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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FC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2. 7. 14.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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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이상의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세비야 동부 특유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클럽. 레알 베티스와 오랫동안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맹주 자리를 놓고 다투어 온 것으로 유명하다. 라리가 우승은 1회(1945-46 시즌)로 많지 않지만, UEFA 유로파 리그에선 무려 6회나 우승하여 역대 최다 우승팀이다.

그래서, '안달루시아 더비' 혹은 '세비야 더비'로 불리는 두 팀의 라이벌 대결은 스포르팅 히혼과 레알 오비에도의 '아스투리아스 더비'와 함께 스페인에서 가장 치열하면서도 폭력적인 더비로 손꼽힌다. 심지어, 엘 클라시코마저도 폭력적인 부분에서는 명함도 못 내민다고 말할 정도다. 과거에는 구단주들끼리 주먹다짐도 벌어졌고 세비야 구단주가 레알 베티스 구단주를 계단에서 밀어버려 굴러떨어지게 만든 사건도 있었을 정도였다.

'로스 네르비오넨세스(Los Nervionenses)'란 애칭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별명이 붙은 이유는 네르비온(Nervion)이란 세비야 동부 지역을 팀의 근거지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네르비온은 일찍부터 세비야에서 가장 현대화 된 지역이자 상업 중심지로 손꼽혀 왔으며, 명문 세비야 대학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세비야는 창단 이래 이 지역의 중산층으로부터 꾸준한 지지를 받아 온 '부자들의 클럽'이다.

이러한 배경은 노동자 계층에 대한 엄청난 차별대우를 불러왔다. 창단 얼마 뒤에는 아예 노동자나 빈민층 출신 선수들의 입단 자체를 거부함으로써 파장을 불러왔고, 이에 불만을 품은 반대세력에 의해 창설된 클럽이 바로 베티스였다.

베티스 역시 '레알(Real)'이란 작호가 말해주듯, 처음에는 귀족층 및 왕가로부터 지지를 받은 클럽이었지만, 세비야에 의해 배척된 노동자 선수들과 팬들을 모두 받아들인 만큼 태생 자체가 '반 세비야적'일 수밖에 없었다. 세비야 팬들인 세비이스타(Sevillista)와 베티스 팬들인 베티코(Betico)는 처음부터 공존할 수 없는 사이였던 셈이다.

세빌리스타들은 베티코들을 '페티스(Fetiz, 쓰레기들)'로 부르며 멸시했고, 반대로 베티코들은 세빌리스타들을 '팔라가나스(Palaganas, 허세 부리는 놈들)'라고 부르며 조롱했다. 100년에 가까운 앙숙관계인 세빌리스타와 베티코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승리하는 것보다 상대방이 패배하는 걸 더 기뻐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2007년 안토니오 푸에르타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에는 많이 분위기가 완화되었다지만 아직도 울트라끼리는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다. 더비때는 각 팀의 울트라들이 응원을 가기 위해 경찰이 동원되어 호위를 할 정도.

2021-22 시즌 ELO포인트 89점으로 구단 역사상 최고치를 갱신했다. 참고로 최저치는 2부리그 충격의 강등 당시에 기록한 59점이다.

역사

1905년에 영국인들이 창단했는데, 처음으로 치른 경기는 우엘바 레크리에이션 클럽(현 RC 레크레아티보 데 우엘바)였다. 한동안 빛을 못 보다가 1932년 라몬 산체스 피스후안이 회장으로 취임해 1935년과 39년에 각각 두 차례 장군컵(현 코파 델 레이)을 차지했고, 1941년에 산체스 회장이 스페인축구협회 부회장에 전념하기 위해 사임했다. 이후 안토니오 산체스 라모스 회장을 거쳐 1942년 세비야 시장 헤로니모 도미니게스가 회장이 된 후 1945/46 시즌에 리그 우승, 1947/48 시즌에 장군컵 우승을 각각 차지해 크게 두각을 드러냈다. 1948년에 피스후안이 7년만에 돌아왔지만 1956년에 급사해 팬들에게 슬픔을 안겨줬고, 사망 2년 후 그의 이름을 딴 경기장이 세워졌다. 그러나 구장 이전 후 승격과 강등을 반복하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고, 1970년대 후반에 다니엘 베르토니, 1990년대에 디에고 마라도나, 다보르 수케르와 같은 스타 선수들이 팀을 거쳐가긴 했지만, 1995년 초에 파산 직전의 위기를 맞이하며 1997-98, 1998-99, 2000-01 시즌을 2부 리그인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보내는 등 전성기를 맞이하기 전에 최대 암흑기를 겪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들어 유스팀 발전을 위해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투자를 감행하였다. 2000년에 부임한 로베르토 알레스 가르시아 회장은 몬치[10]를 단장(Director of football)으로 임명하고, 2002년에 호세 마리아 델 니도가 회장으로 취임하여 클럽 운영체제를 정비하였다. 이러한 노력이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 헤수스 나바스, 세르히오 라모스와 같은 결실을 맺어 2000년대 중반 이후 전성기를 꽃피웠다.

2002/03 시즌엔 니코스 마흘라스와 마리아노 토헤들리 등의 활약으로 실점 39점을 기록해 리그 전체에서 세 번째로 뛰어난 수비력을 보여줬고, 2003년에 말라가로부터 공격수 다리오 실바를 영입한 후에도 중위권에 머물렀다. 2005년부터 후안데 라모스 감독의 지휘 아래 두 차례 UEFA컵 우승 및 코파 델 레이 우승, 한 차례 UEFA 슈퍼컵 우승 및 수페르코파 우승을 차지했으며, 2006-07 시즌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와 리그 마지막까지 우승 경쟁을 벌이다 우승팀 레알 마드리드, 준우승팀 바르셀로나에게 승점 5점 뒤진 3위로 아쉽게 시즌을 마감하는 등 황금기를 구가했는데, 이러한 흐름은 마놀로 히메네스 감독 시대까지 이어졌다.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듯, 2007년 팀의 주전 수비수이자 스페인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활약하기도 했던 안토니오 푸에르타가 경기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비극을 경험하기도 했다. 2010년대 이후로는 세계구급의 강팀으로 자리매김한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 그리고 새롭게 이 두 팀에 필적할만한 강호로 급부상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밀려 리그 우승 경쟁에서는 멀어졌으나, 유럽 무대에서는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만 2010년 히메네스 감독 사임 후 3년 동안 감독이 4명이나 거쳐가고 기량 있는 선수들이 점차 떠나 팀 내외적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위와 같은 어수선한 상황 때문에 2010-11 시즌은 리그 5위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2011-12, 2012-13 시즌은 연속으로 리그 9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운좋게도 2012-13 시즌 8위 라요 바예카노가 재정 문제로 유로파 리그 진출권이 박탈되어, 그 대신 세비야가 2013-14 시즌 유로파 리그에 진출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라이벌인 레알 베티스 역시 7위를 하고도 6위인 말라가 CF가 같은 문제로 유로파 리그 진출권이 박탈되어 대신 진출하게 되었다.

2013-14 시즌 들어 감독을 우나이 에메리로 갈아치워 유로파 리그 플레이오프에서 폴란드 WKS 슬라스크 브로츠와프를 5:0, 4:1로 완승을 거두며 그룹 스테이지에 올랐다. 그룹 스테이지 H조 상대는 SC 프라이부르크, 에스토릴 프라이아(포르투갈), FC 슬로반 리베레츠(체코). 3승3무로 무난히 조1위를 차지하여 32강에 진출하였다. 32강에서는 슬로베니아의 NK 마리보르를 합계 스코어 4:3으로, 16강에서는 지역 라이벌 레알 베티스를 합계 스코어 2:2 승부차기 4:3으로 어렵게 누르고 8강에 진출. 8강에서는 FC 포르투를 상대로 1차전 원정에서 1:0으로 패하였지만, 2차전 홈에서 4:1로 쾌승을 거두며 준결승에 올랐다. 준결승에서는 같은 리그 팀인 발렌시아CF와 결승 진출을 다투게 되었다. 1차전 홈 2:0으로 승리하였지만 원정에선 1:3으로 패배. 결국 원정 다득점 룰에 의하여 결승에 진출, 7년 만에 3번째 유로파 리그 우승을 노리게 되었다.

토리노에서 열린 결승 상대는 지난 대회 준우승팀인 벤피카. 경기는 치열하게 진행되었지만 끝내 연장전까지 무승부로 마쳤고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골키퍼 베투의 선방으로 4:2로 이기면서 7년 만에 3번째 유로파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레알 마드리드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결승에 진출하여 레알 마드리드가 우승하였기에, 두 유러피언 클럽 대회 우승을 프리메라 리가 팀이 차지하게 된 셈이다. 이는 8년 만인데 2005-06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거둔 FC 바르셀로나와 당시 UEFA 컵이던 유로파 리그를 우승하던 것도 바로 이 세비야였다.

한편, 2013-14 시즌 리그에서는 초반부터 고전하면서 5라운드까지 리그 14위로 밀렸으나, 벨기에의 클뤼프 브뤼허 KV로 부터 영입한 콜롬비아 출신 스트라이커 카를로스 바카의 활약에 힘입어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다. 30라운드에는 리그 5위로 순위가 올라갔다. 무엇보다 30라운드에선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2:1로 기분좋게 역전승을 거뒀다. 4위 아틀레틱 빌바오와 승점차가 6점이라 나머지 경기 여부에 따라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인 4위를 노릴 희망이 있다.(3위 레알 마드리드와 20점이나 승점이 벌어져 힘들기에 그 이상은 어렵다) 그러나 끝내 빌바오를 추격하지 못한채로 리그 5위로 마감하여 챔피언스리그 진출은 좌절됐다.

2014-15 시즌 리그 개막전에서 발렌시아와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후 리그 4연승을 달렸으나, 6라운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4:0 참패했다. 36라운드까지 70점으로 리그 5위인데 4위 발렌시아와 3점차라서 남은 2경기(7위 말라가 원정, 16위 알메리아전) 여부에 따라 막판 4위로 올라갈 희망도 있긴 하지만 발렌시아 상대가 10위 셀타 비고랑 16위 알메리아라서... 그다지 질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결국 세비야는 남은 2경기를 모두 이겼으나 알메리아를 3:2로 이긴 발렌시아가 셀타 비고에게 1:1로 비겨서 단 1점차로 4위를 차지하면서 세비야는 5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리그에서 유일한 홈 무패를 기록... 할 뻔하였으나 시즌 막판 레알 마드리드에게 분패하여 총 홈 1패를 기록했고, 코파 델 레이에서는 8강에서 에스파뇰에게 1승 1패 골득실로 밀려 탈락했다.

2014-15 시즌 유로파 리그에서는 그룹 스테이지부터 참가했다. 그룹 스테이지 G조의 상대는 페예노르트, 스탕다르 리에주, HNK 리예카(크로아티아). 3승2무1패를 기록하여 페예노르트에 이어 2위로 32강에 진출하였다. 32강, 16강에서는 각각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비야레알 을 상대로 홈 원정에서 2승을 거두며 수월하게 8강에 진출. 8강에서는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합계 스코어 4:3으로 제압하였다. 준결승 상대는 피오렌티나. 1차전 홈 3:0 2차전 원정 2:0 합계 스코어 5:0 으로 압승을 거두며 결승에 올라, 지난 시즌 챔피언으로서 2년 연속 우승에 도전하게 되었다.

바르샤바에서 개최된 결승 상대는 처음으로 결승에 올라온 우크라이나의 FC 드니프로. 2:2로 맞선 후반 28분에 터진 카를로스 바카의 골이 결승골이 되어 3:2로 역전승을 거두며 사상 처음으로 유로파 리그 2연패를 2번 차지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로서 리그 순위와 관계없이 다음 시즌 챔피언스 리그 본선 티켓을 획득했다. 이는 이번 시즌부터 유로파 리그 우승팀에게 다음 시즌 챔피언스 리그 32강 본선 진출권을 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외정보들

대표적인 셀링 클럽이다. 거상이라고도 한다. 바르사로 간 다니에우 아우베스, 이반 라키티치, 알레시 비달[18], AC 밀란으로 간 카를로스 바카[] 이외에도 세르히오 라모스, 알바로 네그레도, 헤수스 나바스 등을 팔았고, 2016년에는 그제고슈 크리호비악을 부자 구단 파리 생제르망에 팔았다. 그 후 위삼 벤예데르를 영입해 팀의 핵심멤버로 키웠고, 2019년에 라리가를 정복한 벤예데르를 모나코에 팔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2014-15 시즌을 앞두고 있었던 여름 이적 시장 최고의 승자 중 한 명이다.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셀링클럽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 옆동네 발렌시아 CF가 로드리고 모레노 하나 영입하는데 30M이나 썼었다. 그 외 이런저런 선수 영입으로 인한 지출들은 덤. 그런데 세비야는 그제고슈 크리호비악, 알레이스 비달, 티모시 콜로지에자크, 니콜라스 파레하, 에베르 바네가, 다니엘 카리소 등을 영입하고도 돈이 남아서 여러 알짜배기 영입들도 몇몇 있었다. 언급한 선수들만 20M이 안된다.

유로파리그 결승에서 만났던 드니프로의 예브헨 코노플리안카를 프리로 영입하며 거상의 반열에 완전히 도달한 듯하다.

다만 이런 영입전략으로 인해 팀 전력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나뉜다. 시즌 초에는 기존의 뛰어난 선수들을 빅 클럽에 팔아먹고, 알짜배기 전력을 영입하면서 신입들이 팀에 적응하기 전까지 리그든 챔스든 죽을 쑨다. 그러나 시즌 중반쯤 되면 이 알짜배기 선수들의 포텐셜이 터지면서 리그, 토너먼트(리그컵 or 유로파)에서 꾸역꾸역 승점을 쌓는다. 그리고 유로파 우승으로 시즌을 마치고 선수를 판다. 매년 이러한 패턴이 반복되는데, 이를 모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연속으로 유로파 우승한 강팀 혹은 세비야 다른리그 가면 우승 vs 매번 챔스 광탈하는 약팀이라는 두 가지 평가가 공존한다. 아마 이러한 패턴은 어디서 거상 구단주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계속 될 상황이다.[]

이반 라키티치는 세비야 공홍과의 인터뷰에서 과거에 스페인 시민권을 신청했으나, 크로아티아-스위스 국적이 있었던 관계로 거절당했던 것을 강조하며 그런 의미에서 안달루시아인이 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고, 그 결과 자신은 달팽이 요리오 산 모레호를 즐기는 준 안달루시아인이 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라키치치는 세비야에 복귀한 후 2번이나 세비야 페리아(4월 축데)를 즐기지 못했다면서 내년 여름에는 꼭 이 축제에 참가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

세비야의 파푸 고메스는 세비야 공홈과의 인터뷰에서 2021년 겨울 세비야를 선택한 이유는 디에고 마라도나 때문이라고 알렸다. 이 자리에서 그는 "아르헨티나인들에게 마라도나는 특별하다. 특히 세비야는 마라도나가 뛴 팀이기에 나는 이곳에 오길 희망했다. 마라도나가 뛰었던 팀의 셔츠를 입는다는 것은 큰 자부심" 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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