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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나이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4. 1. 12.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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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유일의 전제군주제 국가로 아직까지 술탄이 모든 실권을 쥐고 있으며 이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비슷하다. 헌법과 정부가 없는 율법 체제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달리 명목상 헌법과 정부가 있기는 하지만 왕가가 겸임하고 있어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교는 이슬람교, 군주의 칭호는 술탄이다. 수도는 반다르스리브가완(Bandar Seri Begawan).

인간개발지수가 동남아시아에서 싱가포르에 이어 두 번째로 높으며, 국제통화기금이 선정한 구매력 평가 기준 1인당 GDP가 세계에서 네 번째로 높은 국가이다. 산유국이라 국가에 돈이 매우 많은 덕인데 이 돈으로 스웨덴 등 잘 정비된 복지 제도로 유명한 몇몇 국가와 맞먹는 혹은 그 이상의 복지를 제공한다.

앞서 언급한 인간개발지수가 동남아 2위로 높다고는 하지만, 1위이자 선진국인 싱가포르와의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이며 무엇보다 부패문제가 심해서 선진국에는 아직까지 진입하지 못하고 선진 개발도상국에 들어가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경제력이 있음에도 나라가 폐쇄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불법이민은 드물지만 그만큼 외국인이 들어가기에도 배타적이라 힘들다.

ASEAN, 영연방, APEC 등에 속해 있다.

보르네오 섬 북단에 자리잡고 있으며, 말레이시아와 국경을 접한다. 국토면적은 5,770㎢. 경기도의 면적이 약 1만㎢인 것을 생각하면 엄청 작은 나라인 셈. 인구 역시 40만 명이 조금 넘는 작은 나라이지만, 트리니다드 토바고나 쿠릴 열도 분쟁 지역인 남쿠릴열도의 크기와 거의 맞먹는 수치에 해당되기도 한다. 이러한 브루나이의 인구는 대한민국의 서울특별시 성북구와 비슷한 수준이다.

무슬림들만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나라로 정확히는 무슬림 말레이인만 브루나이 국적자이고 중국계 브루나이인, 즉 화교나 한국 교민, 약간의 영국인 이주민들은 전부 비자를 받아 거주하는 외국인 신세다. 교민들이야 대한민국 국적이지만 문제는 붕 떠버린 중국인들이 문제다. 영국 해외여권으로 버티는 사람도 기성세대에 많고 젊은 세대는 말레이시아가 그나마 여권을 발행해줘서 말레이시아 국적을 받아 일단 무국적은 면했다.

현재 이러한 문제 때문에 중국계 브루나이 기독교인들은 싱가포르나 홍콩, 호주, 뉴질랜드, 영국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늘고 있으며 특히 호주와 싱가포르로 많이들 건너가는 형편이다.

이런 골 때리는 차별 때문에 특히 영국인 등 외국인들과 화교들, 특히 핍박받는 중국계 기독교인들이 브루나이를 버리고 말레이 연방 가입과정에서 협력해서 형제국가가 된 싱가포르로 돈 싸들고 많이들 건너갔다.
화폐가 브루나이 달러인데 싱가포르 달러와 1:1 등가 협정을 맺었다. 때문에 그냥 싱가포르 달러를 들고 가서 시중에서 그냥 써도 무방하다. 굳이 브루나이 달러를 찾으러 다니거나 미국 달러로 이중환전할 필요가 없다. 이는 싱가포르와 브루나이의 외교관계가 형제국가 수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말레이 연방 가입 문제로 양측이 협력하기도 했으며 브루나이 왕가는 1965년 싱가포르 독립 후 빈곤하던 싱가포르에 대거 원조를 해주었다.

브루나이 국호

정식 국명은 브루나이 다루살람(Negara Brunei Darussalam, نڬارا بروني دارالسلام‎)이다. 공용어인 말레이어로 브루네이(Brunei)라고 하며 '브루나이'라는 이름은 영어식 발음을 들여온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브루나이(브루네이)라는 이름은 브루나이 술탄국의 건국자 무함마드 샤(Muhammad Shah)가 이 곳을 처음 찾을 때 Baru nah(아, 이 곳이다!)라고 외친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산스크리트어로 '뱃사람'을 의미하는 varuṇ (वरुण)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다루살람'(دار السلام‎ / Darussalam)은 아랍어로 dar(땅)와 salam(평화)의 합성어로 '평화로운 땅'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Negara는 말레이어로 '나라'라는 뜻이므로 정식 국명을 한국어로 직역하면 '평화로운 땅 브루네이국' 정도가 되며, 영어로도 Brunei Darussalam이 아니라 Nation of Brunei, the Abode of Peace 등 최대한 직역한 국호를 쓰기도 한다.

브루나이 역사

브루나이 지역에 실존 여부가 명확한 국가가 기록상 등장하는 것은 기원후 10세기 무렵으로, 중국의 《태평환우기》(太平環宇記, 10세기 송나라 지리서)에서 이 지역을 '발니'(渤泥)라고 언급했다. 그 이전에는 약 6세기에 '위자야푸라'(Vijayapura)라는 나라가 있었다고 하지만 실체가 불확실하다. 고고학적 조사에 따르면 보르네오 북부 사라왁강 삼각주는 비교적 비옥한 곳으로, 중국과 인도를 잇는 항로의 중간 지점에서 약 6세기부터 13세기까지 중계 무역으로 번성했다고 한다.

발니, 즉 브루나이는 14세기 마자파힛 제국에 속했다가 독립해 교역국으로 점차 발전했다. 14세기 후반 명나라 사신이 지역을 방문했고, 이에 따라 브루나이가 잠시 명나라와 직접 교류하기도 했다. 15세기 초 명나라의 환관 정화의 항해 시 왕이 2차례 당시 명나라의 수도 난징을 입조했다. 15세기 중반에 왕이 믈라카의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면서 브루나이에 이슬람교가 전파되었다. 1511년 포르투갈이 믈라카를 점령하면서 바닷길이 막힌 이슬람 상인들이 대거 브루나이로 이주하여 인도네시아 군도의 섬들과 말레이 반도, 마카오 등을 잇는 중계 무역 지대가 됐다.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 술탄 볼키아(Bolkiah, 재위 1485–1524)의 시대가 세력권 기준으로 브루나이의 전성기였다. 이때 북보르네오 해안 전역을 지배하던 브루나이는 공격적 팽창 정책으로 15세기 말 오늘날 필리핀 지역인 팔라완섬과 민도로섬을 점령하고, 보르네오 동부의 브라우와 쿠타이 일대와 루손섬의 마닐라 및 톤도 왕국 지역까지 영향권에 편입했다. 볼키아의 치세 후반에는 일시적으로 술루 제도와 보르네오 서부 일부 해안 지역까지 브루나이의 영향력이 미쳤으나, 보르네오 동부, 서부, 술루 제도는 볼키아 사후 빠르게 브루나이의 영향권에서 이탈하였다. 이때 브루나이의 세력이 보르네오 남부 해안 지대까지 미쳤다는 주장도 있는데, 물론 브루나이가 남부와 교역은 했겠지만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전반 보르네오 남부는 토착 세력과 자바 세력이 이미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던 상황이므로 정치적 영향력은 있었더라도 약했거나 일시적이었을 것이다

16세기 전반, 보르네오 남부의 신흥 세력 반자르 술탄국이 등장하여 보르네오 남부 해안에서 점차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하였다. 반자르 술탄국은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전반에 오늘날 인도네시아 남칼리만탄주를 중심으로 보르네오 남부, 동부, 남서부 해안 전역을 영향권에 편입하는 전성기를 맞았다. 자바의 마타람 술탄국도 17세기 전반 술탄 아궁의 시대에 전성기를 맞아 보르네오 남서부를 영향권에 편입하고 남보르네오에서 반자르 술탄국과 세력 경쟁을 벌였고, 17세기에 술라웨시 남부의 마카사르와 부기스 세력도 보르네오 동부에 개입하여 반자르 술탄국과 알력을 빚었다.

대항해시대로 인해 16세기에 스페인과 포르투갈 세력이 술라웨시 북부와 말루쿠 제도를 거점으로 보르네오에 진출하기도 했다. 1521년 페르디난드 마젤란의 첫 방문에서는 마젤란이 필리핀 제도에서 사망했으나, 1578년에 스페인군이 마닐라를 거쳐 보르네오 일부 지역을 한때 지배하였다. 이때 루손섬에서는 16세기 후반 스페인 세력이 진입하여 토착 세력들을 복속시켰다. 17세기 중반 들어 술탄이 포르투갈과 동맹해 스페인군을 쫓아냈지만 포르투갈 등 외세가 내정에 간섭했다.

17세기 초 시점에 브루나이의 영향력은 보르네오 북부를 제외하고 완전히 소멸하기에 이르렀다. 17세기 이래로 브루나이의 영향권에 남은 것은 보르네오 북부뿐이었으며 인구도 급속히 줄어 1750년경 기준 약 40,000명에서 1830년 기준 약 10,000명이 되었다. 17세기 중반 술루 술탄국의 세력 확장으로 보르네오 북동부(오늘날의 말레이시아 사바주) 일부 지역을 브루나이가 술루 술탄국에 양도하는 일도 있었으며, 술루는 이 지역을 19세기 중반까지 지배하였다. 이후 브루나이는 내부 분열 등으로 국력이 쇠퇴해 갔고, 각 지방의 족장들이 술탄조차 무시하고 반란을 일삼았다. 특히 1839년 사라왁에서 이반족이 반란을 거세게 일으키면서 사바 주까지 파급되기도 했다. 이에 영국의 모험가 제임스 브룩(James Brooke)이 이반족을 신무기로 진압해 1841년 술탄으로부터 사라왁 왕국의 '라자'(Rajah)로 봉해졌다. 이후 그는 다약인을 사라왁 군대로 끌어들여 복무시키고 홍콩과 싱가포르의 영국 해군도 이용해 30년간 사라왁 지역의 영토를 점차 잠식해 갔다.

오늘날의 사바주에 해당하는 지역은 서구 열강의 관점에서도 식민지로서 영유하기에 매력이 큰 곳은 아니어서 1860년대부터 미국인 사업가와 오스트리아 사업가 등이 브루나이 술탄에게서 지역의 권리를 받아 경영하려고 했지만 15년 가까이 실패만 거듭하다가[9], 결국 영국인 사업가 앨프리드 덴트(Alfred Dent, 1844–1927)와 영국 외교관 러더퍼드 올콕(Rutherford Alcock, 1809–1897)이 북보르네오 칙허 회사(North Borneo Chartered Company)를 세우고 1880년대 초부터 본격적인 사바의 경영을 시작하였다. 북보르네오 칙허 회사 역시 사바주에서 브루나이의 세력권을 잠식하였다. 사라왁과 사바 지역은 1888년부터 공식적으로 대영제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한편 브루나이 술탄은 사라왁과 사바 양쪽에서 영토를 빼앗기는 와중에, 차라리 영토를 보전하려면 영국 산하로 들어가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하여 영국에 보호를 요청하였다. 이에 따라 1888년 9월 17일부터 브루나이 역시 대영제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그러나 브루나이의 기대도 무색하게 사라왁 왕국은 사라왁과 브루나이 양국이 영국의 보호령이 된 이후인 1890년에도 브루나이의 판다루안(Pandaruan) 지역을 합병해 버렸는데, 영국은 이에 개입하지 않았다. 1906년부터는 공식적으로 영국 통감(resident)이 브루나이에 주재하기 시작하였다.

그 동안 별 볼 일 없던 브루나이는 1929년 석유가 발견되면서 세계로부터 주목을 받았고, 이로써 영국이 전 브루나이 지역을 적극 탐사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1941년 태평양 전쟁 때 일본 제국이 지배했으나 1945년 8월 15일 연합군에 항복 후 철수하면서 영국이 돌아와 보호령으로 다시 선포했고, 네팔에서 구르카족 용병을 고용해 반발에 대비했다. 그러나 점차 아시아 국가들의 독립 러시가 시작되면서 영국은 점점 식민제국주의자로 낙인찍혀 이미지가 악화됐고, 결국 1959년에는 자치를 허용시켰다. 이후 헌법 및 의회를 마련할 준비를 취해 1962년에 역사상 유일한 총선거가 치러져 공화파 사회주의 정당 브루나이 인민당(PRB)[]이 55개 의석 중 54개석을 싹쓸이하는 승리를 거두었지만, 이것은 왕실의 분노를 샀다. PRB의 주요 의제 중 하나였던 북보르네오 연방 가입을 배제한 채 말레이 연방 합류를 추진하자, PRB가 반란을 일으켰다 영국의 개입으로 인해 해산당하고 수장은 망명하여 객지에서 죽었다.
그렇지만 정작 말레이시아 연방의 출범이 임박하자 왕실은 연방 참여를 거부하고 영국령으로 남아 있기를 고집하였는데, 말레이에 가입하면 석유 이권도 잃고 왕권은 허수아비가 될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이에 영국령으로 남아 있다가 1984년에 정식 독립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예전에 제임스 브룩에게 삥뜯긴 사라왁은 여전히 말레이시아령이다.

독립 이후에는 현재까지 전제군주제 국가이다. 술탄의 통치가 21세기인 지금도 가능한 비결은 막대한 석유자원이다. 영국의 식민통치에서는 가장 늦게 독립했다. 1959년 헌법을 제정해 1962년 초대국회(총 16석)를 구성하려고 지방의회 선거(총 55석, 여기서 초대국회를 선출할 예정이었다)를 실시했더니 사회주의 공화정을 추진하는 브루나이 인민당이 54석을 석권하는 기염을 토하자 사실상 투표 결과를 거부한 채 말레이시아 연방으로 편입하려 했다. 그러자 인민당이 반란을 일으켰고 영국의 힘을 빌어 진압한 뒤 일부러 독립을 늦춰가며 영국의 품 안에서 점진적으로 주권을 찾아 나갔다. 말레이 연방에 합류했다 쫓겨난 싱가포르와는 반대 사례. 그래서 최근까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늦게까지 식민지였던 나라였으나 2002년 동티모르가 독립하면서 동남아 최후기 독립국이라는 타이틀은 벗었다.

1984년 독립 이후 30대 술탄인 하사날 볼키아 무이자딘 와다울라(Hassanal Bolkiah Mu'izzadin Waddaulah)는 전제정을 펴면서 독재정치를 하고 있으며, 정당은 왕실을 지지하는 국민연합당 하나만 허용되며 언론이나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는 제한되고 있으며, 아무리 브루나이 투자기관 책임자 제프리 볼키야가 잘못된 투자로 국가 예산을 날린다 해도 국민들은 비판할 자유조차 못 쥐고 있다. 그래서 언론자유지수도 2021년 기준으로 144위를 기록하며 콜롬비아와 맞먹는다. 때문에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엄청난 오일 머니를 이용해 적극적인 복지, 취업 정책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세금이 없으며, 오히려 1달에 1번씩 전 국민에게 일정 액수의 금액이 지급된다. 수도에 있는 모스크의 크고 아름다운 야경이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또 남아있는 영토가 말레이시아 사라왁주의 림방을 두고 분리되어 있어서 말레이시아를 거치지 않고 직접 이동할 수 있게 템부롱 대교를 건설하였다.

2019년 4월 3일부터 브루나이는 샤리아법을 통과시키면서 비난을 받고 있고 거기에다 동성애자까지 처벌하고 투석형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비난을 받았다.# 그리고 샤리아법을 통과시키자 브루나이 정부가 소유하는 호텔사용을 보이콧하거나 하는 등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주변국들은 이에 대한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JP모건도 브루나이 왕실이 소유한 호텔을 직원이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국제사회의 비난이 커지자 브루나이 측은 샤리아법 시행을 유예하겠다고 밝혔다

브루나이 사회 종교

쉽게 표현하자면, 동남아시아판 사우디아라비아(혹은 이란)이자 동남아시아의 북한이자 에리트레아다.애초에 이 나라는 국왕 한 사람에 모든 권력이 집중되어있는 전제군주제 국가에, 브루나이 국민연합당만이 유일 합법정당인 독재국가다.

소국이다 보니 국제 사회에서 인지도는 부족하지만, 자유와 인권 탄압 측면에서 브루나이는 중동의 산유국 신정국가들 뺨칠 정도로 심각하다. 국왕이 2014년에 샤리아를 국법에 적용하겠다고 선언할 정도. 기사. 모든 비 이슬람 타 종교들의 선교 행위를 금지는 물론 심지어 사형까지 시키는 걸로 악명이 높다. 외국인 선교사는 무조건 추방한다. 여성들에게는 히잡 착용이 강요되며, 심지어 타 종교인들과 외국인에게도 이 법규가 적용한다.[] 언론은 무조건 검열과 통제를 받으며 이슬람과 왕실, 정부, 국가에 대한 비판은 상상할 수가 없다. 그래서 브루나이는 언론자유지수에서 항상 낙제를 한다.

특히 출판과 인터넷에 대한 검열도 마구잡이로 하며 집회의 자유도 없다. 거의 이란, 러시아, 중국 등 독재로 악명높은 국가들 수준이다.

또한 샤리아 국법은 왕족만은 무조건 예외라서 불공정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대다수 국민들은 그런대로 만족하며 살고 있는 듯 한데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한 폭넓은 복지로 틀어막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별의별 것들이 금지된다해도 형제국가나 마찬가지로 출발하고 가까운 싱가포르나 이웃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로 가서 즐기면 그만이기도 하다.

하지만 유가 하락 등의 영향으로 국민들에게 주는 유일한 당근인 오일머니에도 한계가 있어 내부 불만이나 각종 문제가 계속 커지고 있다.

게다가 생각있는 브루나이 국민들은 왕실의 독재와 종교를 이용한 억압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매우 크며 생각 있는 인재들도 억압적인 조국을 위해 일할 생각이 없어 많은 수가 국적을 포기하고 종교의 자유도 있고 억압이 심하지 않은 외국으로[] 이민으로 빠져나간다.

그래서 브루나이는 두뇌유출이 심한 국가이며, 이는 브루나이 내의 심한 골칫거리로 자리잡고 있다.

이미 교양만화가 이원복 교수도 2006년, 저서 가로세로 세계사 2권에서 이대로 브루나이의 안정과 평화가 지속될 지도, 국민들이 입과 귀가 틀어막힌 채 언제까지 인내심을 지닐 지에 대해 의구심을 표했다. 이들이 언젠가 언론, 출판, 집회/결사의 자유, 다당제 허용 등 민주주의적인 가치관을 점차 자각한다면 나라 자체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혼란을 겪을지도 모르면서 '민주주의는 아시아의 해묵은 숙제'라는 식으로 논리를 귀결시킨다.

여담으로 이란이나 아프가니스탄 급의 초강경 이슬람 국가이다 보니 기독교공포증이 만연하여 기독교를 탄압하는데다 크리스마스와의 전쟁을 선포하기도 한다. #

특히 중국인들의 교회는 특히 대놓고 박해해 예고도 없이 갑자기 문을 닫아버리기도 한다. 선교사는 포교하다 걸리면 태형당한 후 추방이 원칙이다.

불교나 도교, 힌두교 등도 대놓고 차별하지 않을 뿐 사원 증축 등을 금지하고 이 때문에 브루나이 불교도 사실상 명맥이 끊겼다. 일례로 절에 스님이 없다(...).

애초부터 타종교 성직자, 즉 기독교 목사/신부나 불교 승려, 유대교 랍비 등은 비자 발급도 안 해준다. 젊은 세대는 서구화와 죽어버린 전통 등으로 인해 반쯤 무종교화되어 부처님오신날이나 기타 소원하는 게 있거나 재미삼아 점 볼 때나 절에 갈 정도로 쇠퇴해 사실상 사라진 지 오래다. 태국과 같은 곳을 생각하면 안 되며, 실제로 브루나이는 종교의 자유가 없는 곳에 가깝기에 실제로 많은 불자들이 태국으로 이주해야 했다.

이 나라 화교들의 절반은 불교신자, 절반은 기독교인들이다. 그 중에서도 기독교인 화교들에게는 대놓고 실시하는 극도의 종교탄압 때문에 참다 못한 기독교인들이 이웃의 기독교인이 많은 나라인 싱가포르나 호주 등으로 대거 빠져나갔다. 심지어 성직자 양성에 필요한 신학교조차 금지한 통에 없어서 신부가 없어 카쿠레키리시탄 같이 되어가는 경향도 보인다. 개신교 역시 목회자가 없는 예배당이 많다. 애초 호주에서는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중국계 인도네시아인과 함께 중국계 브루나이인들이 교회를 만드는 중이며 싱가포르에서는 갈수록 브루나이 출신 중국계 기독교인들이 늘고 있다.

불교계 중국인들도 말만 불교지 요즘은 거의 사실상 무종교인에 불과하며, 이들은 종교색이 없어 그나마 브루나이 정부가 '덜' 차별하는 편이라는데, 그래봤자 국적도 안 주는 불쌍한 처지라는 점은 도긴개긴이고, 기독교인들이랑 피차일반으로 박해받는다. 그래서 불교인 화교들도 견디지 못하고 대거 태국으로 가버렸다.

이러한 탄압, 박해 때문에 브루나이의 기독교 비율은 굉장히 쪼그라들었다. 8%의 기독교인은 소수민족이 섞인 이웃 말레이시아와 달리 전원 중국계 브루나이인이며 타 민족은 기독교를 믿을 수 없게 법으로 막았다.

이 나라의 기독교공포증이 얼마나 심하냐면 중국계 교회의 경우 사전 예고도 없이 종교경찰[]들이 뜬금없이 처들어와 문을 닫아버리는 사례도 잦다. 이웃한 말레이계의 이슬람권 나라들인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와 비교해 볼 때 이 2개국은 일단 종교적으로 차별과 홀대는 하지만, 기독교 활동을 정부에서도 인정해주고 일부 이슬람 극단주의 폭동이나 난동, 범죄를 제외하면 신앙 생활도 그럭저럭 보장되는 편인데 비해, 브루나이는 막말로 모가지 날아가기 딱 좋은 심각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대략 오만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우디아라비아와 요르단의 차이다.

특히 기독교 선교는 엄금 대상으로, 성경을 들고 다니면 포교로 간주되어 종교 경찰에 그 자리서 잡혀가고 태형을 당하기도 한다.

동성애는 태형이나 사형이 가능하며, 사형도 약물주입 등의 현대식 사형이 아니라 투석형, 즉 돌을 던져 때려 죽이는 무지막지한 사형을 집행하겠다고 했다.[] 법령. 이는 자국민뿐 아니라 브루나이 영토 내 외국인[]에게도 적용시킨다 하니 주의해야 한다. 이 때문에 항공사들도 브루나이 영공 통과 시 알아서 주류를 제공하지 않는다.

중국계 브루나이 기독교인들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술을 파는 것도 나쁘게 보고, 중국계 기독교인 여성들이 레깅스나 핫팬츠, 미니스커트, 배꼽티, 민소매 등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는 것도 음란하다며 불경하게 생각한다.[] 반면 말레이인여성들은 100% 무슬림이고 이 브루나이는 이란이나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곳이라 히잡을 착용해야 한다.

이런 분위기만 보면 거의 사우디나 아프가니스탄처럼 여성들에게 부르카라도 강제할 듯 하지만,[] 습한 기후 때문에 다행히도 히잡만 강요하는 선에서 끝나고 부르카는 강요하지 않는다.

이런 가혹한 박해에도 중국계의 절반 이상이[24] 기독교인으로 남아 있으며, 자주 폐쇄되기도 하지만 중국인 교회도 남아있다.

한마디로 중국인은 브루나이에서는 거의 미운 오리 대접받는다. 그나마 불교가 종교이거나 무종교인 화교면 어찌 공존이 가능한 풍토인데, 기독교를 믿는 화교면 극단적인 박해와 차별을 받는 처지. 이러한 브루나이의 중국계 기독교인 탄압에 관한 뉴스가 심심하면 호주나 싱가포르에서 가톨릭 및 개신교 언론에 뜬다.

브루나이에 체류하는 약간의 교민들도 중국인과 똑같이 취급받아 국적 취득이 절대로 불가능하다. 이 나라의 지도부들에겐 한국인도 그냥 성가신 이교도이다. 한인 개신교 선교사들의 추방 사례도 잦다.

중국계의 50%를 차지하는 불교도, 20%를 차지하는 도교 신자들도 똑같은 처지이며, 기독교 중에서 가톨릭도 개신교 못지않게 차별당한다. 불교 사원도 허가 없이 증축이 불가능하고, 불교 포교도 기독교처럼 금지되어 있다.

브루나이는 이슬람 원리주의를 강화하면서 절도범의 손목을 자르거나 동성애자, 간통을 저지른 이에게 투석형까지 허용하는 샤리아법을 2019년 4월 3일부터 실시한다고 하자 인권침해 논란이 커지고 있으며, 앰네스티 측에서도 비판했다. #, # 거기다 브루나이에서 시행되는 샤리아법은 외국인 관광객(!)까지 적용되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 # 이 때문에 브루나이 정부에서 소유하는 호텔 불매 운동도 퍼지고 있다. # 결국 샤리아법이 비난 속에서 2019년 4월 3일부터 시행되었다. # 도이체방크는 브루나이의 동성애자 투석형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브루나이 투자공사가 소유한 호텔의 이용을 금지하기로 밝혔다. # 미국과 프랑스도 비난하며 폐기를 주장했고, 캐나다도 반발하면서 여행 경보를 발령했다. # 하지만 국제 사회의 비난을 그렇게 많이 받는데도 브루나이는 오히려 처벌보다는 예방 목적이 크다며 항변했다. #

그러면서도 새로운 추기경 13명 가운데 브루나이 출신이 포함됐다. #

어쨌든 브루나이 기독교는 사실상 씨가 말랐다고 봐도 된다. 현재 내놓고 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불교, 도교를 믿는 중국계 브루나이인들 뿐이다. 중국계 브루나이 기독교인들은 목숨이 위험해서 기독교인임을 극구 숨기거나 종교의 자유가 있는 싱가포르로 돈 싸들고 떠나버린 지 오래다.

이슬람국가 대다수가 그렇듯이, 이스라엘 국적자는 브루나이에 입국이 거부되고있다.

브루나이 복지

사우디랑 여러모로 비슷한 것으로 평가되지만 복지 측면에서는 왕가만 부자고 국민들은 빈곤한 사우디아라비아에 비해 복지 수준 및 국민소득도 더 높다. 다만 이게 사우디 왕가에 비해 브루나이 왕가가 국민을 더 존중한다거나 해서 그런 건 절대 아니고 그저 워낙 인구가 적은 도시국가 규모의 나라이기 때문에 이런 복지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의료, 교육 등은 전부 무료이며 해외 유학을 희망한다면 나라에서 전액 지원해준다.

복지라긴 뭐하지만 산유국인 만큼 중동 산유국들처럼 기름값도 매우 싼 걸로 알려져 있다.

특히 국민들을 위해 최고급 주택단지를 계획했는데 워낙 전통식 수상가옥에서 살길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수상 주택에 그 최고급 설비를 도배해준 걸로도 유명하다.[]

매년 새해 초에는 술탄이 저소득가정 또는 결손가정 등을 왕궁으로 불러 70~100만 원의 용돈을 하사한다.
모든 국민에게 세뱃돈을 지급한다고 알려져있으나 실제로는 아니며, 보통 저소득가정 또는 결손가정에게 세뱃돈을 주며, 가끔 국비를 통해 유학을 간 인원에게 지급하는 경우도 존재한다.(예를 들어 2018년에 술탄이 호주를 방문하였을때 당시 호주 유학중이던 학생들에게 인당 2000$를 세뱃돈으로 준 경우가 있다.)

2014년 유가가 정점을 찍고 저유가로 인한 타격으로 긴축정책으로 이러한 복지가 점점 쪼그라들고 있었다. 그러나 위 링크도 옛 이야기인게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코로나 엔데믹 이후 항공수요 회복, 셰일가스의 실패 등으로 유가가 다시 치솟기 시작하면서 다시금 석유로 돈을 많이 벌어들이고 있으며 복지도 다시금 예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브루나이 왕가

국왕 일가가 엄청나게 사치스럽게 생활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실제 하사날 볼키아 국왕은 2011년 <포브스> 지 통계 기준으로 태국의 라마 9세에 이어 2등으로 부유한 통치자라고 인정받았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 못지않다.

일단 왕궁부터 사방팔방 대리석과 금으로 도배되어 있고, 생일잔치라도 하면 왕족들이 금 도배를 한 명품 스포츠카와 세단, 심지어는 수만 개의 작은 다이아몬드로 도배를 한 벤츠와 벤틀리[] 같은 고급차들을 줄줄이 끌고 온다.

그뿐만이 아니라, 1996년에 국왕의 50세 생일파티가 열렸을때 볼키아 국왕이 선보인 엄청난 돈지랄은 영국의 찰스 3세 등 경축 사절로 참석한 세계 각국의 왕족들도 놀라게 했을 정도. 여기서는 초대 가수로 마이클 잭슨의 콘서트를 전액 지원 + 개런티까지 포함해서 열었다. 무엇보다 입장료가 전액 무료였다. 이때문에 브루나이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싱가포르, 호주, 필리핀, 홍콩, 마카오, 베트남, 대만 등 인접국가들에서도 마이클 잭슨 공연을 보러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특히 미국과 거리가 터무니없이 멀어 미국 가기 힘든 호주인들이 마이클 잭슨을 직접 보려고 싱가포르를 통해 여기에 대거 여행와서 공연을 보고 갔다.

이 사건 때문에 마이클 잭슨은 거액을 받고 인권 탄압 국가의 광대 노릇을 했다고 한동안 구설수에 시달렸다. 게다가 공연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공항에 벤츠들이 쫘악 세워져 있기도 했다.

한마디로 브루나이 왕가는 그 막장 사우디아라비아 못지않은 돈지랄의 끝판왕이다.

참고로 술탄의 남동생인 제프리 볼키아가 사업 투자 실패로 엄청난 돈을 날려먹어서 국제적으로 비웃음을 사기도 했으나, 정작 브루나이 국민들은 이에 대한 문제제기조차 못하고 있다.

2013년엔 헐리우드 스타 린제이 로한이 브루나이 왕위 서열 3위인 하지 압둘 아짐 왕자의 신년 생일파티에 초대받아 런던의 최고급 호텔에서 데이트를 즐겼던 것으로 보도됐다. 문제는 로한의 초대 비용으로 쓴 돈이 한화로 약 1억원.

또 국왕은 세계에서 자동차를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으로 올라있다. 약 4,000대 이상 소유 중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를 관리하기 위한 정비사만 해도 100명이 넘게 상주 중이라고 한다. 차고에 가면 페라리 등 세계 유수의 명차를 종류별, 색상별로 볼 수 있다. 또 특수 주문 제작한 모델들도 많은 듯. 예를 들어 페라리 456 세단이라든지, 황금으로 도금한 롤스로이스 등등.

그외 알려진 다른 취미는 실물 항공기 수집으로 어찌보면 성공한 항덕인 셈이다.

실제 공항 크기의 규모를 자랑하는 수집장에 가면, 보잉 747부터 세스나 172까지 약 300여 종의 각종 실물 비행기가 있다. 더욱 놀라운 건, 이 수집품이 모두 실제 운항이 가능한 상태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왕이 조종사 면허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가끔씩 전용기를 직접 조종하기도 한다.

이러한 항공기 숫자를 이용해 아예 항공사를 차려 사업을 했으면 어떨까 생각이 들 법도 하지만 다양한 종류의 항공기를 모아놓으면 정비하는 게 번거롭기 때문에 별로 안 좋다. 항공기 종류가 번잡하면 부품 수급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당장 그 많은 항공기 부품을 각자 다 따로 구해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

원래는 바이크 수집이 취미였는데, 싫증이 나서 수집한 바이크를 모두 수장해버리고 새로 시작한 취미가 자동차 수집이다.

여담으로 볼키아 국왕은 과일 중에서 딸기를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온대기후에서만 나는 딸기를 수집하려 혈안이 되어 이 과정에서 당연히 돈이 또 들어갔으며 한국과 중국 등에서 딸기를 수입해오고 있다.

왕비가 한국인이라는 소문도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해외에서도 그런 정보는 찾을 수가 없다. 약 50년 전에 왕족 중 한 사람이 한국인과 결혼한 것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브루나이의 차량 번호판은 신분에 따라 자릿수가 다른데, 번호판 자릿수가 낮을수록 높은 신분인 것을 보여준다고 한다. 가장 높은 왕족은 한자릿수에서 두자릿수 번호판(1~29번까지이며, 1~19번 번호판은 왕족이면 사용가능하며, 20~29번 번호판은 왕의 직계가족만 사용이 가능하다.)을 장착하고, 일반적인 차량들을 보면 숫자가 두자리에서 대여섯자리 정도이다.
여기서 30번 부터의 숫자를 사용할수가 있으나 보통 2자리수의 번호판은 대략 1000$ 이상의 금액을 정부에 지불하면 번호판을 구입하여 사용할 수 있으며, 왕족이 아닌 사람인 경우 부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놀랍게도 브루나이 왕가 출신 축구선수가 있다. 그것도 하사날 볼키아 국왕의 동생인 제프리 볼키아의 아들, 즉 하사날 볼키아 국왕의 조카인 파이크 볼키아이다. 현재 태국 타이 리그 1의 촌부리 FC에서 뛰고 있으며, 브루나이 대표팀의 주장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심지어 돈이 많아 호날두보다 부자인 세계 최고 부자 축구 선수라는 기록을 세웠다

브루나이 스포츠

스포츠론 축구가 인기 많지만 동남아 최약체급이다. 오죽하면 1982년 일본은 브루나이와 가진 경기를 겨우 2:1로 이겼다고 감독이 경질당하는 일까지 있었다. 2000년대 와서도 마찬가지라서 2001년 아랍 에미리트에게 0:12로 대패당한 바 있다. 이 나라의 축구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브루나이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204개 국가가 참가한 2008 베이징 올림픽에 IOC 회원국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참가하지 못한 흑역사가 있다. 불참 이유는 마감 시한까지 선수등록을 하지 못해서 라고(...)

아시안 게임에서의 성적도 형편 없어서 역대 아시안 게임에서 획득한 메달 수가 달랑 동메달 4개 뿐이다. 이 중 3개는 가라테에서, 1개는 세팍타크로에서 획득했다. 4개나 획득했다는게 대단하다.

브루나이 언어

공용어는 말레이어인데 일반적인 말레이어가 아닌 브루나이식 말레이어이며 이 방언은 보르네오 말레이어가 기원이라 본토 말레이어나 인도네시아 말레이어인 바하사 인도네시아 등과는 크게 다르다.

표준 형태는 브루나이 표준 말레이어로 말레이시아의 표준 말레이어, 인도네시아의 말레이어인 인도네시아어와 거의 같아 원래는 말이 서로 통한다만 실제 브루나이인들은 표준 말레이어보다는 브루나이 말레이어를 말하는데 이쪽은 표준 말레이어와 차이가 커서 표준 말레이어 화자 및 인니어 화자와 소통하기 힘들다.

로마자를 쓰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와 달리 아직도 아랍 문자를 곳곳에서 사용한다. 그래서 간판만 보면 마치 아라비아 반도에 온 듯하다. 당장 모든 간판이 아랍 문자로 도배되어 있어서 외국인 입장에선 아찔함(...)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종교적인 이유로 아랍어도 주요 외국어로 지정되어 있다.

이외에도 영국의 지배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와 함께 영국식 영어도 사용되고 있고 표기도 영국식을 따르고 있다. 브루나이에서 쓰이는 브루나이 영어는 타 비 원어민 국가들이나 몇몇 특이한 방언을 자랑하는 원어민 국가들처럼[] 사투리 차이가 크게 있는 편이며 그래서 알아듣기가 더럽게 어렵다. 나무위키에서 자꾸 악평하는 싱글리시보다도 알아듣기 힘들다. 싱글리시는 그저 다양한 언어가 섞인 일종의 크레올일 뿐이며 실제 싱가포르 사람들이 외국인을 상대할 때는 쓰지도 않는데 비해 과하게 가혹한 비판을 받는 반면 브루나이식 영어는 크레올도 아닌데 문법 및 발음이 엉망이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중국인들은 중국어를 사용하고 있다. 정확히는 표준중국어를 공용하는데 푸젠성과 광둥성 출신들은 물론 하이난성 출신과 객가인, 치우차우 등 다양한 그룹이 공존하기 때문에 표준중국어 없인 중국계 브루나이인들은 서로 말이 안 통해버린다.

푸젠성과 대만에서 쓰이는 민남어와 객가어가 최대고 그 다음이 광동어와 조주어이다.

그리고 중국계 싱가포르인,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처럼 영어도 자주 섞어서 쓴다. 덜하지만 싱가포르에서 말하는 언어 혼합 현상인 로작(Rojak)이 브루나이에서도 나타나서 표준중국어 반, 자기네 방언 반, 영어 반, 말레이어 반으로 마구잡이로 말이 섞이는 대화가 상당히 많다.

브루나이 관광

이슬람 국가이기에 주류 판매가 전면 금지되어 있지만 본인이 직접 들고 가서 마시는 건 괜찮다. 국적기인 로열 브루나이 항공 또한 주류를 제공하지 않으며 대신 장거리 노선 탑승 시 일반석에도 아이스크림을 제공하는 특전이 있다. 특이하게 비행기 이륙 시 쿠란을 낭송하며 기내 개인 TV에 쿠란 앱을 깔아놓는다.[]실제로 그런 장면이 2015년 7월 17일 정글의 법칙 in 브루나이 편을 통해 전파를 탔다.

한국에서는 주로 로열 브루나이 항공을 타고 가기도 하거나 코타 키나발루와 함께 묶어 가는 경우도 있다. 코타 키나발루와 같이 해서 갈 경우 버스를 타거나 비행기를 탈 수 있다. 그러나 비용 문제로 버스를 타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 관광객이면 절대 종교색을 드러내면 안 된다. 묵주, 성경, 십자가상 등 기독교 물품은 당연히 안된다. 브루나이에 여행 오는 한국인 가톨릭 신자들만 해도 성물을 노출시키면 안 되기에 철저히 숨긴다.[] 불교도도 되도록 불경이나 염주 등을 안 들고 다니는 게 좋다. 포교 목적으로 오인되어 이민국에 억류 당하여 조사 받은 다음 추방 당할 수 있다. 그리고 무타와(종교경찰)들이 설치고 다니며 성경 및 불경, 그리고 묵주와 염주, 각종 성물 등은 그 자리서 뺏는다.

아예 가끔씩 입국 시 종교를 물으면 대답을 안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경우 무종교라고 생각하고 감시를 덜 한다.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의 경우 타 종교 포교 가능성 때문에 위험인물로 간주한다.

브루나이는 헌법상으론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이지만 포교는 금지되어 있으며 실질적으로 종교의 자유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국인이 브루나이를 방문할 경우 30일간은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고 여권 유효 일이 6개월 이상 되어야 한다. 하지만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와는 다르게 여행지로서 메리트는 별로 없는 곳이라 한국인 관광객은 많지 않다 (이 곳 공항에 도착하면 영어,중국어와 더불어 한국어가 기재되어 있는 안내표지판들을 쉽게 볼수있다) 그냥 코타키나발루나 발리, 수마트라, 욕야카르타 등을 가고 말지 여기는 절대로 안 간다.

애초 관광객 대부분이 유령국가, 사치국가라고 욕하니 말 다한 셈이며 실제로 브루나이를 찾는 사람들은 대개 사업 목적으로 찾는 중국계 싱가포르인 및 호주인들뿐이다.

환승객용 당일 관광 프로그램도 이용자가 없어서 잠정 중지 중이고 공항 면/보세구역에 면세쇼핑 상점이 전무한 수준이다. 그나마 터미널에는 상점이 좀 있는 편이다. 시내 번화가에 기념품 상점이 딱 1개 존재한다.

유류 산업 말고는 2차 산업 분야의 비중이 적어서 그런지 대기 질은 굉장히 깨끗하다. 헌데 이거는 다른 나라도 주변국이 다 똑같다. 이웃한 형제국가 싱가포르도 대기가 깨끗한데 동아시아 국가들을 괴롭히는 미세먼지 문제가 없어서이다.[] 좀 다른 점이 있다면 수마트라의 화전민들 때문에 산불이 나면 헤이즈라는 독가스 섞인 연무가 발생하는 싱가포르나 호주 북부와 달리 여기는 키나발루 산과 남중국해 등의 자연 장벽이 헤이즈도 막아준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왕실 전용 호텔도 일반에 공개하고[] 잘 보전된 자연환경을 이용해서 관광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듯 하다.

앞으로 국왕이 바뀌면 개혁으로 나라를 오픈하며 합리적으로 바꾸는 사우디아라비아처럼 이 나라도 합리적인 나라가 되어 제2의 두바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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