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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이우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2. 10. 11.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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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이우(Київ)[우] 또는 키예프(Ки́ев)[러]는 우크라이나의 수도이자 최대도시이다.[] 키이우주의 주도이지만, 행정구역은 주와 분리되어 있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벨라루스까지 동슬라브 3국의 발상지이기도 한 역사적 고도이다.

도시의 이름은 키이우를 건립했다고 전해지는 전설상의 인물인 키(Кий)의 이름에서 따 왔으며, 현대 우크라이나어로는 'Київ'라고 표기하며 /ˈkɪjiu̯/라고 발음한다. 영어로는 'Kyiv'로 표기되며, 우리말로는 '키이우' 혹은 '크이우'로 발음된다. 한국에서는 2022년까지도 '키예프'라는 표기가 널리 쓰였는데 이것은 러시아어 표기 Ки́ев를 전사한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로 국내 언론을 비롯하여 우크라이나의 지명을 많이 언급하게 되었는데, 이때 우크라이나 측으로부터 러시아식 독음을 정정해줄 것을 정식으로 요청받으면서 키예프라는 표현은 거의 사장되어가는 수순이다. #

영어 표기로는 러시아어 표기 'Ки́ев(Kíjev)'에서 유래한 'Kiev'가 그동안 일반적으로 쓰였으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사실상 이 명칭은 사장되었다. 현재 대다수의 해외 언론에서 더이상 Kiev라는 표기를 찾아보기 힘들어졌고, 'Kyiv' 표기를 사용하고 있다. 현재 CNN, 워싱턴포스트, BBC, AP, 로이터 등 대다수의 주요 매체에서 Kyiv라 표기하고 있다. 이전에도 그동안 우크라이나 정부는 탈러시아 작업의 일환으로 Kiev를 하나둘씩 Kyiv로 고쳐나가고 있고 영어권 언론도 점차 이를 따르는 추세였다. 다만 우크라이나 내부에도 러시아어 인구가 많은 등[18] 현실적 이유가 겹치다 보니 Kiev 표기를 철저히 버리진 못하고 있었으나 2022년 러시아의 침공을 계기로 러시아어의 공식 사용이 배제되고 있다.[] # 한국 정부의 공식 표기도 오랫 동안 '키예프'였다. # 다만, 키이우를 제외한 다른 도시들의 경우 '리보프'를 '리비우'로 바꾸고 '하리코프'를 '하르키우'로 바꾸는 등 러시아어식 지명을 우크라이나어식으로 바꾸는 현상은 침공 이전에도 있었다.[]

고대 동슬라브어로 키이우는 Кꙑєвъ, 즉 '크예우' 내지는 '크예브'와 비슷하게 발음되었다. 당시 в의 발음이 /w~ʋ/였기 때문이다. 고대 동슬라브어에서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가 분화할 때 두 언어는 각각의 음운 변동 과정을 거쳤다. 이 두 언어는 어말의 단모음 ъ 탈락을 모두 겪었으나, 각각 다른 음운 변동을 겪기도 하였다. 러시아어의 경우 в의 발음이 /v/로 발음되었고 연구개음 뒤의 ы가 и로 변했으며 단어 끝에 위치한 유성음이 무성음이 되는 현상으로 /v/가 /f/로 바뀌어 현재 발음인 '키예프'로 정착된 것이다. 이와 반면에 우크라이나어에서는 в의 발음이 계속 /w~ʋ/로 발음되었고(현재에도 그러하다), 경음인 연구개음이 보존되었으며[], 구개음화된 е, 즉 /ʲe, je/의 발음이 /ʲi, ji/ 로 바뀌는 '이카비즘'이라고 하는 음운 변동을 거쳐 현재의 '키이우' 발음이 된 것이다.

2022년 러시아와의 전쟁이 터지자, 트위터 등지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이 /ˈkɪjiw/ 발음을 소개하거나 'Kyiv'로 철자를 고칠 것을 촉구하는 영상이 호응을 얻고 있다. 2022년 3월 1일에 주한우크라이나대사관은 한국 내에서 잘못된 명칭으로 본국의 수도를 부르고 있다며 크이우라는 명칭을 사용할 것을 요청했다. 해당국 정부 요청에 따라 공식 국명 표기를 러시아어식인 그루지야에서 영어식으로 변경한 조지아와 유사한 사례. 러시아에 부역하고 있긴 하지만 러시아어식인 '벨로루시'를 현지식 명칭인 '벨라루스'로 변경할 것을 비슷한 시기에 요청한 벨라루스와도 비슷하다.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 페이스북

국립국어원과 KBS 한국어 연구부의 자문을 받아, 3월 1일 KBS 뉴스에서 기존에 사용하던 러시아어식에 가까운 키예프라는 명칭 대신에 우크라이나어식 명칭에 가까운 키이우라고 부르기로 했다. # 우크라이나어의 и는 /ɪ/(근전설 평순 근고모음) 발음으로[22], 음성학적으로 봤을 때 한국어의 'ㅡ'에 해당하는 /ɯ/(후설 평순 고모음)보다는 'ㅣ'에 해당하는 /i/(전설 평순 고모음)에 더 가깝다. 또한 이 발음은 영어 단어 bit, 독일어 단어 bitte의 i 발음과 비슷하다. 따라서 국립국어원과 KBS에서는 음성학적 요소와 해당 발음을 'ㅣ'로 옮기는 다른 언어와의 표기 통일성을 고려하여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이 요청한 '크이우'가 아닌 '키이우'를 채택하였다] KBS에 이어 3월 2일 오전 중앙일보가 우크라이나식 표기를 사용하기로 했으며, 이후 3월 2일 오후, 경향신문, YTN, 연합뉴스, 조선일보, JTBC, MBC, SBS 등이 '키이우', '하르키우' 등 우크라이나 발음대로 표기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대다수의 국내 언론들은 키이우라고 표기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명칭에 대한 논란은 존재한다. 주로 키이우라는 발음에 대한 논란. 상술한 하르키우와 리비우의 경우에는 문제가 없는 반면, 언론에서 비춰지는 우크라이나인들의 키이우 발음은 '키이우'보다는 '키이브'쪽에 더 가깝다. 또한 키이우의 영어표기를 살펴보면 'Kyiv'인데, 이또한 발음해보면 '키이브'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어에서 в는 끝에서 '우'라고 발음하기 때문에 틀리다고 할 수는 없다.

2022년 3월 2일, 국립국어원은 '우크라이나어 한글 표기 모음'을 발표하면서 '키이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지명 표기에 대한 권고안을 발표하였다. # 또한 3월 4일 수정을 통해 몇몇 지명이 추가되었다. 다만 이는 확정 표기는 아니며, 향후 정부·언론 공동 외래어 심의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

2022년 3월 3일, 대한민국 외교부는 주한우크라이나대사관, 국립국어원과의 협의를 통해 키이우를 포함한 우크라이나식 지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

2022년 3월 10일, 국립국어원은 '키이우'를 비롯한 12개 지명에 대한 심의를 완료하였다. # 국립국어원은 우크라이나어 표기와 관용 표기(러시아어 표기)를 함께 쓸 수 있다고 밝혔다. 즉 기존에 사용해 오던 러시아어 표기인 '키예프'도 틀린 표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북한의 경우 2022년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대외적으로 러시아를 지지하기에[] 예나 지금이나 '끼예브'로 표기한다.

 

키이우 역사


흑해로 연결되는 드니프로 강 양 어귀에 세워졌다. 본래 유목민이던 스키타이족이 정착해 살던 지역으로 원초 연대기에 따르면 동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의 하나로, '루스 도시들의 어머니'라고도 불린다. 키예프 공국의 수도였으며, 드니프로 강을 이용, 흑해와 발트해를 연결한 무역으로 번창하였다. 11세기에는 인구가 4만 5천여 명에 달했으며, 전성기였던 12세기 초에는 10만여 명이 넘었다는 기록이 있다. 멸망하기 전까지 당시 동슬라브 지역[]에 있었던 수많은 공국들의 형식적인 수장 노릇을 했고, 류리크 가문이 갈라져 공국들이 분열하기 전까지 주도권을 행사했다.

이렇게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던 키예프 공국이었지만, 13세기 초엔 루스 공국들 간 전쟁으로 수차례 점령되고 약탈당했다. 그나마 명맥은 유지했으나 1240년에 몽골 제국에 침공받아 도시가 완전히 파괴되어 폐허로 변했다.

결국 이 일로 북쪽의 노브고로드 공국과 블라디미르-수즈달 공국에 주도권을 내주었고, 이후 블라디미르-수즈달에서 갈라져나온 모스크바 대공국이 키이우 계열 공국들을 완전히 정리하면서 동슬라브 지역의 역사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 중심으로 흘러갔다.

14세기 리투아니아 대공국이 킵차크 칸국의 지배로부터 키이우 일대를 해방시킨 이후로 15세기까지 리투아니아의 영토였으나 타타르족이 계속 침략하여 회복이 늦어졌다. 16세기 루블린 조약으로 폴란드와 리투아니아가 연방 국가로 합쳐지는 와중에 키이우는 폴란드 왕국의 도시가 되었다. 코사크들이 우크라이나를 크림 타타르족으로 방어하기 시작하자 키이우 시의 인구가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다. 한동안 키이우 시는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요새 도시 중 하나에 불과했으나 코사크 헤트만 페트로 사하이다니치의 지도하에 다시금 부흥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키이우는 인쇄소를 적극 운영하고 성직자들의 부패를 일소하며 기강을 세워 우크라이나 문화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코사크 지도자 보흐단 흐멜니츠키가 봉기한 이후(대홍수 문서 참조) 키이우는 러시아 제국의 영토가 되었으며, 19세기 말에는 러시아 산업혁명의 한 중심지가 되었다. 소비에트 연방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중요한 도시가 되었으며, 1934년에 우크라이나 공화국은 수도를 하르키우에서 키이우로 옮겼다. 이 기간 중에 인구가 급속도로 팽창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도시는 크게 파괴되었으나 전후 빠르게 복구하여 소련 제3의 대도시가 되었다. 녹지가 많아서 소련에서 가장 푸른 도시라는 명성도 가지고 있었다. 후에 소련에서는 1982년 키예프 1500주년 기념 메달을 만들었다.

1986년 4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 현장이 키이우에서 불과 100 km 떨어진 곳이었다. 키이우는 체르노빌에서 가장 가까운 대도시로 한국으로 따지면 서울-천안 정도의 거리에 불과하다. 체르노빌 폭발 사고 당시 2차 증기 폭발로 원전 바닥이 완전히 녹아버릴 위험성이 제기되었다. 그렇게 되면 키이우의 상수원인 드니프로 강은 그대로 방사능 오염이 되기 때문에 도시 전체를 고스란히 버려야 하는데, 당시 체르노빌 발전소 사고 현장에서 3명이 지하로 내려가 배수 밸브를 개장하는 영웅적인 행동으로 성공한 덕분에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 게다가 운 좋게도 사고 이후 바람이 며칠간 거의 줄기차게 남풍이 불었기 때문에 가까운 거리치고는 방사능 낙진의 피해가 최소화되었다.

당시 사고로 인한 방사능 피폭 피해를 소련과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공화국 정부가 완전히 은폐하였기 때문에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다. 사고 며칠 후 키이우 축제가 있었는데, 당시 우크라이나 당국은 축제를 취소하기는커녕 강행하여 축제에 참가한 시민들이 방사능에 많이 피폭되었고, 1986년 키이우 5월 축제와 관련된 모든 사진 기록은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정부가 완전 말소했다고 한다.[]

1991년 소련 연방 유지 투표에서는 투표에 참가한 소련 9개 공화국의 대도시들 중에 유일하게 반대표가 다수였다(44%). 현재 키이우는 서부 우크라이나의 리비우와 함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친서방 성향이 가장 강한 도시인데, 이미 이때부터 조짐이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1991년 8월 소련이 해체되고 각 공화국이 독립함에 따라 키이우는 독립한 우크라이나의 수도가 되었다.


2013년 말부터 2014년 초까지 이곳을 중심으로 대규모 친서방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 친러 정권을 전복시킨 유로마이단이 일어났다.

2022년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에 발발한 전쟁으로 인해 2월 24일부터 북쪽의 벨라루스에서 빠르게 밀고 내려온 러시아군을 막기 위한 최전방 전투 지역이 되었다

키이우 그외정보들

이곳 근처에 있는 마을에서 6일 전쟁을 승리로 이끈 레비 에슈콜 총리가 태어났다. 많은 이스라엘 극우파들이 그의 생가를 방문하러 오기도 한다.

대학으로는 키이우 대학교, 키이우 공과대학교 등이 있다.

이곳 지명을 딴 키예프급 항공모함이 있다.

이곳에 소재한 축구팀 디나모 키이우는 우크라이나의 국민 축구팀이자, 구소련 전체를 대표할 만한 명문 구단이다.

러시안 레일로드의 세 주요 노선 중 하나는 모스크바와 이 도시를 연결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다른 지역에 비해서 생활 물가가 월등히 비싼 편이다. 이 점은 다른 나라도 별반 다를 바가 없지만 중요한 차이가 하나 있으니, 다른 지역에서 키이우로 상경 온 젊은 대학생들이 우크라이나의 열악한 경제 사정상 심각한 생활고를 겪는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전반의 소득 수준은 떨어지지만, 키이우는 집값이 엄청나게 비싸고 월세비도 높기 때문에 돈이 많은 불로소득자들이 많은데 키이우 시내에 외국인들과 부유층들의 화려한 생활, 하루 숙박비가 우크라이나 평균 월급에 해당하는 호화 호텔들이 즐비한 구시가지, 널려 있는 고급 승용차를 보면서 이들이 느끼는 우울감이나 소외감은 심각하다. 고학력자 그중에서도 특히 젊은 대학생들 중 상당수가 범죄 혹은 매춘의 길로 빠지는 바람에, 우크라이나 정부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물론 물가가 비싼 만큼 소득 수준도 도네츠크와 함께 우크라이나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편으로 키이우의 월급 수준은 러시아 전체와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고, 벨라루스와 카자흐스탄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다.

다만 우크라이나치고는 물가가 비싸다고 해도 옆나라들(EU 국가들)보다는 전반적으로 훨씬 싸기 때문에 러시아, 헝가리, 오스트리아 같은 곳을 여행하고 넘어왔다면 여기는 그렇게 비싸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유럽 문화권이 대체로 비싼 편인 외식 물가도 잘 쳐줘야 한국과 비슷한 정도고 마트 물가는 비교도 안 되게 싸다.

지하철에 사람이 별로 없는 칸에서 우크라이나 남성 한 명이 유창한 영어로 달러가 가득 들어 있는 지갑이 떨어져 있는 걸 발견했다며 같이 나누자고 제안하는 모습을 정말 흔하게 볼 수 있다. 어떻게 이런 뻔한 사기에 사람들이 걸리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는데, 키이우 시에 성매매 원정 관광 온 외국인들이 바가지 뒤집어쓰고 돈이 거덜난 뒤에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낚이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현재는 터키나 러시아까지 원정을 왔는지 이스탄불, 모스크바에서도 볼 수 있다. 참고로 저 제안을 덥석 받아들이면 어디선가 경찰복이나 경찰 증명서(당연히 가짜다)를 가진 패거리가 와서 "어디서 지갑이 없어졌다는 신고가 들어왔는데 당신 그 지갑이다. 검사 좀 해야겠으니 돈 다 꺼내라!"라고 강압적으로 돈과 피해자 지갑 속의 돈까지 꺼내게 한 다음에 스리슬쩍 갖고 빈 지갑만 돌려주는 수법에 당하게 된다. 이때 러시아어로 튕기면 금방 도망간다.[] 러시아어를 못하고 영어만 쓰는 외국인들이 범죄자들의 주 표적이다. 기차역의 물건 보관함은 비밀번호 설정이 유명무실한 수준. 기차역 물품 보관함 직원들과 절도범들이 짜고서 비밀번호를 푼 뒤 비싼 물건을 훔쳐가고 잡지도 못하는 일이 태반이다.

2011년 8월 8일 이후부터 이상 소음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코끼리가 울부짖는 듯한 금속성 소음인데, 스펙트럼 분석을 해보면 절대 동물의 발생 기관에서 발생하는 소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소리는 여기에서 확인 가능하다. 소음에 관한 추측은 몇 가지가 나와 있는 상태인데, 자세하지는 않지만 여기를 참고하자. 항목을 보면 과학자들이 해명한 것도 나오지만 한국에선 워낙 마이너한 이슈라 관심이 없다. 참고로 한국에서도 대구광역시에서 2011년 4월경 관측되었고 그 외 서울 근교인 성남시, 이천시 등에서도 들렸다.

헤비급 복싱 챔피언 선수로 유명했던 비탈리 클리츠코가 현재 키이우 시의 시장으로 당선되어 공직에 있으며, 2019년 재선에 성공해 현재까지 시장직을 수행 중이다. 시장으로서의 능력 역시 인정받았으며, 우크라이나의 차기 대권 주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차이콥스키 국립 음악원이 있다. #

2022년 4월 24일 함부르크와 '연대와 미래를 위한 협정'을 체결하여 전략적 파트너십 관계가 되었다. 이 협정은 함부르크 상공회의소의 지원과 #WeAreAllUkrainians 이니셔티브 및 Hanseatic Help Association의 협력으로 시행될 것이라고 한다. 함부르크가 키이우의 재건을 지원하고 함부르크 시민들의 인도적 지원을 모을 것이라고 하며, 향후 두 도시 간에 교육, 문화, 과학,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한다. #

소련 건국 60주년에 만들어진 키이우 우정의 동상[]이 있었는데 전쟁 개시 2개월이 지나고 철거당했다. 키이우시는 동상 자리에다 우크라이나의 자유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올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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