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특별행정구의 경찰 조직으로 정식 명칭은 홍콩 경무처이다.[3]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의 지휘를 받으나 중국 공안부 소속은 아니며 본 기관의 전신 또한 영국 해병대의 현지 치안유지 활동에서 기원이 시작되어 분위기 및 제복 등의 특징에서 중국 공안과는 다르다. 영국 경찰의 조직 및 지휘체계, 문화 등 많은 모습을 가져와 제복부터 이들과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며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된 후에는 중국 정부의 정책에 따라 미국에서 받아들인 요소도 꽤 많다. 당장 새로 창설한 대테러부대인 CTRU도 뉴욕 경찰 대테러 초기대응반 허큘리스 팀의 영향을 받아 창설하였다.
현재 홍콩 경무처는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홍콩마카오판공실과 그 하위기관인 홍콩중국연락판공실을 통해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의 지휘를 받으며 움직인다. 반환 이전에는 총독부를 통해 영국 내무부가 지휘했다. 정확히는 현재 홍콩 내무부 역할을 하는 보안국이 중국연락판공실을 통해 중국 공안부의 지시를 받아 움직인다. 홍콩 정부의 명목상 실권은 행정장관에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판공실이 영국 시절의 총독부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단지 국무원이 베이징에 있어 홍콩에 실재하는 행정장관이 사실상 사무를 위임받을 뿐이다.
비록 2020년 5월 홍콩 국가보안법이 제정되었지만 조직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원래 반환 이전에는 영국 내무부가 총독부를 통해 지휘했고 1997년 반환 후 조직이 홍콩특별행정구 경무처로 재편되면서 중국연락판공실과 국무원 홍콩마카오판공실을 통해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의 지휘를 받아왔는데 이것이 명문화되었을 뿐이다. 플러스로 그간 주권국가가 아닌지라 따로 보유하지 않고 본국인 영국과 중국에 의지했던 대외 정보기관도 설치될 예정이며 국가안전법 집행을 위한 국가안전처도 창설되었고 국가안전 부처장직이 신설되었다
역사
홍콩경찰의 시작은 아편전쟁 때 홍콩 섬을 점령한 영국 해군 육전수병 즉 해병대에서 유래했다. 1841년 센트럴에 상륙한 영국 해군 수병들이 해안선에 요새를 설치해 화포를 배치, 방어에 나서는 한편 육전수병들이 점령지 질서유지에 나선 것이 기원이다.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 시기 왕립 홍콩 경찰(Royal Hong Kong Police, 香港皇家警察)을 두었고, 이 경찰 조직은 최초에는 인도 출신의 시크교 신자들을 고용했으며, 식민지로 파견된 영국 해군 장교들이 간부를 맡았다.
그러다 구룡반도와 신계 등 육지 부분까지 할양되어 영국의 홍콩 영유권이 확실해진 이후 중국인 경찰관을 선발하기 시작했으며, 소방 업무와 구급 업무를 맡는 홍콩 소방처가 경찰에서 분리되어 별도 조직이 되었다.
이 때 해안경비대 역할을 하는 수상경찰(水上警察)과 일반 경찰과 갈등이 있었고 영화 <프로젝트 A>[]에서 다루기도 했는데, 당시 해적들이 남중국해에서 깽판치고 다녀서(...) 해안경비대의 역할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물론 영국 해군이 홍콩에 주둔하며 해적을 소탕하곤 했지만 한계가 있었고, 현지 바다를 잘 아는 중국계 경찰관들이 단속을 한 뒤에야 해적들의 횡포가 잦아들었다. 대략 1900년대 초에는 그 흔하던 해적이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광동 앞바다가 툭하면 해적들이 나타나던 곳임을 생각하면 이는 홍콩 경찰의 첫 쾌거다.
일제 강점기
1941년 일본군의 군국주의적 침공은 중화민국을 넘어 홍콩까지 들이닥쳤다.
1차 영일동맹으로 홍콩의 영국 영유권을 보장한 일본은 갑자기 이 동맹을 일방 파기하고 육군 병력과 해군 육전대로 광둥 성에서 홍콩으로 국경을 넘어 쳐들어 갔다.
영국군은 이 기습에 소수의 해병대 및 수병을 포함한 영국 해군, 식민지 인도 제국 용병대나 캐나다군 및 중국인 수비대로 구성된 역시 1개 사단 급의 소수인 육군만으로 중요한 식민지인 홍콩을 지키려 했으나 역부족으로 방어선은 일본군 해군의 육전대의 홍콩 섬 상륙과 일본 육군의 국경 돌파로 간단히 뚫려버렸다.
이 때 법관 출신이던 홍콩 총독은 일본군의 위세에 겁을 먹고 침사추이 소재 페닌슐라 호텔에서 1941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날 촛불을 켠 방에서 영국 해군 장교 예복 차림으로 일본군 남양군도 원정대 총사령관인 야마시타 토모유키 장군에게 항복해 홍콩은 일본 점령지로 전락한다.
일본군의 점령 이후 군정 기간 중 당연히 포로로 잡힌 영국군과 현지 영국인과 중국인 등 홍콩 시민들은 고초를 겪었다.영국인 남자들은 강제 노동에 동원되었으며, 여자들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 중국인들은 툭하면 감시나 당하고 2인 이상 못 모여 다니게끔 했으며 일본군은 스타페리와 홍콩 트램 좌석 중 백인에게만 허락되던 2층에 앉아 위세를 부렸다.
기독교 교회 또한 전부 폐쇄 조치했는데 기독교 교회들이 저항의식을 선동한다는 이유였다. 당시 성공회 본부교회 역할을 하는 세인트 존 대성당[8]의 경우 일본 육군 장교클럽으로 전락했으며 일본군은 절대 손으로 그것도 비신자가 먹으면 안 되는 성체를 마구 집어먹는 신성모독을 하기도 했다.
당시 영국군과 함께 저항세력의 한 축이던 경찰은 해체되어 일본의 헌병들이 이 역할을 대신했고, 소방처 역시 해산, 일본군 헌병들이 역할을 대신했으며 일본군 헌병대는 공포 정치를 펼쳐 저항을 난폭하게 억눌렀고 이 시기는 홍콩의 흑역사가 된다.
그래서 이 짧은 일제강점기 탓에 홍콩은 친일 성향이 있는 대만과 달리 반일 감정이 은연중에 있다. 어느 정도냐면 문화는 일본 문화를 좋아하고, 일본으로 여행도 자주 가며 일본산 브랜드도 흔하지만 막상 역사로 언급이 나오면 날을 세우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다. 대만과는 달리 욱일기는 일식집에서조차 함부로 걸기 힘들다.[9]
이 시기 경찰관들은 중국인들이 조직한 항일 게릴라에 합류해 일본군을 상대로 싸우거나 영국군을 따라 호주로 후퇴한 후 훗날을 기약하며 대일 항전을 지원하기도 했다. 심지어 중국본토의 항일 의용군이나 국부군에 합류하는 경찰관들도 많았다. 홍콩의 호국경찰 시기인 셈인데 실제로 많은 경찰관들이 이때 전사하거나 부상당하고 포로로 잡혔다
67폭동
1967년에는 구룡반도 침사추이, 조던, 야우마테이, 몽콕, 자운산 일대에서 대규모의 반영 공산폭동이 일어났다. 일명 67폭동으로 중국 공산당이 사주한 폭동인데 어이없게도 원인이 스타페리 요금을 조금 올린 것이 발단이었다. 당시는 문화대혁명 시기라 사람들이 중국의 문혁 분위기에 영향을 받은 데다, 아직 중국이 개방 안 되던 죽의 장막 시절인지라 문혁의 실상에 대해 대부분 무지했고 홍콩인들은 아직까지 자신들이 영국의 식민지이자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이 강했다. 그래서 문혁을 따라하려는 사람들이 많았고 중국 공산당은 이를 놓칠 리 없었다.
1967년 한 해 동안 격렬한 폭동이 벌어졌다. 상점이 약탈당하고 멀쩡한 건물에 방화를 하거나 폭도들이 밤만 되면 강도 패거리로 변하는 일까지 비일비재했다. 그 때는 아직 홍콩 경찰에 경찰기동대 같은 조직도 없어 일반 순찰경관들이 나무 방패와 진압봉 등을 들고 나가 진압해야 했다.
1968년 결국 영국령 홍콩 총독부은 보다 못해 경찰에 무소불위 권한을 부여하는 긴급법[]을 적용했으며 1968년 이후 급속히 정국이 안정되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경찰은 67폭동의 진압 이후 전술부대의 필요성을 느껴 1968년에는 다중범죄 진압과 무장강도 등 특수범죄 제압, 주요시설 경비를 맡는 경찰기동대 PTU가 창설되었고, 1974년에는 대테러부대로 SDU[14]라는 경찰특공대가 조직된다. 이들 신설 비호대원들은 영국군 SAS에서 교관까지 모셔와 최고의 대테러 기술을 익혔고 이를 바탕으로 무법 천지였던 구룡성채를 때려 잡는가 하면 홍콩 마피아인 삼합회도 PTU와 함께 때려 잡아서 1990년대 이후 삼합회는 세력이 위축되어 버렸다.
중국의 영향
홍콩 경찰학교가 홍콩 반환 25주년 기념식을 위해 중국 인민해방군 장교단으로부터 (이전에 도입한) 영국군식이 아닌 인민해방군식 거위걸음 제식을 교육받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현지 언론을 통해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크리스 탕 홍콩 경무처장은 현재로써 영국식 제식은 유지할 계획으로, 언론에서 보도한 내용은 올해 홍콩 반환 행사에 선보일 제식을 훈련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해명했다. SMCP 보도 이와 유사한 사례로 2020년 3월 27일, 홍콩 입경사무처에서 기존의 영국식 제식과 함께 오성홍기를 옮기는 중국군 제식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을 맞아 입경사무학원 생도들의 졸업식에서 선보인 바 있다
근무복
사진은 비간부 경찰관의 근무복 및 모자이다.
일반적으로 가장 유명하고 많이 접하는 근무복과 모자, 점퍼는 영국 식민지였던 나라답게 영국 경찰의 그것에서 컨셉을 따온 것으로 보인다.
순경-경사 급 비간부가 착용하는 근무복으로 모자는 원래 영국 경찰처럼 정모와 근무모를 겸용하다 2010년대 이후 활동이 편한 야구모자 형태 기동모를 도입하고 정모는 정복이나 예복 차림일 경우에 착용한다. 특히 견장과 색배열이 영국 경찰관들과 거의 동일한데 견장걸이를 사용하고 숫자가 부착된 커다란 견장은 런던광역경찰청 경찰의 특징 중 하나이다. 참고로 싱가포르 경찰청도 비슷하게 복제가 구성되나 이쪽은 열대라서 점퍼 없이 하복만 있단 차이가 있다.
간부용 흰색 근무복이다. 사진의 경찰은 전 경무처장[] 스티븐 로.
경위 이상 간부급의 경찰은 근무복이 따로 있는데 하늘색만 흰색으로 바꾼 옷이다. 안 그래도 영국 경찰과 비슷한데 이 경우는 완전 판박이다. 과거에는 이 흰색 근무복은 경정 이상 고급간부만 착용했고 그나마 내근직이거나 회의, 행사 등이 있을 때만 착용했다. 현재에도 이 옷은 고급간부 이상만 착용할 수 있다.
무간도에 출현한 유덕화로 2002년이 배경이라 복제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복 역시 영국 경찰과 비슷하나 영국 경찰과 완전히 똑같은 싱가포르 경찰의 정복과는 달리 옷깃에 부착하는 조형물 등은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의 최신 정복과 사실 더 비슷하다. 다만 시기 상 이쪽이 먼저다.[] 한때는 동계 근무복으로 입던 적도 있었다. 진짜다.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를 보면 배경이 12월이라 나온다. 이 옷은 1980년대 일본 경찰 동복과도 비슷하다.
중국 공안의 제복 모방이 질렸는지 최근 정복은 싱가포르 경찰처럼 아예 영국 경찰 정복과 더욱 비슷하게 보이는 방향으로 개정된 듯 하다. 사진은 새 홍콩 경무처장 크리스 탕.
추가로 비간부급 경찰은 제복을 입을때, 흰색 셔츠를 입고 거의 아무 장식도 달지는 않는다.
위의 크리스 탕 경무처장의 옷깃에 붙여진 것은 런던광역경찰청의 경찰 최고 간부만이 착용하는 카라장인데 조리처장~고급조리처장은 꽈배기 모양, 부처장급이상은 월계수 모양으로 된 것을 붙이며 이 검정색 카라장은 총경사[29]급 고위간부도 착용한다. 총경사는 작대기 하나를 붙이며 근무복에도 붙이고 다닌다.
그리고 위에 유덕화의 제복에 붙여진 카라장은 경서경장[30]급 경찰간부에서 고급경사 급 경찰간부들이 정복에 착용한다. 이전의 왕립경찰의 구형 카키색, 올리브색 근무복에도 달고 다녔다. 크리스 탕 경무처장 또한 간부후보생 출신이었기에 입직 당시 찍은 사진에 붙이고 있었던 것이다. 제복의 견식줄 또한 호각줄 용도로 사용된 것이다. 저 호각줄의 색갈이 각양각색인데, 주로 검정색을 많이 사용하며, 특히 경찰기동대(PTU대)나 작전처 소속 경찰관들은 혼합색 호각줄을 패용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약장의 패용갯수 또한 타국 경찰들과 비교해서도 적은데 홍콩 경찰은 왕립경찰 때 많은 약장과 훈장을 수여받았으나 현재는 많아봐야 거의 3개 정도고 예전엔 거의 8개까지도 패용했다. 간부들이 주로 달고 다니는데 비간부들은 경장은 돼야 받는 듯 하다.
기동복
지난해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당시 자주 보게 된 기동복의 경우 사실 영국 식민지 시절 하계 근무복이 모체로 그 시절엔 특유의 연한 올리브색 베이스에 반바지(...)라는 괴악한 센스를 자랑했다.[31] 당시 영국령 홍콩 왕립경찰의 근무복은 올리브색 상/하의로 된 하복과 흰색 와이셔츠와 네이비 블루 색상의 자켓, 그리고 네이비 블루 색상 바지로 된 동복으로 나뉘었는데 모자는 따로 기동모가 없이 정모를 근무 시에도 착용했으며 홍콩의 덥고 습한 기후 상 특이하게도 하복을 반바지로 한 것이다.
이 구형 근무복은 반환 이후에도 한동안 경찰 제복이 개정되기 전까지 사용되었다. 여락 등 식민지 시절의 홍콩 영화에서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제복이기도 하다. 2004년 이후 교체에 들어가서 현재는 근무복으로선 폐지되었고 현역 기동복과는 전반적인 디자인이 유사하나 색상이 조금 다르다.
참고로 이 국방색 기동복은 경찰학교 생도들의 훈련복으로도 사용된다. 저 검은색 베레모는 가끔 하늘색 근무복에 함께 착용하는 사진이 보이기도 한다. 2020년에 접어들면서 시위가 동력이 꺾이고 과격시위대 용무파가 국가보안법 통과로 소탕되면서 이제는 다시 시위진압 때 기동복이 아닌 근무복을 착용한다.
예복
대한민국의 경찰 의장대처럼 행사용 예복도 따로 있는데 매년 7월 1일에 열리는 홍콩 국기 게양식에서 보이기도 한다.[] 위 사진은 하계용 예복이며 그 디자인은 영국 육군의 하계용 예복과 동일하다. 여기서 상의가 흰색에서 군청색으로 바뀌면 동계용 예복이 된다.
앨런 라우 전임 경무부처장 역시 2018년 12월 퇴임식에서 착용했다. 예복을 입는 경우는 일반적으로, 행정장관과의 만남이나, 홍콩 반환 기념일 또는 취임 및 퇴임식에서 착용을 하며, 간부급 경찰만 착용이 가능하다.
이런 예복은 원래 왕립 홍콩경찰의 근무복으로 사용되었는데 1960년대 무렵부터 넥타이 형식의 제복을 입게 된다. 지금은 각종 장식과 훈장을 착용하여 고위간부들이 입는 예식 복장으로 탈바꿈하였다.
평가
홍콩 민주화 운동 이후로 홍콩 경찰의 수준이 1990년대 시절보다 더 퇴화했음을 비판하는 비교 사진.
표면적으로는 어쨌든 간에 유능하고 부패문제 없는 경찰인 건 사실이다. 이는 영국령 홍콩 시절 닦아놓은 선진 시스템 덕이다. 그러나 영국 식민지 시절에도 예외는 아니지만, 특히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의 홍콩 특별행정구 경무처는 영국령 홍콩 때보다 노골적으로 공권력이 남용되는 경우가 많은지라 반정부냐 아니냐에 따라 거의 야누스의 얼굴이라고 할 정도로 상당히 이중적이다.
친중파는 홍콩 특별행정구 경찰로 넘어오며 완전히 부패문제를 해결하였고 특히 골칫거리였던 삼합회 소탕을 업적으로 꼽는다. 그리고 민주파에서 제기하는 경찰에 대한 불만들을 단지 불순분자들의 불평불만으로 폄하한다. 반면 민주파/본토파는 과거 왕립 홍콩경찰은 아시아 최고라 표방하며 실제로도 그렇게 불렸으나 중국 반환으로 홍콩특별행정구 경무처로 재편되어 중화인민공화국 연락판공실, 일명 중련판에 의해 움직이게 되자 헌신적이며 성실한 모습은 간데 없고 민중을 탄압하고 인권유린도 거리낌없이 저지르며 중공을 위해 헌신하는 민중의 적으로 퇴화해버렸다(...)는 평가를 내리며 이러한 평가는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 즉 우산혁명 이전부터 팽배했다. 그렇지 않아도 우산혁명 무력진압으로 중공의 개(狗官)으로 불리던 경찰의 평판은 이제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에 대한 또 한번의 무력진압과 공권력 남용으로 나락으로 추락했으며 암흑 경찰이라는 뜻의 흑경(黑警)이라는 이름으로까지 불리게 된다.
중국 공안 못지 않은 무자비한 인권탄압으로 악명이 높으며 아예 반항하는 자국 시민을 죽여야 할 적으로 취급한다는 의혹까지 있다.[54] 안 그래도 홍콩인들은 중국과 홍콩이 다른 점에 대해 설명하는 뉴스조차 경찰은 똑같은 것 같습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경찰에 대해 신뢰하지 않았으며, 최근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에서 경찰의 폭력 과잉진압 문제가 불거지자 경찰에 대한 시민 의식은 거의 확인사살 수준으로 악화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반항하는 자국민을 적 취급하는 것과 달리 외국인에게는 아주 친절하고 뇌물수수 문제 등도 없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일단 이런저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우선 동남아시아에서 보기 드문, 싱가포르와 함께 유이한[55] 높은 청렴성을 앞세워 도덕적인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홍콩의 본국인 중국만 해도 부정부패가 상상을 초월하고, 동남아시아 주변 국가들은 말 안 해도 뻔한 수준인지라 그래도 경찰이 할말이 있다고 큰소리치는 게 가능하다.
과거 1960년대까지만 해도 뇌물 문제로 몸살을 앓았다. 삼합회와 결탁한 사건이 빈번했고, 증지위의 아버지 증계영은 경찰 고위 간부를 하다가 문제되자 대만으로 망명하기도 했다. 영국인 경찰 간부인 피터 고드버의 전횡사건이 터졌고 이 때문에 염정공서가 출범하기도 했다. 고드버는 나중에 영국으로 튀었다가 염정공서 설립 후 범죄인 인도로 강제 송환되어 처벌받았고 이후 경찰관 해고 및 염정공서의 경찰조직 대대적 수사에 반대하는 경렴충돌이 1977년 벌어져 염정공서 사무실에 짱돌이 날아오고 수사관이 폭행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외국 전문가 초빙, 젊고 의욕 넘치는 신임 경찰관들의 대대적 선발, 부패방지 3륜법 등으로 부패문제가 사라졌고, 홍콩을 깨끗이 하는 클린 홍콩 운동까지 더해져 지금의 아시아 최고의 경찰이 되었다.
최근 시위 관련 이미지와 본국인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향으로 부정적인 시각이 부쩍 늘었다. 그러나 홍콩은 중화인민공화국의 특별행정구로 있게 된 건 20년 남짓에 불과하며 사회주의 체제는 적용된 적이 없었다. 이런저런 중국화 움직임들은 역풍을 맞으며 중국 공산당이 이웃 마카오와 달리 추진조차 못하는 실정이다. 영국령으로는 120년 넘는 세월을 있었는지라 사실상 영국과 비슷하다고 봐야지 중국으로 놓고 보면 말이 안 된다. 더구나 작년 시위로 이런저런 손해를 보기는 했어도 국제 금융센터 지위도 런던, 뉴욕과 함께 유지 중이다. 사회 불안이 해소되면서 이런저런 컨퍼런스 등도 도로 많이 유치했다가 최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주춤한데 이는 어차피 범세계적 재난이다. 되려 작년에 반사이익을 본다고 큰소리치던 싱가포르는 슈퍼전파자를 여럿 양성하며 유럽 등에 지옥문을 열었다.
그러나 도시가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시민들의 복지가 잘 지켜지는 것과 별도로 기본적인 인권과 민주주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56]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라면 전시 등 국가 존망의 위기에도 최소한의 인권은 지키도록 법으로 못박고 있다. 그러나 홍콩 경찰은 폭동적 시위진압은 물론이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결코 벌어져서는 안 될 민간인에 대한 고문까지 저질렀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으며 당장 영상이나 사진을 통해 확인된 폭력만 해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리고 홍콩의 중국화 움직임은 이제 시작일 뿐이며 국가안전법이 적용되고 통제가 강화되면서 더욱 가속화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공직자에 대한 평가는 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인데 이미 홍콩 경찰에 대한 현지인들의 평가는 바닥을 뚫고 나락까지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애당초 최근 홍콩 경찰의 인권탄압과 과도한 공권력 행사를 지적하는데 홍콩의 경제적 지위와 과거의 활약을 언급하는 것은 논점일탈로, 적절한 반박이 될 수 없다. 홍콩에 대한 위키의 부정적인 서술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그 항목에 가서 수정하거나, 불만을 제기하거나, 토론을 하면 된다. 그러한 홍콩의 우수함은 최근 경찰의 인권탄압에 대한 면죄부가 되지는 못한다. 애초에 비민주적인 독재정권 하에서도 눈에 보이는 치안은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실적이 곧 인권탄압에 대한 변명거리가 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경찰관의 시위 진압조 편중배치로 좀도둑이 들끓는 등 치안 상태는 더욱 나빠졌고 코로나 등으로 소강상태에 접어든 다음에야 다시 좋아지게 되었다. 중국화 움직임으로 홍콩의 눈에 띄는 치안과 통계상의 순위는 좋아질지도 모르지만, 우수한 치안은 홍콩보안법과 같은 반민주적인 체제가 아니라 민주화와 공권력에 대한 국민의 감시, 그리고 인권보장이 전제되어야 한다.
홍콩 경무처는 경찰의 본분에 비교적 매우 충실하며 아시아에서 청렴한 정부기관 중 하나로써 지금까지 세계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아왔지만, 인권탄압과 폭동적 시위진압, 일국양제와 서구식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홍콩인들의 의사표현 방식 등을 진압하고 중국 공안부의 지시에 따르는, 이전보다 인권 등의 부문에서 퇴보한 인식을 보임으로써[사례] 범세계적인 인식의 재고를 자처한 것 또한 사실이다. 홍콩 경찰에 대한 비판이 홍콩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는 의견 역시 적절하지 않은 이유는, 이러한 경찰의 모습이 만들어지도록 한 것은 다름아닌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의 지사를 따른 홍콩 경찰의 중책들이다. 경무국의 치안 부문은 공무를 집행하는 기관으로써 상부 (현지 및 중국 정부)의 평가에 반영되는 것이 사실이다.
친정권 성향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이면으로 대놓고 친중파 경찰간부들이 득세, 홍콩 정부의 말을 안 듣는 인사들을 상대로 무자비한 인권탄압을 벌이고, 반정부 시위는 중국 무장경찰부대나 러시아 내무군 못지않게 무자비하게 때려잡아 인권탄압으로 악명을 떨치는 모습도 보인다.
이 점은 싱가포르 경찰청도 마찬가지로 리콴유를 인터넷에서 욕하면 바로 24시간 인터넷을 감시하는 싱가포르의 사이버 경찰이 잡아내어 체포, 구속하며 영혼까지 털어버린다. 리콴유가 싫어 호주 등 해외에 도망나와 사는 싱가포르인들도 있을 정도다. 리콴유 사후에도 리콴유 일가를 욕하거나, 리콴유 아들들이 벌이는 소위 왕자의 난 등을 언급하는 그 순간 싱가포르 경찰이 들이닥쳐 연행하고 조져버리기 때문에 안전한 해외로 나와 욕한다. 그러나 드러난 표면으로는 다들 알다시피 싱가포르 경찰은 세계적으로 일 잘하고 청렴하며 신속출동하는 경찰로 이미지가 아주 좋다.
강경 폭력적 시위진압 및 고문 의혹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 및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당시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전형적인 폭동적 시위진압의 모습을 보여주어 이미지가 매우 실추되었다.
사실 이전부터 친중파 경찰이 득세하고 있다는 소문은 돌았는데 결국 그게 사실로 드러나는 모양새다. 친중파 경찰간부들은 왕립경찰 시절부터 은근히 식민지 종주국인 영국 내무부의 노골적인 푸쉬를 받았으며[] 현 경무처장 크리스 탕은 아예 대놓고 중국 정부의 지원으로 미국, 영국, 싱가포르, 스페인, 이스라엘 등 여러 나라 경찰의 대테러부대에서 훈련받았을 정도이다. 전 처장인 스티븐 로도 왕립경찰 시절부터 친중 성향을 드러내던 사람이었다.
심지어 중국인 경찰관만 이런 게 아니다. 영국인 경찰관들이나 반환 이후 대거 입직하는 인도인/파키스탄인 경찰관들도 대놓고 친중 성향을 드러낸다.[]
현재 PTU대 부사령관인 영국계 홍콩인 경찰간부 데이비드 조던 역시 친중 성향 인물이다.[] 조던은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은 물론 한국 농민들의 WTO 반대시위 당시부터 지금까지 기자들이나 시위대와의 실랑이와 삿대질도 자주 하며 무력진압의 선봉장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한 공적을 인정받아 경찰 최고간부인 경무관급 계급인 조리처장(助理處長)으로 영전되었으며,[63] 지금은 경무처 작전처 소속 수상경찰대(水警總區) 사령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외에도 영국계 홍콩인 중에서 친중파 경찰로는 2019년 홍콩 섬 애드미럴티 (Admiralty) 시위에서 맨몸으로 시위대열 앞으로 나와 'I want to see your commander!'[64]라고 소리치는 민주파 입법회 국회의원 우치와이 (Wu Chi-wi) 의원을 가리키며[] 부하에게 최루탄 발사를 명령한 저스틴 셰이브 (Justin Shave) 경사도 있다. 심지어 작년 송환법 반대시위에 영국인 총경사인 루퍼트 도버[66] 경찰기동대 전 교장은 무려 경무관 계급인 조리처장 계급을 받으면서 현장 PTU와 랩터부대 부대원들을 이끌고 진압작전을 지휘하기도 하였다. 자기 관할 구역의 시위 진압 작전에 사령관이 나서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진짜 문제는 진압 방식이 심히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참고로 영국인 백인 경찰관들은 영국령 홍콩 왕립경찰 막바지인 1980년대 말 ~ 1990년대 중반 입직한 사람들로 현재는 고위 간부들이다. 이들뿐만 아니라 비중국계 외국인의 홍콩경찰 입직은 계속되고 있어서 중국으로의 반환 후에는 인도/파키스탄 혈통의 홍콩 시민들도 경찰직에 입직 중이며 경찰에서 이를 적극 홍보하기도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들도 친중파 성향이 강하다.[]
하물며, 2014년 우산혁명을 무력으로 진압하던 퇴역경찰이자 경찰 최고간부 2인자였던, 앨런 라우 경무처 소속의 작전부청장을 반강제로 소환하여 과격시위나 평화시위 할 것 없이, 전부 폭력적이고 과격하게 진압하였다.
결국 초강경파인 크리스 탕 취임 후 과격시위는 홍콩이공대학에 토끼몰이 후 가두어 놓고 물과 전기, 식량 공급을 끊어버리는 초강수를 두어 제압했으며 구의회 선거 투표장에는 자동소총을 보유한 무장 기동경찰을 배치하고, 곳곳에 저격수를 배치하는 등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더 이상 시민사회도 경찰을 비판하지 못하고 엎드려 있게 되었다.
홍콩 경찰에게 반체제 시위대는 그저 바퀴벌레일 뿐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 당시에 한 PTU대 간부급 경찰관이[] 경찰을 공격한 것도 아닌, 인터뷰 중인 노인 시위자의 팔을 끌어당겨 쳐다보게 한 다음, 최루가스를 얼굴에 직접 분사하는 영상이 공개됐다. 과잉진압을 넘어선 희롱이나 다름없는 짓이기에 파문이 일고 있다. 건강한 청년도 잘못 맞으면 실명할 수 있는데 노인한테 캡사이신 최루가스를 눈에 직사하면 쇼크사할 수 있다. 옆에 있던 동료가 놀라 제지 할 정도의 과잉진압인데 위 문단의 1990년대와 2019년 비교 그림과 더불어 홍콩 경찰의 악화된 자질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카메라가 돌아가는데도 저런 짓을 하는 것을 보면 정말 답이없다.
2019년 8월 31일 프린스에드워드역 일대에서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 도중 과격 시위대와 친중파 시민 간 패싸움이 벌어지자 이를 진압하려 출동한 PTU 기동대원들과 랩터부대원들이 역 내부와 전동차내에 난입, 과격 시위대 뿐만 아니라 평범한 시위 참가자들 심지어 시위와 아무 상관없는 시민들에게까지 대대적인 폭행을 일삼은 야만적인 폭동적 시위진압을 벌인 동영상이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에 의해 공개되었다. 이 때문에 홍콩인들의 공분을 사서 분노가 매우 커진 곳이다.
불심 검문
한편 홍콩 경찰의 경우 무차별 불심검문으로도 악명 높다.
영국령 시절부터 경찰관들은 한밤중에 3인 1조로 전우조를 편성해 순찰을 돌다가 수상해 보이는 사람은 무조건 연행해 가곤 했다. 물론 여기에는 타당한 이유가 존재한다. 불법체류자들이나 마약 중독자가 꽤 많기 때문. 그래서 구룡반도 특히 조던과 야우마테이, 몽콕 일대에서 단속이 심한 편이고 홍콩 섬은 안전한 지역인지라 덜하다.
우산혁명 그리고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 등 최근 들어 여러 시위가 계속되자 이제는 기자나 의료인력 등 신분이 확실한 사람에게조차 무차별 검문을 행하고, 이에 항의할 경우 연행해 간다. 이 불심검문에 외신기자도 예외는 없다.
참고로 홍콩은 한국과 달리 신분증 제시를 거부할 시 100% 연행된다. 거의 일본 경찰 수준의 불심검문이다. 그나마 외국인에게는 굉장히 부드러운 편이다.
물론 이러한 불심검문으로 민생치안이 세계 최고급 수준이기는 하지만 인권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불심검문하는 경찰들의 태도가 아주 고압적이다.
수사권
홍콩은 영미법이 적용되는 보통법계로 따로 검찰이 없다. 그래서 수사는 경찰이 전담한다. 이러한 수사 전담을 위해 경무처에는 형사보안국이 있으며[] 형사보안국에는 삼합회 전담 조직범죄 및 강력사건 수사대, 마약을 잡는 마약수사대, 금융범죄나 컴퓨터 사용범죄인 해킹, 그리고 보이스피싱이나 몸또 등 통신매체 이용 사기범을 잡는 첨단수사대, 외사 사건 수사를 전담하는 보안수사대 등이 있다. 테러리스트를 수사하는 대테러 수사는 외사 업무를 전담하는 보안수사대가 맡는다.
경찰은 수사 전담기관이기는 하지만 당연히 기소는 율정사 검찰관의 몫이다. 홍콩은 한국 등 대륙법계처럼 별도 검찰청은 없으나 율정사가 검찰 역할을 한다. 율정사가 기소 후 재판에 넘기는 형식이다.
공직자 부정부패나 횡령, 탈세, 공문서/사문서위조, 승부조작 등 부정사건 수사만 별도의 행정장관 직속기구 염정공서가 맡는다. 염정공서는 영국 총독부 시절부터 총독 직할기구였으며 현재도 홍콩특별행정구 행정장관 직속기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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