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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석 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1. 7. 14.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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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전 축구선수로 포지션은 골키퍼

 

선수시절

2003년 FIFA U-17 세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각광받았던 차기석은 2005년 U-20 월드컵에서 맹활약하면서 U-20 월드컵을 관전하러 온 거스 히딩크 감독의 시선을 잡았고 대회가 끝난 뒤 히딩크 감독이 이끌고 있던 PSV 에인트호벤 훈련에 합류, 열흘에 걸쳐 테스트를 받기도 했다.

2005년 전남 드래곤즈에 입단하였으나 이 해에 만성 신부전증으로 인해 아버지의 한 쪽 신장을 받는 신장이식수술을 받았다.

다음 해 전남드래곤즈 2군 경기에 돌아왔으나 병이 재발하면서 팀에서 방출당하였다.

그는 오랜 시간 축구를 하지 못했지만 작은 아버지의 신장을 이식받은 후 가족들의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2009년 K3리그의 경주시민축구단에 입단하였지만, 오래 있지 못했으며 자신을 원하는 부천 FC 1995에 입단하였고, 99번을 달았다.

2010년 7월 17일 춘천시민축구단과의 경기에서 후반 90분 직접 득점에 성공하기도 했다

2010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며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근황

은퇴 후 연세 대학교의 코치로 부임하였고, 2019년에는 친정팀 부천 FC 1995의 유소년 골키퍼 코치로 부임하였다.

하지만 신장 이식 수술을 두차례나 더 받았다고 한다.#

2020년 3월, 인조 혈관 삽입 수술을 한 뒤 사지의 통증이 심해졌고, 5월 초 삽입한 인조 혈관은 감염이 된 상태여서 제거 수술을 했다고 한다. 2020년 6월 중순 이영미 기자가 그의 어머니와 인터뷰 했는데 인터뷰에 의하면 2019년 여름부터 3번째 신장 이식 수술 거부 반응으로 고통스러워 하다 2020년 2월달이 돼서야 부모님에게 연락했다고 한다. #

이후에는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 있다가 신부전증과 버거씨병, 다발성근염이 겹쳤다고 한다. 양다리의 괴사가 점점 심해지면서 양쪽 다리를 모두 절단해야 하는 상황이고, 차기석 본인 스스로도 하루 빨리 절단해달라고 할 정도로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축구선수에게 제일 중요한 게 다리인데, 그 다리를 축구선수 본인이 절단해달라고 할 정도면 어느 정도의 상황인지 상상이 될 것이다.

이를 포포투가 보도하면서 '#힘내라차기석" 해시태그를 달았으며, 이에 여러 네티즌과 축구선수들이 SNS에 해당 해시태그를 게시하며 응원을 메시지를 보냈으며, 대한축구협회 축구사랑나눔재단은 이영표 재단 이사가 개인적으로 기부한 1,000만원을 더해 총 3,000만원의 후원금을 전달했다고 하며, 부천 구단 역시 성금을 전달했다.# 유튜버로 활동하는 김병지 역시 본인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후 부천 FC 1995 홈경기에서는 차기석을 응원하는 내용의 걸개가 내걸렸으며, 코로나19로 인해 무관중으로 치뤄진 2020년 6월 28일 서울 이랜드의 경기에서 부천의 바비오가 차기석의 쾌유를 비는 골 세리머니를 펼치기도 하였다.

2020년 8월 17일, KBS와 영상통화를 했다. 순수하게 축구를 했던 초등학생 시절이 가장 그리우며, 현재는 부모님과 삼겹살을 함께 구워 먹는게 가장 큰 소망이라고 한다. 기사

같은해 11월 4일, 차기석이 정말 기적적이게도 건강을 되찾아 병상에서 일어나 입원이 아닌 통원 치료만 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현재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집에서 경희의료원으로 통원 치료를 하고 있고, 아직은 휠체어 신세이나 이후 축구만 못할뿐이지 정상적인 일상 생활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의료진의 진단이라고 한다.

11월 말 집으로 돌아와 재활을 거치는 중 스포츠니어스와 인터뷰를 가졌다. # 안타깝게도 양쪽 다리는 괴사로 인해 무릎 아래로 절단을 해야 했고, 정말 간신히 목숨만 건진 수준이라고. 혈관의 상태가 좋지 않아 심장에 스텐트 시술까지 해야 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에게 받은 빚을 갚을 때까진 떠날 수 없다며 살아갈 의지를 다지고 있다.

 

사망

2021년 7월 13일 축구계 관계자는 차기석이 13일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

차기석의 빈소는 경북 포항시 세명기독병원에 차려질 예정이다.

당시 한국 축구는 유상철 감독과 김희호 코치의 별세로 인한 슬픔과 충격이 채 가기도 전에 또다른 축구인 차기석의 비보까지 더해진 상황이었고, 이에 대해 많은 축구 팬들이 비통함과 애석함을 감추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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