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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3. 1. 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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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기업인.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의 회장.

경기도 수원시 출생으로 최종현 회장의 장남이자, SK그룹 창업주 최종건 회장의 조카이다.

고려대학교 이과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 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박 통합 과정을 수료했다.

2021년 3월 24일 제24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취임하며 재계를 대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대한핸드볼협회 회장도 같이 역임하고 있다.

한동안 대한민국의 대기업 총수 중에서는 젊은 축에 속했지만, 지금은 평균 나이대에 속한다

최태원 경영활동

1992년 SK상사에 부장으로 입사 후 상무를 거쳐 SK주식회사 부사장직을 맡았으며, 이후 SK대표이사 회장에 선임된다.

1998년 8월 26일 최종현 선대 회장 작고 당시, 경영권에 관하여 특별한 유언없이 갑작스레 별세함에 따라 SK그룹은 경영권을 둘러싼 분쟁에 휩싸일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그러나 당초 SK그룹의 경영권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던 최종건 회장의 장남인 최윤원 SK케미칼 회장의 결심이 큰 역할을 했다. 최윤원 회장은 "우리 형제 가운데 태원이가 가장 뛰어나다"며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후계자로 추천했고 만장일치로 최태원 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하게 되었다. 하지만 2년도 되지 않아 사촌형인 최윤원도 폐암으로 요절하는 비운을 맞았다.

2013년, 선물투자를 위한 회사 자금의 횡령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관련 기사. 2014년 3월 4일에 모든 계열사 대표직 및 그룹 내 회장직에서 물러난 후 1년 뒤, 2015년 8월 13일 광복 70주년 특별사면에 경제인 14명을 포함한 6,527명과 함께 특별사면 되었다. 이후 SK 회장직에 다시 복귀했다.

그가 복귀한 후 SK그룹의 실적은 크게 성장했다. SK이노베이션 회장 취임 뒤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행복추구'를 핵심으로 하는 SKMS(SK그룹 경영관리체계)의 재정립과 그룹 재무구조 개선, 수출기업으로 전환을 통해 SK그룹을 재계 순위 2위로 끌어올렸다.


2014년 10월 옥중에서 ‘새로운 모색, 사회적기업’이라는 저서를 내며 사회적 가치 창출을 향한 관심을 보였다. 2015년 8월 경영에 복귀한 뒤 사회적 기업 지원을 확대하고 임직원들에게 사회적 가치 구현을 독려하고 있다.

SK그룹 직원 사이에서는 인간적인 평판이 상당히 좋은데, 직원들을 대할 때 항상 예의를 갖추고 친절한 자세를 보여서라고 한다. 이러한 성격은 부친인 최종현 전 회장을 닮았는데, 신약 개발로 유명한 김대기 박사가 SK케미칼에서 근무할 당시 최종현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 앞에서 신약 개발이 부작용으로 인해 실패했다는 보고를 할 때의 에피소드가 있다. 김 박사의 발표를 묵묵히 듣고 있던 최종현 회장이 갑자기 "김박사, 그렇다면 반은 성공한 것 아니오?"라고 묻자 주변이 술렁거리고 김 박사도 당황했는데, 그 뒤로 이어진 한마디가 압권. "부작용을 진작에 발견해서 해결한다면 더 완벽한 신약을 개발할 수 있잖소? 앞으로 더 열심히 개발해보시오."

2019년 기업 경영의 최우선 가치를 구성원의 행복에 두겠다고 발표한 후 실제 구성원들과의 다양한 소통 활동들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직원들과 행복을 주제로 대화하는 행복토크 100회를 채우기도 했다. 그 외에도 비인기 종목인 핸드볼의 부흥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등의 여러 긍정적인 모습도 보이고 있다.

최태원 반도체

2011년 하이닉스를 인수해 그룹의 사업영역을 정유와 통신에서 반도체로 확장했다. 이를 통해 내수기업의 한계를 벗어났다는 평을 받는다.

국내 최대 이동통신사인 SK텔레콤과 메모리반도체 세계 2위 기업인 하이닉스의 시너지까지 기대할 수 있는 이상적인 결합이었다. 하지만 인수하기까지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당시 그룹 고위 임원들은 합병에 반대했다고 하나 “무슨 일이 있어도 반도체 사업을 하겠다”고 밀어붙였다고 한다.

앞서 2010년 그는 그룹이 매년 10% 이상씩 발전하기 위해서는 SK텔레콤과 같은 회사를 키워 내야 한다며 또 다른 미래 먹거리를 찾아 다녔다. 그러던 중 그해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된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서 지인을 만나 반도체 사업의 전망이 밝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최 회장이 반도체에 눈을 뜨게 된 결정적 계기다. 그는 정보기술(IT) 분야가 세상을 바꿀 것이고 반도체는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사업이라고 확신했다. 최 회장은 곧바로 반도체 공부를 시작했다. 1년 가까이 반도체를 파고든 최 회장은 2010년 말 하이닉스를 인수하겠다는 의중을 그룹 이사진에게 밝혔다. 이사회 내부에서는 대부분이 반대하고 나섰다.

첫째, 인수 금액이 턱없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회사 내부에서는 “우리와 비슷한 덩치의 회사를 먹고 배가 터지면 어쩌려고 저러나. 하이닉스를 인수하고 그룹 전체가 망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파다했다. 대부분의 경영진은 당시 돈으로 2조원이 넘는 대규모 투자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인수와 동시에 모기업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둘째, SK텔레콤이 그룹 내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있고 굳이 신사업을 하지 않더라도 그룹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는데 왜 해보지도 않은 사업에 손을 대느냐는 의견이었다. 셋째는 반도체에 투자한다고 하더라도 과연 하이닉스라는 회사의 가치가 올라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었다.

SK는 하이닉스를 인수하기 위해 박정호 당시 SK텔레콤 사업개발실장(현 SK텔레콤 사장)을 필두로 태스크포스(TF)팀을 정식으로 꾸렸다. 자금 조달은 채권단 지분을 일부 인수하고 신주를 발행해 투자 재원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정했다. 총 3조 3,700억 원이 투자됐는데 신주 2조 3,400억 원, 구주 1조 300억 원이었다.

당초 채권단은 썩 반기지 않았지만 최 회장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반도체 경기가 좋아지면 주가가 올라갈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줬다. 그리고 최 회장의 제안은 현실이 됐고, 그의 판단은 빠르게 증명되었다. SK하이닉스는 SK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성장했고, 2017년 반도체 슈퍼사이클 때 SK하이닉스 영업이익은 무려 13조 7,213억원을 기록했다. 3조원의 투자로 한 해에만 4배 넘게 수익을 거둔 것이다.

인수 이후 2015년 OCI머티리얼즈(현 SK머티리얼즈)를 4,800억원에 인수하고, 2017년 LG실트론(현 SK실트론)을 1조원에 사들였다. 2018년에는 도시바 메모리 지분을 4조원에 인수했다. 당시 최태원은 직접 일본으로 날아가 인수 작업을 지휘했다.

SK하이닉스는 인텔 낸드 사업까지 확보하면서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확고한 지위를 굳혔다. 인텔 낸드 사업 인수로 SK하이닉스는 키옥시아를 제치고 낸드부문 2위 업체로 올라서게 되었다. 반도체 경쟁사인 인텔을 대상으로 10조 원 규모의 M&A를 성사한 배경에도 최태원의 결단력이 작용했다는 평가가 있다.

최태원 바이오

최태원의 업적으로 꼽히는 바이오 사업은 고(故) 최종현 회장 때부터 주도적으로 육성해온 사업 분야로, 오랜기간 존버끝에 빛을 발한 케이스다. 최종현 회장은 SK의 강점인 정밀화학 사업을 발전시켜 차세대 먹거리로 제약·바이오 사업을 키우려 했고, 1993년 대전 대덕연구원에 제약팀을 꾸린 뒤 제약이라는 뜻의 ‘Pharmaceutical’’의 앞글자를 딴 ‘P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후 최태원 회장이 이를 물려받아 지금까지 이끌어오며 혁신 신약 개발에 열을 올렸다. 2007년 그룹을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후에도 지주사 직속에 신약 R&D조직을 두고 투자를 아끼지 않을 정도였다.

연구소는 설립 3년 만에 첫 성과를 낸다. 1996년 미국 FDA(식품의약국)으로부터 신약 후보 물질 임상시험 승인(IND, Investigational New Drug)을 받음으로 기술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후 연구소는 뇌전증 신약 후보물질의 유럽 상업화를 위한 5억 달러 규모 기술 수출 계약을 성사시키는가 하면 수면장애 분야 1위 기업에 기술수출 및 FDA와 EMA 승인 획득이라는 연구실적을 이뤄냈다.

약간의 시련도 있었는데, 1998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그리고 소버린자산운용에 의한 적대적 M&A 피인수 위협 등으로 최 회장은 경영권을 놓칠 수도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서 최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의 경영권에 대한 외부 견제가 심해지면서 SK의 제약바이오산업도 존폐를 우려할 정도의 위기를 마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제약·바이오 사업의 육성을 계속 추진했고, 2002년에는 바이오 사업을 꾸준히 육성해 2030년 이후 그룹의 중심축 중 하나로 세운다는 장기 목표도 제시했다. 신약 개발에서 의약품 생산, 마케팅까지 모든 밸류체인을 통합해 독자적인 사업 역량을 갖춘 글로벌 바이오·제약 기업을 키워낸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같은해 생명과학연구팀, 의약개발팀 등 5개로 나눠져 있던 조직을 통합, 신약 연구에 집중케 하는 한편 다양한 의약성분과 기술 확보를 위해 중국과 미국에 연구소를 세웠다. 그 후 신약 개발 사업의 집중 육성을 위해 2011년 사업 조직을 분할해 SK바이오팜을 출범시켰다.
2015년에는 SK바이오팜의 원료 의약품 생산 사업부를 물적분할해 SK바이오텍을 설립하고 의약품 생산으로 사업 분야를 넓혔다. 신약 개발부터 생산까지 수직계열화에 나선 것이다. 이후 SK바이오텍은 2017년 다국적 제약사인 BMS의 아일랜드 생산시설을 구매했다.

2018년에는 SK가 미국의 위탁 개발·생산 업체 앰팩(AMPAC) 지분 100%를 인수했다. 지난해 10월에는 SK바이오텍, SK바이오텍 아일랜드, 앰팩 3사를 통합해 SK팜테코를 설립, 분산돼 있던 의약품 생산사업들을 하나로 합쳐 규모의 경제와 함께 효율을 높였다.

바이오 산업은 이후 결실을 맺는다. 2019년 미국 식품의약국에서 국내 최초로 성인 대상 부분 발작 치료제 '세노바메이트(제품명 엑스코프리)'에 대한 승인을 받았고, 수면장애치료제 '솔리암페톨'은 2019년 FDA 승인을 받은데 이어 2020년 EMA 승인을 획득했다. 한국에서 FDA 승인을 받은 혁신 신약 2개를 보유한 업체는 SK바이오팜이 유일하다. FDA의 신약 승인 확률은 6~8%에 불과하다는 점으로 볼 때 이는 괄목할만한 성과다. 신약 개발 경험이 전무한 신생 업체가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 개발, 판매 허가까지 전 과정을 독자적으로 진행해 FDA 승인을 받았다는 점은 매우 이례적이다.

신약 개발은 통상 10~15년의 기간과 수천억원 이상의 비용이 투입되고도 5,000~10,000개의 후보물질 중 단 1~2개만 신약으로 개발될 만큼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연구 전문성은 물론 경영진의 흔들림 없는 육성 의지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영역으로 평가받는다

 

최태원 esg

최태원은 '사회적 가치'로 표현되는 ESG 경영 기조를 대한민국 대기업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한 인물 중 하나로 꼽힌다. 2009년 연세대에서 열린 '사회적 기업 국제포럼'에 참석하는 등 사회적 가치에 대한 철학을 보다 구체화 해 나간다. 2012년에는 사회적 가치 생태계 조성 차원에서 '사회적기업가 육성'을 위해 세계 최초로 KAIST와 공동으로 '사회적 기업가 MBA' 과정을 개설했다. 2014년에는 직접 집필한 저서 '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을 통해 개념을 더욱 명확히 했다.

ESG가 지금처럼 화두로 떠오르지 않을 당시에는 수익을 내기 어려운 경제적 이론 정도로 여겨지기 쉬웠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13년 다보스 포럼에서 그가 제안한 것이 지금의 ESG 평가 기준의 개념과 흡사한 'SPC(사회성과 인센티브)'다. SK그룹은 이와 유사한 평가기준을 마련해 사회적 가치에 기반한 성과 평가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같은 사회적 가치에 대한 투자는 이후 ESG 광풍에도 선제적인 대응을 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20년 11월 SK그룹 8개 관계사는 한국 최초로 'RE100'에 가입했다. 'RE100'은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 100%'의 약자다. 기업이 2050년까지 사용전력량의 100%를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조달하겠다는 것을 뜻한다.[] ESG가 기업의 화두가 된 2021년 중반에 와서는 혜안이었다는 평을 받는다.

실제로 SK그룹은 ESG 대표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신한금융투자가 발간한 ‘뉴 패러다임, ESG’에 따르면, SK그룹은 지주회사 SK㈜와 SK텔레콤이 모두 A+를 받아 전체 128개 기업 중 5위를 기록했다. 근로조건 관련 국제 기준과 법규를 준수하고 수평적이고 유연한 조직 구성을 위해 직위 체제를 간소화한 점, 협력 회사들에게 특허 기술 사용권을 무상 제공하는 점 등이 인정받았다.[]

각종 행사의 연설에서 오랜기간 ESG를 화두로 이야기하는 대표적 인물이기 때문에 재계와 각종 경제 기사에서는 'ESG 특사'라고 지칭되기도 한다.

2030년까지 미국에 61조를 투자한다고 했다. 이 중 절반 가량은 전기차 배터리와 수소, 에너지 솔루션 등 친환경 분야에 집중될 예정. 매코널 공화당 원내대표와 제임스 클라이번 민주당 하원 원내총무 등 미국의 유력 정치인들과 만나 탄소 감축에 대한

최태원 이혼 소송

1988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인 노소영과 결혼해 3남매를 두었으나 현재 이혼 소송 중이다.

결혼 후 1992년 제2 이동통신 사업자로 선경그룹이 선정되면서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선경그룹의 대한텔레콤 컨소시엄이 포항제철, 코오롱 등과의 경쟁에서 압도적인 점수 차이로 사업자로 선정됐음에도 대통령과 사돈지간이라는 점을 문제 삼은 것. 특히 당시 집권당 대선후보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선거에 영향을 줄 것을 우려, 강하게 반발함에 따라 선경은 일주일 만에 사업권을 전격 반납하게 된다 이후 김영삼 정부에 이르러서야 제2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과 함께 한국이동통신 민영화가 동시에 추진되는데, 제2이통 사업자 선정을 전경련에 위임함에 따라 공교롭게도 당시 전경련 회장이었던 최종현 회장이 또 다시 논란이 있을 것을 우려, 참여를 포기하게 된다. 하지만 통신사업 진출 의지가 강했던 최종현 회장은 민영화 발표로 인해 4배나 오른 가격보다도 오히려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하며 인수에 성공하게 된다. [] 한마디로 선경 입장에서는 정치적인 구설로 받았던 사업권을 반납한 후 웃돈을 주고 공기업이었던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게 된 것으로, 이 회사가 바로 지금의 SK텔레콤이다.

2015년 12월 29일, 세계일보에 서신을 보내 혼외자가 있다는 사실과 부인인 노소영과 이혼을 계획 중이라는 사실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편지 내용이 알려지며 동거인 김희영의 존재와 이혼 통보, 동거인과의 재혼 의지 등이 화제가 되었다.

최태원은 2017년 법원에 이혼 조정을 신청했다. 그러나 이혼 조정 절차에서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해, 2018 년 7월부터 이혼 소송 절차에 돌입했다. 노소영은 이혼에 반대해 왔으나 2019년 12월, 이혼에 응하겠다며 맞소송을 내면서 3억원의 위자료와 최태원의 SK 보유 주식 가운데 42.29%를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법조계에서는 양 측의 입장이 첨예하고 재산분할 등의 사안이 복잡하기 때문에 이혼 소송이 길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 이병기가 노 전 대통령과의 만남 이후 남긴 메모가 발견되고 메모에 언급된 내용과 관련하여 당시 최태원이 노소영에게 생활비를 지급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최태원이 가로세로연구소 등을 상대로 낸 허위 사실 유포 금지 가처분 소송 과정에서 최태원 측은 노소영에게 전달한 생활비 계좌이체 내역을 공개했다. 그 결과, 매월 2,000만 원에 해당하는 돈을 노소영에게 부친 것으로 밝혀졌다.

2019년 5월, 최태원이 처음으로 김희영[]과 같이 공식 석상에 참석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최태원 SK 회장 동거인 김희영 이사장, 공식행사 첫 등장 기사에 의하면, 5월 28일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소셜 밸류 커넥트 2019’의 마지막 세션에 두 사람이 참석했는데, 두 사람이 함께 설립한 티앤씨재단(T&C Foundation)[]이 이 행사의 파트너사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후 2021년 10월 26일 장인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미국 출장 일정을 잠시 늦추고 27일날 장례식장에 찾아가서 10분 간 조문을 했다.] 이 과정에서 YTN 소속의 한 기자가 '고인과 생전 인연은 어떻게 되는가?'라고 질문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최태원과 노태우의 관계를 숙지하지 못한 기자의 자질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공식적으로 상주인 사람이 10분만 조문을 하고 자리를 뜨는 상황 역시 정상적이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서울가정법원 가사합의2부(김현정 부장판사)는 6일 최 회장과 노 관장이 서로를 상대로 낸 이혼 소송을 받아들여 "두 사람은 이혼한다"며 "원고(최 회장)가 피고(노 관장)에게 위자료 1억 원, 재산분할로 665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으나 12월 19일, 노 관장이 1심에 불복하여 항소장을 제출했다

 

최태원 근황

모교인 고려대학교에 애정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기부는 물론이고 고려대학교 관련 행사에 종종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8년 2월에는 고려대 졸업식에 참석해 축사를 한 바 있는데, 국내 대기업 총수가 대학 졸업식 연설을 하는 게 이례적이라 눈길을 끌었다. 또한 고려대학교 SK미래관 건물 건립에 사재 300억 원을 출연한 것에 이어 2019년 완공 당시 직접 와서 기념 식수를 한 바 있다. 2020년에는 SK 하이닉스의 채용연계형 전공으로 고려대학교 반도체공학과 학부 과정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2017-18 KBL 챔피언결정전에서 SK 나이츠의 경기를 직관했고, SK가 우승하자 헹가래를 받았다.

2018년 9월, 평양에서 개최된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 경제인 대표단 일원으로 방북하였는데, 참석한 재벌 총수들 중 유일하게 두 번 참석했다. 2000년에는 재벌 총수들 중 막내에 속했기 때문에 사진기를 들고 열심히 찍어주느라 바빴지만, 이번 방문 때도 어느 곳을 가든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인증샷을 찍는 걸 보면 사진찍는 것에 대한 취미가 있는 듯하다.

2018년 한국시리즈에서 SK 와이번스가 우승하면서 또 한 번 헹가래를 받았다.

슼마갤에서 갤주로 모신다.[]

2018년 11월에 회장 취임 20주년을 맞아, 사촌형인 최윤원 고문의 자녀들, 최신원 SK 네트웍스 회장, 동생인 최재원 SK 수석부회장에게 주식을 증여했다.

2019년 11월 24일, 제주 유나이티드 FC가 강등된 경기인 K리그1 37라운드 파이널 라운드 B 수원전을 직관했고, 이때 크게 분노하며 무슨 일이 있더라도 팀을 다시 승격시키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11개월 후인 2020년 10월 24일 K리그2 25라운드 수원 FC전을 직관하고, 팀이 승격에 성공하자 남기일 감독을 직접 만나 축하하며 "제주는 왜 외국인 선수가 없느냐.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투자의 의지를 내비쳤기에 기대가 많다.

2020년 10월 26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빈소를 조문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줄어든 무료 급식소에 3개월간 도시락비 또는 도시락 지원을 한다고 한다. 매출이 하락한 영세한 식당에서 도시락을 구매하고 그 도시락을 무료 급식소에 보내는 방식이다. 최태원 "코로나 무서워도 밥은 먹어야"…40만끼 쏜다

하이닉스 성과급 논란 당시 30억원의 연봉을 반납하겠다고 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후 노사합의를 통해 최근 하이닉스는 임직원 상여 지급 목적으로 4,885억 규모의 자사주를 처분했다.

2021년 2월, 중국 장쑤성 지역경제 발전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시민증을 받았다. 장쑤성에서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등을 운영하고 있는 SK그룹은 현지 인력을 무려 10,000여 명이나 채용하고 있다.

2022년에도 2번 서울 SK 나이츠의 경기를 직관했다. 홈에서 통합우승을 했는데 하필 그 날이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행사날이어서 직관을 못 갔다. 우승 뒷풀이에는 참가하여 헹가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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