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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학교 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1. 9. 4.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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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인하로 100 (학익동)에 위치하고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이다. 인하대학교 정문에 수인·분당선 인하대역이 있다.

공대의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학교이지만 인문계열 특성화 학과도 공대에 못지 않은 편이다. 또한 인천의 중등교원 대다수가 인하대 출신일 정도로 인천 교육에 대한 사범대의 영향력도 있는 편.

같은 재단 산하의 인하공업전문대학도 전문대 중에서는 인지도가 높기 때문에 인하공전이 인하대학교가 되었다고 아는 잘못된 경우가 있는데 인하대는 1954년 처음부터 4년제 인하공과대학으로 개교하여 이후 종합대학교로 승격되었고 인하공전은 1958년에 인하공과대학 부설 중앙종합직업학교로 만들어졌다가 독립한 것이 오늘날의 2/3년제 전문대인 인하공전이다. 그렇기에 같은 재단의 소유라는 점을 제외하면 인하대와 인하공전은 무관하다.

2020년 9월에는 송도 항공우주캠퍼스가 개교했다.

90년대 후반 벤처 돌풍이 휩쓸 때 '벤처가 강한 대학'이라는 슬로건으로 주요 동문들을 내세워 홍보하여 많은 효과를 얻었다. 지금도 '해커톤대회', '창업경진대회', '스타트업 부스터'[2] 같은 행사나 창업 관련수업을 수시로 개최하고 있기 때문에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라면 참여해 볼 만하다. 인하대는 벤처창업가가 서울대, 한양대에 이어 3번째로 많은 대학이기도 하다.

한자어는 仁荷大學校, 영문명은 INHA UNIVERSITY, 한동안 총학생회의 학생운동 정파에 따라 애국인하 혹은 청년인하라는 학생회 별칭이 있었다

 

학교 역사

설립부터 하와이 교포들과 깊은 관련이 있는 학교로 이름인 "인하"도 인천과 하와이의 앞글자를 따와 지어진 것이다. 인하대학교의 전신인 인하공과대학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공업 입국의 초석이 될 지도자 양성을 위하여 미국의 MIT와 같은 최고의 대학을 한국에 세우겠다는 뜻으로 설립이 추진되었다.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하와이 동포들의 성금과 하와이 한인 기독교학교 매각대금 등 15만 달러를 근본으로하여 정부 출연금 6,000만환, 민간 기부금 2,774만 3,249환, 인천시의 토지 기부 등으로 1954년에 인하공과대학을 개교했고 초대 학장에 한국인 최초의 이학박사인 이원철 박사가 취임하였다.[] 당시 인하대의 설립자금이 되었던 하와이 한인들의 성금 15만 달러는 원래 하와이 교민들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며 번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자금이었으며 광복을 맞은 뒤 고국에 공과대학이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피땀어린 자금을 기부한 것이었다.[4] 그렇게 민족대학으로 6개 학과, 180명의 신입생으로 시작한 인하대는 폐허가 된 조국 재건에 앞장서며 조국 근대화와 역사를 함께하며 현재에 이르렀다.

중간에 개교하고 몇 년 지나지 않았을 때 학교가 문을 닫게될 위기가 있었는데 이것이 1958년에 일어난 학제개편 파동이다. 당시 한국은 전후 복구 과정에서 당장의 전선, 파이프, 철공, 목공 등을 만드는 단순 기술인력들이 대거 필요했는데 이런 것은 고등교육이나 연구가 필요한 일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정부는 O.E.C[]의 원조로 중앙종합직업학교를 만들려고 했고 더 나아가 아예 인하공과대학을 폐쇄하고 중앙종합직업학교를 신설하려 했다. 당시 인하공과대학은 이미 1회 졸업생이 배출되고 대학원까지 설립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재학생들은 격렬하게 반대했고 학교 내에 부설로서 직업학교를 개설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으나 인하공과대학의 폐쇄를 전제로 한 직업학교의 설립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당시 조선일보는 "기술학교를 세우려고 대학을 폐지하는 것도 문화향상인가"라고 비판했고 경향신문도 5월 20일 사설에서 "O.E.C의 원조가 물론 우리의 실정으로서는 매우 필요하다 하겠으나 인하공과대학과 직업학교를 양존시키기 위해서라면 몰라도 교각살우의 졸책으로 나오는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인천시 의회와 경기도 의회도 개편안 철회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가결하고 교수단에서도 반대 성명서를 내자 이사회는 기존 개편안을 철회하고 인하공과대학은 그대로 존속시키면서 부설로 2년제 직업학교를 개설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1954년 개교 당시 학과는 기계공학과, 화학공학과, 전기공학과, 금속공학과, 광산공학과, 조선공학과 이렇게 6개였다. 이후 1958년에 병기공학과와 원자력공학과를 추가로 설치하였는데 국내 대학에선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전공들이었고 이 전공들이 신설되자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백선엽 장군은 학교로 공문을 보내 병기공학과와 원자력공학과 설치에 적극적인 지지와 축하를 보냈다. 1959년에는 토목공학과와 건축공학과, 공업경영학과를 신설하였다.

그러던 중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났고 그 여파로 혼란스런 학내 분규를 거쳐 재단 이사들이 모두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 후 교수회, 후원회, 동창회 인물들로 구성된 과도 이사회가 만들어졌고 당시 재정적 기반이 안정적이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과도 이사회는 새 재단 영입을 위해 물색에 나섰으나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이 과도 이사회 이후 1961년 5월 2일에 임시 이사회가 새로 구성되었다. 이후 7년간 임시이사장 교체만 반복하다가 1968년에 한진상사(현 한진그룹) 조중훈 회장이 박정희 대통령의 인수 권유를 받아들이면서 학교는 새 재단을 맞이하게 되었다.

종합대학으로의 발전 필요성을 느낀 학교는 '인하대학교 종합발전계획'을 수립하고 1971년에 종합대학으로 승격을 인가받아 현재의 인하대학교가 되었다. 1972년에 이과대학과 경영대학을 신설하고 1973년에는 사범대학도 신설하였다. 이후에도 70년대 이재철 총장 시절 동안 행정학과와 외교학과, 중문학과, 일문학과 등 여러 학과들을 연이어 신설하면서 교수들도 대폭 충원하였고 정원도 크게 늘었고 이에 따른 공간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건물들과 경기장을 신축하였다.

1970년대가 양적 성장의 시간이었다면 박태원 총장이 재임하던 1980년대는 내실화의 시기였다. 교수와 전임교원들을 계속하여 충원하고 연구기자재와 강의실, 연구실을 확충하는 한편, 다수의 연구소를 추가로 신설하여 연구소 기능을 강화시켰다. 1984년에는 개교 30주년을 기념하여 노벨화학상 수상자 초청강연회를 열기도 했다. 박태원 총장은 의과대학 설립도 추진하여 문교부의 인가를 받는데 성공하여 1986년에 의과대학 의학과가 신설되었고 1996년에는 인하대병원도 문을 열었다. 홍승용 총장 시절에는 아태물류학부를 신설하고 송도 캠퍼스 이전을 추진했으며 로스쿨을 유치(2008년)하였다. 2020년에는 송도에 항공우주캠퍼스가 완공되었고, 10년 이상 진행이 지연되어 왔던 송도 캠퍼스도 이번에 개설이 확정되어 1,2년 안에 착공될 것으로 보인다.

 

학교 특징과 학풍

인하대는 실용주의적이고 개척정신을 중시하는 학풍을 가졌다. 1960년대부터 자체 기술로 로켓을 쏘아올렸으며 한국 벤처기업 1호인 비트컴퓨터를 시작으로 국내에서 내로라 하는 벤처기업가들을 수없이 배출해왔다. 학사과정도 전반적으로 굉장히 유연하여 전과도 활발하고 부전공, 복수전공도 유연하기 때문에 입학 후에도 본인의 전공이 맞지 않는 것 같으면 본인의 적성을 찾아 전과를 하여 진로를 수정하기에도 수월하고, 부전공이나 복수전공을 통하여 여러 분야를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에게도 매우 좋은 환경이다.

인하대는 우리나라의 로켓 개발사에 큰 역할을 하였는데, 한국의 로켓 개발은 초기엔 정부 주도로 이루어지다가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 등의 정치 격변을 겪으며 인하대(당시 인하공과대학)를 중심으로한 민간 연구로 넘어갔으며 당시 인하대는 우리나라 로켓 개발의 선두 대학이었다.[] 1960년에 자체 기술 로켓인 IITO-1A와 IITO-2A를 발사했고 1964년엔 IITA-7CR을, 1968년에는 IITA-X21을, 1988년에는 IS-001,IS-002를 발사했다. 1964년에 개교 10주년으로 발사했던 IITA-7CR은 캠퍼스에 그 모형이 지금도 전시되어 있다. 현재도 활동 중인 로켓연구 동아리인 인하로케트연구회는 한국 최초의 대학생 로켓동아리이기도 하다. 이러한 특징과 능력은 현재에도 이어져 2018년에는 NASA와 공동연구를 위한 우주기술계약을 아시아 대학 최초로 맺어 NASA의 심우주 탐사 프로젝트인 헬리오스 프로젝트에 동참한다.

2018년 기준으로 코스닥 CEO 배출 10위, 500대 기업 CEO 배출은 8위에 올랐고 #, 30대 대기업 임원들의 출신대학 조사에서는 9위에 오르는 등# 기업 CEO들과 대기업 임원들을 많이 배출했다.

컴퓨터공학과는 정보보호분야에서 강세를 보이며 세계적인 해커인 박찬암(08학번), 이정훈(13학번)[12]이 이 학교 출신이다.

의대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도 보유하고 있다.

문과에서 가장 인기있는 학부는 아태물류학부로, 학교에서 간판 학부로 키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04년 처음 생겼고 특별전형이 생긴 2007년엔 한진그룹 입사시 과장급으로 무조건 특채라는 떡밥이 돌아 아주 높은 입결을 보이던 때도 있었다.[13] 그 외에도 CJ 글로벌트랙 이수를 통해 CJ 입사 역시 가능하다. 사실 아태물류학부 학생들은 한진그룹 계열은 페이가 짜서 최후의 보루격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고 다른 대기업이나 대학원, 해외 취업 등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학부 취업률은 2020년 기준 78.3%이다.

2014년도부터 경영학과도 비룡장학금(4년 전액 장학금) 지급 확대, 전공 트랙 제도 신설, 대한민국 공인회계사반 설치 등으로 반전을 꾀하고 있다.

해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로부터 받아내는 재정지원 수혜액도 컸던 대학 중 하나로 2016년에는 1,410억, 2017년에는 1,260억을 받는 등(종합대학 중 각각 5위와 7위에 해당 #) 매년 재정지원 수혜액 크기에서 상위권에 꼽혔던 대학이었으나 2021년에는 대학 기본역량진단 가결과에서 일반재정지원 미선정대학으로 선정되었고, 결과가 뒤집히지 않으면 3년 간 일반재정지원 수혜를 받지 못하게 된다

 

학교 성과


시작을 공과대학으로 개교한 만큼 전통적으로 이공계가 매우 강하다. 인문계의 경우 아태물류, 국제통상, 글로벌금융 등의 전공이 두각을 보인다. 이는 높은 아웃풋과 취업률로도 증명이 된다. 기술고시의 경우에도 상당히 강해서 합격자를 꾸준히 배출하고 있으며 2013 ~ 2018년 최근 6년간 기술고시 대학별 합격자를 봐도 인하대가 14명으로 전국 8위[14]에 랭크되어 있다.

이외에도 과거 기계공학부(후에 항공조선산업공학부, 일명 항조산으로 분리되었다) 내에 존재했던 항공우주공학과, 조선해양공학과, 산업경영공학과가 강세를 보이고 있고, 신소재공학과 또한 꾸준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인하대 경영대학은 2014년에 AACSB 인증을 취득했다.[] 2019년 현재 AACSB 인증을 취득한 우리나라의 대학은 인하대를 포함하여 총 18개의 대학교 뿐이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는 비상경 문과 중 상당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다만 커리큘럼이 광고홍보쪽이 더 발달되어 있다는 말이 많다.

또한 사범대학도 강하여 인천지역 교육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학원가에서도 사범대의 영향력이 막강한 학교로 꼽힌다. 2015년도 중등교원 임용시험에서 인하대는 109명의 합격자를 배출하였고 특히 국어, 영어, 수학, 사회, 체육 등의 주요과목에서 51명을 모집한 인천교육청의 경우 27명의 합격자가 인하대학교 출신이다.

NASA의 아시아 최초 연구소가 한국에 생기는데 인하대가 공동연구 파트너로 선정되어 NASA와 공동연구를 위한 우주기술계약을 맺은 아시아 최초의 대학이 되었다. 이번 합의에 따라 NASA 랭글리 연구소가 추진중인 심우주 탐험을 위한 발사체 개발 프로젝트인 헬리오스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한다. 이를 위해 송도에 항공우주캠퍼스를 건설 중이며 인하대와 NASA 랭글리연구소가 참여하는 인하 IST-NASA 심우주 탐사 공동연구센터가 세워질 예정이다. 관련 학과들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어서 NASA 석학들이 참여한 국제우주과학기술 심포지엄을 2017년 11월에 인하대에서 열었으며 인하대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퍼블릭데이도 개최했다. 앞으로 계속 NASA와 인하대에서 번갈아가며 심포지엄을 개최하며, 공동연구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NASA 과학자들이 인하대 대학원 강의도 하고 대학원생들이 NASA에 직접 가서 수업을 받거나 연구에 참여하는 등 교육적인 부분에서도 많은 교류가 있을 것이다

 

학사제도

인하대의 학사제도는 상당히 자유로운 편이다. 전과도 매우 활발하고, 채플 등의 복잡한 것도 없고, 복수전공 및 부전공도 유연한 편이다.[] 유사계열 뿐만 아니라 문이과 간의 전과도 많고 게다가 2 ~ 4학년 모두 전과가 가능하다.[] 정원이 생기면 간호학과, 사범대 전과도 가능하며 심지어 의대 전과도 가능하다.농담삼아 인하대의 1학년은 모두가 자유전공학부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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