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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2. 11. 24.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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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왕국(Royaume de Belgique)은 서유럽에 위치한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와 함께 베네룩스로 불린다.

벨기에는 네덜란드의 남쪽, 프랑스의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수도는 브뤼셀(Bruxelles, Brussel)이다. 네덜란드어로는 브뤼설(Brussel)이라고 하는데 어원은 bruoc(늪)와 Sella(집)의 합성어인 Bruocsella다.

국토 면적은 30,528㎢로, 32,289㎢인 경상도보다 약간 작다.

네덜란드와 함께 연합 왕국을 구성하였으나(1815–1839), 얼마 못 가 갈라졌다. 네덜란드와 벨기에가 연합 왕국을 구성한 1815년에 벨기에의 인구는 340만 명으로 당시 유럽에서 진행되기 시작한 인구 성장에 편승해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었지만 네덜란드의 인구는 240만 명으로 정체 상태에 가까웠다. 인구는 더 적은 네덜란드가 벨기에를 지배하려고 하니까 갈등이 더 커지게 되었다. 네덜란드가 벨기에와 네덜란드 사이를 흐르는 강의 청소를 게을리하자 나라 전체가 홍합 불매 운동을 벌인 일도 있다(...). 더군다나 두 나라 모두 홍합을 자주 먹는다. 네덜란드와의 국경 지대 중에 바를러라는 곳이 있는데, 국경이 심히 복잡해서 월경지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지리적으로 개방되어 있는데다가 강력한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어 나폴레옹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격전지가 되었다. 현재는 유럽연합 본부와 의회, 북대서양 조약 기구 본부가 있는 유럽의 중요한 국가가 되었다.

이 나라의 총리를 지낸 샤를 미셸이 유럽연합 정상 회의(유럽 이사회) 의장(President of the European Council)으로 활동하고 있다. UN 사무총장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EU 대통령'으로 보는 것은 부적절한 시각이다. 또한 'European Council'은 'EU 정상 회의'로 번역해야 하고, 'The Council'은 'EU 각료 회의'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 부분은 유럽연합 관련 용어의 한국어 번역어가 아직 자리 잡지 않았기 때문에, 추후 논의 필요.

벨기에 언어

벨기에에서는 네덜란드어(노랑), 프랑스어(빨강), 독일어(파랑)가 공용어이며, 네덜란드어권인 플란데런 지역과 프랑스어권인 왈롱 지역간의 갈등이 심한 상황이다. 제1언어 사용인구는 네덜란드어 55%, 프랑스어 36%, 독일어 1% 미만이다. 나머지 8%는 플란데런 지방과 왈롱 지방 사이에 위치한 수도 브뤼셀에 해당한다.

독일어 사용지역은 인구의 0.7%를 차지하여 존재감은 미미하다. 원래 이 지역은 독일 제국의 영토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벨기에가 전리품으로 획득한 지역이다.

벨기에 기후

대서양에서 형성된 습한 공기가 편서풍을 통해 유입되면서 연중 비가 골고루 내리는 것이 벨기에의 가장 큰 특징이다. 대체적으로 온화한 기온을 보이고, 여름이 크게 덥지 않다. 동쪽으로 갈수록 기온이 떨어지며, 실제로 벨기에 동쪽 끝자락은 굉장히 추운 겨울이 나타난다.

벨기에 사회

학생들이 교복을 입는 것은 지역마다 다르다. 네덜란드어권은 교복을 잘 입고 다닌다.

16세가 되면 술을 마실 수 있다. 흡연도 16세면 할 수 있어서 고등학교 1학년부터 흡연을 시작한다. 술의 경우 맥주와 같이 도수가 낮은 경우만 16세, 도수가 높은 경우 18세부터 가능하다. 고로 라들러(맥주에 과즙을 첨가한 알콜음료)를 학생들이 들고다니면서 먹을수 있다.

8월 15일이 가톨릭의 성모승천대축일로 공휴일이다. 2월, 9월, 10월에 공휴일이 없다. 3월, 4월, 6월은 공휴일인 예수부활대축일, 예수승천대축일, 성령강림대축일이 월요일의 날짜에 따라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벨기에에서 항상 공휴일이 있는 달은 1월, 5월, 7월, 8월, 11월, 12월이다. 대체 휴일 제도도 없어서 항상 공휴일이 있는 달에도 쉬지 못할 수 있다.

71세 이상인 노인들도 헌혈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이다. 다만, 벨기에 국민들은 해외여행을 다녀왔다면 6개월 동안은 헌혈할 수 없다. 이 공식에 따르면 해외여행을 갔다가 7월 1일 이후에 도착했다면 그 해에는 헌혈을 못 한다는 뜻이다.

벨기에 지역갈등

언어가 다르기도 하고 지역 간의 대립과 갈등이 심하다. 경제적으로 쇠락된 왈롱 지방과 현 주도권을 잡고 있는 플란데런 지방의 갈등은 정부(정확히는 내각) 성립까지 후퇴시켰다. 왈롱에 지원 정책이 세워지면 플란데런 지역은 또 여기에 반발하고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는 일이 빈번하다. 단순히 지역을 구분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던 플란데런과 왈롱이 별도로 의회와 정부를 구성하면서, 이미 연방 국가긴 하지만 양쪽 모두 자치권 확대를 주장하는 세력이 심각하게 커져서 스위스같은 연방제 국가로 변모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있다. 어쩌면 연방(federation)을 넘어서 국가 연합(confederation)같은 여러 국가들의 연합체로 변경될 가능성도 있고, 그보다 더 나가서 아예 별개의 국가들로 완전히 분리될 수도 있다.[]

거의 매년 여러 일로 지방들이 서로 분리하려고 난리다. 2009년 여름에도 총리가 최후 수단인 의회해산권을 발동하였는데 새로 당선된 총리가 모든(7개) 의회에서 통과되지 못해서 무효가 되었고, 거의 반 년 간 정부 수반이 없는 무정부 상태가 되었다. 왕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벨기에 국왕은 국가 원수지 정부 수반이 아니다. 물론 벨기에가 아예 쪼개지지 않은 자체가 왕가의 존재 때문인 점도 어느정도 있다.

다만 연방 정부의 공무원들은 각 부처의 차관 등이 공석인 장관을 대리하여 일하긴 했으니 완전한 의미의 무정부는 아니었다. 이 난리 끝에 겨우 새로 정부를 만들었더니, 연립 정부를 구성하는 5당 중 하나가 탈퇴해버렸다.[] 나머지 네 정당만으로도 과반수는 유지할 수 있으나, 새 총리가 네덜란드어 기독당 소속인데 네덜란드어 정당 하나가 프랑스어 정당 셋과 연정하면 네덜란드어권에서 배신자라고 비난받을 것이 자명했다.

결국 여당들은 또다시 의회와 내각을 다 해산해버렸다. 2010년 6월 중순의 총선 결과, 플란데런 지방은 분리주의당이 여당(온건파 N-VA와 강경파 'VB'를 합쳐서 40%)이 되고, 왈롱 지방은 사회당(PS)이 여당이 되었다. N-VA는 벨기에 총리는 왈롱에게 주고, 자신은 플란데런 통치에 나서는 대신 독립국에 준하는 자치를 얻으며 점차 분리를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협상 과정을 보면 꼭 그렇게 온건하게 하지만은 않았다.

이런 식으로 국가가 언제 분리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총선 후 200일이 넘도록 내각이 구성되지 않아, 2011년 1월 23일 브뤼셀에 2만명이 넘는 인파가 모여서 무정부 상태를 끝내라는 시위까지 벌였다. 정부가 구성될 때까지 남자들은 수염을 깎지 말자는 캠페인도 진행했으나, 캠페인을 펼친 사람들도 턱수염이 땅에 닿을 때까지 무정부 상태가 지속될 것 같다는 말까지 남겼다.

2011년 3월 30일에 무정부 상태로 290일째를 맞이하면서 무정부 상태 세계 기록을 경신했다. 화가 난 국민들은 지연된 정부 수립 날짜만큼 누드 시위를 벌였다. 벨기에 정부는 6월 3일까지 무정부 상태로 남아 마침내 1년을 넘겼다. 결국 2011년 9월 15일, 459일만에 브뤼셀-알레-빌보르데(BHV)[] 선거구 분할의 합의를 이뤘고, 그 뒤에도 지체하다가 11월 25일 S&P가 벨기에의 신용 등급을 한 단계 강등하고 나서야 비로소 각 정파들이 회동해 예산 삭감을 통해 재정 적자 감축에 합의함에 따라 12월 6일, 사회당의 엘리오 디 루포를 새 총리로 하는 내각이 겨우 출범해 무정부 상태는 끝났다.

2011년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왈롱에서는 국가 분열 시 39%가 프랑스에 합병되는 것을 찬성한다는 여론 조사가 나왔다. 반대로 플란데런 역시 분리되면 바로 네덜란드와 합치자는 여론이 있다. 이쪽을 강하게 내세우는 쪽이 극우파들이라 일단 호응은 크지 않다. 하지만 극우파에 대한 지지와는 별도로 네덜란드와 통합하려는 생각 자체에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다.

대체로 플란데런은 우파 성향, 왈롱은 좌파 성향이 강한 편이다. 다만 왕실 지지도는 프랑스어권이 네덜란드어권보다 2배 이상 높다.

국가 수장인 왕은 매번 두 지방들 간의 대화를 이끌어내려고 고생하지만, 영향력은 없다. 덕분에 왕을 향한 국민들의 시선은 좀 많이 불쌍한 사람일 정도다. 무정부 상태가 지속되던 200여일 간 왕이 지명한 조정관이 플란데런 다수당인 N-VA와 왈롱 다수당인 PS의 협상을 주도했지만 조정관만 9번 바뀌고 해낸 것은 없었다.

벨기에의 국가 표어인 '통합이 힘을 만든다'도 저러한 분리 시도를 극복하고 단결된 국가를 만들자는 뜻에 가깝다.[] 그럼에도 현실이 표어와 동떨어져가고 있는 상황이라 참 반어법적으로 잘 만든 표어란 비아냥까지 듣게 되었다.

벨기에는 브뤼셀 수도권을 위한 .brussels과 플란데런을 위한 .vlaanderen을 GeoTLD로 등록했다. 반면 왈롱 정부는 거기에 들어가는 예산이 아까우니 도메인을 등록하지 않을 것이며 차라리 그 돈을 다른 데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제 이런 최상위 도메인은 민간 단체·기업이 등록할 수도 있기 때문에 향후 왈롱의 민간에서 나서서 왈롱의 도메인을 등록하려 할 수도 있다.

브뤼셀 수도권은 언어 공동체 2개가 중첩되는 곳으로 양측에게 중요한 곳이다. 따라서 만약 플란데런과 왈롱이 분리되면 대체 어디에 속하게 해야 할 것인지 애매하다. 그래서 아예 독립국이 된 플란데런과 왈롱이 공동으로 통치하는 지역(condominium)으로 만들거나, 아예 어디에도 안 속하는 별도의 지역으로 만들자는 제안도 있다. 2010년 9월의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도인 브뤼셀 시민들이 국가가 남북으로 쪼개진다면 브뤼셀은 별개로 남아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브뤼셀을 유럽연합의 수도 내지는 유럽의 특수 지역으로 만들어 플란데런과 왈롱 모두와 합쳐지지 않겠다는 말이다.

브뤼셀 수도권은 플란데런 지방에 둘러싸여 있는 형태로 되어 있어서 왈롱 지방과 직접 닿지 못하는 지역이다. 그래서 브뤼셀 수도권이 독립국 플란데런과 왈롱의 공동 통치 구역이 되거나 왈롱에 속하게 될 경우 플란데런 지방 일부를 수도권으로 옮겨서 왈롱 지방과 직접 경계선이 닿게 하자는 말도 있다. N-VA는 어떻게든 브뤼셀을 플란데런 안에 두고 싶어한다. 2019년 선거 결과를 보면 브뤼셀에서 N-VA가 순위권에 오른 지역은 한 지역도 없기 때문에 개헌이 통과될 가능성이 낮고 그 다음 과정인 독립국이 될 가능성 역시 낮다.

독일어 공동체는 벨기에가 분리될 경우 왈롱 지방에 속하니 왈롱을 따라갈 가능성이 가장 높긴 하지만, 그냥 왈롱인들의 생각일 뿐일 수도 있다. 주변 국가에 합병되거나 브뤼셀 수도권의 월경지로 편입되는 방안도 추진되기 어렵다. 독일어 공동체 입장에서는 벨기에가 쪼개질 경우 고르기가 곤란한 선택지들만 놓이게 된다. 독일어 공동체 주민들은 자신들을 마지막 벨기에인들이라고 부른다. 마지막으로 벨기에에 통합되었고, 마지막까지 통합된 벨기에를 지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뿐만 아니라 독일어권 벨기에인들의 '마지막 벨기에인'이란 별명은 역사적 명칭 농담이기도 하다. 벨기에란 이름 자체가 라틴어로 Germania Belgica, 즉 '저지대령 독일'의 '저지대'란 단어가 나라 이름으로 굳은거고[], 원래는 베네룩스 삼국 저지대 일대의 주민들이 스스로는 그냥 ('독일인'이 아니라) '프랑스와 붙어있는 저지대의 독일어권 사람들'이라고 인식하던 중세의 유산이 국명에 남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별개 국가, 국민 공동체로서 '네덜란드'와 다른 저지대권이 독일권에서 떨어져나온게 된 계기가 네덜란드 독립 전쟁과 잇다른 옛 저지대 17개주의 재편성이었기 때문에 이 사건들이 터진 16세기, 17세기보다 훨씬 일찍 가장 가까운 유럽 대륙의 이웃으로 깊게 교류했던 잉글랜드 사람들은 여전히 이들을 도이치, 즉 더치로 인식했고, 따라서 영어권에서 아직도 '네덜란드의, 네덜란드인'을 뜻하는 단어가 'Hollander', 'Netherlander'가 아니라 'Dutch'인 것이다.

2006년 12월 13일, 왈롱 지역의 공영 방송인 RTBF에서 갑자기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플란데런이 일방적으로 독자적인 국가로 분리되기로 선언했다는 뉴스 속보를 방송한다. 평소 저녁 뉴스를 진행하던 간판 앵커, 프랑수아 드브리고드(François de Brigode)[]가 진행했으며 벨기에의 유명인들과 인터뷰를 하는 모습 등이 방송되었기에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고 당시 해외에 있던 왕자 필리프(현 국왕)는 측근에게 소식을 전해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이건 사실 페이크 다큐였고, 페이크 다큐였다는 사실을 방송을 시작한지 30분이나 지나서, 방송 위원회의 경고를 받고서야 자막으로 표시를 했다. 

이러한 벨기에의 갈등이 과장되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정치적인 대립으로 인해 무정부상태가 지속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이나, 그러한 극단적인 대립이 왈롱 주민과 플란데런 주민 간의 대립이 극단적이라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RTBF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왈롱인은 취업 문제를, 플란데런인은 이민자 문제를 걱정한다는 차이점을 제외하고 정치성향의 차이가 그렇게 극단적으로 벌어져있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괴리가 발생하는 이유는 기사에 있는 그래프와 같이 프랑스어권 정당과 네덜란드어권 정당들이 각자가 속한 두 지역의 이익을 위해 유권자들의 평균적인 정치성향보다 극단적인 목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벨기에 지역갈등의 시작은 프랑스어 단일 언어정책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성향, 사회문화, 경제 갈등 등의 다양한 양상을 띠게 된다. 이때문에 지역갈등의 원인도 다양하다.

벨기에 언어차별

당시 벨기에 표준 네덜란드어가 없었기 때문에 북부지방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방언을 썼고, 건국 초기 헌법에 플란데런 방언을 금지하는 조항은 없었다. 그러나 벨기에 독립운동가들을 포함한 상류층들은 프랑스어 화자였고, 이로 인해 공용어는 사실상 프랑스어 하나 뿐이었다.

헌법에 따라 법정에서 플란데런 방언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법조인들은 프랑스어만 할 줄 알았기 때문에 무시되는게 일상이었다. 이러한 언어차별 문제는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상류층들에게 무시되었고 1840년부터 플람스 운동이 일어났다. 여기에 1845~1848년 경기불황이 벨기에를 덮쳤는데 그 중 북부지방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플란데런 방언 구사자들은 박탈감에 빠졌고 플람스 운동은 탄력을 받는다.

플란데런 방언의 허용은 점진적으로 이뤄지다가 1898년 4월 18일 언어평등법[]에 의해 프랑스어와 대등한 지위를 갖도록 하였다. 그러나 왈롱 운동 진영에서 이 법을 반기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방언에 불과한 플람스어가 프랑스어와 대등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연방 하원 의회에서는 플란데런 정당 의원이 프랑스어권 정당 의원보다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를 섞어 쓰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들어 프랑스어권 정당에서도 연방 하원 의회에서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를 섞어쓰는 시도를 하고 있다.

벨기에 이민

벨기에는 공식적으로는 이민에 대한 제도 자체가 없는 국가다. 예외적으로 외국인 신분의 경우 크게 단기 거주자, 장기 거주자, 벨기에인 가족이 있는 자에 한해서만 가능한 영주권자의 세 분류로 나뉘어진다. 단,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기존 보유 국적을 포기하는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투자 이민의 경우 불가능은 아니지만, 공식적인 루트가 아닌 비공식적으로 변호사를 통해 이민국과 경제부에 접촉을 해야만 허가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최소 금액은 50만 유로지만 벨기에 국부 펀드에 3년간 투자할 최소 금액일 뿐이다. 골든 비자를 원하면, 비공식적으로는 150만-200만 유로를 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골든 비자 신청을 하면 벨기에 경제부에서 보증을 서므로, E나 F카드에 준하는 투자 카드가 나온다.

해당 카드 소지자는 벨기에 영주권자와 동일한 신분이다. 해당 비자 소지자는 이후 3년 후에 시민권 신청을 하면 별도의 절차 없이 여권을 발급받는다. 단, 시민권을 받을때까지 투자 금액은 벨기에 안에 있어야 한다. 두 개 이상의 국적을 가졌으면 이 기간은 더 늘어난다. 여기에 벨기에는 두 개 이상의 시민권을 보유한 귀화자에 한해서는 언제든 시민권 박탈이 가능하기 때문에 하나의 국적만을 가지는 것이 좋다.

벨기에는 혈통 중심의 국가다. 예외적으로 벨기에에서 출생한 사람은 18세까지 벨기에 거주자에 한해서는 국적을 부여한다. 단,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기존 보유 국적을 포기하는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벨기에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거나 부모 한쪽이 벨기에인이고 벨기에에서 출생하면 벨기에 국적을 받는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부모 중 한쪽이 벨기에인이고 해외 출생자라면 벨기에 대학을 졸업하거나 벨기에 의무교육을 받거나 혹은 벨기에에서 18세부터 28세까지 경제적 기여(세금 납부) 를 하지 않았다면, 벨기에 국적을 박탈당할 수 있다. 심지어 국적 보유자가 벨기에 국적만 가지고 있고 다른 나라에서 영주권을 가지고 체류하고 있더라도 벨기에 국적을 박탈당할 수 있다. 실제로 2013년 홍콩 시민 BN(O)[]와 벨기에인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 벨기에 국적을 박탈당한 일이 있었다. 대법원 까지 갔으나 결국 원고 패소했다. 해당 원고는 22세까지 벨기에 시민권+홍콩 영주자로 살았다. 그래서 부모 한쪽이 벨기에인일 경우 벨기에 대사관에서는 강력하게 벨기에 출생을 권한다.

만약 국적을 박탈당했다면, 벨기에 법무부를 통해서 벨기에로 와서 28세까지 거주를 하거나 대학을 졸업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이 경우 해당인은 벨기에 준시민이기에 유럽시민권자로 인정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F카드 영주자 신분이기는 하나 국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매번 벨기에를 나갈때 Bijlage (정부 발행 임시 서류) 를 받아야만 다시 벨기에 입국이 가능하다. (일종의 출입국 허가서류다.) 그러나 부모를 만나러 갈때는 해당 서류를 발급받지 않아도 괜찮다. 위의 사례에서 홍콩 영주권자의 경우 홍콩을 방문할 때는 따로 서류가 필요 없다. 그러나 입국할 때 될 수 있으면 환승 없이 벨기에로 들어오는 것을 벨기에 정부는 권장한다. 일반적으로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의 경우 이해를 하는 편이지만 영국이나 스페인 등 벨기에와 국경을 직접적으로 맞닿지 않는 국가의 경우 유럽으로 상륙이 불가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Snel-Belgwet이라고 하는 국적법이 있는데 조부모와 부모 두세대 모두 벨기에에 거주하나, 벨기에 거주권이 없거나 영주권 신분인데 3세대 이상 벨기에에 살아왔고, 벨기에 태생이면 즉각적으로(물론 신청을 해야하지만) 벨기에 국적을 부여받는 법이 존재한다.

벨기에 인종차별

유럽 국가들 중에서도 인종차별이 심한 편이라고 알려져 있다. 유럽여행을 갔다온 사람들 대다수가 인정하는 부분이고 인터넷에 경험담도 많이 올라와 있다. 거리를 걷고 있는데 누가 뜬금없이 차이나 타운이라고 외친다든가 하는 썰은 꽤 흔하고 대학교 에타 같은 데를 들어가 봐도 벨기에는 인종차별로 까인다.[]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말을 모두 믿을 수는 없겠지만, 방송 카메라 등의 실질적인 증거물이 될만한 매체 앞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인종차별 제스처를 취하는 현지인들이 많이 목격된다. 일례로 2015년 tvN에서 방영된, 예능인이 가이드를 하는 여행프로그램인 <가이드>라는 방송에 배경으로 등장한 벨기에 소녀들이 카메라맨을 향해 동양인을 차별하는 동작, 즉 '째진 눈' 묘사를 참으로 당당하게하는 장면이 찍혔다. 그것도 심야시간도 아닌 백주대낮의 사람도 많은 강변에서 말이다. 이는 인종차별 행위로 인해 얻는 사회적인 페널티가 적거나 없는 수준, 혹은 인종차별에 대한 감수성이 사실상 없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2017년에는 박준형이 벨기에에서 예능 프로그램을 촬영하던 중 현지인들에게 인종차별을 당하는듯한 장면이 방송에 고스란히 방영되어 이슈가 되기도 하였다. 다만 박준형의 사례는 해당 문서에도 나와있다시피 인종차별 목적이라기보다는 유럽의 흔한 관광객 절도단이다. 그리고 촬영비화를 보면 당시 늦은 밤(12시 30분)이라는 점과 숙소예약이 안돼있는 등 출연자들이 꽤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스탭들이 근처에 있으니 크게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걸 모르고 덤벼든 절도단도 당황했는지 황급히 사라진다.

2015년 10월 23일자 세바퀴에 출연했던 황재근은 자신이 벨기에에서 유학을 했는데(안트베르펜), 수줍고 내성적인 나라라 '인종차별도 내성적으로 한다'고 이야기한 바가 있다. 예를 들어 샌드위치에 햄 2장을 넣어줄 걸 자신에게는 1장만 주고, 감자튀김은 버려야 하는 걸 주는 식이었다고 한다.

현지에서도 인종차별 문제로 말썽이 있는 듯 하다. 사례를 들어보면 우리가 잘 아는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 주전 공격수 로멜루 루카쿠가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직접 겪었던 인종차별 경험담들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잘하면 벨기에 사람 못하면 콩고 사람 또한 벨기에 프랑스어 공동체 산하 방송사인 RTBF의 흑인 기상 캐스터인 세실 중가가 시청자들로부터 인종차별 메시지를 받았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사건 이후 엘리오 디루포 당시 사회당 대표는 "세실 중가를 지지하며 인종차별은 우리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다"는 트윗을 올렸다. 또한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아이이더라도 유색인종인 학생들은 부모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이상, 절대 다수의 선생들이 아이들을 직업 교육 학교로만 보내려 한다는 보고서도 존재한다. VUB(네덜란드어권 브뤼셀 자유대학)[] 공식 보고서에서도 심각성이 드러나는데 석사 학위 이상을 가진 흑인들조차 보통 취업에 걸리는 시간이 1년으로 나왔다. 백인계 벨기에인(Autochtonen)의 경우 같은 조건에서 3개월이 걸리지 않았다. 더군다나 흑인들은 대부분이 면접과 이메일에서 인종차별적인 대우를 받는다. 특히나 교육 수준이 낮은 직종일수록 대놓고 백인을 고용하길 원하는 경우가 많다.

인종차별 금지법 같은 것이 있긴 하지만 국가에서 인종차별을 적극 때려잡지는 않아서 큰 의미가 없다. 경찰에다 인종차별 신고를 해도 당사자가 직접 증거를 제출하지 않는 이상 의미가 없으며, 그 증거라는 것도 녹취와 비디오의 경우 반드시 해당 인종 차별을 보이는 자의 녹화 동의가 있어야만 채택이 된다. 법원도 별 다를건 없어서 벌금도 일반적으로 높아야 200 유로(약 25만원) 정도고 최대치가 2,000 유로 정도. 이러다보니 차별을 해도 은근슬쩍 차별하는 이웃나라들과는 달리 대놓고 인종차별을 하는 일이 많고, 인종차별 문제로 벌금을 내도 그냥 운이 없어서 걸렸다는 인식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동양인이 차별당한다는 신고는 아예 접수도 거의 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접수를 받는 경우는 해당 신고자가 입양인 출신인 경우로, 부모가 벨기에인이기에 어쩔 수 없이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민자 출신들 중에 동양계는 성장하면 벨기에를 나가서 다른 국가에서 살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고 한다. 벨기에를 대표하는 만화 '땡땡의 모험' 역시 인종차별 문제로 폭격을 받았는데, 스스로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지만 여전히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벨기에가 언어권별로 정치적 양극화가 심하다보니 인종차별을 두고도 네덜란드어권 진영과 프랑스어권 진영의 태도가 서로 다르다. 플란데런의 경우 타지역과 달리 민족주의 정당(N-VA)이나 극우 포퓰리스트 정당(VB)이 지방의회에서 원내 1당, 2당을 차지하고 있어 다른 지역보다 지방정부 혹은 많은 주민들이 이민자 혹은 타인종에 대한 차별에 무감각하거나 갈등을 조장하는 면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N-VA소속 플란데런 정부 총리인 얀 얌본이 "이민자 가정이 보조금으로 집을 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라고 발언해 논란이 일었는데, 해당 발언은 근거가 없는 가짜뉴스였다.
플람스 공동체의 교육정책 또한 인종차별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VRT의 어린이 채널인 Ketnet[31]에서 중국의 유행성 감기에 걸린 늑대가 칭챙총 거리며 노래를 부르는 에피소드가 있었고, 현재도 Ketnet 유튜브 채널에 영상이 그대로 있다. 이후 코로나 19의 유행으로 인해 이 영상이 재발굴되어 동양인을 조롱할 목적으로 각종 SNS를 통해 퍼뜨리고 있으며, 당시 이러한 프로그램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고등학생이 되어 중국풍의 의상을 입고 chinky eyes를 하며 Corona Time이라고 쓰인 종이를 들며 웃는 등 동양인 인종차별 자체에 대한 자각이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해당 사진은 플란데런의 모 고등학교 공식 인스타그램에 올라왔다가 삭제됐지만, 그 사진은 박제되어 돌아다니고 있다. 링크된 인스타그램의 글에 의하면 교사들도 인종차별 논란이 있는 노래를 부르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왈롱[]이나 브뤼셀 같은 프랑스어권 지역도 이러한 문제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은데, 브뤼셀에서는 레 누아로라고 하는 얼굴을 검게 칠하고 여기저기를 돌며 돈을 모으는 행사가 있다. 당연히 얼굴을 검게 칠하고 돌아다니기 때문에 인종차별적이라고 내부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그래서 그나마 절충안으로 검게 칠하는 대신 벨기에 국기로 칠하는 것이 어떻겠나라는 얘기가 나오기는 하나, 논란이 식은 것은 아니다. 2015년에는 당시 외무부 장관이었던 개혁운동(MR) 소속 디디에 레인더스가 이 행사에 참가해서 논란이 된 적도 있었다.# 당시 벨기에 언론의 기사들을 보면 모두 프랑스 2가 이를 비판하였다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이 사례는 국내 유튜브에서도 벨기에의 인종차별사례의 예시들 중 하나로 인용되기도 한다. 보통 인용되는 사진은 프랑스 2에서 보도한 내용을 많이 쓴다. 기사에 따르면 국왕인 필리프도 이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고 한다.

요약하자면 인종차별에 무감각하긴 하지만 주류세력이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세력이라 개선하려는 노력이라도 보이는 프랑스어권 지역과, 주류세력이 민족주의 계열이라 인종차별을 조장하고 대학 내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갈등을 정부 차원에서 방조하고 있는 네덜란드어권 지역으로 나눠져 있는 것이 현상황이라고 보면 된다.[]
2018년 2월 슬로바키아인 남성 요제프 호바네츠를 체포한 벨기에 경찰들은 그가 벽에 머리를 부딪히며 난동을 부렸다는 이유로 등 뒤로 수갑을 채우고 담요로 몸을 감싼 뒤 6명이서 16분간이나 짓눌러 숨지게 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이 발생하는 내내 경찰관들과 응급처치사들은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며 나치 경례로 보이는 행동까지 하는 등 대수롭지 않은 듯 행동했고 이 사건은 무려 2년 6개월간 관련자 체포 한번 없이 지지부진하게 수사가 이어져 더 이상 벨기에 사법부를 신용할 수 없다고 판단한 유가족이 2020년 8월 19일 해당 사건이 담긴 CCTV 영상을 공개했다. 여론이 악화되자 벨기에 경찰청 1, 2인자가 모두 사퇴했지만 가해 경찰관들이 방어권을 들먹이고 있어 여전히 수사는 제자리걸음이다. # 같은 백인에게 저지른 사건이 저정도 수준이면 유색인종이 피해자인 사건은 어떤지는 말안하도 알 것이다.

2020년 2월, 오스트플란데런의 알스트에서 열린 축제에 나치군복과 유대인을 조롱하는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나와 논란이 일었다. 이 축제는 원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가 2019년에 유대인을 조롱하는 인형이 축제에 나오면서 큰 논란이 되었고, 유네스코는 이 축제를 인류무형문화유산에서 퇴출시켰다. 퇴출되었으니 아예 막 나가기로 작정한 듯.

2021년 7월 12일에 벨기에 정부 산하 기관인 양성평등연구원 정부 위원으로 일해 온 모로코계 벨기에인 이샨 하와시가 히잡과 관련된 것으로 인한 무차별적인 인신공격을 받아 사임한다고 밝혔다.

벨기에 치안

벨기에의 마피아인 밀리유와 네덜란드 페노제, 모로코 마피아들이 마약 거래를 크게 해서 종종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앤트워프는 모로코산 대마초와 헤로인, 중남미 코카인이 들어오는 주요 창구이다.#

특히 모로코 마피아들은 네덜란드와 벨기에서 모두 활동하며 마피아들이 전쟁을 할때 폭탄 공격을 자주해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벨기에 교육

벨기에의 교육제도는 불어권, 네덜란드어권, 독일어권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언어권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초/중등 교육에서 낙제(유급) 제도를 가지고 있다. 불어권 지역에서 초등학교의 낙제율은 약 18%에 이른다고 전해진다. 중/고등학교 낙제율은 25~30%, 대학1학년은 약 60%의 낙제율을 보인다고 한다.

2번 연속 낙제하면 보통, 수준이 좀 더 낮은 학교로 전학을 간다고 한다. 대학교(Universiteit/Université)의 경우 낙제가 3번째에 이르면 해당 학과로의 편입/등록이 불가해서 직업교육대학(Hogeschool/Haute Ecole)으로 재입학을 하거나 5년을 기다려야 한다. 예외적으로 단과대학에서 허락을 받는 경우도 가능하나, 이 경우 현지인도 정부의 보조금을 받을 수 없어서 학비가 대폭 상승한다. (보통 천유로 미만이였던 학비가 학 과목이라도 낙제 2번 초과시 5천에서 6천유로 이상으로 급등하는 마법을 볼 수 있다. )

벨기에 군사

국가의 크기가 작고 군사력도 별볼일 없어 무시당하지만 서방의 군용기관총 시장을 석권한 FN 미니미와 FN MAG를 개발한 FN 에르스탈 사라는 걸출한 총기 회사가 바로 벨기에에 있다.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당시 내로라하던 총기나 엔지니어들이 벨기에와 어떻게든 연이 있었을 정도로 나름대로 유서깊은 총기 명가로, 오랫동안 서방권 군대들의 개인화기 디자인을 거진 도맡다시피 했다. 국제연합 평화 유지군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르완다 내전 당시 10명의 병사들이 수상을 지키던 중 살해당하는 일도 있었다. 군수 기업으로는 장갑차의 포탑을 생산하는 CMI 그룹 산하의 코케릴이 유명하다. NATO 본부도 브뤼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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