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가톨릭 교회)의 성직자이다. 한국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13대 교구장 겸 평양교구 서리이며, 대한민국의 2번째 추기경. 세례명은 '니콜라오'이다.
출생과 가정
1931년 12월 7일(현재 만 89세), 경기도 경성부 수표정(현 서울특별시 중구 수표동)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인 정원모(鄭元謨)는 1909년 10월 9일 한성부 서서 인달방(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내자동)의 양반가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당시 사회주의자로서 활동했다. 그는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만주로 건너가서 1927년 4월 여순공과대학 예과에 입학했으나 1년이 못 되어 학업을 중단하였다.
1931년 3월 조선공산당 재건설준비위원회 공산청년부 조직원이 되었으며, 노동절 기념행사를 위한 격문을 배포하였다가 그해 5월 일본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어 경성부로 압송되었고, 6월경에는 용산경찰서에 구금되었다.# 1934년 3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출옥 후 간도로 건너가서 1937년 8월부터 동아일보 도문(圖們)지국에서 기자생활을 하였다.# 8.15 광복 후에는 월북하여 북한 정부에서 대한민국의 차관급에 상응하는 공업성 부상을 지내다가 숙청당했다고 전한다.
신학교 입학
경성부 계성보통학교와 중앙중학교[]를 거쳐 1950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화학공학과에 입학하였으나 그 해 발생한 6.25 전쟁으로 서울대를 중퇴, 신학교에 입학하였고 1961년 사제품을 받았다. 한국전쟁 당시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널브러져 있던 시체들을 보면서 사제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하는데,[7] 그 사건이 바로 대한민국 국군의 흑역사로 기록된 국민방위군 사건.[] 당시 생존자 중 하나였다고 한다.
성직자로서의 삶
사제 수품 후 중림동 약현성당 보좌신부로 시작하여 1968년 로마 성 우르바노 대학원에 유학, 2년 뒤 같은 대학원에서 교회법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천주교 청주교구 제2대 교구장 주교가 되었다. 주교 서품식의 주례는 노기남 바오로 대주교가 맡았는데, 정 추기경의 세례성사와 사제 서품식을 집전한 사람도 다름 아닌 노 대주교였다.[9] 그 뒤 28년 동안 청주교구의 교구장으로서 사목을 수행하였다. 청주교구장 시절 오웅진 사도 요한 신부를 물심양면 도와 꽃동네 창립에 기여하였다.
신부가 되기 전, 부제시절, '만일 사람들이 가톨릭교회의 진리를 알기만 하다면, 믿지 않을 수 없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대구대교구 박도식 도미니코 부제와 "사제품을 받으면, 1년에 1번씩 교리와 관련된 책을 펴내자"라는 약속을 하였고, 두 사람은 그 약속을 지켰다. 박 신부는 2003년 선종하기 전까지 <천주교와 개신교>, <천주교 교리>, <혜숙이와 박 신부>, <결혼성소와 수도성소> 등 수없이 많은 책들을 썼고, 정 추기경도 지금까지 많은 책들을 쓰고 있다. (<추기경 정진석> 참고)
1998년 6월 29일, 당시 서울대교구장이었던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후임 교구장으로 임명되어 착좌하였다.
한국 가톨릭 2번쨰 추기경
2002년 만 80세가 되어 교황 선출권을 상실한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은 "한국 가톨릭에 새 추기경이 필요하다"고 교황청에 보고하였다. 이에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06년 2월 22일 만 74세의 정진석 니콜라오 대주교를 추기경으로 임명하였고, 동년 3월 24일 정식으로 서임하였다.
정진석 대주교의 추기경 임명은 교회법 제401조 1항에 의한 교구장 주교의 통상 은퇴 연령이 75세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 정진석 대주교의 추기경 임명이 발표되었을 때 김수환 추기경은 이제야 다리를 뻗고 맘 편히 잠자리에 들 수 있게 되었다며 매우 기뻐하였다. 이 얘기는 후에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2009년 장례미사에서 정진석 추기경의 강론에서 다시 언급되기도 하였다. 그만큼 김수환 추기경이 오랜시간 새 추기경의 탄생을 염원해왔던 것이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으로서
서울대교구장으로서 교구 살림을 챙기는 데 탁월한 수완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 강남의 하이닉스 반도체 사옥을 구입한 후 임대로 전환하여 임대수익을 벌여들였고, 서울성모병원을 새로 지었으며, ‘미사예물공유제도’라는 서울대교구만 시행하는 독특한 제도도 만들어 교구가 윤택해지게 하였다.
그러나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독단적이고 무리한 사업 추진으로 갈등의 중심에 서기도 하였다. 납골당 사업에 관심을 보여 태릉성당에 납골 시설을 조성하였는데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에 봉착하였고 봉헌미사 집전을 위해 방문한 정진석 추기경에게 주민들이 계란을 투척하기도 하였다.[](YTN뉴스) 또한 교계 안팎의 반대 여론을 무시하고 주교좌 명동성당의 재개발 사업을 적극 추진하여 교구청 건물의 신축과 상업시설을 조성할 수 있게 하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하였지만 원로신부들로부터 '왜 성당 재개발로 성역을 훼손하려 하느냐'는 비판 발언을 듣는 등 교구장으로서의 위신만 실추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서울대교구장으로서 재임하던 중 2010년 12월 4대강 사업에 대한 천주교 주교회의의 입장과 상반된 주장을 언론에 표명했다가 교계 내의 극심한 반발을 맞게 되었고 원로사제 25명으로부터 교구장직에서의 사퇴를 촉구받기에 이르렀다. 그 이듬해인 2011년 중순에 접어들면서 정진석 추기경의 사임이 확실시 된다는 관측이 언론 보도에 나오기 시작했으며[]2012년 5월 10일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정진석 추기경의 사임 신청을 받아들이고 후임 서울대교구장에 서울대교구 보좌주교이자 총대리인 염수정 안드레아 주교를 임명하였다. 그리고 동년 6월 25일 염수정 주교의 서울대교구장 착좌식과 함께 은퇴했다. 서울대교구는 대주교가 관할하는 곳이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대주교 임명과 함께 착좌식이 열렸다. 정 추기경은 청주교구장 28년에 서울대교구장 14년, 도합 42년 간의 교구장 생활을 했다.정진석 추기경은 이임미사에서 강론중 수차례 눈물을 보이기도 하였다
교구장직 퇴임 후
청주교구 꽃동네와는 매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였는데, 2015년 꽃동네에서 '노기남 바오로 대주교 센터'를 완공하였을 때 방문하여 기념미사를 주례하였다.
2017년에는 꽃동네에서 꽃동네낙원묘지 내에 무연고 노숙인 사망자들을 위한 유골 봉안시설을 건립하며 봉안당의 이름을 '추기경 정진석 센터'로 명명하였고 정진석 추기경이 직접 방문하여 축복식을 가졌다.
2018년에는 정진석 추기경이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입학한 지 68년 만에 명예졸업장을 받게 되었다. 수여 배경에는 최창락 전 한국은행 총재가 서울대에 보낸 추천서가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전해졌다. 졸업식에는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한 정진석 추기경 대신 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허영엽 마티아 신부가 참석하여 축사를 낭독하고 졸업장을 받았다.
2018년 8월 15일, 정 추기경의 일대기를 담은 <추기경 정진석>이 출판되었다.
2020년 금경축(주교수품 50주년)을 맞이 하였다.
2021년 2월 28일 서울대교구에서 정진석 추기경이 건강악화로 인하여 서울 성모병원에 입원중이라는 소식을 전하였다.정진석 추기경은 몇년전 건강상의 이유로 수술을 받았고 이후 건강을 회복하고 일상생활을 유지해왔으나 지난해부터 건강이 다시 악화가 되기 시작하였으며 최근 2021년 2월 21일 극심한 통증으로 긴급 입원한 것으로 알려졌다.정 추기경의 상태는 현재 매우 위중한 상태이며 서울대교구측에서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정진석 추기경 입원 기사 이후 유의미한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며 뇌사시 장기를 기증하기로 하였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도 위독한 정진석 추기경을 위하여 많은 기도를 해달라고 사제들과 신자들에게 당부하였다.
2021년 3월 1일 정진석 추기경이 오전 8시 40분 선종했다는 기사가 떴으나 오보인것으로 밝혀졌다.
김대중 토마스 모어 봉성체 요청 거부
1980년 광주항쟁으로 전두환 군부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고 청주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김대중(토마스모어)의 가족들이 당시 청주교구장이었던 정진석 주교에게 봉성체(奉聖體)[]를 여러 차례 청했다. 그러나 정 주교는 이를 모두 거절하였다. 교회지도자의 이런 태도 때문에 김대중의 가족들은 "그러한 교회와 사목자에 대해 늘 깊은 회의와 불신이 남아 있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그 후 15대 대통령에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이 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 추기경을 청와대로 초청하여 함께 점심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이 사실을 놓고 대통령의 비서관들이 "어떻게 사목자가 이럴 수 있습니까? 감옥에 있을 땐 기도방문을 거절하고 대통령이 되니 청와대에 와서 점심식사에 응한다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고 말하며, 이러한 정진석 추기경의 이중적 행태에 대해 질타했다고 한다.
특히 정의구현사제단의 함세웅 신부가 정 추기경의 이러한 행태를 크게 비판하였다.
사목적으로도 있어서는 안 될 일인 것이, 병자성사는 야고보서 5장 14절에 기반한 사제의 의무로서, 이러한 의무에 대해 정치적인 이유로 거부하는 것은 "안중근 토마스가 정치적으로 자신의 의견이 잘못되었다고 시인하지 않으면, 고해성사를 줄 수 없다."고 거부하여 천주교 내에서 안중근 의사가 수십 년에 걸쳐 암묵적인 배교자 취급을 당하며 묻히게 만든 원인이 된 귀스타브 샤를 마리 뮈텔 주교의 행위와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금친 착복 및 향유 논란
정진석 추기경은 돈을 밝힌다는 비판과 교구 기관의 재산을 빼돌려 개인적으로 착복한다는 의혹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청주교구 소속 신성국 노엘 신부가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가 꽃동네 오웅진 사도 요한 신부와 함께 권력과 금력을 향유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청와대에 탄원서를 제출한 적도 있었다. 정진석 추기경이 청주교구장으로 재임하던 1998년 청주리라병원(後 청주성모병원) 인수를 강행하면서[] ‘사재를 다 털었다’며 10억원을 내놓았으나 정 대주교가 서울대교구로 떠난 뒤 개인적으로 관리하던 통장에서 무려 20억원[]이 나왔고, 다른 통장에서도 상당액이 드러났으며, 1년 뒤인 1999년에도 ‘전재산이다’라며 5억원을 꽃동네대학교에 장학금으로 내놓았는데 이러한 돈의 출처에 대해 밝혀달라는 것이 탄원서의 내용이었다. 해당 기사
다른 건 의혹으로 치더라도 정 추기경이 꽃동네 관련 후원금으로 내놓은 사재만 15억 원인데, 과거 김수환 추기경의 월급이 200만원이었고 보통 신부들은 월 100만원 남짓의 활동비를 받아 살아가는데 월 100만원을 한 푼도 안 쓰고 10년을 모아야 1억2천, 10억을 넘기 위해선 한푼도 안 쓰고 100년 가까이 저축을 해야 하는데 이는 도저히 저축만으로 내놓을 수 있는 금액이 아닌 것은 맞다.
물론 재테크나 주식 등 건전한 방법으로 불렸을 수야 있지만 그건 그것대로 금전을 탐하지 말고 청빈할 것을 강조하는 가톨릭 교리에 부합하는 행위는 아니다.
그러나 정진석 추기경이 평소에는 워낙 검소한 이미지가 강했던터라 이러한 의혹은 카더라에서 끝나고 결국 크게 이슈화로 이어지지는 못하였다
전종훈 시몬 신부 안식년 인사 발령 논란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사건 폭로를 도왔던 천주교 서울대교구 전종훈 시몬 신부에게 기존 인사 관행에서 어긋난 보복성 인사 발령 조치를 내려 논란이 되었다.
삼성 비리를 고발한 김용철 변호사를 사제단이 보호하자, 정 추기경은 전종훈 신부를 1차 소환하였다. 이어 사제단이 서울광장에서 촛불 시국미사를 봉헌하자, 정 추기경은 전 신부를 재차 소환하여 해외로 나갈 것을 종용하였다. 그리고 전 신부가 이를 거부하자 안식년 발령을 내린 것이 인사발령의 내막이었다. 천주교 교구사제는 통상 10년에 한 차례 1년 간의 안식년을 지내게 되는데, 전종훈 신부의 경우 이보다 앞선 7년 전인 2001년도에 안식년을 지낸 바 있었다. 또한 통상 5년의 임기를 지내게 되는 본당 주임신부에 발령된 지 1년 반만에 전 신부는 사목 직위에서 해임되어 안식년 발령을 받게 되어, 정 추기경의 징계성 의도가 다분한 인사조치임이 확실하게 부각되었다.
이러한 안식년 인사 발령 조치로 사제를 사목 일선에서 배제한 것도 모자라, 정진석 추기경은 이후 전종훈 신부에게 3년이나 연속해[] 안식년을 내려 교구장의 지나친 인사 전횡이라는 평가와 함께 '정 추기경이 사제단 대표의 손발을 묶어 신부들의 사회 참여 의지를 박멸시키려 한다’는 교계 안팎의 비판을 받게 되었다
2010년 4대강 정비 사업 관련 발언 파문
2010년 12월 8일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에 대한 비판과 4대강 사업 관련 발언을 하였다. 기존의 전체주교회의에서 4대강 사업 반대 결정을 한 것은 '자연 파괴와 난개발의 위험을 보인다'는 우려였지 모든 주교들이 4대강 사업이라는 특정 정치사안에 대해서 반대 입장을 표한 것은 아니라는 것.
이에 12월 10일, 정의구현사제단이 유례없이 강도 높은 수위로 비판하고, 이어 원로 사제들이 정 추기경의 서울대교구장직 사임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한국 가톨릭 초유의 사태가 벌어져 교계 안팎으로 상당한 문제가 되었다.추가 참고기사
비판 측에서 가장 문제삼은 것은 정 추기경의 독단적인 언행이었다. 4대강 사업 반대는 다름 아닌 <전체주교회의>에서 토론 끝에 결정된 것이다. 주교회의에서 의결하는 모든 내용은 가톨릭 교회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인 '일치', 즉 '공동 합의'에 따라 의결되는 것이다. 아무리 추기경이고 대주교라도 의견 교환없는 독자적인 반대는 안 되는 것이다. 정 추기경의 이러한 언행을 교회의 분열을 야기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라고 본 원로 사제들이 들고 일어났던 것이다.가톨릭뉴스 참고기사
또한 비판 입장을 주도한 전체 주교회의 소속 <정의평화위원회>에서는 정 추기경의 발언을 부정하고 다시 한 번 4대강 사업 반대입장임을 명백히 확인하였다. 또한 대구대교구 소속 정홍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는 "정진석 추기경의 지시로 평화방송에서 입막음을 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하여 파문이 확산되는 모습을 보였다.
정의구현사제단이 정 추기경을 비난한 명분이 "한국 천주교 최고 의결기구인 주교회의의 입장에 대한 추기경의 불순명"으로 내부에서 불만이 터져나올 수 있는 껀덕지를 제공했다.[]
가톨릭 외부의 사람들이 볼 때는 4대강에 대한 교내의 정치적 입장차이가 아니라 '불일치' '불순명'이 논쟁의 핵심이 되는 것이 다소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부분인데 사실 가톨릭은 공동체주의를 강조하며 통일성, 일치, 위계서열, 순명을 강조하는 보수적인 교단이다. 가톨릭의 몇몇 사제들과 정의구현사제단의 사제들이 사회 변혁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부분과는 좀 다른 차원의 이야기. 가톨릭 사제들이 그러는 건 거의 언론에서 보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가톨릭의 보수성은 꼭 긍정적인것도 꼭 부정적인 것도 아니고 상황에 따라 2가지 모두 가능하다. 문제가 생겼을 경우 신부를 다른 곳으로 보내고 조용히 묻어버리는 경우들이 있다는 점은 대충 넘어갈 문제가 아니지만 이 사안의 경우에는 일반 사회조직에서도 지켜져야 할 민주적 합의와 그 합의에 따라 결정된 규칙에 대한 준수의 문제를 어긴 것이라서 문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불순명 이야기가 다시 나오는 것은 비종교인들이 보기에 좀 권위적이거나 낯설 수 있는데, 이러한 배경이 있는 것.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하면 주교들은 개인자격으로서가 아니라 단체적으로 사도들의 계승자들이며(교회헌장 20)사제들과 부제들은 불완전하나마 진실로 주교들의 직무에 참여한다(교회헌장 22, 28, 사제직무 교령 1). 여기서 개인은 신품성사로 사제적 능력을 개인적으로 받지 않고, 그리스도가 사도들에게 위임한 사명을 단체적으로 상속하고 지속시키는 성직자단에 입단하는 것이요, 이 단체의 기능은 대사제인 그리스도의 직무를 하느님의 백성안에 대표하고 이행하는 것인데, 이러한 주교 개인의 자의적 사목에 대한 주교단의 결의는 우위성을 띄고 있으며
주교단은 교황과 더불어 교회에 대한 완전한 최고 권한을 행사하는데, 교황 없이는 그 권한을 결코 행사하지 못한다.
《가톨릭 교리서 요약편 183. 주교단의 임무는 무엇인가?》
주교단은 교도권과 사목 통치에서 사도단을 계승할 뿐 아니라 그 안에 사도단이 계속하여 존속하며, 그 단장인 교황과 더불어 보편 교회에 대한 완전한 최고 권력의 주체로도 존재한다. 이 사도단은 여러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하느님 백성의 다양성과 보편성을 드러내며, 또한 한 단장 아래 모여 있으므로 그리스도 양 떼의 단일성을 드러낸다. 주교단 안에서 주교들은 그 단장의 수위권과 최고 권위를 충실히 존중하면서, 교회의 유기적 조직과 화합을 끊임없이 북돋아 주시는 성령에 따라, 자기 신자들은 물론 온 교회의 선익을 위하여 고유한 권력을 행사한다. 이 주교단이 지닌, 보편 교회에 대한 최고 권력은 세계 공의회에서 장엄한 양식으로 행사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22》
이를 본질적으로 뒷받침하는것은 지역교회의 지도자들이 주교단의 일원으로서 전체교회에 속하는 부분교회로서 사도를 계승하고 있는 점이다(이는 무려 사도전승의 내용이다)
이러한 주교단의 단체성은 전 교회에 대해 적용되는 세계 공의회에서도 잘 나타나는데, 공의회란 본질적으로 주교단의 결의가 단장인 교황의 동의를 받아서 교회 전체에 대한 보편적인 사목지침이 되는 것으로서, 공의회 밖에서도 세계 주교들의 일치된 결정은 동의를 전제로 하여 교회의 최고 사목권의 발로로 인정된다(교회헌장 22, 주교교령 4)는 점에서 이러한 주교단의 결의에 반하는 개인적인 신념에 근거한 사목의 예시로 성 비오 10세회가 있는바, 이러한 주교단의 결의를 무시하고 결의에 반하는 행동을 한 것은 신학적으로 비난받기에 충분한 부분인것이다. (위 근거항목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itum) 사전 설명 주석 참조)
파문의 확산을 막기 위해 자제로 일관한 정 추기경 측은 2010년 12월 23일 발표한 신년메시지에서 흑백논리를 배제하자고 하였다. 한국 가톨릭이 정교분리의 원칙에 따라 어떤 정치사안에 대해서도 찬성이나 반대와는 무관하며 정치적인 사안에 대한 판단은 신자들 개개인의 양심에 맡기겠다는 것.
1년여 후, 파문 이전에 제출된 상태였던 정진석 추기경의 서울대교구장 사임 신청을 2012년 5월 10일 교황청이 수락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정진석 추기경은 이미 콘클라베 참여 제한 연령인 80세를 넘긴 상황이었으며, 모든 가톨릭 고위 성직자들은 75세 즈음 교황에게 사표를 제출하는 관례가 있다.[] 모양새는 나쁘지 않게 잘 갈무리한 셈이다.
이 갈등에 언론과 정치인들까지 가세(…)하여 볼썽사나운 추태가 크게 벌어질 뻔하기도 하였으나 당사자인 가톨릭 교회 대부분은 주님 성탄 대축일을 무탈히 치르는 등 계속 평정을 유지한 덕분에 논란이 커지지는 않았다.
여기까지 보면, 상당히 일견 '보수적'으로 보일지는 모르나 추기경이 된 이후에 용산 철거 화재 사건, 서울시 뉴타운 재개발에서 소외받는 시민들이 있다는 걸 문제삼으며 "우리 사회는 입법기관 종사자들에게 특권도 부여하고 있지만, 과연 그들이 대우를 받는 만큼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지 의문"이라고 발언하기도 했으며, 정운찬 총리가 "4대강 반대하는 주교회의 좀 잘 달래 달라"고 찾아갔어도, "천안함 사건이나 잘 처리하시라"고 완곡히 거절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 주교회의에서 4대강을 생명보호 교리를 근거를 들어 반대하기로 의견 일치를 본 상황이였으므로, 정진석 추기경이 뭘 해보려고 했어도 힘들었을 것이다. 정진석 추기경은 끝까지 주교회의에서 4대강이 환경파괴를 할 수도 있다고 했지, 반대는 안 했다고 주장했으며 결과에 대한 판단은 알아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명동성당 재개발과 4대강 사업 빅딜 의혹
4대강 정비 사업에 대해 반대하는 주교회의 입장과 상반되게 4대강 사업을 옹호하는 입장을 내비친 정진석 추기경의 행태에 대해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과 명동성당 재개발 사업을 서로 맞바꿨다는 빅딜설이 제기되었다.
명동성당 재개발 사업은 정진석 추기경의 서울대교구장 재임기간 중 추진한 핵심사업으로 일각에 의하면 추기경이 퇴임하기 전 서울대교구에 큰 선물을 하나 주고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추진했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은 2009년도부터로 당시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의 심의회의에서는 명동성당 재개발 사업에 대한 6차례의 심의에서 역사적 가치의 훼손과 연약한 지반, 주변 경관 파괴 등의 이유로 모두 부결 방침을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서울대교구에서 당초 13층에서 1개층을 줄인 12층 건물(42m) 신축 등의 수정안을 제출하였고 극비리에 열린 문화재위 근대분과 회의는 명동성당 재개발에 대해 반대토론도 없이 만장일치의 찬성으로 결론을 내려 재개발 수정안을 한달음에 통과시켰다. 이같이 허가가 나자 정진석 추기경은 ‘4대강 사업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기자간담회에서 공개적으로 표명함으로써 이명박 정부에 화답한 것이다.
당시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은 명동성당 재개발과 관련해 문화재 전문가, 서울대교구 관계자들을 잇따라 불러 면담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건축계에 따르면 문화재청 국장과 근대문화재과장, 사무관, 전문위원 등이 들어가 청와대 관계자와 재개발 여론, 통과 전망, 대책 등을 논의하였고[21] 서울대교구 관계자도 시민사회수석실 종교 담당과 수차례 만나면서 교단 내 재개발 반대 여론 등에 대한 정보를 공유했던 것으로 알려져 이러한 정황을 뒷받침했다.
윗 문단의 논란은 교단내부의 신학적 논의라면 이 문단은 신학과 사회적 논의로서, 프란시스코 프랑코 휘하의 가톨릭 교회가 프랑코 체제의 정치적 우군이 되어주면서 그의 통치를 도덕적으로 정당화 시켜준것과 궤를 같이하는 부분이다. 프랑코 체제에서는 인종주의적 신념아래 유대인 및 공산주의자 부모로부터 아이들을 납치해 가톨릭 고아원으로 보내 사제로서 기르는 일이 잦았는데, 스페인 가톨릭은 아이들 납치를 반대하기는 커녕 가톨릭 사제와 수녀들이 조직적으로 도왔다.(...) 정치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미혼 여성이나 믿음이 약하다고 생각되는 어머니에게 아이가 죽었다고 말한 후 그 아이를 '신앙이 투철하고 경제적으로 유복한' 가정에 입양했는데, 이 과정에서의 이권을 이유로 사목해야할 사제와 수녀들이 조직적으로 1990년대까지 주도적으로 시행한 사례로 오늘날의 스페인 가톨릭이 비판을 받는것처럼, 재개발이라는 금전적 이유로 정치적 딜을 주고받는것은 피를 흘려가며 이루어낸 대한민국 가톨릭교회의 얼굴인 추기경이 하기에는 낯부끄러운 일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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