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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요한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3. 10. 23.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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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의사이자 정치인.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교실 교수 겸 국제진료센터 소장이며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의 국민대통합위원장을, 당선 이후 대통령인수위 국민대통합위원장을 맡았다. 2015년에는 한국보건재단 4대 총재를 지냈으며 2022년,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했으며 2023년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을 맡았다.

1959년 12월 8일, 전라북도 전주 출생이며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전라남도 순천으로 이사하여 유년 시절을 보내고 대전광역시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4년간 가정의학과 전문의 과정을 수료했다.

부모가 모두 미국인이라서 원래는 단독 미국 국적[]이었지만 대한민국 사회에 끼친 공로(한국형 구급차 앰뷸런스 개발 등)를 인정받아 2012년 '특별귀화'하여 한국 국적과 미국 국적을 모두 가진 복수국적자가 되었다. 대한민국 특별귀화자 1호라고 한다.

미국 이름은 존 린튼(John Linton). 종교는 개신교(장로회)다. 인요한이라는 이름은, 자신의 성인 '린튼'에서 린을 두음법칙을 적용해 인으로 하였다. 존이라는 영어 이름은 요한에서 유래한 것이며 한국어 성경에는 요한으로 부르기 때문에 그대로 붙여서 만들었다고 한다. 2012년 귀화하면서 얻은 성씨와 본관은 순천 인씨[] 이다.

한국 의사 면허와 미국 의사 면허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인요한 가족사

1998년 2월 8일 KBS <일요스페셜>에서 방영된 '한국과의 기막힌 인연 - 린튼네 사람들'.

인요한의 진외증조부 유진 벨[A]은 스코틀랜드계 미국인이며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로 1895년 4월 8일 한국에 파송되어 광주·목포 지역에서 활동하며 학교와 병원을 설립한다. 그의 딸 샬롯 벨[]은 인요한의 친할아버지 윌리엄 린튼[]과 결혼한다. 윌리엄 린튼은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태어났으며 22세 때 한국에 와서 48년간 전주와 군산 일대에서 선교와 교육, 의료봉사를 해왔다. 백범 김구 선생의 주치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고 3.1 운동 당시에는 기미독립선언서 작성 참여와 운동의 지원, 해외에 홍보를 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이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였다는 이유로 고초를 겪은 적 있는데, 그 공로가 인정되어 2010년에 3.1 운동 91주년 때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국가보훈처 보도자료. 첨부파일에서 건국훈장 애족장 28명 중 '윌리엄 린튼 W.A.Linton (3.1운동)' 확인 가능.

아버지 휴 린튼[]은 윌리엄 린튼의 3남이다. 할아버지의 선교활동 영향으로 전라북도 군산에서 출생하였으며, 미국으로 건너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태평양 전역에서 포로로 잡힌 한국인 노무자들을 돌보기도 했다. 이후 신학대학을 다니던 중 한국전쟁 소식을 듣고 해군장교로 복귀해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하였다. 이후 자신의 아버지인 윌리엄 린튼의 한국 선교활동을 이어받았다. 어머니 로이스 린튼[]은 미국 플로리다 출생의 미국인이며 신학대를 졸업하고 결혼을 통하여 남편을 따라 한국으로 이주했고 현재도 한국에 거주 중이다.

둘째형 스티브 린튼[]은 북한 어린이에게 의약품을 보내는 유진 벨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80회 이상 방북했으며 김일성과도 두 차례 만났다.

4대째인 인요한 자신은 2012년에 한국사회에 끼친 공로를 인정받아 특별귀화를 통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였다.

인요한의 형 스티브 린튼(인세반), 5대째인 조카 데이비드 조나단 린튼(인대위), 조카 레이첼 조이 린튼도 독립유공자의 자손에게 부여하는 대한민국 국적을 수여받고 복수국적을 허용받았다. 기사에 인요한의 할아버지 윌리엄 린튼의 독립운동 기여 공로가 소개되어 있다. 뉴스영상

연세대 의과대학 동창 인연으로 만난 치과의사 출신의 한국인 여성과 결혼하였다. 자녀로는 1남 2녀를 두고 있다.

2021년 4월 유 퀴즈 온 더 블럭[19]에 인요한의 조카 데이비드 조나단 린튼(한국명 인대위)이 출연했다. 직업은 변호사로 인요한의 첫째 형(데이비드 역크 린튼)의 아들이다.

인요한 정치 성향

정치적 성향은 보수주의에 가깝다. 즉, 일종의 호남우파인데, 사실 어릴 땐 자기도 호남 출신이라 보수 정권을 그닥 좋아하진 않았다고 한다. 다만 그의 고향인 순천이 새누리당 당대표까지 맡은 이정현이 국회의원에 당선될 정도로 전라도에선 비교적 진보 색채가 적은 편이긴 하다. 본인은 인물중심주의를 지향한다나..

어쨌든 호남이 고향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호남의 정서와 비슷한 부분도 있다. 후술되어있듯 고향인 호남에 대한 애착을 보이며, 5.18 시민군 통역관을 담당했던 경험으로 보수 일각의 5.18 비하와는 확실히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방송이나 언론 인터뷰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하고 그의 취임식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다만 노무현 정부 이후부터 민주당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 이렇게 보면 일종의 호남비노 난닝구 부대와 겹치는 성향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덕분인지 2010년대 들어 한땐 박근혜를 지지했다.# 그래서인지 박정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거나# 햇볕정책에 대해서 비판하며[] 북한의 핵 포기 의사를 거의 없다고 보았고#, 국민건강보험을 해체하고 의료민영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만 박근혜 정부 취임 이후엔 박근혜 정부가 자기 기준 자꾸 우경화해서인지 친박계와도 멀어져 일종의 비박계가 되었고, 2016년 탄핵 당시에도 찬성했다. 이후 대화의 희열에 출연해 말한 바에 따르면, 자신이 박근혜 정권의 입장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새누리당에 들어갔던 것이지만 착오였다고 멋쩍어하며 실수였다고 밝혔다. 인요한은 결핵 문제 해결을 위하여 의사 자격으로 방북한 경험을 통해 북한의 실상을 잘 들여다봤고, 이를 통해 보수정당이 북한을 제대로 알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이를 추진해보았으나 오히려 당 내에서 좌파 주장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2010년대 초반엔 일종의 미국 국적 호남 출신 특이 경력 전향자라고 생각했는지 여러 보수 언론들이 많이 인터뷰를 했지만, 이때도 인요한은 5.18 민주화운동을 비하하는 발언을 유도하는 일부 보수 언론을 향해 북한의 사주나 개입이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적극 반박하고 대북 정책에 있어서도 의료지원은 꾸준히 해야 된다고 주장했는데, 묘하게도 이런 점 때문인지 이후 인요한을 적극 홍보하던 보수 우익 세력들이 그에 대해 관심을 줄인 계기가 되었다

인요한 그외정보들

최초의 한국형 앰뷸런스를 개발한 인물이다. 아버지가 순천에서 교회 자재를 싣고 오다가 교통사고가 났는데, 큰 병원이 있는 광주로 택시를 타고 가다가 택시 안에서 운명하였다. 당시에도 앰뷸런스는 있었지만 인요한 자신의 표현으로는 그냥 누워서 가는 택시 기능밖에 못하는 열악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후 아버지의 지인들이 보내준 돈으로 아시아 토픽을 개조해 병원으로 이송하는 시간 동안 응급처치와 의료기능을 할 수 있게 만들었고, 이 앰뷸런스를 순천소방서에 기증하고 구급차 요원을 전문으로 양성하는 훈련을 전국에 정착시켰다. 이후에 개량을 거듭하며 전국에 보급하였다. 대화의 희열에서 요즘 앰뷸런스는 길이가 짧아 구급활동에 적합하지 않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의사들이 각성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김대중과 이런저런 인연이 있다. 1994년에는 독대한 적도 있다. 그 자리에서 왜 전두환에게 보복하지 않으냐고 따지자 김 전 대통령이 '보복이 도움이 되느냐.'며 자신을 타일렀다고 한다. 그리고 1996년에 김 전 대통령이 배탈이 나서 탈수 증상이 왔을 때 자택에 찾아가 직접 진료한 적도 있다. 이러한 인연 덕에 김 전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되었다. 회고하기를 당시 김 전 대통령이 자신의 취임식에 원수나 다름없는 전두환과 노태우를 초대한 것을 보고 자신의 정치 성향을 떠나서 '이 사람은 정말로 훌륭한 사람이다.'이라고 생각했다고.


2019년, 채널A '길길이 산다' 5회와 CBS '어른성경학교' 49회에 출연해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은 김대중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2018년, KBS 대화의 희열에 출연했다. 명백한 서양인 아저씨의 외모에선 상상하기 힘든 걸쭉하고 구수한 순천 사투리의 진수와 어렸을 때 이야기에서 비범한 스토리텔링을 느낄 수 있다.


인요한의 친구들이 방송에서 공통적으로 하는 회상에 따르면, 어렸을 때는 빼빼 마른 인상이였는데 자라면서 키가 190cm가 넘고 풍채가 상당한 거구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조부가 3.1운동, 자신의 부친이 6.25 전쟁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리며 자신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에서 시민과 외신기자들 사이에서 통역을 했다고 한다. 그의 조상은 119년간 4대에 걸쳐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그의 진외조부 유진 벨(Eugene Bell, 1868~1925) 선교사는 1895년 미국에서 조선에 온 후 전라도 등 남부지역에서 포교활동을 했다. 인요한의 할아버지인 윌리엄 린튼은 유진벨 선교사의 사위이다. 린튼 가문과 벨 가문의 선교사들은 한국에서 한남대학교를 비롯한 다수의 교육기관과 의료기관을 세우고 결핵환자, 한센병 환자 등 아프고 어려운 이들을 품었다.
특별귀화 1호 한국인이다. 2012년 3월 21일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특별귀화는 한국 정부가 특별한 공로가 있는 외국인에게 부여하는 국적이다.


SBS 예능 집사부일체에 출연한 편에 의하면 순천기독진료소에 가끔씩 내려와 지역주민들에게 진료를 해준다고 한다. 순천의료원에서 매산중 방향으로 살짝 들어가면 있는 곳이다. 참고로 이 순천기독 진료소는 할아버지인 인돈(윌리엄 린튼) 선교사가 세웠고, 현재 2층과 3층은 순천기독교선교역사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외국계 방송인 중에서는 한국어 실력이 따라올 사람이 거의 없다. 타일러, 일리야, 다니엘 린데만 등이 인요한과 비슷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이들은 성인이 된 이후에 한국으로 유학왔으며 후천적인 공부와 노력을 통해 학술적으로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쪽이므로 약간 경우가 다르다. 인요한은 애초에 한국에서 태어나고 쭉 자랐기 때문에, 네이티브급 한국어를 구사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한국어 네이티브이다. 즉 인요한은 영어를 열심히 배운 것이며, 한국어는 제1언어이다. 따라서 한국인 특유의 정서와 사고방식이 내재된 '토박이 한국어'를 구사하며 억양, 발음, 시제, 조사, 서울말, 전라도 사투리 등도 완벽하게 구사한다. 일부 발음이 약간 어색할 때도 있긴 하지만 평범한 토종 한국인들도 이 정도 어색한 경우는 충분히 찾아볼 수 있는 편이다.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 역시 네이티브급이다. 본인은 방송에 나와 하일처럼 영어를 잘 못한다고 예능용 드립을 치기도 했지만 부모님과 형제들이 모두 영어를 쓰는 상황에서 고향과 주거지가 한국이라도 영어를 아예 안 접하기는 어렵다. 저서에 따르면 영어를 배우기 위해 한국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초등학생 때부터 미국인 가정교사에게 홈스쿨링을 받았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영어권 외국인학교를 다녔으며, 어렵다는 미국 의대 과정까지 졸업한 사람이 영어를 서툴게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광주 MBC 인터뷰 영상에서 연세대병원 국제 진료소를 방문한 외국인 환자들과 유창한 영어로 소통하며 진료하는 모습이 나왔다. 대화의 희열에서도 자신들의 큰 형들은 영어를 거의 못한다고 예능용 드립을 치기도 했지만, 사실은 형제들도 네이티브 영어를 구사한다.


프로게이머 임요환과 이름이 비슷하다. 둘 다 유명인이다보니 혼동되곤 한다.


주한미국대사 피습 사건 당시 피해자였던 마크 리퍼트 미국 대사를 치료한 의사 중 한 명이다. 


아덴만 여명 작전 이후 석해균 선장을 오만에서 한국으로 이송할 때 이국종 교수가 에어 앰뷸런스를 섭외할 수 있도록 돕고[] 이후에도 급유나 한국 내 이송 등을 도왔다고 한다. 참고로 이국종 교수는 인요한 교수의 제자였던 적이 있기도 하다.


로버트 할리가 필로폰 투약 사건으로 활동을 중단하고 희귀암에 걸렸을 때 치료해준 의사 중 한 명이다. 로버트 할리가 가장 힘들 때 큰 도움이 되어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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