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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3. 2. 7.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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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영어강사 출신 정치인이다. 제17대, 19대, 21대 국회의원이다. 지역구는 서울 마포구 을 지역이다.

대학생 시절 주한미국대사관 불법 점거 및 방화, 폭탄 테러 사건을 주도하였고, 징역 2년을 선고받아 교도소에 있었다. 이후 92년 특별사면으로 출소하여 혁명동지인 양태회와 보습학원을 운영한다. 미대사관 테러 경력과 어울리지 않지만 학원에선 영어를 가르쳤고 96년 양태회와 갈라선 뒤 학원을 접게된다. 이후 정계에 투신하였는데 2002년부터 노사모를 이끌었다. 노무현 탄핵 정국 당시 열린 총선에서 국민들의 열린우리당 몰표 지지에 힘입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한 마디로 탄돌이.

이적표현물 소지로 국가보안법 위반 처벌을 받았는데, 주체사상물을 학생회에 배포한 것이다.

2015년 2월 8일 새정치민주연합의 최고위원으로 선출돼 문재인 지도부에서 활동하다가 2016년 1월 문재인 전 대표가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에게 권한을 넘기고 물러나면서 함께 최고위원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그 김종인 비대위에 의해 20대 총선 공천에서 배제되어 20대 국회에서는 야인 신분이 되고 말았다. 이후 4년 만에 서울 마포구 을 지역위원회 위원장이 되어 마포구 을 선거구에 다시 출마하여 당선되어 3선 의원이 되었다.

야인 시절에는 주로 트위터와, 김어준의 파파 이스 등 여러 시사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했으며 '종편에는 출연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접고 MBN의 시사 예능 프로인 판도라의 패널로 방송 활동을 하기도 했다.

공격적인 성향의 언사로 숱한 화제와 논쟁, 구설의 대상이 됐다. 초기에는 특유의 높은 전투력으로 당내에 자신만의 입지를 다졌으나 도가 지나친 언행으로 당 전체에 위기를 불러일으키는 등 당 내부에서도 비판을 받는 인물이다. 동시에 정치를 희화화한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아재 개그성 유머를 남발하는 편이다.

정청래 학창 시절

1965년 5월 18일,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석막리에서 아버지 정해일(1921년)과 어머니 박순분(1922년) 사이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현재는 5남매만 생존하고 있다고 한다. 첫째형과 둘째형이 15살 차이가 나는데, 이 시기에 홍역으로 아이 5명을 잃었다고 한다. 금산에서 석막초등학교와 진산중학교에 다녔고, 대전으로 올라와 대전보문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고교 졸업 후 대입에 낙방하고 상경하여, 서울의 한 유명 재수학원에서 1년간 재수한 후 건국대학교 공과대학 산업공학과에 85학번으로 입학했다. 재수 때 경험이 나중에 학원을 차렸을 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대학 입학 직후 1학년때 과대표에 출마하며 '나의 꿈은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이후 운동권 활동에 투신했다. 전대협 산하 서총련에서 활동했다. 재학 중 1988년 안기부 요원들에게 새벽 2시에 끌려가서 어딘지도 모른 곳에서 눈이 가려진 채 무차별 폭행을 3시간 동안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이름과 성별 등 그 사람들을 전혀 모른다고

정청래 미 대사관저 점거 사건 및 투옥

1989년 10월 13일 서울 주한미국대사관을 점거하여 폭탄 투척 및 방화 미수 사건을 주도하였다. 대사관저를 점거한 후 노태우 대통령의 매국 방미 반대, 그레그 주한미국대사 추방 등을 요구했으며, 이 과정에서 대사관저에 방화 시도 및 사제 폭탄을 투척하기도 했다. 대치하던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집시법 위반, 보안법 위반,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현주건조물방화예비,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 총포·도검·화약류등단속법위반, 화염병사용등의처벌에관한법률위반 등으로 징역 2년, 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았다.(1990년 3월 28일) 직접 제작한 사제 폭탄이 엉터리로 제작되어 터지지 않았고, 대사관 거실에 신나를 뿌리고 불을 질렀지만, 미 대사관 건물이 내화 처리가 되어 있어 불이 붙지 않아 모두 미수에 그치는 바람에 징역 2년이라는 가벼운 처벌만 받았다.

복역으로 인해 병역에서 아예 제적되었다. 때문에 신체검사 급수도 없다고 한다.

이후 2년간 복역한 후 1991년 출소했다. 이후 1995년 8월 15일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완전히 사면복권되었다. 사면복권된 이듬해에 학원업을 접고 90년대 후반부터 여의도에서 정치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미 대사관저 폭탄 테러 사건은 그가 정치인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된 중요한 경력으로 작용했다. 운동권 출신으로 국회 입성에 성공한 케이스는 주로 87 민주화 항쟁 당시 대학교 학생회장 출신이거나 이후 출범한 전대협 의장 출신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정청래는 일개 과대표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미 대사관저 점거 투옥 경력을 발판으로 다선의 거물급 정치인으로 성장해 나갔다.

정청래 학원 운영

출소한지 몇개월 후인 1992년 정청래는 재수 시절 친구이자, 전대협의 모태가 된 ‘자주민주통일’이라는 조직을 이끌었던 동지인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불문과 출신의 양태회와 동업으로 학원을 창업했다. 학원 이름은 '길잡이 학원'이었는데, 당시 대규모 시영아파트 단지가 있던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보습학원이었다. 성산 시영아파트 단지는 당시 개발 중에 있던 노원구를 제외하면 당시 서울 강북 최대의 아파트 단지였다. 서울에서 매우 특이하게도 소평수 아파트로만 구성된 단지였기 때문에 현재도 단지가 노후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여전히 초등학생이 매우 많은 지역이다.

정청래는 공대 출신이었으나 수학이 아닌 영어를 가르쳤다. 미 대사관저를 점거 테러하며 미 대사 추방, 대통령의 미국 방문 반대 등을 요구했던 전례를 고려하면 아이러니한 일. 한편 양태회는 불문과 출신이었으나 국어를 가르쳤다. 정청래는 교육 경험이 없었지만 재수 시절 경험과 문법 위주 강의로 그럭저럭 해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반면 양태회는 이미 대학 시절부터 과외나 학원에서 잔뼈가 굵었고, 나중에는 비상교육을 차려 사교육 재벌이 되는 등 사교육계의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이었다. 처음에는 원장들이 청소와 잡일까지 다해야했다고 말했지만 이런 시절은 개원 후 잠시였고, 이 학원은 곧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길잡이 학원은 불과 2년여 만에 직원이 100여 명일 정도의 엄청난 대형학원으로 성장했다. 당시 길잡이 학원은 마포 성산 지역에서 스파르타식으로 대단히 유명했다. 학원 이름이 길잡이 학원이었는데 동네 초등학생, 중학생 사이에서는 가면 애 잡는다고 애잡이 학원으로 더 많이 불렸다.

길잡이 학원은 90년대 중반 마포 성산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1996년경 돌연 공동원장인 양태회와 정청래가 갈라서며 문을 닫게 되었다. 양태회는 학원을 접은 직후 비상교육을 창업했고, 한때 대표적인 사교육 재벌 중 한 명으로 불릴 만큼 매우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한편 정청래는 이후 정계에 투신하게 되었다.

정청래 2020년 21대 국회의원 당선 이후

2020년 4월 21대 총선에 마포구 을 더불어민주당 지역구 후보로 단수공천됐다. 그리고 과반수를 확보하며 미래통합당 김성동 후보에게 압승을 거두며 21대 국회로 금의환향하게 되었다. 당선 이후 국회사무처로 제일 먼저 달려가 금배지를 첫 번째로 수령했다. #

21대 국회 첫 법안으로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기로 했다.

페북 어느 유저가 사유지지만 도로인 곳에 불법 주차하는 차량을 견인 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해달라고 댓글을 남겼고 검토 뒤 법안을 마련했다.

이번에는 불법주정차구역에 주차하는 차량들에 대해 더 강한 처벌을 내리는 법안을 준비했다. 역시 이번에도 댓글에서 시작된 법안이었다.

사설구급차를 막아선 택시기사로 인해 이송 중이던 폐암 환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택시기사에 관한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나오자, 이에 즉각 응급환자 이송 차량운행을 방해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수 있도록 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다.

7월에는 신문이 오보를 1면에 내면 1면에 정정보도를 내게 하는 법을 발의했다. 본인이 2008년 18대 총선 막바지에 겪은 일과 관련이 있는듯.

2021년 6월, 판사 임용에 필요한 법조 경력을 10년에서 5년으로 줄이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2021년 12월 13일, "인간 이재명을 흐느끼며 읽었다. 이재명은 대통령이 될 실력과 자격이 있다."라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사찰 통행세 비난으로 참다 못한 불교계가 완전히 폭발하자 조응천[16]을 필두로 한 이재명계 핵심 관계자들에게 탈당을 요구받았지만, 정작 이들의 주요 지지세력인 팟캐스트에서 정청래가 정당했단 세력이 주를 이루면서 사실상 사과도 없이 지나갔다.

2022년 8월 28일 열린 전당대회에서 친이재명을 천명하여 출마, 최고위원 후보 중 비이재명 성향을 표명한 고민정 의원을 제치고 득표율 1위를 달성하며 수석최고위원이 되었다. 어찌보면 8년전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 당시 주승용 전 국회부의장에게 밀려 수석최고위원 자리를 놓쳤던 아픔을 갚은 셈이 되었다.

2022년 9월 30일 페이스북에서 "소수의 국내 ISP를 보호하려는 편협하고 왜곡된 애국마케팅을 하다가 국내 CP의 폭망을 불러올 위험천만한 일" 이라며 망사용료에 반대하는 추가 토론회를 예고했지만, 정작 방통위 감사가 끝나고나선 구글 코리아 사장이 위증을 했다며 고발 안건을 제출하는 통수를 치기도 했다.

정청래 행적

2006년 9월 16일 "북한의 군사력이 더 세다? 이는 전형적 사기이다. 수구(守舊)의 한줌 손바닥으로 세계의 눈을 가리려 하는가? 이제 보수·수구 세력들은 하나를 해야 한다. 숭미주의자로서 부시의 말에 수그리하고 말문을 닫든가 아니면, '부시 반대'의 반미주의자로 나설 것인가? 결단하라. 친미 투사들이여! 반미 투사들이여."라는 인터넷 칼럼을 써서 주목을 받았다.


2013년 9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JTBC 손석희 앵커가 불러도 안 나가는 이유”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하였다. 이 글에서 그는 “손석희 보도부문 사장도 단물이 다 빠지면 언젠가 쫓겨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입장은 2015년에 좀 바뀐 듯하다. 당초 종편의 출연을 결사반대했던 자신이 나가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매체에 나가 말한 바 있다. 하지만 한동안 MBN이 보수 세력에게 좌편향 방송이라고 비난받던 시절에는 출연한 적이 있다. 2016년 10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만천하에 까발리는 광폭행보를 보면서는 "<JTBC에 감사한다>나는 그동안 종편출연을 거부해왔다. 출생의 비밀과 편향성에 들러리서서 그들의 정통성에 면죄부를 주고싶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 JTBC의 보도는 언론으로서 사명을 다하고 있다. JTBC의 출연요청이 있으면 이제 응하겠다. 수고많다"라는 트윗을 올려 JTBC에 대한 지지를 표하기도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에 온라인으로 입당한 한 신규 당원이 가수 이애란 씨의 히트곡 백세인생의 가사를 패러디해 '앞으로는 잘하자'는 메시지를 당에 전달하였는데, 정 의원도 이 백세인생의 가사를 패러디해 화답을 보냈다. 이게 다음 실시간 검색어 1~2위에 오르면서 주목을 받았다. #


2016년 1월 14일,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대표가 김종인 전 의원을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하자, 그를 열렬히 환영한다는 뜻을 표하였다. 트위터에 "<경제민주화님 환영합니다.> 가인 김병로 선생의 친손자로서 경제민주화의 상징으로서 이 땅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역할을 해주시길"이라며 "박근혜 정권에 당한 만큼 박 정권의 경제 실정에 날카로운 비판자가 되어주시길. 과거보다 현재, 현재보다 미래에 김 박사님의 가치가 빛나시길"이라고 적은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2014년 박영선 비상대책위원장 체제일 당시 이상돈 교수를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려 했을 때의 태도와 너무 다르다는 비판이 따랐다. 김종인 전 수석이나 이상돈 교수나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이었던 것은 마찬가지인데, 이상돈에 대해서는 영입을 반대하고, 김종인에 대해서는 영입을 환영하는 게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이상돈 교수는 그저 보수 진영에서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일 뿐인 데다 지난 2007년 1월 21일 동아일보에 더민주의 정신적 지주인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을 반역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칼럼을 게재한 적이 있고#,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비판하는 등 더민주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가 분명한 인물이다. 반면, 김종인 전 수석은 비록 경력을 주로 보수 진영에서 쌓긴 했어도[] 재벌 개혁을 추진하고 더민주의 전신인 새정련의 공동대표였던 안철수 의원의 경제 멘토였으며 훗날 새누리당 비대위원으로 합류해서도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설계하는 등 더민주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경제 노선을 견지해왔다. 그리고 정부 여당과 결별한 후엔 새누리당 비대위원에 참여했던 전력에 대해 자기 비판을 하기도 해 둘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반론이 뒤따른다.


허나 정부 여당과의 결별 후 정부 여당 및 자기 비판은 이상돈 교수 역시 줄곧 해 오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뒤따랐다. 또한 정청래 의원의 행동에 대한 비판은 단순히 이상돈은 안 되고, 김종인은 된다는 식의 의견을 표출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시 박영선 위원장이 세월호 특별법 정국 당시 유가족들과도, 당과도 논의 없이 새누리당의 특별법 제안을 덜컥 받아버려 비대위원장직도, 원내대표직도 내려놔야 하는 상황이 돼 비대위원장직을 외부 인사에게로 넘기기로 했을 때, 당내 여론을 우려해 이상돈 교수와 더불어 진보 진영의 안경환 교수도 함께 영입함으로써 진영을 아우르는 비대위 체제를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정청래 의원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장시간 단식을 하고 있는 중에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으며, 박영선 퇴진 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런 사태에 박영선 위원장은 사퇴 후 탈당 가능성까지 점쳐졌다. 이외에도 이 사태를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 이후 정청래 의원이 문재인 대표 체제 출범 후 비주류 인사들이 끊임없이 문 대표를 방해해온 행보에 대해 '흔들기'라고 비판한 것에 대해서 박영선 의원과의 갈등을 예로 들며 '내로남불'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종인의 선대위원장 임명은[] 절대적으로 환영하는 태도를 취하고, '경제민주화님'으로 떠받드는 것은 꼴불견이자, 문재인 대표를 일방적으로 편드는 행위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청래의 김한길 & 안철수 지도부 및 박영선 비대위 체제에 대한 비판은 그들의 어설픈 중도 정책과 기초선거 무공천 등 정치적 현실과 동떨어진 전략을 취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정청래는 문재인 대표가 중도층과 보수층을 공략하기 위해 이승만, 박정희 두 사람의 묘역을 참배했을 때에도 그를 강하게 성토한 바 있다. 그런 사람이 문재인 대표와 보조를 함께 맞추며 문 대표 체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해 온 것은 문 대표의 당 운영 정책이 정청래의 소신 및 신념과 일치하고, 비주류 진영의 문 대표 흔들기는 그들의 말마따나 문재인 체제의 무능 때문이 아니라 문 대표가 갖고 있는 국회의원 공천권을 빼앗기 위함이라는 부당한 목적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김종인 위원장의 국보위 참여 전력과 민주정의당 경력은 물론 문제지만, 이 문제는 김 위원장이 직접 광주를 방문, 공식 사과해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김종인 위원장은 군사독재 정권 아래 일하면서 의료보험체제 도입을 비롯해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재벌 자제들의 편법적 재산 증여 방지, 순환출자금지 등 경제민주화 정책을 여러 설계하고 실현시킨 바 있어 진보 진영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 인물이며#, 이미 새천년민주당에서 비례대표로 의원 생활을 한 적도 있다. 반면 이상돈 교수는 정부 여당과 함께했던 과거를 자기 비판하긴 했어도 5.16 군사정변을 '군사혁명'이라고 부르고, 국민의당의 공동선대위원장으로 넘어간 2016년에도 햇볕 정책을 비판하는 등 민주당 쪽과는 결이 확연히 다른 사람이다. 더민주 김광진 의원이 '아무리 위급한 수술 중에도 혈액형은 맞춰서 수혈합니다'라고 했던 의견이 당시 새정련이 이상돈 교수를 거부한 이유를 함축한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그랬던 그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종인 대표의 손에 의해 쫓겨났으니 인생사란 참 알 수 없는 것이다. 본인도 이 사건으로 인해 김종인 대표에게 원한이 사무쳤는지 문재인 전 대표가 영입했을 때에만 해도 '경제민주화님'이라는 극존칭까지 붙였던 김종인 대표를 이젠 팟캐스트 방송 등에서 '추호 선생'이라는 비하성 별명으로 부르며[20] 그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과 발언을 일관성 있게 고수하고 있다. 본인 스스로도 "정치 공학상 어쩔 수 없다"며 김 대표에 대해 중립적인 시각을 보일 생각이 없음을 농담조로 드러내기도. 김종인 대표의 합의 추대론이 불거졌을 땐 '동화은행에게 뇌물을 받았던 사람을 당대표로 합의 추대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드러냈는데, 정녕 그렇게 생각했다면 문재인 전 대표가 김종인 대표에게 전권을 몰아주고 2선으로 물러나려고 했을 때 문재인 전 대표에게 '이런 저런 단점이 있으니 전권을 이양하는 일에 대해선 다시 생각해달라'고 요청이라도 했어야지 그땐 조용히 뭐했냐는 뒷말이 있다.


2016년 1월 19일, 문재인 대표가 2선 후퇴 의사를 밝히자 본인 또한 최고위원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청래는 본인 SNS를 통해 "최고위원직에서 물러납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지 분명히 알고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총선 승리와 정권 교체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 모진 비바람과 눈보라가 그리 몰아쳤는지 모릅니다. 이제 흔들리는 뿌리와 줄기를 곧추 세울 때입니다. 입당의 힘이 탈당의 힘보다 강하다는 걸 저는 믿습니다. 분열의 힘보다 통합의 힘이 더 강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오직 국민만 바라보고 뚜벅뚜벅 제 길을 가겠습니다. 정권은 짧고 국민은 영원합니다. 정권의 힘보다 국민의 힘이 더 강하다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라며 백의종군 의지를 밝혔다. 이로써 더불어민주당은 본격적인 총선 체제로 재편됐고 총선에서 이겼다.


새누리당이 일찍이 불출마 선언을 한 김태호 최고위원에게 정청래의 지역구인 마포구 을 지역에 출마해달라고 요청하자, 본인 SNS에 "(불출마 선언을 한) 김태호 최고위원을 불러 올리지 말고 그냥 김무성 대표 본인이 올라와서 (나와) 경쟁하자"며 김무성 대표의 출마를 요구하였다.# 김무성 대표가 부산을 놔두고 굳이 마포로 올라올 이유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정청래가 컷오프 되면서 둘의 드림 매치는 무산되었다. 그런데 컷오프 이후인 3월 17일 김무성 대표의 지역구인 부산 중구·영도구의 김비오 더민주 예비후보의 캠프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 간접적으로나마 김무성 대표와의 대결이 성사되었다. # 하지만 결과는 그다지 좋지 못했는데 영도에서 김무성 대표가 다시 당선되었으며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의 지역구에 막말을 하는 바람에 결국 김진태 의원이 근소한 차이로 선거에서 승리했다. 자신의 원래 지역구인 마포 을에 손혜원을 당선시킨 것이 그나마 그가 건진 본전의 전부였다.


20대 총선이 끝나고 새 팟캐스트 방송을 만들어 진행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는데, 진짜가 나타났다 시즌 2를 함께 진행했던 시사평론가 이동형 작가, 자신의 후임자인 손혜원 의원과 함께 셋이서 '정치, 알아야 바뀐다'라는 시사 팟캐스트 방송을 진행하기로 했다.


2016년 12월 31일, 송박영신을 앞두고 청래당을 창당한 뒤 청래당으로 정권교체와 부역자 척결을 선언하고 지나가던 시민들에게 당직을 뿌렸다. 이후 저녁에는 청운동 주민센터 일대에서 "쉬운남자" 뱃지를 단 채 시민들과 사진을 찍었다.

2017년 1월 19일 썰전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여기에서도 모두까기적인 면모를 아낌없이 드러냈다. 여기서 반기문 前 UN 사무총장의 대선출마에 대해 '의도를 다 들키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놀랍게도, '(반기문이 지쳐서) "나 출마 안 하겠다!" 폭탄발언할 수도 있다'며, 향후 반기문의 대선 레이스 중도 포기를 정확하게 예측했다.


요즘들어 MLB파크 불펜에 자주 출몰한다. 게시글도 자주 쓰고 아재개그까지 할 정도이다. 그런데 마크가 공화당 최고 텃밭인 남부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라는 점은 특이한 점이다.


2017년 10월, 더불어민주당의 후원회 운영위원을 맡게 되었다.


정두언의 갑작스러운 자살 소식을 듣고 그의 집으로 즉각 찾아갔다고 한다. 판도라를 포함한 각종 방송을 통해 정두언과 각별한 사이가 되었기에 본인도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페이스북에 고인을 그리워하고 추모하는 글을 올렸다.


더불어민주당의 금태섭 전 의원 징계와 관련하여 경징계가 아닌 중징계를 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그러면서 “당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같은 노선을 가진, 같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정치 결사체“ 라고 덧붙였다는 것이다. 이는 (같은 강령을 갖는) 당 내의 정치적 다양성을 부정하는 비민주적 사고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


인터넷 커뮤니티 딴지일보 활동이 활발하다. 게시글 수와 추천수, 조회수 모두 매우 높아 네임드 수준으로, 사실상 이재명의 정치적 공백이 발생한다면 정청래가 가장 큰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될 정도로 팟캐스트 시청자들은 정청래에게 호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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