각보다 한 주먹 한다고 한다. 권투를 배운 적도 있다고 하는데, 권투 꽤나 한다는 이계인이 수종이 싸움 잘한다며 이동준 같은 놈 아니면 수종이랑 붙으면 맞아 죽는다고 언급했다.[26][27] "사랑하세요"라는 주말 드라마에서 복싱 선수 역할을 맡을 당시 전 복싱선수이자 절친인 조성규에게 복싱을 배웠다. 그 외 발언으로는 해동검도의 창시자 겸 배우인 나한일의 말에 의하면 연예계에서 임성훈을 제외하면 주먹으로는 적수가 없다란 말을 하기도 했다.[28]
싸움 뿐 아니라 운동 신경이 좋다는 건 널리 알려져 있다. 청소년 시절 축구선수를 해봤던지라 연예계에서 축구 잘하는 사람하면 첫 손가락에 꼽히는 인물이다[29]. 그래서 2002년 한일 월드컵 기념해서 최수종의 골든볼이라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한국 연예인팀의 일원으로 일본 연예인들과 친선 축구 경기를 가진 적도 있다. 축구가 아니더라도 나한일의 말에 의하면 평소에 단련하는 걸 좋아한다고 한다. 운동신경이 탁월하다는 점도 그가 사극에서 장군 역으로 자주 캐스팅되는 이유 중 하나이다. 과거 출발 드림팀이나 각종 예능 등에서 축구나 운동하는 모습들을 보면 예사 운동신경이 아닌 것을 알 수가 있다. 게다가 축구를 엄청나게 좋아한다. 새벽 4시까지 촬영을 하고 돌아오고 딱 1시간만 자고 바로 나가기 위해 축구복을 입고 잘 정도라고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호흡이 긴 대하 사극을 여러 번 해보았다는 점과 기본적으로 뛰어난 운동신경을 지닌 탓에 우리나라 배우들 중에서도 승마 실력이 손가락에 꼽힐 정도라는 소문도 있다. 이는 사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점이 사극배우 자체가 어느 정도의 체력과 육체 능력이 필요한 직업이다. 뭉쳐야 찬다에서도 등장해 엄청난 실력을 보여줬다. 58세라고 믿기지 않는 스피드와 탈압박 및 좋은 킥력을 보여주며 연예계 메시란 걸 증명했다.
평소에는 화를 거의 안 내는 성격이라고 하는데 축구할 때만 되면 승부욕이 강해져서 화를 자주 낸다고 한다. 얼마나 심한가 하면 아들과 함께 축구하는 중에도 시합이 잘 풀리지 않자 소리를 지를 정도이고, 친한 선배 연기자인 이덕화의 증언에 의하면 시합하다 지거나 다치면 짜증을 낸다고 한다. 하희라도 최수종이 평소에는 얌전한데, 축구할 때만 되면 거칠어져서 늘 다칠까봐 걱정이라고 한다.
시간 약속을 지키지 못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을 정말 싫어한다고 한다. 해신 촬영 당시 어떤 후배 연기자가 2시간이나 지각을 하자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무섭게 꾸짖었다고 한다. 실제 라디오를 할 때도 10시 시작이라면 7시에 미리 나와있을 정도라고 한다.
카리스마도 대단해서 드라마 전우 촬영 당시 최수종을 때려야 하는 신에서 그걸 맡은 후배 배우들이 속으로 죽을 맛이었다는 카더라도 있다.
야망의 전설을 찍을 당시 폐소공포증이 생겨버려서 오랜 기간 동안 고생했다고 한다. 영화관에 가서 영화도 제대로 못 보고 나와야 할 정도였다고. 최수종이 상당한 고생을 많이 한 작품이긴 하지만 이 드라마를 통해 1998년 연기대상 대상과 1999년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으며 최수종 최고의 연기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의 연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야망의 전설은 대부분 인정하는 편이다.
아내인 하희라와는 깨가 쏟아지는 잉꼬부부로 유명하며 어느 정도냐면 기념일마다 언제나 다른 이벤트를 개최해줄 정도라고 한다. 그야말로 애처가의 모범. 출연했던 잘 살아보세라는 예능에서 밝히길 아내에게 잘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하희라의 4번의 유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내인 하희라와 자식들에게 존댓말을 쓴다고 한다.[30] 인스타그램에서도 변함없는 애정을 과시하고 있다. 이벤트의 황제답게 각종 기념일을 절대로 잊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런 그가 유일하게 하희라의 생일을 깜빡한 적이 있었으니, 2004년도에 중국에서 드라마 해신을 촬영할 때였다고 한다. 사정상 본인이 직접 축하해주지는 못하고, 친한 선배인 이덕화에게 축하 편지를 낭독하는 걸 부탁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덕화는 그 내용이 너무 닭살스러워서 본인이 다 읽지 못했다고 했다. 이러한 애정 행각 덕분에 최수종과 교분이 있는 연기자 남편들은 "집에 들어가면 최수종 선배처럼 해달라고 해서 죽겠다."며 통사정을 할 정도라고 한다.[31][32]
역시 연예계의 애처가로도 익히 알려진 차인표는 토크쇼에 출연하여 자신도 애처가라는 이야기를 듣긴 하지만 최수종 선배의 스케일이 너무 커 자꾸 주눅들고 신애라의 눈치가 보인다라고 불평한 적이 있다. 이재룡 또한 예능에 출연하여 차인표와 비슷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재룡은 평소에도 최수종과 절친이라 그의 스케일을 폭로하기도 하며, 차인표의 경우에는 아내인 신애라가 하희라와 절친이다.
청춘 스타의 연애가 지금보다 더욱 금기시되던 시절 최수종과 하희라의 열애설은 오랫동안 카더라로 떠돌았고 둘이 결혼에 골인했을 때는 드디어 결혼했네 라는 반응이었다.
이덕화와는 세대와 나이를 초월했다고 할 정도로 상당히 친한 사이이다. 최수종은 이덕화를 가장 존경하는 선배라고 하며 이덕화 또한 최수종이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는 사람이라고 했다.
촬영장에서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린다고 한다.[33] 인심 또한 후한 편이라 대왕의 꿈 한 화분 촬영 뒤, 회식 자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뜰 때까지 자기에게 사인 요청한 사람들에게 사인을 해 주었다고 한다.
드라마에서 주로 선한 인물 역할을 맡은 편이다. 사실 한국 사극 자체가 주인공은 한없이 선하기만 한 영웅상을 그리는 경우가 많아서 최수종이 주인공을 주로 맡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게 크다. 즉 선역만 맡은 게 아니라 한국 사극의 고질병 때문에, 주인공을 맡다보니 저절로 선역 위주로 맡게 된 것이다. 그나마 한국 사극이 이런 클리셰에서 웬만하면 벗어나려는 추세다 보니 최근작에 가까운 대왕의 꿈의 김춘추는 양면적인 성향을 가진 인물로 연기한 편이다.[34] 다만 악역을 아예 안 맡은 건 아닌데, 과거 1990년대 중반 KBS 주말 예능에서 파우스트를 패러디한 <최수종의 파우스트>란 코너에서 메피스토펠레스를 모델로 한 악마를 열연한 바 있다. 말 그대로 절망에 빠진 인간들 앞에 홀연히 나타나 교묘하게 계약을 이끌어내고 마지막에 나락에 떨어트린다는 내용.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에피소드가 대부분이다.[35]내용 중에 자신이 계약시킨 한 인간이 나락에 떨어진 끝에 자신의 후배 악마가 되는 장면이 있는데 홍경인이 너무 잘해 최수종은 짤려버리는 장면도 나온다.[36]
정식 드라마에서 자신이 계속 선역, 주인공 위주로 배역을 받다 보니 되려 이를 질려하고 있다. 그래서 악역, 그것도 사연이 있는 악역이 아니라 완전히 천하의 개쌍놈 역을 한 번쯤은 맡아보고 싶다고 한다.#
2000년대 들어서는 볼 수 없게 되었지만, 1990년대에는 코믹 댄스로 일세를 풍미하기도 했다. 1990년대 중후반에는 코믹 댄스=최수종으로 통할 정도. 각종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나와 막춤을 춰 대면 웃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아내인 하희라가 춤추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고 한다. 하도 잔소리를 들어서인지 나중에는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하)희라가 이미지 망가진다고 춤추지 말랬는데..."라고 투덜거리면서도 춘다.
30년이 된 연기 인생 중에서도 SBS에는 딱 한 번 출연했다. (2003-2004년 최수종쇼) 하지만 2018년 2월 무렵부터 동상이몽 예능에 출연하고 있다. 하지만 SBS 드라마에는 나온 적이 없다. 데뷔는 KBS로 했으며, 청춘 스타 시절에는 MBC에도 자주 출연했으나, 40 이후로는 대부분 KBS 위주로 나오고 있다.
대왕의 꿈에서 진짜로 목숨을 잃을 뻔했다. 말을 타고 달리는 씬을 찍다가 말이 빙판에 미끄러져 넘어지는 대형 사고를 당했는데 그 말은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고, 낙마한 최수종은 등뼈가 부러지는 중상까지 입었다가 겨우 살아났다.[37] 무서운 건 저 부서진 등뼈가 아직 완치되지 않았는데도 그냥 아랑곳하지 않고 진통제를 먹어가며 촬영했다는 점이다. 사극을 촬영할 때 특유의 복부에서 끌어올리는 발성을 하다 보니 대사를 할 때마다 온몸이 울려 통증이 극심하게 몰려왔다고 한다. 그래서 극 중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이 언성을 높이는 장면에서는 그야말로 대사 한마디 하고 통증 가라앉을 때까지 잠시 쉬고 다시 한마디 하고를 반복했다고. 다만 아쉽게도 드라마는 흥행에 실패했고 이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최수종의 중도 부상으로 인한 연기 공백도 그 중 한 원인이 되었다.
역시 탁월한 신체 관리를 꽤 잘하는 걸로 봐서도 동안이라고 볼 수 있다. 2020년 기준 한국 나이 59세다. 이만기가 모 방송 프로에서 민증 까자 했다가 자기보다 1살 많은 걸 알고 데꿀멍했다. # 훗날 뭉쳐야 찬다에서 최수종이 자신이 이끄는 일레븐FC를 대동하고 이만기랑 재회를 했는데 최수종의 발언 중 이만기가 무심코 팔짱을 끼고 있는 걸 캐치하고 "만기야 팔짱 좀 풀어라." 라고 했고 이만기는 바로 팔짱을 풀고 급 공손 모드로 들어가기까지 했다. 심지어 우현보다도 연상이다. 워낙 자기관리를 잘해서 최수종이 60세가 얼마 남지 않은 나이라는 것을 알고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50대 초반까지만 해도 굉장한 동안이었으나 다만 50대 중반부터 얼굴 살이 눈에 띄게 빠지는 바람에 예전보다 나이 든 티가 확 나는 게 아쉬운 부분. 그래도 비슷한 연배의 일반인 남성들은 할아버지[38] 같은 외모인 경우가 많다는 걸 감안하면 상당한 동안이다. 몸무게는 30년 째 70kg 이하로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여배우들 중에서는 채시라와 7번이나 같은 작품을 찍었으며, 아내인 하희라와 5번, 최진실/염정아/이승연과 3번, 김지수/이응경/오연수/채정안과 2번의 작품을 함께 하였다.
본인이 상당한 동안이라 그런지 지금까지 상대 여배우들은 대부분이 그보다 연하였다고 한다.
2017년 2월 6일부터 KBS 제2라디오에서 유열의 후임으로 "매일 그대와"의 진행을 맡았다. 2018년 가을 개편 때 조규찬에게 DJ 마이크를 넘겼다.
2018년 9월 주말 드라마 하나뿐인 내편(같이 살래요의 후속작)의 주역으로 출연이 결정됨으로서 2011년 프레지던트 이후 7년여 만에 현대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고위층이 아닌 서민층의 아버지로 출연하게 되어[39] 화제가 되기도.
과거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하여 학창 시절 은사를 찾았지만 수소문 끝에 이미 돌아가신 것을 알고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대조영에서 아버지 역할이었던 원로배우 임혁을 이후에는 실제로도 아버지처럼 모신다고 한다.
사극 연기를 할 때는 국어사전을 들고 다니면서 현대 한국어에서는 잘 구분되지 않는 장단음을 일일이 체크해서 발음한다고 한다. 사전에 나오지 않는 단어들은 임혁, 한인수 등의 사극 전문인 선배 연기자들에게 직접 물어본다고 한다.
출연작
"고종, 순종 다음 수종(秀宗)[40]"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극에서 맡은 배역들이 대부분 왕 아니면 장군이다. 특이하게도 조선 시대 왕보다는 고대사 왕 역할을 매우 많이 맡았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SBS 드라마에는 단 한 번도 출연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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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의 제왕
명실상부 현존하는 배우들 중 최고를 달리는 시청률의 제왕이다. 드라마 커리어로 최수종을 뛰어넘는 필모를 가진 배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나마 최수종과 시청률로 맞먹는 배우는 채시라, 최진실 정도.[45][46] 영화는 송강호, 드라마는 최수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고로 여기 나열된 시청률은 전부 대박급 시청률이고 중박이상까지 나열한다면 더욱 많아진다. 그의 데뷔작인 '사랑이 꽃피는 나무'는 정확한 시청률은 알 수 없지만 최수종에 언급에 의하면 그 당시 시청률이 가장 높은 작품이었다고 하고 '서울뚝배기'나 '행복어사전'도 시청률이 높았다고 한다. 대조영 이후의 작품들은 아쉬운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세운 기록만 봐도 시청률에 있어선 역대급이다. 태양인 이제마도 28%정도이고 중박 이상의 작품까지 생각하면 더욱 많아진다.
90년대 후반의 김희선이 짧은 기간에 8개의 드라마를 연속으로 히트시킨 것보다는 덜하지만, 시청률에 있어서 최수종 만한 전설급인 배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워낙에 다양한 드라마를 히트시키다보니 한때는 최수종의 상대역을 맡은 배우들조차 상대역이 최수종이라고 하면 안심하고 출연한다는 소문조차 있었을 정도였다.
<아는형님>에서 합산시청률이 530%라고 나왔다.
영화에서의 최수종
주무대가 TV인 최수종이지만 영화에도 몇 편 출연했다, 데뷔 초의 영화 몇 편은 흑역사 수준.
1990년 남기남 감독의 영화인 '슈퍼맨 일지매'에선 변신 히어로도 해 먹었다. 심지어 이 영화에선 얼굴 나오는 장면도 얼마 안되며 거의 복면쓴 스턴트맨이 연기를 다 한다.(...) 그러나 6백만원이라는 거액의 출연료를 건넨 이 영화 덕분에 최수종은 곰팡이 슬던 단칸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당시 최수종은 데뷔하자마자 청춘스타로 등극했지만 집안의 빚을 갚고 이민 가 있는 동생 뒷바라지를 하느라 돈을 벌어도 모으질 못 하던 상황이었다
다행히 같은해 1990년, 당대의 청춘스타이던 하희라와 같이 출연한 영화 '있잖아요 비밀이에요'가 쏠쏠한 인기를 끌면서[47] 여러 청춘영화에 연속해서 주연을 맡는다. 이미연, 홍학표와 함께 한 '비 개인 오후를 좋아하세요'. 다시 하희라와 함께 찍으면서 김민종 변진섭까지 나온 '너에게로 또다시', 또 하희라와 함께 찍은 '별이 빛나는 밤에'가 이 시기의 영화들이다.(이렇게 하희라하고 계속 영화를 찍으며 함께 하다 보니 결국 최수종과 하희라는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러다 오연수와 함께 연기한, 치고 박는 신혼부부 이야기 《아래층 여자와 윗층 남자》가 좀 히트를 했고, 그 덕인지 몇 년 후에 김혜선과 신혼부부로 치고 박는 이야기인 《키스도 못하는 남자》를 찍었는데, 키스도 못하는 남자가 별 재미를 못 보기도 했고, 이후로는 정극 위주의 드라마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서 영화를 찍지 않고 있다.
탁월한 연기력을 가졌지만, 시리즈로 기획된 드라마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는 스타일인 만큼 굳이 영화계로 복귀하려는 생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2012년 11월, 영화계에 오랜간만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철가방 우수氏 '라는 작품에 노 개런티로 컴백했다.
사채광고 출연 논란
2006년 최수종은 과감한 외적 변화(?)를 시도한다. 바로 대부업체 광고에 출연하기로 한 것.[49] 그러나 톱스타라는 사회적 위치와 기존의 모범적 이미지에 크게 반하는 것이라 곧바로 시청자로부터 질타가 쏟아졌으며, 사회적으로도 뜨거운 이슈가 되었다. 관련기사 이에 최수종은 반성한다는 사과문과 함께 해당 계약을 체결한 매니저를 해고함으로써 해당 사건을 마무리 지으나, 이후 터진 학력위조 사건과 겹쳐 한동안 방송 출연이 힘들게 됐었다.
학력위조 논란
2007년 연예인 학력 위조 논란 때 최수종도 학력 위조 논란에 휩싸였다. 그동안 최수종은 대외적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무역학과[50]를 졸업했다고 말하며 활동해 왔다. 여기에 대해 논란이 인 것. 사실 확인 결과 결론적으로 최수종은 외대 무역학과에 합격은 했으나 등록을 하지 않아 학교에 재학하지는 않았다.
학력 위조 열풍이 거셌던 2007년 당시, 이와는 무관할 듯 보였던 배우 최수종마저 학력 위조 사실이 드러나자 많은 이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더구나 다니지도 않았던 학교임에도 학교 관련 행사에 꾸준히 참석하여 그 학교 출신 마냥 행세를 해왔었기에 논란은 더욱 불거졌었다. 관련링크1 이른바 국민배우로 불리던 그였고, 대외적으로도 바른 생활 이미지만을 보여왔었기에 그 충격은 한층 더 깊었다.
이에 대해 본인은 의도적인 위조가 아닌 전달 과정에서 생긴 실수라고 해명했으나, 본인의 주장과는 달리 1990년대부터 최수종 자신이 직접 여러 매체를 통해 해당 대학 재학 및 졸업 사실을 언급했으며, 총 3권으로 발간된 본인의 자서전 모두에서 해당 대학 재학 및 졸업 사실을 기재했다는 것이 드러나며 배우 최수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관련 링크2 또한 이후 주장한 유학 생활에 대한 언급도 아귀가 맞지 않는 부분이 상당해 이 부분에 대해서도 많은 의혹이 일었었다. 관련 링크3
그러나 이후, 해당 대학에 합격은 했었으나 집안 형편 때문에 등록하지 못했다는 해명으로 사건의 포커스가 해당 대학 재학이나 졸업이 아닌 해당 대학 합격 유무로 옮겨가더니, 결국 해당 대학 측에서 합격 사실을 확인해 준 후로는 해당 사건은 더 이상의 해명 없이 유야무야 묻혀 버렸다. 한국외대, 최수종 합격사실 공식 확인
사실 학력위조 연예인중에 제일 논란없이 잠잠해졌는데 이는 유명 대학일 수록 졸업보다 입학이 압도적으로 어렵고 힘든 한국 특유의 교육 시스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외대야 예전이나 지금이나 상위그룹 대학 중 하나지만 최수종이 입학할 시절의 대학 학사관리는 지금보다 더 널널한 편이었다. 따라서 최수종이 재정적 사정만 아니면 일단 들어가서 뭘했든 졸업은 따놓은 당상인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더더욱 관심에서 멀어졌다. 사실 21세기가 된 지금도 냉정하게 말해 한국에선 본인이 원하기만 하면 졸업이 불가능한 대학교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자퇴나 범죄 등으로 인한 퇴학을 제외하고는 어지간히 공부를 안해도 졸업을 못하기는 매우 힘들다. 다만 대학원은 사정이 조금 다르지만... 때문에 최수종의 합격 사실이 확인된 후에는 형편이 오죽했으면 합격을 했는데 등록을 못했냐 하는 동정 여론이 일기도 했다.
나중에는 해당 대학 측에서 최수종에게 명예졸업장을 건네주어 동문으로 인정해주었다 카더라라는 루머도 돌았지만, 이는 학력위조 사건이 터지기 한참 전의 일이며 되려 최수종 본인이 명예졸업장을 고사했었다. 관련 링크4
이와 같이 큼직한 사건이 연달아 터지는 통에, 배우 최수종에 대한 도덕성은 막대한 상처를 입었으며 그로 인해 2010년 KBS 전우로 복귀할 때까지 3년이라는 세월이 걸려야 했다. 허나, 당시 최수종의 대처 방식 또한 그리 훌륭했다고 볼 수 없는 것이 앞선 대부 업체 광고 논란이나 학력 위조 사건의 책임을 자신이 아닌 모두 매니저 탓으로 돌려 비난을 키운 면도 어느 정도 있기 때문. 관련링크5, 관련링크6 이는 2010년 이효리 표절 사건의 대처방식과 유사점을 보이기도 한다.
이후 최수종은 2008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하였다.
병역 관련
결론만 말하자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네티즌들이 몰랐기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이다.
생계곤란 사유로 병역이 면제되었는데, 위의 학력 논란에서 말한 바와 같이 아버지의 사업 실패가 원인인듯. 2004년 장혁, 송승헌, 한재석이 병역비리에 걸렸을 때 덩달아 논란이 되었는데, 어렵게 합격한 명문대를 포기해야 했을 정도로 집안 사정이 어려웠던게 사실이고, 공소 시효도 지난 데다가 이미 만 40세를 넘어버려서 민방위 대상도 아니었던지라 큰 논란으로 번지진 않았다.
또한 상기의 연예인들과는 별개의 문제로 봐야할 게, 최수종이 징병 신체 검사를 받았을 때가 1980년대 초반이다. 이 때는 청년층의 인구 비율이 굉장히 높던 시절이다. 1970년대 초반까지는 자식 5명을 두는것 정도는 기본이었다. 여성징병제까지 논의되고 있는 현재에 비하면 괴리감이 들 정도. 이러한 풍경은 90년대 IMF 전후까지 이어졌으나,출산율이 2명 아래로 떨어진 세대들이 사회활동을 시작한 2000년대 중반부터는 사라진 풍경이다.
따라서, 병역 자원은 넘쳤고, 거기에다가 군복무기간은 3년으로 지금에 비하면 현저히 길었기 때문에, 지금 보면 말도 안 되어 보이는 이유로 병역이 면제되거나 방위병으로 전출되는 경우가 많았다. 정 군대를 가고 싶다면, 자원 입대를 하면 됐었다(...)[51] 86세대의 특징 중 하나가 훈련소는 갔다왔어도, 군복무는 안 한 이들이 의외로 많다.[52]
그리고, 최수종 보다 어린 정준하처럼 4대 독자라서[53], 박명수처럼 시력이 안 좋다는 이유, 최불암 시리즈같은 유머 소재로 흔히 쓰인 평발 등등. 1970년와 80년대에는 현역 판정 비율이 40~50%대였기 때문에 이러한 사유를 지니고 있었으면 병역 면제가 되거나 방위병으로 복무했으며 대학 등록도 못할 정도의 생계 문제면 면제 사유로 충분했다.[54]
따라서 다른 연예인들의 병역비리 논란과 달리 탈법적이거나 문제될 부분이 없으며, 여기에 딴지를 거는 사람도 적다. 비슷하게 생계 곤란으로 면제된 사람으론 리쌍의 길이 있다. 오죽하면, 연예인 병역비리를 고발한 기사에서도 최수종은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보지 못한 대중들의 착각이라고 후속 기사까지 냈을 정도로, 단순 해프닝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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