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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모토 류이치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3. 4. 3.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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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작곡가이자 뮤지션. 세계적으로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영화 음악을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골든글로브상과 그래미 어워드를 수상한 인물이자 아시아 최초 아카데미 음악상 수상자다.

Ryuichi Sakamoto는 1952년 1월 17일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일본의 작곡가, 음악가, 배우입니다. 그는 일렉트로닉 및 실험 음악 분야의 획기적인 작업뿐만 아니라 영화 "마지막 황제"로 아카데미 상을 수상한 음악을 포함하여 영화 음악에 기여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Sakamoto는 1970년대 후반 호소노 하루오미, 다카하시 유키히로와 함께 선구적인 전자 음악 트리오 YMO(Yellow Magic Orchestra)의 멤버로 음악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YMO는 빠르게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성공적인 밴드 중 하나가 되었으며, 일렉트로닉, 팝 및 일본 전통 음악의 독특한 조합은 1980년대와 그 이후에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EDM)의 발전을 위한 길을 닦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1980년대 초 YMO가 해체된 후 Sakamoto는 계속해서 솔로 아티스트로 활동하면서 일렉트로닉 요소와 어쿠스틱 요소를 혼합한 일련의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은 앨범을 발표하고 다양한 음악 장르와 스타일을 탐구했습니다. 그의 1983년 앨범 "Merry Christmas, Mr. Lawrence"는 잊혀지지 않는 분위기 있는 음악으로 특히 유명했으며 나중에 David Bowie가 주연을 맡은 같은 이름의 영화에 적용되었습니다.


영화 작곡가로서의 사카모토의 작업은 "마지막 황제"(1987), "리틀 부다"(1993), "레버넌트"(2015)와 같은 영화의 음악이 널리 비평적인 찬사를 받고 수많은 상을 받는 등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황제"에 대한 그의 점수는 중국 전통 악기와 멜로디를 현대적인 오케스트라 편곡과 혼합하고 아카데미 상, 골든 글로브 및 그래미 상을 수상한 획기적인 업적이었습니다.


음악 작업 외에도 Sakamoto는 적극적인 환경 및 정치 운동가로서 핵 군축, 기후 변화 및 인권과 같은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는 특히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재해에 대해 거침없이 말했으며 재해가 지역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지속적인 영향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전반적으로 Ryuichi Sakamoto의 경력은 새로운 사운드와 아이디어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과 탐구, 그리고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그의 음악과 플랫폼을 사용하려는 노력으로 특징지어졌습니다. 일렉트로닉 음악, 영화 악보 또는 행동주의 영역에서 일하면서 Sakamoto는 지속적으로 경계를 허물고 기대에 도전하여 현대 음악에서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카모토 류이치 이름

坂本龍一는 일본인의 씨명이므로 일본내에서는 당연히 사카모토 류이치라고 읽지만, 서양에서는 일본인들의 해외 진출시 또는 서구권에 본인들을 알리던 관례대로 씨와 명을 도치시킨 ‘류이치 사카모토’로 소개되었고, 이 이름이 한국에도 그대로 소개되어 아직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서양식 표기대로 '류이치 사카모토'라고 부른다.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 활동이나 영화 음악 등으로 먼저 이름이 알려진 서구권을 통해 한국에 소개되었기 때문인지 한국에서도 별 고민없이 서양식 표기를 사용해왔고 그것이 오랫동안 굳어지며 관용화 된 것으로 여겨졌다.

이렇게 서양권에 먼저 이름이 알려진 일본인은 한국에서도 이름-씨 순으로 알려지기가 쉬운데 대표적으로 구라모토 유키가 있다.

관습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많은 언론사에서 그의 이름을 다룰 때는 여전히 '류이치 사카모토'로 표기하는 곳이 많다. 다큐멘터리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의 공식 자료에도 이름과 성이 거꾸로 쓰여져 있을 정도이다.

사카모토 류이치 어린 시절


1952년 1월 17일 도쿄 나카노구 출생. 아버지는 출판사의 편집자였으며, 장서와 클래식 LP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다녔던 유치원에서 피아노를 배웠고, 이것이 즐거워서 이후에도 계속해서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고 한다. 4살에 작곡을 시작해서 11세 때인 1963년 도쿄예술대학의 음악 교수에게 클래식 작곡을 배우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중학교 때 우연히 포스트모던 연주회에 가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는 당시 일본의 사회주의 운동에 영향받았었다고 하며[] 백남준의 작품 등 다양한 포스트 모던 아티스트들의 작품에 매료되어 있었다고 한다.

1971년 도쿄예술대학 음악학부 작곡과에 입학하였다. 당시 주어진 조건대로 곡 하나를 작곡해야 하는 시험을 고작 1시간 만에 끝내고 나가 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입학한 후 작곡과는 전형적인 클래식 분위기 일색이라 어울리지 못하였고 미술학부 친구들과 어울렸다고 한다.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놀아다니기 시작해서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피아노 연주를 하며 아티스트들과 교류를 넓히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흔적으로 전위파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타카하시 유지(高橋悠治)가 쇤베르크와 베르크, 베베른의 피아노곡 전곡을 1977년에 일본 콜럼비아에서 녹음할 때 쇤베르크의 초기 습작인 '여섯 곡의 피아노 연탄곡집'에서 타카하시와 함께 피아노를 연주한 것이 있다.

사카모토 류이치 활동

솔로 데뷔전인 1976년 부터 슈가 베이브 출신의 오오누키 타에코, 야마시타 타츠로 등 여러 아티스트들의 세션으로 활동하였고, 같은 해 츠치토리 토시유키와 같이 녹음한 Disappointment-Hateruma가 연주자로서는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앨범이다. 솔로 데뷔 이전에 1978년 도쿄에서 열린 우주 박람회의 기념 앨범인 '宇宙(1978)'를 제작했으나, 신디사이저 음색과 다큐멘터리 멘트를 조합해 하나의 분위기를 만들어낸 작업물에 가깝고, 수록된 곡도 자신의 곡이 아닌 Joe Meek의 'Telstar'라는 곡을 커버한 것이었다. 자신의 이름도 앨범 한 구석에 조그맣게 올리는 데 그쳤다. 이후 1978년, 제대로 된 솔로 앨범인 Thousand Knives[]를 내 주목을 받는다. 타이틀 곡인 Thousand Knives는 이후에도 각종 YMO 라이브 버전 (# ## ### ####)이나 YMO 앨범 버전, 피아노 연주곡 버전 (# ##)등등으로 죽을 때까지 계속 우려먹힌다.

이 앨범을 발매한 뒤, 당시 이미 일본 대중음악계에서 유명세를 쌓고 있던 호소노 하루오미, 타카하시 유키히로 등과 알게 되었을 때, 사카모토 본인은 팝[]에 문외한이라 그들과 어울리면서도 왜 그들이 유명한지 전혀 몰랐었다고 한다. 원래 친했던 둘의 앨범에 참여를 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오가다 우연히 앨범을 만들자고 이야기가 나와 함께 음악을 만들게 되니 그게 Yellow Magic Orchestra였다.

사실 일본에서는 큰 반향이 없었으나, 레코드 회사에서 이들의 음악을 본격적으로 밀어주었으며 미국을 비롯한 영국 등 서구 각지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당시로써는 매우 진보적인 전자음악이었고, 음악 전반에 깔린 팝과 락큰롤의 느낌, 동양인이 하는 최신 현대 음악에 대한 신비감이 섞여있었기 때문인지 서구에서 대히트를 치게 된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소식을 계속해서 자국민에게 전했고, 몇 달 후 일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들은 국민 아티스트가 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 때 느닷없이 국민적 인기를 얻게 된 탓에 인기에 대해 아무 면역(?)이 없던 YMO 멤버들은 집 밖에만 나가도 알아보는 사람들 때문에 엄청 시달렸고, 특히 사카모토 류이치는 대인기피증까지 앓았었다고 한다.[] 호소노나 타카하시야 YMO 이전에도 언론에 자주 노출되는 편이였으니 그렇다쳐도 Technopolis를 작곡하며 YMO 데뷔를 성사하였던 사카모토는 YMO로 갑자기 유명해졌으니…

당시 가장 큰 히트를 친 곡은 단연 Behind the Mask와 Rydeen[], Tong Poo. Behind the Mask는 마이클 잭슨이 가사를 덧붙여서 앨범 (시기 상으로 하필이면 세기의 앨범인 Thriller였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에 리메이크되어서 들어가기로 되어 있었다고 하나 모종의 이유로 빠졌고[] 이후 에릭 클랩튼이 락버전으로 리메이크한 것이 널리 알려졌다. 마이클 잭슨 사망 후 유작으로 발매된 앨범에 댄스풍으로 재차 어레인지된 버전이 들어갔다.[] 전자음악과 마찬가지 당시 막 인기를 끌기 시작하던 전자게임을 뮤직비디오로 활용한 Computer Game도 유명하다.

YMO 막바지에는 J-pop 분위기의 가벼운 곡들을 많이 냈으며 보컬로도 활동하여 당시 일본에서 요즘 가장 귀여운 아저씨들로 불렸다고 한다. 다양한 리메이크가 된 君に、胸キュン의 오리지널 뮤직비디오를 보면 상당히 맛간 느낌으로 역시 천재는 범상치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물론 노래 자체가 흥겹고 귀엽기에 이후 여러 차례 리메이크 된다. 이 곡 외에도 YMO 뮤직비디오 대부분이 말 그대로 사이키델릭한 느낌을 준다.

YMO 활동으로 유명해지자 영화배우, 광고 모델로 활동영역을 넓혔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1983년 작품 <전장의 크리스마스(戦場のメリークリスマス/ Merry Christmas Mr. Lawrence)>에서 주연과 OST를 맡았다. 영국의 뮤지션 데이비드 보위와 공동으로 주연한 이 영화에서 그는 일본군 장교로 나오는데, 데이비드 보위와의 격렬한 키스신(!)도 등장한다. 이 영화의 주 테마곡인 Merry Christmas Mr. Lawrence는 영화보다 유명해져서 사카모토나 영화를 몰라도 이 노래만큼은 모두가 알 정도다.[] 한국의 경우에는 영화 내용이 문제[14]가 되어서 정발되지 않았기에 영화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음악 자체는 여러차례 대중매체에서 재생되었기 때문에 전혀 모르고 있다가 우연히 듣게 되면 '어 그거!'할만큼 은근 인지도가 있는 명곡이다.

화룡점정으로, <마지막 황제>의 OST를 통해 오스카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며 일본을 대표하는 아티스트가 되었다. <마지막 황제>에서도 직접 극중 인물을 연기했다.[] 배역은 푸이와 만주국을 배후 조종한 아마카스 마사히코 예비역 일본 육군 대위로 분했다.[] 테마곡 Last Emperor와, Rain이 유명하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테마곡을 맡기도 했다. 말 그대로 월드 클래스 뮤지션. 근데 의외로 게임 음악에 여러차례 참여 했는데, 89년도 PC엔진판 천외마경을 비롯한 여러 게임 음악을 맡았고, 드림캐스트를 처음 구동하면 골뱅이 로고와 함께 흘러나오는 오프닝 콘솔 뮤직도 그의 작품이다. 'L.O.L.: Lack of Love'에서는 OST와 함께 시나리오 라이터도 맡았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에 참여한 일은 거의 없으나, 단 하나 왕립우주군에서만 참여해 음악을 맡았다.[] 위에서 설명한 YMO 시절 '君に、胸キュン'의 수많은 리메이크 곡 중 하나는 마리아 홀릭 1기 엔딩에도 쓰였고, 이로 인해 오덕계에서도 YMO가 주목을 받게 된다. 이외에도 그나 YMO의 곡들이 리메이크된 경우는 많다.

2013년 5월에는 도쿄 필하모닉 교향악단과 함께 16년 만에 오케스트라 협업 공연을 선보였다. 약 1년 뒤인 2014년 4월 역시 Playing the Orchestra 2014를 성황리에 마쳤지만, 같은 해 7월 10일에 기자회견을 통해 인두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며 당분간 음악활동을 중지할 것을 밝혔다.]

2015년 암 투병 이후 첫 복귀작을 발표했다. 야마다 요지 감독의 영화 '어머니와 살면'의 OST라고 한다.

2015년 8월 30일 일본 국회 앞에서 아베 신조 정부가 추진 중인 안보법안 반대 시위에 참가하며 오랜만에 다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연설을 통해 시위에 나선 사람들을 격려하고, 헌법과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한 아주 중요한 시기에 함께 행동하겠다고 했다. # 위안부 관련해서도 사과해야 한다는 입장을 지지하며, 이를 보고 극우단체에서는 재일이라고 비하하기도 한다.

일본 지지통신 11일 보도에 따르면 사카모토 류이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The Revenant, 2015)'에서 음악을 담당해 골든글로브상 최우수작곡상 후보에 올랐으며 독일의 음악가 알바 노토와 수상을 놓고 경쟁하게 된다고 한다. 알바 노토와 사카모토 류이치는 이전부터 공동으로 앰비언트 뮤직을 작업하며 앨범도 여러 장을 발표할 만큼 음악적 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2021년 1월 21일 본인의 웹페이지를 통해 직장암 투병 사실을 밝혔다. 두 번째 암투병이며 성공적으로 수술은 마쳤으나 앞으로 활동으로 인한 장거리 여행은 어려울 것이라 언급하였다. #

2022년 6월 7일, 문예지 ‘신초’에 자신이 시한부 상태임을 밝혔다. 문예지에 류이치는 직장과 간 두 곳, 림프로 전이된 종양, 대장 30cm를 절제했다고 밝혔다. 암 판정 후, 치료하지 않으면 남은 시간이 6개월이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하며, 수술은 예정시간 8시간을 넘은 20시간에 달했다고 한다. 류이치는 “수술이 아닌 투약 방식으로 통원 치료를 하며 음악 활동을 이어갈 것”이라며 “남은 시간 속에서 음악을 자유롭게 하며 내 인생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을 갖겠다”고 밝혔다

2022년 12월 11일-12일에 일본의 웹사이트 MUSIC/SLASH를 통해 오랜만에 온라인 피아노 솔로 콘서트를 갖는다. 제목은 <Ryuichi Sakamoto: Playing the Piano 2022>. 보통은 실시간 라이브 공연을 있는 그대로 방송했지만, 최근 건강 상태가 악화되면서, 지난 9월 몇차레에 걸쳐 녹화를 마무리했다. 이것은 그 영상의 편집본이며, 이를 위해 뉴욕에서 영화 전문 스탭이 소집되었다. 12월의 인터넷 송출 이후 극장판으로 재편집되어 전세계에 필름 마켓에도 오를 계획이다.

이번 12월 11일에 MUSIC/SLASH를 통해 전달되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온라인 피아노 솔로 콘서트 <Ryuichi Sakamoto: Playing the Piano 2022>는 사실상 사카모토 류이치의 대외적인 마지막 연주 모습이 될것이다. 보도자료를 통해 본인이 직접 "이번이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코멘트를 한것이 보도자료에서는 꽤 가볍게 다뤄졌고, 이를 기사화 한 언론사들 역시 저마다 그의 코멘트를 각자 다른 무게로 해석하고 받아 적었는데, 현지 스탭들이 전해온 이야기에 따르면,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거나, 멘탈 컨디션 부분에서는 괜찮아 보이지만, 전과 다르게 너무나 수척해진 모습에 놀랐고, 그만큼 체력이 약해진 것이 눈에 띄게 보여서 걱정을 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일본의 뉴스등을 통해 전해져왔다.

2022년 10월까지도 새로운 작품을 출시하긴 하지만, 대부분 2, 3년 전에 이미 제안 받았던 것들의 마감분이며, 그외 과거 작품들의 리마스터링 재발매, 아울러 그동안의 활동 전체를 회고하는 회고집 출간을 예정하는 등 살아 있을때 신경 써서 챙겨 볼수 있는건 다 마무리 짓고 가겠다는 의지가 여러곳에서 엿보인다. 이런 경향은 과거 한국에서 사카모토 측과 업무를 경험해본 회사들의 이야기에서도 예를 들수 있다. 사카모토 측은 일본에서 발매된 자신의 음반, 책이 한국에서 라이센스화 되는 것을 비롯하여, 한국에서만 특별히 발간 되는 책이나 기타 상품들이 출시하는 경우 본인들의 기준에 만족할때까지 하나 하나 꼼꼼히 시간을 들여서 확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이것은 한국외 지역에서 발매될 경우에도 마찬가지.) 예를들어 오랜 시간동안 재활용 종이를 사용해서 상품을 제작해왔기 때문에 환경 호르몬이 검출되지 않는 선을 지킨 용지를 사용해서 제작을 했는지, 콩기름 잉크를 사용해서 인쇄를 했는지 확인을 한다든지. 또 일본어를 한국어로 제대로 번역을 했는지 확인도 하기 때문에, 일본에서 한국어를 능숙하게 하는 전문가를 불러서 검수를 진행한다고. 그래서 다른 해외 뮤지션들보다 국내 발매가 좀 더 늦어지는 일이 많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도 그는 생을 마치기 전까지 충분히 자신의 모든 것을 마감해두고 가겠다는 생각으로 바쁜 날을 보내고 있었다.

사카모토 류이치 음악 스타일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클로드 드뷔시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동시에 많은 공부를 했다고 밝혔다. 자서전에서는 한때는 진지하게 자신이 드뷔시의 환생이라고 믿었을 정도였다.[] 실제로 그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바흐의 곡으로 피아노 연습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그의 기악곡 여러 곳에 바흐와 드뷔시의 음악적 구조가 발견된다.

이 외에도 고전음악을 바탕으로 한 음악학도답게 많은 작곡가들의 영향을 받았다. 동시에 그는 다양한 나라들의 민속음악에도 관심이 많고 자신의 음악에 접목하기를 좋아하는데, 이는 마지막 황제의 사운드트랙 제작 당시 의뢰를 받고 중국으로 날아가기 전 중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의 OST인 만큼 구할 수 있는 중국 음악의 음반을 모조리 구해서 공부하고 갔다고 자서전에서도 밝힌 바 있다. 한국의 민속음악에도 관심이 많아 아주 오랫동안 교류하는 국악인들이 많이 있다.

재즈, 탱고, 보사노바, 영화음악을 비롯해 일렉트로니카와 월드뮤직[] , 뉴에이지, 힙합까지 아우르는 음악적 활동을 펼치고 있다.

싫어하는 음악으론 헤비메탈, 비주얼계를 꼽았다. 헤비메탈에서 더 마니악한 데스메탈은 들어보고 싶지도 않다고 하며 비주얼계는 촌스럽다는 것이 이유. 젊은 시절에는 컨트리 뮤직, 하와이안 음악을 싫어했는데 나이를 먹어가고 하와이를 직접 방문해보면서 좋아졌다고 한다.

영화음악에서 대표곡이 많은데, 영화 'The Sheltering Sky'의 동명 테마곡 The Sheltering Sky, 영화 '철도원'의 테마곡 Popoya, 영화 '바벨' 중에 나오는 Bibo No Aozora[] 등이 유명하다.

이외에도 많은 YMO 곡들의 실질적인 작곡가여서, 대표곡들은 YMO 시절부터 엄청나게 많다. YMO 시절 곡들을 피아노로 편곡해서 연주한 곡들의 느낌도 각별한데, 각각의 원곡과 피아노 편곡 중 하나씩만 알고 있기에는 대단히 아쉬울 것이다. 인기있는 필수적인 몇 곡만 들어보고 싶다면 Self-Portrait(페이지 상단의 곡), Technopolis, Tong Poo, Energy Flow, Tibetan Dance, Merry Christmas Mr. Lawrence 등. 아마도 그의 곡 중에 제목을 몰라도 어느 한 곡 정도는 들어봤다 싶을 것이다. 은근히 한국의 광고 음악으로도 사용되기 때문에 아는 곡도 있을 것이다.

그가 가장 관심 있어했고 꾸준하게 창작활동을 벌인 쪽은 전자음악, 환경음악 쪽이다. Async와 영화음악 중에서 베스트를 추려 3인조 실내악 편성으로 편곡한 1996이 있다. 솔로 디스코그래피 중에서도 단연 최고로 꼽히는 경이로우면서 아름다운 앙상블을 느낄 수 있다. 이외에 솔로 연주는 BTTB나 Playing The piano가 유명하다.

사카모토 류이치 사망

2023년 4월 2일, 일본의 신문사 스포니치 아넥스는 사카모토 류이치가 지난 3월 28일 도내 병원에서 향년 71세의 일기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결국 본인의 인터뷰대로, 지난해 12월 11일 열린 「Ryuichi Sakamoto:Playing the Piano 2022」 피아노 솔로 콘서트가 마지막 공연이 됐다. 암투병 사카모토 류이치, "마지막 콘서트 될지도"

솔로 정규 앨범은 1월에 발매한 12가 마지막이 되었으며,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2023) 사운드트랙이 공개를 앞두고 있는 상태다.

2023년 3월 29일 교도통신 보도에 의하면 「음악 제작도 어려울 정도로 기력·체력 모두 감쇠하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편지를 보내는 것 이상의 발신이나 행동은 어렵다고 합니다.」라고 전했는데, 이 기사가 나올 시점에서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사카모토 류이치 유희열 관련

2022년 6월에 불거진 유희열 <생활음악>의 수록곡 <아주 사적인 밤>과 사카모토 류이치의 <Aqua>가 표절 시비가 붙었고, 이와 관련해서 사카모토 류이치 측이 유희열측에게 전달한 메세지가 6월 20일 잇뮤직크리에이티브가 운영하는 류이치사카모토소셜프로젝트코리아의 SNS를 통해 공개되었다. 링크# 번역의 차이를 고려해서 영어 원문과 한국어 번역본 두가지를 함께 올렸으며, 잇뮤직크리에이티브는 자체 코멘트를 통해 "사카모토 류이치 측에서는 더 이상 이 이슈가 지속 확산되기를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티스트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주셨으면 합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사카모토 류이치의 입장이 공개됐음에도, 유희열의 표절 논란은 점점 커져만 갔고, 앞서 공개된 사카모토 류이치의 입장문은 잊혀져갔다. 오히려 해당 입장문에 대해 일부 누리꾼들은 '사카모토가 암에 걸려서 제대로 된 판단을 못하고 있다.', '아프니까 봐준거다.', '사카모토는 용서해도 나는 용서못한다' 면서, 원작자의 의견보다는 대중의 감정이 우선시 되는 피드백이 넘치기에 이르렀고, 이에 잇뮤직크리에이티브는 블로그 포스트로 유희열 표절 논란 당사자 중 일부를 직접 저격하기에 이른다.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당시에 논란의 맥락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를 저격하는 것인지 명확히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최초 '제보자 A'씨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공식 소속사 Kab Inc.에 문의 메일을 보냈고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잇뮤직크리에이티브는 사카모토 류이치 측의 공식 대리인이 아니며, 앞서 공개한 사카모토 류이치의 입장문은 사실 사카모토 류이치의 공식 입장문이 아닌 유희열에게 개인적으로 보낸 메세지였음을 확인했다고 자신이 받은 회신 메일 전문을 공개하며 이와 같이 주장 했다. 링크 이 글에는 사전에 동의 없이 사카모토 류이치의 메세지를 공개한 것을 두고 안테나와 잇뮤직크리에이티브 양측 모두 강한 항의와 질책을 받았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으며, 잇뮤직크리에이티브가 사카모토 류이치의 메세지를 공개할 것을 안테나측에 적극적으로 설득하였고, 동시에 이에 대한 책임 역시 전적으로 잇뮤직크리에이티브가 지겠다고는 하는 의혹까지 담겨 있었다.

이에 대해서 잇뮤직크리에이티브는 많은 비난을 받았다. 특히 사카모토 류이치의 이름을 걸고 활동하고 있는 채널을 운영하는 만큼, 경솔하게 행동한 점에 대해 사카모토 류이치의 오랜 팬들의 지적이 빗발쳤다. 아울러 운영진 일부가 유희열의 오랜 팬이었으며, 유희열 팬카페에 긍정적인 관심을 유도하는 글을 작성한 것이 발견되었다는 의혹이 제기# # 되면서, 이에 대한 비판 역시 잇따랐다.


이하 *이 붙은 부분은 현재로선 근거를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다. 애초에 잇뮤직 크리에이티브는 "아쿠아"와 "아주 사적인 밤"을 놓고 비음악인, 즉 자원봉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음원 전문가인척 음원분석 결과 같지 않다고 한다던가, 유희열의 팬카페에 자신이 여론을 바꾸겠다고 하는 등의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후의 내용에는 관련 기사나 내용을 찾아보기 힘든 점으로, 잇뮤직측 개입이나 은폐가 의심되며, 추가수정에 경계를 하길 바란다.


그런데 얼마 후 또 반전이 일어났다. 제보자 A씨가 주장한 내용이 대부분 사실이 아님이 밝혀진 것이다. 보다 자세히 말하면, 제보자 A씨가 문의 메일을 보낸 곳은 Kab Inc.의 미국 오피스로 답변자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영화 음악 업무를 주로 담당하는 스탭이었으며, 해당 사건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모르는 담당자였다.

잇뮤직크리에이티브는 오랜시간동안 사카모토 류이치와 사카모토 류이치의 아내인 Norika Sky Sora (그는 Kab Inc.의 대표이자 사카모토 류이치의 매니저)와 직접 소통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번 상황은 '안테나'(유희열), '잇뮤직크리에이티브'(관계자1인), 그리고 'Kab Inc'.의 'Norika Sky Sora' 이렇게 삼자간의 커뮤니케이션 하에 이루어진 것으로, 그외 주변인들은 이번 일에 대한 구체적인 전후 사정과 분위기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지 못했다고 한다.


추가적으로 제보자 A 씨가 처음부터 대중에 공개 했던 사카모토 류이치의 소속사로 받은 답장 전문 역시 사전에 동의를 구하지 않고 제보자 A씨의 임의대로 공개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사카모토 류이치의 소속사 Kab Inc.는 제보자 A씨에게 경고를 조치 했고, 별도의 법적 조치는 하지 않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더 이상 시끄러워지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제보자 A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Kab Inc.측에 잇뮤직크리에이티브측이 계속해서 류이치사카모토소셜프로젝트코리아를 운영 해주는 것에는 자신도 이의는 없다고 밝혔다고 한다. 아울러 그가 Kab Inc. 측에 확인 문의를 했던 것은 잇뮤직크리에이티브가 공식 대리인처럼 보여지는 것이 의심스러워서 그랬다고 하는데, 실상 잇뮤직크리에이티브는 공식적으로 '대리인', '대변인'을 자처한적이 없었다. 누리꾼들이 그저 보고싶은대로 봤을 뿐이었다. (실제로 그들이 SNS에 피드를 올리면 '사카모토 류이치 소속사의 반응' 이라는 식으로 바이럴 계정들이 무단으로 캡처하여 퍼가기 일쑤였다.)

여기서 제보자 A씨는 그저 단순한 문의 사항으로 받아낸 답장을 근거로 이들을 안테나와 한패거리, 또는 사칭하는 사기꾼으로 몰아 갔고, 이로 인해 잇뮤직크리에티브측도 많은 비난에 시달렸다. 앞서 잇뮤직크리에이티브가 여론 몰이를 유도했다는 주장과 비교하면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든 그가 훨씬 더 유난히도 열심히 했고, 결과적으로도 그가 성공한셈이었다. (하지만 잇뮤직크리에이티브는 별다른 법적 조치를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여기서 와전된 내용이 '허락 없이 메세지를 공개한 것에 대해 사카모토 류이치가 크게 분노했다'는 이야기인데, 이것은 근거 없는 내용이다. 실제 제보자 A씨가 받은 답장 그 어디에도 사카모토 류이치가 화를 냈다는 언급은 없었다.

잇뮤직크레이티브 측은 측근을 통해 입장문 공개 직후 진행된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만 두고 봤을때 "정말 화가 많이 났다면 처음부터 한겨레 인터뷰 제안을 허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인터뷰를 진행한 한겨레 측에서도 인터뷰는 매우 호의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되었으며, 앞서 잇뮤직크리에이티브가 공개한 입장문에 대해서도 사카모토 류이치가 직접 상세하고 친절하게 설명 해준 것으로 이야기했다.

바로 잡으면 사카모토 류이치측이 안테나와 잇뮤직크리에이티브에 동시에 항의를 한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랜시간 신뢰 관계를 쌓아온 잇뮤직크리에이티브에게 Kab Inc.측이 전후 사정을 문의한 것이 정확한 팩트였다. 잇뮤직크리에이티브는 항의를 받은 적이 없었다.

이와 관련한 잇뮤직크리에이티브의 상황을 접한 모 연예 매체 기자는 '억울할 것 같다'며 반박 기사를 제안했지만, 잇뮤직크리에이티브측은 자신들의 다시 이번 일을 다시 언급하면, 유희열은 물론 사카모토 류이치의 이름을 다시 언급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또 다시 '시끄러워질 것이기 때문에' 힘들지만 최대한 말을 아끼는 중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유희열 표절 이슈가 국내에서 크게 화제가 되면서, 일본에도 보도가 크게 났다. 그래서 이후로는 굉장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2022년 7월 31일 잇뮤직크리에이티브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카모토 류이치의 공식 소속사 Kab Inc.에서 자신들에게 본래 담당하던 업무를 앞으로도 맡아줄 것을 당부했다고 밝혔다. (Kab Inc.의 대표 Norika Sora씨가 직접 요청했으며, 이는 사카모토 류이치 본인도 승인 한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이 사건은 Kab Inc.의 미국 오피스가 사카모토 류이치 부부와 잇뮤직크리에이티브 담당자간의 특수한 관계를 인지하지 못한채 벌어진 해프닝이었고, 유희열이 표절로 한창 논란이 되던 와중에 잘못된 사실이 퍼져나가며 잇뮤직크리에이티브는 심각한 비난을 감당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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