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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참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2. 2. 2.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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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MC이다.

어렸을 때부터 라디오 드라마에 심취하여 성우 흉내로 사람들을 웃기는 데 능했고,[] 학창시절 다니던 웅변학원[]에서 발음법과 발성법, 화술을 배우면서 우렁차고 또렷한 목소리와 재치있는 말솜씨를 갖게 되었다. 1970년 영남상고를 졸업하고 바로 군대에 입대한 허참은 이등병 때부터 부대 웅변대회에서 1등을 따는 등 두각을 나타내며 문화선전대 진행요원으로 뽑혔고 군 생활 내내 위문공연 MC로 활동했다.

1973년 전역 후 방송인이 되고 싶어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허참[]은 처음엔 군대나 고향 친구 집을 떠돌면서 동가식 서가숙 하다가 중구 정동에 있는 문화방송(MBC) 근처에서 구멍가게를 하던 친구 집에 더부살이로 정착하여 채소나 생선 배달 등 잡일로 생계를 꾸리며 방송국 부근에서 계속 꿈을 키워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군대 친구와 종로에 놀러간 허참은 당시 이종환이 운영하던 통기타 라이브 클럽 쉘부르에 들렀다가] 통기타 그룹 쉐그린 공연 후 행운권 추첨에 당첨되어 무대로 올라가게 되었는데, 문선대 MC 3년 경력을 살려 전혀 떨지 않고 오히려 뻔뻔하게 보일 정도로 입담을 과시하여 무대의 가수들과 관객들을 배꼽잡게 만들었다. 허참의 말솜씨에 감탄한 쉐그린 멤버가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라고 묻자 허참은 "아... 기억이 안납니다" 라며 능청을 떨었고, "허 참, 자기 이름도 기억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라는 면박에 재치있게 "아 그래요, 제 이름이 바로 허참입니다" 라고 받아치면서 클럽 안의 사람들을 전부 빵 터뜨렸다. 이것이 부산 청년 이상룡이 허참이란 예명을 쓰게 된 계기였다.

허참의 재능을 알아본 이종환은 그를 쉘부르의 MC 겸 DJ로 채용하여 그의 명성은 높아졌고 나중엔 허참 쇼 라는 자신만의 쇼를 열어 매번 쉘부르 입장권이 동날 정도로 유명해졌다.[] 결국 1974년, 쉘부르의 손님으로 그를 지켜보던 당시 MBC PD 겸 DJ 박원웅[]이 허참을 새 라디오 프로그램 청춘은 즐거워 MC로 영입하면서 본격적으로 방송계에 데뷔하게 되었다.

이후 MBC 라디오의 MC와 DJ로 활약하던 허참은 1976년 경 MBC 내 모든 프로그램의 사회자를 아나운서로 교체한다는 방침으로 일자리를 잃고 신발 장사를 하는 등 잠시 방송계를 떠났다가 TBC의 스카웃 제의를 받고 이적하여 7대 가수쇼 MC로 TV 무대에 진출했고, 그 이듬해인 1977년부터 TBC의 간판 쇼 프로 쇼쇼쇼의 MC를 맡으며 명실상부 당대 최고의 MC로 떠오르게 된다.[] 그 외에 DBS의 허참과 이 밤을 등의 MC로도 활동했다.

 

가족오락관 mc로서의 활동


허참하면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떠올리는 프로그램은 가족오락관을 꼽을 수 있다. 또 반대로 가족오락관하면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떠올리는 MC는 허참이다. 그만큼 그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가족오락관을 빼놓을 수가 없다.

언론통폐합 후에도 TBC 때부터 MC를 맡아오던 쇼쇼쇼 등 다양한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활동하다가 1984년부터 KBS 가족오락관의 MC를 맡게 되었으며 국민적 사랑을 받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진행자인 허참 역시 큰 인기를 얻었다. 한때 시청률이 35%를 넘는 경우도 있었을 정도였다.

교통사고로 인해서 한 번 펑크를 낸 적이 있었지만 여성 MC가 스무 명이 넘게(21명) 바뀔 동안 허참만은 자리를 굳건히 지키면서 프로그램의 마스코트격인 존재가 되었다.

그 뒤 가족오락관이 2009년 4월 부로 25년의 세월을 뒤로 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질 때, 30대에 진행을 맡아서 60대에 마무리하게 된 그는 "마지막 녹화를 끝내고 나서, 한 주부 방청객이 '아저씨 잘 가요'라고 인사하는데 마치 은퇴하는 기분이었다"며 아쉬워했다.

어쨌든 그의 가족오락관 25년 진행은 2019년 11월 전까지 국내 단일프로 최장수 연속 진행 MC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이 기록의 최고 경쟁상대인 '일요일의 국민MC'로 유명한 전국노래자랑의 송해는 1988년 5월부터 1994년 5월까지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했고, 잠시 하차했다가 동년 10월 16일에 복귀했다. 그러므로 1994년 10월 16일부터 연속 진행 기록을 계산하면 2019년 11월을 넘겨야 허참의 기록을 뛰어넘게 된다. 이는 2018년 11월 7일에 방영된 라디오 스타에서 허참이 직접 발언한 내용이다. (그리고 그 말대로 마침내 송해가 그 기록을 뛰어넘었다.)

다른 방송사 프로그램 중에서는 1998년 5월 21일 첫 방송 이래 현재까지 임성훈과 박소현이 MC 자리를 놓지 않고 있는 SBS의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가 허참과 송해에 견줄만한 편이다.

가족오락관 외의 프로그램까지 합하면 스쳐지나간 여성 MC가 무려 140명에 달해 강심장에서 "MC계의 의자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가족오락관 종영이후

2011년에는 잠시 동안 아이넷TV 성인가요콘서트 MC를 맡기도 했으며 2012년 말부터 2015년 초까지 지역 민방 전국 TOP 10 가요 쇼의 MC를 맡는 등 음악 프로그램 MC로의 활동은 지속되었다.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에서 부업으로 고깃집[]을 경영하고 있다. 개업한 지는 오래됐다. 위치는 담터사거리에서 별내(불암산) 방면

으로 가면 있다. 그리고 2016년에는 같은 지역(남양주)에 유기농 채소 식당 '참스팜스'를 개업하였다.

2015년 8월, 대부업(사채)체인 미즈사랑 CF에 출연하면서 사채 CF에 출연한 연예인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대전문화방송의 토크앤조이에 출연하고 있는데 유독 서수진 아나운서에게 시집가라는 소리를 자주 한다. 정작 유지은 아나운서에게는 별로 그러지는 않는다.

2014년, 남양주시 화도읍에 위치한 자신의 집 인근에 있는 공유수면을 불법 사용하다가 적발된 적도 있다.

2017년 2월 5일, 복면가왕에서 방귀대장 스컹크라는 가명으로 참가했으며 사슴이 꽃보다 아름다워와 이광조의 '오늘 같은 밤'을 같이 부른 뒤 어니언스의 '편지'를 부르면서 정체를 밝혔다. 이 때 심현섭이라고 생각했던 김구라는 “내가 선생님께 무슨 짓을 한 거야!”라면서 데꿀멍...[]

2019년 11월부터 2020년 5월까지는 SBS의 아침 드라마 맛 좀 보실래요에 출연해 연기자로도 활동했다.

2021년 11월에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 출연하였다.

2022년 1월에 JTBC의 진리식당에 출연하였다. 이 프로그램이 방송 프로그램 기준으로 유작이 되었다.

사망

2022년 2월 1일 낮 12시에 지병인 간암으로 향년 72세의 나이로 별세했으며,[] 빈소는 서울특별시 소재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되었다. #

선배 송해와 함께 원로 MC로 손꼽히는 시대의 국민 MC였으나 먼저 세상을 떠났다. 공교롭게도 송해는 자신이 죽거든 전국노래자랑 MC 자리를 허참에게 맡기고 싶다고 말했었다.[] 여담으로 KBS 연기대상 역대MC 중 1987년 초대MC 길은정에 이어 2번째 고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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