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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훈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2. 12. 3.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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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공직자.

1980년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에 입사했고 이후 28년 3개월 동안 줄곧 대북, 정보 부문에서 활동했다. 대한민국의 제34대 국가정보원장으로, 국정원장 퇴임 이후 2020년 7월 3일, 국가안보실장에 임명되었다.

1954년 12월 6일 서울에서 태어나 1973년 서울고등학교(25회)[]를 졸업했다. 1975~1976년 육군 일병 의가사제대로 군 복무를 마친 뒤 1976년 서울대학교 교육계열(인문계)에 입학(당시 배치표)했다.

1980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를 졸업하며 국가안전기획부에 공채 17기로 입사했다. 이후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SAIS)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북한 신포 경수로 건설을 위한 한반도 에너지개발기구(KEDO) 사업 당시 북한 금호사무소 현장사무소장으로 1997년부터 2년간 북한에 상주했다. 국정원 인사처장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은 이때 유서까지 썼다고 증언했다. 북한에서 돌아온 후에는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비밀 접촉에 투입되어,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을 수행해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과 협상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국정원 대북전략조정단장으로 실무책임자 역할을 수행했고, 이후 2000년 10월 박재규 당시 통일부 장관의 김정일 위원장 면담부터 2005년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의 김 위원장 면담까지 모두 배석했다. 2007년 제2차 정상회담 때도 배석했고, 2007년 11월 남북총리회담 대표단에도 포함됐다.

2004년 1월 김만복의 후임으로 국가안전보장회의 정보관리실장(1급)으로 승진해 청와대에서 근무하며 당시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이었던 문재인과 연을 맺었고, 2004년 12월 서영교 국장의 후임으로 국가정보원 대북전략국장으로 복귀했다. 2006년 11월에는 국가정보원 제3차장으로 승진했다.

김대중, 노무현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을 포함해서 김정일과 만났던 대한민국의 고위 인사들을 모두 수행하면서, '한국에서 김정일을 가장 많이 만난 인물'로 기록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후 2008년 3월 국가정보원 3차장을 끝으로 퇴직하였으며 이후 이화여대 초빙교수로 있으면서 18대 대선에는 남북경제위원, 19대 대선 때는 국방안보위원회 부위원장 겸 안보상황단장으로 문재인 캠프에서 중책을 맡았다.

국정원 퇴직을 앞두고 <북한의 선군외교>라는 주제의 학위 논문으로 동국대학교 정치학 박사 학위도 취득했다. 국정원 간부 출신이 쓴 북한연구 박사학위 논문이라는 점에서, 당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논문은 동명의 책으로도 출간되었다. 이후 이화여자대학교 북한학과 초빙교수,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 초빙 연구원 등을 지냈다.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에 비례대표를 신청했으나 탈락했다.

서훈 문재인 정부 초대 국가정보원장

2012년 18대 대선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통령후보 선대위 '미래캠프' 산하 남북경제연합위원회 위원, 2017년 19대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대선캠프 국방안보위원회 부위원장 겸 안보상황단장으로 문재인 캠프의 외교안보 핵심참모로 활동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자 이튿날인 2017년 5월 10일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이 하루라도 공석으로 둘 수 없는 중요한 자리라며, 직접 1호 인사로 국무총리 후보자(이낙연)와 함께 문재인 정부의 초대 국정원장 후보자로 발표되었다. 서 원장은 문 대통령의 대선 캠프 시절부터 외교안보 정책을 짜는 데 참여해 국가안보실장으로도 유력했으나 정보기관 개혁과 남북한 채널 복원의 시급한 임무를 띠고 일찌감치 국정원장에 임명됐다.

청와대 측의 발표 자료를 인용하자면, "국정원이 해외와 북한 업무에 집중하도록 이끌고", "국정원의 국내정치 관여행위를 근절하고 순수 정보기관으로 재탄생시키는" 역할을 기대받고 있다. 인선을 발표한 뒤, 기자회견에서 질의응답을 받았으나, 기자들이 질문을 하지 못해 아쉬워 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정원장이 되면 (업무특성상) 얼굴보기도 힘들어지는데[3] 질문을 해달라"고 아예 대놓고 질문을 자청했을 정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댓글부대로 대표되는 국정원의 여론조작에 대해선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의 당론과는 반대로 테러방지법은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나 결국 후보자의 입장이 무엇이든 테러방지법의 존폐는 국회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다.

5월 31일 인사청문회 보고서가 채택되었고, 6월 1일에 정식으로 국정원장에 취임하였다. 취임과 동시에 1호 지시로 정부부처나 공공기관 등의 동향파악을 해오던 국내 정보담당관(IO·Information Officer)을 전면 폐지했다. 또 국정원개혁발전위원회(국정원개혁위)를 출범시켜 '2012년 대선 댓글 사건' 등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 개입이 의심되는 정치적 사건 15개를 조사했다. 국정원개혁위의 조직쇄신 권고대로 국내 정보의 수집·분석을 담당하던 2개 부서를 해체하는 등 조직도 축소했다.

그리고 평창 동계올림픽 폐회식에 참석한 김영철 북한 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카운터파트를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전선부(통전부)는 로동당 산하의 대남공작 및 정보기관이자 대남 정책을 총괄한다. 정확하게 일치하는 우리 측 정부 기관은 없다. 다만 그동안 북한 통일전선부장의 우리 측 카운터파트는 통일부 장관이 맡는 경우가 많았다. 청와대가 김 부위원장 카운터파트를 서 원장이라고 공개한 것은 향후 남북 대화 및 북·미 대화 타진을 ‘정보기관 채널’을 통해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2018년 3월 4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단장을 맡은 문재인 정부 첫 대북 특별 사절단 일원으로 포함 됐다. 정부 의전서열상 우위에 있는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단장을 맡아야 하나, 서울고 16회로 고등학교 9년 선배인 정의용 안보실장이 문재인 정부의 대미라인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단장을 정의용 안보실장이 맡고, 실질적인 대북 협상은 서훈 국정원장이 맡을 것으로 보인다.

2018년 3월 5일, 대북특사단 일원으로 서울공항에서 평양국제비행장으로 방북하였다. 같은 날 오후 6시 김정은을 접견했고, 이 자리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를 성사시키고 돌아왔다. 3월 8일에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미국을 찾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트럼프 대통령을 조속히 만나고 싶다는 김정은의 뜻을 전해 5월 북미정상회담 추진을 이끌어냈다.

2018년 3월 13일, 1박 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해 첫째 날에는 고노 다로 외무상과 만나 남북-미북정상회담 진행 과정을 설명해주었으며, 둘째 날에 아베 신조 총리를 접견했다. 이날 면담은 당초 15분으로 예정됐으나 아베 총리가 비핵화에 대한 김정은의 진의, 북-일 관계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지 등을 세세히 물어 예정 시간의 4배가 넘는 1시간 5분으로 길어졌다.

서 원장과 정보 라인을 구축한 마이크 폼페이오 CIA 국장이 국무장관으로 이동하면서 ‘정보수장 라인’이 정상회담 이후 비핵화 프로세스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할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실질적으로 남북간의 재교류의 물꼬를 튼 문정부의 1순위 인사라고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다.

2018년 4월 27일,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임종석 비서실장과 함께 회담장에 배석했다. 그리고 회담 이후 발표된 판문점 선언을 들으면서 감정이 북받쳐 오른듯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11년 만에 재개된 남북정상회담에서 앞선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기획, 관여한 인물이기도 하고, 또 이번 회담의 성사를 위해 달려온 과정에서 마음고생의 의미가 담긴 것으로 보이나 대공수사의 책임자이기도 한 국정원장으로서 적절한 처신이냐는 논란이 있었다.

4월 29일, 저번 달처럼 일본을 방문해 아베 총리를 만나 이번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했다.

5월 26일, 급작스럽게 열린 2018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판문점 북한 측 시설인 통일각까지 들어가 유일하게 문재인 대통령 옆에 배석했다. 참고로 이때 김정은 위원장 옆의 카운터파트는 김영철 통일전선부 부장이었다.

미국 현지 시간으로 6월 11일,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장기간 미국과 북한 간의 대화가 지지부진해졌던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공화당 만찬행사에 가는 길에 기자들에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직접 품에서 꺼내 보여주며 김 위원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당시 서훈 국정원장도 미국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언론 일각에서는 북한이 서훈 원장에게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했고 서 원장이 이 친서를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가 트럼프 대통령 측에게 전달한 게 아니냐는 가설을 제시했었다. * 이에 국정원은 친서와 관련해서 국정원은 관여한 바가 없다며 언론의 가설을 부인했다. *

2019년 4월 김영철의 뒤를 이어 북한의 새로운 통일전선부 부장(우리나라로 치면 통일부 장관)이 된 장금철을 판문점에서 극비리에 만났다고 한다. 둘이서 정확히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는 알 방법이 없으나 이후 북한이 수차례에 걸쳐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던 것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면 회동에서 큰 소득이 없었거나 그냥 단순히 서로 얼굴만 익히는 자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서훈 안보실장 퇴임 후

대선 후 미국 워싱턴에 가서 연수를 받으려고 준비 중이라고 알려졌는데,# 2022년 6월 12일 관광비자로 출국하여 딸이 사는 로스엔젤레스에서 체류했다

2022년 7월 8일,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탈북 선원 강제 북송 사건으로 한평생 몸담았던 국가정보원에 의해 후임 국정원장이었던 박지원과 함께 고발되었다. 일주일 쯤 후 검찰은 입국시 통보 조치를 했다.

8월 1일 법조계에 따르면 미국 싱크탱크 초청으로 현지에 머물던 서 전 원장이 지난달 말 귀국했다. 검찰 관계자는 서 전 원장 등의 소환 일정에 대해선 "수사 일정에 따라 필요한 때 필요한 조사를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

8월 2일 김규현 국가정보원장은 국정원이 박지원, 서훈 전 국정원장을 국정원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한 것과 관련, "고발과 관련된 사실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대통령께서 승인하셨다"고 답변해 논란이 일었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하여 당시 국방장관이던 서욱과 해양경찰청장이던 김홍희가 구속된 가운데 두 사람 모두 첩보 삭제와 월북 발표의 배경으로 서훈 전 안보실장을 지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발생후 다음 날인 2020년 9월 23일 새벽 청와대에서 열린 관계장관회의에서 서 전 실장이 ‘자진 월북’으로 판단한다는 방침을 관계부처에 전했다는 것이며 이같은 정황은 감사원의 감사결과에서도 드러났다.#

결국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이 12년만에 16강진출 성공한 날 구속되어 서욱이 잡혀갔던 서울구치소로 가게 되었다. 서해 피격건 뿐만 아니라 남북단일팀 논란, 평양공연건까지 추가로 수사받을 예정이다.

서훈 대북관

공직을 떠나 있던 2014년,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열린 한 특강에서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수는 있지만, 전쟁을 수행할 능력은 없다", "전면전이 아닌 작은 도발은 가능하지만, 그 이상은 조금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또한 "(남북 협상 과정에서) 북한 고위 관료들이 주도적으로 책임을 지거나 결정하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이는 오래된 북한의 숙청사(史)의 영향인 것 같다. 한국에서는 일이 잘못되면 자리에서 물러나거나 심해야 감옥에 가는 것으로 그칠 뿐이지만, 북한에서는 목숨이 왔다갔다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북한 비핵화 문제 해결을 위해서 김정은 체제를 먼저 보장해야 한다고 보았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부 장관도 이와 비슷한 발언을 했지만 핵 폐기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서훈 국정원장은 “현재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북한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전혀 없다”며 “기껏 북한에 들어갔던 주방장 같은 사람의 전언을 듣는 수준에서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김정은의 협상 전략을 누가 이해하겠느냐”고 말하며 남북 접촉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서훈 그외정보들

월간중앙의 3월 19일자 기사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서훈 원장의 대북 정보 보고를 상당히 신뢰한다고 한다. 이 기사는 한 가지 특별한 사례를 일화로 인용했는데, 서훈 원장은 북한이 2017년 11월 29일 ICBM을 발사했을 때, 이전과는 다르게 최대한의 고각 발사 방식을 통해 사거리가 950㎞ 정도밖에 안 되게 한 것, 미사일의 비행궤도가 일본 열도 위를 지나가지 않게 조정한 것을 보고 이건 '무력 도발의 탈을 쓴 협상 제의'라는 걸 눈치챘다고 한다. 그리고 청와대에 이러한 의견을 보고했다고 한다.

실제로 얼마 안 있어 김정은 위원장은 2018년 1월 신년사를 통해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여와 남북 대화 재개를 원한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전해왔으며, 이는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이후에도 서훈 국정원장이 CIA를 이끌고 있었던 마이크 폼페이오와 통전부를 이끌고 있는 김영철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며 트럼프의 의중을 북한 측에게, 그리고 김정은의 의중을 미국 측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라 본다고 전해진다. 기사
2018년 8월 27일에 MBN에서 방영하는 시사 프로 판도라에서 정두언 전 의원과 '흑금성'이라 불렸던 대북 공작원 겸 사업가 박채서 씨가 서훈 당시 국정원 3차장이 이명박 정권 때 친이계의 알력 다툼에 본의 아니게 휘말려 축출된 내막을 이야기했다.

북한은 당시 국정원 3차장이었던 서훈 원장을 통하여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 때 특사를 보내겠다는 제안을 해왔는데, 서훈 당시 3차장은 그때까지만 해도 친이계 실세 중 하나로 꼽혔던 정두언 전 의원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이에 정 전 의원은 서훈 당시 3차장과 함께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를 하러갔는데, 당시 정두언 측과 권력 다툼을 하고 있었던 이상득 전 의원의 수하였던 인물이 그 자리에 같이 있었다고 한다.

그 인물은 서훈 3차장이 정 전 의원과 함께 그런 사실을 보고하는 걸 보고 서훈 3차장을 정두언 쪽 사람으로 오해한 나머지 정두언이 이를 이용해 이상득계를 몰아내려고 하는 줄 알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일부러 '서훈 차장은 이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는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그 말에 넘어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훈 3차장을 통해 들어온 북한의 제안을 무시해 버렸고 특사는 없었던 일이 되어버렸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대북 관계는 파탄일로를 걷게 된 데다가 서훈을 필두로 했던 대북 휴민트 축출까지 이루어져 북한에 대한 중요한 정보망이 송두리째 없어져 버렸다고(...) 그 이후로 국정원을 이용해서 북한에 정보를 넘겨 우리나라에서 기껏 잘 키워놨던 북한내 대남 온건파들까지 군부 강경파들에 의해 숙청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유시민의 알릴레오에 출연한 문정인 특보가 꼽은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북한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한 인물이다. 2번째는 문재인 대통령. 정확하게는 '문재인 대통령은 서훈 원장 다음으로 공부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국정원에서 같이 근무한 이들에 의하면 차분하고 진지한 성격으로 혼자 생각을 많이 하고, 후배들과 격의없이 소통해 인망이 높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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