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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2. 2. 12.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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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는 동유럽에 위치한 나라이다. 러시아와 동쪽 및 남쪽 국경,[]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몰도바, 루마니아와 서쪽 국경, 벨라루스와 북쪽 국경을 접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또한 흑해와 아조프 해에 맞닿아 있다. 수도는 키예프(Київ / Kyiv, Kiev)이다.

전치사 논쟁

러시아어에서는 '우크라이나에서', '우크라이나로부터'를 의미하는 말로 на Украине, с Украины를 주로 쓴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정부나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은 이렇게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러시아어에서는 일반적으로 '~에서, ~로부터'의 뜻을 나타낼 때 대부분의 국명 앞에는 전치사 в와 из[]를 사용한다(예: 한국 - в Корее, 러시아 - в России, 일본 - в Японии). 반면 일반적으로 지역의 명칭인 경우에는 на와 с[]를 사용한다(예: 캅카스 - на Кавказе, 우랄 - на Урале. 단 시베리아는 в Сибири다). 다만 몇몇 국명의 경우(특히 섬나라)에도 на와 с를 사용한다(예: 키프로스 - на Кипре, 필리핀 - на Филиппинах, 쿠바 - на Кубе).

그런데 러시아어에서는 예로부터 일반적으로 장소/방향에 관한 전치사를 우크라이나라는 국명과 함께 쓸 때는 на/с를 사용해왔다. (예: на Украине) 이는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라는 국명을 '변방에 있는 땅'이라는 의미로 봤기 때문으로, 1930년대 소련에 의해 на/с를 표준으로 정하고 в/из 형태는 버리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당시에는 소련이라는 하나의 나라에 있었던 상황이었던 데다가 민족주의를 소련이 의도적으로 배제하려 했기 때문에 1980년대 후반까지 이에 대한 반발은 거의 없었다. 1980년대 후반~1990년대 극초반에 발간된 국내의 러시아어 교재에서도 대부분 на Украине를 표준으로 적어 놓고 있다.

그러나 1990년 우크라이나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후로 전치사에 대한 논쟁이 발생하였다. 우크라이나는 섬나라도 아닌 데다가 이제는 더 이상 러시아의 한 지방도 아니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1993년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 정부에 정식으로 국명 앞의 전치사를 в/из로 바꿔줄 것을 요구한다. 러시아 측에서는 이 요구를 받아들여 '주우크라이나 러시아 연방 대사관'의 이름을 "Посольство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 в Украине"라고 써왔다.# 그러나 2011년 경부터 러시아의 공식 입장이 다시 на/с를 사용하는 것으로 변하였는지 2011년부터는 "Посольство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 на Украине"로 변경하였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첫 번째로는 관용의 문제다. 러시아에서는 오랜 세월 우크라이나라는 국명 앞에는 на/с를 사용해와서 в/из를 사용하는 것을 어색하게 느끼게 된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우크라이나라는 국명의 어원에 대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견해 차이 때문이다. 러시아에서는 우크라이나라는 국명의 어원을 '변방의 위치한 땅'이라고 봐서 국명 이전에 지방의 의미가 강하기 때문에 на/с를 고수하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우크라이나에서는 '크라이나' 자체를 '국가'라는 의미로 보기 때문에 '우리의 나라'가 어원이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결국 이러한 어원의 해석 차이 때문에 전치사 논쟁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 문제는 결국 자연스럽게 정치적 올바름의 문제로 까지 번져 우크라이나 뿐만 아니라 러시아 내부에서도 현재까지 논쟁거리로 남아있다. 일단 당사국인 우크라이나에서는 러시아어로 쓰더라도 우크라이나라는 국명 만큼은 우크라이나 정부의 입장을 따라 в/из로 적는 것이 대부분이다. 왜냐면 우크라이나가 주권 국가이며 국명의 표방은 우크라이나에 있기 때문이다. 당장 구글에 в Украине를 검색해보면 .ua로 끝나는 우크라이나 사이트들이 대부분일 정도다. 그나마 보이는 .ru의 러시아 사이트들도 이 전치사 논쟁을 다룬 내용이 대부분이다. 반면 러시아에서는 공식적으로는 на Украине를 고수하기로 했는지 대부분의 주류 언론들이 на Украине를 고수한다.[] 하지만 일반 언중들 사이에서는 "우크라이나가 이제는 독립국이기 때문에 в Украине가 맞다."라는 의견이 있는 한편, "지방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혹은 "오랫동안 써온 러시아어에 우크라이나 너네들이 왜 간섭이냐?"고 하여 на Украине를 고수하는 의견도 있다. 그래서인지 현재 각종 문헌을 보면 둘 다 쓰이고 있는 상황이다.

역사적, 특히 문학 작품에서 쓰인 예시들을 살펴보더라도 두 전치사가 혼용이 되고 있다. в Украине 자체도 사실 따지고 보면 나름 많이 사용되었다. 나리주니(Василь Наріжний, 1780–1825), 고골, 코스토마로우(Микола Костомаров, 1817–1885), 코롤렌코(Володимир Короленко, 1853–1921), 베르나즈키(Володимир Вернадський, 1863–1945) 등 우크라이나 출신의 작가나 학자 뿐만 아니라 타티셰프(Василий Татищев, 1686–1750), 카람진(Николай Карамзин, 1766–1826), 오도옙스키(Александр Одоевский, 1802–1839), 게르첸(Александр Герцен, 1812–1870), 고리키, 프리시빈(Михаил Пришвин, 1873–1954) 등 러시아 출신의 작가나 학자들도 자신의 저술에 в Украине/из Украины를 사용했다. 물론 이런 작가들도 항상 в Украине를 사용했던 것은 아니고 на Украине를 혼용하기는 했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유명한 작가인 타라스 셰우첸코(Тарас Шевченко, 1814–1861)의 작품을 보면 맥락에 따라서 "Як умру, то поховайте Мене на могилі, Серед степу широкого, На Вкраїні(Україні) милій"처럼 На를 쓴 경우도 있는 반면, "В Україну ідіть, діти! В нашу Україну"처럼 В를 사용한 경우도 있을 정도다.

결국 이 문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정부 뿐만 아니라 네티즌 사이, 그리고 러시아 네티즌 사이에서도 항상 논쟁거리가 되어 종종 이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영어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우크라이나 독립 이전에는 영어로 우크라이나를 부를 때 정관사 the를 붙여서 "The Ukraine"이라고 썼는데, the는 일반명사에서 유래한 고유명사에도 붙으므로 the Ukraine의 Ukraine은 일반명사로 볼 수 있으며, 따라서 러시아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일반명사로서의) 변방'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영어를 아는 우크라이나인들은 자국을 'Ukraine'이라고 호칭하기를 바라고 있으며 실제로 미국과 영국 정부에서는 'Ukraine'이라고 하고 있다. 관련 링크. 한편으로 도널드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하며 "the"라는 정관사를 꼬박꼬박 붙여서 우크라이나인들을 분노케 했다.

 

나라 기후

전체적으로 냉대 습윤 기후를 보이며, 수도인 키예프를 기준으로 보면 서울보다는 여름엔 서늘하고 겨울엔 좀 더 춥다. 하지만 남부 크림 반도는 온난 습윤 기후를 나타낸다. 그리고 키예프는 위도 50도에 위치 위도 37.6도에 위치한 서울보다 한참 북쪽에 있다.[] 다만 겨울이 길고 일교차가 적어 낮기온이 낮기 때문에 춥다고 느끼기 쉬우며, 실제로 러시아와 접경하는 동부는 강원도 내륙과 비슷하게 춥다

나라 경제

1인당 GDP는 3,592$로 옆나라 몰도바 다음으로 유럽 제2의 빈국이다. 다만 여기에는 지하경제가 빠져있어[] 실제 1인당 GDP는 이보다는 많은 편이다. 하지만 내전을 겪으면서 화폐가치와 경제가 붕괴하면서 2014년 1월 1달러당 7흐리브냐 수준에서, 2016년 4월 1달러당 25흐리브냐로 1/3 이하로 폭락하였으며, 2021년 현재까지도 1달러당 27흐리브냐 수준으로 경제붕괴 이전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유럽권 내에서 가장 심하게 폭락한 화폐이며, 2위는 우크라이나와 싸우던 러시아 루블이다. 러시아 루블은 미국의 경제제재를 받으면서 반토막났다. 2016년 2월 기준 월평균 급여는 약 165달러로 작년보다 떨어졌다고 한다.[] 최저임금은 1,378흐리브냐로 약 50달러 수준이다. 한국 환율로 따지면 56,800원 급이 아니다, 월급이다. 실제 대부분 사람들의 월급은 20~30만원 정도라고 보면 된다. 2017년 최저임금의 대대적인 인상으로[] 2020년 현재 최저임금은 4,723흐리브냐로 약 170달러이다. 한화로는 약 20만원. 2019년 6월 기준 평균 월급은 431$[]로 한화 50만원 정도로 올랐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의 장바구니 물가는 대한민국의 1/4 ~ 1/3 수준이다. 다만 이는 우크라이나산 식료품에 한정된 이야기이며, 공산품의 경우 수입품이 대부분이라 대체로 가격이 높은 편이다. 특히 서유럽이나 미국에서 수입한 공산품들은 환율에 따라 변동이 심하며 대한민국보다 비싼 경우도 있다. 또한 유럽이 대체로 다 그렇듯 마트의 식재료는 매우 싸지만 식당에서 하는 외식은 상대적으로 비싸다. 이렇게 물가가 싼 우크라이나에서도 전통 요리 같은 걸 먹으려면 한끼에 최소 한화로 5천원 정도는 써야 한다. 푸드트럭이나 키오스크에서 파는 길거리 음식은 한화로 2천원 정도.

우크라이나는 경제적으로 비옥한 토지를 가진 농업과 소련 시절 지어진 대규모 중공업단지나 제철소, 탄광을 가지고 있어 경제가 발전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출처 하지만 이웃 슬라브 3국 중에서도 경제발전이 많이 뒤처지는 편이다.[] 왜냐하면 우크라이나가 독립한 전후로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대표적인 수출품인 소련제 무기와 군수물자를 구입하던 이란과 이라크가 전쟁을 그만두었고, 세계적인 군축 분위기에 힘입어 각국이 군축에 전념하면서 우크라이나의 주력산업인 방위산업의 판로가 죄다 막혀버렸기 때문이다. 폴란드, 체코, 헝가리, 발트 3국을 위시한 중유럽, 북유럽 국가들은 원래 산업 기반이 잡혀있던 지역이었고 체제 전환에 따른 충격을 1990년대 초에 이미 극복하지만, 우크라이나는 1993년까지 수천~1만%에 달하는 초인플레이션을 겪고 1996년에야 비로소 두자리수 인플레이션을 기록하는 등 혼란을 다른 국가들보다 훨씬 심각하게, 그것도 오랫동안 겪었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부터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하기 시작했지만 이 전환도 2000년에 가서야 완료되는 등 자본주의 체제의 도입과 전환이 너무 오래 걸렸고[], 그 결과 1999년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마이너스 성장률을 달성하는 진기록을 수립했다.

여기에는 정치적 문제도 있겠지만, 하술할 지역간 산업 차이 문제, 그리고 너무나도 뒤늦은 경제개혁을 이유로 들 수 있다. 1994년까지 우크라이나는 이미 붕괴된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그대로 유지하였고, 때문에 소련 붕괴에 따른 국내외적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이 시기 우크라이나는 -10~-20%에 달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1994년 레오니드 쿠치마 대통령 당선 후 IMF와 세계은행의 조언에 따라 기초적인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1999년 쿠치마 대통령 재선 후 총리로 전격 발탁된 빅토르 유시첸코가 재정과 에너지 제도를 개혁하고 대기업 및 토지사유화를 단행하여 시장경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하면서 경제성장률이 올라갔다. 물론 경제성장의 스타트라인 자체를 다른 동유럽 국가들보다 훨씬 늦게 끊었으므로 이미 벌어진 격차는 어쩔 수 없었고.

1991년 독립 이후 다른 소련 국가와 같이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체제 변환을 거치는 과정에서 초인플레이션을 겪었다. 특히 초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우크라이나 국립은행은 1996년 카르보바네츠(карбованець)를 오늘날 쓰이는 흐리브냐(гривня)로 교체했다. 하지만 1998년 러시아의 모라토리움 선언 등으로 인해 2000년 초반까지 통화 불안정을 겪었다.

이후 2001년부터 경기가 점차 회복세로 돌아서 2007년 통계에 의하면, 2001년 빈곤율 32%에서 2005년 8%로 급감했다. 출처 (세계은행 보고서) 특히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수출량이 50% 증가하면서 경제 성장의 혜택을 누렸다. 하지만 2014년 크림 위기 이후 주요 교역국이었던 러시아와 무역이 중단되면서 GDP에서 약 10.4% 정도의 타격을 받았다. 출처(UA Today) 2016년 5월에는 IMF가 우크라이나의 부패 청산과 경제 개혁을 조건으로 하여 1,750만 달러 가량의 대출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출처 (로이터)

사실 우크라이나 경제 문제는 정치 문제로도 자주 연결이 되는데, 농업이 주산업인 중부 지방은 소련 시절에 농민들을 탄압해 온 역사(라스쿨라치바니예, 홀로도모르 참조) 때문에 러시아에 반감이 상당히 심한 반면, 광공업이 주산업인 동부 지방은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소련 시절 동부 우크라이나 공업지대는 소련 중화학공업/군수공업의 한 축을 이루었다. 소련 주요 우주발사체 로켓을 설계한 하르트론 설계국, R-36 미사일(NATO명 SS-18 사탄)을 제작한 유즈노예 설계국, An-225로 유명한 안토노프 설계국과 T-64를 제작한 하르코프 공장이 전부 우크라이나에 위치해 있었다. 이 때문에 소련 해체 이후에도 한동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많은 양의 기계류를 수입했었다.
지하 경제 규모가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큰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전체 GDP의 최소 50% 이상을 차지한다는것이 중론이다. 이때문에 공식적인 소득 수준만 본다면 우크라이나가 매우 가난한 국가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보다는 잘 사는 편이다. 1인당 GDP만 놓고 보면 동남아 수준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대학 진학률 등은 다른 유럽 국가들과 거의 차이 없다.# 물론 그렇다 해도 우크라이나의 생활수준은 동유럽을 기준으로 봐도 매우 뒤떨어지는 편이라 몰도바에 이어 유럽 최빈국 자리를 지키고 있다. 폴란드나 러시아 등지로 일하러 나가는 노동자들도 상당한 편이다. 폴란드나 러시아에서는 우크라이나어 특유의 말투를 희화화하며 흉내내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이들을 무시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나온 2018년 세계은행과 IMF의 자료에 따르면, 1인당 명목 GDP가 2,900에서 3,000달러 정도로, 유럽의 최빈국 자리를 몰도바로부터 넘겨 받았다고 한다

나라 지리

면적은 남한의 약 6배 크기이며, 유럽 대륙에서는 러시아 다음으로 넓은 나라다. 프랑스가 태평양과 대서양, 남미에 있는 전세계 국외령을 전부 끌어모아 합하면 더 넓어지지만, 유럽 대륙에 있는 본토만 따지면 (크림 반도를 제외해도) 우크라이나가 더 넓다. 게다가 우크라이나는 산지가 별로 없고 토질이 매우 좋아 국토 대부분이 지력이 풍부해 비료가 따로 필요없는 비옥한 흑토인 초르노젬으로 이루어져 옛날부터 세계적인 곡창 지대로 유명했다. 세계 최대의 식량수출국이었던 러시아 제국 시절부터 독보적이었고, 2011년에는 곡물 수출량이 세계 3위에 달했을 정도. 이렇게 농사가 매우 잘 되는 땅에서 그 유명한 우크라이나 대기근이 발생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었고 소련이 제대로 대처를 못했으니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들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반러시아 감정 역시 여기에 근거를 갖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이 '유럽' 하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와 달리 국토의 남부는 스텝 지대에 가깝다. 또한 국토의 대부분이 '흑토(초르노젬)'로 이뤄져 있는데, 이는 전세계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비옥한 땅이다. 이는 우크라이나 지역이 오랜 세월 여러 민족과 국가에게 침입을 당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속하는 나라마다 주요 곡창 지대로서 기능해 오도록 했다.

흑해 연안에 있는 오데사(Одеса) 항구는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감독의 유명한 영화 '전함 포템킨(Броненосец «Потёмкин»)'의 '오데사 계단 학살 장면'이 찍힌 곳으로 유명하고[], 건담 시리즈의 '오데사 공방전'이 일어난 곳이며, 또한 세계에서 가장 긴 인공터널군인 '오데사 카타콤베'가 있는 곳이다. 길이만 2,500km 이상이라고... 근데 이 기록은 중국 서부 핵미사일기지인 '지하 만리장성'에 의해 깨진 듯하다. 무려 5,000km 이상의 길이라고.

저 위 지도에 보이는 세바스토폴항은 러시아 흑해함대의 모항이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함대보고 "방 빼!"라면서 한동안 키배를 벌이다가 구 소련의 수상함을 일부 양도받는 조건으로 2014년까지 임대시기를 연장해줬는데, 친러시아 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시 2042년까지 대여기간이 늘어났다가, 2014년 3월에 도시 전체가 러시아로 넘어가 버렸다. 크림 반도 최남단 항구도시 얄타는 얄타회담이 열렸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시간대가 비슷한 경도에 위치한 벨라루스와 러시아보다 빠른 시간대를 쓴다. 그래서 러시아 서부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으로 가면 시간대가 더 늦어져야 정상인데 오히려 두 시간이나 빨라지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데 이는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시간대가 경도에 비해 이상하게 느려서 그런 거지 우크라이나는 오히려 실제 시간에 가깝다.

주변에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등 여러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러시아의 천연가스 파이프가 이 나라를 지나고 있다. 때문에 러시아가 가스 잠가라 마법을 부릴 경우 크게 피해보는 나라 중 하나다. 현재는 유럽 연합 국가들 투자로 새로운 나부코 파이프라인을 부설중이었다.

지도상의 북쪽 벨라루스와의 접경지대에는 초르노빌(Чорнобиль)-러시아어로는 체르노빌(Чернобыль)이 있다.

우크라이나 처지에서 체르노빌 사고에 대해 좀더 이야기하자면, 1986년 4월 원전 폭발당시 하마터면 인구 200만의 수도 키예프를 고스란히 버려야 할 정도의 헬게이트가 열릴 뻔했다. 체르노빌에서 겨우 100km 남짓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다, 자칫 증기폭발로 원전 바닥이 완전히 녹아버리면 키예프의 상수원인 드네프르강은 그대로 오염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련 잠수부들의 목숨을 바친 희생으로 원전의 냉각수를 모두 빼낸 후 극적으로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 그리고 헬게이트는 당시 풍향 때문에 낙진을 고스란히 맞은 벨라루스에서 열렸다.

동부 지역은 친러, 서부 지역은 반러 성향이 강하다. 2010년 대선에서 당선된 친러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후보는 동부의 도네츠크 주에서 무려 90.44%를 득표했으나 서부의 이바노-프란키우시크 주에서는 겨우 7.02%를 득표했다. 위치의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서방과 러시아가 이 나라를 놓고 정치적 패권 싸움을 하고 있다. NATO가 발트 지역과 남, 서동부 일대를 에워싼 지금 우크라이나까지 NATO 손에 넘어가면 러시아는 서방의 MD에 삼면의 영토가 노출된다.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하려는 걸 수단방법 안 가리고 막으려 하고 있다.

사회

사실 이 나라는 알고보면 잠재력이 많다. 흑토로 비옥한 땅과, 제3세계 개발도상국들과 달리 한때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지녔고 경제력도 2위를 달리던 소련시대를 거치며 각종 첨단 공업시설이 많이 위치하였고 지금도 안토노프 같은 소련 시대의 유산을 꽤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양질의 교육으로 많은 인재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때문에 소련이 해체될 당시에는 가장 발전 가능성이 높은 나라로 평가되곤 했다. 그러나 문제는 우크라이나가 막상 독립한 뒤에 경제와 사회 전반에 걸쳐 큰 혼란이 닥쳐오면서 잠재력을 크게 갉아먹은데다가 그나마 경제적으로 안정화 되고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게 된 2000년대에도 정치인, 언론인 암살, 선거 부정 사건, 여권과 야권 분열 같은 요인이 겹쳐 타 동유럽 국가에 비해 포텐션을 크게 터지지 않았다. 거기에다가 2008년 세계금융위기와 2012년 모라토리엄 선언, 유로마이단 이후의 영토상실, 돈바스 전쟁까지 겹치며 2008년도의 경제수준마저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며[] 결과적으로 보았을때 현재까지도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피하기 힘들다. 비록 혼란이나 사회문제가 없던것은 아니지만 결과론적으로 보면 자본주의 체제에 비교적 연착륙해서 서유럽 국가와의 격차를 줄이는데 성공한 발트3국과 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와는 크게 대조되는 모습이다.

2014년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종합 순위 6위를 차지했다. 사실 옛 소련 이래 쓸만한 인재들은 꽤 많은 나라다. 다만 그걸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과 엘리트층의 수준이 너무 낮은 게 문제다.참고

의외로 고려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통계로는 12,000여명이 살고 있으나 소련이 붕괴되고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고려인까지 합하면 2만 명이 넘는 걸로 추정된다.

2009년 11월 17일 인플루엔자 A보다 치사율이 높고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가 출현하여 키예프와 리비우시에서 약 1백만 명이 감염되어 2백여 명이 사망했다. 감기 바이러스와 캘리포니아 인플루엔자가 합쳐진 변종 바이러스로 밝혀졌다. 그러나 WHO 측에서는 변종이라는 증거가 없다며 변종설을 부정 중. 그러나 과거 인플루엔자 A가 창궐할 때 멕시코가 각종 삽질로 인해 바이러스를 전 세계에 퍼뜨리는 공(?)을 세웠던 데 반해 우크라이나 정부는 국경 일부를 봉쇄하는 등 신종 바이러스 출현에 대처를 잘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크라이나는 유럽 대륙에서도 이동 통신 서비스의 발전 속도가 상당히 느린 편에 속한다. 이동통신 주파수를 한동안 군용으로 묶어 놓는 바람에, WCDMA 도입도 국제 평균보다 상당히 늦은 2011년에서야 시작되었다. 그것도 기존 통신사들이 3G를 쓸 수 있게 해 준 형태가 아니라, 3G 전용 통신사를 따로 하나 만들고 기존 통신사들은 로밍을 통해서 3G 망을 이용하였고, 3G 전용 통신사도 2G 망을 이용하려면 역시 로밍을 통해야 했다. 물론 이 과정에 덤으로 돈은 돈대로 나가고 커버리지는 커버리지대로 최악이 되고... 이 와중에 유로마이단 탓에 크림 반도나 동부에 있었던 이동통신 시설들이 뜯겨 나간 건 덤이다. 결국 2015년에 와서야 군용으로 묶어 두었던 이동통신 주파수가 해금되면서 기존 통신사들도 자체적인 3G 망을 설치할 수 있게 되었다. 때문에 옆나라들이 LTE를 상용화할 때에도 여기는 겨우 3G가 깔리기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2018년 3월 30일 경 부터 Vodafone과 lifecell, Kyivstar는 수도인 키예프와 일부 주요 도시의 주요 거점을 시작으로 LTE 서비스를 진행한다. 주파수 대역은 한국의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사용하는 Band 7 주파수이다.

2021년 현재 대부분 지역에서 4G가 깔린걸로 보인다

치안

우크라이나 동부는 돈바스 전쟁중이기 때문에 당연히 가지 않는게 좋다.

경제난으로 범죄조직과 부정부패가 심해서 우크라이나 마피아와 레드 마피아의 조직범죄가 심한 편이었다. 호텔이나 관광지에는 유럽국가들이 다 그렇듯이 소매치기나 절도 범죄가 있는 편이다. 동양인 상대로 사기 범죄나 갈취 범죄도 간간히 있다하니 조심하자.

여러 여행 블로그나 유튜브를 보면 대도시 중심과 유명한 관광지 중심으로 가면 관광객들은 그렇게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닌듯 싶다

 

총기 소지

모 방송에서 누구나 쉽게 총을 살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땅파면 총이 나올 정도는 아니어도 총이 흔하긴 한 듯. 그 결과는 유로마이단 당시 총기로 무장한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에서 입증되었다.

분리독립 당시 우크라이나에는 전략적인 사유로 90만의 병력과 100만 명 이상 분의 전략예비물자가 배치되어 있었는데 당연히 갓 새로 독립한 우크라이나 정부에서는 이걸 유지할 돈도 의지도 필요도 없었다. 때문에 1990년대 당시 예비물자는 물론이며 현역장비까지 해외에 유출되었다. 물론 필요하지 않다는 건 당시 기준이고, 현재 와서 보면 그 물자를 싹 팔아넘긴 탓에 러시아의 크림반도 진격에 맞설 힘이 없어진 것 같다고는 하지만 사실 소련 해체 당시 우크라이나에 주둔하던 대병력은 필요 이상으로 과도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가 독립 당시 군대를 축소한 건 불가피한 일이었다. 소련시절 우크라이나에 과도한 병력이 배치된 이유는, 이곳이 원래부터 독소전쟁 이래로 격전지였던데다가 [] 냉전시에는 나토 제2전력의 하나였던 터키를 견제하기 위해 좀 과하게 밀집된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소련군으로부터 알짜전력을 물려받은 러시아군조차 5백만 대군으로부터 1990년대의 경제난으로 인해 30만 이하로 내려갈 정도의 막장[]이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가 소련군으로부터 물려받은 90만 대군을 유지하기란 불가능했다. 당시 군수물자를 팔고, 군비를 축소한건 안목이 짧았던 게 아니라 애초에 방대한 군대를 유지할 수 없는 국가적 한계 때문에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당장 북한이 필요이상으로 과도한 군대를 유지했다가 어떤 꼴을 겪었는지 보지 않았는가.

특히나 우크라이나에 있던 AK-47 수백만 정이 유출된 것으로 보이며 1990년대부터 21세기까지 아프리카와 중동의 분쟁지역에 나도는 "새" AK 소총은 거의 절대 다수가 우크라이나에서 유출된 소련제였으며 20년간 상당량이 소모되어 현재는 숫자가 상당히 줄어들었다고 한다.[]

비단 소총 같은 단순한 병기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에 배치되었던 핵무기의 경우 서방과 러시아의 협정을 통해 핵탄두는 파기하고 발사체는 인공위성 발사체로 처리되었고, Tu-160같은 전략 폭격기의 경우 미국에 매각하려다가 러시아와 협상을 통해 채권을 탕감하는 대가로 러시아에 돌려주었다.

무기 같은 "유용한" 물건이 아닌 옷이나 잡다한 장비 같은 군수품들은 사실상 방치되다가 차근차근 리인액트먼트 용품으로 팔아먹기 위해 업자들이 창고째로 매입해다가 팔고 있다. 지금도 이베이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있으며 직접 사본 사람의 경우 사용한 흔적이 전혀 없는 물건에서 엄청난 냄새가 나기에 스탬프를 확인해 보니 날짜가 1972년도였다고 한다.

 

나라 인구

인구 면에서, 아니 생존 자체에서 비참한 경험을 했다. 인구 구조 자체는 러시아나 벨라루스와 비슷하나 우크라이나의 상황이 더 안 좋다. 우선 적백내전이 끝나고 겨우 독립을 하나 싶더니 폴란드와 소비에트가 쳐들어와 땅을 낼름해버렸다. 그냥 얌전히 쳐들어왔다면 모를까 양측에서 저지른 '정리 작업'으로 인해 이 과정에서 엄청난 양민들이 죽어나갔다. 그러나 이는 애교로 보일 정도의 대사건이 터졌으니, 1930년대의 우크라이나 대기근으로 수백만에 달하는 엄청난 사람들이 죽은 것이다. 1933년의 평균 수명이 남자 7세, 여자 10세라는 정말 말도 안되는 수준이었으니 그 참상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기근을 넘겼나 했더니 이번에는 전쟁.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그 통에 사람이 엄청나게 죽었다. 특히 이번에 쳐들어 온건 폴란드와 소련보다 몇 배는 악랄한 나치 독일. 이들의 학살 스케일은 그야말로 엄청나서, 시체로 이루어진 퇴적층이 아직까지도 우크라이나에서 종종 발견될 정도이다. 이 때문에 현지 거주 유대인을 포함하여 7백만 명이 전쟁 중에 죽었는데, 이는 당시 인구수의 1/6 이 넘는 숫자다. 그로 인해 1941년~1944년의 기대수명은 남자 15세, 여자 25세에 그쳤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전후 베이비붐[]과 크림반도 획득으로 1950년대 중후반에 대기근과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인구손실을 만회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에 출산율이 1.9-2.1명 정도의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인구성장은 점차 주춤해졌다. 소련 붕괴 직후의 인구는 5,200만을 찍었으나,[] 소련 붕괴 이후 출산율의 급속한 감소와 해외로의 이민문제까지 겹쳐지면서 인구의 감소가 시작되더니 1999년에 인구 5,000만 선이 붕괴되었고 이후로도 인구가 쭉 감소하고 있는 형편이다.

인구는 2021년 3월 기준 4,354만 명이며 1992년에 5천2백만 명을 넘긴 이래 급격한 감소추세에 있다. 이는 소련붕괴 이후 크게 낮아진 출산율[])과 높은 사망률(영아 제외시 천 명당 14.7명)을 기록하는 인구구조를 띄기 때문으로, 영아 사망률(천 명당 8.4명)이 상당히 높다. 출산율 자체는 이미 2001년(1.08명)에 저점을 찍었고, 이후에는 출산율이 1.5명대까지 상승하였으며 이에 따라 출생아수도 30만 명대 후반 정도에서 50만 명선까지 올랐으나 2014년부터는 크림반도 분리의 영향으로 다시 40만선으로 떨어졌고 2020년에는 아예 30만도 무너져버렸다. 게다가 사망률이 워낙 높다보니 현재까지도 인구 감소가 지속되고 있는 중이다. 그렇지만 고령화가 그만큼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는 않은데, 이는 사망율이 높아서 평균 수명이 워낙 짧기 때문이다. 사실 이건 더 빠르게 인구가 줄어든다는 이야기므로 좋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다만 그렇다고 평균 수명이 마냥 짦은것은 아닌데 2016년에 집계된 우크라이나의 기대수명은 72세이다.

주별로 따로 떼어놓고 보면 모르지만 전반적으로 우크라이나 서부는 농촌지역이 많아서 비교적 출산율이 높은 편이고, 도시화가 이루어진 동부 우크라이나 지역의 출산율이 낮은 편이다.

이민 나가는 사람도 많고 이민 들어오는 사람도 많다. 1991년~2004년 동안 220만 명이 우크라이나로 이민을 왔고(주로 구소련권의 우크라이나계를 중심으로), 250만 명이 이민을 떠났다. 이민온 사람이 많다 보니 우크라이나 전체 인구의 14.7%가 이민자 출신이다. 그리고 2014년 이후의 혼란으로 백만 단위의 우크라이나 피난민들이 러시아로 이주했다고 한다.

평균 수명이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도 정체중이다. 술을 많이 마셔 알코올 의존증 문제도 심각한데다가 환경오염 문제까지 겹쳤다. 러시아와는 다르게 소련 붕괴 이후에 평균수명이 대폭 감소하는 참사까지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이후로도 평균수명이 크게 연장되지 않아서 현재까지도 70대 초반에 머무르고 있으며[] 이러한 탓에 2012년 기준 세계 제2위의 사망률을 기록하고 있다. 천명당 15.76명이 사망했다.

총 인구의 77.8%를 차지하는 우크라이나인 외에 러시아인이 약 17.3% 되는데 이들은 주로 동부와 남부에 거주한다. 서부에서는 우크라이나어가 거의 단독으로 사용되며 수도 키예프를 비롯한 중부에서는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가 둘 다 사용된다. 나머지 4.9%의 소수민족은 0.8%의 몰도바계-루마니아계, 0.6%의 벨라루스인[], 0.5%의 크림 타타르계, 기타 불가리아계, 헝가리인[], 폴란드인, 루신인, 유대계, 아르메니아계, 우룸인(크림 그리스-고트족 후손), 가가우즈인, 흑해 그리스인[] 등이다.

세계에서 인구 감소가 가장 빠른 나라 1위로 꼽혔다. 2020년 4,200만에서 2,100년 2,441만 으로 무려 42.9% 감소할 것이다. 한국(5,130만 → 2,954만, 42.4%), 일본(1억 2,600만 → 7,496만, 40.5%) 보다 크다. 대책 마련이 시급하지만 나라가 내전 중이라 어려울 것으로 평가된다. 2013년 이후 출생아 수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2015년 통계 기준으로 정세 불안에 의해 출산율이 급락해서 1.31로 더 떨어진 데다가, 전쟁으로 인해 사망률까지 올라가면서 평균 수명도 오히려 더 짧아지고 말았다. 인구학적으로 매우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한것이다.

대한민국, 일본과 함께 최근 5년 간 출생아 수가 가장 급격히 감소했다. 그래서 인구 감소가 진행되고 있는데 현재 4,200만 명대로 감소했지만 감소세가 오히려 더욱 더 빨라지고 있다고 한다. 2020년에는 출생아 수가 사망자 수(616,835명)의 1/2도 안되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종교

역사적인 이유로 우크라이나 정교회와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 문화권에 속해 왔으며 대체적으로 정교회가 우세하다. 정교회 내에서 교회법상 위치를 합법적으로 인정받는 유일한 교회는 우크라이나 정교회(모스크바 총대주교청)뿐이었다. 다만 설문조사의 주체에 따라 우크라이나 정교회(모스크바 총대주교청)가 더 우세한지, 아니면 그 라이벌인 우크라이나 정교회(키예프 총대주교청)가 우세한지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정교회 신자들 상당수는 자신이 어느 쪽에 속하는지 특별히 구별하지 않으며, 출석하는 성당의 소속도 그다지 의식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크게 따지면 중부와 동부를 중심으로 정교회 인구가 72%로 절대 다수이고, 여기에 서부에 주로 분포하는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이 14.1% 더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상당수 정교회가 실질적 총대주교 관할이 없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종교의 자유를 두지만 우크라이나-러시아간에 정교회 대립이 있다. 지역별로 종교 분포를 볼때 돈바스는 우크라이나 정교회(모스크바 총대주교청)가 상당히 높고, 이외에 남서부에는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이 높으며, 이외 모든 지역은 우크라이나 정교회(키예프 총대주교청)가 더 높음을 알 수 있다.

2018년 12월 11일,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바르톨로메오스 1세는 러시아 정교회가 우크라이나 정교회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을 취소하고, 우크라이나 정교회를 독립교회로 인정하며, 러시아 정교회가 내린 파문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정교회는 여기에 분노하여 동월 15일 교회회의(시노도스)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와 성사교류 단절을 선언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2018 정교회 분열 항목 참조.

동년 동월 15일, 우크라이나의 통합 정교회 추진위원회는 키예프 총대주교청 정교회 산하 주교였던 에피파니를 우크라이나의 첫 독립정교회의 수장으로 선출했다. 19년 1월 5일에는 우크라이나 대통령 포로셴코와 에피파니 주교가 함께 터키로 가서 바르톨로메오스 1세가 우크라이나 정교회를 독립교회로 인정하는 문서에 서명하는 것을 참관했다.

우크라이나 내에도 크림 타타르인, 볼가 타타르인 등을 중심으로 한 이슬람 수니파 무슬림 인구도 있다.

 

나라 언어

우크라이나 헌법에 규정된 국어는 우크라이나어 뿐이며 #, 역사 및 지리적인 이유로 러시아어도 널리 사용된다. 특히 동부와 남부 지역에서 러시아어 화자가 많은편이고 서부는 우크라이나어 위주로 가운데쯤에 있는 수도 키예프와 중부지역은 반반 경계선 느낌이다. 하지만 돈바스 전쟁 이후로는 러시아 언어에 반감을품고 보이콧하는 국민들이 간혹 있지만 일반적으로 우크라이나인들은 양쪽 언어 모두를 모국어로 인식하는게 사실이다.

 

우크라이나어(전체 인구의 약 67%가 사용)는 동슬라브어파에 속하는 언어이기 때문에 러시아어와도 매우 밀접하다. 동부 지역과 남부 지역, 수도인 키예프에서는 오히려 러시아어가 더 널리 쓰인다 한다. 가까운 언어라서 그런지 우크라이나어로 말걸면 러시아어로 대답하고 그러는 일도 흔하다. 러시아어 사용자는 30%에 달한다. 우크라이나 민족보다 우크라이나어 사용자가 더 적은 편인데, 이는 우크라이나 민족이면서도 15% 정도인 554만 명은 러시아어를 쓰기 때문이다(전체 러시아어 사용자의 40% 가량을 차지). 또한, 우크라이나는 사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편이고 현지인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동/서부나 친러/친서방을 막론하고 사실상 우크라이나 인구의 절대 다수가 러시아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중 러시아어를 모국어처럼 쓸 줄 아는 경우에는 러시아와 가까운 동부와 남부지역, 키예프이고 동부와 남부지역의 주들에선 러시아어가 우크라이나어와 함께 지역공식어로도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서 쓰이는 러시아어의 경우에는 우크라이나어의 영향을 받은 경우가 많고 우크라이나어에서 쓰이는 어휘도 사용되고 있다. 심지어는 발음조차도 우크라이나어에 영향을 받았을 정도로 г라는 문자를 h발음에 가깝게 발음하는 편이다.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와 매우 비슷하다보니 우크라이나의 도시와 동부지역에서는 수르지크라는 혼합언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도에서 보듯 크림 반도와 일부 동부지역을 제외하면 우크라이나어가 강세인 지역이 많다. 인터넷 웹사이트나 학교/직장에서는 양쪽 언어 모두를 사용/병기 하는것이 일반적이다. [57] 수도 키이우와 중부, 동부 도시에서는 민족주의자 또는 고위 공직자들을 제외하고는 일상생활에서 오직 우크라이나어만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내 SNS에선 러시아어가 사용되고 있다.#(러시아어)

우크라이나어에 대해서 러시아어의 방언이라거나, 이 두 언어가 매우 유사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폴란드나 슬로바키아를 여행해 보면 현지 주민들이 하는 말을 이해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고, 현지 주민들도 우크라이나어를 쉽게 알아 듣는다. 한편, 러시아에 가서 우크라이나어로 말하면 러시아인들이 이해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 두 언어가 정말 유사한지 의구심이 생긴다. 키예프 타라스 셰우첸코 국립대학교의 언어학과 코스탼틴 티슈첸코(Костянтин Тищенко) 교수는 우크라이나어의 문법과 음성학 상 82 가지 특성 목록을 작성했다. 이 목록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어는 벨라루스어하고는 29 가지, 체코어와 슬로바키아어하고는 23가지, 폴란드어하고는 22가지, 크로아티아어와 불가리아어하고는 21가지, 슬로베니아어하고는 20가지가 같고, 러시아어하고는 11가지가 같다

독립 후 우크라이나어의 우위가 강조되면서, 러시아어를 주로 쓰는 주민들은 차별받는다고 느껴 러시아어를 제2공용어로 지정하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번번히 무산되었다. 그리고 러시아어를 포함한 소수민족어를 지역공식어로 인정하는 법률이 폐지되면서 인구의 10%이상이 사용하게 되면 지역 공식어로 정해졌던 소수민족어는 지역 공식어 지위를 박탈당할 뻔 했으나 투르치노우 대통령 권한대행이 해당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리고 2014년 5월 20일에 의회에서 다시 러시아어가 제2국어로 지정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근데 2014년 10월 3일에 리비우를 방문한 포로셴코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는 영어에 특수지위를 부여해야 하고 제2외국어로 영어가 되어야 한다고 발언했다. 2015년 2월 3일, 포로셴코는 우크라이나의 유일한 공식어는 우크라이나어가 될 것이라고 확언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여전히 러시아어 역시 많이 쓰이고 있다. 당장 TV 방송만 보더라도 국영 채널인 UA: 페르시(UA: Перший)만 우크라이나어 방송만 하며, 인테르(Інтер), 1+1, 우크라이나(Україна) 등의 주요 방송사들은 아직도 러시아어 방송을 내보낸다. 주로 뉴스의 경우 우크라이나어 뉴스와 러시아어 뉴스를 다른 시간에 배치하는 형식으로 한다.[59] 하지만 우크라이나 정부가 최근(2017년)에 자국어 교육 정책을 강화하고 중등학교에서 교사가 우크라이나어만 사용하고 소수민족언어로는 가르치는 것을 금지한 법안을 통과시키자 러시아, 헝가리, 루마니아측은 반발했고 헝가리와는 외교갈등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거기에다 포로셴코는 러시아어로부터 우크라이나어를 지키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러시아어 원문)

그리고 2018년 9월부터 리비우 주에서는 러시아어로 된 책이나 출판물, 프로그램 등이 금지되기까지 했다.# 또한, 우크라이나 정부는 푸틴의 동부 지역 주민들의 시민권 발급 간소화정책에 반발해서 포로셴코측에서 TV프로그램의 90%이상을 우크라이나어로 방영하고 공공문서에서 우크라이나어를 의무적으로 쓰게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젤렌스키 당선인은 반발했고 러시아도 비판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는 우크라이나어를 우크라이나의 유일한 국어로 지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대부분의 공적영역에서 우크라이나어를 의무적으로 사용시키고 그렇지 않으면 벌금을 물게 했다.#

친러 성향의 야당은 반발해서 헌법재판소에 제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갈등을 겪기 시작하면서 러시아어가 지역 공식어로 지정되었던 주들도 러시아어를 배제했다. 하지만 러시아와 인접해있는 일부지역에선 우크라이나어가 서툰 경우도 있고 일상생활에서 러시아어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사실상 상용어의 지위는 유지하고 있다.

통계에서 보듯 약 3%의 주민은 우크라이나어도 러시아어도 아닌 언어를 제1언어로 한다. 루마니아어(몰도바계 180,000명 + 루마니아계 140,000명 = 320,000명), 크림 타타르어(230,000명)과 헝가리어(150,000명), 불가리아어(140,000명)가 대표적. 다만 몰도바계와 불가리아계는 러시아어를 쓰는 인구도 상당하다. 서부의 자카르파탸 주는 루신어 화자가 있다. 도네츠크와 루간스크에 거주하는 그리스계를 중심으로 마리우폴 그리스어란 그리스어 방언이나 우룸어를 쓰는 경우도 있다. 한편 민족어 사용빈도가 낮은 민족들도 있는데, 폴란드인(144,000명)은 대다수가 비슷한 우크라이나어에 동화되어 100,000명 가량이 우크라이나어를 쓰고, 유대인(100,000명)과 아르메니아인(90,000명)들은 각각 85,000명, 43,000명이 러시아어를 쓴다.

특이하게도 프랑코포니의 참관국에 가입되어 있다. 나라전체에 걸쳐저있는 반러감정 때문인지 영어교육이 중요시되는 분위기이며 젊은사람들은 대체로 영어를 잘하는편이다.

 

나라 정치

대통령과 총리가 있는 이원집정부제 국가다. 대통령은 5년 중임제로 1회 연임이 허용되며, 총리 역시 5년 중임제로 1회 연임이 허용된다.

하지만 정치를 들여다보면 막장이다. 우크라이나 정치의 큰 문제로는 정치계의 갈등과 대립이 심각하며 극단에 치우친 정치극단주의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경우 소련 독립후에 야당과 여당에는 오랜 불타협의 역사가 있으며 지금도 여당과 야당, 정부와 의회 간의 갈등과 대립이 심각하다.[]그들은 티비와 신문을 통해 대단한 네가티브 전략을 사용하는데 이과정에서 폭력 사건까지 흔하게 일어난다. 특히 친러시아계를 우크라이나 의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친서방파 의원들이 대립각을 심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그 역사가 길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정치에서 통치방식이나 대화와 타협 문화가 발달하지 못했으며, 정쟁이 극단적으로 치달아 국가분열 양상을 띠고 있다. 그 여파로 국회 공성전이 매우 격렬하게 이루어지는 국가이기도 하다. 이떄문에 우크라이나인들 사이에서도 정부와 국회에 대한 불신이 매우 크다.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오렌지 혁명의 율리야 티모셴코를 이기고 율리야 티모셴코는 친유럽 정책을 사용했지만 빅토르 야누코비치는 러시아를 중시하는 정책을 사용했다. 2019년 4월 대통령 결선투표에서 코미디언 출신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당선되었다.# 특이점은 우크라이나 서부 리비우 일대, 재외국민을 제외하고 전 지역에서 이겼다. 이는 친러나 친서방을 떠나 우크라이나인들에게서 기성정치에 대한 반감이 컸다는 것을 볼수 있다

선거는 라다 의원 총 424명을 뽑는다. 원래 225명 지역구별 소선거구제를 통해 선출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2014년 크림 사태, 돈바스 전쟁 이후에 26개 선거구를 제외한 199개 선거구에서 선출한다. 비례대표는 225명을 선출하며 봉쇄조항 5%이며, 전국단위 구속명부식 정당 명부 비례대표제로 치루고 있다.

축구

축구에서는 변방국으로 인식되었으나, 자국 명문구단 디나모 키예프와 샤흐타르 도네츠크의 국제무대 선전과 안드리 셰브첸코라는 국가적 영웅이 등장한 이후, 2006 독일 월드컵 8강 진출 성과를 이뤄냈다.

발레리 로바노브스키라는 UEFA 선정 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 10인에 선정되는 감독도 배출해냈다. 국대에 대해 자세한 것은 우크라이나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조.

우크라이나 여성들이 가장 원하는 배우자가 축구선수이다.

러시아가 크림 반도의 프로 축구단까지 자국 리그에 병합했다. 러시아 축구협회는 8월 1일 성명을 통해 크림반도에 있는 SKChF 세바스토폴, 젬추지나 얄타, 타프리아 심페로폴 등 3개 구단을 러시아 프로축구 리그에 편입시켰다고 밝혔다.

이들 우크라이나 클럽은 올 시즌 개막과 함께 러시아 3부 리그에서 활동하게 된다. 러시아는 올해 2월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의 병합을 선언하고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축구협회는 러시아의 축구 클럽 병합에 강하게 반발했다. 협회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월권행위를 저질렀다”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축구에서 정치가 배제되기를 원한다."며 국제축구연맹(FIFA)과 유럽축구연맹(UEFA)의 제재를 촉구했다.

FIFA는 축구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축구 경기나 행정에 대한 정치권력의 개입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이 원칙을 어기는 회원국에 자격정지나 제명과 같은 제재를 가하기도 해 향후 대응이 주목되었지만 이 3개 구단주도 러시아계라든지 친러시아적인 태도를 이전부터 밝혀왔으며 다수 서포터들도 지지를 보내왔기에 문제시될 사항이 없는 걸로 알려졌다. 때문에 피파나 UEFA는 그다지 제재할 분위기를 보이지 않고, 이 3개 구단의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승격 및 유러피언컵 진출여부도 인정하면서 사실 더 이상 우크라이나로서도 뭐라고 할 말이 없게 되었다.

러시아는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때 크림 반도에 참가국 베이스 캠프를 차리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2018년 UEFA 네이션스 리그가 창설되자 18-19 대회에서 우크라이나는 리그 B에 배정되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리그 B에서 사력을 다해 싸워서 리그 A로 승격에 성공했다! 이에 따라 유로 2020 예선에서도 유리한 고지에 오르고, 20-21 대회에서는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 기존 축구강국이 즐비한 리그 A에 어깨를 나란히하게 되었다.

2021년 현재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같은 조로 배정받지 못한다. 그리고 UEFA 유로 2020에서 C조에서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북마케도니아와 한조에 속하였고 결국 조별리그 통과를 하면서 16강전에서는 북유럽 최강이라고 불리우는 스웨덴을 연장 접전 끝에 도이비크의 결승골로 8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결국 8강에서는 그 대회의 준우승팀인 잉글랜드를 만나 4대 0으로 대패 하였으나, 이 기록은 우크라이나 역대 최고의 기록으로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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