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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에 대해 알아보자

뤼케 2020. 4. 11.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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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기업인, 기부 재단 이사장, 프로그래머이며 전 세계 PC 운영체제 시장의 무려 79.46%를 점유[7]하고 있는 Microsoft Windows의 개발사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주. 하버드 대학교를 중퇴하고도 MS-DOS와 Windows로 성공 신화를 써내려 갔으며, 80~90년대에는 IT 업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일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1995년부터 2017년까지 거의 대부분 세계 갑부 순위 1위를 차지했던 인물이다. 마르지 않는 샘물을 소유한 덕분에 아주 오랫동안 세계 제1의 부호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으나[8] 2017년에는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회장에게 자리를 잠시 내주었다가 2019년 11월 현재 1위 자리를 탈환함으로써 여전히 세계적 갑부의 대명사임을 인증하고 있다. 베조스가 자폭한게 크긴 하다 그가 창업한 자선재단 역시 정말 크고 아름답다.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 혼자서 미국 전체 자선재단의 40%를 웃도는 수준.

그는 현직에 있을 때만 해도 부의 제국, 어둠의 군주, 세계를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 등 두려움의 대상으로 묘사되곤 했지만[9][10] 은퇴 후 파격적인 자선사업으로 그 간 모든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꾸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압도적으로 큰 자선재단을 운영하고 있으며, 자녀들에게는 본인 재산의 0.1% 미만[11]만을 물려준다는 선언도 화제가 되었다. 또한 전 세계 부호들에게 기부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며, 설득하는 캠페인은 전 세계에 크게 화제가 되었다. 이제는 기부의 상징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부호의 상징[12]으로 존경받고 있다.

그의 자세한 인생사를 알고 싶다면 살림지식총서- 빌 게이츠를 읽어 보자.

 

경력

실제 그는 사회에 모난 것 없이 무난하게 지나가는 모범생 스타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젊은 시절 하버드 대학교를 중퇴하고 맨손으로 컴퓨터 사업에 뛰어들 정도로 야심가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 한창 고생하던 시절에는 "그냥 의사나 할까"라고 생각도 했었다고 한다.

근데 아래 서술한 것이나 실제 행보들을 보면 은근히 반항아 기질이 있다. 대학생 때 음주운전을 저질러 경찰에 붙잡혔다.[13] 컴퓨터 제조사들에게 경쟁사 제품을 쓰면 윈도우를 납품하지 않겠다고 협박한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이래선 반드시 법적으로 문제가 되기 때문에, 복돌이 대책 겸 해서 "OS 없는 PC의 출시를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신들이 무슨 프로그램을 만들건 그건 당신들 자유지만 MS의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라고 한다거나, OS 내에 경쟁사 제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하는 코드를 몰래 집어넣는 일을 하기도 했다. 사실 이 정도는 웬만한 대기업들도 많이 하긴 하지만, 어쨌거나 이 사람이 정직하고 깨끗하게만 부를 축적했다고 하는 말은 맞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아니 오히려 한때의 별명이 '실리콘 밸리의 악마 (Demon of Silicon valley)' 였을 정도로 악랄한 장사수완을 자랑했다.

640kb이면 모든 사람에게 충분한 메모리 용량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건 사실이 아니다. 지금봐도 windows 10의 기본 사양이 램 2gb잖아기본 메모리 문제 문서를 살펴보자.

2000년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스티브 발머에게 넘겨주고 2선으로 물러났다. 이후 회장직과 더불어 최고 소프트웨어 아키텍트(Chief Software Architect) 직책을 신설하여 맡았다. 2006년 최고소프트웨어 아키텍트(CSA) 직책을 레이 오지에게 넘겨주면서 사실상 은퇴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2008년 6월 27일부로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직에서 은퇴했다. 이것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그래도 이사회 의장직은 그대로 유지한다고 한다. 즉 회장 연봉은 안 받지만 앞으로도 마이크로소프트 덕분에 왕창 벌 거라는 이야기다.

2007년까지 600억 달러의 개인재산을 가지고 있는 세계 최고의 부자였다. 허나 최근 주식 가치 등의 변화로 빌 게이츠의 '세계 최고의 부자' 타이틀이 위협받았다. 멕시코의 통신재벌인 카를로스 슬림에게 '세계 최고의 부자' 타이틀을 넘겨주고 자신은 '미국 최고의 부자'로 남는 듯했다.

그러나 2013년 5월을 기점으로 블룸버그에서 집계하는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서 카를로스 슬림을 제치고 다시 1위로 등극했다. 이후 다시 Forbes에서 2위로 떨어졌다가 2015년엔 다시 1위로 등극하면서 계속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는 중. 2017년 11월 현재는 아마존닷컴의 제프 베조스가 세계 최고 갑부로 등극했다. 어쨌든 순위가 계속 바뀌어도 빌 게이츠라는 이름은 갑부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다.

 

생애


중산층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성장했다. [14] 아버지는 시애틀 최고 법률 회사를 운영하던 저명한 변호사였으며 어머니는 미국의 은행인 퍼스트 인터스테이트 뱅크시스템과 비영리 단체 유나이티드 웨이의 이사회 임원이었다.

신동 기질도 타고나서, 교회 목사님이 박람회에 데려가는 조건으로 내건 성경의 산상수훈(마태복음 5장에서 7장에 해당하는 내용이다)을 완벽하게 외운다든지 수학적으로 재능을 보여 일찍이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참고로 그의 IQ는 160으로 굉장히 높다. 또 엄청난 독서광이었다고 한다. 식탁에서도 책을 놓지 않아 부모가 늘 나무랐다고. 타고난 천재성으로 학교에선 늘 우등생이었고 경영과 프로그래밍을 금방 익혔다고 한다.

레이크사이드 고등학교에 다닐때부터 컴퓨터에 두각을 나타냈는데, 언젠가는 폴 앨런과 함께 학교단말기에 연결되어 있던 중앙컴퓨터를 해킹하여, 학교가 지고있던 빚을 회계장부에서 지워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기도 했다고. 참고로 폴 앨런은 게이츠의 친구이자, 마이크로소프트를 차릴 때의 동업자이기도 하다.

어떻게 위기를 넘기고 나서 하버드 대학교에 들어가서 컴퓨터과학과의 전신인 응용수학(applied math)을 전공하면서 수학적 재능이 더욱 개화, 마음이 맞는 친구들을 모아 악동 짓을 하거나 프로그램 개발을 하거나 했다고 한다. 이 시기에 알고리즘 논문을 하나 써서 이산수학 학술지에 실었다. 내용은 팬케이크 소팅#이라는 문제에 대한 알고리즘을 제시한 것으로, 더 좋은 알고리즘은 30년 뒤에야 나왔다.

흔히 IT분야에 젊은 사업가가 나타나면 제2의 빌 게이츠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 중에 게이츠처럼 학문적인 성취를 이룬 사례는 거의 없다. 대학원에 진학해도 게이츠의 논문만큼 중요한 논문을 못 쓰고 박사를 받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박사를 받을 정도면 다른 연구 업적을 쌓았겠지만.

학술지에 논문을 실은 이후 더 배울 것이 없다면서 하버드 대학을 중퇴했다. 나중에는 하버드 대학에서 명예 졸업증을 주긴 했다. 사람들은 그가 패기있게 자퇴한 것으로 아는데 사실 그는 당시 사업이 결국에 안 풀리면 학교로 돌아올 생각으로 휴학을 했다고 한다.#

언젠가 한 회사가 게이츠의 소문을 듣고 회사 컴퓨터를 맡겼는데, 암호표도 주지 않곤 암호 걸린 회사기밀문서를 읽으라고 시키자 그 자리에서 문서의 암호를 깨버려 위험 인물로 낙인 찍혀 강제 퇴직당했다. 게이츠는 그 퇴직금으로 앨런과 함께 회사, 즉 마이크로소프트를 차렸다. 초기 마이크로소프트는 알테어용 베이직 인터프리터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다.

그러다 몇 년 뒤, IBM 사에서 처음으로 PC를 출시할 때였다. 마이크로소프트 사는 IBM에 PC용 운영체제를 공급하기로 계약한다. 그래서 시애틀 컴퓨터의 Q-DOS를 개발자랑 같이 사와서 이름도 MS-DOS로 바꾼 뒤 팔아 떼돈을 벌었다.

어쨌거나 그가 IBM과 맺은 계약은 컴퓨터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계약이라고 불린다. 결국 IBM은 마소에게 돈만 퍼준 꼴이 되고 만다. 이후 윈도우 시리즈를 통해 완전히 OS시장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
IBM과의 IBM-PC 운영체제 계약도 매우 운이 따랐는데, IBM에서 최초로 계약을 하려 한 곳은 MS였지만, 당시 MS는 자체 운영체제가 없었다. 그래서 게이츠는 당시 많이 쓰이던 CP/M을 만들던 게리 킬달의 디지털 리서치를 소개해 주었다. 하지만 그 쪽은 왠지 IBM과의 계약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 협상은 결렬되었다.

이에 게이츠는 다시 한 번 양 쪽을 중재해 보았지만, 그 때도 디지털 리서치는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고 계약은 결렬되었다. 그래서 PC 출시가 늦어질까 걱정한 IBM과 PC가 안 나와서 베이식이 안 팔릴까 걱정한 MS의 계약이 이루어졌다.
이때 게리 킬달이 바로 정신을 차렸으면 MS가 지금처럼 성공하지는 못 했을 것이다. MS-DOS를 살펴본 킬달은 MS-DOS가 자사의 CP/M-86과 외형이나 기술적으로나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IBM을 위협하여 자사의 운영체제도 공식 운영체제로 만들었다. 그래서 IBM PC에는 운영체제가 포함되지 않은 채로 판매되었고, 운영체제는 시장에서 자유롭게 선택하여 구입할 수 있었다.

그런데 디지털 리서치는 CP/M-86의 기술적 우수성을 과신한 나머지 무려 240달러라는 엄청난 가격에 팔았다. 반면 MS-DOS는 약 40달러에 판매되었다. 결국 CP/M-86은 곧 망하고 말았다. 나중에는 정신을 차려서 DR-DOS도 내놓기도 했지만 시장은 이미 MS에게 완전히 넘어간 이후였다. 그리고 이미 윈도우로 넘어가는 중이기도 했다. 결국 디지털 리서치는 서서히 망하게 되었고, 이들이 PC 초기에 보여준 일련의 바보짓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단 킬달은 자서전에서 아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위의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빌 게이츠를 아주 싫어했다고 킬달의 빌게이츠에 대한 평가는 "He is divisive. He is manipulative. He is a user. He has taken much from me and the industry."

원래 세계 최초의 GUI 탑재 컴퓨터는 1981년에 탄생한 제록스 스타 (Xerox Star)이다. 여기서의 제록스는 그 복사기 제조업체로 유명한 제록스 맞다. PARC에서는 태블릿 PC,내부 네트워크를 이용한 이메일 등 시대를 수십년 앞질러가는 기술들이 있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제록스 스타의 GUI 시스템에 크나큰 감명을 받았고 사내에서 인정받지 못하던 PARC팀을 스카웃해 1984년 세계 최초의 상업용 GUI방식 PC '애플 리사(Lisa)'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특히 잡스 퇴출 이후의 애플을 상대로 재정적으로 압박하면서 실리콘밸리의 악마로서 무자비한 사업일화를 많이 만들어냈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에게 GUI 특허 사용권을 받아 윈도우 1.0을 1985년에 탄생시켰고 완성도와는 별개로 GUI방식 컴퓨팅을 전세계로 확장시키는데 성공한다. 빌 게이츠가 1~2년 안에 쓸모없어질 (애플2의) 애플소프트 계약 갱신을 교묘하게 사용하여 1985년 11월에 매킨토시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영구적인 라이센스를 존 스컬리로부터 얻어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확히는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 소프트 개발을 위해 GUI에 대한 사용권을 받았는데, 해당 라이센스의 만료일이 기입되지 않은 점을 이용하여 마이크로소프트의 OS를 만드는게 가져다 쓴것. 애플 측은 해당 라이센스가 1회용임을 주장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만료일이 기입되지 않았으므로 영구적인 라이센스를 넘겨받은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때문에,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에게 1988년 저작권 소송을 걸었지만, 판사는 애플이 '부주의하게' 마이크로소프트에게 1985년에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대한 권한을 영구적으로 넘긴 것으로 판결내렸다.

또한 애플은 제록스로부터 GUI와 GUI를 위한 기술들에 대한 사용권을 구매했으며, 자신들이 직접 개발한 GUI 요소에 대한 특허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을 토대로 마이크로소프트에게 GUI 저작권 침해에 대한 소송을 걸자, 빌 게이츠는 제록스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변호사들이 제록스가 가진 GUI 원천 특허를 발견하게 한다(그전까지 제록스의 경영자들은 자신들이 GUI 원천 특허를 가지고 있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결국 애플 고유의 GUI 특허들 또한 제록스의 원천 GUI 특허 위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인정되어 애플의 GUI 특허를 무효화 시켜버린 일이 있다.

이외에도 맥 베이직을 묻어버린 일이 있다. 애플의 돈 데먼이 개발중이던 맥 베이직이 마이크소프트에서 제작중인 베이직 인터프리터보다 뛰어나다는 걸 알자, 애플소프트 계약을 빌미로 맥 베이직을 포기하도록 요구하고선, 맥 베이직을 1달러에 사서는 무기한 보류시킨 다음 소스코드와 복사본을 전량 폐기시켜버린 일이있다.

위에서 알 수 있듯 프로그래머로서의 재능도 탁월하지만 무엇보다도 사업가로서의 재능 또한 매우 뛰어났던 것이 성공의 원인으로 꼽히는 인물. 사실 MS의 경쟁자들은 왠지 삽질을 저질러서 망한 경우가 많지만…. 실수를 덜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원래 전쟁은 잘 싸우는 쪽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덜 하는 쪽이 이기게 마련이다.

사실 상기의 업적들을 뛰어넘는 빌 게이츠의 가장 큰 업적은 소프트웨어(= 손에 잡히지 않는 순수 디지털 콘텐츠)를 그 자체만으로 판매될 수 있도록 한 것 혹은 그런 패러다임을 만든 것이다. 빌 게이츠가 자신의 소프트웨어를 돈 받고 팔겠다고 나서기 전까지, 모든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와 결합된 형태 혹은 종합적인 컴퓨팅 서비스의 일부로서만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었다. 즉 저작권 대국 미국에서도 그 이전까지는 무형의 코드 다발 자체로는 팔고 살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그러다가 빌 게이츠가 소프트웨어에 대한 배타적 재산권을 주장하고 이의 판매에 대한 비즈니스 모델을 확립한 덕분에 현재 전세계의 무수한 상용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는 애플과 비교해봐도 극명하게 차이나는 부분. 애플은 바로 지금까지도 자사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결합한 상태로 판매한다. 이는 전 시대의 IBM이 그랬고 그 외의 유닉스 기반 기업들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의 (어떤 의미에선 구세대의)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구세대적 비즈니스 모델을 넘어서서 소프트웨어 즉 무형의 디지털 콘텐츠를 그 자체로 독립적인 상품으로 판매하는 새로운 모델을 세운 사람이 바로 빌 게이츠인 것.

 

 

은퇴


2008년 CES 마지막 기조연설을 했다. 기조연설 중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 출근 마지막날이라는 비디오를 틀어줘,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 비디오는 당시 미국에서 방영 중인 인기 시트콤 오피스와 클린턴 대통령 임기 종료 파티에서 상영된 코미디 영상을 패러디한 것이다. 클린턴 항목에 해당 영상의 링크가 있으니 비교해서 보면 좋다. 특히 등장인물들이 인터뷰로 뒷담화 까는게 똑같다.

내용은 대략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 퇴사 후 할 일을 찾는것인데, 그 중 빌 게이츠가 차기 대통령 민주당 후보로 유력했던 2명 중 한 명이었던 힐러리 로댐 클린턴 상원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부통령감으로 좋은사람이 있는데, 제가 해먹으면 안될까요?" 힐러리 왈 "당신이 정치에 어울릴지 모르겠군요"라고 하는 대목이 있다. 그 다음 장면에는 버락 오바마와 앨 고어도 나온다.

그 밖에도 U2의 보노나 Jay-Z, 조지 클루니, 스티븐 스필버그, 존 스튜어트 등 유명인들이 기꺼이 출연하여 여러모로 대박이다. 유머도 있고, 센스도 있는 사람. 특히 본인의 샌님스러운 면모를 철저히 반영하여 사람을 웃긴다.

 

기부와 선행

그의 기부 규모에 대한 빠르고 쉬운 이해.

저 자막이 잘못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면 지금 바로 계산기로 계산해보자.[16]

전성기 악착같이 돈을 벌어 실리콘밸리의 악마(Demon of Silicon valley)라는 표현까지 들었던 그가 은퇴 후 보여준 행보를 보면 마치 기부를 위해 돈을 악착같이 벌었던게 아닌가 싶을 정도... 아프리카나 저개발국가를 위한 그의 노력을 보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매번 노벨상의 유력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과거에는 '독과점' 같은 다소 좋지 않은 이미지가 강했으나, 시간이 지날 수록 안티가 상당수 떨어져나갔다.[17]

유행병이나 질병에 대한 관심도 생겼는지, 향후 인류는 지구온난화뿐만 아니라 언젠가 닥쳐올지 모를 대규모 유행병에도 대비해야 할것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는데, 코로나바이러스-19가 터지면서 그의 발언이 재평가되고 있다. 빌&멜린다 재단을 통해서 백신연구에 관한 투자에 관심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코로나-19가 진행중인 상황에도 이에 대한 향후 전망을 피력하기도 하였다. #
독과점으로 인한 비난을 희석함과 동시에, 아내가 자선활동을 자주하는 편이라 결혼 후 대부분의 기부금을 아내를 통하여 기부하였다. 자기 재산의 90%는 죽기 전에 기부하겠다고 선언, 워런 버핏도 그것에 동참했다. 부인과 자신의 이름을 딴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해 에이즈 치료제 개발 등에 돈을 기부하고 있다.
기부하는 금액부터가 보통 군상들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사실상 아프리카에서 에이즈를 막고 있는 방파제는 멀린다 게이츠 재단이 거의 전담하고 있다. 만약에, 이 재단이 아프리카를 뜬다면 대책이 없다. 아프리카의 수호자. 또 기부금 운용이 투명해서 신뢰할 만한 기부 재단으로 꼽힌다. 버핏도 이 점을 보고 기부를 했을 정도. 여러모로 귀감이 될 만한 일이다.
자기가 죽은 뒤에는 현재 3명 있는 자식 제니퍼, 로리, 피비에게 유산의 0.02%만 물려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재산의 0.02%도 1000만$(한화로 약 110억원)에 달한다. 2011년 6월경 자식들에게 주는 재산이 현 재산의 0.018%로 줄었지만 금액은 동일.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2007년 이후 그의 기부액은 280억 달러에 달하고, 블룸버그에서 억만장자 조사를 했을 때 그의 재산이 2012년 기준으로 70억 달러가 늘었다라고. 즉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은 마를 리 없는 샘인 셈. 게다가 지금 있는 자선재단의 현재액도 362억 달러이므로, 이 정도면 아프리카 질병-개발 관련 자선사업에 충분히 남는 정도다. 그리고 이것은 빌이 직접 투자한 회사들에서 나온 주식 차액에서 나온 돈으로 기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게이츠는 테라파워라는 벤처기업의 주요 투자자인데, 이 회사는 작고 안전하고 깨끗한 고속증식로를 개발하고 있다. 일단 개발목적은 증식로의 좋은 목적을 사용하기 위해서 라고 적어 두고는 있다. 현재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DOE도 찔러보고, 한국 원자력 연구원도 찔러보고, 도시바도 찔러보는 중. 이 회사에서 개발하는 고속증식로는 일단 값싸면서 연료보충 없이 50년을 목표로 삼고 있다. 여튼 연료가 타는 방식이 이동파 같아서 Traveling Wave Reactor라고 불린다. 회사 대주주로 있는것도 아프리카에 값싸고 효율적인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서다.
사장 시절 스티브 잡스가 췌장암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위로하는 편지를 써서 보냈고 잡스는 그 편지를 곁에 두고 시간날 때마다 보았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는 사이가 안 좋을 것이라는 인식이 많지만, 실제로는 선의의 경쟁자 비슷한 관계였다고 한다. 단, 초창기 매킨토시의 GUI 시스템을 Windows가 라이센스를 받아 사용했는데, 사용 허가 버전을 명시하지 않아 생긴 법정 다툼에서 원래 GUI 특허가 애플의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내 애플의 GUI 특허를 무력화시킨 이후에는 서로 죽일 듯이 증오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잡스가 NeXT사를 설립해 첫 NeXT 데스크탑을 출시했을 때도 게이츠는 공개적으로 그 하드웨어를 욕하고 MS가 NeXT를 위해 소프트웨어를 공급할 일은 없을 거라고 단언했다. 게이츠의 이런 태도 때문에 NeXT가 몰락한 건 아니었지만 당시 잡스의 감정을 긁어놓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물론 그 이후에는 다시 원만한 경쟁자로 돌아왔지만.
모기로 고생하는 저개발국가에 레이저를 이용해 초당 100마리 이상의 모기를 죽이는 시스템을 만드는 회사를 지원하였다. 실제로 TED에 시연 영상이 올라와 있다.영상 링크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에 들어가보면 "모든 생명은 평등하다"라고 쓰여있다[18]
너무 비싸서 일반인은 보지도 못하는 다빈치의 노트, 파인만의 강의를 자기가 샀다. 그리고서는 주석을 달아서 일반에 거의 공짜로 공개했다.
골프를 치러 갔는데, 어느 대학생이 캐디로 할당이 되었었다. 빌은 그 캐디의 신상을 샅샅이 캐물어 보며 관심을 보였지만, 정작 팁은 안 주고 그냥 갔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의 대학 학자금 융자를 갚아 줘 버렸다고 한다.
에이즈예방을 위해 성관계를 할 때 쾌락을 느끼는 만족감이 큰 콘돔을 개발하는 연구비에 거금을 내놓았다. 쓸데없이 고퀄리티냐며 웃을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임신이 목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콘돔을 못 챙겨서'를 능가하는 미사용 이유가 '느낌이 안 좋아서'다. 그게 해결되면 에이즈 전파 경로 중 하나인 성적 전달이 억제되기에 에이즈 퇴치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에이즈가 아니라도 남자들이 콘돔을 기피하는 대표적인 이유가 앞서 말했듯이 느낌이 안좋아서 인데 여자 입장에서는 임신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려야 하기에 쾌락을 느끼는 만족감이 큰 콘돔은 여러가지로 이득이다.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하수 정화 장치를 이용하여 정화한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지구촌 물부족 문제의 원인 중 하나가 이런 물에 대한 나쁜 인식임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차세대 화장실 개발에 투자를 하는 중인데, 이 화장실은 현대의 수세식 화장실에 대한 대안으로 개발 중이다. 수세식 화장실은 배설물을 하수로 보내기 위하여 대량의 물을 낭비하게 되는데, 이는 가난하거나 물이 부족한 나라에는 적합하지 않다.[19] 차세대 화장실은 이렇게 낭비되는 물을 줄이고, 대신 배설물은 '버리는 것'이 아닌 퇴비나 에너지로 재활용하는 방안을 연구중이라고 한다.

 

 

복귀

미국 현지 시간으로 2014년 2월 4일 사티아 나델라 신임 최고경영자의 취임을 발표하는 동시에 33년간 재직해 오던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나 '창립자 겸 기술 고문'이라는 새 직책을 맡게 된다고 한다. 이는 은퇴 5년 만에 현역으로 복귀하는 것

 

 

교통법규 위반으로 머그샷. 1977년에 면허 없이 과속으로 포르쉐를 몰다가 체포되어서 기록사진이 남았다. 이 에피소드는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경쟁을 주제로 한 실리콘 밸리의 해적들에도 나온다.
같은 년도에 태어난 스티브 잡스와 완벽하게 대비되는 라이벌이다. 빌 게이츠는 부유하고, 엘리트 교육을 받았으며, 가톨릭인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스티브 잡스의 (양)부모는 부유하지 않고, 고등 교육을 받은 적 없으며, 카톨릭 신부가 되려고 하였지만 경영자의 길을 걸었다.빌 게이츠는 다양한 하드웨어에 호환가능한 소프트웨어를 만들며, 라이센스를 여러 제조사들에게 판매하면서 주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상품을 만들었다. 스티브 잡스는 엔드투엔드를 고집하며 소프트웨어의 라이센스를 다른 제조사에게 넘기지 않았으며 기업이 아닌 최종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상품을 만들었다.
빌 게이츠는 11세 시절이였던 1966년에 부모와 싸우기 시작했다. 방 정리나 저녁 식사 시간 지키기는 물론 연필 깨물기 금지라는 어머니의 요구는 불화의 근원이 돼 말다툼으로 번졌던 것이다.
빌 게이츠의 아버지의 자서전에 따르면, 12세 시절이였던 1967년 어느 날, 저녁 식사 도중 빌 게이츠가 어머니에게 대들자 아버지[20]가 반성을 시키기 위해 컵에 있는 찬물을 빌 게이츠의 얼굴에 힘껏 뿌렸는데, 이때 빌 게이츠가 주눅들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커녕 "샤워를 시켜줘서 고맙네요."라며 빈정거렸다고 한다. 결국 빌 게이츠의 아버지는 정신적인 충격을 받고 심리상담가에게 데려갔는데, 그 심리상담가는 독특한 성격을 존중해주라는 충고를 했다. 결국 이 충고를 받아들인 빌 게이츠의 아버지는 사립학교 레이크사이드 스쿨이라는 학교에 보낸 것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한다.<출처: 1대100 134회 후반전 6단계>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 사이에 한창 소송을 할 무렵인 1997년에 법정 합의 결과로 애플 주식을 많이 사긴 했는데, 의결권은 없어서 대주주라고 하기엔 무리. 이걸 2001년에 거의 팔아서 예전도 지금도 대주주 같은 것은 전혀 아니다.#
사실 빌 게이츠가 그깟 애플 주식 열배 뛰었다고 아쉬워했을진 의문이다. 애플 주식을 사는 것으로 합의해 애플을 살렸고, 그것으로 MS가 반독점법으로 박살날 위기를 면했으니, 고작 현 애플 주식이 문제는 아닐 것이다.
애플이 폭풍성장을 하는 게 달갑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자식들이 아이폰 같은 애플 제품을 원하면 어떻게 할 꺼냐"는 질문에 우리 마이크로소프트사도 같은 물건이 있다고 대답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의 윈도우 폰은 아이폰에 비할 바가 못되었다.
인생에서의 가장 큰 실수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받았을 때, 구글에 안드로이드 OS를 출시할 기회를 줘버린 것이라고 답했다. 정확히는 스마트폰 OS 시장은 철저한 승자독식의 세계이기 때문에 애플이 이미 한 축을 점유한 상태에서 오직 하나의 회사만이 애플의 반대편에 온전히 설 수 있었고, 본인의 최대 실수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데 실패하게 내버려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MS가 그 자리를 차지했더라면 MS는 유일한 선두주자가 되었을 거라고. [21]
엑스박스 시리즈에 상당히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보이는데, 초대 엑스박스의 런칭 행사에서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은 물론[22], 헤일로 3의 발매 당시에는 '게임 스토리텔링의 새로운 지평'이라고 찬사의 코멘트를 날리기도 했다. 엑스박스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애초에 엑스박스의 시작 자체가 플레이스테이션에 거실을 점령당하지 않을까 생각한 빌 게이츠의 위기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니 당연한 일일 듯. 한 인터뷰에 따르면 궁극적으로 엑스박스를 단순한 게임기를 넘어 윈도우즈와 연결되는 거실의 미디어 허브로 자리잡게 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2004년의 인터뷰에 의하면 만약 야마우치 히로시만 찬성한다면 닌텐도를 바로 인수할 계획이었다고.[23]
그가 한 예측들 중에서는 틀린 듯 틀리지 않은 예측도 존재했는데, 예를 들어 그는 아이팟을 통한 애플의 성공가도는 길지 않을 것이다고 예측한 바 있다. 이유는 핸드폰이 곧 아이팟의 위치를 빼앗아버릴 것이고 애플은 늘 기술을 선도해 왔지만 다른 경쟁자에게 자리를 빼앗겨버린 전례가 있기 때문이라고. 다른 예로는 2005년 당시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다음 세대에서 소니가 무엇을 내놓을지,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내놓을지 주목하고 있다. 닌텐도는 지금 시점에서 틈새 시장에 가깝다.'고 말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실제 아이팟은 핸드폰에 자리를 내주었지만, 그 핸드폰을 만든 회사는 사실... 비슷하게 닌텐도의 차세대 게임기는 틈새 시장을 노려 만들었지만 그 틈새를 노린 전략 덕분에 거대한 성공을 이루어냈다.
정치 성향은 민주당 쪽으로 워렌 버핏과 함께 부자 감세와 상속세 폐지를 반대한다. 그리고 결국 2013년 1월 2일부로 그가 워렌 버핏과 같이 주장한 대로, 재정 절벽 방지를 위한 부자 증세안이 상-하원에 동시 통과되었다. 은퇴 영상에는 아예 민주당쪽 대선 후보들이 나온다. 그가 지분을 가지고 있는 MSNBC는 미국에서도 유명한 친 민주당 성향의 언론사이기도 하다.
하버드 대학에 재학할 당시, 들어야 하는 필수 과목은 등록만 하고 출석을 안 하고 다른 과목 수업을 청강한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하버드 대학 수학과 신입생들이 약 80명이 있었고 그중에서도 1등은 딱 1명일테고 자신은 그 1명이 아니란 것을 직감하고 아예 안 가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수학과보다 응용수학과 학생들이 더 재밌는 교양과목을 많이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바로 응용수학과로 전공을 바꿨다고 한다.
자퇴할 때 그의 부모님은 사업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1~2년 뒤에 복학해서 졸업하겠거니 하고 넘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어차피 1년만 더 있으면 졸업가능했기 때문에 말리지도 않았던 것 같다.
오픈 소스를 신나게 까대면서, 사유 소프트웨어의 시대를 만든 주역이다. 뭐 프로그래머로서 정당한 대가를 받고자 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이분 덕에 저렴했던 유닉스도 겁나 비싸지기 시작하면서, 지금 같은 폐쇄적인 운영체제가 되었다. 그에 빡친 리처드 스톨먼은 GNU 재단을 만들었다. 빌게이츠의 노력 덕분에 오픈소스가 상당히 줄어들었지만, 리처드 스톨먼, 그리고 리눅스 커널 최초 배포자 리누스 토발즈 덕분에 오픈 소스는 살아남았다.
아내 멀린다 게이츠는 결혼 이전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선임 프로그래머 중 하나였다. 비서였다고 흔히 알고 있는데, 이 사람은 한때 Microsoft Publisher 프로그램 개발 책임자기도 했다. 누가 세계 최강 프로그래머 중 하나 아니랄까봐, 프러포즈 방법이 대박이었던 걸로 유명하다. 당시 선임 프로그래머였던 멀린다에게 "이 게임 재미있다는데 한번 해봐요"라면서 게임을 줬는데, 나름대로 재미도 있고 자신의 취향에도 맞았기 때문에 게임에 몰입하여 클리어했다. 그런데 클리어 화면에 "결혼해줘요. -빌"이라 떴었다나 뭐라나.
결혼식에 몰려드는 취재인파를 피하기 위해 호텔 하나를 통째로 빌려버리기까지 한다.
빌 게이츠는 결혼 전에는 전형적인 사업밖에 모르는 비즈니스맨이어서 지금의 기부천사로 바뀌게 된 건 아내인 멀린다 게이츠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빌 본인으로써도 잘한 결혼이라고 볼 수 있다. 빌 게이츠가 마누라의 등쌀에 못 이겨 만든 것이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이다.
어릴 때부터 퍼즐 등의 게임을 좋아했으며, 1995년에 전세계를 충격에 몰아넣은 PC게임 『미스트』의 열렬한 팬인 것도 유명한 사실. 그의 큰딸은 제니퍼 『비바 피냐타』를 즐겨하지만 1시간 이상 못하게 하는 것도 유명하다. (2011년 기준 12살로 자식을 늦게 얻은 편이다.) 소문엔 그의 AV 기기들은 모두 도금처리하여 화이트 노이즈가 없다는 말도 있다.
1976년 베이식 인터프리터를 마구잡이로 복제해서 돌려쓰던 복돌이들을 겨냥해서 쓴 '취미가들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이라는 편지가 유명하다. '님들이 계속 불법복제하면 우리 같이 소프트웨어 만드는 사람은 다 거지가 될 거고 그럼 좋은 소프트웨어도 못 나올 거에요.'라는 내용으로, 저작권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번쯤 생각했을만한 울분을 시원하게 터트려줘 많은 사람이 찬양하나 반대로 자유 소프트웨어 진영에서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마이클 샌델이, 빌 게이츠는 하루 16시간을 일했다고 쳐도 초당 140불을 벌었기 때문에, 길거리에 100불 지폐가 떨어져 있어도 허리 굽히느라 멈춰서는 시간이 아까워서 줍지 않고 지나갈 것이라는 농담을 한 적이 있다. 이 후 어느 연설회장에서 질문 시간에 누가 정말 그럴 거냐고 물어 본 적이 있는데, 빌이 우물쭈물 하자 진짜 고민하는 대재벌의 위엄 옆에 있던 워런 버핏이, "빌은 모르겠지만, 나는 빌보다 가난하기 때문에 줍겠다"라고 답해 청중을 웃긴 적이 있다. 세월이 흘러 2014년에 복귀하고 나서 다시 한번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이번에는 줍겠다고 하였다.#
이래서 언제나 프리메이슨이나 백신 등과 엮여서 음모론의 주인공이 되는 비운의 인물이기도 하다. 빌&멜린다 재단만해도 닭전염성 기관지염의 이 시국 전후에 특허를 보유했다는 이유로 빌 게이츠가 오히려 질병을 통한 계획적 인구감소음모를 진행하는 일원이라고 음모론자들이 까대기도 하였다.
왼손잡이다.
빌 게이츠의 족보를 보나 종교를 보나 유대인이 아닌데 미국 경제지에도 종종 유대인이라고 나온다. 빌 게이츠의 아버지는 독일-영국계 미국인 핏줄이 약간 섞인 전형적인 미국인이고, 어머니는 스코틀랜드-아일랜드계 미국인이며, 빌 게이츠의 가족은 가톨릭 집안이었으므로 유대인과는 상관이 없다.
현재는 가톨릭 신자이다. 기사 아무래도 엄격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멜린다의 영향으로 보인다. 결혼 전에는 불가지론적인 발언을 심심찮게 했었다. 결혼 후에도 신의 존재를 믿는 독실한 신자라기 보다는 ‘믿어서 나쁠게 있나’정도의 마인드인 듯 하다. 위 기사에 나온 인터뷰에서도 리처드 도킨스 같은 사람의 의견에도 일정 부분 동의할 정도다.# 멘트들을 살펴보면 신을 믿는다기 보다는 이웃에 대한 사랑과 같은 가톨릭의 사상과 긍정적인 사회적 역할에 감화된 것으로 보인다. 결혼 후 자선사업에 많이 참여하는 것도 가톨릭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게이츠 집에 피자를 배달했던 사람의 말에 의하면, 의외로 팁은 딱 20% 정도만 줬었다고 한다. 미국에서의 예의라고 하는 15% 팁보다는 많지만, 이것으로 그의 씀씀이를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크다. 애초에 부자라고 팁을 디립다 퍼줘야 한다는 시각이 더 편파적인 것.
스팸메일이나 악성코드에 대한 증오심이 남다르다. 요즘 윈도우에 내장되는 악성코드 제거 프로그램 초기작은 그가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24] 늘어나는 스팸메일과 악성코드에 견디다 못하여 직접 나섰고, 은근히 효과가 있자 아예 개발부서를 두고 만들었다고 한다. 하루에 오는 스팸메일이 수십만 통에 달하다 보니, 아예 스팸메일을 처리하는 부서가 있었다고. [25]
2010년 경에는 기어코 한국에 위인전까지 출시되었다. 물론 유아용 위인전은 그 전에도 셀 수 없이 많이 나왔지만.
173cm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172cm인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같이 찍은 사진을 보면 신장은 175cm 정도로 추정된다. 젊었을 때 쓴 이력서 기준으로 5피트 10인치, 177.8cm이다. 유명한 그 악수 비교 사진과 달리 어느 쪽이든 한 손으로 편한 자세로 악수를 했다.
자동차를 굉장히 좋아하는 듯하다. 포르쉐의 광팬이며 특히 포르쉐 959를 상당히 좋아하는 듯. 유명한 이야기로 포르쉐 959가 미국의 배기가스 기준을 통과시키지 못해 정식 인증이 나오지 않자, 뒷마당에 수영장을 엎고 전용 서킷을지으려고 했다가 아내의 극렬한 반대로 포기하기도 했었다. 얼마나 극렬했냐하면, 이혼도 불사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워렌 버핏의 영향을 받았는지 1995년에 'Cascade Investment'란 투자회사를 설립했다. IT의 대가인 그는 투자에 대해서는 버핏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지 농기계 회사, 철도회사, 카펫회사, 코카콜라-멕시코, 자동차 소매, 조선소, 제약사, 호텔, 광산, 발전소, 제철, 쓰레기 처리 회사, 멕시코 언론사 같은 따분한 업종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3년 4월 4일 오전 9시 38분 MBC[26]를 시작으로 YTN, SBS등의 방송 채널에서 빌 게이츠 사망 오보를 내는 사고가 있었다.[27] 관련 기사
빌 게이츠가 1995년 본인의 저서 '미래로 가는 길'에서 21세기의 생활에 대해서 예언했는데, 영화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볼 수 있다던가(넷플릭스), TV 프로그램을 보고 싶은 때에 다시 볼 수 있게 되고(VOD) 디지털 화폐가 들어있는 PC지갑(비트코인) 등을 예언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 소름 끼치게 높은 적중률을 보여주고 있다.#
2007년에 가전박람회 CES(International Consumer Electronics Show)의 기조 연설에서 한국의 가전제품 기업 모뉴엘을 극찬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런 소식은 한국 언론사들의 뉴스에만 적혀있고 다른 국가의 뉴스에서는 하나도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그나마 있는 영문 기사들도 사이트 주소를 보면 알 수 있는 한국 언론사 사이트의 영문판에 불과하다) 루머인듯 하다. 관련기사 무엇보다 모뉴엘은 시원하게 망했다. 항목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모뉴엘이 CES에서 온갖 상을 받아온것도 사실인 만큼 사실일 가능성도 있긴 하다.
그 영향력 때문에 간혹 나폴레옹이나 아돌프 히틀러에 합성되기도 한다.
정수리에 탈모가 진행되고 있어서 휑하다. 다만 예순 가까이 되어서 시작된 터라 미련은 없을 듯. 그런데 '말라리아 백신에 비해 별로 중요하지 않은 탈모 치료에는 돈이 몰리고 있다'라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물론 이는 탈모 환자들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말라리아같이 인체에 치명적인 질환의 예방 및 치료에는 정작 제대로 투자를 하지 않고 있는 현실의 모순을 꼬집기 위한 표현이다.
레딧에서 유저들에게 라이브로 다양한 질문을 받고 직접 답하는 AmA(Ask me Anything)를 자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9년 현재까지 7번씩이나 했다!
2009년도 경에 어느 미국 매체가 계산해본 결과, 당시 빌 게이츠의 전 재산을 모조리 1달러 지폐로 바꾸면 지구에서 달까지 약 153바퀴를 돌 정도의 양이 나온다고 추측했다.
일반인들은 각종 기부 및 선행들과 더불어 특유의 온화해보이는 외모를 가진 그의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사실 마이크로소프트를 한창 키우던 20대 ~ 30대 시절에는 상당히 악독한 보스였다고 한다.[28] 사원들의 차 번호를 외우고 주말에 회사에 나와서는 주차장을 체크해서 누가 주말에도 나와서 일하나 보는 진상짓을 하기도 하고, 미팅 중에 사원들의 높낯이를 안가리고 대놓고 소리 지르고 욕 하는게 일상이었다고 한다. 한때 엑셀 개발자였던 조엘 스폴스키의 일화에는[29] 빌 게이츠가 참석한 회의에서 엑셀의 날짜 함수에 관해 제대로 대답을 하고 회의를 끝내니, 회의 참석자들이 빌에게서 F 워드가 4번 밖에 안나온 신기록을 달성한 날이라며 빌이 나이가 들어서(이 때가 빌이 36살 때다.) 물러진 것 같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런데 그런 악랄한 사장 밑에서 일하던 직원들 중 끝까지 참고 버틴 인간들을 전부 부자로 만들어줬다.
컨트리 가수 존 덴버와 외모가 언뜻보면 흡사해서 아주 적긴하지만 기타치는 드립이 있다.
AOL과 넷스케이프는 한창 잘나가던 시절에 빌 게이츠에게 너네 자꾸 그렇게 신경건드리면 회사 확 사버린다 라는 발언을 들은 적 있다.[30]
학창 시절 학교 컴퓨터를 해킹하여 예쁜 여학생만 자기 반에 넣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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