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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고 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1. 12. 10.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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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고(- 靑少年修練院 火災事故, Sealand Youth Training Center fire)는 1999년 6월 30일 0시 30분 경, 경기도 화성군 서신면 백미리의 '씨랜드 청소년수련의 집'이라는 청소년 수련원에서 일어난 대형 화재사고이다.

화재사건 당시 씨랜드에는 서울 송파구 문정동 소망유치원 원생 42명, 군포 예그린유치원 원생 65명[], 서울 공릉미술학원 원생 132명, 부천 열린유치원[] 원생 99명 및 이월드영어학원 원생 74명, 화성 마도초등학교 학생 42명 등 497명의 어린이와 인솔교사 47명[] 등 모두 544명이 있었으며 유치원생 19명, 인솔교사 1명, 레크레이션 강사 3명까지 총 23명이 사망하는 대형 참사를 낳았다.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사고,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와 더불어 돈에 눈이 먼 어른들의 그릇된 욕심이 순수한 어린 생명들을 해친 참사로 꼽힌다.

건물 구조

해당 수련원은 1998년 초부터 영업을 시작해 1999년 3월 수련원 인가를 받았으며, 총 부지면적은 11,606m² / 건축면적은 2,576m²로써 A, B, C동으로 분리되었다. 당시 A동은 658m²로 강의실 및 식당, B동은 156m²로 생활관/관리사무실/양호실/휴게실로 각각 이루어졌으며, 특히 화재가 난 C동 건물은 1,762m² 규모로 1층 콘크리트 건물 윗쪽 2~3층에 컨테이너 52개를 쌓아 외벽은 흰색 목재, 지붕은 샌드위치 패널로 마감된 건물로서 생활관 겸 지도자 숙소로 사용되어 총 59개 객실에 630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문제는 컨테이너부터 저가 제품을 썼다는 것인데, 해당 컨테이너는 두께 1.6mm 철판으로 열전도성이 강했으며, 그 이음새에 용접도 아닌 실리콘을 바르고 목재나 샌드위치패널 등 인화성 물질로 감싸져 있었고, 화재 경보기는 작동을 멈췄고 소화기도 텅텅 비어 있어 초동진압을 못하게 만들었다. 특히 건물 지붕에 사용된 샌드위치 패널은 한쪽 면에 벽체로 사용되는 철판이 빠져 내부의 스티로폼 단열재가 그대로 노출된 형태였고, 각 방의 벽재도 스티로폼 단열재 위에 합판만 올린 부실한 자재에다가 벽지만 대충 발라 때운 것이었다. 이렇다보니 불길이 단시간에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번진 것은 물론, 단열재가 불에 타면서 대량의 유독가스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것.

당시 수련원 대표는 토지 실소유주 김 모, 수련원장은 토지 임대자 박 모 씨가, 영업은 황 모 씨가 각각 맡았다. 게다가 수영장 자리는 원래 양어장 자리였는데, 1987년에 시설주가 양어장을 수영장으로 불법 변경해 벌금을 문 바 있었으며, 1997년에도 무허가 소규모 놀이동산을 차려 장사하다 적발된 바 있었다.

 

원인

사고 하루 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원인 규명에 2~3개월 걸릴 거라고 했지만, 7월 2일에 갑자기 화재의 원인이 모기향 불이었다고 발표했으며 그게 잘못 엎어지면서 가연성 소재로 된 건물 내로 불길이 번지고 매캐한 독가스를 뿜어지면서 피해가 커졌다고는 했다. 이후 법원 판결에서도 모기향이 화재의 원인으로 판단되었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국과수가 사고 3일 만에 철저한 검증 없이 화재원인을 발표한 데에 대한 의구심을 품었고, 7월 6일 한국화재보험협회 실험에서 모기향을 피운 채 이불과 신문지를 놓고 2시간 동안 바람을 불어넣었지만, 불이 붙지 않았다. 7월 9일 MBC <PD수첩>에서도 비슷한 조건으로 실험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전부터 전기가 들어왔다, 안 들어왔다 했다는 목격 증언으로 보아 전기 누전을 원인으로 보는게 사실에 가까울 거라고 대다수가 입을 모았다. 모기향 화재인 것과 전기누전 화재인 것은 사고 책임소재에서 큰 차이가 있으며, 전자는 모기향을 피운 소망유치원장에게 책임이 전가되고, 후자의 경우라면 관련된 공무원들 여럿 모가지다.

한편 유가족들은 사건 발표 다음 날에 분노한 채 국과수까지 갔으나 전의경에 의해 가로막혔고, 수사상황을 알기 위해 화성경찰서까지 갔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7월 23일엔 김종필 국무총리 면담을 요구하며 정부중앙청사까지 갔으나 버스째로 견인당했다.

정부의 엉터리 화재 원인 규명에 분노했던 유족 중에는 1988 서울 올림픽 여자 하키 은메달리스트 출신으로 대통령 훈장까지 받은 학부모 김순덕 씨가 있었는데 김 씨가 체육훈장을 반납하겠다고 나서자 그제서야 김종필 총리와의 1:1 면담자리를 가지게 되었고 김 총리는 그 자리에서 재수사를 약속했다. 그러나 재수사는 결국 없었다. 그리고 후술하겠지만 결국 김 씨는 거듭되는 대형 참사 속에도 달라지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분노하며 자신의 훈장을 반납했고 뉴질랜드로 영구이민을 떠났다.

화재 지압

특히 많은 희생자가 난 이유 중 가장 큰 원인은 사고지역이 무선통신 난청지역이라 신고가 늦었다는 점. 1999년 당시는 핸드폰이 보급되고 있었지만 아직 초창기라 통화가 안 터지는 음영지역이 많았다. 즉 기지국이 충분히 안 깔렸다는 뜻.

오산소방서에 신고가 접수된 건 사고 1시간 후였고 게다가 소방서에서 씨랜드까지의 거리는 70㎞나 돼서[10] 고속도로에서 질주를 해도 40분은 잡고 가야 하는] 긴 시간이 걸렸다.

또한 고속도로처럼 선형 좋은 도로도 40분인데, 사고가 난 곳은 전형적인 농어촌 지역 오프로드 산길에다가 선형도 안 좋았으니, 제 아무리 소방차가 신호 다 무시하고 달리고 새벽이라 교통량도 적었다 한들 가는 데 당연히 시간이 엄청 걸리는 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고 설상가상으로 당시 수련원 쪽으로 열려 있는 도로는 중형 승용차 1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도로 폭이 좁아서 아예 소방차가 들어가지도 못했고 다른 쪽 도로에는 수련원 측이 사유지라 주장하며 쳐놓은 철조망 및 쇠말뚝 등이 있어 출동에도 애를 먹었다.

화재 발생과 동시에 소방차가 출동했다고 쳐도 결국 화재 현장과 소방서의 거리가 멀어서 화재 발생 후 40분 이상 지나고 나서야 도착하게 되었다.[] 관련기사 결국 동원된 소방 인력만 553명[]에 소방차 등의 차량도 67대가 넘게 동원됐지만 3분 만에 물은 동이 나고, 유독가스와 화염, 건물 붕괴 위험 등으로 화재진압과 인명구조에 큰 어려움을 겪었고, 끝내 어린이 19명을 포함한 23명은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피해가 급증한 이유

이렇게 된 이유는 그 18명의 소망유치원생들은 씨랜드 3층의 한 개 방에 다 같이 자고 있었는데, 불길이 급격히 번진 데다 인솔교사들이 무책임하게 대응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는 게, 해당 유치원의 인솔교사들은 그 유치원생들이 자는 반대편 방에서 투숙 중이었다는 것이며 최초 발화지점도 거기였고 심지어 비치된 소화기도 불량이라 쓸 수도 없었고, 화재경보기마저 애들이 장난을 칠까봐 꺼둔 상태였다. 누전 또는 합선사고로 추측되는데, 아무런 빛도 없는 깜깜한 방안에서 어린이들은 불길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

아이들이 몰려 자고 있었던 방에 인솔 교사가 하나라도 있었다면 아이들을 대부분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교사가 같이 자고 있던 방 아이들은 무사히 나올 수 있었겠지만 인솔 교사의 대부분은 밖에서 불을 피워두고 삼겹살과 소주를 먹고있었던 터라 불이 났어도 술에 취해 대부분의 교사들이 제대로 대응을 할 수 없었던 건 당연지사다. 이 때 술을 마시지 않았던 초등학교 교사 한 명과 레크리에이션 강사 세 명이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불길 속으로 몸을 던졌다가 함께 변을 당했다. 그리고 3층에서 투숙했던 소망유치원 외에도 2층에서 투숙했던 부천 이월드영어학원에서도 유치원생 1명이 희생되었다.

게다가, 수련원 측은 운영 과정에서 시공 및 감리회사 관계자들에게 뇌물을 먹였으며 화성군 공무원들은 이를 묵인, 비호하였고, 충격적이게도 김일수 화성군수가 불법 운영에 개입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뇌물을 먹였으니 씨랜드의 건물은 불법적인 구조로 운영을 할 수 있었고, 안전검사 또한 무시할 수 있었다. 콘크리트 건물 1층 위에 컨테이너 52개로 가건물을 조합해서 운영하고 있었다. 게다가 건설비와 운영비 절감을 위해 가연성 소재로 인테리어를 했다. 이러니 불이 나면 쉽게 번지고 이 과정에서 유독가스까지 추가로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불법 구조 탓에 소방차가 밖에서 물을 뿌리더라도 건물 안으로 제대로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덧붙여서 컨테이너로 만든 건물이었던데다, 화재로 컨테이너 자체가 많이 약해져 있어서 물이 있어도 물을 뿌리기도 힘들게 되었다.[] 그리고 위에서 기술했었지만, 소화기나 화재경보기 등의 방화(防火)시설 점검도 뇌물을 받았으니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심지어 당시 정부 역시 책임 대상으로 거론됐는데,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후 범정부적 차원에서 '규제 완화'를 실시하면서 건축물 관련 법령이 느슨해졌고,[] 이것이 위법행위를 키운 요인 중 하나이다.

게다가 청소년 수련활동이란 건 초중고생 대상이라 유치원생은 제외하는 게 원칙인데[17]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소망유치원은 참사 전날 서울강동교육청이 개최한 '여름방학 생활지도를 위한 원장회의'에서 유아 숙박수련활동 금지를 시달받았는데도 합숙을 강행했다.

수사 및 처벌

경찰은 조사 과정에서 씨랜드-화성군청 간 온갖 비리 사실이 있었음을 밝혀냈고 이에 전국적으로 여론이 폭발했다. 해당 시설 건축주 겸 수련원장 박재천을 비롯해 공무원, 화성군수까지 구속 영장이 신청되었고[], 사건 당일 술을 마셨던 인솔 교사들도 모두 구속되었다. 부지 소유주 김씨는 불구속 입건되었다.

최고 책임자 김일수 전 화성군수는 이 사건으로 인해 군수직에서 사임하였으나, 무혐의로 풀려난 뒤 지금도 지역유지로 잘 산다. (2005년 인터뷰). 그리고 한 때 경찰에서 몇번이나 검찰에 기소요청을 했지만 모두 기각당했으며, 더욱 무서운 것은 화성군수가 조사받던 중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하자 화성군수님을 보호하겠다는 화성농촌문제 연구회와 지역 4H 소속원들이 주축이 된 지지자 300명이 몰려가서 병실을 지키면서 기자들을 내쳤다. 또한 "씨랜드 사건이 비극이기는 하지만 군수님에게 모든 비난을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 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반면 씨랜드 원장 박씨는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 및 금고 5년, 전 소망유치원장 천씨는 금고 5년이 각각 선고됐다. 이후 이들은 각각 징역 1년과 금고 4년으로 감형됐다가 2001년에 출소했다.

화성 동부(병점, 동탄, 봉담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발이 늦고 소외되어 있는 서부 지역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주목이 덜 되는 편이다. 게다가 한달 후 신창원 사건 및 임창열 경기도지사 뇌물사건 등으로 관심이 금방 줄었고, 일부 언론과 국민들 사이에서 '보상금 더 받으려고 질질 끈다'며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우도 있었다. 이 사건에 관련해 인허가를 담당했던 공무원 이모씨도 고초를 겪었다. 당초 해당 인허가 신청을 접수한 담당 공무원 이모씨는 실사결과 컨테이너를 얹은 부실하고 취약한 형태의 건물이라 허가를 내주지 않았는데 이후 씨랜드쪽의 갖은 회유와 협박에 시달린 것. 이모씨의 상급자들도 빨리 허가를 내주라고 압력을 가했고 나중에는 조폭까지 동원해 협박했다고... 또 씨랜드 회장인 박모씨는 "니까짓게 군수도 아닌데 시키는대로 하지 말이 많냐"라든가, "안 되면 안 되는 법을 찾아오라" 등의 폭언을 행사하는 바람에 결국 이모씨는 다른 민원부서로 옮겨야 했고 허가는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

해당 공무원은 이러한 전말을 비망록에 남겨 양심선언했으며, 나중에 씨랜드 사건이 터지고 수사를 받으면서 이 비망록이 관계자 처벌에 결정적 기여를 했지만 결국 상급 공무원들이 그 건으로 줄줄이 사법처리를 받게 되자 조직내에서 내부고발자라는 냉대를 받으면서 그 다음해에 쓸쓸하게 명예퇴직을 하게 되었다.(관련기사) 말이 명예퇴직이지 거의 해임된 거나 마찬가지. 퇴직 이후 그녀는 인터뷰에서 '참 공무원'이 아니라 스스로를 '어린 생명을 잃게 만든 죄인'이라 생각하며 평범한 엄마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결국 제대로 된 원인 및 진상규명 없이 1999년 8월 10일, 유가족들은 배상책임 대상에 대한 배상/보험청구권을 경기도 및 화성군청에 위임하는 등으로 합의하고 말았다.

사고 이후에도 샌드위치 패널을 쓰고 소방시설이 미비한 일부 불량 청소년수련원이 법망을 피해 아직도 존재했으며, 창고 등 타 건물도 샌드위치패널 등 내장재 관련 법안에 손을 대지 않았고, 결국 이로 인해서 4년 후 대구 지하철 참사와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 화재참사, 청도 버섯공장 화재,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고 등이 발생하자마자 그제서야 건물 및 차량의 내장재가 불연재 또는 난연재로 바뀌게 되었고,[] 2005년부터 제정된 '청소년활동진흥법 시행령'에 따라 청소년수련원에도 샌드위치패널을 건축자재로 쓰지 못하게 하고 있다.[] 만약에 정부가 내장재 관련 법안에 손을 대는 행위로 외양간이라도 고쳤다면 더 많은 생명을 잃는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고 이후

희생자들의 시신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이송되었고, 분향소는 서신면사무소 3층 회의실 및 서울강동교육청에 차렸다가 8월 7일에 올림픽공원에서 합동 영결식을 엄수한 후[] 다음날 아침에 사고 현장 반대 방향인 동해에 유골이 뿌려졌다.[] # 2001년에 서울 마천동 어린이안전공원 내에 추모비가 세워졌다.

사고 어린이들의 부모들은 2001년 3월 23일 화성시에서[24] 씨랜드청소년수련의집 화재사고 사상자 보상금 지급 조례가 통과되면서 보상금을 받게 되었지만 어린이들의 생명은 그 어떤 것으로도 갈음할 수 없었다. 여자하키 종목으로 1988 서울 올림픽에서 은메달, 2번의 아시안 게임에서 2개의 금메달까지 땄었던 김순덕 전 여자 하키 국가대표 선수는 이 사고로 아들 도현이를 하늘나라로 떠나 보낸 후 4개월 만에 인천에서 화재 사고가 또 나자, 정부의 무책임한 수습에 환멸을 느껴 그동안 받았던 훈장을 모두 정부에 반납한 뒤,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고 뉴질랜드로 영구이민을 갔다. (그 해 8월에 가졌던 인터뷰)

그 외에도 사고 희생자들의 부모가 생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속출했다고 한다. 2009년 보도에 따르면 희생자 18명 가족들 중 13명의 가족들은 희생된 자식들의 동생을 낳았고, 생존자 중 PTSD로 고생하는 이들도 있다. 또 다른 사례

한편 이 참사로 인해 7살 쌍둥이 딸[]을 한꺼번에 잃은 유가족 대책회장 고석 씨는 2006년 <안전교육이 유아의 안전능력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로 서울시립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2000년 한국어린이안전재단을 설립해서 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 뒤 안전문화 유공자로 인정받아 2015년 국민포장을 받았다.

사고 발생 후 유치원/초중고 학생, 부모, 교사들 사이에서 여름캠프 기피현상이 만연해졌다. 당시 전국 유치원 대다수는 7월부터 예정됐던 1박 2일 여름캠프를 취소/보류하고 이듬해부터 당일 캠프 등으로 바꾸게 되었다. 언론 역시 선진국 수련시설 안전사례 및 불량 사설수련원 실태 등을 보도하여 정부와 관계기관의 각성을 촉구하였다. 이에 따라 행정당국은 청소년보호정책을 강화해 건축법 및 소방법을 개정하여 수련원 건축자재를 난연재로 하는 등 후속조치를 마련하였다. PC통신과 인터넷 등지에도 추모 분위기가 형성되어 '씨랜드참사 희생자 유족회'란 홈페이지가 개설되기도 했다.(다른 페이지)

2021년 8월 19일 MBC 심야괴담회에 당시 현장보존 보초근무를 한달여간 섰던 의경 대원의 이야기가 소개됐다. 괴담보다는 참사를 잊지 말자는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이 분은 보초 철수 이후 이 곳을 다시 찾지 않다가, 22년 후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사고현장을 찾는 장면도 후반부에 나왔다.

2021년 12월 9일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자세하게 다뤄졌다.(예고편) 녹화 도중 장성규의 이야기 친구로 출연한 백지영이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들으면서 내내 오열하는 바람에[] 녹화가 잠시 중단되었다고 한다. 또한 따로 녹화를 하던 장도연의 이야기 친구 비비도 눈물을 계속 멈추지 못했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가던 장도연마저 희생자 중 한 아이의 아버지가 불에 타다 남은 세일러문 잠옷의 잔해를 보고 딸의 시신을 확인했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끝내 울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야말로 엉엉 울면서 녹화가 잠시 지연되는 모습이 편집되지 않고 그대로 전파를 탔다. 한편 장현성의 이야기 친구로 나온 타블로는 방송 말미에 참사가 일어나기 전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쓴 편지 내용을 언급하면서 "아이들이 선생님을 사랑한다고 하고 절대적으로 믿었지만, 어른들은 사실 그렇게 믿을만한 존재가 아니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참사 이후 2004년경까지 1층만 남다가 이후 철거되어 빈 터만 남았고, 2017년 6월 30일 18주기 추모식 때 채인석 화성시장이 참사현장 터에 추모공원을 만들 계획을 설명했다. 하지만 2019년 6월 26일 언론보도에 따르면 잡초가 무성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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