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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0. 11. 5.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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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제47대 부통령 겸 상원의장이자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민주당 후보.

 

성장기

펜실베이니아 주 스크랜튼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아일랜드 계통이며 종교적으로는 가톨릭이었다. 아버지 조지프 바이든 시니어(1915-2002)와 어머니 캐서린 바이든(1917-2010)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이었다. 도시공학자였던 그의 증조부가 부를 쌓아 펜실베니아주 상원의원까지 지냈고 , 이후에도 부유한 집안이었지만 조 바이든 주니어가 태어났을 무렵에는 가세가 기울었으며, 1950년대에 불황이 오자 고향 펜실베이니아를 떠나 델라웨어 주로 이주해 성장했다.

델라웨어 클레이몬트에 있는 가톨릭계 사립학교인 아키메어 아카데미(Archmere Academy)로 진학했다. 재학하면서 미식축구를 즐겨했고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농성 운동에도 참여했다. 1961년 델라웨어 대학교에 진학했으며 미식축구팀인 델라웨어 파이팅 블루헨즈(Delaware Fightin' Blue Hens)에서 뛰었다. 전공은 역사학과 정치학으로 성적은 별로 좋지 않아 688명 중 506등으로 졸업했다. 하지만 벼락치기에 재능이 있었는지 시라큐스 대학교 로스쿨에 진학했다. 로스쿨 재학 중에 인용을 날림으로 하다가 표절 시비를 일으키기도 했다. 1966년에 로스쿨 재학 중에 네일리어 헌터(Neilia Hunter)를 만나 결혼하고[3]2남 1녀를 두었다. 5차례 입영연기를 한 후 1968년에 받은 선병검사에서 1-Y 등급[4]을 받고 베트남 전쟁에는 참전하지 않았는데 천식 때문이었다.

 

정치활동

1969년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고 힘있는 사람의 편에 서는 것에 자괴감을 느껴 국선변호인 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1970년 11월 뉴캐슬 카운티의 카운티 의회 의원이 되었다. 그리고 1972년에 민주당으로 연방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한다.[5] 당시 해당 선거구의 상원의원은 정계 은퇴를 고려하던 J. 보그스(J. Caleb Boggs)였다. 그러자 그의 후계를 두고 공화당에 분열이 생겼고 당시 대통령인 리처드 닉슨은 한 번만 더 출마하라고 보그스를 설득했다. 당시 갓 서른에 가까웠던 바이든은 보그스를 이겼고 미국 역사상 다섯 번째로 어린 상원의원이 되었다. 그러나 그해 12월 18일에 크리스마스 쇼핑을 하러 차를 끌고 나간 가족들이 교차로에서 트레일러에 추돌되는 교통사고를 당해, 아내 네일리어와 장녀인 나오미가 사망했다.

바이든은 상원의원 생활을 하며 1977년에 영어 교사 질 제이콥스(Jill Tracy Jacobs, 1951-)와 결혼한다. 두 사람 다 재혼이었다. 계속 상원의원으로 재직하며 민주당에서 중진으로 경력을 쌓았는데 1988년에 목 통증이 심해져 월터리드 육군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았다. 뇌동맥류가 파열된 탓에 그는 사경을 헤맸지만 7개월 만에 재활해 복귀했다.

1988년에는 당시 역대 2번째로 젊은 나이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했다. 젊은 이미지로 베이비 붐 세대의 지지를 받으며 유력 후보 중 한 명이었지만 영국 노동당 당수인 닐 키녹의 연설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결국 경선을 도중 포기했다.

이후 2008년까지 36년 동안 델라웨어의 연방 상원의원으로 지냈다. 주로 외교 분야에서 활동했고 코소보 문제에 특히 많이 관여했다. 코소보 문제 당시에 미군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는 공화당 의원인 존 매케인과 결의서를 통과시키기도 했다. 1991년 걸프전 당시에는 반대표를 던졌지만 2003년 조지 워커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할 때는 용인했고, 대신 사담 후세인의 제거에는 반대했다.

 

부통령 재임 시기

2008년 민주당 대통령 경선에 출마하였으나 조기에 탈락할 조짐이 보였고 결국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5위로 참패한 후 경선 중단을 선언했다. 하지만 중도 성향 백인 표를 끌어들이기 위해 버락 오바마는 그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고 바이든은 이를 수락했다. 부통령 후보로서 사라 페일린과 토론을 했는데... 결과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두 사람 다 실언으로 유명한 사람들이라 그런지 토론회 수준은 아주 형편 없었다. 그래도 셀 수 없는 망언으로 매케인의 지지표를 날려먹은 사라 페일린과 달리 특유의 능글맞은 재간으로 토론회 중 위기를 넘기며 선방한 편이다. 결국 오바마의 승리와 함께 백악관에 함께 입성했다.

2009년,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하고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탈출을 위해 발의한 미국 경기 회복 및 재투자 법이 상원에서 초당적 협력을 통해 통과할 수 있도록 부통령 겸 상원 의장으로 공화당 의원 3명을 포섭하는 데 성공하면서 중도적 협상가 이미지를 강화시켰다.

2012년 오바마는 다시 조 바이든을 부통령 후보로 내세웠고 폴 라이언과의 부통령 후보 토론회에서 특유의 넉살과 경험으로 토론회 전 예상과 달리 의외로 매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본인도 재선에 성공하였다.

2015년 8월, 리비아 관련 국무부 이메일 스캔들로 곤혹을 치르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에 대항해서 대통령 후보 선거에 출마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의 측근들은 그가 경선에 출마할 것이라고 보고 있고 아이오와와 뉴 햄프셔 경선 대신 3번째 경선인 사우스 캐롤라이나에 집중할 것이라고 한다.

2015년 10월, 아직도 결정을 하지 않았지만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2016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도 201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만큼 혼란스러워 질 수 있다. 약 17%의 확고한 지지자들이 있는데다가 힐러리 클린턴이 이메일 스캔들로 곤욕을 치르는 가운데 공화당 후보들과의 1 대 1 매치업에서 가장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워싱턴 D.C. 현지시각 2015년 10월 22일, 2016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백악관의 로즈가든에서 공식 발표했다.

평가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딕 체니가 실세 소리를 들을 정도로 굉장히 많은 대통령 업무에 개입한 데 비해 바이든은 참모로서 부통령 역할을 더 강조하는 편이다. 다만 외교, 안보 분야에서는 생각보다 그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상원의원 재임 당시 외교위원회에서의 활동이 길고 또 상대적으로 돋보였고 2007년 회기부터 외교위원장직을 수행했다는 것이 주 요인인 듯하다.[7]

방공식별구역 문제 등으로 동북아에 긴장이 조성된 가운데 방한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미국 반대편에게 베팅은 옳지 않으며 미국은 한국에 베팅했다는 언급을 하기도 했다. # #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만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말렸다. 그러나 아베는 야스쿠니를 참배했고 뒤통수를 맞은 바이든 부통령과 백악관은 일본에 대해 실망했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의도치 않게 미국에서 동성결혼을 앞당긴 정치인이다. 2012년 5월 생방송 인터뷰 도중에 자신이 동성결혼을 찬성한다는 의견을 밝혔는데, 당시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반대 여론을 의식해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부통령 바이든이 찬성 선언을 하는 바람에 오바마도 찬성 선언을 하게 되었다. 당시 재선을 앞두고 있던 오바마는, 동성결혼을 합법화하기에는 아직 여론이 따라주지 않다고 판단해 동성결혼은 시기상조로 여겼다.[8] 그래서, 동성결혼 합법화 대신 시민결합과 미군 내부의 Don't ask, don't tell 정책[9] 폐지로 재선 공약을 준비하려 했으나, 부통령 바이든이 생방송에서 동성결혼 찬성 의견을 표출하면서 동성결혼 합법화를 밀게 되었다.

저 인터뷰 이후,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캠패인은 바이든 대신 힐러리 클린턴을 부통령 후보로 내새우는 걸 고려하고 캠패인 미팅에 바이든이 잠시 배제되는 등 바이든의 찬성 의견은 바이든 본인의 정치인 생명과 오바마와의 관계를 걸어야 했을 정도로 대담한 결정이었다.[10]

여러 모로 미국에서는 말 실수 많이 하는 정치인 이미지가 크지만, 성격 좋은 백인 할배 기믹을 맡아 인기가 높았다. 미국 시골 백인들에게 오바마는 이런 포즈를 지을 수 없다.

 

배우자

아들

장남 보 바이든(Joseph Robinette "Beau" Biden III, 1969-2015). 민주당원으로 델라웨어 주의 주 법무관이었다. 아버지가 부통령인 당시에도 이라크전에 참전했고 무공 훈장도 받았다. 전역 당시 계급은 소령. 이후 델라웨어 주 법무장관까지 역임하여 승승장구 하는 듯 하였으나, 2015년 5월 30일에 뇌종양 투병 끝에 숨졌다. 조 바이든의 정치적 후계자로 학벌, 배경, 환경, 인품, 경력, 사생활 어느 하나 빠질것 없이 앞날이 탄탄해보였지만 안타깝게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헤일리와 결혼하여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남겼다.

 

차남 헌터 바이든(Robert Hunter Biden, 1970-). 제일 오른쪽의 인물로 변호사출신 로비스트이다. 아내 캐슬린과 결혼하여 세 딸을 두고 있...었으나 형 보 바이든의 부인 할리 바이든(Hallie Biden)과 형의 사망 5개월 이후부터 열애를 하고 있음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조 바이든과 질 제이콥스는 이에 대하여 관계에 찬성한다는 성명을 낸 상태이며 캐슬린과는 2015년 10월 이미 별거하는 상태였다. 지극히 개인사 이지만 충격적인 건 마찬가지다.[12] 할리 바이든과 약 2년간 동거하고 결별한 후 2019년 멜리사 코언과 결혼하여 아들을 한 명 두었다.

차녀 애슐리 바이든(Ashley Biden, 1981-). 질 제이콥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다. 직업은 사회복지사이며 비영리단체의 임원으로 활동한다. 2012년에 필라델피아의 외과의인 하워드 크레인(Howard Krein)과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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