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가수 겸 배우. 애칭은 미포링
일본을 대표하는 아이돌 가수 출신의 중견 여배우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영화 러브레터의 여주인공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1980년대 후반에 아사카 유이, 쿠도 시즈카, 미나미노 요코 등과 함께 아이돌 사대천왕이라 불리며 큰 인기를 얻은 가수 출신이다. 아사카 유이와 미나미노 요코는 남성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 쿠도 시즈카는 여성팬들이 오히려 더 많았고, 나카야마 미호는 남녀 모두 골고루 좋아했다.
드라마 쪽의 기록들을 보면 최고 황금시간대인 게츠구 드라마 주연 7회로 여배우 중에서는 역대 최고.또한 시대적으로 보면 아이돌 시절인 10대(80년대), 여배우로서의 전성기였던 20대(90년대), 결혼 직전인 30대(2000년대) 모두 주연으로서 최소 한 번은 평균 2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한 유일한 여배우이다.
가수 쪽의 기록을 본다면 싱글과 정규 앨범을 포함한 총 음반 판매량은 1,700만장 이상. 역대 여성 솔로 가수 중 10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며, 1980년대에 데뷔한 여가수들 중에는 마츠다 세이코, 나카모리 아키나 다음이다. 그러나 가창력이 이들만큼 뛰어난 건 아니다.
중학교 1학년 때 하라주쿠에서 캐스팅되었는데 연예계의 데뷔 초창기에 성숙한 이미지였고,굉장히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산골 소녀 같은 얼굴이어서 캐스팅을 한 사람의 안목이 놀랍달까 모래 속의 원석을 발견해냈다고 할까(…) 아무튼 TDK 스플렌더 카셋 테입 광고를 시작으로, 하나토유메 등의 광고 모델을 하다가 1985년 드라마 '毎度おさわがせします(매번 소란스럽게 하겠습니다)'로 드라마 데뷔. 이후 같은 해 싱글 'C'로 가수 데뷔를 하며 내는 곡마다 히트를 하는 등 다년간 많은 인기를 얻었다.
데뷔 초기 드라마에서는 까무잡잡한 동남아 구릿빛 피부에다 말도 행동도 불량한 양키 일진 역할을 맡아서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다. 1986년 드라마 '生意気盛り(한창 건방질 때)'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1980년대 일본을 대표하는 톱 아이돌로 격상된다.
주제가 'wakuwakuさせて'도 대히트를 했으며, 모노마네(성대모사 및 흉내)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레퍼토리 곡이다.# 이후 꾸준히 연기와 가수 활동을 병행하면서도 톱 아이돌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10대 아이돌시절 1980년대 중반에 출연했던 드라마에서는 꽤 많은 노출신을 선보였다. '매번 시끄럽게 합니다.'가 대표작
1991년 가을에 방영한 드라마 "보고 싶을 때에 그대는 없어"에서 원거리 연애에 외로워하는 간호사 역할을 맡으며 여성 팬들의 지지도가 급상승해 90년대 초반 명실공히 가장 핫한 여성 연예인 중 하나로 우뚝섰다. 주제가인 '遠い街のどこかで…(멀리 떨어진 거리 어딘가에서...)'도 대히트하며 머라이어 캐리의 '크리스마스 캐롤'이 나오기 전까지 일본 여성가수 크리스마스 노래 no.1으로 손꼽혔었다. 남성가수 no.1송은 야마시타 타츠로의 '크리스마스 이브'
1992년엔 WANDS와 함께 부른 '世界中の誰よりきっと(세상 누구보다 분명)'이 180만장이란 대히트를 하며 오리콘 차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 기세는 쭉 이어져서 1994년엔 'ただ泣きたくなるの(다만 울고 싶어지는 걸)'가 100만장이 넘는 히트를 1995년에는 주연을 맡은 '러브레터'로 여주연상을 받는 등 1990년대 초중반까지 가수 활동과 배우 활동을 양립하며 두 분야에서 모두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1997년에는 모모이 카오리, 니시무라 토모미와 함께 닛산 세피로 A32 후기형 모델의 광고 모델로 활동하였다.
1999년에는 가수로서 마지막 앨범을 내고 배우로서의 활동에 전념하였다.
2002년, 소설가인 츠지 히토나리와 결혼했고, 2014년에 이혼했다. 이혼 후 둘 사이에서 난 아들 쥬토는 츠지 히토나리가 싱글대디로 키웠다. 결혼 생활 중에는 파리에 머물면서 오랜 기간 활동을 중단하다가, 2010년 초에 다시 컴백을 했다. 이재한 감독(대표작 : 내 머리속의 지우개)이 맡은 'サヨナライツカ(사요나라이츠카)'의 주연 배우를 맡았다. 2013년에는 이와이 슌지 제작, 기타가와 에리코 감독의 영화 新しい靴を買わなくちゃ(새 구두를 사야해)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2015년 겨울 무렵, 만나고 있던 시부야 케이이치와 결별 후 한동안 잠잠하다가, 2019년 2월에 또 불륜설에 휩싸였었다. 상대는 락밴드 모노럴의 보컬 아니스. 문제는 아니스가 가족이 있는 유부남이라는 것. 이에 본인은 사실과 다르다고 적극 부인하였다.
2017년, 고양이를 부탁해로 유명한 정재은 감독의 멜로 영화 '나비잠'에 김재욱과 같이 주연으로 출연했다. 같은 해 가을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해 문소리와 함께 오픈토크 시간을 가졌다.#
2019년 정말 오랜만에 최고 히트곡 <세상 누구보다 분명>을 라이브로 불렀다. 활동 당시에는 라이브가 불안정했는데 시간이 꽤 흐르면서 목소리는 많이 변했지만 꽤 안정적인 라이브를 선보였다.
2019년 12월 4일, 35년간의 흔적을 돌아보는 앨범인 “Neuf Neuf”를 발매했다.
나카야마 미호 오겐키데스카'를 넘어, 다채로운 매력의 소유자
'러브레터' 속 '오겐키데스카'라는 대사는 단순한 영화 속 한 장면을 넘어,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아있는 명대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카야마 미호는 '러브레터' 이외에도 다양한 작품을 통해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며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져왔습니다.
나카야마 미호 데뷔 시절부터 꾸준한 활동
1983년 모델로 데뷔한 이후, 드라마, 영화, CF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일본을 대표하는 여배우로 성장했습니다.
나카야마 미호 독립 영화에도 적극적으로 참여
상업 영화뿐만 아니라, 예술성 높은 독립 영화에도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끊임없는 도전을 이어갔습니다.
나카야마 미호 음악 활동
배우 활동뿐만 아니라, 싱어송라이터로서도 활동하며 앨범을 발매하고 콘서트를 개최하는 등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나카야마 미호 사망
2024년 12월 6일, 자택 욕실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망했다고 한다. 향년 54세.국내 기사
1월 1일 30주년 기념으로 한국에서 9번째 재개봉이 이루어질 예정이었던 데다, 15일에 콘서트도 예정이었던 만큼 한일 팬들도 충격을 받은 상황이다.
관계자가 그녀를 발견했을 당시 욕조 안에 쓰러진 상태로 발견됐다는 점으로 보아 많은 사람들이 사인을 심장마비로 추정하고 있다.
나카야마 미호 사망 원인
정확한 사망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히트 쇼크 등이 의심되고 있습니다.
나카야마 미호 팬들의 추모
그의 SNS에는 추모 메시지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러브레터'를 다시 보며 그를 추억하는 팬들이 많습니다.
마무리
나카야마 미호는 단순히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를 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과 영감을 준 배우였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받고 있으며, 그의 맑고 순수한 모습은 우리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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