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정보 유머

스페인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2. 12. 2. 08:54
728x90
반응형

남유럽의 이베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국가로 전성기 시절에는 무적함대로 대표되는 강력한 해양 국가이자 대영제국 이전의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까지 여겨졌던 세계적인 열강이었다. 북쪽으로는 프랑스와 안도라, 서쪽으로는 포르투갈, 남쪽으로는 모로코와 지브롤터와 인접하고 있다. 수도는 마드리드(Madrid). 마드리드의 인구는 2021년 기준으로 6,661,949명이다. 국토 면적은 505,990㎢, 인구는 2018년 기준으로 46,745,611명이다.

근대 이후에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에 비해서는 인구가 많은 편이 아니었지만 상당한 인구를 보유하고 있었다. 북아메리카, 중앙아메리카, 브라질을 뺀 남아메리카와 카리브 해 일대의 여러 섬, 필리핀, 괌, 북마리아나 제도 등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많은 인구가 라틴아메리카 일대와 미국, 필리핀 등지로 빠져나갔다. 그나마 과거 인구 유출이 광범위하게 벌어진 것에 비해서는 현재는 인구가 많은 편으로 출산율은 1970년대까지도 높아서 인구가 크게 늘어나기도 했고 1980년대 이후로 출산율이 급감했지만 당시 산업 구조적으로 상태가 좋지 않던 스페인의 구 식민지인 라틴아메리카와 중동에서 많은 인구가 몰려와서 인구가 늘어나기도 했다. 나중에는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장수 국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2018년 기준으로 인구 밀도는 92명/㎢로 주변 국가에 비하면 조금 낮다.

스페인 지리

서유럽/남유럽에서 프랑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영토 대국답게 기후와 풍경도 다양하다.
영국보다 서쪽에 위치해 있지만 중부 유럽 표준시를 채택했기 때문에 시간대는 오히려 영국보다 1시간 앞선 UTC+1 시간대를 쓴다.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과 교류가 많다 보니 시차가 없는 편이 낫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름에는 해가 너무 오래 떠 있다는 이유로 바이오리듬이 깨진다는 의견이 대두되어 다시 영국과 동일한 시차로 돌리자는 이야기가 2014년 상반기 서머타임 때 제기된 바 있고 2016년에 다시 영국의 시간대과 같은 그리니치 시간대로 복귀하자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땅 구조가 정말 이상하다. 프랑스와 함께 6개월씩 번갈아가며 관리하는 지역도 있고, 아프리카 대륙에도 있다

스페인 기후

지중해 연안 국가들이 그렇듯이 1년 내내 햇볕이 따사롭고 놀기 좋은 해변을 많이 갖고 있다. 덕분에 관광 분야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2018년 기준으로 스페인을 찾은 해외 관광객은 8,300만 명으로 세계 2위, 관광 수입은 80조원으로 세계 2위다. 독일 등 북유럽 노인들이 은퇴 후 살고 싶은 나라 1순위다. 실제로 말라가나 마요르카 섬 등 경치좋고 살기 좋은 동네에서는 독일, 영국 등에서 은퇴 후 이민으로 정착한 노인들을 흔히 만나볼 수 있다. 심지어 식당 메뉴에도 독일어가 병기되어 있을 정도. 그래서 각종 편견에서 마요르카는 반쯤 독일 땅 취급당하고 있다.

지중해에 면한 남유럽 국가라는 이유 때문에 일년 내내 따스하고 햇볕 강한 기후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스페인은 넓은 국가라 기후가 꽤 다양한 편이다. 북부는 한국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습하면서 서늘하고 남부와 내륙 지방은 중동과 북아프리카가 연상될만큼 덥고 건조하다.
특히 무르시아와 안달루시아 지역은 특히 여름이 매우 건조하며 덥다. 안달루시아의 주도인 그라나다의 1년 평균 강수량은 353mm, 무르시아는 297mm, 지중해 해안 도시인 알메리아는 고작 200mm에 불과해 사막성 기후를 띤다. 알메리아를 중심으로 그라나다에서 무르시아까지 지중해 해안을 따라 사막이 분포하는데 이 사막의 이름을 타베르나스 사막(Tabernas Desert)이라고 부른다. 이곳은 유럽에서 유일한 사막으로 알려져 있어 유럽 전역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관개 시설로도 농사가 불가능한 지역이어서 비닐하우스를 통한 온실 농업이 행해진다.

마드리드, 톨레도, 사라고사, 바야돌리드 등의 내륙 지역 역시 지중해성과 스텝 기후를 오갈 만큼 건조하다. 특히 여름에는 남동부만큼 강렬하게 뜨겁기까지 해서 사막 수준의 기후도를 보인다. 하지만 고지대가 많아 기온 자체는 남동부만큼 극단적이지는 않은데, 그래도 40도까지 올라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해발고도 600m가 넘는 마드리드의 역대 최고 기온이 44.3도일 정도로 뜨겁게 달아오르는 곳이다. 겨울에는 평균 기온 5도 내외로 비교적 서늘하지만 해발고도 500m~1,000m의 고지대임을 감안하면 그렇게 기온이 낮은 편은 아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이 지역도 남동부처럼 매우 건조해서 위의 주요 네 도시 중 1년 강수량 500mm를 넘는 곳이 없다.[] 특히 사라고사의 경우 1년 강수량이 300mm 초반에 불과해 관개를 하지 않으면 농사가 불가능한 수준으로 건조하다. 스페인 내륙 역시 남동부와 마찬가지로 심각한 사막화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드는 지역이다.

실제로 말라가 - 하엔 - 시우다드레알 - 톨레도 - 살라망카 - 레온 - 부르고스 - 로그로뇨 - 사라고사 - 발렌시아를 잇는 선 안의 지역은 연평균 500mm 미만인 건조지대로 스페인 전체 면적의 1/3 이상을 차지한다. 동남부와 중부 고원 지대에서는 주변의 강물과 지하수를 끌어다 쓰는 관개 농업이 이루어지고 관개 시설이 없으면 농사가 불가능할 만큼 건조도가 심하다. 그나마 중부 고원의 산지는 고도가 높아서 증발량이 낮아 숲이 형성되어 있어 이곳에서 주로 강물이 공급되지만 동남부 해안가는 나무가 자라지 않는 황량한 민둥산과 와디가 펼쳐져 있다. 여름날 스페인 거리를 걸으면 왜 시에스타가 존재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안달루시아나 무르시아 같은 남부의 내륙 지역은 여름엔 정말 바싹 타버릴 정도로 덥다. 섭씨 39도~40도는 예사로울 정도다. 이 지역은 사막 또는 스텝 기후를 띄는 곳이 많아 키낮은 초목이 듬성듬성 있는 민둥산과 황무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예전에는 이곳에서도 농사를 지었으나 사하라발 사막화가 지중해를 넘어 이곳까지 침투하는 바람에 농사를 포기하고 텅텅 비어버린 땅이 많다고 한다.

유일하게 스페인하면 떠오르는 기후와 다른 양상을 보이는 곳은 비스케이 만 부근, 갈리시아, 바스크 지방으로 대표되는 북부 해안 지대다.[] 이곳은 북대서양 난류(멕시코 만류)가 직접 통과하는 곳이라 온난 습윤 기후나 서안 해양성 기후를 띤다. 갈리시아의 간판급 도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의 경우 하도 비가 자주 내려서 "비가 막 그친 거리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 비고(Vigo)같은 해안가 도시들은 더 극단적이라 1년 강수량이 1,791mm에 달하며 푸른 녹음이 우거진 풍경을 보여준다. 오히려 강수량이 집중되는 겨울엔 음침하고 우울한 느낌까지 받을 수 있고 스페인이라 믿기 힘들 정도로 서늘하다. 히혼은 2월 평균 기온 10.3도, 8월 평균 기온 20.4도로 연간 차이가 고작 10도에 불과하고 빌바오 역시 1월 9.3도, 8월 20.9도로 큰 차이가 없다. 심지어 비고의 여름 평균 기온은 20도를 채 넘지 않는다. 시에스타가 존재할 정도로 뜨겁고 건조한 타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기후의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가 지나가는 북부 내륙은 4월까지도 비가 잦고 꽤나 서늘한 편이기 때문에 햇살 좋은 스페인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가벼운 옷차림으로만 왔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을 정도다. 물론 이 지역도 이상 기후의 영향에서는 자유롭지 못한지 2020년 7월 바스크 기푸스코아의 산 세바스티안에서 기온이 무려 42°C를 기록하기도 했다. 북동부 피레네 산맥과 안도라 공국 지역, 안달루시아 남부의 시에라네바다 산맥 지역은 겨울에 눈이 내리는 지역으로 이 지역 스키 리조트가 유럽권에서 유명하다. 여름도 타 지방보다 선선한 편이다. 최근 이상 기후로 4~5월까지도 폭설이 내려 애먹는 일도 많아지고 있다. 2021년 1월에 아라곤에서 -34.1°C까지 내려갔다. 1956년 예이다 지방에서 기록된 영하 32도보다 낮다.

스페인 역사

고대에는 히스파니아라 불렀고 히스패닉, 에스파냐, 스페인이라는 이름 모두 이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로마 점령 이전 동부와 남부 해안가는 이베로족과 카르타고인들이 있었고 중부와 서부, 북부는 켈트족들이 있었다. 로마 제국의 점령 이후 여러 명의 황제를 배출하기도 하고 귀족들이 많이 이주해 와서 이탈리아 반도 다음으로 중요한 지역으로 여겨졌다.

중세에는 서고트 왕국이 있었다. 로마를 점령한 고트족과는 다른 부류다. 이들은 오늘날 스웨덴 남부, 독일 북부에 거주하던 종족이었으나 로마가 후퇴할 시기에 이베리아 반도로 대규모로 이주했다. 이때 이주한 서고트족은 30만 명 정도로 이베리아 원주민을 압도할 만한 숫자는 아니었고 그 전에 이미 정착한 같은 게르만 계통의 수에비족, 반달족, 소수 게르만족들이 각각 연합체로 지역별로 나뉘어 다스리고 있었다. 서고트족은 이베리아 반도 내의 게르만족을 모두 복속시켜 이베리아를 통일했다.

프랑크족과 동로마 제국의 공격으로 흔들렸으나 다시 이베리아 반도를 통일했다. 그 후 왕위 계승 싸움과 내부 분열 등으로 여러 가지 혼란들이 가중되었고 711년 지브롤터에 이슬람군이 상륙하고 중앙군이 대패하면서 정복당했다. 하지만 일부 귀족 세력이 북부의 산악 지대로 도망가서 그곳에 기독교 국가를 세웠고 이 국가들은 레콘키스타의 토대가 된다.
이슬람 세력에 정복당한 후 알안달루스라고 불리게 된 스페인은 이슬람 왕조들의 중심지로 유럽에서 당시 가장 번화하는 지역이었고 화려한 문화를 남겼다. 하지만 점차 세력이 약화되고 북부의 기독교 세력이 강대해져 엘 시드로 유명한 레콘키스타로 이슬람 세력과 대치했다. 이 시기 이베리아가 정복당함으로써 700년간 수많은 아랍인들이 올라와 그들과 섞이게 되었고 많은 스페인 사람들에는 그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1492년에 카스티야 연합왕국의 이사벨 1세에 의해 레콘키스타가 완료되었고 콜럼버스의 항해와 함께 대항해시대를 열었다. 최전성기 스페인은 캐나다 남부, 미국의 중부, 남부, 서부뿐 아니라 브라질을 제외한 라틴아메리카를 지배했고 동남아시아에서는 필리핀, 괌, 북마리아나 제도 등 여러 태평양 제도들을, 아프리카에서는 서부 해안 일대를 장악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 프랑스와 패권을 두고 끊임없이 대립했고 압스부르고 왕조가 지배하는 시기에는 그만큼 많은 견제를 받았다. 게다가 광대한 아메리카의 누에바에스파냐 식민지에서는 금은이 쏟아졌지만 다른 식민제국에 비해서는 산업 발전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았다. 그럼에도 펠리페 2세 시기에는 프랑스를 압도하며 전성기를 구가했고 영국과의 해전에서 패하기는 했지만 그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모로코 사드 왕조와의 전쟁에서 포르투갈 국왕 세바스티앙 1세가 전사하자 공석이 된 포르투갈 왕위도 꿀꺽하여 60년간 이베리아 연합(1580~1640)을 결성하여 인도양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17세기에 들어서는 1648년 네덜란드의 완전한 독립을 승인했다. 18세기 초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서 왕가가 합스부르크에서 부르봉으로 바뀌며 플란데런, 프랑슈 콩테, 밀라노 공국, 나폴리 왕국, 시칠리아 왕국 등의 서유럽 영토를 상실했고 이때 지브롤터가 영국령이 되었다.

18세기 중엽에는 카를로스 3세의 개혁으로 다시 중흥을 이루어 미국 미시시피 서부의 모든 영토와 플로리다 등 북아메리카 남부 지역부터 남아메리카까지 방대한 영토를 자랑했다.

하지만 19세기 초에는 나폴레옹에게 점령당한 후 나폴레옹이 스페인령 루이지애나를 빼앗고 그것을 다시 미국에 되팔았다. 그 후 미국 독립에 자극받은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스페인의 혼란을 틈타 독립 운동을 벌여 1820년~1830년대를 전후해 멕시코, 칠레, 아르헨티나, 페루, 에콰도르,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파라과이, 니카라과,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코스타리카, 볼리비아, 파나마, 우루과이, 캘리포니아, 텍사스, 뉴멕시코, 네바다, 애리조나 등 아메리카 대륙의 크고 작은 해외 식민지들을 대거 상실했다.

1898년에는 미국-스페인 전쟁으로 마지막으로 스페인이 지배하고 있던 쿠바, 푸에르토리코, 필리핀, 괌 등 카리브해 및 태평양 도서 지역의 식민지들도 상실했고 스페인령 사하라, 적도 기니, 모로코 북부 일부 지역만이 남게 되었다. 19세기 수십 년에 걸쳐 스페인 제국은 붕괴되기 시작했고 미국이 그 방점을 찍었다. 식민지들을 다 합쳐도 이탈리아 정도의 크기로 줄어 들어 제국주의 국가들 중에서 영향력이 적은 국가로 전락했다. 미국-스페인 전쟁 패배 이후로 수백년 제국의 완전한 몰락을 직접 본 스페인 사람들은 패배감에 휩싸였으나 이러한 분위기를 덜어내고 다시 부흥하기 위한 노력들이 행해졌고 이들을 98세대라고 부른다. 1898년부터 행해졌던 개혁들을 이끈 세대를 뜻한다.

스페인 내전을 겪고 나서는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기나긴 독재 시기를 거치면서 지식인들의 바람과 다르게 스페인은 산업 발전이 뒤쳐졌고 독재 국가라는 이유로 서유럽에서도 외면받기 시작했다. 이런 암흑의 근대 시기가 있었던 탓에 스페인 사람들은 막연하고 암울한 현실을 도피하고 인생을 즐기려는 경향이 나타났고 오늘날의 스페인은 유흥으로 유명해지고 다소 밝고 시끄러운 듯한 느낌이 나게 되었다. 1960년~1970년대에는 아프리카 독립의 열망에 따라 남아 있던 적도 기니와 서사하라 등 아프리카 식민지들의 영유권을 포기했다.

프란시스코 프랑코 사후 보르본 왕조의 후안 카를로스 1세 국왕이 즉위해 왕정이 복고되었고 후안 카를로스 1세 국왕이 주도하는 입헌군주제에 입각한 민주화 개혁 정책으로 민주주의 국가가 되어 산업적 · 문화적으로 모든 면에서 고속 성장하기 시작했고 덕택에 이민 유출국이었던 스페인의 위상도 급변해 이민 유입국이 되어 동시대에 국가적인 위기를 겪던 중남미와 중동권 국가 등으로부터 이민자들이 몰려오는 국가가 되었고 2000년대 들어서는 인구 성장률이 크게 증가하던 시기도 있었다.[] 한편 2014년에는 스페인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던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잘못된 구설수로 인해 아들 펠리페 6세에게 왕위를 양위했고 엉망진창이 된 왕실의 이미지 복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스페인 인구

스페인은 전쟁이 일어났을 시기부터 인구가 상당히 일정하게 증가해 왔던 국가다. 1980년 정도까지는 인구가 안정적으로 계속 비슷한 정도로 성장해 왔지만 이후에는 속도가 느려지다가 거의 증가하지 않게 되었다. 2000년대에는 많은 이민 수용으로 인하여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였지만. 출산율이 2020년 1.23명으로 100만 명 이상의 유럽 국가 중 가장 낮고, 이마저도 이민자 가정에 의해 유지되고 있어 앞으로도 인구가 감소할 것이다. 인구수 역시 영토 크기에 비하면 상당히 적은 축에 든다.

스페인 사회

원래 스페인은 가톨릭이 국교였던 국가인 만큼 가톨릭의 영향력이 강하다. 도시의 구시가지 중심부에는 어김없이 성당[23]이 자리잡고 있고 관광객들에게도 개방한다. 12사도 중 한 사람인 성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예루살렘, 로마에 이어 가톨릭의 3대 순례 성지 중 하나다.[]

16세기 개신교에 의한 교회 분열이 확산될 때도 스페인에서는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1515~1582)[]와 십자가의 요한 성인이 맨발의 가르멜 수도회를, 이냐시오 데 로욜라 성인은 예수회를 창설해 교회에 쇄신과 개혁의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 개신교의 확산을 저지했다.[26] 특히 예수회는 현지 문화를 존중하는 선교 방식과 교육으로 전 세계적 가톨릭 선교의 선봉장이 되었다.

그런데 좌파 사회당이 집권하면서 이혼, 낙태, 동성결혼 등에 대한 합법화를 시도하자 가톨릭 교회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갈등을 빚었다. 스페인 부총리 데 라 베가는 국회에서 "어느 단체든지 집단 의사 표시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인정된 표현의 자유지만 국회의 절차를 반대하고 국민이 선출한 정부를 존중하지 않은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마드리드 대교구장 안토니오 마리아 추기경과 발렌시아 대교구장 아구스틴 가르시아 대주교는 "이혼, 동성결혼, 낙태에 대한 입법 토론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와 인간의 권리를 후퇴시키는 것이다"라며 정부를 성토했다. 결국 사회당 정부는 당시 유럽에서는 3번째로 동성애자들도 이성애자들처럼 결혼하고 입양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법 시행 7년 만에 18,000쌍의 동성 결혼 커플이 탄생했다. 2006년 스페인 동부 발렌시아를 방문한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스페인 정부의 동성결혼 합법화 조치를 비판하면서 "양성결혼을 토대로 한 전통적인 가족 형태가 유지되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2012년 7월 5일 국민당으로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음에도 스페인 헌재는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법안에 대해 국민당이 제기한 위헌소송을 기각했다. 2020년 12월 17일에는 안락사에 관하여 타 유럽 국가들의 추세를 따라서 비범죄화로 가기로 했다. #

스페인에서는 고시원이 불법이다. 스페인의 건축법에 의하면 일정 크기 이하의 넓이로 건물을 짓는 것을 법으로 금지한다. 그래서 스페인에서 집을 지을 때 방을 좁게 지을 수가 없으며 일정 면적 이상이 되어야만 건축 허가가 난다. 이렇게 좁은 집을 짓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인권유린이기 때문이며 스페인 정부의 표현으로는 사람을 쌓아올리면 안 된다고 한다.

스페인 교육

6 + 4 + 2 학제를 채택하고 있다. 한국이 6+3+3 학제를 택하는 것과 다른데 이 나라는 초등학교 6년, 중학교 4년, 고등학교 2년이기 때문이다. 즉 한국의 고1은 스페인의 중4인 셈이다. 한편 6세~16세는 의무교육이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는 무조건 다녀야 한다.

상대평가이며 한 학급 당 25명씩 존재하는데 상위 3명(1,2,3등)은 월반, 하위 3명(23,24,25등)은 유급한다.

스페인 치안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외교부가 여행유의국으로 지정했다. 다만 스페인의 구 식민지인 중남미권의 안 좋은 치안 인식에 대한 연장선상으로 스페인도 똑같이 치안이 되게 안 좋을 거라고 넘겨짚는 것은 무리이다.

생각보다 치안 관련 행정력에 있어서 나름 괜찮게 조성이 되어 있는 유럽 국가들 중 하나이며 실제로 국가 안전도 지수나 치안 관련 조사를 했을때 유럽 권역 내에서 최상위는 아니더라도 중상위권에 안착해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 링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시피 가장 최근인 2021년 기준, 유럽 41개국 범죄 및 치안 관련 종합 순위에서 17위로 선방한 기록도 존재한다. 참고로 도시권 민생 치안에서 국제적으로 악명이 높은 프랑스가 40위, 역시나 치안에서 불안한 소리를 듣는 영국이 36위이며 라이벌격인 영국과 프랑스에 비해 치안이 비교적 안정적이라는 독일도 스페인보다 낮은 23위에 머물렀다.

바로 옆 나라인 포르투갈이 유럽에서 워낙 조용하고 안전한 나라로 유명해서[] 묻히는 부분이 좀 있지만 스페인도 유럽의 대표적인 국가들인 영국, 프랑스나 비슷한 문화권인 이탈리아에 비해서는 확실하게 전반적인 치안 면에서 나은 정도로 평가받으며 독일과 비슷하거나 좀 더 나은 정도이다. 참고로 유럽에서 치안으로 최상위권에 안착한 국가들의 경우, 인구수가 1천만 명대 전후 수준으로 미비한 경우가 많은데 스페인은 나름 유럽 권역 내에서 손꼽힐 정도의 인구 규모[28]를 둔 국가임에도 치안 유지가 잘 조성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세계 최상위권인 한국의 치안 수준에 익숙해진 상태로 밤늦게 아무 골목이나 마구 들어가는 것은 절대 금해야 하지만, 유동 인구가 많은 구역의 경우 그쪽 대로변들의 타파스 가게나 펍들도 새벽까지 열려 있고, 밤 문화가 전통인 스페인답게 현지인들도 야식 먹으러 놀러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자정 넘어서도 간단하게 식도락을 즐기거나 하는 것에는 무리가 전혀 없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워낙 명망이 큰 관광 국가이다 보니 외교부 해외 안전 여행 사이트에서는 관광객에 대한 절도, 소매치기에 주의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확실히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를 비롯한 대도시권의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다가 벌어지는 소매치기 빈도는 아주 적지는 않은 편.

또한 과거에 발생했던 바스크 해방전선 ETA의 테러 등 테러 사건들로 인해 여행유의국으로 지정된 것이 크다. 절도나 소매치기를 비롯한 관광객 대상 범죄부터 폭력을 비롯한 중범죄에 이르기까지 예나 지금이나 프랑스 파리나 이탈리아 로마가 더 하지만 스페인은 이것과는 별개로 활동하는 국내 테러 조직이 있었기에 각별히 주의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무려 20년 전인 2000년대 당시의 일이며 현재는 카탈루냐 지방에서 독립운동 분위기가 간헐적으로 조성되는 정도를 제외하면 바스크 해방전선이나 다른 반국가적 테러단체의 활동은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실제로 ETA 항목을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 활동이 엄청나게 미비해졌고 2018년에는 공식적으로 해체되어 수년전에 아예 없어진 조직이다. 현재 여행객 입장에서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스페인 전국을 통틀어 가장 조용한 곳이 바스크 지방이다.

치안의 불안요소 중 하나인 카탈루냐 독립운동 시도마저도 막상 수년전의 날치기식 투표 해프닝이 흐지부지되고 카탈루냐 권역 내에서도 "보여주기식 정치적 퍼포먼스 좀 그만해라" 식의 볼멘소리가 나오면서 잦아든 추세이다. 게다가 연이어 코로나19 판데믹 상황과 국제적인 인플레이션 상황이 벌어지면서 중앙 정부의 중요성을 알았는지 예전처럼 길거리 시위는커녕 독립에 대한 의견 제시조차도 수년째 안 나오는 상황.

도리어 2010년대에 ISIS발 극단주의 무슬림들이 프랑스나 독일을 비롯한 다른 유럽 국가에서 저지른 테러 사태들과 이로 인한 수십, 수백 명 단위의 인명피해가 넘쳐났던 것에 비해서는 상당히 잠잠했던 국가이기도 했다. 오히려 20세기 말에서 2000년대에 ETA를 비롯한 테러조직들을 소탕하거나 대량으로 수사했던 노하우들이 있었기에 훗날 이슬람발 테러에 대한 경찰력의 대처가 더 치밀하게 이뤄졌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실제로 스페인은 고속열차를 탈 때도 비행기처럼 사전에 수하물 검사를 하는 국가이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스페인 여행 중 성범죄 같은 강력범죄 피해 사례들이 인터넷에 자주 올라오곤 했다. 최근에는 단신 여행객을 대상으로 하는 순례길 범죄가 문제가 되고 있다.[] 그리고 2015년 3월에 기독교 순례자길을 여행하고 있던 미국인 여성을 살해한 남성이 2017년 4월 11일에 징역 23년형을 받았다.[] 범인은 스페인인인 듯하다.

2017년 8월 5일에 타임스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극좌 단체들이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공격하고 있다고 보도했고 이들은 앞으로도 공격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그리고 2017년 8월 12일에 바르셀로나에서 관광객 반대 시위가 열렸다.[] 사실 이 문제는 지표상 경기는 회복되었는데 임대료가 한창 오르다 보니 지역 주민들이 계속 밀려나는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관광객이 늘어나는 것은 좋은데 건물주 등 일부만 그 혜택을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보니 관광 반대 여론이 있다. 경찰 신고 번호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112다.[] 마드리드를 비롯한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경찰을 부를 경우 Policía Local이라고 하는 자치 경찰이 달려오지만 정부 청사 근처나 국가 기간 시설 일대에서는 스페인 국가경찰도 볼 수 있다. 지금은 사형제 폐지 국가인데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통치하던 시절의 후유증이다. 운동권 인물들을 마구잡이로 살인 혐의를 씌우고 처형하던 막장 행보 덕에 스페인 국민들이 사형 제도에 질려버렸다. 갈리시아 지역엔 갈리시아 클랜이라 불리는 마피아형 범죄조직이 마약거래를 하면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스페인 교통

한국에서 스페인으로 갈 때는 대한항공과 직항으로 이용은 물론 루프트한자, 프랑스 항공, KLM 네덜란드 항공, 핀에어 등등 유럽연합 국적사를 통해 주로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로 입국한다. 이외에도 터키 항공, 아에로플로트 등등 비EU권 국적사 항공기로 올 수도 있다. 그 외 다른 서유럽 국가를 여행 시 저가항공으로 런던, 파리, 로마, 프랑크푸르트, 리스본 등에서 올 수도 있는데, 이 경우는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이외에도 세비야, 이비사, 팔마 데 마요르카, 테네리페 섬, 그란 카나리아 섬, 란사로테 섬 빌바오 등등을 갈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인 배낭여행자들은 프랑스 파리에서 바르셀로나로 들어온다. 스페인 공항들의 입국 심사는 까다롭지 않은 편이며 EU 국적사를 이용한 경우 아예 검사 자체를 안 한다고 생각해도 될 수준이다. 특히 선진국 국민인 대한민국 국민은 전자여권을 쓰기 시작한 이후 더욱 그렇다.

마드리드 바라하스 국제공항과 바르셀로나 엘 프라트 국제공항은 둘 다 렌페의 통근 전철이나 마드리드 지하철, 바르셀로나 지하철 등 지하철로 편하게 연결된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