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정치인, 법조인. 제33-34대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했다. 2021년 3월 4일 2021년 재보궐선거 국민의힘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선출되었다.
유년기에 아버지의 부도를 겪고, 전기와 수도가 들어오지 않는 달동네에서 자랐다. 중학교를 다닐 때까지 학비를 걱정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 해 지기 전에 공부하고, 해가 지면 잠에 드는 생활이었다고. # 중동중학교와 대일고등학교(4회)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법정학부에 입학했다가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로 2학년[] 편입학했다. 사법시험에 붙은 뒤에 국군기무사령부에서 병역을 마치고 중위로 전역했다.
그 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상법 전공으로 법학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숙명여자대학교 법학과에서 겸임교수로 있었다. 이후 미국 예일대학교 로스쿨에 방문학자(Visiting scholar)로 있다가 귀국하여 민사소송법 전공으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변호사로서 주목받게 된 것은 이른바 일조권 소송 사건이다. 1993년 인천의 경남아파트 일부 세대에서 대낮에도 전등을 켜야 할 정도로 그림자에 가려 일조권이 침해되었다며 단체 행동에 나선 적이 있다. 그런데 당시 주민들의 대리인으로 등장한 사람이 바로 당시 33세의 오세훈 변호사였다. 오세훈은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여 13억 원의 배상금을 받아내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일조권이 헌법상 환경권으로 인정되는 판례를 이끌어 냈다. 이는 오세훈의 이름을 널리 알렸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보기 드문 '환경 전문 변호사'라는 타이틀을 가져다 주었다.
일조권 소송에서 승소한 후 당시 MBC 아나운서였던 손석희 현 JTBC 대표이사 사장과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고, 그때 한 PD가 오세훈 변호사에게 방송 출연을 제의했다. 이렇게 탄생한 프로그램이 <생방송 오변호사 배변호사>였다. 일조권 소송으로 이름을 높였고, 훤칠한 외모로 주부들에게 인기있는 오세훈 변호사와 김보은 양 사건의 변호인단으로 활약한 민변 출신 배금자 변호사를 함께 엮어서 월요일 프라임타임대에 법률상담 방송을 편성했다. 첫 방송이 나간 후 훤칠한 외모의 젊은 변호사의 등장으로 인해 그동한 변호사에게 박혀 있었던 고리타분하고 따분한 이미지를 완전히 상쇄하여 큰 호응을 얻게 된다.
그후 방송 능력을 인정받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진행을 담당하였고, 96년 SBS 뉴스 따라잡기, 98년 갑론을박 동서남북, 99년 오늘과 내일 등 각종 시사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았다. 또한 남성복 브랜드 로가디스와 청호나이스 정수기 등의 광고에서 모델을 맡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정장 브랜드와 정수기 브랜드는 당시 최정상급의 연예인[]을 모델로 광고하지만 당시 변호사로서의 스마트한 이미지와 큰 키(181cm),[그외 여러 가지 요소들로 인하여 일반인으로서는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델이 될 수 있었다.
95년 발간된 그의 에세이인 <가끔은 변호사도 울고 싶다>는 종합베스트셀러 10위권을 기록했다.
96년 동아일보에서 조사한 '결혼하고 싶은 남성' 순위에서 영화배우 이병헌을 제치기도 했으며, 주간지 기자 200명을 대상으로 한 '멋있는 남성' 설문조사에서 순위권에 올랐다. 꼬시고 싶은 유부남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제16대 국회의원
방송을 통한 인지도를 바탕으로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양당의 영입 러브콜이 엄청났다고 한다. 결국 이회창 총재의 설득으로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서울특별시 강남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59.4%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당선 후에는 4년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하였다.[ 남원정과 함께 소장 개혁파로 주목받았다.
2003년에는 '코리안 베스트드레서 어워드 정치인 부문'을 수상하는 독특한 수상 이력도 있다.
이명박 서울시장 입후보 당시 이명박 캠프 대변인을 지냈다.
하술할 '오세훈 3법'이라 불리는 강력한 정치개혁 법안 등을 통과시키며 '차떼기당'이라고까지 불렸던 한나라당의 이미지를 쇄신하다, 이후 '5공 용퇴론'을 주장하며 당시로서는 획기적이게도 다음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 공천을 위해 당론에 따라 상식과 괴리된 발언을 해야만 하고, 생계를 위해 후원자 앞에 을이 되는 것이 자존심이 상했다고. 여담으로 국회의원 시절보다 그 전 변호사 시절 수입이 수 배 이상 많았다고 한다.
총선 불출마 선언 후 의정활동 잔여금 2,500만 원 중 1,500만 원은 환경재단에, 1,000만 원은 서울문화재단에 기부하였다. 그리고 국회의원 4년 간의 임기기간 내내 시민단체에서 시상하는 '국정감사 우수의원'에 선정되었다.
오세운 3법
임기 중 '오세훈 3법'이라 불리는 정치자금법, 공직선거법, 정당법 개정안을 내놓아 세간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선거공영제, 비례대표제 실시 및 지구당, 정당후원회 폐지가 주된 내용이었다. 기존에는 후원의 상한액이 사실상 없다시피해 후원자에게 설설 기는 것이 기존의 정치문화였는데 오세훈 3법으로 후원 상한액을 500만원으로 설정해 이런 관행을 근절할 수 있었다.
이 중에서도 특히 기업의 정치자금 후원을 금지한 정치자금법 개정안은 여야를 막론하고 반발이 심했다. 하나 의외인 것은 통상적으로 보수인 한나라당보다 진보 성향인 새천년민주당(이후 열린우리당)에서 반발이 심했다는 것. 한겨레 등 진보 성향 언론들은 개혁에 비교적 소극적이던 한나라당이 오히려 파격적인 안을 제시하는데도 진전이 안 된다며 민주당을 비판하기도 했다. 결국 선거를 앞두고 똥줄이 탄 열린우리당의 천정배 간사가 오세훈의 제안을 전격 수용하여 여야 합의로 개정되었다. 이때 열린우리당 정동영 대표는 선거 후 다시 해당 법안을 원상복구시킬 계획을 갖고 있었지만 국민 여론의 반발이 커 '오세훈 3법'은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서울시장
잠시 정계를 떠나 있었다가 이명박의 뒤를 이어 2006년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열린우리당의 강금실 후보를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여러가지의 공과 과오가 있었다. 2007년에는 민원 관련 문의전화가 분산되어 있어 복잡하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시 통합민원서비스인 다산콜센터(120)를 설립하였다. 또한 그동안 서울시, 인천시, 경기도가 각자 대중교통 환승제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인천시, 경기도와 협의하여 수도권 통합 대중교통 환승제를 실시하였다. 또한 '서울시 공기를 제주도처럼 만들겠다'고 선언하면서 천연가스 버스 교체 사업 및 도로 물청소 등의 환경정책을 추진하였으며그 결과 2년 후 서울시 미세먼지 농도가 23% 감소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디자인서울, 다산콜센터, DDP, 세빛섬 성과들을 바탕으로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명숙 전 국무총리를 상대로 가까스로 승리하며 민선 최연소 시장이자, 최초의 재선 서울시장이 되었다. 최초의 재선 서울시장으로서 계속하여 좋은 업적을 쌓아간다면 박근혜와도 견줄 수 있는 비박계의 대선주자로 자라날 것으로 기대를 받았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및 서울시장 사퇴
2011년 시장직을 걸고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실시하였다가 투표율 미달로 개표가 무산되어 시장직을 반납하였다. 그리고, 이 사건은 오세훈의 정치경력 최대의 오점으로 남게 되었다.
시장 첫 임기 때와는 달리[] 무상급식과 관련해 당시 민주당 서울특별시당 학교급식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초선 서울시의원 강희용의원이 주축이 되어 무상급식 반대 주민들의 서명 명단이 허위라는 지적을 받게 되었고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이 조직적으로 선거 참여한 것은 아닌지 집중 추궁을 받게되었다. 결국 '불법대리서명'건이 인정되어 서울시는 26만 7000여건의 서명을 무효화 시켰다. 또한 강희용 시의원을 중심으로 예산 및 재판 중인 사안은 주민투표의 대상이 될수 없다는 지적을 받아 투표 무효화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러한 강력한 반대 운동으로 투표 참여율이 저조하여(25.7%) 개표가 이뤄지지 않아 오세훈 시장이 사퇴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서울 시장 사퇴 이후
사임 후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KCL)에서 공공정책대학원 연구원으로 재직하였고, 중국 상하이 푸단대학교에서 단기 어학연수를 하고 귀국하였다. 그후 로펌의 고문변호사와 겸하여 한양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고려대학교 기술경영대학원 석좌교수로 강의하였고, '미래사이테크포럼'의 대표를 맡아 각종 미래첨단산업 연구와 세미나 개최 등의 활동을 하였다.
2014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 소속으로 페루 리마, 르완다 키갈리에 중장기자문단으로 파견되어 활동하였다.
2015년 재보궐선거에서 서울 관악을 지역구에 출마한 오신환 새누리당 후보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1988년 이후 처음으로 관악을 지역구에서 새누리당(구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는 데 기여하였다.
2015년 초 이완구 국무총리의 사임 후 공석이 된 국무총리 자리에 후보자로 거론되었으나, 박근혜 대통령이 '큰일하실 분에게는 이 자리가 맞지 않을 것' 이라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고 한다. 그후 오세훈 본인은 '국무총리 후보에 오른 것만 해도 영광' 이라며 넘어갔다.
2015년 5월과 6월에 시행된 여론조사에는 차기 대권주자 7위와 5위권에 들기도 하였다. 2015년 9월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 6%로 5위를 기록했으며, 특히 20대에서는 김무성을 제치고 새누리당 계열 후보 중 1위를 기록했다.
2015년 말에는 친민주당 성향이 매우 강한 광주지역 방송(KBC)에서 시상하는 '목민자치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20대 총선 출마와 낙선
당의 이른바 '험지' 출마 요청[]에도 불구하고, 2016년 1월 17일 종로구 출마를 선언했다. 해당 기사 참조 종로구가 노무현, 이명박 등 과거 대통령들의 지역구였기 때문에, 종로구 출마는 사실상 대권을 노린 포석. 당내 경선에서 '지역기반 탄탄'을 내세운 박진 전 의원과 치열한 경쟁을 펼친 끝에 승리하여 새누리당 후보로 종로구에 출마하였다.
3월 24일 KBS 여론조사에서 오세훈 45.8%, 더불어민주당 정세균 28.5%로 조사되었다. 열흘이 지난 4월 4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는 약 41%로 약 39%인 정세균 후보와 격차가 크게 줄어들어 치열한 접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같은 기관에서 조사한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순위는 처음으로 김무성 대표를 앞지른, 여당 내 1위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후 4월 7일 발표된[21] KBS 여론조사에서는 정세균 후보와의 격차가 채 1%도 안되는 초박빙의 접전으로 나타났다. 불과 2주일 전, 같은 조사기관에서 집계한 여론조사에서 17% 이상 여유있게 앞섰던 것에 비해 격차가 순식간에 좁혀진 것.
4월 13일 출구조사 결과 42.4%로 51%인 정세균 후보에 밀리는 것으로 나타났고, 결국 개표결과 42.4%에도 못 미치는 39.7%를 획득하면서 낙선했다.[] 실제로 새누리당 지지자 상당수가 정권심판론에 맞물려 이탈하기도 했고, 정세균 후보의 노련한 밑바닥 선거전략이 통한 점이 컸다. 거기에 자기 선거구 유세는 안하고 다른 선거구 가서 지원유세하는 바람에 미운 털이 박혀서 밀착형 유세를 하던 정세균에게 바닥 민심이 기운 것도 크다.[] 당내 경선 잡음의 영향인지 박진 전 의원의 조직이 오세훈 후보를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다는 말도 돌고 있다. 서울시장직 중도사퇴로 인한 비호감이 낙선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정세균은 떡하니 국회의장이 되었다.
험지출마론을 거부한 3명[25] 가운데서 서울특별시 종로의 오세훈과 대구 수성갑의 김문수가 낙선하고, 부산광역시 영도에서 당선된 김무성은(이쪽도 자기 본진임을 감안하면 55대40 정도의 싸움이었으니 고전한 것이다)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게 되면서 정말로 험지를 선택한 것이 맞다는 식의 농담이 돌기도 했다. 3명 모두 대선행보에는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점에서는 공통적 반응. 텃밭인 대구 수성갑에서 25%p차이로 패배한 김문수는 정계 은퇴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낙선 이후에도 새누리당 내의 대권주자 인물난으로 인하여 여전히 대권주자 지지도 조사 대상에 포함되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그래도 오세훈의 대권후보 지지도가 김무성보다 높은 여권 내 1위라는 거다.
새누리당 혁신위원장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하였다. 그 후 2016년 8월 9일에 진행되는 새누리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비박계 단일 후보 주호영 의원을 공개 지지하였는데, 친박계 이정현이 주호영 의원을 큰 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면서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비박’ 김무성·오세훈 대권가도 타격 전당대회 직전에 이정현 대표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정현, 오세훈의 비박계 지지에 발끈…"매우 유감"
19대 대선과 그이후
2016년 9월 21일 TV조선 강적들에 출연하여 19대 대선 출마를 시사하고, 몇 가지 논란에 대하여 반박했다. 먼저 서울시장 재직 시절 서울시 채무 규모가 부각된 것에 대해 뉴타운 사업으로 인한 투자적 성격의 채무가 많아 뉴타운 사업이 완료되면 자연스럽게 회수될 채무였다고 반박했다. 또한 세빛섬의 별명이 '세빚둥둥섬'이라는 점에도 억울한 부분이 있다며, 공기업인 서울주택도시공사가 일부 투자를 했을 뿐 서울시 예산은 한 푼도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부당한 비판이라고 언급했다.
11월 15일 비박계의 임시 지도부인 비상시국위원회 12인 공동대표 중 한 명으로 선출되었다. 이에 분노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다 합쳐서 지지율 10%도 안 되는 대선 주자들이 새누리당의 얼굴에 먹칠한다"고 하며 이를 비판하였다.#
2017년 1월 5일 새누리당에 탈당계를 제출했으나, 개혁보수신당 창당 발기인 대회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이에 대하여, 당 대표 급의 마땅한 당직이 주어지지 않으면 원내 인사인 유승민 의원이나 광역단체장인 남경필·원희룡 지사 등과의 대권 경쟁에서 뒤쳐질 수 있다는 우려로 신당 참여 여부를 주저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2017년 1월 13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같은 해 1월 21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 선거대책위원장으로의 영입 제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일단은 1월 23일 바른정당의 최고위원으로 선임되었다. 반기문 캠프와 바른정당 사이에서 계속 저울질을 하는 듯 하다.# 반기문 캠프 합류설이 계속되자, 보다못한 이혜훈 의원이 한 마디 했다.# 그런데 2월 1일 반기문이 전격적으로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아무 실익 없이 바른정당 내에서의 입지만 스스로 좁힌 꼴이 되어버렸다.
그 후 1년 정도 조용히 지내다가, 2018년 2월 5일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의 통합을 앞두고 바른정당을 탈당하였다. 자유한국당에 입당하지는 않고 당분간 정치와 거리를 두었다. 도중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하였으나, 출마하지 않았다.
21대 총선출마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두고 광진구 을에 공천을 받아 출마하게 되었다. 일단 이 지역구 의원인 추미애는 법무부 장관을 맡으면서 불출마가 확정된 상황.
2020년 3월 4일 아파트 경비원과 청소원들에게 설·추석마다 5만∼10만원씩 총 120만원을 제공한 혐의로 고발되었다.# 이에 대해 "법률가인 저로서는 매년 명절마다 행해 오던 격려금 지급이 사회상규에 위배되는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았고(형법20조 정당행위), 특히 입주민이 내는 관리비로 그분들께 월급이 지급되므로 명절 보너스는 당연히 드릴 수 있는 일이라 여겨왔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서울권역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대진연 측의 선거 방해를 겪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고민정과 맞대결한 결과 47.8% : 50.4%, 2.6%pt 차이로 석패했다.# 이로써 2011년 서울시장 사퇴 이후 10년 이상 원외로 남게 되었다.
여기서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하는데, 일단 오세훈이 낙선한 이유로는 광진구 을이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전라북도 출신이 많은 인구 구조로 인해서 미래통합당 입장에서는 험지[]이기 때문에 이 험지에서 민주당 후보를 상대로 2.5%p 차이로 석패한 것은 상당히 선전한 것이며 오세훈이었기 때문에 이 정도 결과가 나왔다고 분석되는 긍정적 평가가 많다. 실제 비례대표 개표 결과 광진 을의 미래한국당 득표율은 31.61%, 범야당은 40.25%의 득표율을 기록했는데, 오세훈은 47.82%를 받았다는 점에서 보수정당의 험지에서 본인의 개인기로 접전 상황까지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 중이다.#
하지만 반대로 지역구 성향을 감안하더라도 어찌됐든 상대는 '광진의 여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추미애가 아니라 이제 막 정치에 입문한 정치 신인인 고민정이었고, 반면 오세훈은 대권주자로도 입에 오르내리는 정치인이었기에 정치신인을 상대로 패배한 것은 분명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라는 부정적 평가도 있다. 애시당초 오세훈이 종로와 광진을에 나간 것은 전 서울시장이란 이름값을 이용해 민주당의 거두인 정세균과 추미애의 텃밭에서 상대를 화려하게 잡아먹고 정치적 재기를 해야 하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고, 당 또한 수도권의 확보와 점차 장악력을 상실해갔던 황교안의 자리를 대체하기 위해 오세훈을 유력주자로 키워야 했던 목표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오세훈으로서는 단순히 선전했다는 것만으로는 당 내외에서 재기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참고로 미래통합당은 선거전 초반만 해도 미래통합당이 지역구 120석 정도에 오세훈은 접전 우위로 점쳤다고 한다. 그러나 차명진, 김대호 등의 잇다른 막말 논란으로 인해 접전 우위는 접전으로, 접전은 접전 열세로 가는 상황이 일어났으며 여의도연구원의 마지막 자체 여론조사에선 지역구 70~90석 정도로 예측되었다고 한다. 두 후보의 막말 논란으로 무려 40~50석이 날아간것이다
낙선 이후
본인의 블로그에 밝힌 낙선인사에서는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정진하겠다고 말했다. 중앙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이 가장 견제한 미래통합당 후보가 바로 자신이었다면서 은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총선 직후 실시된 4월 말 여론조사에서 오세훈이 범야권 대선주자 중 홍준표, 안철수에 이어 선호도 3위를 차지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에서 압도적으로 선두를 달리고 있던 황교안의 선호도가 폭락한 것으로 보아 다른 주자들이 조금씩 나눠 가진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없음'이 무려 45.9%이다.
7월10일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망 소식에 차기 서울시장으로 거론되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 관련주가 급등했다.# 그러나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서울시장을 이미 두 번씩이나 하신 분이 큰 관심이 있겠나. (2011년 무상급식 주민투표 때) 자기 스스로 사표를 내고 나온 사람"라고 언급했다.#
이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불출마하고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올인하겠다 선언하였지만 향후 지지율에 따라 선택이 달라질 수도 있다.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다른 후보군은 모두 패배하는 것으로 나오나 오세훈 전 시장이 유일하게 이기는 필승카드가 된다면 차차기 대선을 노리고 서울시장 3선에 도전할 수도 있다.
10월 22일 공식적으로 대선 출마를 천명했다. 그러면서 야당의 대선후보들에게 경쟁도 경쟁이지만 잠룡들이 힘을 합치는 5인 원탁회의체를 열고 대권후보자들이 정기적으로 회동해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안에 대하여 정리된 입장을 밝힐 판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서울시정 운영 경험과 낮은 비호감도를 장점으로 내세웠으며, 주요 정책으론 서민 감세와 사교육 퇴치, 부동산 안정, 4대 보험 동결 등을 내세웠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시간이 흐르며 야당에서 필승 카드가 보이지 않자 소위 대선주자급 인물이 보궐선거에 출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당 안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사실 지속적으로 대선 출마 의지를 천명하던 오세훈이었지만 대권주자로서의 존재감과 지지율이 미미한 반면, 서울시장 범야권 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는 17.6% 지지율로 15.9%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앞질러 1위를 기록하기도 하거나[] 예전 서울시장 중도사퇴로 인한 이미지 악화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지역 기반은 확실한 것으로 보여져 차차기 대선을 노리고 서울시장에 도전할 가능성이 어느정도 생긴 상황이었다. 또 박시영 정치평론가 등이 오세훈의 서울시장 등판 가능성을 높게 보기도 하였다. 게다가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 최고위원도 오 전 시장이 측근들이 서울시장 관련 자료를 가져오면 거부하고 돌려보냈으나 최근에는 서울시장 관련 자료를 받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유승민은 대구 지역구 국회의원이라 서울과 접점이 적고 안철수는 당 밖 인물인데다가 대권 직행 의지를 밝히고 있어 결국 여론조사에서도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당 내 차출에 부담이 적은 오세훈 카드가 서울시장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되는 상황이다.
이후 출마가능성이 낮아보였던 안철수가 서울특별시장 보궐선거에 뛰어들며 오 전 시장의 서울시장 재출마 가능성은 낮아지게 되었다는 평가가 있었으나, 오히려 안철수의 출마 선언 이후 국민의힘에서도 안철수에 대항할 카드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는 계기가 되었고 오세훈에 대한 출마 압박은 더욱 거세지게 되었다. 이후로도 오세훈의 주변에선 오세훈이 서울시장 재보궐선거로 눈을 돌렸다는 등의 전언들이 나오거나 국민의힘의 서울시장 후보군을 만나고 # 서울 당협위원장들을 두루두루 만나는 등 갈수록 서울시장 출마를 위한 행보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후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이 직접 서울시장 출마를 고민하고 있다는 발언을 하는 등 갈수록 서울시장 출마로 쏠리는 모양새가 나타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서울시장 후보군인 나경원 전 의원과 만나 경선 후보 단일화를 논의하는 등 사실상 재보궐선거 출마를 결심했다는 평가가 많다.#
결국 1월 7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미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했던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계속해서 단일화 방식의 경선 방식을 고집할 경우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겠다는 선언을 하였다. 단순한 출마 선언이 아니라 조건부 출마 선언이라는점이 특이한데 현재 안철수가 단일화 방식의 경선을 포기하고 국민의힘에 입당 혹은 합당을 하는 것에 극심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어 조건의 지켜질 가능성이 낮은 것을 이용, 사실상 출마 명분을 만들기 위한 조건이라는 평가가 있다. 혹은 오세훈이 당의 요청으로 마지못해 나가는 선거라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예측이 있다. 출마 선언 이후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만났는데 "'안 대표가 들어오면 불출마'로 표현하거나 '안 대표가 들어오지 않으면 출마'로 요약이 될 텐데 가급적 '들어오지 않으면 출마' 쪽으로 전달이 됐으면 좋겠다. 그렇게 정리해달라"라고 밝히며 출마쪽에 더 큰 마음이 있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후에 자꾸만 안철수와의 단일화를 독단적으로 진행하려는 의사를 보이자,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무슨 권한으로 그러느냐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당의 요청이라기보다는, 명분을 만들기 위함이었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이 조건부 출마 선언은 평이 좋지 않았다.
2021년 1월 7일, 안철수가 사실상 오세훈의 합당 및 입당 제안을 거절하자 서울 강북구 북서울꿈의숲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조건부를 떼고 공식적으로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하였다. 이 날 출마 선언에선 오세훈은 과거 무상급식 건으로 인해 서울시장직을 사퇴하였던 것에 대한 반성하며 사과했다. 또한 오세훈은 이 날 이번에 1년 보선 시장으로 당선되면 앞으로 내놓게 될 공약은 전부 5년짜리라며 "그 5년 동안은 정말 대통령직 도전에 대한 생각은 머릿속에서 하얗게 지워버리겠다."고 당선될 경우 대선에 불출마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만약 오세훈이 서울시장에 당선되는데 성공한다면 적어도 2027년의 제21대 대선에선 국민의힘의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경선에서 떨어지거나 본선에서 낙선하기라도 한다면 수많은 선거에서 패해 내상이 큰 오세훈에게 있어선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
본인의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트위터 계정까지 만들었다. 본인 계정에서 '안심소득'을 홍보하고 있다. 안심소득은 소득 하위 50% 가구에게 중위소득에서 가구소득을 뺀 값의 절반을 기존 복지 재원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이를 기본소득과 비교하며 투표까지 올렸지만 기본소득 득표율이 약 90%, 본인의 안심소득 득표율이 약 10%가 나왔다. 또 한 트위터 유저의 바람대로 동명이인 오세훈이 소속된 보이그룹 EXO의 으르렁 파트를 추기도 했다.
국민의힘 경선 과정에서 속칭 'V 논란'이 있었는데, 이를 오히려 인지도 상승의 기회로 삼아 V가 붙은 각종 정책 등을 홍보하고 있다. 특히 V-서울이라는 이름으로 시티즈 스카이라인을 활용한 정책 홍보를 선보였는데 반응이 좋았다. 해당 게임에서 서울을 제작하여 공약 사업을 가시화한 것인데 비디오 게임을 최초로 활용한 선거운동이라는 점이 공약을 알아보기도 쉽고 상당히 참신했던 듯. 여담으로 여기서 오세훈 본인도 V는 V.I.P가 아니고 Virtual이라며 셀프디스를 한다.
3월 4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최종 득표율 41.64%로 36.31%를 얻은 나경원 전 의원을 제치고 당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최종 후보로 선출되었다. 시장 출마 선언 자체가 승부수였으나 경선레이스 초반에는 기대와 달리 고전하는 모양새였고 결국 승부수가 또다시 실패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지만, 최종 후보 자리에 오르는데 성공하며 승부수는 성공 했다고 평가 받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안철수와의 야권 단일화인데 이 또한 양쪽 모두 대선주자로서의 욕심이 있는데다[] 오세훈이 선거 초반 분위기와 달리 박영선과 1대1 경쟁을 했을 때 승산이 있다는 여론조사들이 속속 나오면서 점점 알 수 없게 되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3자 구도에서도 오세훈이 1위를 탈환한 조사까지 나오기도 했다.# 게다가 이 둘은 단일화법으로 인한 위반사항도 일어나지 않아서 단일화를 깨도 문제가 없기도 하다
사건사고
2020년 4월 9일 서울 광진구에서 총선 유세 중이던 미래통합당 서울 광진을 오세훈 후보를 향해 한 남성이 흉기를 들고 접근하다가 유세장 인근에 있던 경찰들이 이 남성을 제압한 후 체포했다. 속보)오세훈 유세현장에 흉기 든 남성 난입
현재 경찰에서 이 남성의 범행동기와 목적에 대해 조사중이며, 해당 남성은 경찰 조사에서 “야간 근무를 하고 귀가해 자는데, 유세 확성기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홧김에 달려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 정신병력이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세훈 후보측은 불미스러운 상황이 생겼지만 현장의 조치가 잘돼 선거운동을 바로 재개했다고 밝혔다.
또한 선거운동 과정에서 종북 단체인 대진연에게 지속적인 방해를 받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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