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정보 유머

아프가니스탄 에 대해알아보자

뤼케 2021. 8. 17. 11:41
728x90
반응형

아프가니스탄은 중앙아시아와 중동, 남아시아 사이에 위치했던 내륙국이다. 일반적으로 중동 국가로 분류되기보다는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중 하나로 분류된다. 수도는 카불(다리어·파슈토어: کابل, Kabul)이며, 주요 도시로는 칸다하르(قندهار, Qandahar),[] 헤라트(هرات, Herat), 마자르이샤리프(مزار شریف, Mazar-i-Sharif)가 있다.

자연

힌두쿠시 산맥에 인접해 있으며, 대부분이 고산 지대이자 메마른 지역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지형이 동고서저 또는 북고남저이기 때문에 카불이 위치해 있는 아프가니스탄 북동부쪽이 지대가 가장 높다. 그 중에서 누리스탄주, 바다흐샨주가 지대가 가장 높아서 해발고도 6,000~7,000m를 자랑하는 아프가니스탄의 고산들이 죄다 이곳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무려 7,492m의 높이를 자랑하는 아프가니스탄 최고봉 노샤크 산 또한 바다흐샨주 안의 와칸 회랑에 위치하고 있다.

그에 반해 지대가 낮은 지역은 북부 아무다리야강 유역과 서남부 쪽의 넓은 사막지대 밖에 없다. 

한국군 소속으로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아프가니스탄으로 간 채수문 예비역 대령[]은 아프가니스탄 힌두쿠시 산맥을 지나며 본 풍경을 말하길, '이 전쟁을 미국이 이긴다는 소리가 엄청나게 많았지만, 높고 복잡한 산들만 봐도 쏙 들어간다.' 힌두쿠시라는 이름부터가 힌두교인들이 죽어간 무덤이라는 뜻[]인데, 괜히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 아니며 소련도 괜히 고전한 곳이 아니다. 첨단 장비로 무장한 현대 미군조차 위성장치를 비롯한 장비들이 이 산과 고원 지대에 올라가면 먹통이 되는 관계로 이곳에 대대로 살던 지역민들이 없다면 들어가지도 못하는 곳이다. 이해가 안 간다면 실화 기반 영화 론 서바이버에서 주인공 일행이 전화 한방을 못 때려서 그 생고생을 하다 겨우 한명만 살아남은 것을 떠올리자. 그러니까 장갑차나 전차 등 차량은 절대로 못 들어간다. 험난한 산악길을 오로지 헬리콥터만 타고 이동해야 하는 현실이다.

기후는 주로 건조기후로 건조하고 연교차와 일교차가 크며,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탁한 공기로 인해 호흡기 질환 등이 자주 유행하는 편이다. 해발 1,791m의 고지에 위치한 카불의 경우 1월 평균기온 -2.3℃, 7월 평균기온 23.7℃에 연강수량은 312mm[]이다. 겨울에는 서울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가끔 영하 20도 이하도 기록되기도 한다. 이는 여름도 마찬가지로 평균기온은 서울보다 약간 시원하나 40도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카불의 역대 최저기온은 -26.2°C이다.

산이 많고 나라 자체가 넓은지라 기온 편차도 꽤 큰데, 중부 산지의 차그차란(Chaghcharan, چغچران)의 경우 1월 평균기온이 -9.4℃로 모스크바(-6.5℃)보다도 더 춥고, 심지어 영하 46도가 기록된 적도 있다. 반면 서부 사막 지대에 있는 자란지(Zaranj, زرنج)의 경우 7월 평균기온은 35.0℃로 미국의 피닉스(34.9℃)와 비슷한 수준이며, 가장 높게는 영상 51℃까지 기록된 바 있다. 공식 기록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에서 기록된 최고 기온은 2009년 8월 파라(Farah, فراه)에서 기록된 49.9℃이고, 최저 기온은 1964년 1월 샤흐라크(Shahrak, شهرک)에서 기록된 -52.2℃라고 한다.

아프가니스탄은 넓은 영토에 걸맞게 기후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 이는 고도가 큰 역할을 하는데, 중북부 산악지역은 고지지중해성기후가 나타난다.[] Dsa, Dsb, Dsc 기후 모두 나타나며 일부 고산에서는 툰드라 기후마저 나타난다. 반면 남서부 저지대는 대부분 사막으로, 여름에는 무섭도록 기온이 치솟는다. 와칸 회랑이라고 알려진 북동부의 산악지대와 바다흐샨 주는 겨울이 매우 길고 미칠듯이 춥고, 영하 40도가 기록되기도 한다. 고도로 인해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보다 국토 평균기온이 낮은 나라이다.

저격의 명소이기도 하다. 베트남 전쟁 때 카를로스 헤스콕이 세운 세계 초장거리 저격 기록은 한동안의 긴 공백 끝에 이 나라에서 네 번이나 깨졌다. 맥밀란 Tac-50이 이 나라에서 한 전투에 두 번, 이후 또 저격 기록을 갱신 및 1위를 다시 차지했고, L115A3도 기록하는 등, 진짜 저격의 명소인가 싶다. 아닌 게 아니라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때 AK-74로 무장한 소련군들을 무자헤딘전사들은 구식 리-엔필드 소총으로 800m 이상의 거리에서 저격함으로써 불리한 화력에도 불구하고 소련군의 사기를 크게 꺾어두었다. 워낙 험준한 고산 지대라 대규모 화력은 이동시키기도 어렵고 체력 안배도 쉽지 않은 곳인지라 자연히 저격수들에 의해 아프가니스탄은 소련군의 무덤이 되었다. 이에 소련은 고심 끝에 스페츠나츠 저격수를 3배나 늘리고 민간인 마을에 마구 보복하는 등 갖은 수를 썼지만 국제 여론까지 악화되는 결과를 낳았고 결국 무자헤딘 측은 소련을 몰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현재 저격 최장거리 기록도 저격수의 이름이 밝혀진 기록에 한해서는 1위부터 3위까지 모두 아프가니스탄에서 만들어진 기록이다. 현재 1위 기록(3,450m)은 현역 복무중인 특수부대 JTF-2 소속이라 신상이 비공개이기 때문이다.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시기에 활약한 머스킷인 제자일이 만들어진 곳으로도 유명하다.

아프가니스탄 전역은 힌두쿠시의 높고 척박한 산들과 복잡한 지형때문에 외지인은 물론 탈레반 조차 접근하기 쉽지 않은데 특히 해발고도 6,000~7,000m의 고산들이 위치한 북동부 누리스탄주와 바다흐샨주는 탈레반은 아예 접근을 못하고 현지인들도 모르는 곳이 허다했기 때문에 특이한 일도 있었다. 예전에 미군은 정보도 지도도 없는 채로 이 근방을 헬리콥터로 이동하게 되었는데, 도중에 한 마을과 마주쳤다.그러자 마을에선 난리가 벌어졌다고 한다. 헬리콥터가 착륙하자 총을 쏴댔는데 미군도 대응하려고 보니 총들이 그야말로 골동품인 20세기 초반에 쓰던 총이었고 살의보단 경계로 쏴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후 현지인 통역을 통하여 설득하고 보니 이 마을은 이방인이 온지 수십여년이 넘었으며 전기도 탈레반이 뭔지도 모르는 마을이었으니 헬리콥터도 자동차도 아예 몰랐다고 한다. 그만큼 척박한 곳이라 사람들이 먹는 것은 듣보잡 채소를 길러 먹거나 마을에 얼마 안 되는 가축을 아주 드물게 먹는 수준이었고 당연히 통조림이나 인스턴트 음식은 신기하게 여겼다고 한다. 오랫동안 고립되었기에 말도 꽤 다르게 변모되어서인지 통역인도 한참 대화에 고생했다고 한다.[14] 대개 파미르인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고립된 부족들은 다행히 탈레반의 폭정이나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같은 참상은 겪지 않을 수 있었다 한다.

2020년 8월에 홍수가 일어나 70여 명이 사망하였다.

 

나라역사

2021년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탈레반에게 항복을 선언하였다.

독특하게도 최강대국이였던 영국, 소련 그리고 미국까지 아프가니스탄과의 서열을 무력으로 정리하려고 나섰다가 결국 물러난 역사를 지니고 있다. 허나 이것을 아프가니스탄이 강대국들을 상대로 당당히 승리했다고만 볼 수는 없는 것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이들 국가들은 적어도 초기 목적이였던 기존 아프간 정권을 박살내는 데는 성공했기 때문이다. 대체로 기존 아프간 정권이 먼저 해당 국가에게 밉보일 짓을 하게 된[15]게 빌미가 되어 침략을 당하였고, 침략국들은 초창기의 목적이였던 아프간 정권을 무너뜨리는데는 분명하게 성공하였지만, 아프가니스탄이 구태여 총칼로 억눌러가면서까지 반드시 자기 편으로 묶어둬야 할만큼 매력적인 지역은 아니였기 때문에 결국 뒷처리를 미적지근하게 하다가 산 속에 숨어서 농성하는 게릴라들에게 질려서 떠난 케이스일 뿐이지, 만약 이들 국가들이 작정하고 아프가니스탄을 갈아엎을 생각으로 군대의 규모와 질을 정비해서 단단히 찍어눌렀다면 충분히 점령하고도 남을 상황이였다.[] 게다가 외세를 몰아낸게 자신의 손으로 이룩한게 아니라 그냥 여러 게릴라들 때문에 질린 공격자가 물러난 것이기 때문에 각각의 게릴라들은 자기가 외세 침략을 막아낸 영웅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아프가니스탄의 실권을 독점하려고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돌리곤 했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은 외세의 침략에서 벗어났다는 기쁨을 제대로 만끽하지도 못 했다.

 

정치

부패인식지수에서는 소말리아와 북한과 함께 8점[]을 기록, 꼴찌를 차지했지만 2014년 부패인식지수 결과 아프가니스탄 점수가 12점으로 향상되어 꼴찌를 탈출하였다. 부정부패가 엄청나다보니 탈레반이 여전히 버틸 수 있는 원인 중 하나가 고위층은 물론이고 탈레반을 소탕해야할 경찰들도 뇌물만 받으면 대충 넘겨주는 등의 행태를 보이는 등 돈에 환장해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라서 민영방송사 코미디 프로그램을 통해서 풍자될 정도이다.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대통령제가 도입되었다. 2004년 첫 대선에서 하미드 카르자이 당시 자치정부 수반이 쉽게 당선되었다. 2009년 대선에서 재선되었다. 2009년 대선에서는 2위 압둘라 압둘라 전 장관이 30.59%라는 무시 못할 득표율을 올리기도 했다. 2014년 대선에서 아슈라프 가니 후보가 당선되었다. 하지만 2014년 대선은 부정선거 의혹으로 점철되었다. 1차 투표에서 1위를 했던 압둘라 후보가 결선 투표에서 역전당했기 때문. 결국 아슈라프 가니와 압둘라 압둘라 두 후보가 공동정부 구성에 합의하여, 아슈라프 가니가 대통령을 맡게 되었고, 압둘라 압둘라가 최고행정관을 맡게 되었다.

2020년 2월 29일, 도하 협정 체결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주도로 미군 완전철수가 합의됐다. 하지만 정작 미국과 탈레반이 협의하는 중간 아프가니스탄 행정부가 여기에 전혀 끼지 못하면서 이 협정이 향후 아프가니스탄 정치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오랜 내전과 전쟁으로 수도 없이 피를 흘렸고 장기간에 걸친 전쟁과 외세 침략으로 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이란이나 파키스탄, 인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등 이웃 인접국가들을 떠도는 난민들이 속출하고 있으며 탈레반과 정부군, 외국군, 여러 지역 무장 군벌간 전투와 유혈 충돌은 끓이질 않고 있고 탈레반 정권을 몰아내고 들어선 아프간 신정부도 탈레반만큼 종교 극단주의가 심하며 무능하고 부정부패로 찌들어 있는 등 나라 꼴은 그야말로 답이 없는 상황이다. 이런 현재의 모습에 수많은 아프간인들이 절망하며 희망을 잃고, 해외로 떠나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비교적 자유롭고 평화로웠던 옛날 자히르 샤 왕정 시절이 살기 좋았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렇듯 일각에선 왕정 붕괴 후 내전과 유혈 대학살, 외세 개입, 침략으로 헬게이트로 전락했다가 1993년 왕정이 복고되면서 나름대로 안정을 되찾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캄보디아처럼 이 나라도 왕정으로 복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허나 32년간 거친 전쟁과 내전으로 찢어질 대로 찢어지고, 법보다는 군벌과 부족 세력들의 힘이 강력해지다시피 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왕정이 복고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물론 아프가니스탄이 왕정 복고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쪽도 캄보디아와 같이 국제연합(UN) 등에서 UN 평화유지군이나 감시단 등을 파견하여 분쟁에 개입한다면 캄보디아처럼 왕정복고 이후 지금의 심각한 내전 상황이 종결되거나 혹은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주처럼 왕정 폐지 후 전국에 난립하여 온갖 폭탄 테러와 게릴라전, 약탈, 마약 판매, 양민학살 등을 자행하는 탈레반이나 여러 지역 무장 단체들이나 지방 군벌 세력들이 약화되어 붕괴될 가능성도 꽤 있다.

결국 2021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함으로서 공화정부가 멸망하고 탈레반 정권이 다시 부활하였다.

 

경제

경제는 말그대로 총체적 난국에 와있다. UN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의 1인당 GDP는 668달러로 세계에서 14번째로 가난한 나라라고 하며, 이는 한국의 1/45, 미국의 1/80에 불과하다. 심지어 북한[18]보다도 조금 낮은 정도이다.[] 인간개발지수는 0.374로 끝에서 13번째로 앙골라와 에티오피아보다도 낮다. 험한 산악지대가 가득해서 개발이 힘든데다가 내전중이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지만 부패가 너무 심하다보니 정부관계자들이나 토호들이 중간에 빼먹는 금액이 너무 커서 나라발전이 안 이루어진 이유도 크다. 오죽하면 아프간인들도 그간 선진국들로부터 받은 원조자금의 반이라도 제대로 쓰여졌더라도 아프가니스탄이 적어도 인도나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즈스탄보다는 잘사는 국가가 되었을것이라고 한탄할 정도이다.

사실 아프간은 중세에는 동서 교역으로 번영을 누리던 지역[]이었지만 사막화가 진행됨과 동시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주도한 대항해시대로 인해 육로를 통한 동서 무역이 쇠퇴하면서 이 지역은 문맹률이 증가하고 종교 극단주의가 득세하는 후진 지역으로 추락하였다.

물론 탈레반의 종교 극단주의로 인해 나라가 가난해졌다고도 볼 수가 있지만 빈곤 문제 때문에 탈레반 같은 종교 극단주의가 득세한다고도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이웃나라인 타지키스탄은 종교 극단주의 문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상술한 문제[]로 아시아 최빈국 중 하나이다. 그나마 러시아가 지원을 많이 해줘서 최소한 나라 꼴은 유지하고 있다.

우습게도 소련과 기나긴 전쟁으로 소련군 전차라든지 온갖 장비가 고철로 남아 한때 이걸로 팔아먹었다. 평화유지군 소속으로 아프가니스탄에 머물던 채수문 중령의 회고를 봐도 아프간 산지 곳곳에 소련 전차가 남았는데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국제 헬기나 온갖 장비가 남아서 90년 초반만 해도 고철로 활용되던 베트남이랑 똑같았다.

마르코 폴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푸른색'이라고 부른 보석, 라피스 라줄리의 최상품은 바로 이 아프가니스탄 북부 바다흐샨 주에서 나온다. 자그마치 6000년 동안 라피스 라줄리를 캔 사르이상그(سر سنگ, Sar-i Sang)라는 광산도 있다. 그 외에도 철이나 망간, 여러 광물자원이 엄청나게 매장되어 있으며 힌두쿠시 산맥 쪽에는 우라늄도 엄청나게 매장되어 있어서 미국은 핵 관련 문제만으로도 100% 완전 포기는 어렵다고 평가한다.

다만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탈레반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손을 뗄 가능성이 확실하다.

석유가 나긴 하지만 생산량이 극히 미미한 수준이고, 현재 미국 자본이 파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을 잇는 오일 파이프라인을 아프가니스탄에 놓기 위한 지속적인 물밑 작업을 벌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사실 매장량이 적다기보단 채굴 기술이 없는 것에 가까우며 어쩌면 또 하나의 기름덩어리 땅일 수도 있다. 바로 이웃인 이란의 석유 생산량을 보면 답이 나온다.

2016년 유럽연합(EU)과 아프가니스탄이 공동 주최한 "아프간 지원 회의"에서 유럽연합은 2020년 아프가니스탄에 52억 달러를 지원키로 결정하였다. 관련 기사.

유엔 세계식량기획은 아프간에서 극심한 가뭄이 들면서 320만명에 이르는 주민들이 기근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2018년 11월 27일~28일까지 제네바에서는 아프간 지원을 논의하는 콘퍼런스가 열렸다. 관련 기사.

미국이 아프간 재건을 위한 쓴 돈이 150조원이 넘는다

 

아편 생산

아프가니스탄은 세계 최대의 아편 생산국이다. 이미 17세기에도 아편 재료인 양귀비 재배로 알아주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1960년대 안정적인 생활을 할 당시에도 시골 지역에선 여러 생필품 부족 및 생활난으로 양귀비는 활발하게 재배되었으며 왕실이 금지하려고 했으나, 금지했더라면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키거나 굶어죽는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금지를 전면 취소할 정도로 양귀비가 생활에 깊숙히 들어온 곳이 많다.

결국 단속한다고 해도 마약은 민병대의 주요 수입원 1등[]을 차지하고 있으며 대부분 소비되는 아편 계열의 마약은 아프가니스탄산이 많다.

덕분에 한때는 전세계 아편 생산량의 80%[]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 지역을 골든 크레센트 즉 황금 초승달 지대라고 한다. 실제로 탈레반은 이 황금 초승달 지대를 장악한 것을 이용해 외국, 특히 파키스탄, 이란 마피아와 마약을 거래하는 사실상 마약 카르텔 역할을 하며 장사를 해먹고 있다.

 

사회

샤리아를 공식 법률로 하는 것을 지지하는 국민 여론이 무려 99%나 될 정도다.

특히 시아파 근본주의 신정국가인 이란에서 만든 드라마 가지고도 저질이니 퇴폐적이라고 까대는 나라이니 말이 필요할까. 물론 이란 항목을 봐도 알겠지만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나라들과 견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슬람 공화국 출범 이후에도 이란은 여전히 중동에서 민주주의와 여성 인권에서 그나마 순위권 안에 드는 나라이기도 하다.[] 사실 아프간 내에서도 차이가 있기는 해서 카불과 같은 북동부 지역으로 가면 나름대로 개방적인데 반해 서부나 남부 지역으로 갈수록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편이다.

보수적인 여론이 강하기는 하지만 문화적으로 무조건 꽉 막혔냐면 사실 그런 것만은 아니라서[] 2000년대 탈레반이 물러난 이후로 텔레비전 수상기가 급속하게 보급되면서 적어도 인도 영화나 해외 드라마 같은 것도 볼 수 있게 된데다가 언론의 자유가 생각보다는 잘 보장이 되어있는 편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얘기다.

문제는 탈레반 세력이 여전히 큰 세력으로 잔존해있기 때문에 이들이 방송사와 언론사에 테러를 저지른다거나 기자, 영화감독, 배우들한테 살해 협박과 테러를 저지르거나 기자, 배우한테 압박을 가하는 일이 많다. 대표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의 유명 배우이자 100편이 넘는 영화들을 찍은 영화감독인 살림 샤힌(Salim Shaheen)만 해도 과격 무슬림들로부터 비종교적 액션 영화를 제작한다는 이유로 끊임없는 살해협박을 받고 있으며, 스튜디오에 로켓포 공격이 날아와 스태프 9명이 죽은 적이 있다. 선정적인 프로그램을 내보낸다는 상투적인 이유에서부터 정치인 비리를 폭로할 때 죽일 것이라고 협박하는 일까지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아프가니스탄의 부패상이나 전후 막장 치안과 정치 상황이 국내, 해외에 잘 알려질 수 있었던 것도 이들의 공이 크다. 아프가니스탄 기준으로 제법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있는 톨로TV나 1TV 등 상업 방송국의 시청률이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데다가, 페르시아어 위성방송이나 인도/파키스탄 방송도 꽤 흥하고 있기 때문에 사우디, 예멘, 카타르 같은 중동의 이슬람 극단주의 국가들보다는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상당히 개방적인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애초부터 아프간은 원래 인도문화권이었던 관계로 인도 대중문화가 인기인지라 어느 정도 서구화된 인도를 동경하며 문화적으로 개방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장노년층들의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은 여전해서 갈등이 나름대로 있는 편이다.

아프간 사회의 병폐인 막장 치안이나 명예살인, 관료들의 부정부패나 기업들의 결탁 등 사회부조리와 부패상을 널리 알리고 인도 영화나 터키 드라마 등을 편성하거나 서구나 파키스탄, 인도 음악도 틀어주고 물론 한국 기준으로는 심심하지만 개방적인 프로그램들을 많이 방영하는 등 아프가니스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많이 하기에 TV가 아프가니스탄에 끼치는 영향은 꽤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텔레비전의 보급률이 나름대로 높으나, 인터넷은 국토의 대다수가 산지인데다가 인프라를 까는데 드는 비용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인해 쓰는 사람이 적다. 그나마도 사용자들이 도시 지역에 집중되어 있고, 인터넷 속도도 느리며 요금도 비싸다. 하지만 사회부조리를 알리는 창구 역할을 하기 때문에 TV와 함께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맡는다.

2015년 1월 이후로 여성 가수 뮤직비디오 제작 및 공중파 송신이 가능해졌으나, 가슴골이나 다리가 조금만 보여도 모자이크 처리를 할 정도로 검열이 심하다.

그나마 권투에 한해서는 여성이 니캅이나 히잡을 벗고 활동할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이다. 태권도도 허용은 되지만 히잡은 하고 뛰어야 할 정도로 검열이 심하다. 그래도 탈레반 시절 때에 비해 정말 많이 나아진거다 그때는 두 종목 모두 여성이 할 수도 없고, 걸린다면 하거나 가르쳐 준 사람까지 동반 처형될 각오를 해야 했다.

마약, 범죄, 전쟁 등의 문제로 사망하거나 마약에 중독되는 사람들이 상당하고 교통이나 치안 등의 문제로 인해 세계적으로 평균 수명이 중하위권이다. 남성이 58살, 여성이 62살 수준에 불과하다.

아프간에서 테러가 계속 일어나면서 온라인 쇼핑이 성행하고 있다고 로이터와 톨로뉴스 등 아프간 내 매체가 보도했다

 

스포츠

그나마 1950년대-1960년대 안정을 누릴 땐 축구가 역시 인기가 많았지만 오랜 전쟁으로 리그나 여러가지가 죄다 사라졌다. 탈레반은 축구를 아예 금지하지는 않았지만 국제대회 참가 등은 당연히 불가능했고 축구 경기 휴게시간에 축구 골대를 교수대 삼아서 교수형 집행 이벤트를 하는 등 막장을 보여주었다. 그나마 아프간 전쟁 이후 국제대회에 나왔으나 큰 골차로 대패하는 일이 많다.

자세한 것은 아프가니스탄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조.

그 밖에 권투가 인기가 있다고 한다. 탈레반조차도 권투를 금지하진 못했을 정도였다고... 

또한 태권도도 꽤 잘하는데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로훌라 릭파이가 조국에 올림픽 역사상 첫 메달을 안겨줬다.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에서 태권도의 인기는 상상 초월이며, 현재 약 1,000명이 넘는 선수가 활동하고 있다.

크리켓도 꽤 인기가 있는데 파키스탄과 경기를 하다가 양국 팬이 난투극을 벌이는 사건도 있을 정도였다.

 

교육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근대식 학교는 1903년 바라크자이 왕조 시기이다. 바라크자이 왕조는 유럽 각국의 원조를 받아 전국에 근대식 학교를 설립했다.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시기에도 근대식 교육 시설이 확충되었다. 하지만 이 때까지는 아프가니스탄 내에 대학이 없어서 중등학교 졸업자들 중 진학 희망자들은 인근 국가나 유럽으로 유학을 가야했다. 1932년 카불에 카불대학이 설립되면서 유학 수요를 상당수 흡수하였다.

모하마드 자히르 샤는 교육 발전에 큰 관심을 두었다. 모하마드 자히르 샤 치하에서 교육 예산이 크게 증가해 학교 시설이 크게 증가했고, 각 주에 대학을 설립해 고등교육 전반적인 학력을 증진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에서는 여성의 교육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했다. 1978년에만 카불대학 입학생의 40퍼센트 가량이 여성이었고, 농촌에서도 수 만명의 여성이 문해력 프로그램에 등록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1년만에 무위로 돌아가고 만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은 교육 기반을 파괴하고, 교육 인력 이탈을 가져왔다. 교사들은 전쟁을 피해서 인근 국가로 탈출했고, 이들은 꽤나 고급 인력이었기 때문에 인근 국가에서도 큰 문제 없이 받아들여줬다. 교육시설의 파괴는 지방 지역에서 극심했는데, 이렇다 할 근대적 건축물이 적은 지방 지역의 특성상, 학교 시설이 군 주둔시설로 징발되었기 때문이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교육 기반은 탈레반 집권 시기 거의 궤멸적 파괴를 겪었다. 탈레반 정권은 여성에 대한 교육을 금지하고, 근대식 학교를 탄압하며, 이슬람 종교 학교인 마드라사를 재건하기 시작했다. 탈레반 집권 시기 120만명의 남성 학생이 교육을 받았지만, 교육 받은 여성 학생 5만명도 되지 않는다.

탈레반이 패퇴한 후 수립된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에선 교육 재건 정책을 펼치고 있으나, 수십년 간 파괴된 기반과 정권의 부정부패로 재건은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03년 통계에 의하면, 남성의 57퍼센터, 여성의 86퍼센트가 문맹이지만, 경제적 문제로 인해 교육 의지가 적고, 숙련된 교원층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교육 여건을 확대하는 것이 쉽지 않다. 또한, 탈레반 집권 시기의 영향으로 인해 근대식 학교에서도 종교 교과를 개설하고 지역 성직자가 학교에 방문해 종교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다만, 교육 예산은 지속적으로 점증하고 있어, 교육 여건은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2006년에는 미국의 원조를 받아 카불에 아프가니스탄 아메리칸 대학교(The American University of Afghanistan)가 설립되었고, 2010년대는 전국 단위의 대학 재건 계획을 진행해, 남부에는 칸다하르 대학교, 동부에는 낭가르하르 대학교와 호스트 대학교, 서부에는 헤라트 대학교, 북부에는 발흐 대학교를 지방 거점 대학교로 선정하고, 대대적인 재건을 실시했다. 이들 대학은 각 지역의 수위 대학으로,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집중적인 예산 지원을 받으며, 지역 내 대학의 교원을 양성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초등학교 취학자는 2001년 1백만명에서 2016년 920만명으로 증가했고, 같은 시기 여성의 취학율은 0%에서 37%까지 뛰어 올랐다. 교육 시설 측면에서도 같은 기간 5천 개가 넘는 학교가 신설/재건되었다. 또한, 적극적인 교원 확보 정책을 펼쳐 같은 기간 교원의 수가 7배까지 증가했다. 다만, 중등학교를 졸업한 경우 무검정으로 초등학교 교사로, 대학이나 중등학교를 졸업한 경우 중등학교 교사로 임용한 경우가 많아, 교원의 질적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단적으로, 대학 교원 중 박사(PhD) 학위 소지자 비율이 5%도 되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 내에서의 수위 대학은 아프가니스탄 아메리칸 대학교로 미국인 교수진을 갖추고 영어로 강의가 진행된다. 이 대학에는 아프가니스탄 유일의 MBA 과정이 개설되어 있기도 하다. 또한, 성적 우수자에 대해선 미국 내 대학원 무상 유학 기회가 주어진다. 이외에도 카불대학교를 비롯한 5개의 지역 거점 대학교의 입학 경쟁이 치열하다. 이외에도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50여 개의 대학이 있다.

아프가니스탄 내의 대학은 고등교육부에서 담당하는데, 현재 최우선 현안 과제는 석사 및 박사 과정의 확대이다. 하지만 재정적 문제도 큰 문제이지만, 긴 혼란 기간 동안 고등 교육 인력의 유출이 극심한 상황이라, 대학원 과정의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안정적으로 대학원을 운영하고 졸업생을 배출하는 대학은 아프가니스탄 전역에서 10개 대학 내외이다. 2014년의 조사에 의하면, 전체 대학 교원 5,006명 중, 30%가량이 석사 학위 소지자이고, 박사 학위 소지자는 3.8%였다.

인력이 없어서 대학 교육을 확대하지 못하는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은, 극심한 정치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교육 기반만큼은 철저히 보호하고자 했던 에티오피아와는 큰 대조를 이룬다. 에티오피아는 전국 단위로 사범대학을 운영하여 교육 기반을 확대하고, 대부분의 국공립대학에서 대학원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상황이다.

728x90
반응형