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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2. 1. 26.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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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코미디언 출신 방송인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연예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현역 최고령 연예인으로 대한민국 방송계 역사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젊은 세대에게도 원조 국민 MC로 불릴 정도로 인지도가 있으며, 방송계의 모든 사람들이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붙이는게 너무나 당연한 일로, 현재 남아 있는 방송인 가운데 송해를 편하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나마 송해 다음으로 방송계 큰어른인 이순재가 형님이라고 부를 정도. 이순재보다도 7살이나 위인데다 데뷔도 1년 빠르기 때문에 역시 그에게도 선배인 것은 마찬가지.

본업은 코미디언으로 유머 1번지와 코미디 하이웨이[] 등에 계속 출연했던 과거가 있으며 현재는 주로 MC로 활약하고 있다.

그의 삶 자체는 살아있는 한국 근현대사이기 때문에, 송해 관련 인터뷰나 많은 프로그램에서도 다뤄졌는데, 1927년 4월 27일 생[으로 본명은 송복희. 일제강점기에 태어났기에 창씨개명을 했는데,[] 그것도 福복 자라고 한다.

고향은 황해도 재령군이며, 어릴 적부터 끼 많은 개구쟁이로 동네에서 꽤 유명했다고. 아버지, 어머니, 형, 여동생이 있었다고 한다. 형은 자신이 해주예술학교에 입학할 즈음에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갈 길을 가겠다고 집을 나갔다고 한다.

1949년 황해도 해주예술전문학교[]에 만 22세 나이로 입학해서 성악을 공부한 바 있었다. 이는 그가 월남 후 남한에서 전공을 살려 방송인의 삶을 산 계기가 아닐까 싶다.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본래는 '창공악극단'이란 이름의 순회 악단에서 가수를 했는데, 악단 공연의 특성상 진행을 하면서 입담을 살려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MC 경험을 쌓게 되었다고 한다.

다만, 학업은 오래가질 못하고, 이듬해 6.25 전쟁이 터지자 초기에는 고향에 머물렸는데, 당시 구월산 일대에 활동하던 공산당 유격대의 모병을 피하려고 인근 마을에 숨었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는데, 1.4 후퇴가 벌어지던 때에 다시 나가려는데, 당시 어머니가 "얘야, 이번엔 조심해라."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에 "걱정 마세요."라면서 어머니와 여동생을 두고 나왔는데, 그것이 마지막 인사이었다. 바로, 북한 인민군의 진주로 인해 재령에서 해주, 해주에서 연평도로 피란을 떠나 연평도에서 미 군함에 타면서 부산까지 내려왔다. 이 때부터 지금의 이름 즉, 실향민으로 바닷길을 건너오면서 바다 해(海) 자를 예명으로 쓰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피난선이 도착한 부산항에서 그는 앞 사람만 따라다니다가 군에 입대해서 통신병으로 복무하면서 1953년 7월 27일 휴전 메시지를 직접 타전하기도 하였다.[] 그 때 당시 쓰던 모스 부호를 아직까지도 알고 있다. 여담으로 송해가 휴전소식을 "처음 알렸다"는 물증은 없으며 송해 본인이 그렇다고 주장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당시 군대 선임이 혼자였던 그에게 여동생을 소개시켜줬는데, 그녀가 바로 그의 부인인 석옥이 여사였다.[]

군 제대 이후에는 상술했던 '창공악극단'에서 가수로 연예 활동을 시작했으며, TV 방송이 시작한 후에는 여러 방송사를 넘나들면서[] 조연급 코미디언으로 대활약하였는데, 코믹 프로그램을 할 때는 주로 고학력자를 풍자한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다. 포지션은 만자이 용어로 츳코미다.  배삼룡, 구봉서와 같이 출연한 '그 시절 그 쑈'의 영상, 해당 영상은 2002년에 연기하였다. 여러 방송사들 중에서 특히, KBS에서 가장 오래 활동한 듯하다.

과거 동양방송이 매일 아침 AM 라디오 채널을 통해 방영하던 생활정보 프로그램 '가로수를 누비며'[]의 진행을 맡으면서 운전자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특히 이때 운전자들이 교통 통신원을 조직하여 그 제보를 활용한 시스템은 현재 각종 라디오 프로그램이나 각종 교통방송에서도 활용하고 있다. 다만, 후술할 1986년 아들의 오토바이 교통사고 이후 그 충격으로 한동안 모든 방송 활동을 중단하면서 17년 동안 맡아온 진행자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

 

장수 만세

아들을 먼저 보낸 충격을 잊기 위해서 참여한 프로그램이 1988년부터 현재까지 MC로 활약[]하고 있는 전국노래자랑으로 상술했듯 역대 한국의 현역 방송인 역사상 가장 장수하고 있는 최연장자인 인물이며[], 전국노래자랑을 33년 동안 진행하여 국내 단일 프로그램 최장수 진행자를 기록하고 있다. 1994년에 5월에 하차했다가 같은 해 10월 16일에 복귀했다는 점을 감안하여, 전국노래자랑 진행 기간을 이 복귀 시점부터 계산하더라도 이미 25년을 훌쩍 넘겼기에 국내 단일 프로그램 '연속 진행' 최장수 기록까지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지금도 계속 갱신되고 있다.

말 그대로 전국 노래자랑이다보니 괴짜 참가자들도 한두 번씩 출연하기 마련인데, 가장 유명한 사례로 2010년에 온 몸에 벌들을 붙이고 나온 양봉업자[]가 있었다. 이때 송해가 보여준 대처 능력은 관록. 동시에 대인배 인증이라고 할 수 있다. 저 방송 직후에 KBS 시청자 게시판은 송해 선생님을 찬양하는 글과 저런 사람을 왜 내보냈냐는 글이 반반이었다.

특히, 어른들에게 인기가 높으며, 80살이 돼도 90살이 돼도 여전히 "송해 오빠"로 불리는 자타가 인정하는 "일요일의 남자"이면서, 이 외에 앨범도 내고 개인 콘서트를 연 적도 있을 만큼 노래 실력도 수준급이다. 전국 노래자랑에서 초대 가수 오승근의 "내 나이가 어때서" 를 열창하는 송해

이러한 꾸준함은 송해에 대한 후대의 평가도 높였다. 송해와 비슷한 연배에서 송해는 구봉서, 배삼룡, 서영춘, 곽규석 등에 가려진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전국노래자랑에서 사람들과 직접 살을 맞대며 90세를 넘기고 활약하였고, 별다른 잡음도 없이 생활하여서, 이제는 그들에게 가려진 2, 3인자가 아닌 1인자로서 사람들에게 기억되게 되었다.

KBS 대화의 희열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마다 밝히기를 생애 마지막 전국노래자랑을 자신의 고향인 황해도 재령군이나 학업을 했던 해주시에서 하고 싶다고 하였으며, 이젠 고인이 되었을 자신의 어머니를 초상화로 뵈기도 하였다. MBN에서 방영되었던 특집 프로그램인 '송해야 고향 가자'에서, 자신의 고향인 황해도 재령군 쪽으로 가기 위해 남북체육교류협회의 남북 응원단으로 하면 북한으로 가는 게 가능하다고 했지만, 방송 당시(2019년) 또 다시 남북관계가 틀어지면서 남북체육교류협회경기도 9월 말로 연기되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창궐로 방북이 더욱 힘들어지게 되었다.

건강 보조식품 사기 사건

흑역사가 있다면, 1996년 11월 8일 MBC 뉴스데스크의 《카메라 출동》에서 송해가 경로잔치에 출연해 8만 원짜리 건강보조식품을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속여 26만 원에 사도록 부추겼다는 내용의 보도를 했고(카메라 출동 영상[][], #1 관련 연예인들과 함께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은 후 #2 같은 해 12월 7일 불구속 기소되었다. #3 송해보다 선배인 배삼룡, 구봉서 같은 이들도 비슷한 일을 저질렀다. 지난 2003년에 이런 일로 입건 비슷하게 되기도 했다. 이 사건은 MBC에서 보복성으로 보도를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상용 공금횡령 누명 사건 참고. 송해는 이때도 안경을 썼다.

남자 초등학생 성추행 논란

2017년에는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한 남자 초등학생의 성기를 만진 일로 논란이 되었다. 남자 아이가 여자 노래를 잘 부르길래 고추가 달렸나 하고 좀 만져본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품위유지 위반' 권고를 내렸다. 송해의 나이대와 살아온 시대상을 참작해 경고가 아닌 권고를 받은 듯.[]

일단 송해의 연령대를 생각하면 이 행동이 성추행이라는 인식이 전혀 없이 행동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20세기까지만 해도 국내에서는 성기가 컸나 안 컸나 확인한다며 노인들이 남자아이들의 성기를 만지는 일이 흔했고[31], 송해가 어린 시절에는 아예 남자 어린이들은 하반신을 드러내놓고 다니는 것이 일상이었기 때문.

하지만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시대가 변한 만큼, 21세기인 현재에는 명백한 성추행으로 인식될 수 있는 행위이다. 피해자와 피해자 가정이 송해의 나이와 살던 시대를 이해해주었기에 넘어간 것이니, 비판 자체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나이를 고려해서인지 비판은 별로 없었다.

박근혜와의 인연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박근혜 후보에 대해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해 한을 풀려고 살아온 사람"[]이라며 “남자 대통령들만 자꾸 나오니까 서로 싸우고 뒷얘기가 많아서 안되겠다, 여성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고 지지를 선언한 바 있다. # 최태민이 세운 새마음봉사단 활동 중 인연이 있었다. # 근데 정작 여성 대통령 박근혜는 이 사건 때문에 탄핵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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