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제17대 대통령.
2007년 한나라당 후보로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제치고 당선되었다.[13] 이는 김대중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 평화적 정권교체에 해당한다.
퇴임 후 5년이 지난 2018년 뇌물수수 및 횡령 등의 혐의로 전직 대통령들 중에서 4번째로 구속되었고, 2020년 10월 29일 혐의가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인정되어 징역 17년형을 받았다.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경북 포항에서 자랐다. 본래 어렸을 때 아호는 '일송'이었지만, 서울시장에 재직 중 청계천 복원 사업이 막바지에 접어들자 고려대학교 동문이던 역사학자 김정배 전 국사편찬위원장의 권유로 '청계(淸溪)'라고 바꿔 지었다고 한다. 이름 영문자 이니셜을 딴 약칭인 'MB'로 불리기도 한다
약력
1954 포항영흥국민학교 졸업
1957 포항중학교 졸업
1960 동지상업고등학교 졸업
1964 고려대학교 상과대학 학생회장[15]
1965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1965 현대건설 경리과 평사원
1976 한국포장건설 사장
1977 현대건설 대표이사 사장
1978 인천제철 대표이사 사장
1978 한국도시개발 대표이사 사장
1978 한국철강협회 부회장
1978 구국여성봉사단 운영위원[16]
1980 해외건설협회 업계대표 부회장
1980 한국원자력산업회의 업계대표 부회장
1981 대한알루미늄 사장
1981 대한수영연맹 회장[17]
1982 현대엔지니어링 사장
1982 대한올림픽위원회 상임위원
1982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겸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
1983 한국능률협회 부회장
1983 해외건설협회 이사
1983 동남아경제협력 건설분과 위원장
1984 아시아수영연맹 회장
1984 국제수영연맹 집행위원
1985 한라건설 대표이사 사장
1986 주한 부탄왕국 명예총영사
1987 현대엔지니어링 대표이사 회장
1988 현대건설 대표이사 회장
1988 한무쇼핑 대표이사 회장
1988 현대엔진공업 대표이사 회장
1989 현대종합목재 대표이사 회장
1989 한·소련 경제협회 부회장[18]
1990 현대자원개발 대표이사 회장
1990 한국항만협회 이사
1990 대명기업 대표이사[19]
1990 대명통상 대표이사(영일빌딩 소유.)
1991 한국사회발전연구소 이사장
1991 동북아민간경제협회 회장
1992 제14대 국회의원 (전국구)
1992 6.3동지회 회장[20]
1992 미국 아칸소주 명예대사
1993 한국청년실업인협회 회장
1993 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 운영이사회장
1993 제1차 세계한인상공인대회 조직위원장[21]
1993 부동산임대이명박 대표[22]
1995 삼청로터리클럽 회장
1995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
1995 소망교회 장로[23]
1995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민주자유당 경선 후보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서울 종로)
1996 한국국악협회 고문
1998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한나라당 경선 후보
1998 한국체육대학교 명예이학박사
1999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객원연구원[24]
1999 BBK투자자문 대표이사 회장[25]
2000 아시아·태평양 환경 NGO 한국본부 총재[26]
2000 캄보디아 훈 센 총리 경제고문
2000 LKe뱅크 대표이사 회장
2000 e뱅크증권중개 대표이사 회장[27]
2000 한국장애인정보화협의회 명예회장
2001 해외한인무역협회 고문[28]
2001 한나라당 국가혁신위원회 미래경쟁력분과위원장
2002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한나라당 후보
2002 제32대 서울특별시장 (민선 3기)
2002 제2대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의장
2004 서강대학교 명예경영학박사
2004 카자흐스탄 국립유라시아대학교 명예이학박사
2005 몽골 몽골국립대학교 명예경제학박사
2005 목포대학교 명예경제학박사
2006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회장 #
2007 한나라당 경제살리기특별위원회 위원장
2007 제17대 대통령 선거 한나라당 후보
2008 제17대 대한민국 대통령
2008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교 명예박사
2009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명예행정학박사
2011 프랑스 파리제7대학교 명예예술학·문학·철학·고전학박사
2011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대학교 명예환경학박사
2013 캄보디아 훈 센 총리 경제고문[
평가
의혹이 제기되고 특검까지 꾸려졌음에도 피고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었던 까닭은 결백을 주장하는 피고인을 믿고 피고인이 전문 경영인으로서 보여주었던 역량을 대통령으로서도 잘 발휘할 것이라고 기대한 다수의 국민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략)
의욕만 가득했던 사건의 실체적인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피고인이 재임시절 저질렀던 다른 범행들이 함께 드러남으로써 당시 피고인을 믿고 지지했던 국민들과 우리 사회 전반에 큰 실망과 불신을 안겨주었습니다.
-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7부 정계선 부장판사
전과 관련
인터넷 상에서는 이명박 전과 14범설이 퍼져 있었다. 이는 2007년 중순 박근혜와 이명박이 대통령 경선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던 당시 박근혜 측 한 의원의 입에서 처음 나온 발언으로 추정된다. 당시 명확히 알 수 있는 것은 6.3 항쟁 당시 유죄를 선고받고 투옥되었으며, 1996년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받은 바 있으나 이는 사면받았다는 정도였다. 그 밖에 CEO 시절 크고 작은 벌금형을 받았다는 얘기가 있으나 본인이 공개하지 않는 이상 정확한 사실 확인은 어려웠었다.[64] 첫 발언 이후 14범설을 공개적으로 제기한 사람은 당시 박근혜 캠프 대변인으로 있던 이혜훈으로 알려졌다.
도시전설급으로 취급되었던 소문이, 2018년 3월, 공식적으로 형사처분 받은 전과는 총 11회인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이 제출한 영장 청구서의 범죄 전력 칸에는 "지난 1996년 10월 같은 법원에서 선거법 위반과 범인도피죄로 400만원 벌금형을 받은 것을 비롯해 총 11회 형사처벌을 받았다"라고 적시되었다. 다만, 재판에서 형사처분 받은 횟수만 11회라는 것이지, 유죄를 받은 혐의는 최소 11개이거나 그보다 더 많을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서대문형무소에서 6개월을 복역한 것 외에도 현대건설 상무로 재직하던 1972년, 서울 용산동 매머드빌딩 부지에 중기공장차고 7동을 무허가로 건축해 건축법 위반 혐의로 공개 수배됐다가 구속되기도 해서 구치소 경험이 없던 것은 아니다.
어찌되었든 이명박이 대선 홍보물에 기재한 "전과경력 없음"은 명백한 거짓말이었던 것으로 10여 년만에 밝혀졌다. 당시에도 이미 공개되었던 학생시위 관련 전과 조차도 없음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해서 논란이었다. 당시 한나라당은 실무상 착오라며 "전과 1건"으로 수정한 바 있다.
어록
한 개인이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길을 국가가 막는다면, 국가는 그 개인에게 영원한 빚을 지는 겁니다. - 1965년 이낙선 청와대 민정비서관과의 대화 중
성공을 바라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성공을 준비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젊은 여러분 스스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준비하는 사람만이 미래를 열 수 있습니다. 이 시대가 바라는 것도 준비하고 도전하는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 1996년, 와이제이 학사고시 광고
부모가 뭐하는지 알릴 만하면 이 장사 하고 앉았겠어요, 제가? 그걸 왜 물어봐요, 어른이. "너 이름이 뭐지?" 이름 알아서 뭐해요. 돌아가면 잊어버릴 텐데, 이름 알아서 그 이름 가지고 자기가 메모했다가 이 다음에 뭐 도와줄 거에요? 아마 그 어른은 돌아가서 "내가 길바닥에 있는 한 놈을 내가 용기를 줬다"고 할는지 몰라요. 저는 그 어른이 지나고 난 다음에 수모까지 느껴요. 차라리 모른체 하고 지나가지. - 횐돌산 수양관 간증에서 고등학교 시절 장사 경험을 밝히며
저는 요즘 제가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인터넷 금융회사를 창립을 했습니다. 해서 금년 1월달에 BBK라는 투자자문회사를 설립을 하고, 이제 그 투자자문회사가 필요한 업무를 위해서 사이버 증권회사를 설립을 하기도 하고, 고생을 해서, 지금 정부에다가 제출해서 이제 며칠 전에 예비 허가 나왔습니다.- 2000년 광운대학교 강연 중에서[76]
기본적으로는 낙태에 대해 반대인데, 불가피한 경우가 있단 말이에요. 가령 아이가 세상에 불구로서 태어난다든지, 이런 불가피한 낙태는 용납이 될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낙태도 반대 입장이에요. 보수적인지는 모르겠지만…. - 2007년 5월 12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요즘 젊은 배우들이 많이 뜨잖아요. 그 영화는, 거기 중견배우들이 살짝 한물 좀 가신 분들이 모여가지고 한거야. 돈 적게 들이고 돈 번 거야. 그 배우들, 돈 적게 준거 같던데, 딱 보니까. 아주 머리를 썼더라고요. 내가 딱 보니까 그래. 아주 여럿이 있었는데, 한때 다 인기가 있던 사람들이었는데, 지금 아마 그 배우들은 요즘 젊은 배우 한 사람보다 적게 들었을거야. 아, 아이디어, 벤처 아이디어다, 이게. 그렇잖아요. 요즘 비싼 계약하고, 젊은 배우 막 스카웃해 가지고 말이지, 그렇게 만든 영화가 아니고, 시간이 남아가지고 말이지, "누가 안 불러 주나" 하고, 단역으로 나올 사람들 말이지, 단역으로 나올 사람들을, 역을 하나씩 다~ 줘 가지고, 활발하게 나오게 만드니까 얼마나 좋겠어. 아마 공짜로 나오라고 해도 다 나왔을거야. (돈을) 준다고 계약하고, 실제로는 안 줬는지…. - 2007년 5월 19일, 벤처기업인 간담회에서 백종진 벤처기업회장이 "이 전 시장께서 우리가 만든 '마파도2'를 함께 본 적이 있다"고 말하자, 이명박이 밝힌 '마파도2 감상 소감'
나라를 위해, 잘해서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을 생각은 하지 않고, 국민의 지지를 받는 후보를 어떻게라도 끌어내리기 위해 세상이 미쳐 날뛰고 있다. - 2007년 6월 13일, 경남 사천 당원간담회에서
지난 2002년 김대업 같은 인물을 만들고, 정부의 모든 기관이 힘을 모아 이회창 후보를 대통령이 되지 못하도록 했는데, 끝나고 나니 새빨간 거짓 음해임이 드러났다. 이번에도 그렇게 하려고 김대업을 여러 명 준비해서 하나씩 내놓고 있다. - 2007년 6월 13일, 경남 통영·고성 당원간담회에서
저는 군대를 무척 가고 싶었습니다. 갈 수만 있었더라면 어떻게해서든 아마 갔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대학 1학년 때였습니다. (기침) 입학을 하고 저는 이태원동 재래시장에서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환경 미화를 하면서 다녔고, 제 어머니는 그 시장에서 일을 하셨습니다. 2년간 그 일을 하니깐 힘이 들어서 좀 쉬고 싶고, 그 기간에 군대를 가고 싶었습니다. (기침) 군대를 가서 논산훈련소에 도착해서 신체검사를 받았습니다만은 뜻 밖에 제가 기관지확장증 등 몇 가지 요인으로 퇴출 당하게 생겼습니다. 제가 군의관에게 치료를 해주면 되지 않겠느냐고 군대에 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만은, 결국엔 논산훈련소에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기침) - 2007년 한나라당 예비후보 검증청문회에서 병역 면제 사유를 묻자
도곡동 땅, 하늘이 두 쪽 나도 제 땅은 아닙니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데, 그 이상 무슨 표현이 필요합니까. - 2007년 8월 16일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기자회견에서
뭐, 도곡동 땅이 어떻다고요? BBK가 어떻다요?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여러분. 저는 그런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누가 나에게 돌을 던질 수 있습니까? 여러분. (중략) 누구도 나의 길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정직하고 당당하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 2007년 8월 17일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서울합동연설회에서 (풀영상)
온갖 음해에 시달렸습니다. (중략)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여러분 언제부터 한방에 간다 한방에 간다 그러더니 그 한방이 어디 갔습니까? 허풍입니다, 허풍. -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강재섭 대표 얼굴만 보면, 저거 어떻게 쥐어박고 싶었어. - 2007년 한나라당 제17대 대통령 선거 당시 농담조로
경제, 반드시 살리겠습니다! -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당시
아마 내년되면 (주가가) 3000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실물경제를 한 사람이기 때문에 허망한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겠습니다. 더 나아가 임기 5년 중에 제대로 되면 5000까지 올라가는 것이 정상입니다. 주가가 진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은 정권교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권 교체를 하면 주가가 전반적으로 상향조정 될 것입니다. - 2007년 12월 14일 여의도 대우증권 본사에서
대한민국은 위대한데 위대하지 못한 지도자를 만났기 때문에 오늘 이 모양으로 된 것입니다, 여러분. 약속한다, 뭘 해주겠다, 뭘 해주겠다. 그렇게 약속하고 지난 5년간 잘했으면 나라가 이 꼴이 됐겠습니까? (중략) 국민에게 겁을 먹어야 하는데, 국민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아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국민을 마음대로 하는 건 줄 알아요. 기가 막혀요, 정말. 우리 대한민국을 다시 만들어놔야 합니다. - 2007년 대통령 후보로 지지자들에게 연설 중
우리 내외 살아갈 집 한 칸이면 족합니다. 그 외 가진 재산 전부를 내어놓겠습니다. - 2007년 12월 7일 대통령 선거 전 KBS 선거방송연설 중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미쳤나 저게, 옛날엔 안 그랬는데 저렇게. - 2007년 박영선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이 이명박에게 악수하면서 "왜 그러세요? 저 똑바로 못 보시겠죠?" 하면서 쏘아 붙이자 맞받아치면서[77]
이 사건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열 번, 백 번을 수사하고 특검을 하더라도 결과는 결코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진실은 오직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 2007년 12월 18일 대선을 하루 앞두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지난 6월 10일 광화문 일대가 촛불로 밝혀졌던 그날 밤에, 저는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보았습니다. 시위대의 함성과 함께 제가 오래전부터 즐겨 부르던 아침 이슬이라는 노래 소리도 들려왔습니다. 캄캄한 산중턱에 홀로 앉아서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의 행렬을 보면서, 국민들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습니다. - 2008년 6월 19일 촛불집회 관련 대국민 담화
그렇지만 제 임기 중에 일어난 사회지도층의 권력형 부정과 불법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밝힌 대로 관용을 베풀지 않을 것입니다. - 2009년 6월 29일 18차 라디오 연설에서
그... 왜... 장사가...어... 야, 이것 좀 이것 좀 사먹어라 야~ 뻥튀기! (중략) 내가 노점상 할 때는 슈퍼마켓이 없었거든! - 이문동 재래시장에 방문해서 상인들과 대화를 나누며 #
저는 앞으로 어떤 정권도 "방송을 장악할 수 있다, 언론을 장악할 수 있다"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 2009년 7월 27일 20차 라디오 연설에서
(우리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므로 조그마한 허점도 남기면 안 된다. 우리 정권은 돈 안 받는 선거를 통해 탄생한 특성을 생각해야 한다. - 2011년 9월 30일 청와대 확대비서관회의 중
젊은 사람이 긍정적으로 살아야지', '부모님을 잘 모셔야지'"2012년 12월 19일 청운동 투표소,,#
(지금 시국에 대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어디, 소속이 어디에요? (저는 시사IN 주진우 기자입니다) 어? (시사IN 주진우 기자입니다) 대표로 묻는 거 아니죠? (시국에 대해서 한마디 해주시죠) 정말 참담한 심정이죠. 어떻게 이렇게 부끄럽고, 부끄러운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시위에 나온 사람이나, 나오지 않은 국민들도 똑같은 심정일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국민들의 뜻을 잘 받아줬으면 좋겠고... 이 나라는 선진국 문턱까지 왔고, 또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가슴이 답답하지만 헌법적인 절차가 중요하지 않는가 저는 생각합니다. (정치권에서는 탄핵도 거론되고 있는데) 그것도 헌법적인 절차의 하나죠. - 2016년 11월 21일 김영삼 대통령의 묘지 참배 후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최순실 게이트 관련한 물음에
본인이 뭐라고 하든 모두가 다 알고 있으니 순리대로 따르면 되겠죠. - 2016년 12월 18일, 박근혜 탄핵소추가 가결된 후, 박근혜가 탄핵 사유를 부인하자
아이고. 좀 잘해! 잘해가지고 모범을 보여야지. (중략) 시작은 좀 미약해도 끝이 아마 좋을 거야.- 2017년 3월 22일, 이재오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예방하러 오자
저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오면서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던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나간 6개월 적폐청산이라는 명목으로 보면서 이것이 과연 개혁이냐 감정풀이냐 정치보복이냐 이런 의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중략) 그러나 그 짧은 시간에 발전하는 동안에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는 것을 (기침) 우리 모두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측면이 부정적인 측면보다도 훨씬 크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부정적인 것을 고치기 위해서 긍정적인 측면을 파괴해서는 아니 됩니다. - 2017년 11월 12일 바레인 출국 전 인터뷰에서
그건 나한테 물어볼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 2017년 12월 18일, 국민들이 "다스는 누구겁니까" 하고 묻고 있습니다라는 질문을 받자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에 대하여, 많은 국민들이 보수를 궤멸시키고 또한 이를 위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일했던 이명박 정부 청와대와 공직자들에 대한 최근 검찰 수사는 처음부터 나를 목표로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기침) 지금 수사를 받고 있는 우리 정부의 공직자들은 모두 (기침)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입니다. 제 재임 중 (기침) 일어난 모든 일의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더이상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직자들을 짜맞추기식 수사로 괴롭힐 것이 아니라 나에게 물어달라 하는 것이 저의 오늘의 입장입니다. - 2018년 1월 17일 기자회견에서
저는 오늘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무엇보다도 민생경제가 어렵고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환경이 매우 엄중할 때, 저와 관련된 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또한 저를 믿고 지지해주신 많은 분들과 이와 관련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도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물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습니다마는 말을 아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습니다. 다만 바라건대 역사에서 이번 일로 마지막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시 한번 국민 여러분들께 죄송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 2018년 3월 14일 검찰에 소환되면서
다 아는 사람들이구먼. - 2018년 5월 23일 공판에 참석하여 검사석을 보면서 한 말[78][79]
내가 오늘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아네, 나도 모르는…." - 2018년 5월 23일 공판 종료 후, 피고인석에서 일어나 법정 맨앞에서 재판을 방청한 가족들에게 잠시 다가가며
가족관계
아버지 이충우 (1907 ~ 1981)[80] / 어머니 채태원 (? ~ 1965)[81]
누나 이귀선 (1929 ~ 2010) / 夫 김일용
조카 김동석
조카 김동혁 (1951 ~ ) 前 현대산업개발 자재부장[82]
형 이상은 (1933 ~) 다스 회장 / 妻 박청자
조카 이동형 다스 부사장
조카 이?? / 夫 전종화 (1966 ~ ) 前 씨모텍 부사장[83]
형 이상득 (1935 ~ ) 前 국회부의장 / 妻 최신자 (1941 ~ )
조카 이지형 (1966 ~ ) 前 맥쿼리-IMM자산운용 대표 / 妻 조재희 (1973 ~ )
조카 이성은 (1969 ~ ) / 夫 구본천 (1964 ~ ) LB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 사장[84]
종손 구??[85]
조카 이지은 (1970 ~ ) / 夫 오정석 (1970 ~ )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86]
누나 이귀애[87]
본인 이상정 (나중에 이명박으로 개명) / 妻 김윤옥 (1947 ~ )
장녀 이주연 (1971 ~ )[88] / 夫 이상주 (1970 ~ ) 청계재단 이사 겸 삼성전자 해외법무팀 전무이사[89]
손주 1남 1녀
차녀 이승연 (1973 ~ )[90] / 夫 최의근 (1973 ~ ) 서울대학교병원 순환기내과 교수[91]
손녀 2녀
3녀 이수연 (1975 ~ )[92] / 夫 조현범 (1972 ~ ) 한국타이어 대표이사 사장[93]
손주 1녀 1남[94]
아들 이시형 (1978 ~ ) 다스 전무이사 겸 에스엠 대표이사[95] / 妻 손진아[96]
여동생 이귀분[97] / 夫 김진 에스엠 대표[98]
남동생 이상필
'기타 정보 유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리아세일페스타에 대해알아보자 (0) | 2020.11.01 |
---|---|
커밍아웃에 대해알아보자 (0) | 2020.10.30 |
이건희 논란및 사건사고 에 대해알아보자 (0) | 2020.10.26 |
삼성 회장 이건희에 대해알아보자 (0) | 2020.10.25 |
iPhone 12(아이폰12) 논란및 문제점에 대해알아보자 (0) | 2020.1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