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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예프 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2. 2. 24.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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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어 : Київ (Kijiv, 키이우)
러시아어 : Ки́ев (Kiyev, 키예프)
폴란드어 : Kijów
영어 : Kyiv(공식 표기), Kiev(민간 표기)

우크라이나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 우크라이나, 러시아, 벨라루스까지 동슬라브 3국의 역사적 발상지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어로는 ˈkɪjiw(키이우)라고 한다. 키예프의 영어 표기는 러시아어 표기 Ки́ев / Kíjev에서 유래한 Kiev이나 우크라이나 정부는 탈러시아 작업의 일환으로 Kiev를 하나둘씩 Kyiv로 고쳐나가고 있다. 다만 우크라이나 내부에도 러시아어 인구가 많은 등 현실적 이유가 겹치다보니 Kiev 표기를 철저히 버리진 못하고 있고 2022년 구글 검색어 기준으로 아직 Kiev 표기가 더 많이 쓰이고 있다.

 

역사

흑해로 연결되는 드네프르 강 양 어귀에 세워졌다. 본래 유목민이던 스키타이족이 정착해 살던 지역으로 원초연대기에 따르면 동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의 하나로, '루스 도시들의 어머니'라고도 불린다. 키예프 공국의 수도였으며, 드네프르 강을 이용, 흑해와 발트해를 연결한 무역으로 번창하였다. 11세기에는 인구가 4만 5천여 명에 달했으며, 전성기였던 12세기 초에는 10만여 명이 넘었다는 기록이 있다.

멸망하기 전까지 당시 동슬라브 지역[]에 있었던 수많은 공국들의 형식적인 수장 노릇을 했고, 류리크 가문이 갈라져 공국들이 분열하기 전까지 주도권을 행사했다.

이렇게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던 키예프 공국이었지만, 13세기 초엔 루스 공국들 간 전쟁으로 수차례 점령되고 약탈당했다. 그나마 명맥은 유지했으나 1240년에 몽골 제국에게 침공받아 도시가 완전히 파괴되어 폐허로 변했다.

결국 이 일로 북쪽의 노브고로드 공국과 블라디미르-수즈달 공국에 주도권을 내주었고, 이후 블라디미르-수즈달에서 갈라져나온 모스크바 대공국이 키예프 계열 공국들을 완전히 정리하면서 동슬라브 지역의 역사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 중심으로 흘러갔다.

14세기 리투아니아 대공국이 킵차크 칸국의 지배로부터 키예프 일대를 해방시킨 이후로 15세기까지 리투아니아의 영토였으나 타타르족이 계속 침략하여 회복이 늦어졌다. 16세기 루블린 조약으로 폴란드와 리투아니아가 연방 국가로 합쳐지는 와중에 키예프는 폴란드 왕국의 도시가 되었다. 코사크들이 우크라이나를 크림 타타르족으로 방어하기 시작하자 키예프 시의 인구가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다. 한동안 키예프 시는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요새 도시 중 하나에 불과했으나 코사크 헤트만 페트로 사하이다니치의 지도하에 다시금 부흥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키예프는 인쇄소를 적극 운영하고 성직자들의 부패를 일소하며 기강을 세워 우크라이나 문화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코사크 지도자 보흐단 흐멜니츠키가 봉기한 이후(대홍수 항목 참조) 키예프는 러시아 제국의 영토가 되었으며, 19세기 말에는 러시아 산업혁명의 한 중심지가 되었다. 소비에트 연방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중요한 도시가 되었으며, 1934년에 우크라이나 공화국은 수도를 하르키우에서 키예프로 천도했다. 이 기간 중에 인구가 급속도로 팽창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도시는 크게 파괴되었으나 전후 빠르게 복구하여 소련 제3의 대도시가 되었다. 녹지가 많아서 소련에서 가장 푸른 도시라는 명성도 가지고 있었다. 후에 소련에서는 1982년 키예프 1500주년기념메달을 만들었다.

1986년 4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 현장이 키예프에서 불과 100 km 떨어진 곳이었다. 키예프는 체르노빌에서 가장 가까운 대도시였다. 체르노빌 폭발 사고 당시 2차 증기 폭발로 원전 바닥이 완전히 녹아버릴 위험성이 제기되었다. 그렇게 되면 키예프의 상수원인 드네프르 강은 그대로 방사능 오염이 되기 때문에 도시 전체를 고스란히 버려야 할 헬게이트가 열릴 뻔했으나, 당시 체르노빌 발전소 사고 현장에서 3명이 지하로 내려가 배수밸브를 개장하는 영웅적인 행동으로 성공한 덕분에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 게다가 운좋게도 사고 이후 바람이 며칠간 거의 줄기차게 남풍이 불었기 때문에 가까운 거리치고는 방사능 낙진의 피해가 최소화되었다.

당시 사고로 인한 방사능 피폭 피해를 소련과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공화국 정부가 완전히 은폐하였기 때문에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다. 사고 며칠 후 키예프 축제가 있었는데, 당시 우크라이나 서기장은 축제를 취소하기는커녕 강행하여 축제에 참가한 시민들이 방사능에 많이 피폭되었다고 한다. 1986년 키예프 5월 축제와 관련된 모든 사진 기록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완전 말소했고, 당시 우크라이나 서기장은 훗날 자살했다

2013년 말부터 2014년 초까지 이곳을 중심으로 대규모 친서방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 친러 정권을 전복시킨 유로마이단이 일어났다.

교통

도시철도 : 키예프 메트로가 운행중이고, 지하철은 3개 노선이 깔려있다. 2025년 이후에는 4호선 (오렌지색)도 개통될 예정이다. 과거 소련에서 중요한 노선이기도 했고 연식도 오래되었다.


기타 시내교통 : 경전철, 노면전차, 버스, 미니버스, 트롤리버스 등이 있다.


철도 : 키예프 역에서 키옙스키 역, 몰도바, 폴란드, 헝가리 등 주변 각국으로 가는 열차를 탈 수 있다. 하지만 최소 16시간 이상은 가야하는건 함정. 그렇기 때문에 기차보다 비행기를 선호하는 추세이다.[] 기차는 일반열차와 고속 급행열차(인터시티[)로 나뉘는데 일반기차는 1,2,3등석이 있고 장거리 열차는 모두 침대칸이다.


공항 : 보리스필 국제공항과 키예프 줄리아니 국제공항이 있다.  보리스필 국제공항은 키예프 동쪽 29km 지점에 있는 단 러시아 노선은 상호 제재로 단항했고 에어 아스타나, 터키항공, LOT 폴란드 항공 등을 이용하여 들어와야 한다. 키예프 시내에 있는 키예프 줄리아니 국제공항은 유럽 서부로 통하는 공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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