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正月大-)은 한국의 전통 명절로 음력 1월 15일을 의미한다.
설날 이후 처음 맞는 보름날로 상원, 혹은 오기일(烏忌日)이라고 한다. 어찌보면 조상들은 설날보다 더 성대하게 지냈던 명절로, 보통 그 전날인 14일부터 행하는 여러가지 풍속들이 있다. 원래는 설날부터 대보름까지 15일 동안 축제일이었으며, 이 시기에는 빚 독촉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옛날에는 큰 축제였다. 이보다 좀 더 옛날에는 정월 대보름 이튿날을 실질적인 한 해의 시작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하는 설도 있다. 새 학년이 시작하는 날은 3월 1일이지만 3.1절이 있어 본격적인 새 학기는 3월 2일부터 시작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1] 또한 세배를 드릴 수 있는 마지노 선이기도 하다.
이 날에는 오곡밥, 약밥, 귀밝이술, 김과 취나물 같은 묵은 나물 및 제철 생선 등을 먹으며 한 해의 건강과 소원을 빈다. 또한 고싸움, 석전과 같은 행사와 다양한 놀이를 하였는데, 이 풍속들은 오늘날에도 일부 이어져 행해지고 있다. 지역별, 마을별로 제사를 지내는 곳도 있다. 예로부터 정월 대보름에는 한 해의 계획을 세웠는데, 이 과정에서 한 해의 운수를 점치기도 하였다.
유래
정월 대보름의 기원과 관련된 전설 중에 사금갑(射琴匣)이 있다. 원전은 삼국유사 기이 제 1편 소지왕 이야기다.
신라 시대, 임금 소지왕이 정월 대보름에 천천정으로 행차하기 위해 궁을 나섰는데 갑자기 까마귀와 쥐가 시끄럽게 울었다. 그리고는 쥐가 사람의 말로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따라가 보옵소서."
그러자 임금은 신하를 시켜 까마귀를 따라가게 했다. 신하가 까마귀를 어느 정도 따라가다가 어느 연못에 다다랐을 때, 돼지 두 마리가 싸움을 하고 있었다. 신하는 돼지 싸움을 보다가 그만 까마귀를 놓쳐 버렸다. 잠시 후에 연못에서 노인이 나와서 신하에게 편지 봉투를 주고는 "그 봉투 안의 글을 읽으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요, 읽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입니다."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신하는 궁에 돌아와 임금에게 편지 봉투를 주면서 연못의 노인이 한 말을 전했다.
임금은 두 사람이 죽는 것보단 한 사람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해 편지를 읽지 않으려 했는데 옆에 있던 일관이 말하였다.
"전하, 두 사람이라 함은 보통 사람을 말하고, 한 사람이라 함은 전하를 말하는 것이니, 편지의 글을 읽으시옵소서."
일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임금은 편지를 꺼내서 읽어 보았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射琴匣(사금갑: 거문고 갑을 쏘시오)'
임금은 곧 거문고 갑을 활로 쏜 다음 열어 보니 두 사람이 활에 맞아 숨져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왕비와 어떤 중이었는데, 중이 왕비와 한통속이 되어[] 임금을 해치려 했던 것이다.[3] 그 뒤 정월 대보름을 오기일(烏忌日)이라 해서 찰밥을 준비해 까마귀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이후 이 찰밥이 발전해 약밥이 되었다.
까마귀뿐 아니라 쥐와 돼지도 활약을 했는데도 까마귀만 챙겨주는 것이 의아할 수 있는데, 이는 쥐와 돼지는 이미 12지신에서 한 자리씩 (심지어 첫 자리와 끝 자리) 해먹고 있는 관계로 이런 일이 아니라도 따로 쥐와 돼지를 기리는 행사가 많은데, 까마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풍속
15일 전 연휴로 존재하는 설날과 달리 휴일이 아니기에 인지하지 못하지만, 정월 대보름만큼 전통 풍속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명절은 흔치 않다.
대보름 전날 밤에는 아이들이 집집마다 밥을 얻으러 다녔다. 또한 이날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샌다고 믿었기 때문에 잠을 참으며 날을 샜다. 잠을 참지 못하고 자는 아이들은 어른들이 몰래 눈썹에 쌀가루나 밀가루를 발라 놀려준다.
아침이 되면 부럼깨기 및 귀밝이술 마시기를 시작하며, 새벽에 '용물뜨기'를 하거나 첫 우물을 떠서 거기에 찰밥을 띄우는 '복물뜨기'를 하였다. 오늘날에는 여러 지방 단체 주최 행사들이 연이어 열린다. 자정에 이르러서는 달집 태우기 및 쥐불놀이를 이어하며, 풍년을 비는 행사를 끝으로 대보름을 마무리 짓는다.
음식
오늘날의 음식과 비교하면 보잘것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전통 사회에서는 겨울철에 구할 수 있는 음식거리를 모두 동원하여 잘 먹고 노는 날이 대보름이었다. 견과류가 그렇거니와, 온갖 묵나물도 당시로서는 입맛을 돋구는 좋은 음식이었을 것이다. 대보름에 온갖 음식을 해서 많이 먹는 것은 곧이어 다가올 농사철에 대비하여 영양을 보충하자는 뜻도 있을 것이다.
부럼: 설날 아침에 떡국을 먹음으로써 나이를 먹는다면, 정월 대보름에는 만사형통과 무사태평을 기원하며 아침 일찍 부럼을 나이 수 만큼 깨물어 먹는 관습이 있다. 이를 '부럼깨기'라고 하는데 부럼을 깨물면서 부스럼이 나지 않도록 비는 관습이 여전히 남은 것이다. 실제로 견과류는 불포화 지방산이 많고 영양소가 풍부하기 때문에 건강에 좋으며, 적은 양으로도 높은 칼로리를 섭취할 수 있는 견과류를 먹음으로써 건강을 챙길 수 있기에 이러한 관습이 남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영양적인 문제와는 별개로 깨먹는다는 상징성 때문에 견과류 중에서도 과피가 남아있는 견과류에 집착하는 습속도 남아있다보니 정월 대보름날에는 껍질이 남아있는 견과류가 정월대보름용으로 많이 유통된다. 개중에는 품질이 낮지만 껍질이 남아있다는것 때문에 되려 더 비싸게 바가지 씌워 팔리는 물건도 많이 보인다.
오곡밥(찰밥): 찹쌀, 기장, 수수, 서리태, 적두를 섞은 풍년을 기원하는 잡곡밥. 왜 굳이 오곡밥이냐면 과거 가을 추수 때 가장 잘 자라던 곡식들을 모아 한 밥 공기에 담으니 다섯 가지의 곡식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기 때문. 일반 쌀이 아닌 찹쌀을 쓰기 때문에 밥물을 일반 밥을 할 때보다 적게 넣어야 한다.
진채(陣菜): 묵은 나물이라는 뜻. 구체적으로 박, 버섯, 콩, 순무, 무잎, 오이, 가지껍질 등을 가리키는데, 여름에 더위를 타지 말라고 해당 나물을 준비했다는 조선시대의 기록이 있다. 보통은 열아홉 가지를 준비하지만 충분치 않다면 세 가지 정도로 줄어들기도 한다. 진채에 포함된 나물 외에 호박잎, 도라지, 콩나물 등을 쓰기도 한다.
귀밝이술(이명주): 이른 아침에 부럼을 깨는 것과 동시에 찬 술을 마시는 관습. 이름처럼 귀가 밝아지고 귓병을 막아주며 1년간 좋은 소식만을 듣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주기 위한 술이다. 술이긴 하지만 아이들에게도 주기도 한다.
팥죽: 정월 대보름에도 팥죽을 먹는다. 동지 때와 유사하게 악귀를 쫓아내기 위해 먹는 것이며, 오곡밥을 만들 때 있는 팥과 병행해서 만들 수도 있다.
약밥: 약밥의 유래는 위의 사금갑(射琴匣)
놀이
다리밟기: 말 그대로 다리를 밟아 밟은 사람의 다리가 튼튼해지라고 하는 것. 정월대보름 밤에 다리를 밟으면 다리병을 앓지 않는다고 한다. 답교 또는 답교놀이라고 하며 전국적으로 성행하였다.
달맞이: 초저녁에 달을 맞이하는 행위. 보름달이 떴을 때 소원을 빌어보자.
달집 태우기: 대보름날 달이 뜰 때 모아놓은 짚단과 생소나무 가지를 묶어서 무더기로 쌓아올린 "달집"을 세운 다음, 불에 태워서 놀며 풍년을 기원하며 소원을 비는 풍습. 방금 전 달을 맞이했는데 맞이한 놈 집을 태운다 아니 이보시오! 농부 양반!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옛부터 풍년을 기원하는 풍속이다. 달집이 화염에 활활 잘 타오를수록 마을이 태평하고 그 해는 풍년이 될 거라는 징조라고 한다. 달집을 태우면서 풍물패가 주변을 맴돌며 풍악을 울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쥐불놀이보단 이게 더 아름다운 풍속 같다 환경오염
더위 팔기(매서): 남에게 더위를 파는 풍속. 아침 일찍 일어나서 친구나 이웃을 찾아가 이름을 부른다. 이름을 불린 사람이 무심코 대답을 하면 "내 더위 사가라" 또는 "내 더위 네 더위 맞더위"라고 외친다. 이러면 이름을 부른 사람의 더위가 대답한 사람에게 넘어가게 된다. 반대로 더위를 팔려는 것을 눈치채고 대답 대신 "내 더위 사가라"라고 외치면 이름을 부른 사람이 오히려 더위를 사게 된다. 옛날에는 감당 못할 정도로 더위를 많이 산 사람이 엉엉 울다가 그 더위를 키우던 똥개에게 팔기도 했다고 한다...
복토 훔치기: 부잣집이나 번화가의 흙을 가져다가 자기 집의 부뚜막에 발라 한 해 동안 생업이 잘되기를 기원하는 풍속. 서울특별시에서는 주로 번화가인 종로의 흙을 가져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는데, 하도 사람들이 많이 가져가서 종로의 길을 보수하는 관원들이 고생했다고 한다. 한 두 주먹씩 가져가는 걸 넘어서 아예 삽과 곡괭이로 퍼가는 경우도 많았다고... 부잣집에서는 아예 보초를 세워 흙 퍼가는 일을 방지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석전
액막이 연: 연을 날리다가 줄을 끊어 연이 멀리 날아가게 하는 의식. 다만 정월 대보름 이후에는 연을 날리는 사람을 멸시했는데 대보름 이후부터는 한 해 농사를 준비하느라 바쁘기 때문.
쥐불놀이
줄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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