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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2. 3. 9.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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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前 정치인.

1989년 YS의 통일민주당에서 보좌관으로 정계 입문한 이후 노무현 의원의 최측근이 되어 '노무현의 왼팔', '노무현의 좌희정 & 우광재' 심지어 '노무현의 정치적 동업자'라고까지 불리며, 정치인 노무현의 행보 및 정책적 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자타가 공인하는 참여정부 성립 일등 공신이었으나, 2002년 대선 직후 선거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받게 되어 참여정부에서 요직을 맡지 못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을 대신해서 감옥을 갔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여전히 친노에서 영향력은 여전했다. 이후 정치적 자립을 시도하여 2010년 고향에서 충청남도지사에 당선되었다. 이후 연임에 성공하며 안정적인 도정 활동을 바탕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부각, 지지율 선두권을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2018년 안희정 성폭력 사건으로 제37대(민선 6기) 충청남도지사를 사퇴하고 정치 활동을 전면 중단하였다. 그리고 2018년 3월 6일 더불어민주당 윤리위원회에서 전원 일치로 제명 및 출당 조치되었다. 소명 기회를 주었으나 안희정이 스스로 소명 기회를 포기했다고 한다. 이후 2018년 8월 14일 1심 재판에서 무죄를 판결받았으나, 2019년 2월 1일 2심 재판에서 징역 3년 6월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되었고 2019년 9월 9일 대법원에서도 2심 판결이 확정되며 정치생명이 완전히 끊어져버렸다.

 

친노의 적장자

친노 중에서도 가히 지존, 최고존엄의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노무현이 본인 다음으로 가장 신뢰했던 인물로서, '노무현의 왼팔', 그리고 이광재와 더불어 '좌희정-우광재'라 불리었는데, 당연히 우의정보다 좌의정이 높은 것처럼 노무현에게 있어서 오른팔로 불렸던 이광재보다도 확실히 한 단계를 더 뛰어넘는 긴밀한 관계, 최측근 중에서도 노무현 바로 옆에 있었던 심복이 안희정이었다.
안희정과 노무현의 관계가 어느정도였냐면 심지어 '노무현의 정치적 동업자'로 불렸을 정도. 이것은 단지 언론에서 붙인 별명이 아니라 노무현 본인이 현직 대통령 시절을 안희정을 자신과 동업자이자 동지였다라고 발언했을 정도였다. 노무현이 계속해서 낙선하던 시절 정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각종 사업을 시작했을 당시 모든 실무와 자금을 담당해 온 것은 안희정이었고, 93년 8월 설립한 지방자치실무연구소의 실무를 담당하던 것도 안희정이었기 때문에 노무현의 안희정에 대한 신뢰는 다른 친노 인사들에 비해 유달리 남달랐을 사연이 있었다.

위와 같은 사연으로 안희정 또한 노무현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여기 계시는 노무현과 저는 정치적 동업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할 정도였다. 안희정은 이광재와 함께 노무현이 꼬마 민주당에서 거의 정치 세력 없이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부터 노무현에게 인생을 걸고 같이 했던 몇 안되는 정치적 동반자, 동지였고, 따라서 친노 성골 중 차기 왕위계승권 서열 1위에 해당한다 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

하지만 노무현 당선 직후 선거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받고 수감되면서 오히려 노무현 정권 내내 요직을 맡지 못했다. 이에 대해서는 노무현 대신 감방에 갔다는 인식이 당시에 퍼졌고, 심지어 노무현 본인도 "안희정이 저를 대신해 희생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노무현이 언더독에서 극적인 역전승으로 대선에 당선된 이후 그동안 노무현을 거들떠 보지 않았던 수많은 날파리들이 몰려들면서, 심지어 노무현 탄핵에 앞장섰던 인물들 조차 나중에 친노를 자처하는 현실 속에서 친노 중에서도 지존의 위치에 있었던 안희정의 위치는 서서히 잊혀진 감이 있다. 안희정 본인 또한 노무현 자살 이후 스스로 정치적 자립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입혀진 친노의 적장자라는 이미지를 어느정도 희석시키려 노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쨌거나 친노 중에서도 안희정보다 노무현과 가까웠던 사람은 없었다.

참여정부 말기, 모두가 노무현에게서 등을 돌릴 때에도 '참여정부 평가표'와 참여정부평가포럼을 만들어 끝까지 노무현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했다. 노무현의 사망 직후엔 유시민과 함께 장례식장에서 상주노릇을 자처하며 조문객들을 맞이하기도 했다. 그러나 임기 말 좋지 못한 범여권의 정치적 사정으로 인해 정권을 한나라당에게 내주게 되었고, 이러한 상황을 함축해서 친노 진영을 '폐족'[]이라고 지칭한 바 있었다. 친노의 대표 인사로 분류되는 인물이 친노 진영을 향해 자조했던 발언이었던 만큼 당시에는 친노 정치세력의 패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로 해석되었다

 

충남도지사

대통령의 측근이나 징역살이로 그럴듯한 정치적 커리어도 없고 친노진영도 몰락하게 되면서 안희정도 정치 생명을 연장하기 글렀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에 사분오열 되는 와중에도 항상 민주당을 지켰고 노무현의 비극적인 최후로 뭉쳐진 추모 여론, 정권 교체 이후 이명박 정부의 연속적 실정에 따른 지지율 하락과 이로 인한 참여 정부에 대한 재평가 등의 반사효과가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노무현에 대한 진실한 마음을 보이며 다소 보수색이 강하기로 알려져 있는 충청남도의 도정을 맡기에 이른다. 이로써 이렇다 할 정치적 커리어 없던 안희정은 광역자치단체의 행정가로 화려하게 거듭났다.

이명박이 이때의 선거 패배 때 왜 여권에는 이광재, 안희정 같은 사람이 없냐며 아쉬워했을 정도로 친노인사치고 보수진영 인사들에게도 호평받는 편. 아무래도 친노진영으로 분류되는 정치인 중엔 그나마 온건파적 성향인 것도 한 몫한다. 이러한 중도적인 성향을 통해 진보나 보수언론을 가리지 않고 광폭 행보를 보이며 중도층에게도 큰 호감을 얻었으며,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의 충남도지사 재선을 계기로 더이상 '친노'라는 수식어 없이도, 자기 능력을 바탕으로 정치 세력화를 얼마든지 추구할 수 있음을 입증해보였다. 일부 민주당 강경 지지자들의 경우에는 이러한 온건파적인 면모 때문에 약간의 비토 정서를 보이고 하지만 적어도 그 능력은 탁월하다고 인정할 정도이다.

중도적이고 새로운 정치를 강조하는 인물인 만큼 안철수와 간혹 비교되기도 하는데 약간 중도보수에 가까운 안철수와 달리 자신은 스스로 '진보' 정치인이라며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있어 중도에서도 진보에 가깝다. 또 자신은 김대중-노무현을 잇는 장자가 되고 싶다고 말할 정도. 물론 이뤄지지는 않았다. 안희정이 말하는 새정치는 새로운 진보와 보수의 틀을 만들자는거지 안철수처럼 그 제3지대를 구축하겠다는게 아니라며 선을 긋고 있다.

출중한 행정 능력과 대한민국 정치계의 메인 스트림으로 부활한 친노의 적통이고, 여야 동년배 정치인에 비해 돋보이는 수려한 외모[], 준수한 화술과 논리력, 인생역정은 연설이나 토론, 방송, 유세 등에서 대중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플러스적 요소를 갖추고 있지만, 19대 대선에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날리기 전에는 대중적 인지도를 갖추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 본인의 말처럼 '지방 사또' 정도의 정치인으로 남아있었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다 할 수는 없었어도 전국적으로 상당히 주목받던 차세대 정치인임은 사실이며, 충청 대망론의 대표주자로 미는 분위기도 있었다. 실제 충남지역에서는 행정가로서 보여준 탁월한 행정능력과 사람을 가리지 않는 인품에 대해 세대를 막론하고 안희정을 대단히 높게 평가하는 여론이 조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충청 민심을 증명하듯 2015년 9월에 충청인이 선호하는 '충청권' 정치인에 차기 대권주자로 꼽혔던 반기문(2위 - 11.4%)을 제치고 1위 - 26.6%를 기록했다. 도지사로 재임하고 있는 충남지역(39.6%)에선 무려 10명중 4명이나 안희정을 선호했다. 그 외에 대전(23.8%), 세종(34.8%)로 각각 지역에서 1위이다. 한편으로 충북에선 상대적으로 약세였는데 10.8%로 반기문, 이시종에 이어 3위에 올랐다. # 고무적인 것은 민주당의 취약점인 55세 이상의 장년층에서도 22.9%로 1위를 차지했다는 것과, 선거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30~54세의 선호도가 30.3%를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19~29세에선 18.4%의 선호도를 보였고 전체적으로 남녀간 지지차이(남성 26.4%, 여성 27.0%)는 미미했다. 이 여론조사를 통해 안희정이 '충청대망론'의 선두주자임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권 단일화 실패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이 대전광역시-충청남도-세종특별자치시 지역에서 집권 새누리당과 무승부[]를 기록했고, 아울러 그를 최측근에서 보좌했던 김종민 전 정무부지사(충남 논산-계룡-금산), 조승래 전 비서실장(대전 유성 갑), 정재호 전 정책특보(경기 고양 을)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안희정 마케팅'이 더민주 지지층에게 상당한 호소력이 있다는 점까지 입증했다. 이 중에서 김종민 후보는 그 피닉제의 독주를 꺾으면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는 그 특유의 안정감으로 반기문 전 사무총장의 불출마 선언과 사분오열된 보수 정당으로 길 잃은 중도 ~ 중도 보수 지지층들이 안 지사에게 몰려 중도 - 보수 외연 확장성을 보여주며 대선 후보 선호도 2위까지 치고 올라갔었다.

유력 정치인들의 연령대에 비해서는 상당히 젊은편인 만큼[19] 지금처럼 계속해서 순탄한 행보와 결정적인 성과 몇 가지를 내준다면 충분히 2022년 대권주자로 떠오를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잘생긴 얼굴로 인해 당대의 인기 아이돌 EXO에 비견되어 충남 엑소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신년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여권 지지자들이 차기 대통령으로 적합한 인물로 안희정이 꼭 거론될 정도였다.

앞서 말했다시피 비록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으나 비서 성폭행으로 그가 바라던 대통령의 꿈과 정치 인생이 한 줌의 먼지가 되고 말았다.


2019년 2월 1일 이뤄진 2심에서 10개의 혐의 중 9개가 인정되면서 징역 3년 6월을 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이후 같은 해 9월 9일 상고심에서 형이 확정되었다.

성향

오랜기간 민주당계 정당에서 헌신한 정치인이지만, 현재 민주당의 주류와 거리가 있는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다. 친문으로 대표되는 민주당 주류는 가능한한 직접민주주의를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경향이 강하고, 의회를 다소 불신하여 의원 내각제와 같은 분권형 정치 체계에 회의감을 가지고 있으며 대통령 중심의 확고한 체계를 선호한다. 하지만 안희정은 직업으로서의 정치인을 자주 강조하며 전문적인 정치인들을 통한 의회민주주의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또한 대한민국의 대통령제는 대통령 개인에게 모든 책임이 달려있는 것이 문제라고 발언하며 과도하게 권력이 집중된 구조를 벗어나 대통령과 의회가 권력을 나누어 갖는 이원집정부제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적폐청산이 주요 쟁점 중 하나였던 19대 대선에서 민주당 핵심 지지층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안희정이 다소 뜨뜻미지근한 평가를 받은 것도, 전당 대회를 통해 선출된 원내대표, 당대표가 있기 때문에 탄핵국면에서 전락지침은 그분들이 나서야하며 대통령 후보는 선출된 공식적인 공직이 아니기 때문에 나서서 발언하는게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기 때문에 상황에 맞춰 철새처럼 정당을 바꾸는 정치인들을 매우 싫어하며,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은 그대로인데 정당 간판만 바꿔서 이미지를 새롭게 하려는 정당들의 자세도 '회사가 물건 잘 안팔린다고 회사 이름 바꾸는 것 보았냐'는 비유를 들며 강하게 비판한다. 즉, 안희정이 보는 바람직한 정치는 정당이 회사와 같이 이른바 '정책 생산자'로서 정책을 구상하면, 국민은 '정책 소비자'로서 마음에 드는 정당을 지지하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이 실현되기 위해서 정당은 신뢰가 가는 회사가 되기 위해 뚜렷한 정치철학을 가지고 일관된 정책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전제를 강조하며 민주당을 향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소신을 보여주고 있다.#

복지정책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개인주의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는데, 안희정 본인의 비유에 따르면 밥을 먹을 때 진수성찬이 없더라도 김치에 국만 한 그릇 있으면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있듯이, 복지정책도 이것저것 쓸데없이 많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국민연금, 4대보험과 같이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거나 질병에 걸렸을 때 인간답게, 어느정도 존엄성을 지키며 살 수 있는 핵심적인 제도만 튼튼하게 가지고 있으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대선시즌 당시 이재명의 기본소득제를 비판하고 공방을 벌였다.

이 점에 대해서는 민주당 내에서도 진보적 성향을 강력하게 보여주는 이재명 지사와 거의 대척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도 복지 분야를 두고 여러차례 충돌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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