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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중앙교회 MBC 습격 사건

뤼케 2020. 3. 28.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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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5월 11일 밤에 만민중앙교회 광신도들이 MBC(문화방송) 사옥을 습격하여 방송을 끊어버린 사건이다.

이 사건은 방송법 제4조 2항[1] 위반에 해당될 수 있다. 본래 해당 조항은 정치적 목적의 개입을 방지하기 위한 것인 데다가, 해당 조항의 논리 자체가 정교하지 않다 보니 이 사건처럼 물리력을 동원한 방송편성 방해에 관하여 진지하게 논의된 바는 없었다. 달리 말하면, 이 사건 관련자들을 방송법 위반으로 기소하였다는 사실이 없다

 

배경

이재록 목사(한때 기성교회의 목사)는 1990년 10월 이단성의 문제로 예수교대한성결교단에서 제명처분 당한 후 1998년 8월 신이 자신의 교회에 임재한다고 하여 교계에 커다란 물의를 일으켰다. 만민중앙교회와 만민기도원을 중심으로 이재록 목사는 직통계시를 앞세워 자신이 신유의 은사, 물질의 축복 등의 권능이 있다고 교인들에게 인식시켰다.

1998년 12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서 이재록 목사와 만민중앙교회를 사이비로 규정[2]한 데 이어 이재록 목사에게 피해를 보았다는 이탈 신도들의 주장이 늘어나고, 이재록 목사가 도박, 음주소동, 여교역자와의 젊고 어린 무용수들과 집단난교 등을 밥 먹듯 벌이는 데다, 자신의 교회에만 신의 권능이 내렸다고 선전하며 촬영 중 일어난 분진을 가지고 하늘에서 금가루가 내렸다고 하거나, 교회 하늘에 무지개가 핀 것을 가지고 신의 권능이 만민중앙교회를 통해서만 일어났다고 선동하는 등 크고 작은 사고를 일으켰다. 심지어 라스베이거스에서 도박을 한 것에 대한 변명이랍시고 한 말이 "제 욕심은, 며칠 우리에게 시간이 있으니까 내가 좀 재정 좀 해결해야되겠다. 그리고 갔습니다!" 였다.

이에 MBC 시사 고발 프로그램인 PD수첩에서는 '이단파문! 이재록 목사! 목자님! 우리 목자님!' 이란 제목으로 이재록 목사와 만민중앙교회의 실태를 폭로하는 특집을 1999년 5월 11일 화요일 밤에 방영하기로 하였다. 다만 방영 전날 법원은 성추문 등 목사의 사생활은 방영하지 말라고 판결[3]했기에, 사생활 부분만 편집하고 방송할 예정이었다..

 

 

습격

그런데... 방송 당일 밤 10시 30분부터 만민중앙교회 폭도 2,000여명이 교회 버스, 자가용, 대중교통 등을 타고 와서 MBC 여의도 사옥 앞에 구름 떼같이 몰려들었다. 그 중 200여명이 방송국에 침입해 폭동을 일으켰다. 대노한 광신도들은 자신들의 교주인 이재록 목사의 실체가 방영되자마자, 이재록 목사를 지켜내겠다는 일념으로 방송국 주조정실을 점거하고 장비를 만지고 부수는 등 방송사상 초유의 사태를 일으켰다. 한술 더 떠서 신도들 중 몇 명은 당시 당직과 야근으로 방송국에 남아 있던 직원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PD와 방송기기 기술자를 포함한 방송 진행을 맡던 주요 직원들이 갑자기 폭행을 당했으니 방송이 중간에 끊어짐은 당연한 일.

이로 인해 8분만에 PD수첩의 방송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고, 방송이 중단되자 당시 남산 송신소가 보관 중이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자연은 살아있다'[4] 중 아프리카 얼룩말의 생태를 다룬 에피소드 '줄무늬의 충돌'을 송출했는데, 원 방송과 남산의 방송이 혼선되어서 신호도 끊기고 난리도 아니었다.
이 때 '동물의 왕국'을 대체 방송했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는데, '동물의 왕국'은 KBS에서 방영하는 프로그램이므로 사실이 아니다. 다만 이런 자연 다큐멘터리의 대명사로 꼽힐 정도로 동물의 왕국이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발생하는 것.

이때 "줄무늬의 충돌"을 방송한 것은 서울 및 수도권 기준으로, 대구의 경우는 블랙스크린 하단에 "방송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로 시작되는 자막이 뜬 화면과, 당시 MBC 마스코트였던 엠비즈가 나오는 화면이 떴고 여기에 당시 화면조정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것도 개그 콘서트의 씁쓸한 인생 코너의 배경 음악으로 쓰였던 것으로 유명한 유키 구라모토의 '로맨스'의 피아노 버전이... 이런 현상은 타 MBC 지역 계열사에도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여 강릉[5], 춘천[6], 부산[7] 등의 당시 상황은 KBS 뉴스 보도로 알려졌다.(당시 KBS 뉴스 9 보도)Nice church.

지역에서는 지역MBC 자체 판단에 따라 지방국 제작물을 방송하거나 검은 화면채로 나가기도 했다. 방송관련 서울MBC-지역MBC간 연락망도 끊겨서 지역MBC의 대처가 어려웠다고 한다.

 

왜문제였나?

이 사건은 대한민국 방송 역사상 최악의 방송사고 2위로 기록되었다.[8][9] 대한민국 방송 역사상 특정 단체의 물리력에 의해 방송이 중단된 최초이자 유일한 방송사고이며 심지어 5.16 군사정변이나 12.12 군사반란 등 군사정권 때에도 이런 일은 없었다. 한마디로 군부 수뇌부도 벌인 적이 없는 일을 사이비 광신도들이 한 것이다.

물론 서슬 퍼런 군사정권도 만만치는 않았는지라, 군부시절엔 군이 방송국을 통째로 강제장악하고 앵커들에게 혁명 공약을 낭독하도록 강요했었다. 12.12사태 이후 5공화국 정권에서는 아예 한술 더 떠서 밉보인 방송국 하나를 통째로 아작냈다. 그러나 적어도 만민중앙교회처럼 직원들을 폭행하고 방송을 가로막을 정도의 주제넘은 폭력은 휘두르지 않았다. 물론 군사정권의 언론 통제가 면죄되는 건 당연히 아니며, 총을 들이댄 것 자체가 협박이라 굳이 물리적인 폭력을 휘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감안해도 확실히 만민중앙교회가 습격한 사건은 군사정권의 언론 탄압이 양반으로 보일 정도의 중범죄다.

국가 중요 보안 시설인 방송국 주조정실을 민간인들이 쉽게 탈취했다는 점에서 보안 의식 허술에 대한 의문점이 제기되기도 했다. 방송국 건물은 범죄자나 적군에게 쉽게 점거되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미로에 가까운 복잡한 구조로 설계되어 있는데 그런 건물의 핵심 시설이 고작 민간인들에게 점거당했던 것이다. 무기라곤 맨손밖에 없는데다 미쳐봤자 민간인인 사이비 광신도들이였기에 망정이지 만약 방탄복과 AKS-74U 그리고 수류탄으로 무장한 북한 특수부대가 MBC 직원들을 인질로 잡았다면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을 것이다. 다만 MBC 여의도 사옥은 원래 예능이나 드라마 등을 촬영하는 스튜디오로 1979년에 착공, 1982년에 준공되었던 건물이었고, 이후 언론통폐합으로 인해서 제작 스튜디오로 설계되었던 여의도 MBC가 예상치 못하게 방송 송출 등을 담당하는 본사[10]로 지정되었기에 기지 방어의 한계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무장경찰들이 허겁지겁 도착했을 때는 신고가 접수된 지 1시간이 훌쩍 넘어서였고 최종적으로 해산된 시간은 새벽 1시 30분이었다는 것. 경찰청 정보처와 경비처간 의사소통도 안 되고 방송국 관할인 영등포경찰서와 교회 관할인 남부경찰서(현 금천경찰서)간에 신도들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교환도 제대로 안 되어서 저런 일이 일어났다. 당시 만민중앙교회 신도들이 야간 예배 직후 바로 버스와 승용차 여러 대를 타고 나감을 남부경찰서에서 인지해 이를 막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영등포경찰서나 경찰청 쪽에 전혀 통보를 하지 않는 바람에 골든타임을 날렸던 것이다.

다만 만민중앙교회 측의 인해전술과 MBC 내부에 만민중앙교회 측과 사전 내통한 조력자가 있어서 쉽게 털렸다는 기사가 나오긴 했다. 이러한 이야기가 신빙성이 있는 것이, 내통자가 주조정실의 상세한 위치를 미리 알려주지 않는 이상 곧바로 주조정실로 직행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 또한 몇몇 만민중앙교회 신도들은 경찰로 위장(!)하기도 했다. 사건 다음날 방영된 MBC 뉴스데스크에서도 이런 만민중앙교회 신도들의 치밀함이 일부 보도되었다. 사례 중에선 신도 일부가 경찰로 위장했다는 사실까지 보도되었다.

 

 

사건 다음날

"만민중앙교회 신도들은 사전에 치밀한 계획이 있었던 것처럼 MBC에 기습적으로 쳐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폭도와 다름없이 직원을 폭행하고 방송 기자재를 부쉈습니다."
당시 이인용 앵커의 앵커 멘트(1999년 5월 12일 MBC 뉴스데스크)

피해자인 MBC는 다음날 뉴스데스크에서 가히 방송의 쓴맛을 보여 주었다.

해당 소식을 약 50분 가량의 분량 중에서 22분 동안 14개 꼭지로 편성, 한마디로 반(半)특집 수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장 5개의 주요뉴스 꼭지 중에서도 2개나 차지한 사건임을 명심하자. 무려 전체 뉴스 방송 분량의 40퍼센트(5분의 2)를 할애하게 만든 소식이다.

멘트도 "폭도와 다름없이", "쳐들어왔다" 등의 다소 강한 어조의 용어를 대놓고 썼을 정도. 프롬프터의 존재를 고려한다면 이는 앵커 개인의 멘트가 아니라 보도국 차원에서 사전에 확정한 멘트라고 보아야 한다. 여기에 평소 점잖은 이미지의 이인용 앵커가 이 날만큼은 굳어진 표정을 하고 깊은 빡침이 드러나는 태도와 목소리로 기사를 전했다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가 있다.[11] 특히 언론의 자유를 강조하는 부분에서 이인용 앵커의 목소리가 유난히 비장해진다.

본방송 보도에서 이 사건을 일으킨 만민중앙교회에 대해서는 정말 가루가 되도록 질타했으며, 뒤늦게 대처한 경찰의 무능에 대해서도 여과 없이 비판했다. 그 결과 KBS 뉴스 9에 밀리던 뉴스데스크가 이날만큼은 20%가 넘는 시청률로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이 뉴스데스크 방송 직후 PD수첩 해당 화가 다시 온전한 채로 방영되었고, 이때 시청률은 PD수첩 역사상 가장 높은 39.6%를 기록했다.

급히 만드느라 그런 점도 있겠지만 제작진도 어지간히 빡쳤는지 기초적인 편집 실수를 한 게 곳곳에 보인다. 자막이 있는 부분이 읽을 틈이 거의 없이 바로 지나가버리거나, 명예훼손을 명예회손이라고 써서 내보낸다든지...
1999년 5월 12일자 MBC 뉴스데스크 다시보기
1999년 5월 12일자 KBS 뉴스 9 다시보기 - 의외로 KBS에서도 사건 다음날인 12일에 관련 소식을 11개 꼭지나 할애하며 중요 소식으로 보도했다. 2010년대처럼 타 방송사 언급이 자유로운 시대[12]가 아님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행동이었다. SBS의 과거 사례까지 들어가며 방송권 침해에 대해 꽤나 심각하게 느끼고 있었던 듯. 언론의 자유를 폭력으로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 동업자 정신으로 뭉친 것이다.

 

그후

검경은 5월 13일 사무국장을 포함한 교회 신도 6명을 체포했고, 이 중 만민중앙교회 부목사, 사무국장, 안전실 차장을 전파법위반죄로 기소했다. 8월 28일 부목사와 사무국장에게는 징역 3년을, 안전실 차장에게는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

검찰 수사와는 별개로 MBC는 만민중앙교회를 상대로 방송 기재 파손, 광고료 손실, 직원 부상 등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일부 승소하여 만민중앙교회 및 그 신도 61명으로부터 6억 9천여만 원을 배상받게 되었다. #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한국방송협회, 한국기자협회,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언론 관련 이익/시민단체들은 사건 다음날인 5월 12일 일제히 성명을 내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려 한 만민중앙교회를 규탄했다. #

이 와중에도 만민중앙교회의 악행은 여기서 그치치 않았으며, 나중에 나타난 대국민 사기가 바로 무안단물. 이쯤 되면 확실한 사이비 광신도다.

2014년 8월 부로 MBC 사옥은 여의도동에서 상암동으로 옮겨갔으며 상암동 사옥은 여의도 사옥보다 구조가 사실상 고난이도 던전 수준이라 봐도 될 정도로 더 복잡해졌고 CCTV도 여의도보다 상당히 많아진 데다, 크기도 축구장 21개에 맞먹을 정도로 커서 제2의 MBC 습격 사건은 일어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건물은 전부 분리가 되어있고 엘리베이터 하나만 믿고 가면 막다른 길이 나온다. 주조정실까지 타야 할 엘리베이터가 한두 개가 아니니 더 이상 습격당하는 것은 웬만한 국가 막장 테크가 아닌 이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해당 사건 당시 방영되었던 PD수첩 방송분은 다시보기가 불가능하다. MBC의 인터넷 다시보기 서비스가 시작된 것이 1996~97년도이기 때문에 90년대말 ~2000년대 초라면 인터넷 다시보기가 가능했지만 사이트가 개편되는 과정에서 다시보기가 중단되었고, MBC의 고대유물을 찾으려면 반드시 찾아야 할 MBC C&I에 문의를 넣어도 MBC가 만민중앙교회와 법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에 영상 제공을 해줄 수 없다고 거절한다. 심지어는 MBC의 특급 고대유물이 있는 MBC Archive 사이트에서도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 해당 영상이 본 문서의 가장 유용한 출처가 될 수 있는 만큼 상당히 아쉬운 일이었다. 그런데 RISS 검색 결과에 따르면 고려대학교 의학 도서관에 녹화본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확인해 본 결과, 현재 백주년 기념관(CDL) 2층에서 열람이 가능하다.

타 방송사에서 벌어진 일이고 방송이 중단되는 일은 없었지만, 이후 2016년 12월 19일, 45세의 김 모씨가 해병대 복장을 하고는 '손석희를 대통령으로'란 플래카드를 건 트럭을 몰고 JTBC 사옥 본사에 돌진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이 사건이 벌어진지 7204일, 약 19년 8개월째가 되는 2019년 1월 29일 벼르고 벼르던 PD수첩에서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 편이 방송되었다. 예고에서 20년 전 방송 사고 당시 화면과 당시 제작진의 인터뷰가 등장했다. 20년 전 MBC 습격 사건이 벌어진 날 방송된 내용 중 15분의 분량이 삭제되어 방송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재록 목사의 성추문 의혹이었다. 이 성추문 의혹을 20년만에 다뤘으며, 그 외에도 교회내 폐결핵 감염등 이재록 목사의 실체를 고발했다. 다행히, 상술한 이유 때문인지 방송국 습격 등의 사건 사고가 없었다. 20년 동안 칼을 갈고 또 갈아 날린 MBC의 복수극

 

 

타매체에서 의 패러디 

무한도전 YOU&ME 콘서트 방영분 중 무한창작동요제에 쓰인 노래를 리메이크해서 부르는 부분에서 노홍철이 자기 파트를 크게 망치는 바람에 동물의 왕국을 대신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다. 얼룩말이 잔뜩 나오는 걸로 봐서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듯. 해당 영상의 6분 30초경, 한국 ip로는 시청 불가지만 vpn으로 우회하여 볼 수 있음

그 외에 홍스구락부의 플래시 작품들 중 MBC 뉴스데스크를 패러디한 MBG 뉴스[13]에도 과학자가 청소부를 패는 장면과 시사논평이 취소되어서 앵커가 스태프에게 마이크를 집어던지는 장면을 가릴 때도 얼룩말 화면을 대신 보여주는 부분이 나왔다.

 

 

[1]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하여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
[2] 2004년 한기총에서 발표한 「정통과이단」문제, 주요교단과 공동대응을 들어 이단이 철회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 '정통과 이단'은 이후 한기총의 재검토 결과 같은 해 11월 폐기되었다. 즉, 만민중앙교회는 여전히 이단이라는 얘기다.
[3] 이재록 목사의 성추문과 관련된 내용은 이 사건으로부터 20년 후인 2019년 1월 29일 PD수첩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 편에서 다뤘다.
[4] 해당 다큐멘터리는 1996년부터 1997년까지 방영하였으며, 외국에서 제작한 여러 영상을 수입해서 하나로 방영한 것이다.
[5] 화재예방 캠페인으로 대체
[6] 서울 MBC와 마찬가지로 줄무늬의 충돌을 거쳐서 춘천과 봉의산을 영상으로 소개하는 방영으로 대체
[7] 영상다큐멘터리 '부산의 사계절'으로 대체
[8] 참고로 1위는 생방송 음악캠프 성기노출 사건, 3위는 배철수 마이크 감전 사고, 4위는 내귀에 도청장치 사건(배철수 감전 사고가 제외될 경우 3위)이다.
[9] 위키피디아에서는 이 사건을 최악의 방송사고 1위로 기록한다.
[10] 그 후 지속적인 증축 공사를 통해 1986년 4월에 정동 사옥에 남아있던 라디오와 FM, 보도국 등이 이전함에 따라 여의도 사옥으로의 완전 이전을 완료하였다.
[11] 참고로 이인용 앵커의 종교는 개신교다. 결혼 후 1994년에 세례를 받았다고... 출처.
[12] 무한도전의 영향이다. 지금은 대놓고 타 방송사 화면도 자료제공 XXX와 함께 자유롭게 송출되고, 또한 자연스럽게 언급해도 되지만, 1999년에는 사실상 금기시되던 시절이었다.
[13] 해당 영상은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당시 아폴로 안톤 오노의 반칙 논란,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주요 이슈로 나온 것으로 보아 2002년 초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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