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프로 축구 클럽. 연고지는 런던. 홈 구장은 토트넘 핫스퍼 스타디움.
영국 클럽 최초의 유럽 대항전 우승, UEFA 유로파 리그 초대 우승[10] 클럽. 애칭은 스퍼스(Spurs).[11] 1882년 창단되었으며, 토트넘에 소재하고 있는 화이트 하트 레인을 2017년 5월 14일까지 홈구장으로 사용하였다.[12] 이후 2019년 4월 3일부터 같은 자리에 세워진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을 새로운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1부 리그 우승 2회, FA컵 8회, 유로파 리그 2회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다. 1992년 프리미어 리그가 출범한 이후 한 번도 강등되지 않은 팀 중 하나이다. 이후 리그 최고 성적은 2016-17 시즌 준우승이며, UEFA 챔피언스 리그 최고 성적은 2018-19 시즌의 준우승이다.
엠블럼은 수평아리(싸움닭)가 축구공 위에 올라가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클럽의 모토는 라틴어인 'Audere EST Facere'로, 영어로는 'To Dare Is to Do', 한국어로는 '용감한 것은 도전하는 것이다'란 뜻이다. 토트넘과 관련된 글에는 종종 COYS라는 댓글이 올라오곤 하는데, Come On You Spurs의 줄임말이다.
문서명은 현재 가장 보편적인 명칭인 토트넘 핫스퍼지만, 과거에는 국내 명칭이 통일되지 않아 매체마다 다르게 부르기도 했다. 토텐햄 핫스퍼[13], 토튼햄 핫스퍼, 토튼햄 홋스퍼, 토튼엄 핫스퍼, 토트넘 홋스퍼[14], 토트넘 하츠퍼 등이다. 참고사항으로 국립국어원은 프로 리그 관련 명칭을 개정하면서 영국식 영어인 '토트넘 홋스퍼'로 표준 표기를 정했다.
특징
전체적으로 스피드에 있어서만큼은 프리미어 리그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팀이고 그러한 스피드를 잘 살리는 전술을 구사한다.[16] 대표적으로 베일 - 데포 - 레넌의 빠른 삼각편대의 역습은 상대팀을 항상 긴장하게 하는 요소였다. 이러한 스타일은 가장 재미있고 다이내믹한 축구를 한다는 평을 받았다. 때문에 토트넘의 경기는 화끈한 공격력과 부족한 수비력이 어우러져, 이기든 지든 다른 팀들의 경기보다는 재밌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2013-14 시즌 가레스 베일의 이적 이후 이를 살리지 못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2014-15 시즌 사우스햄튼 FC의 감독이었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의 부임 후 리그 5위의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53실점 득실차 +5 라는 나쁜 수치를 보여주며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다음 시즌인 2015-16 시즌 사우샘프턴에서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준 수비수 토비 알더웨이럴트를 영입하여 같은 국적의 얀 베르통언과 리그 최고의 수비진을 형성하며 리그 최소 실점(35골)과 최고의 골 득실(+34)을 이뤘다. 실로 환골탈태. 유망주 센터백이었던 에릭 다이어의 포지션 변경도 신의 한 수. 중앙 미드필더 영입 없이 시즌을 시작할 때만 해도 팬들의 우려가 컸으나 다이어가 리그 베스트급 활약을 펼쳐 토트넘의 반등을 이끌었다. 토트넘은 시즌 막판까지 2위를 달리며 레스터 시티 FC와 우승 경쟁을 했지만 마지막 4경기에서 무너지며 결국 3위에 머물렀다.
'EPL'하면 많은 사람들이 막대한 중계권료를 통한 영입 경쟁으로, 거금을 사용하는 리그로 알고 있다. 실제로 EPL의 많은 구단들이 넷 스펜딩[17]에서 적자를 보는 구단이 많지만, 토트넘은 그렇지 않다. 토트넘은 스타급 선수들에게 다른 강팀 주전급 이하의 비교적 낮은 연봉을 지급하여 예산을 절약한다. 최근 다섯 시즌의 토트넘 홋스퍼의 넷 스펜딩을 본다면, 2011-12 시즌 £25.35m, 2012-13 시즌 £-4.1m, 2013-14 시즌 £10.51m, 2014-15 시즌 £0.55m, 2015-16 시즌 £12.44m의 이적료 흑자를 기록했다.[18] 이와 비교해서 강등권인 뉴캐슬이나 선덜랜드의 경우 각각 £-77.20m, £-49.54m를 기록했으며, 맨체스터 시티는 £50.74m 가치의 선수들을 팔고도 £-100.2m를 기록했다. 때문에 토트넘 팬들은 귀신같은 이적료 협상력을 보여주는 레비 회장에 대해서 혀를 내두를 때도 있지만, 이득에 급급한 나머지 느린 협상 기간, 이해할 수 없는 영입 등의 행태에 대해서는 크게 비판한다. 특히 2018-19 시즌 여름과 겨울 이적시장을 합쳐 영입한 선수가 0명이었던 건 프리미어 리그 최초.
이로 인해 2016-17 시즌만 해도 EPL에서 가장 젊은 팀이었으나 현재는 결코 젊지 못한 팀이다. 4년이 흐른 지금, 그 시절 젊었던 선수들이 점점 나이가 들고 있기 때문.(...)
2014년 이전
* 잉글랜드 역대 3번째 더블 (1960-61 프리미어리그, FA컵 우승)
* 잉글랜드 클럽 최초의 유럽 대항전 우승 (1962-63 UEFA 컵 위너스컵)
* UEFA컵(현 유로파 리그) 초대 우승 (1971-72)
* 유럽 4대 리그 개막 최다 연승 (11연승)
1882년에 토트넘에 있는 올 할로우 교회 학생들에 의해 창단됐다. 처음에는 북런던 지역의 유일한 팀이었으나, 1913년에 아스날 FC가 울리치에서 북런던의 하이버리로 이전하자 북런던 지역 팬들이 갈라져 라이벌이 성립되었다.[19]
1940년대까지는 아스날의 위세에 밀려 한동안 존재감 없이 지내다가, 1949년에 아더 로위 감독 취임 후 '푸시 앤 런'이라는, 스피드를 중시한 공격축구를 선보이며 팀은 새로 변모했다. 이어 빌 니콜슨의 활약으로 1951년 1부 리그 승격에 이어 1952년 1부 리그에서 우승컵을 따냈다.
니콜슨은 선수로 17년 (1938~1955)[20], 스카우트와 코치 등 스태프로 3년 (1955~1958), 감독으로 16년(1958~1974)을 토트넘에서만 활약한 원 클럽 맨 오브 원 클럽 맨으로, 지금까지 팬들의 무한한 존경을 받는 레전드다.[21] 육성 시스템이 지금 같이 확립되어 있지 않던 시절, 유스 선수들이 그라운드 관리, 1군 팀 유니폼 정리 등 자잘한 일까지 했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말 그대로 토트넘의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경험해본 인물.켠 김에 왕까지[22] 이 "빌 닉(Bill Nick)"이 감독으로 이끌던 16년 동안 토트넘은 총 8개의 메이저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팬들은 이 시기를 흔히 스퍼스의 최전성기로 칭한다. 1960년대 초반에 지미 그리브스와 대니 블랜치플라워, 존 화이트 등을 필두로 하여 1961년 리그-FA컵 더블 우승을 비롯하여 1962년 FA컵 연속 우승과 유러피언컵 4강 진출, 그리고 1963년에 UEFA 컵 위너스 컵에서 우승했다.[23] 1960년대 중반 이후 테리 베너블스, 조 키니어, 앨런 길진, 마틴 치버스를 중심으로 리빌딩을 하여 1967년 FA컵 우승, 1972년 UEFA컵 우승과 2차례(1971, 1973)의 풋볼 리그 컵 우승도 달성했다.
이후 토트넘은 1977-78 시즌에 유일하게 2부 리그에 있던 시절을 제외하고는 최상위 리그에 쭉 머무르면서 글렌 호들, 게리 마벗, 오스발도 아르딜레스, 리카르도 비야 등이 활약하던 1980년대에 FA컵을 두 번 차지하고 UEFA컵도 한 번 차지하며 상위권에 안착하다가, 프리미어 리그 출범 뒤인 1990년대 이후에는 수비보다 공격이 취약해 오랜 기간 10위 근처의 평범한 중위권 팀 정도 성적을 거두었다. 이 와중인 2001년에 스포츠 매니지먼트 업체인 ENIC이 앨런 슈거로부터 구단을 인수했고, 수비수 솔 캠벨이 라이벌 아스날로 이적해 팬들에게 충격과 분노를 안겨줬다.
반면 2000-01 시즌 도중에 감독으로 복귀한 글렌 호들은 그동안 취약했던 공격진 보강에 주력하여 2002년에 리즈 유나이티드로부터 로비 킨을 샀고, 2003년 오프시즌에선 유망주 프레데릭 카누테와 엘데르 포스티가를 샀다. 다만 2002-03 시즌에는 수비가 취약해 62골을 허용시켜 10위를 찍었다.
2004년부터 네덜란드인 감독 마틴 욜이 부임해 2시즌 연속 리그 5위를 기록하며 유로파 리그(당시에는 UEFA컵)로 진출시키며 좋은 성적을 내면서 중상위권 팀으로 발전시켰다. 하지만 식중독 사건 이후 슬럼프가 찾아왔고, 마이클 캐릭 등 주요 선수가 빠져 나가면서 기나긴 부진에 빠졌다. 이후 욜 감독은 구단주와 마찰을 빚으면서 경질당했다.[24]
마틴 욜 감독의 후임은 프리메라 리가에서 세비야의 감독을 맡고 있었던 후안데 라모스였다. 라모스 감독은 2007-08 시즌 중간에 부임했기 때문에, 그의 뜻대로 팀을 재정비할 수 없는 상태에서 11위로 마무리했는데, 이 때 칼링 컵을 들어 올리며 서포터들의 지지를 얻어냈다. 그 성공을 등에 업고 2008-09 시즌이 시작하기 전에 팀을 완전히 갈아엎었다. 이영표도 이 시기에 팀을 떠났다. 하지만 리빌딩은 실패했고, 강등권의 위기까지 몰렸으며, 결국 경질당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강등권 탈출 전문가로 유명한 해리 레드냅 감독을 선임했다. 레드냅은 나쁘지 않은 선전으로 리그를 8위로 마감했고, 이후 첫 챔피언스 리그 진출 등, 4시즌 동안 빅 4를 위협할 수준의 팀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 시기 저메인 데포, 루카 모드리치, 라파엘 판데르파르트 등 주요 선수들을 영입했으며, 가레스 베일의 포지션을 윙어로 변경하며 기량을 꽃피우게 하기도 했다. 09-10 시즌 4위로 마감하면서 꿈에 그리던 챔피언스리그 진출도 이루고, 10-11시즌엔 AC밀란을 꺾고 챔스 8강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2011-12 시즌 레드냅은 잉글랜드 국가대표 감독설이 나오면서 회장과 마찰을 빚었고, 챔피언스 리그 진출이 좌절되며 사임했다.
해리 레드냅 감독의 후임으로 아카데미카, 포르투, 첼시에서 감독직을 맡은 바 있는 안드레 빌라스보아스가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됐다. 공격적이고 라인을 끌어올리는 전술을 선호하는 빌라스보아스와 베일과 레넌, 워커, 디포 등 빠른 선수들이 즐비했던 토트넘은 궁합이 맞는 듯 보였다. 그러나 임기 1년 차에는 가레스 베일에 상당 부분을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 때문인지 스트라이커들이 부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2년 차엔 베일을 판매한 금액으로 7명을 데려왔는데, 그 결과가 좋지 않았다. 에릭센을 제외한 6명이 베일의 빈자리를 채우기는 커녕, 오히려 팀의 구멍이 됐다. 심지어 지난 시즌 주전 센터백이었던 베르통언의 부상으로 도슨과 키리케슈(+카불)가 센터백 듀오를 하는 일이 꽤 잦았는데, 올라간 라인 때문에 뒷공간이 계속해서 노출하면서, 리버풀이나 맨시티 같은 팀들에게 대패를 연거푸 당하고 시즌 중 결국 경질되었다. 래드넵이 로테이션 문제로 욕을 먹었다면, 빌라스보아스는 부족한 스쿼드에 지나친 자기 전술 고집으로 욕을 먹고 떠나게 되었다.
감독대행으로는 수석 코치였던 팀 셔우드가 선임됐는데, 이후 관뚜껑에 들어가 있던 아드베요르가 살아나는 신기함을 보였으며,[25] 솔다도는 여전했다. 하지만, 선수 기용 면에서 선수들과 불화가 있었으며, 빅 4에게 약한 모습은 그대로였다. 볼란치를 두지 않는 파격적인 전술을 감행했는데, 강팀을 상대로는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라이트백 카일 워커를 중미로 활용하는 등의 파격을 선보이기도 했지만 그리 효과적이진 못했다. 다만 해리 케인, 나빌 벤탈렙 등 재능 있는 유소년 선수들을 1군에 데뷔시킨 점은 칭찬받는다. 시즌이 끝나고 구단은 그를 경질하고 새로운 감독으로 사우스햄튼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를 선임했다.
2014년 이후
포체티노 선임 이후 팀 분위기를 해치는 먹튀들과 기대만큼 활약하지 못한 주축들을 모조리 정리하는 초강수를 뒀다. 그 와중에도 타운젠드 등 몇몇 선수를 제외하곤 별 군말 없이 나간 걸 보며 그의 선수단 장악력이 꽤 대단한 것 같다는 게 팬들의 평. 실제로 포체티노가 감독을 맡은 두 시즌간 선수 방출로 벌어들인 이적료만 1억 파운드에 이른다. 같은 기간 영입 시장 지출은 7730만 파운드.
포체티노의 경력을 살펴보면 가는 곳마다 젊은 선수들을 육성하고 끈끈한 수비 조직력과 스쿼드 장악력을 뽐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위 "베일 머니"를 값비싼 먹튀 영입에 모조리 써버렸으나, '홋스퍼 웨이'라는 최신 훈련시설을 막 마련한 토트넘 입장에선 한정된 자원으로 기대 이상의 결과를 낼 수 있는 포체티노가 상당히 매력적인 카드였던 셈. 게다가 막장으로 유명한 토트넘의 수비력을 한 단계 높여줄 수 있으리라 기대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토트넘의 선택은 옳았다.[26] 선수 면면을 보자면, 델레 알리를 불과 5백만 파운드에 영입해 잉글랜드의 차세대 스타로 키워놨고,[27] 확고한 주전으로 자리 잡은 에릭 다이어 역시 4백만 파운드에 값싸게 데려와 그저 그런 수비수 유망주에서 확고한 주전 미드필더로 바꿔놨다. 어처구니 없는 실점 장면을 줄이고 리그 최소 실점 팀으로 올려놓은 건 덤. 여러 모로 포체티노를 선택하면서 팀 컬러가 많이, 열심히 뛰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는 15-16 시즌 챔스 진출과 최종 순위 3위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하지만 분명히 단점과 부족한 점은 존재한다. 일단, 포체티노의 전술적 역량은 탑 감독이라고 불리기는 부족하다. 가끔씩 이해할 수 없는 교체로 분위기를 끊어먹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기도 했다. 유스를 육성하고 선수들을 북돋는 매니저 역할은 월등하지만 적재적소에 뛰어난 전술을 적용하는 헤드 코치로서의 역할은 아직 모자란 모양.[28]
두 번째로는 지나치게 젊은 스쿼드. 2015-16 시즌 내내 많은 찬사를 받았던 다이어, 알리, 워커 등 젊은 선수들이 우승 실패가 확정되자 멘탈이 부서진 모습을 보여줬다. 많이 뛰고 열심히 뛰는게 팀 컬러랬더니 그걸 넘어서 상대편을 많이 패고 열심히 패는 모습까지 보여줘버렸다. 옐로카드 9개를 받으면서 EPL 신기록을 세운 36라운드 첼시전은 변명의 여지조차 없이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결국 마지막 세 경기 동안 1승이라도 거두면 2위 확정인 상황에서 1무 2패를 거두며 라이벌 아스널에게 2위를 내줬다. 팀 내 베테랑이라고 할만한 선수가 없다는 것도 큰 단점인데, 주장인 위고 요리스는 GK라 필드 플레이어들을 조율하긴 힘들고, 부주장인 얀 베르통언은 부상으로 2개월이나 빠졌던 데다가, 그나마 고참인 무사 뎀벨레는 본인부터 분위기에 휩쓸려 버리는 모습을 보여줬다.(코스타의 눈을 찌르는 것처럼 보였다)[29] 이 문제는 어렸던 선수들이 점차 나이를 먹어가면서 해결되는 모양새다. 토트넘은 2018-19 시즌 기준으로 오히려 EPL 내에서 선수단 평균 연령이 상위권에 속한다.
세 번째는 신구장 건립 건이다. 세계구급으로 비싼 런던 땅값 덕분에 돈이 한두 푼 나가는 게 아니다. 영입 시장이 점점 과열되는 축구판에서 구장 건립 비용으로 돈이 나가면 그만큼 스쿼드 투자에 돈이 덜 들어간다는 것은 당연지사. 그래도 아래 나오는 NFL 유치와 나이키와의 새 유니폼 계약 체결, 그리고 나날이 높아지는 TV 중계권 수익 덕분에 큰 타격 없이 재정관리를 할 수 있다는 게 구단 측의 설명. 다른 건 몰라도 재정 문제에 관해선 갓레비를 외치는 팬들이다.
네 번째로 주급이 타 라이벌 팀에 비해 적은 편이어서, 팀의 주축 선수를 잃을 위험이 크다. 타 팀들보다 적은 주급 체계가 계속 된다면 많은 선수들이 빠져나갈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선수들을 지키고, 더 나아가 확고한 명문 강팀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주급 체계에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해 보인다. 회장인 다니엘 레비가 THST[30]와의 미팅에서 서포터들에게 밝힌 바론, 토트넘은 EPL내에서 보너스를 가장 많이 지급하는 구단이라고 한다.# 즉 기본적인 주급은 다른 클럽에 비해 적지만 선수의 성적이나 경기력만큼 급료를 더 받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라는 것. 이 때문에 선수들이 금전적인 문제로 클럽을 떠나려 하진 않는다고 밝혔다. 이로써 팬덤 내에서 팀 주급에 대한 논의는 어느정도 일단락된 모습이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스퍼스 팬들은 차라리 보너스를 줄이고 주급을 올려주는 건 어떻겠냐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다행히 2018년 6월 8일, 팀 내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해리 케인이 보너스 포함 주급 30만 파운드[31]라는 거액으로 2024년 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이는 프리미어 리그 내에서도 순위권에 드는 고액 주급으로, 로컬 보이 및 프랜차이즈 스타를 지키겠다는 다니엘 레비 회장의 굳은 의지가 보인다. 또한 최근 주전 수비수 토비 알데르베이럴트와의 재계약에도 성공하며 달라진 주급 체계를 예고한 다니엘 레비 회장이다.
마지막으로 우승컵 유무가 있다. 토트넘은 챔피언스 리그, 프리미어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려 본 적이 클럽 역사상 한번도 없으며, 유로파 및 1부 리그 또한 마지막으로 우승컵을 들어올린지 40년이 넘어가는 수준이다. 심지어 가장 최근 우승 컵을 들어올린 기록이 무려 12년 전 칼링컵일 정도로 실적이 다른 EPL 라이벌 팀들에 비해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턱없이 부족하다. 옆 동네 아스날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장기간 우승컵이 없는 클럽은 주축 선수가 떠나가게 되어있다.
2019-20 시즌 초반 토트넘이 리그 중하위권에서 허덕이는 모습을 보이게 되자 구단은 2019년 11월 19일 (현지 기준) #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을 전격적으로 경질하고 바로 다음날 11월 20일 (현지 기준) 주제 무리뉴 감독을 신임 감독으로 선임하였다. 무엇보다도 우승 청부사라 불리며 상당한 우승경력을 지닌 무리뉴 감독이 새롭게 취임하면서 어떠한 모습을 보여줄지가 관건이 되고 있다. 일단 취임 이후 2연속 승리를 거두면서 침체되었던 팀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끌어올리는 상황이 되기는 하였다. 결국 무리뉴 감독의 취임은 토트넘에서 우승을 바란다는 것이 되기 때문에 앞으로 토트넘의 행보가 주목되는 상황이 되었다.
챔피언스 리그와 의 인연
토트넘의 챔피언스리그 좌절 역사는 조금 불쌍할 정도이다. 2012-13 시즌 1점 차이로 5위의 성적으로 좌절된 것은 양반이다. 2011-12 시즌에 4위를 했지만, 6위인 첼시가 바이에른 뮌헨을 꺾고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하는 바람에 진출이 좌절되었다. 이는 한 리그에서 4팀만 챔피언스 리그에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32] 2005-06 시즌에는 최종전 38라운드에서 비기기만 해도 4위가 확정되는 경기에서 주전 중 대부분의 선수들이 호텔 음식을 잘못 먹고 식중독이 생기는 바람에 웨스트햄에 2:1로 패하여 5위의 성적으로 진출이 좌절된 사건도 있다.(소위 라자냐 사건)[33] 토트넘 측은 FA에 경기를 늦출 것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 최종 라운드는 승부조작을 막기 위해 모든 경기가 동시에 치러져야 하기 때문이었다.[34]
2016-17 시즌에는 챔피언스 리그 조별예선에서 3위를 하는 바람에 또 다시 유로파 리그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KAA 헨트에게 결국 밀려나서 32강에서 조기탈락했다. 그야말로 웸블리의 저주.
2018-19 시즌, 8강에서 맨체스터 시티를 기적적으로 꺾고 4강에서도 아약스를 원정에서 루카스 모우라의 해트트릭으로 역전하면서 마침내 결승전에 진출하지만, 상대는 마찬가지로 4강에서 FC 바르셀로나를 대역전극으로 이기고 올라온 리버풀 FC였다. 경기는 결국 무사 시소코가 어이 없는 핸드볼 파울로 이른 시간에 PK를 내주었고 교체로 나온 기적형 공격수 디보크 오리기의 추가골에 무너지고 말았다. 여담으로 해당 결승전에서 박지성에 이어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에서 뛰는 한국인 선수로 손흥민이 선발 출전하였으나, 아쉽게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출전과 동시에 득점 및 우승 타이틀을 달게 되는 최초의 한국인 선수이자 아시아 선수가 되기에는 실패하였다. 그래도 아직까지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를 밟아 본 아시아 선수는 박지성과 손흥민 둘 뿐이다.
그래도 유로파리그는 1971-72, 1983-84 시즌 우승 2회를 달성했다.
아스날FC
전통의 라이벌이며 이 두 구단의 시합은 북런던 더비라 불린다. 북런던 더비는 맨체스터 더비, 머지사이드 더비 와 같이 프리미어 리그를 대표하는 더비 매치 이며, 공격적이고 빠른 경기가 치러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기마 경찰이 출동하고 누가 이기던 상관없이 경기장 시설은 박살나는게 다반사다. 원래부터 유래가 깊은 더비였고, 몇십년간 아스날이 토트넘을 작살냈지만 최근 토트넘이 반등하고 아스날이 주춤하면서 그 열기가 더 뜨거워지고 있다.
먼 옛날 두 팀은 지역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그러나 아스날의 연고지 이전으로 당시 토트넘의 구장인 노섬벌랜드 파크와 5km까지 거리를 좁히면서 악연이 시작되었다. 특히 1919년, 1부 리그 팀을 20개에서 22개로 늘리면서 당시 1부 최하위였던 토트넘과 2부 5위였던 아스날 중 한 팀만 1부에 참가해야하는 일이 벌어졌고, 이 때 아스날이 승격하며 토트넘이 강등당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악연 중 하나로 솔 캠벨과 관련된 일화가 유명하다. 솔 캠벨은 토트넘 유스 출신으로 줄곧 토트넘에서만 뛰었다. 주장까지 맡았던 핵심 선수였는데, 2001년 재계약을 미루었다. 이 때 ‘타 팀으로 이적하더라도 이탈리아나 맨유, 리버풀로 갈 것이다.’며 팬들을 안심시킨 뒤, 아스날로 이적하고 무패 우승의 주역이 되며 토트넘 서포터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다른 하나는 상술했던 라자냐 사건. 1995년 이후 토트넘은 11년동안 아스날보다 높은 순위인 적이 없었기에 특히 관심이 집중되었으나 좌절되고 만 것이었다. 아스날은 줄곧 ‘성 토터링엄의 날(St. Totteringham's day)’[35]을 기리며 토트넘을 조롱해왔기 때문에 더욱 안타까운 일이었다.
첼시FC
이들과의 악연은 특히 훌리건과 관계된 것으로 유명하다. 첼시의 훌리건은 신나치 보수파, 극우주의와 관련이 많았다. 이들 중 극성인 사람들은 히틀러를 찬양하며 인종청소를 선동하고 런던 내 유대인들에게 악감정을 가졌다. 유대인이 밀집한 지역을 연고로 하는 토트넘 역시 곱게 볼 리 없었으며, 이는 경기장 내까지 이어져 유대인을 비방하는 노래를 부르는 등 여러 악연을 쌓아갔다. 헌데 첼시가 유태인 구단주를 받아들이면서 되려 토트넘 서포터들에게 '축하해, 우리랑 형제네?' 라고 비아냥을 받았으니.... 토트넘이 첼시에게 : 어서 와~ 유대인은 처음이지?
2011-12 시즌 여름 이적시장에서 토트넘이 핵심 선수 루카 모드리치의 이적 요청을 거부한 것을 시작으로 라이벌 의식이 강화됐다. 동 시즌에 첼시가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며 리그 4위였던 토트넘이 다음 시즌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실패했다.
2013-14 시즌 토트넘은 샤흐타르 선수 윌리안의 영입을 거의 확정지은 상태였다. 윌리안이 토트넘과 개인협상 및 메디컬 테스트를 위해 런던을 방문했을 때 이를 알아챈 첼시가 하이재킹을 시도하여 그를 데려갔다. 당시 첼시 감독이었던 무리뉴는 이에 대해 "메디컬은 극비로 진행해야 돼. 축구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최선의 방법은 메디컬과 계약을 동시에 하는 거지."라며 비웃었다. 첼시의 응원가 중에도 그 때 윌리안 사건을 놀리는 챈트가 있다.
2015-16 시즌에는 레스터와 우승 경쟁 중이었던 2위 토트넘이 첼시 원정 경기에서 전반 2-0으로 앞서나갔으나 동점을 허용하며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2016-17 시즌에는 두 팀간의 치열한 리그 우승 레이스 끝에 결국 첼시가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무관의 위기에 처한 토트넘은 FA컵에 모든 것을 걸었으나 그마저도 첼시에게 발목을 잡히며 실패했고, 그렇게 결승에 올라간 첼시는 아스날에 패하며 최대의 앙숙이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2017-18 시즌 토트넘은 첼시가 노리던 페르난도 요렌테를 하이재킹하여 팀의 공격수를 보강하며, 덤으로 첼시에게 4년 전의 복수를 했다.
위의 두 팀과 더불어 런던 내 최고의 인기클럽 중 하나인 웨스트 햄 역시 지역 내 라이벌이다. 맞대결에서 치열한 경우가 매우 많다.
한국에서 의 인지도
국내에서는 이영표 선수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활약했던 클럽으로도 유명했다. 이 시기 토트넘은 윙백을 많이 영입하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기존 선수들이 어중간했기 때문이다. 그 중 이영표는 가장 안정감이 있었기에 이영표를 신뢰했던 마틴 욜 감독 체제에서는 선발 출전을 많이 하였지만, 이후 후안데 라모스 감독 체제에서는 정확한 크로스 및 공격적인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이는 오버래핑 이후 커버해주는 선수가 나빴기에 공격보다 수비 위주로 플레이하다보니 그렇게 보였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피지컬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어서 수비에서 몸싸움에 고전한 경우도 많았다. 2007년 가레스 베일, 앨런 허튼 등의 윙백을 영입하며 이영표는 점점 전력외로 분류되었고, 2008년 8월 토트넘을 떠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하였다.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번번히 실패하면서 눈에 띄는 행보가 적기에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지는 않았다. 그래도 챔스권을 위협하기에 충분한 팀이며, 큰 인기는 없었지만 가레스 베일, 모드리치 등 유명한 선수들이 소속되어 있던 터라 인지도가 없는 팀은 아니었다.
그러던 중 2015년 여름 이적 시장 막바지에 갑자기 손흥민의 토트넘 이적설이 나오면서 급격한 관심을 받았고, 8월 28일 금요일 오후 6시경(한국시간) 공식 오피셜이 발표되었다. # 이적료 3000만(한화 408억 추정치) 유로를 기록하며 토트넘 핫스퍼로 (2020년까지) 5년 계약을 확정지었다. 손흥민의 이적료는 아시아 역대 최고이며, 당시 토트넘 역대 1위 기록이다. #
손흥민이 토트넘에서 점차 좋은 활약을 하면서 현재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팀 중 하나로 꼽힌다. 해외 축구를 처음 보기 시작하는 사람도 기본적으로 손흥민은 대충 알기 때문에 토트넘 팬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해리 케인, 위고 요리스 등 월드 클래스 선수들이 토트넘의 주축 선수로 자리 잡고 있는 이유도 크다. 그 여파로 국내 토트넘 카페에선 매주 경기가 있을 때마다 손흥민 관련 글들이 넘쳐난다.
그외
홋스퍼[38]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유일한 구단이다. 이에 대해서 토트넘 팬들은 "유나이티드, 시티, 로버스로 가득 찬 세상에 홋스퍼는 하나밖에 없다!"(In a world full of Uniteds, Citys and Rovers, there is only One Hotspur)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현지에선 보통 줄임말인 '스퍼스(Spurs)'라고 부르는데, 타팀팬들이 이를 발음이 비슷한 스퍼드(Spuds, 감자)라고 비하한다.
한 때 위르겐 클린스만을 영입하기도 했지만 한 시즌 만에 다른 팀으로 가버렸다.[39] 그러나 그 한 시즌 동안 모든 대회를 통틀어 30골을 넣는 환상적인 활약을 했다. 클린스만은 이후 97/98시즌 도중 토트넘이 강등권에서 허덕일 때 구세주처럼 재이적, 팀을 구해냈다. 특히 강등권 팀간의 대결이었던 37라운드 AFC 윔블던과의 경기에서는 혼자 4골을 몰아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클린스만의 이름은 토트넘의 레전드로 팬들 사이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2015-16 시즌에는 리그 내에서 가장 젊은 구단이 되었다.# 토트넘의 평균 나이는 24.7세이며, 리버풀의 25.5세, 뉴캐슬의 25.6세보다 어렸다. 유럽 상위 5개 리그에서 토트넘보다 어린 구단은 니스, 발렌시아 CF, 레버쿠젠뿐이었다.
현지 시간으로 2015년 7월 8일, 토트넘의 새 경기장에서 미국의 프로 미식축구 리그인 NFL과 10년 계약을 맺고 1년에 최소 2경기가 치러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자세한 건 NFL 인터내셔널 시리즈 참조. 웸블리로선 만만치 않은 도전자를 만난 셈. 그리고 2018년 10월 14일 시애틀 시호크스와 오클랜드 레이더스 간의 경기를 새 경기장에서의 첫 NFL 경기로 선보일 예정이었으나 안전상의 문제로 새 경기장의 개장이 늦어져 결국 웸블리에서 경기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9년 4월 2일 새구장이 개장되었고 2019년 10월 6일의 시카고 베어스와 오클랜드 레이더스간의 경기가 새구장의 첫 NFL경기가 되었고 한주 뒤인 10월 13일에 캐롤라이나 팬서스와 탬파베이 버캐니어스간의 경기가 두번째 경기가 된다.
2016-17 시즌 토트넘의 챔피언스 리그 경기는 화이트 하트 레인이 아닌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이유는 신구장을 건설하기 위해 현재의 홈구장인 화이트 하트 레인의 북측 스탠드를 없애야 했기 때문이다. 2017-18 시즌과 2018-19 시즌 중반까지는 모든 홈 경기가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신구잔 개장 시기가 점점 늦어지며 2018-19 시즌 막바지인 4월 3일이 돼서야 개장됐다.
금호타이어가 2016-17 시즌부터 2년간 토트넘과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2부리그에서 승격하자마자 바로 다음 시즌에 우승한 3팀중에 하나이다. 1950년에 승격하여 1951년에 우승을 하였다. 나머지 두팀은 리버풀과 입스위치다.
2017-18 시즌 9R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프리미어 리그 한 경기 최다 관중(80,827명)을 기록하였다. 리그경기가 웸블리에서 열린 것은 이번 시즌이 처음이었고, 화이트 하트 레인때보다 두 배 이상 인원을 수용할 수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같은시즌 25R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81,978명으로 다시 한 번 경신하였다.
팬들 사이에서 자조적으로 쓰이는 'spursy'라는 단어는 '중요한 때에 언제나 그리고 필연적으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이라는 뜻이라고(...)#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더 잃을게 없던 한국이 철전지 원수인 독일을 2-0으로 박살내 독일을 조별리그 광탈시키자 토트넘 트위터에 손흥민에게 엄청난 극찬을 보낸 사례도 있다.[40]
토트넘 핫스퍼의 신구장의 교통은 정말...쓰레기같다 세븐 시스터즈 역에서 내린뒤 약 30분을 홈팀 팬들과 걸어가야한다. 버스가 못다니는 수준이라 생각하면된다. 경기가 끝난뒤 지하철을 타면 대한민국 9호선급 지옥철 정말 한국의 9호선이 아닌지 구분이 안간다 더심할수도 있다. 그에반해 스탬포드 브릿지 런던 스타디움은 정말 깔끔한 교통을 보여준다.
토트넘 핫스퍼의 연고지라 할 수 있는 토트넘 지역은 런던에서는 별로 치안이 좋지 못하고 이민자, 빈민, 건달 등이 많아서 직접 관람하러 갈 사람은 주의를 요한다. 토트넘이 속해 있는 헤링게이 구는 런던 소재 클럽 중 인기 구단들 중에 첼시 FC, 풀럼 FC의 연고지 같이 런던의 부촌에 해당하는 곳들이나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가 소재한 스트랫퍼드는 물론이고[41], 토트넘의 이웃이라고 볼 수 있는 아스날 FC의 연고지인 이슬링턴에 비해서도 위험한 동네라는 게 중론이다. 크리스탈 팰리스 FC의 연고지인 크레이던 지역이랑 비슷한 수준으로 런던에서 손에 꼽히는 우범지대이므로 직관하러 런던을 방문할 팬이 있다면 가급적 경기 끝나고 구장 근처를 어슬렁거리거나 하는 일 없이 조심하는 것이 좋다.
신기하게 팀내에 국가대표 주장이 많다. 현 소속 선수만 해도 케인, 손흥민, 요리스, 오리에 등이 주장을 맡고 있으며 전 소속 선수들인 완야마 등도 국가대표 주장이다.
토트넘과 유대인
연고지인 토트넘이 유대인들의 밀집 지역인 것과 관련된 인연으로, 서포터는 이드(Yid)라 불린다. 런던 인근에는 많은 유대인이 살았는데, 특히 토트넘 근처에는 하시디즘을 추종하는 유대인이 많았다고 한다. 이들은 지역 사람들과 잘 동화되지 않았는데, 이는 반유대주의에 휘말리는 원인이기도 했다. 특히 첼시는 유달리 이에 대해 심한 적대감을 드러내곤 했다.[42] 1936년부터 첼시 서포터들이 '토트넘 녀석들을 나치에게 보내자'는 노래를 부른 적도 있었을 정도였는데 나치랑 영국이 전쟁을 벌이면서 이런 응원가도 당연히 중단되었다. 토트넘이 아무리 싫어도 나치보다는 덜 싫을 것이다. 그리고, 위르겐 클린스만이 토트넘에서 활약할 1994-95 시즌에 당시 첼시 서포터들은 그를 지드(Yid) 위르겐이라고 비하하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43] 하지만 더비전마다 여전히 반유대주의 운운하면서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주는 일부 팬들은 존재하는 모양이다.
토트넘 서포터들 역시 이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이스라엘 국기를 응원기로 사용하거나 팀의 승리 시 ‘이드’를 외치며 대응하였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일반 토트넘 팬들에게도 전해지며 유대인의 정체성이 퍼져나가 오늘에 이르렀다. 토트넘의 경기 시작 전 스타디움 주변에서 'Yid4ever(유대인이여 영원하라)'라는 구호가 적힌 티셔츠를 흔히 볼 수 있다고 한다.
현 회장인 다니엘 레비는 리바이라는 유태인계 성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유태인이며 이영표가 회고하길, 회장이나 간부직에 유태인이 많으며 서포터에도 유태인이 많아서인지 다윗의 별같은 유태인 깃발을 많이 흔들었다고 한다.
2018-19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전에서 네덜란드 AFC 아약스와 맞붙었는데, 공교롭게도 아약스도 유태인 구단으로 유럽에서 이름이 자자한 터에 두 유태인 구단 대결이 되었다. 토트넘은 2차전에서 역대급 명승부 끝에 1차전 패배를 뒤집고 결승에 진출했다.
토트넘을 응원하는 유명인사
고든 브라운 - 영국의 제 74대 총리.
니키 와이어 - 영국 락의 거장.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의 베이시스트.
대니얼 블룸버그 - 영국 출신의 가수, 스테이시 마틴의 현 남자친구. (2019년 기준)
대니얼 머피 - 미국 출신의 야구 선수.[44]
로이 킨 - 아일랜드 출신의 전 축구 선수이자 전 축구 감독.
루퍼트 그린트 - 영국 출신의 배우.
릴카 - 프랑스 출신의 유튜버이자 인터넷 방송인
마이클 매킨타이어 - 영국의 코미디언이자 TV쇼 진행자.
마이클 키와누카 - 영국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마크 월버그 - 미국 출신의 영화배우.
셔누 - 몬스타엑스의 멤버.[45]
스티브 내시 - 미국 출신의 NBA 농구선수.
스티브 매퀸 - 영국 출신의 영화 감독.
스테이시 마틴 - 프랑스 출신의 영화배우.
샤니아 트웨인 - 캐나다 출신의 팝 아티스트.
아델 - 영국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토트넘 출신이다. 직접 경기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알렉산더 맥퀸 - 영국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
이언 소프 -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시드니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수영 선수.
엠마 번튼 - 지금은 해체한 영국의 걸그룹 스파이스 걸스의 멤버.
조니 버클랜드 -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 의 기타리스트.
존 시나 - 미국 출신의 WWE 프로레슬러. 명예선수로도 위촉되었으며 등번호는 54번이다.
조앤 K. 롤링 - 해리포터의 창시자로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
주드 로 - 영국 출신의 배우.
잭 에프론 - 미국 출신의 배우.
제리 스프링거 - 영국 출신의 쇼호스트. 제리 스프링거쇼의 호스트.
제시 제이 - 영국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제프 벡 - 영국 출신의 기타리스트.
채닝 테이텀 - 미국 출신의 영화배우.
코리 클루버 - 미국 출신의 야구선수.[46]
케이트 모스 - 영국 출신의 패션 모델.
켄드릭 라마 - 미국 출신의 래퍼.
톰 홀랜드 - 영국 출신의 영화 배우.
피어스 브로스넌 - 아일랜드 출신의 영화배우.
핀 밸러 - 아일랜드 출신의 WWE 프로레슬러.
필 콜린스 - 영국 출신의 팝 아티스트.
FM에서의 토트넘 홋스퍼
풋볼 매니저에서는 극악무도 사기스런 팀으로 악명이 높다.
08때는 감독만 후안데 라모스로 바꿔놓으면 언제나 빅4를 위협하며 최소 3-4위에 꾸준히 안착하며, 09때는 워낙에 토트넘 선수들 어빌들이 출중했고, 10때는 래드냅+모드리치 조합에 버틸수가 없다!
게다가 시리즈 마다 양민학살은 끔찍하게 잘한다. 기본 3-0, 4-0 나오는 상황. 2011 역시 2~4위권을 오가는 강팀. 리그 탑 클래스의 미드필더진은 충실히 구현된 반면 Thumb up 밖에 하지 못하는 공격진은 제대로 구현되지 않은 것이 그 원인.(...)
라리가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더불어 실축에서 변방 소규모 클럽의 알짜 유망주는 죄다 쓸어가고, 토트넘이 꼭 영입해서 로스터로 수정된 FM상의 그 유망주들은 너프스탯 수정으로 어정쩡하게 나와 유망주 죄다 버리는 토트넘으로도 유명했다.[73] 게다가 소액으로 영입해서 살때는 4-500억 이상 찔러야만 파는 거상의 면모도.(...)
플레이시에는 시리즈마다 적당한 수준의 이적료를 지급하며, 시즌 목표를 유에파 진입으로 설정할 수 있기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잉여 자원을 방출하고 로테이션 멤버 및 주전 멤버 한두명 보강하면 우승권도 가능할 정도가 된다.
게다가 FM 14~15부터는 에릭 라멜라와 크리스티안 에릭센이 엄청난 고포텐을 받으면서[74] 실력 좋은 AI가 감독하면 챔스권을 위협할 만큼 강한 팀이 되기도 한다.
FM 16에서는 에릭 다이어와 델레 알리가 상향을 받았고, 나빌 벤탈렙도 전작에 이어 건재한 포텐을 자랑한다. 이를 바탕으로 적절한 전술과 해리 케인의 백업 공격수 정도만 영입만 충족하면 '빅 4 진입 + 미래의 구단 설계'는 쉬운 편. 워낙에 팀 평균 연령이 어려서 가능한 일이다.
다만 플레이메이커 성향의 미드필더가 많아 주축을 중심으로 로테이션을 돌리거나 방출/임대 등으로 정리하는 등의 선택이 요구된다.
그런데 17에서 완전히 사기구단이 되었다! 유저가 해도 잘하고 컴터가 해도 잘하니 이뭔.(....)
20에서는 무리뉴가 감독이지만 시즌6등 두번째 시즌이면 10위 아래로 내려가는 안좋은 팀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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