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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2. 2. 1.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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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은 한 해의 첫 날을 기리는 명절이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한국에서 설날은 양력 1월 1일(양력설이자 새해 첫날, 신정)과 음력 1월 1일(음력설, 구정) 모두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본 문서에서는 한국의 전통 명절인 음력 1월 1일 음력설에 관해서만 기술한다.

음력 1월 1일 설날은 추석과 함께 명절 전날과 다음 날을 포함한 3일이 법정 공휴일인 한국의 대표적인 명절 중 하나다. 섣달그믐이 윤달일 경우 윤달만 휴일로 인정되고 평달은 휴일이 아니다. 이는 윤12월이 생길 경우 12월 → 윤12월 → 1월 순서대로 달이 바뀌기 때문. 한국의 학기제 특성상 그 학년도 마지막 공휴일이며 전통적으로 겨울방학 또는 봄방학 중이다.

음력설의 날짜는 음력 1월 1일이다. 구정(舊正)[4], 정월(正月) 초하루, 음력설로도[] 불리며 한자어로는 신일(愼日), 원단(元旦), 세수(歲首), 연수(年首), 단월(端月), 원일(元日) 등으로 불린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널리 지켜지는 명절이다. 명칭은 중국이나 베트남에서는 각각 춘절(春節)과 뗏(節, Tết)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도 쇼가쓰(正月)란 이름으로 같은 날에 설을 쇠었으나 메이지 유신 이래 1873년 이후부터는 음력을 폐지하고 태양력을 도입함과 동시에 설날을 양력 1월 1일로 바꾸었다.[] 하지만 오키나와 에서는 음력으로 설날을 보낸다. 그래서 음력설을 쇠지 않는다. 북한도 양력 1월 1일 양력설을 한 해의 첫날이자 중요한 명절로 여기고 있으며, 음력 1월 1일이 공휴일이 된지는 얼마 안됐다. 북한은 양력설을 “설날”이라 칭하고, 음력 1월 1일을 휴식일이라 하여 하루 쉰다. 이러한 연유로 일본과 북한을 제외한 동아시아권에서는 양력 기준으로 1월이 아닌 2월을 한 해의 시작이라 보는 인식이 강하다.

어원

설이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대체로 네 가지의 설(說)이 있는데 새로 온 날이 낯설다는 의미에서 낯설다의 어근인 "설다"에서 온 것으로 본 시각과 한 해가 새롭게 개시되는 날을 의미하는 "선날"이 설날로 바뀌었다고 보는 시각, 한국어로 나이를 의미하는 살과 동계어라는 시각,[] 그리고 자중하고 근신한다는 의미의 옛말인 "섦다"에서 왔다고 보는 시각들이 존재한다. 사실 딱히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틀렸다기보단 저런 의미들이 다 포함되었다고 보는 편이 일반적일 것이다.

또한, 설 전날을 '까치설'이라고도 하는데, 까치와는 관계없고 작은 설을 뜻하는 '아치설' 또는 '아찬설'이 변한 말이라고 한다. 어차피 '까치'도 울음소리를 나타낸 말인 '꺅'과 작다는 뜻의 '아치'가 합쳐진 말이다.

설날 역사

설은 곧 새해의 첫 날을 기념하는 날이므로 역법체계가 갖춰져야만 지낼 수 있는 명절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오래 전부터 지내던 명절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태음력에서 역법 전체의 기준이 되는 달은 동지가 든 달이다. 여기에 동짓달을 기준으로 12지를 적용해서, 동짓달이 자월(子月), 그 다음 달이 축월이라는 식으로 나가는데, 역법은 초기부터 문제가 생긴다.

즉, 하.은.주 어디의 역법을 쓰느냐에 따라서 정월이 변한다는 이야기다. 참고로 전국시대 이전에 존재했던 고육력 중 위에 언급되지 않은 다른 역법 중 황제가 만들었다는 황제력과 노나라 역법인 노력은 주나라와 마찬가지로 동짓달 첫날이 새해의 시작이었고, 전욱이 만들었다는 전욱력은 '동짓달 전 달인 해월'(음력 10월)이 정월이 된다. 참고로 진시황의 진나라가 전욱력을 사용했다. 이후 한무제 때에 하력을 복원시켜서 음력 1월을 설날로 만들고, 동짓달을 11월로 고정했는데, 이것이 태초력이다. 이후 중국 역법은 수많은 자잘한 수정을 통해서 역법이 완성되어 가는데, 중간에 서양역법이 들어와서 태양태음력이 되었고 그 중 최종본이 청나라대에 완성된 시헌력이다. 이 때문에 공식적으로 음력 1월이 정월이 되고, 음력 1월 1일이 설날이 된 것은 20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부여가 시헌력 기준 음력 12월에 [12]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을 볼 때 이미 부여 시절부터 설날의 풍습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설날의 풍습에 대한 기록은 신라시대에 전해지는데 수서에 의하면 신라인들은 원일, 즉 새해 첫날에 서로 문안을 드리고 왕이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군신들을 격려하며 일월신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삼국사기에는 백제 고이왕(재위: 234년 ~ 286년)이 정월에 천지신명에 제사를 지냈고 책계왕(재위:286년~298년) 때 시조 동명왕에게 정월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설에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는 전통도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도 중요명절로 설날은 빠지지 않았는데 이는 설날이 이미 오래전부터 중요한 명절로 여겨졌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전통적으로는 설날부터 정월 대보름까지는 쭉 이어지는 축제 기간으로 이 기간 중에는 빚독촉도 하지 않았다는 말이 전해진다.

을미개혁에 따라 1896년부터 태양력이 시행되면서 음력이 폐지되었으나 양력은 낯선 것이었고 그동안 음력에 맞춰 살아온 사람들은 음력 1월 1일을 새해 첫날로 보내었다.[] 일제강점기 때도 마찬가지로 양력 1월 1일이 공식적인 새해 첫날이었고 음력의 과세(過歲)[]를 구시대의 관습으로 여겨 타파하고자 하였으나 음력 1월 1일을 새해 첫날로 지내던 풍습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기에는 신정만 연휴였고 양력 1월 1일부터 1월 3일까지 쉬었으며 음력 1월 1일은 공휴일은 아니었지만 재량에 따라 음력 1월 1일에 휴무하는 기업은 많았다. 여전히 사람들은 음력에 맞춰 친척과 만나 제사를 지내고 성묘와 세배를 지냈다. 이렇게 태양력 도입 이후에도 음력 1월 1일을 새해 첫날로 여겨 명절로 보내는 풍습은 꾸준히 유지가 되었기 때문에 이에 음력 1월 1일을 공휴일로 지정해야한다는 사회의 목소리는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었다.[] 음력 1월 1일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것을 검토한 첫 사례는 1976년이었으나 혼란이 가중된다는 이유로 흐지부지되었다. 이러던 중 전통 민속 문화를 계승·발전 시키자는 취지로 1985년부터 음력 1월 1일을 민속의 날로 호칭하고 공휴일로 지정되기 시작하였고 1989년부터는 음력 1월 1일을 설날로 호칭하고 연휴기간을 3일로 연장하여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대신 신정 연휴는 1990년부터 3일에서 2일로 줄이고, 아예 1999년부터는 1월 1일 하루만을 공휴일로 지정하였으며, 명칭도 신정에서 그냥 1월 1일로 변경하였다.[] 이는 신정을 일제 잔재로 간주하고 근로 효율성 문제를 감안한 결과이기도 하다.

젋은 세대로 갈 수록 실생활에서 양력의 사용 비중이 늘어나고 있고 음력은 그 비중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설날(음력 1월 1일)을 새해의 첫 날을 기념하기 위해 지낸다기보다는 설연휴 그 자체로서 지내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설의 본래 목적인 새해의 첫 날을 기념하는 행사(타종행사, 해돋이 관람 등...)는 양력 1월 1일에 하는 추세이다. 다만 1990년대 이후 출생 세대들은 과거 한국에서도 양력설을 연휴로 쇘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부모나 조부모 시대에 음력설이 없었고 양력설이 연휴였다는 것에 세대 간 컬처쇼크를 느끼기도 한다.

지금까지도 연휴로서 신정을 쇠는 집안도 있으며 그런 경우 공무원 집안이 많다고 한다. 음력설을 쇠지 않았을 시기에는 정부 산하 공무원들이 솔선수범하여 신정을 쇠도록 독려했기 때문이며, 또 다른 경우로는 가족의 합의에 의해 양가 가족을 모두 방문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한[] 것도 있다. 음력설을 지내지 않는 외국인과 국제결혼을 한 사람이면 문화적 차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두 설날 모두 쇠기 쉽다.

일부 중국인들은 춘절이 중국의 전통이라며 한국은 춘절을 베낀 설날을 지내는 걸 그만둬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바이두에 한국 춘절을 검색해보면 한국에 대한 증오와 함께 정치적으로 압박해서 설날을 없애야 한다는 글이 수백 개가 넘어간다. 중국 당국의 자문화중심주의 조장과 사드 설치 이후로 한동안 펼쳐진 반한기조, 더붙어서 자국 문화우월주의, 한국네티즌과의 대립까지 겹치며 중국 네티즌 사이에서 상당한 세를 얻었다. 한편으로 반크는 유엔의 "중국 설날" 표기 우표에 대해 규탄하며 유엔의 "중국 설날" 옹호를 무력화하는 청원을 올렸다.

민족 최대의 명절

설 때 "민족 최대의 명절 설입니다"라고 하고 추석 때도 방송에서는 "민족 최대의 명절 한가위입니다"라고 한다. 최대 명절이 둘이라 이따금 어느 명절이 더 최대의 명절인지 헷갈리는 사람들도 있는데, 정답은 해마다 '어느 명절이 연휴 효과가 더 좋았냐?'를 두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대체 휴일 제도 도입 이전에는 '휴일과 얼마나 안 겹치면서 휴일과 잘 붙어 있느냐?'를 우선시 했지만, 도입 이후에는 연휴기의 명절일 위치[], 기타 제반사항 등을 두고 우열을 정하는 식이다. 단순히 연휴의 길이로만 따지면 설의 경우 연결되는 휴일이 주말밖에 없지만, 추석의 경우 개천절 또는 한글날과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추석 연휴가 조금 더 긴 편이며, 따라서 추석이 조금 더 큰 명절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고 해마다 다르니 정답이 다르겠지만 이게 현대인 관점에서는 가장 합리적이고 유의미한 우열 비교라고 할 수 있다.

통계로도 고속도로 통행량이 설보다 추석 때 더 많다. 실제로 설 때는 보통 2900~3300만 명 민족대이동이라 뉴스가 나오면 추석은 3200~3600만 명 정도라 뉴스가 올라온다. 또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해외로 나가는 관광객 수도 추석이 더 많고, 택배나 여러 기업들의 매출량, 명절 선물세트 구입량, 편지배송량, 극장가 관객수, 관광지 관광객 수 등 모든 면에서 추석이 설보다 더 많다. 회사들도 설 때보다 추석 즈음이 더 바쁘다.

이를 보고 왜 추석이 설 때보다 모든 면에서 수치가 더 높나 하는 갖가지 추측이 많으나, 정설로는 이렇다. 설은 양력설과 음력설로 나뉘는데 양력설을 쇠는 사람들도 있어 인구이동이나 여러 매출 등의 수치가 분산되기 때문으로 본다. 또한 추석이 끝나고 약 3개월 후, 설날 1개월 전인 연말연시도 하나의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보통 12월 연말이 되면 크리스마스, 새해맞이로 가족들과 함께 만나거나 새해 인사를 나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양력설을 쇠는 집안이나 이미 가족들과 함께 연말연시를 보낸 경우 설날에 고향을 방문하기보다 여행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추석과 설날 사이에는 가족들에게 안부 인사나 고향 방문을 할 만한 연말연시가 끼어 있지만 설날과 추석 사이에는 가족들에게 안부인사를 하거나 고향에 방문할 만한 명절이나 공휴일이 없다.[] 즉 추석이 지나면 4개월 정도[] 지나서 설 명절이 온다. 하지만, 설 명절이 지나고 7개월 정도[] 지나야 추석이 온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떨어진 시간이 설 이후 추석 때까지가 더 길어서 그리운 정서의 작용으로 추석 때 고향 방문이 더 높다고 보기도 한다.

뿐만이 아니라 설은 겨울이라 춥지만, 추석은 초가을이라 선선하고 시원하며 낮 더위가 있기도 한다. 이러한 날씨가 사람들 정서에도 영향을 주어 밖에 나가기도 겨울보다 적절한 날씨라 고향 방문율이 더 높다고 본다. 실제로 설 연휴에 폭설이 내려 길이 막히면[] 귀성을 포기하는 경우도 제법 있다. 특히 당일 귀성하는 경우. 물론 2010년처럼 추석에 폭우가 내려서 포기하기도 한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설이 방학시즌이라는 것이다. 설이 되기 전 대학생들은 이미 종강해서 고향에 내려갔고, 초중고등학생들도 방학 시즌이라 미어터지는 3일 연휴를 피하기 위해 부모 중 한 명과 미리 시골집에 가는 경우도 있다. 거기에 농한기라서 부모의 역귀성도 설연휴보다 앞당겨지는 게 충분히 가능하고.

해외 여행객이나 국내 관광지 여행객이 추석이 음력설보다 많은 것도 학생들의 방학 시즌과 설이 겹쳐서 굳이 설날이 아니더라도 날짜 선택의 여유가 충분하기 때문에 직장인들까지 여행에 나서는 설연휴를 피하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택배, 우편, 극장을 포함한 소비지출도 마찬가지로 크리스마스 시즌과 연말연시에 분산되는 경향이 크다. 참고 기사

또한 양력설 도입 이후 음력설이 공식적인 3일 연휴로 인정되기 시작한 때는 1989년부터이며, ‘민속의 날’이라는 명칭으로서 음력설이 공식 휴일이 인정된 것은 1985년부터다. 추석도 1989년부터 3일 연휴의 긴 명절 연휴로서의 지위를 누려왔지만 추석은 음력설보다 더 오래 전부터 공휴일로서 기념되었다. 사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84년까지 음력설은 공휴일이 아닌 평일이었고 양력설만 공식 휴일로서 기념되어왔다. 1985년 이후 현재는 위에서 언급되었듯이 양력설인 새해 첫날과 새해 명절의 역할을 양분해왔다. 또한 현대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음력설은 가족들, 친척들이 모이는 날이고 양력설인 새해 첫날을 진정한 새해로서 기념하는 인식이 늘어나고 있어 먼 미래에 음력설에 대한 축소 등의 위기가 간간이 제기된다. 그러나 음력설과 달리 추석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49년부터 공식적인 법정 휴일의 명절이고, 1986년에는 추석 당일과 다음 날 총 2일의 연휴가, 1989년부터 추석 당일 전날을 포함 3일간의 연휴로서 지위가 인정되었다. 그리고 양력 1월 1일, 음력 1월 1일 둘 다 함께 새해로 기념되는 것과 달리 양력 8월 15일은 광복절이라는 추석과 완전히 다른 의미의 기념일이기 때문에 추석은 의미가 분산될 날이 없이 단독으로 추석 자체로서의 의미로 음력 8월 15일에 기념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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